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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31일 화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출애굽기 4장 / 주저하는 모세를 계속 격려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그분이 누구이신지, 그리고 그분이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를 모두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그러나 모세는 주저합니다. 자신을 믿거나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너무나 이해가 됩니다. 그는 이미 마음이 너무나 연약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며 그를 격려하십니다. 지팡이로, 손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물이 피로 변하는 이적을 허락하십니다.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께서 "가능성"을 열어 두신다는것입니다. 백성이 어떻게 무조건 할 것이다 라고 하시지 않고, 그들의 반응에 맞춰서 행동할 수 있도록 모세에게 가능성을 열어 두십니다. 

그런데 모세는 여전히 주저합니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아주 완고하게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합니다. 자신은 본래 말을 잘 하지 모한다고 말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충분히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의 왕자로 자랐던 모세가 과연 말이 부족한 것인가? 모세가 가고 싶지 않은 마음에 끝까지 변명을 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이쯤되면 하나님께서 화를 내실만도 한데, 하나님은 끝까지 격려하십니다. 모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한계와 어려움을 계속 호소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 자체를 그리고 모세 자체를 창조하신 분이 자기 자신임을 말씀하십니다. 인간의 모든 조건과 어려움 조차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한다면, 그 모든 어려움과 조건을 뛰어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보낼 만한 자를 보내라고 말합니다. 그제서야 하나님께서 화를 내십니다. 그리고 다시 모세를 향해서 그의 형 아론을 붙여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며, 그가 어떤 일을 행할지를 정해 주십니다. 그는 모세의 입이 되어 줄 것입니다. 

모세가 장인 이드로에게, 단순히 가족들이 살아 있는지 보러 간다라고 말한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는 모세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그와 40년을 함께 한 가족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드로에게 처음에는 상세하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모세가 이드로에게 이별을 고하고서는 여전히 주저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격려하십니다. 애굽에서 모세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다 죽었다 라고 말씀하시고, 그 이후에야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떠납니다. 모세는 계속 자신의 능력의 부족을 주장했지만, 어쩌면 그가 이집트로 가고 싶지 않았던 가장 큰 깊은 내면의 이유는 생명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인 듯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시고 가라고 명령하셨지만, 갑자기 그를 죽이려고 하십니다. 십보라는 모세의 아들을 할례를 하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놓아 주십니다. 왜 굳이 이 부분에서 할례가 등장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구약 전체에서 보여주는 것은 그 누구라도 감히 할례가 없다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집트로 돌아가고자 했던 그 모든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두려움과 떨림과 주저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씨름하였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이적들을 보고, 백성들이 믿고 여호와께 머리 숙여 경배합니다. 앞으로 수 많은 어려움이 여전히 앞에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장면을 통해서 모세를 크게 위로하셨을 것입니다.

In this chapter, we see the hesitation of Moses. I understand that he was in the wilderness for 40 years. Surely, this harsh environment has diminished his self-confidence. God understands it and he encourages him with his word, miracles. However, Moses was reluctant to do his mission. 

I assume that he was afraid to lose his life. He fled from Egypt to save his life. So, to enter Egypt, he should endure severe danger to lose his life. But God ease his mind with his word that the people who wanted to kill him were dead.

We see the long struggle of Moses to have a conviction to return to Egypt. But, Moses saw the elders, and all of the Israelites listened to the word of God and worshiped him. Net Bible translated "they bowed down close to the ground." GT study bible emphasizes that this attitude is totally different from Egyptians including Pharaoh. Of course, there will be many hardships to complete Moses' mission. However, I am sure that at this time, Moses was comforted a lot. 

2022년 5월 25일 수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출애굽기 3장 / 거룩하신 여호와가 자신의 백성을 구하러 찾아오시다

 

이집트의 왕자 모세는 이제 다른 모세가 되었습니다. 그는 양 떼를 치는 사람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성경은 야속합니다. 40년의 시간이 지나고 모세가 완전히 잊혀진 사람이 된 그 시간을 언급조차 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모세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그런데 잊혀진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타는 불로 떨기 나무 가운데 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십니다. GT 스터디 바이블은, 가죽 신발이 생명을 죽이고 만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와 맞지 않는 것이라 그렇게 하셨다고 설명합니다. 죽은 인생과 같던 모세에게 생명의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떠나계시고 무관심하신 줄 알았던 여호와께서는 백성의 모든 아픔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처음부터 가장 완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선언하십니다. 가나안 땅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제시하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그 계획을 위하여 모세를 보내겠다고 하십니다. 

모세는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로 가는가 반문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반응입니다. 스스로의 능력으로 백성을 구하겠다고 했던 모세는 보잘것 없는 자리에서 40년을 살았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와 희망은 완전히 사라졌을 것입니다. 자기는 감히 바로 앞에 설 수 없는 사람이라고 당연히 생각할 것입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약속은, 모든 것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보증은,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분이야 말로 온 우주의 창조자이시며 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존재하시는 "스스로 있는 자" 이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 이 대화가 이루어지는 이 산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것입니다. 

백성이 나오는 길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는 결코 한번에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가지 이적이 있어야만 이 위대한 일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모세는 그 과정 중에서 많이 절망할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라는 약속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모세의 삶에 전혀 새로운 장이 이제 펼쳐지려고 합니다. 

Moses' life is totally changed. He was the prince of glorious Egypt but he was shepherding the flock in the wilderness. There is a tremendous gap of 40 years. However, it seems that the Bible doesn't care it seriously. 

God appeared in flames of fire in the middle of a bush. God said that he has seen all the affliction of his people and told his plan and vision for Israel which is his covenantal people. God will use Moses to deliver his people. However, Moses said, "Why me?" I like this translation of the Message Bible. It seems that God abandoned him even after 40 years. Now he is just an old shepherd. Why did God come to him in this timing of his weakness? 

His answer is so simple. "I'll be with you". We do not know the reason for God's works. However, we know surely he is with us to achieve his vision and plan. This is our unwavering hope in the Bible. 

2022년 3월 26일 토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출애굽기 2장 / 인생 최악의 상황에서 정체성을 붙들다

 

파라오가 모든 남자 아이를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성경은 이 상황 속에서 한 가정에 집중합니다. 어떻게든 아들을 살리고자 하는 부모의 처절한 노력이 등장합니다. 석 달 동안 아이를 숨겼지만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습니다. 결국 갈대 상자를 만들어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둡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슬픈 장면입니다. 부모의 마음이 찢어지도록 아팠을 것입니다. 그들의 행동이 어떤 미래를 이 아기에게 열어갈지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아기의 누나가 그 아기 옆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봅니다. 그런데 성경은 가족의 아픈 마음과 아기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매우 담담하게 기록하는 것 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 바로의 딸이 등장합니다. 바로의 딸은 상황을 바로 이해했습니다. 그녀는 아기를 보고 히브리 사람의 아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아버지와 다르게 그녀는 자비가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불쌍히 여겼다"라는 단어는 구약 성경 안에서 거의 스무번 가깝게 하나님께서 주어로 사용된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바로의 딸을 통하여 이 아기에게 보여졌습니다.

지혜로운 누이가 그 때 등장합니다. 사실 굉장히 당돌한 발언입니다. 유모를 불러주겠다고 제안합니다. 이집트사람 중에 유모가 없었을까요? 당연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히브리 유모를 제안하였고 그 제안이 받아들여집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자라서 바로의 딸의 아들이 됩니다. 그리고 그녀가 그 아들에게 "모세"라는 이름을 붙여 줍니다. 

그 모세가 장성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모세가 의롭고 정의로운 사람이라서 동족을 위하여 행동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은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저는 항상 그런 생각이 듭니다. 도대체 모세는 장성하기까지 무엇을 했는가? 입니다. 모세는 오랫동안 왕궁에서 자랐습니다. 매우 긴 시간 동안 동족들은 이미 핍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늘 보고서도 그에게 큰 감흥을 주지 못했던 동족의 핍박이, 어느날 모세에게 큰 아픔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히브리 사람이야말로 자신의 형제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동족을 죽이려는 이집트 사람을 쳐서 죽입니다.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모세의 뜻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습니다. 히브리 동족들은 모세를 자신들의 재판자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세의 폭력과 살인을 모든 이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파라오에게까지 그 소식이 들어갑니다. 모세는 미디안 땅으로 도망합니다. 

이집트의 왕자에서 하루 아침에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영화에서도 보기 어려운 진정한 추락입니다. 모세의 입장에서는 큰 용기였고 정의로운 행동이었지만 그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의 삶 자체가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미디안 땅 어느 낯선 우물 옆에 앉아 있을 때에, 그곳 제사장의 딸들을 도와줍니다. 낯선 곳에서, 전혀 낯선 누군가를 도와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딸들의 이야기를 아버지가 듣습니다. 아버지는 딸들이 그렇게 귀한 은인을 버려두고 왔다고 책망합니다. 모세를 집으로 초대합니다. 

저는 21절에 "모세가 그와 동거하기를 기뻐하매"라는 말씀이 너무나 크게 보입니다. 르우엘은 모세를 인정해 준 사람입니다. 그를 칭찬해준 사람입니다. 그의 가치를 알아봐준 사람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타인의 가치를 무시하며 칭찬에 인색한 삭막한 이 시대에 적용될 수 있는 너무나 따뜻한 말씀입니다. 

모세는 르우엘의 딸과 결혼합니다.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준 사람이 장인 어른이 된 것입니다. 아들의 이름을 게르솜이라고 합니다. 모세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자신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다는 것을 아들의 이름을 통해 나타냅니다. 

사도행전 7장 30절을 보니, 광야에서 모세는 40년이 훌쩍 지나갑니다. 성경이 시간을 기록하고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과정은 때론 너무나 야속하고 잔인하게 느껴집니다. 40년이라니... 이 시간 동안 모세를 찾던 파라오는 죽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은 끝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그분의 언약을 기억하십니다. 성경에서 기억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주제는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도 히브리 민족을 돌아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모세도 버려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의 삶을 다 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그들을 기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끊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입니다. 

In Exodus 2, we see the newborn baby at risk. because the pharaoh ordered to kill every boy, one of the Hebrew families chose to hide his baby putting the papyrus basket among the reeds along the edge of the Nile. 

in god's grace, this baby was rescued by the daughter of the pharaoh, and even he adapted to her son. amazingly, when this boy was fully grown up, he realized and see Hebrews as his brothers. he had great brave and sense of justice to kill the Egyptian beating his brother. however, the Hebrew people refuse to accept Moses as their leader or helper. 

so, Moses should flee to the Midian. coincidently Moses helped some women and he found a good man to acknowledge his value. however, Moses has felt that he is a foreigner there. 

even 40 years passed. maybe Moses felt that he was abandoned by everyone and Israelites felt too. however, God saw them remembered his covenant, and started to act to save them.

2022년 3월 21일 월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출애굽기를 시작하며 & GT 스터디 바이블 출애굽기 저자 T. D. Alexander 소개

 

신학교 졸업 여행을 성지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이집트, 이스라엘 그리고 요르단을 방문하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집트가 가장 좋았습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모래 사막과, 두 눈으로 보고서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던 피라미드가 좋았습니다. 우리의 삶이 광야 그 자체이기 때문에, 모래로 가득한 그곳을 두 눈으로 직접 보니, 그 안에서 실제로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이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출애굽기를 좋아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을 받고 그분의 인도함을 받는 여정이 너무나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구원 받은 백성의 좌절과 기쁨, 배반, 절망 그리고 환호가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넘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은혜가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는 우리의 인생 그 자체입니다.

출애굽기 묵상을 시작하면서 GT 스터디 바이블을 함께 읽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어떤 책을 읽을 때에 저자에게 크게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두 가지 경우입니다. 내용이 너무 좋던가, 아니면 내용이 별로 좋지 않던가 입니다. 아쉽게도 이번에는 후자의 경우였습니다. 

제 기준에서는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그리고 굉장히 문학적으로 탁월한 구성이라고 생각했던 출애굽기 1장을 너무 평범하고 무미 건조하게 정리해 놓았습니다. 출애굽기 편의 저자가 누구인지 살펴보았습니다. T. D. Alexander라는 분이었습니다. 

일단 찾아보니 이분은 복음 연합에 속해 계신 분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보수적인 신학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겠습니다. 그리고 살펴보니 좋은 주석 시리즈로 평가 받고 있는 Teach the Text Commentary 에서 EXODUS의 저자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역시 좋은 주석 시리즈로 평가 받고 있는 Apollos Commentary의 Exodus 저자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 T. D. Alexander

* Exodus (Teach the Text Commentary Series)

* Exodus (Apollos Old Testament Commentary Series, Volume 2)

사람은 첫 인상이 매우 중요한 듯 합니다.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C.S.루이스나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정말 말 그대로 한줄만 읽어도 생각이 바뀌는 경험을 자주했습니다. 그 한 문장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여러번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GT 스터디 바이블의 출애굽기 편을 시작하면서 1장 전체에 대한 내용을 읽었지만 감동이 크게 없었습니다. 특별히 통찰력을 발견하지도 못했습니다. 창세기와 마태복을 통해서 크게 유익을 얻었기 때문에 출애굽기의 시작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왜 그럴까 고민을 해 보았습니다. 이미 저명한 주석 두권의 저자라는 것은 탁월한 분이 틀림없을 것인데 저의 마음이 왜 이렇게 답답한지에 대해서 많이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Chita라는 분의 아폴로 주석의 아마존 서평을 읽으면서 작은 실마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This is one of my two mistakes I have made by buying commentaries immediately after their release.

If I am going to teach a Book of the Bible in a few months, I expect to get some help in seeing certain things from a commentary whose author has spent 5, 10, 15, 20 years on it but sadly, that is not often the case with many commentaries.

I read through Alexander’s “From Paradise to the Promised Land” and I wasn’t very impressed. He handled critical issues very well but when it came to surveying the teaching of the Pentateuch, he wasn’t as helpful or as insightful as Hamilton’s Handbook to the Pentateuch. Hamilton did a superb work on the text (literary sensitive) and its theological implications (in my view his survey is better than his commentary on Genesis).

I expected Alexander's Exodus to be better and a great Biblical-Theological commentary but I was wrong. He seems more concerned about answering questions raised by critical scholars than questions raised by the text itself. He mastered a lot of material on Exodus but he strikes me as not having much mastered the text and more importantly, been mastered by the text.

He did not so much make use of the modern literary methods and thus often missed many connections between Exodus and Genesis, and the rest of the Pentateuch. For example he does not pick up on how Exodus both looks backwards and forwards in the Moses birth narrative. One of my favorite texts is Exodus 32-34 because it is foundational to both OT theology and NT theology. He says very little about its influence in both Testaments. I expected to see his biblical-theological skill at this point but I was disappointed.

I look for literary theological exegesis in a commentary, inter-textual and intra-textual sensitivity. For me literary structure is critical to understanding the theological message of a book. He analyzes a few proposed structures of Exodus but he never offers his. This makes it difficult to see how he understands Exodus was put together or how it works. His explanation sections fell flat for me: they are not biblical theologically insightful and neither are they helpful in applying the text.

But since Alexander is a world expert on the Pentateuch his commentary is academically sound and moderately and wisely conservative. Therefore, it is good for some 'dry' academic or traditional exegetical work but the preacher or the literary-theological exegete needs to look elsewhere. It cannot compete with Fretheim (Int.), Stuart (NAC), Garrett (KEC), Bruckner (UBCS) or even Brueggmann’s little commentary in the NIB.

제가 이해할 때에 이분의 서평의 핵심은, T. D. Alexander는 본문이 주는 그 핵심의 의미와 그 가치를 다루기 보다는, 비평적인 학자들이 제기하는 여러 질문들에 답을 하는데 관심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자체를 다루는데 전문가라기 보다는, 본문을 다루는 여러 학자들의 이야기들을 다루는데 전문가라고 저자를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출애굽기를 이해하는 문학적인 구조의 틀에 대해서 큰 관심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저자 자신만의 구조들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문제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수 많은 강력한 메시지들을 드러내기에는 저자의 관심이 충분히 집중되지 못했기 때문에 감동이 부족한 것입니다. 공부를 많이 했고, 또 아카데믹한 영역에서는 인정 받은 분이지만, 오히려 역설적으로 말씀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은 가지지 못한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다시 한번 말씀의 묵상의 중요성을 생각해 봅니다. 글쎄요, 말씀 묵상이 무엇일까요? 이런 사람이 이런 이야기, 저런 사람이 저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종합하는 정도가 과연 말씀 묵상일까요? 

말씀을 공부하고 묵상하고 배우고 익히고 적용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언제나처럼 그것은 "말씀 자체에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오직 성경만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우리의 온 마음을 쏟아서 "그 안으로 들어갈"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 세상이 감히 줄 수 없는 감격과 변화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많이 실망했습니다. 하지만, T. D. Alexander는 믿음 안에서 형제입니다. 이분의 저작에 대하여 실망한 제 마음을 너무 솔직하게 적은 것은 아닌가 마음에 죄송스러운 마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또한 배울 것이 있을 것입니다. 위의 부분들을 감안하면서 GT 스터디 바이블의 출애굽기 편과 함께, 출애굽기의 여정을 이제 시작해 봅니다.

2022년 3월 5일 토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마태복음의 전체 묵상을 마쳤습니다.

 

얼마 전에 아내와 커피숍에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참 행복했습니다. 앉아서 두런 두런 말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서로 주고 받는 모든 내용들이 참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섬기는 교회가 그리고 앞으로 섬길 교회가 바로 그런 공동체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말씀으로 두런 두런 이야기 나누는 것을 별로 어렵지 않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가장 어려운 것이 그것입니다. 단순히 문제를 푸는 차원을 넘어서서,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읽고 묵상하며 함께 나누는 것은, 정말 많은 시간의 묵상과 가장 고급스러운 수준의 교육을 필요로하는 최고의 목표입니다.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 헛된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성경 전체를 개인적으로 묵상하고 그것을 묵상 노트로 남기는 것입니다. 저의 영혼의 유익을 위해서, 그리고 성도님들과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나누기 위해서,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목회와 설교 준비만으로도 벅차지만, 더 위대하고 아름다운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과정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서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생각보다 스케쥴도 많이 늦어 졌습니다. 그래도 결국 마태복음 전체를 묵상했습니다. 완벽한 주석은 아니지만, 적어도 제 안에서 말씀을 소화하고, GT 스터디 바이블을 기본으로 해서 더 높은 수준의 묵상을 향해서 한걸음 더 발돋움 하는 그런 도전이 결실을 이루었습니다. 언젠가 이 내용으로 성도님들과 커피 한잔의 시간을 나눌 날을 기다립니다.

행복합니다. :) 꿈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그것을 한걸음 한걸음 이것 이상으로는 제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이 블로그를 방문하시는 누군가에게, 지금, 그리고 제가 앞으로 목회하고 섬길 모든 분들이 함께 유익을 얻기를 원합니다.

글의 태그 중에, "말씀묵상어디까지해봤니(성경각권완성)"을 누르시면 앞으로 완성되는 성경 각권 묵상의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 마태복음을 시작하며
& GT 스터디 바이블 마태복음 저자 Michael Wilkins 소개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2/gt-michael-wilkins.html

* 마태복음 1장 / 이름을 예수라 하라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2/1.html

* 마태복음 2장 / 진짜 왕을 경배하라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2/2.html

* 마태복음 3장 / 모든 의를 이루시겠다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2/3.html

* 마태복음 4장 / 하나님의 아들, 마귀의 유혹을 완전히 이기시다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2/4.html

* 마태복음 5장 / 하늘의 아버지께 상을 받을,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2/5.html

* 마태복음 6장 / 진짜 경건, 그리고 진짜 믿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2/6-vs-vs.html

* 마태복음 7장 / 진짜 제자 vs 가짜 제자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2/7-vs.html

* 마태복음 8장 / 주님이 원하신다면 vs 제발 나를 떠나가소서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2/8-vs.html

* 마태복음 9장 / 성경적 리더의 조건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2/9.html

* 마태복음 10장 / 거저 받았으니 거저주라, 그러나 미움이 있을 것이다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2/10.html

* 마태복음 11장 / 냉담한 마음이여, 이제는 돌이켜 예수님을 만나라!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2/11_30.html

* 마태복음 12장 / 율법의 목적, 그리고 하나님의 가족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1/12.html

* 마태복음 13장 / 가장 가치있는 천국에, 모든 것을 걸어라!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1/13.html

* 마태복음 14장 / 바로 여기에,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라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1/14.html

* 마태복음 15장 / 인간의 방법은,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다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1/15.html

* 마태복음 16장 / 주님을 꾸짖을 것인가? 아니면, 주님을 따를 것인가?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1/16.html

* 마태복음 17장 / 믿음의 힘에 대한, 의심과 과신 사이에서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1/17.html

* 마태복음 18장 / 아버지의 마음으로 온전히 하나가 되라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1/18.html

* 마태복음 19장 / 결혼의 가치 & 재물이 아닌 하나님을 택하라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1/19.html

* 마태복음 20장 / 은혜 받은 자가 은혜를 잊어 버릴 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2/20.html

* 마태복음 21장 / 종교의 중심지 예루살렘에서 맞서 싸우신 예수님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2/21.html

* 마태복음 22장 / 모든 것이 준비된 잔치에 참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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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23장 / 우리 모두는 동등한 하나님의 자녀이며, 함께 말씀으로 배우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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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24장 / 미혹의 시대, 말씀으로 깨어 인내하며 견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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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25장 / 재림을 바라보며, 하루 동안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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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26장/그리스도의 유일한 가치를 알아보고, 터무니 없이 귀한 것을 그분께 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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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27장 / 주님이 대신 버림 받으심으로, 진정한 화목의 길이 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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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28장 /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의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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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25일 금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마태복음 26장/ 그리스도의 유일한 가치를 알아보고, 터무니 없이 귀한 것을 그분께 드리라

 

GT 스터디 바이블의 26장 내용은 너무나 탁월합니다. 한정된 분량의 스터디 바이블 속에 압축적으로 신학적 내용을 넣는 것은 예술적인 과정입니다. 말씀을 먼저 묵상하고 이후에 스터디 바이블을 읽으면서,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신학적 훈련이 있었기에 이렇게 탁월하게 내용을 정리하고 묵상할 수 있었을까요? 

GT 스터디 바이블은 "이 말씀을 다 마치시매"라는 것으로 감람산 설교가 마쳤다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이 설교들은 28장에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의 대상 중 하나가 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예수님은 네번째로 자신의 수난을 예고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유월절과 연결하십니다. 이집트에서 유월절 양의 희생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 받은 것 처럼, 이제 모든 죄인들은 유월절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 받게 될 것입니다. 

대세자상들과 백성의 장로들은 모여서 주님을 죽일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또 다른 장소인 시몬의 집에서는,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붓습니다. 26장 전체 속에서, 예수님을 이해하고 예수님을 기념하고 예수님께 헌신하는 사람은, 오직 이 여인 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더욱, 여인의 숭고한 사랑과 헌신이 아름답게 빛납니다. 

이 향유가 보통 사람의 1년치 임금만큼 비싼 향유였기 때문에, "제자들"이 "분개"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것이 허비라고 주장했습니다. 허비라는 것은, 그만큼 가치 있지 않은 곳에, 가치 있는 것을 사용할 때에 허비라고 표현합니다. 다른 본문들에서는 "멸망"으로 번역한 단어입니다. 

놀랍게도, 적어도 이 시점까지는, 제자들의 주님을 향한 사랑은 너무나 적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이들은, 예수님에게 싸구려 향수는 어울리지만, 이렇게 비싼 고급 향수를 쓰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GT 스터디 바이블은, 이 여인의 헌신이 extravagant 였다고 말합니다. 터무니 없이 사용했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앞두고, 단 한 사람만이 예수님의 장사를 준비했다고 말합니다. 주님의 가치를 알아보는 여인의 사랑은 너무 커서, "남들이 보기에 터무니 없이 가치있는 것"을 바칩니다. 

13절 말씀이 얼마나 마음에 충격적으로 다가오는지 모릅니다. 온 천하 어디에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모든 곳에서,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고 그를 기억하게 될것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저는, 말로만 하나님을 사랑한다, 교회를 사랑한다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보았습니다. 목회자로서 그분들을 아끼고 보살피지만, 진정한 헌신이 없는 사람을 마음으로 신뢰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가장 가치있다고 확신하는 곳에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예수님이 가장 가치가 있는 분이기 때문에, 터무니 없이 고귀한 것을 드린다 하여도,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헌신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삶이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남들이 보기에 "터무니 없는" 헌신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복음과 함께 전해져야 마땅한 여인의 이야기가 나오고, 배신자 가룟 유다가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식사를 시작하시지만, 배신자가 함께 있기 때문에 그 식사를 시작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 중에 배신자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지만, 가룟 유다는 돌이키지 않습니다. 가룟 유다는 처음부터 진정한 제자가 아니었으며, 끝까지 회개를 거부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랍비"라고 부릅니다. GT 스터디 바이블은,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주"라고 부른 기록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지적합니다. 

배신자가 떠나자, 드디어 유월절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이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감격적이며, 엄숙한 장면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을 이스라엘 백성이 먹었던 것 처럼, 이제는 제자들은 예수님의 몸으로 비유된 빵을 먹고 잔을 마십니다. 주님의 모든 것이, 온전히 제자들의 것이 되는 신비롭고도 놀라운 장면입니다.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죄의 댓가를 지불하시기 위하여, 죄의 대한 책임을 제거하시기 위하여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피를 흘리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피는 언약의 피입니다. 구약 성경에서부터 하나님께서 예언하셨던 새 언약의 성취가, 오직 예수님의 피를 통하여 완성될 것입니다. 

29절에,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씀을 지금까지는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GT 스터디 바이블은, 이것이 예수님의 승천을 예고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게 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성찬을 이해할 때에 단순히 죄 사함만을 생각할 때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찬의 모든 행위와 그 내용 자체가, 이미 예수님의 재림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떡과 잔을 먹으며 예수님을 기념할 때에, 우리는 이미 종말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는 자들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통한 죄 용서가 선포되는 이 때에, 예수님은 제자들의 배신을 예고하십니다. 심지어 부활 이후에 갈릴리로 가 있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고가, 제자들과 특히 베드로에게는 크게 심각하게 들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의 모든 예언은 한 번도 틀린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자신들에게는 이 일이 닥치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 장담합니다. 베드로는 허세를 부리며, 다른 제자들도 거기에 동참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이동하여 겟세마네 동산으로 갑니다. 종종 그곳에 들리셨던 곳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제리고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신 듯 합니다. 제자들에게 함께 깨어 있어 달라고 부탁하십니다. 

예수님의 깊은 슬픔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시지만, 제자들은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들은 잠이 듭니다. 그러낭 예수님은 간절히 기도하십니다. 단순한 육체적인 죽음을 뛰어 넘어서, 인류의 죄에 대한 형벌을 감당하셔야 하기 때문에 큰 슬픔과 고통에 휩싸이십니다.

예수님의 기도 안에는 자신의 힘든 마음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을 하겠다는 기도입니다. GT 스터디 바이블은, 이 기도야 말로, 정직함과 신실함을 가지고 있는 중요한 예라고 설명합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감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결국 순종을 결심하고 하나님을 따를 것을 결단하게 됩니다. 

여전히 베드로는, 예수님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여전히 자들어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 홀로 기도하셨고, 이제는 재앙의 때가 닥쳤습니다. 재앙이 닥쳐올 때에 기도하는 것은 참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닥쳐오기 전에 평소에 깨어 기도하는 것은 더 귀한 일입니다.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군사를 대동하고 나타납니다. 결국 예수님이 잡혀 가십니다. 제자들은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였다 라고 말씀합니다. 그냥 도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한 것입니다. 참혹한 제자들의 영적인 현실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으로 끌려가십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따라갑니다. 그래도 베드로가 용기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작은 용기조차 무너집니다. GT 스터디 바이블은, 대제사장의 질문이 어떤 정치적인 맥락이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로마 통치에 대한 반란 혐으로 몰고 가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다니엘서에 예언된 "인자"임을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심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신적인 지위를 가지신 분이심을 끊임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인간의 눈으로 정치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그분이 참으로 누구이신지를 절대 알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본질상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시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26장은 베드로의 비참한 추락으로 끝이 납니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허비냐고, 사람들이 비웃는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린 그 여인과 너무나 극명하게 대조됩니다. 베드로는 연약한 여종의 지적에도 견디지를 못합니다. 

GT 스터디 바이블은, 베드로는 자신이 거짓말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저주가 자신에게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설명합니다. 자신을 배반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이 나고, 베드로는 결국 밖으로 나가 심히 통곡하면서 26장이 마무리가 됩니다. 

There is a critical question for all Christians. Do you found the true value of Jesus Christ? When some woman came to Jesus and poured precious perfume, all the disciples were indignant. Because they thought that it was a waste. What is waste? If someone uses precious things for a futile one or someone. 

However, Jesus said that wherever this gospel is proclaimed in the whole world, what she has done will also be told in memory of her. I was very surprised because I did not see this blessing in other sections in the Bible. This is the most glorious applause that I've ever seen.

Who is Christian? It is who knows the value of Jesus Christ. Jesus our Lord and savior. Only through him, we are forgiven for our sin. Even If we pour out everything that we have, it is not enough to compare his grace with our devotion. We should give him even our life itself. We will do it surely.

2022년 2월 22일 화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마태복음 25장 / 재림을 바라보며, 하루 동안 사랑하라

 

마태복음을 묵상하면서 계속 느끼는 것,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시며, 그러한 동일한 태도를 제자들도 가지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막연하게, 성경이 십자가에 대해서만 강조한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이야 말로, 마지막 때를 우리에게 강조하는 책입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때는, 우리의 호기심을 채우는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재림의 때를 알 수 있는 아주 구체적인 징조에 대한 말씀보다는, 마지막에 오셔서 우리를 평가하실 왕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우리는 상을 받든지, 아니면 책망과 저주를 받든지 둘 중에 하나의 모습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열처녀 비유도, 마지막 때를 명백하게 강조하는 비유입니다. 평소에는 기름과 등이 무엇인가에 굉장히 관심이 많고 고민했었는데, 지금 보니 그것이 비유의 핵심은 전혀 아닙니다. 핵심은, 깨어 있으라는 명령입니다. 왜냐하면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달란트 비유도 동일한 맥락입니다. 우리는 달란트가 얼만큼 많은 금액인지, 그리고 장사를 얼마나 잘 했는지 등등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런데 사실 그것이 핵심은 아닙니다. 핵심은, 주인이 돌아올 것에 대한 엄청난 기대를 가진 종들과, 주인을 전혀 사랑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면피 하기에만 바빴던 악한 종의 대조입니다. 

주인이 오실 것을 전혀 준비하지 않은 종은, 무익한 종이며, 내 쫓길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의 다시 오실 것을 기대하며 최선을 다했던 이들은, 주님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반전 영화가 늘 인기입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결과가 나올 때에 사람들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복을 주실 이들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을 대접했다는 것이 반전입니다. 그리고 저주를 받을 이들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을 무시하고 살았다는 것이 또한 반전입니다.

의인들이 주님의 형제들 중에서 가장 작은 자들에게 행한 행동이, 매우 구체적이라는 사실이 정말 인상적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선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선행은, 단 하나도 헛된 것이 없습니다. 

가장 어려운 점은,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형제를 돌보는 것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눈과 관심은 유력자에게 향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목회자와 성도님들의 많은 에너지와 시간은 유력자를 향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우리 자신을 돌아 보아야 합니다. 유력자를 향하던 우리의 눈과 손을, 가장 연약한 자를 향해서 돌려야 합니다. 주님이 언제 오실지는 모르지만,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주님께 한 것과 동일한 것이라는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바탕으로하여 우리의 오늘 하루의 신앙 생활을 이루어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을 진정으로 섬기는 길입니다.

When I meditate the Matthew, I have realized that the concern of the Bible is the end of the world. Jesus told many parables predicting his second coming to this world. His parable is not designed to satisfy our curiosity but to recognize his reward and punishment. 

The main point penetrating the parable is that we do not know the day or the hour so we should stay alert. When we keep this teaching of Jesus, we will do our best for today's faithful life. 

For me, the last parable of Matthew 25 is the best parable. Because there is a real reversal. Both the wicked and righteous will be surprised. They did not know the true meaning of what they did. Jesus remembers the least of detail for one of the least of his brothers and sisters. We tend to have a friendship with an influential man even in the church. But, the true delight of Jesus is to care the least of the congregation.

2022년 2월 17일 목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마태복음 24장 / 미혹의 시대, 말씀으로 깨어 인내하며 견디라

 

종교 지도자들과의 논쟁을 맟신 이후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출발합니다. GT 스터디 바이블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베다니로 가는 길에서, 성전의 장엄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감람산에서 잠시 멈추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미 널리 알려졌던 성전의 위대한 모습을 제자들은 예수님께 보여드리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이 완전히 파괴될 것을 예언하십니다. 

이렇게 장엄한 성전이 완전히 무너진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제자들은 그 시기와 세상의 끝에 대한 징조를 예수님께 물어봅니다. GT 스터디 바이블은 24장 전체를 이해할 때에, 이것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그 때와, 세상의 마지막 날에 닥칠 일들을 함께 말씀하고 있다고 이해합니다. 

징조의 시작이 "사람"이라는 것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 어떤 징조보다 조심하고 분명히 보아야 할 것이 사람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두명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주장하여 사람들을 속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끝의 징조에 대하여 단순히 어떤 초자연적인 일들에만 집중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단과 적그리스도가 수도 없이 일어날 것이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미움과 죽임을 받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마지막이라는 것은,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누군가는 우리를 미혹할 것이고, 누군가는 우리를 핍박할 것입니다. 

가장 가슴 아픈 것은, 함께 신앙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배교할 것이며, 심지어 그들이 동료 크리스천들을 배반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주목할 것은, 불법와 사랑이 대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불법이 넘쳐날 것이며, 그것으로 인해서 사랑은 식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마지막 때에 맞서서 "우리의 실천적인 면에서 가장 강조되야 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어려움을 말씀하신 이후에, "그러나"로 말씀합니다. 이 모든 상황을 감안하고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뎌야 합니다. 신약에 많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어쩌면 이 단어보다 더 중요한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 듯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서, 십자가를 "참으사"에서 동일한 단어입니다. 성도의 삶의 핵심은 인내와 참는 것 입니다. 

14절에,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그제야 끝이 오리라 라는 말씀은, 이러한 문맥 안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세상 끝까지 자신이 전파될 미래를 미리 바라보고 계십니다. 이 구절만 보면, 마치 아무런 힘든 일 없이 말씀이 세상 끝에 전해지기만 하면 주님 오실 것이다라는 단순한 이해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각한 핍박과 괴로움과, 십자가를 지는 것 같은 죽음의 맥락에서 복음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세삼 마음이 더욱 무거워집니다. 

다니엘 말씀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 역시, 성전 파괴 혹은 종말론적인 사건을 동시에 의미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고난의 날들을 감하여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약속하시기를, 모든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도록, 매우 놀라운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존재하는 이단들은 모두 사기꾼이 틀림없습니다. 감히 인간이 하나님 혹은 그의 대리자를 사칭하는 것입니다. 마귀의 역사이며, 마귀의 수하 혹은 추종자들의 유일한 목적은,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날은, 천지가 진동하는 날입니다.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초자연적인 역사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주님을 믿지 않던 이들은 통곡할 것입니다. 그리고 택하신 자들은 눈물의 찬양을 돌릴 것입니다. 주님은 오직, 택하신 자들만 사방에서 친히 모으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은, 사실상 역사 가운데 이미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미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졌습니다. 교회 역사 가운데 수 많은 고난과 성도들이 당한 핍박, 그리고 이단의 출현들이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문 앞에" 이르신 것이 틀림 없습니다. 

35절에,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십니다. 24장의 첫 시작이 무너질 성전에 대한 제자들의 감탄으로 시작된 것 처럼, 여전히 사람들은 보이는 것에 약합니다. 하늘과 땅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고난과 환란, 그리고 미혹 속에서도, 성도가 붙들 것은, 영원히 존재하는 "하나님의 말씀" 입니다.

노아의 때는,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 생활에 집중했습니다. 자기들이 살고 싶은대로 살았습니다. 놀랍게도,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 까지도 자신들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모습이, 예수님이 오실 때의 동일한 모습이라고 하십니다. 

마지막 비유가 너무나 마음에 와 닿습니다. 종이라고 모두 동일한 종이 아닙니다. 악한 종과 충성된 종으로 나뉩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기 위해서는, 주인만 생각하고, 주인의 뜻을 실천하고, 주인을 기다려야 합니다. 주인은 반드시 돌아올 것이며, 주인의 뜻을 행하던 자에게는 복이 있을 것입니다. 

At the beginning of Matthew 24, Jesus's disciples want Jesus to see the temple of Jerusalem. The temple was well known to the world for its spectacular design. However, Jesus warns that the temple will be ruined totally. 

I assume that his disciples were astonished. So, they ask when this will occur and the sign of that. Scholars think that the response of Jesus was mixed with a near-future of the temple destruction and the future of his second coming. 

The most important thing in the future is that there will be severe temptations. Due to Jesus' name, real Christians will be persecuted. Many people in the church will betray Jesus. And Antichrist will try their best to deceive the one who God elect. In this severe situation, his people should endure and hold the word of God that will never pass away.

Jesus distinguishes his slaves between wicked slaves and faithful and wise ones. When the mater comes back, he will evaluate his slaves. His evaluation will be critical to the slave's life. Only faithful and wise slaves will have the master's blessing. 

2022년 1월 6일 목요일

로고스 어디까지 써봤니? - 큐티(Quiet Time)를 위해 로고스 사용하기 with 갓피플 성경

 



제가 이 블로그를 통해서,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가장 원하는 것은, 이 곳의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함께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믿음의 길은 외롭습니다. 힘이 듭니다. 목회자인 저도 용기를 잃고 낙심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제는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 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작은 글들을 통해서, 읽으시는 분이 새로운 용기를 얻고, 영원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제가 가장 원하는 것입니다. 

네이버 로고스 까페에서 "매일 말씀 묵상을 잘 하고 싶은데 방법을 알고 싶다"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마음이 뭉클하더군요, 영적인 갈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느끼시겠지만, 주변에 이런 분들이 잘 없습니다. 

하지만 댓글을 달지는 못했습니다. 저의 글을 자신있게 적을 수 있는 공간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의 공간에, 저의 글로서 저의 생각을 정리해 봅니다. 혹시라도 그분께서 이 글을 보실 수 있다면 좋겠네요. 


오늘 아침에 천로 역정을 잠깐 읽으면서 마음에 큰 유익을 얻었습니다. 크리스천이 자신의 과거의 행동을 후회하는 것이, 마치 제 자신의 모습 같았기 때문입니다. 

천로 역정은 한마디 한마디가 하늘의 보화와 같습니다. 만약 제가 저의 삶을 돌아가지 않고 직진으로 갔다면, 얼마나 많은 믿음의 귀한 성취들을 이루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기회들을 선용했다면 얼마나 좋은 일들이 더 많이 있었을까요? 저 역시 이제부터라도 의미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더 부단히 노력할 뿐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매일 말씀 묵상을 잘 하고 싶은데 방법을 알고 싶다" 라는 질문을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저는 먼저 "매일"이라는 점에서 위의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저는 "매일"이라는 것은 정말 말 그대로 "가급적 매일"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매일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부분"만큼, 그리고 "시간을 낼 수 있는 만큼" 묵상해야만 한다는 것을 정말 강조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서, 성경을 매일 10장씩 읽으면서, 그것을 가지고 정말 심도 있는 공부처럼 묵상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전임 목회자도 그렇게 하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매일 묵상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환경을 먼저 충분히 고려해야 합니다. 내가 낼 수 있는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내가 소화할 수 있는 분량과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등의 자기 자신에 대한 철저한 평가가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매일 혹은 가급적 매일이라도 묵상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추천하고 싶은 분량은 "성경 한 장 정도"입니다. 혹은 "한 단락 정도"입니다. 저도 이 부분에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사실 한 장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한 단락을 묵상하면 너무 내용이 짧아서 시시하게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우 간단하고 허술하게 묵상"하더라도, 한장 정도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한 장씩 묵상하면 마치 적금을 적립하는 것 처럼 분명하게 자신이 얼만큼 소화했는지 보이기 때문에 그 즐거움도 상당히 큽니다.

그렇다면 이제 "말씀 묵상"이라는 점에서, 위의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 혹은 큐티라는 것은 간략하게 말하면 "일정 분량의 말씀을 읽고, 그것의 의미를 이해하고 묵상하고 적용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딱 이 수준에서 가능한 것을 시도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말씀 묵상은 말씀 분석 노트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혹은 말씀에 대한 논문을 쓰는 것도 아닙니다. 묵상이라는 수준을 반드시 기억하면서 이 모든 과정을 시도해야 합니다.

"묵상"이라는 맥락에서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시간과 여건을 파악한 이후에, 그 시간 안에서 자신의 수준 안에서 적절한 자료를 사용해야만 한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간단하게 이야기해서 "절대 무리하지 마시라" 라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대단한 것을 추구하려고 한다면 오히려 실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묵상할 때의 참고 서적은, 설령 그 내용이 완벽하지는 않아도 딱 붙들고 묵상을 함께 할 수 있는 책 하나 정도면 족합니다. 그런면에서 자신이 꾸준하게 읽고 시도할 수 있는 기본 자료를 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한권으로 된 주석 정도, 혹은 이미 번역된 스터디 바이블이 딱 좋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이미 제가 경주하고 있는 것이, "말씀 묵상 어디까지 읽어봤니?" 시리즈입니다. 아래의 글을 통해서 저의 결심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성경 읽기와 묵상"의 "위대한 도전"을 시작합니다
with Hannah's Bible Outlines & NIV The Grace and Truth Study Bible

저는 기본적으로 두권 정도를 저의 묵상의 파트너로 삼았습니다. 물론 목회자는 성경을 늘 읽습니다. 그리고 정말 많은 시간을 성경 묵상에 사용합니다. 제가 설교 준비할 때에는 성경 본문 자체를 굉장히 오랜 시간을 두고 연구합니다. 그리고 스터디 바이블만 거의 스무권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논하는 것이 "매일 묵상"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다시 한번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자신이 학생이거나 직장인이라면 절대로 시간을 많이 사용하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지속성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지속성을 위한 분명한 저의 목표는, 제 묵상과 그 묵상을 정리한 글까지 쓰는데 한시간 혹은 한시간 반을 넘기지 않는 것입니다. 저 역시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절대로 저 시간을 넘겨서는 안됩니다. 만약, 시간을 넘길 것 같으면 차라리 묵상의 내용이나 수준을 낮추는 것이 훨씬 유리합니다. 

물론 이와는 반대로 어떤 분들은, 묵상을 위해서는 그냥 말씀만 읽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저는 그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말씀을 묵상하다보면, 자신의 수준을 벗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조금이라도 나의 수준을 넘어서서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른 탁월한 사람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의 경우는 스터디 바이블 한권과 성경 아웃라인 분석 책 한권 정도를 택한 것입니다. 설교 준비라는 맥락에서는 턱 없이 부족하지만, 큐티라는 맥락에서는 충분한 정도입니다.

저의 말씀 묵상은 시작한지 몇달이 지났지만 큰 틀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문자적으로 매일 하지는 못했지만, 꽤 많이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글에서는,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적어봅니다. 특별히 간단히 참조할 수 있도록 저의 로고스 화면 그리고 로고스 사용하기 이전에 먼저 사용하는 갓피플 화면을 캡쳐 하였습니다. (맨 위에 그림을 보시면 됩니다)

* 갓피플 어플 사용

실제 묵상을 위해서, 먼저 갓피플 성경을 사용합니다. 셀폰에서 어플을 띄웁니다. 저는 갓피플 성경 어플을 상당히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기능적으로는 로고스와 감히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사용면에서는 갓피플 어플이 탁월합니다. 

로고스는 상대적으로 무겁고, 하이라이트를 하는데 세심하긴 하지만 조금 번거롭습니다. 그런데 갓피플 성경은 그냥 클릭 한 번으로 줄을 칠 수 있고, 색깔과 메모를 넣는 것이 매우 간편합니다. 그래서 저는 일단 갓피플 성경으로 먼저 묵상을 합니다. 어플 두개를 사용하면 불편할 것 같았는데 의외로 효율성이 매우 뛰어납니다.

먼저 갓 피플 어플에서 "개역 개정 한글 성경"을 천천히 읽어봅니다. 그러면서 말씀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배경을 안다면 완전히 좋겠지만 상당히 참는 편입니다. 배경 조사까지 완벽하게 하려면 두시간 정도는 우습게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묵상은 어렵지 않습니다. 일단 말씀 자체를 한글로 천천히 몇번 읽어봅니다. 물론 그냥 읽지 않고 "도대체 이것이 무슨 말씀일까?" 라고 "생각하면서" 읽어봅니다. 

읽으면서 적극적으로 말씀과 소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절대로 수동적으로 임하면 안됩니다. 마음에 와 닿는 혹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주황색 하이라이트를 꼭 사용합니다. 그리고 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붉은 색으로 하이라이트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단어, 문장, 그리고 내용적으로 반복되는 부분은 초록색을 사용합니다. 설교 준비를 위해서 로고스를 사용할 때에는 더 많은 색을 사용하지만, "매일 묵상"이라는 컨셉 안에서는 가급적 위의 세가지 색깔만 사용합니다.

그리고 저 같은 경우는 제가 정한 "성경 한장"이라는 분량 안에서 구조적인 것도 많이 염두에 두는 편입니다. 한번에 연구를 다 못하더라도 나중을 위해서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읽고 그 의미를 여러번 마음에 되새기면서 고민하다보면, "질문들"이 떠오릅니다. 질문을 통해서 말씀의 의미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질문을 하는 것이야 말로 묵상의 가장 중요한 뼈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매일 묵상이라는 맥락에서, 이 질문들도 다 적지는 않습니다. 절대로 다 적어서도 안됩니다. 시간 때문입니다. 저의 경우는 "어플 자체의 메모장"을 이용해서 아주 간략하게 몇개만 적습니다. 물론 추후에 로고스로 추가로 묵상할 경우에 이것에 대한 답을 찾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추가로 필요할 때에는 실제 포스트 잇에다가 간단한 몇가지 내용들을 적습니다. 저의 최종적인 목표는 묵상에 대한 저의 글까지 적는 것이기 때문에 글에 대한 간단한 논지가 생각이 나면 꼭 적어 놓는 것입니다.

* 로고스 사용

이렇게 갓피플 성경의 묵상 내용을 마음에 두고, 이제는 로고스로 넘어갑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로고스를 사용할 때에는 순서에 얽매이기 보다는 필요에 따라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매일 묵상이라는 큰 목표는 있지만, 전략은 순간 순간 얼마든지 다양하게 바뀔 수 있습니다.

만약, 내가 방금 읽은 성경 한장의 구조가 너무 복잡하다고 느껴지면 Hannah's Bible Outlines를 참조합니다. 화면의 우측 하단에 띄워 놓았습니다. 그런데 보시는 것 처럼 시편의 경우는 전혀 분석이 안되어 있네요. 이런, 이것 빼고는 완벽한 책입니다. 

그리고 만약, 갓피플 성경을 읽고, 바이블 아웃라인을 통해서 한장의 내용이 대략적으로 파악이 되었다고 한다면, 그 다음에는 바로 GT 스터디 바이블로 넘어갑니다. 물론 아웃라인을 보지 않고 바로 스터디 바이블로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특별히 약자가 정해져 있지 않는 것 같지만, The NIV Grace and Truth Study Bible을 저는 GT 스터디 바이블로 부릅니다. 

자료를 보는 순서가 자유롭기는 하지만, 결정적으로 중요한 순서는 바뀌어서는 안됩니다. 말씀을 읽고 참고 자료를 봐야하지 이 반대의 순서로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말씀을 먼저 읽고, 필요한 자료를 참조해야지, 자료를 먼저 읽고 말씀을 읽으면 안됩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큐티는 내가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것입니다. 말씀과 일대일로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해 놓은 해설을 먼저 읽고나면 그 해설에 갇히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말씀을 붙들고 생각하는 힘이 전혀 길러지지가 않습니다. 

마치 수학 답안지 보고 수학 문제 푸는 경우와 똑같습니다(제가 이랬네요). 혼자 끙끙거리는 과정 없이 답을 찾는 습관을 들이면, 결정적인 순간을 이겨낼 영적인 힘을 절대로 기를 수가 업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다른 사람이 나의 신앙의 중추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붙들어야 하고, 그 말씀에 대한 나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나의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나의 이해라는 것이 타인의 도움(ex) 탁월한 신학자 혹은 목회자)을 받기는 하지만, 결정적으로는 말씀에 대한 나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뛰어난 학자도 허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내가 자발적으로 말씀을 읽고 줄도 치고 묵상한 다음에, 그 이후에서야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가급적 갓 피플 어플에서 읽은 내용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갓 피플에서 성경을 읽고 묵상한 다음에는 빠르게 GT 스터디 바이블을 읽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미 묵상한 내용이 머리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동안에, 스터디 바이블을 읽으면서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해 보아야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매일 묵상은 너무 시간을 많이 끌어서는 안됩니다. 표현이 조금 이상할 수 있겠지만 속전 속결입니다.

그렇다면 스터디 바이블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까요? 저의 경우는 GT 스터디 바이블을 읽으면서 "학자들이 성경 본문 자체를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하는 가"를 주의 깊게 봅니다. 

왜냐하면 묵상의 핵심은, 비록 완벽하지 않더라도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 가를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스터디 바이블이기 때문에 저자들의 묵상이 내용들도 종종 들어가 있습니다. 다른 이들의 탁월한 묵상을 읽으면서 나의 묵상을 풍성하게 만듭니다.

물론 필수적인 것은 아니지만, 혹시 필요하다면 NET BIBLE도 봅니다. 그리고 원어도 단어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그리고 하다보니 역본 비교의 필요성이 생겨서 그림에서 보시는 것 처럼 왼쪽 중앙에 역본 대조창을 만들었습니다. CJB, HCSB, NLT, NIrV, The Message, KJV, NASB95 정도를 띄워 놓았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자료들은 왠만하면 안 볼려고 노력합니다. 왜냐하면 주어진 시간 안에 마무리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자료를 보고 공부하다보면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말 필요한 경우에만 짧은 시간 살펴봅니다. 그래야만 매일 묵상을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 살펴보면, 묵상에 대한 내용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됩니다. 말씀에 대한 대략적인 이해, 그리고 그것 안에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바에 대한 적당한 이해, 그리고 내가 삶에 적용해야 할 것들이 개략적으로 나옵니다. 

계속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이러한 묵상의 과정은, "완벽하고 철저하고 흠이 없는 성경 연구"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아마 대부분의 성도님들이 이것을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간략한 수준에서, 하지만 꾸준함을 가지고, 가능한 수준에서 도전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훨씬 유익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적당한 수준에서 꾸준하게 묵상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 묵상 노트 정리 -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시리즈

그리고 이제 저는, 묵상에 대한 글을 적습니다. 물론 이것도 개인의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단순히 한 문장 정도로 정리해서 개인 노트에 적어도 좋습니다. 이것만 해도 충분합니다. 

다만 저는 개인적으로는 묵상의 내용들을 간략히 정리하고 간단하게 영어로 적으면서 작문 연습을 하면서, 저의 삶을 돌아보고 결심들을 정리해 봅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이정도가 딱 적당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계속 시도하고 있습니다. 짧은 시편 4편에 대한 묵상 글을 샘플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시편 4편 / 마음에 기쁨으로 평안히 잠들라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1/4.html

"매일 말씀 묵상하는 실제적인 방법"에 대해서 간단하게 적어 보았는데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너무 쉬울 수도 있겠고, 어떤 분들에게는 너무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저의 이 방법에는 숨겨진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IT에 능해서 어플들을 잘 다룰 수 있어야하겠고, 스터디 바이블 정도는 영어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어야하겠고, 부지런함도 갖추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제가 생각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형태로든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의 저의 방법은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다만 개인에게 맞는 방법에 있어서 절대로 무리하지 말고 꾸준하게 할 수 있는 형태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과학자처럼, 자기 자신에게 맞는 이론을 개발하고 그것을 계속 찾아가야 합니다. 

저의 경우는 이미 방법을 구체화 시켜서 만들었습니다. 물론 저도 다양한 분들의 성경 묵상과 해석에 대한 책들을 보았지만, 이미 이정도 수준의 묵상이 저와 잘 맞는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에 꾸준하게 정진할 예정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도, 본인에게 맞는 방법을 찾으시고, 매일 매일 말씀을 가까이하고 묵상하고, 그것을 통해 영적인 힘과 용기를 얻는 복된 삶을 살아가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 "로고스 성경 프로그램" 전체 글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html

2021년 12월 3일 금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시편을 시작하며 & GT 스터디 바이블 시편 저자 David Gundersen 소개

 

우리는 어렸을 때 부터 "공부를 잘해야 된다" 라고 이야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그렇다면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시험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점수를 잘 받는 것도 공부를 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공부는, "진리에 대한 탐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공부라는 것을 학교 제도의 틀 안에 집어 넣기를 좋아합니다. 굉장히 심플하고 이해하기 좋기 때문입니다. 물론 학위를 받는 과정 속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리고 학위가 있으면 다방면으로 유익합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청년들에게, 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공부를 더 하라고 권유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항상 아쉬움이 있습니다. 학교를 가지 못하면 공부를 할 수 없다라는 분위기가 팽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상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진리에 대한 탐구"를 추구할 때에 일어납니다. 

저는 배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공부는 황홀한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진리에 대한 탐구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배우는 것 자체도 귀한 것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의 모든 삶을 드려서 도전할 만한 위대하고 아름다운 목표입니다. 

이미 원하는 학위를 다 받았지만, 오히려 제 마음에는 진리에 대한 탐구가 더욱 불타는 것을 느낍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약간 광인의 마음이 아닌가 스스로 염려할 정도입니다. 말씀에 대해서 공부하고 배우고 싶은 것만 생각하면 한 이백년 정도는 살면 조금은 덜 아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만큼 살 수 있을 뿐입니다. 

제 인생에 있어서 큰 전환점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결혼이야 말로 최고의 전환점이자 축복입니다. 하지만 결혼을 제외한다면, 유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글로벌 시대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가보기 전에는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내가 다른 나라에 가서 공부하는 것 배우는 그 모든 과정을 저를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하지만 더 큰 전환점은, 스터디 바이블을 통해서 공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좋은 저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글을 읽고 공부하고 또 묵상하고 설교하고 적용하면서 저는 사실상 과거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양한 저자들, 저의 신학과 교단적인 상황에 갇혀서 미처 알지 못했던 사람들의 글을 읽고 지적으로 그들과 교류하면서 저의 삶에 새로운 장이 열렸습니다. 

The Grace And Truth Study Bible (이하 GT)는 저에게 큰 유익이 되었습니다. 많은 스터디 바이블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종합적으로 가장 본문을 잘 보여주는 귀한 책입니다. 창세기를 최근에 전체 읽고 묵상하면서 새롭게 창세기를 알게 되고 또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삶을 변화시켜나가기 위해서는, 원대한 목표와,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목표가 동시에 필요합니다. 저는 약 칠년 정도 안에 성경 전체를 묵상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한주에 한번은 시편 묵상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럼 늦어도 약 사년 안에 시편 전체를 묵상할 수 있게 됩니다. 

새로운 시편 시리즈를 시작하는데, 마음이 막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GT에 대한 리뷰에서 말씀드린 것 처럼, 이 스터디 바이블은 서던 침례 신학교 출신들이 주로 참여하였습니다. 성경 중심적인 보수적인 신학을 추구하는 아주 좋은학교입니다. GT 바이블은 모든 필진에 대한 이름과 학위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저의 시편 묵상을 함께할 분이 누구인가 찾아보았습니다. David Gundersen 이라는 분이네요. 이분은 서던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BridgePoint Bible Church에서 섬기고 계십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평가할 수 있는 좋은 기준은, 그 사람이 어디에서 공부했는가, 그리고 어떤 주제로 공부했는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찾아보니 David Gundersen은 The Master's Seminary에서 석사를 받았습니다. 존 맥아더 목사님이 오랫동안 총장으로 섬겨왔던 학교입니다. 그러므로 굉장히 보수적인 학교라고 이해할 수 있겠고, 그러한 좋은 영향을 Gundersen이 받았음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Gundersen이 쓴 박사 논문은 어떨까요? 과거에는 어떤 분의 박사 논문을 보기 위해서는 직접 신학교 도서관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완전히 바뀌었네요. 이분의 논문을 찾았습니다. 

* DAVIDIC HOPE IN BOOK IV OF THE PSALTER (PSALMS 90-016)

전체를 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시편의 구조에 대한 논문입니다. 이분이 성경 신학을 전공하면서 구약 특별히 시편에 집중하였다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시편에 대해서 GT바이블에 기고할 수 있는 가장 적임자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문에 이런 내용으로 그의 논문을 시작합니다. 

Without Christ, the Psalms would be silent for me, and I would be silent about the Psalms. So I am first grateful that God rescued me in Christ, forgave my sins, and gave me a new song (and a new Psalter) to sing.

읽으면서 크게 감동 받았습니다. 이분을 만난 적은 없지만, 틀림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분에게 사로잡힌 분입니다.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대략적으로 이분의 논문의 전체 내용은, 다른 학자들이 시편의 구조를 분석하면서 자신이 집중한 시편 90-106편은 비록 다윗의 왕조가 망하는 어려움을 겪지만, 여전히 여호와의 완전한 통치가 이루어질 것을 바라보며 희망을 말하고 있음을 논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논문을 이렇게 마무리 합니다. 

Through his unfolding revelation God made known his plan to rule the world not through a godless monarchy or a kingless theocracy but a theocratic monarchy. The king he chose was David, and David’s line forever. This covenant will surely be kept, in the Psalter and beyond, because God always keeps his promises. A just Davidide will indeed rule the earth. His intentions will be pure (101), his afflictions severe (102), and his restoration glorious (103).

Gundersen은 하나님의 통치를 이해할 때에,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하나님을 떠난 군주제를 통해서가 아니라, 신적인 군주제를 통해서 세상을 통치하시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 왕은 다윗의 혈통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Gundersen은 자신의 시편 연구를 마무리하면서, 시편에서 그리고 시편을 넘어서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이루어지며,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신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시편의 내용들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시편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고백하고, 시편을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이루어지는 희망의 구조로 이해하고 있다면 이분과 함께 시편을 공부할 때에 충분히 성경적으로, 그리고 충분히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묵상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묵상의 내용들을 보게 될까요? 가보지 않은 길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길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분의 은혜 가운데 온전히 들어가기를 소망합니다.

2021년 12월 1일 수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생에 최고의 기쁜 오늘, 창세기 전체 묵상을 마쳤습니다.

 


팬데믹이라는 상황은, 모든 사람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을 안겨주었습니다. 함께 신앙으로 달려오던 이들이 실족하는 것을 보아야했습니다. 더 이상 사람들이 영원한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육체적으로 숨은 쉬고 있지만, 마치 영혼은 죽은 사람처럼 억눌리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저의 영혼 안에도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전부터 존재했던 외로움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목회의 환경이 힘들어지면서, 마치 저의 미래에 희망이 점점 사라지는 것 처럼 느껴졌습니다. 더 이상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이 거의 없는 것 처럼 느껴졌습니다. 환경에 대하여 슬퍼하고 낙심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중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비록 환경은 어려웠고, 저의 내면에도 쉽지 않은 것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를 말씀으로, 말씀 가운데로 인도하셨습니다. 설교를 준비할 때 마다, 책을 읽을 때 마다,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새로운 영적인 깨달음과 지평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미국에 유학으로 온 목적은 다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이 어려운 팬데믹 기간 속에서 그 일을 이루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저의 삶의 새로운 시작을 말씀을 통해 열어주셨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한 소원들을 주십니다. 사람들이 주장하는 직통 계시를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선한 마음들을 주시고, 그 길을 걸어가도록 독려하시며 힘을 주십니다. 

9월 정도에 한가지 결심을 하였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위대한 도전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가급적 하루에 한장,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저 혼자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NIV The Grace and Truth Study Bible과 Hannah's Bible Outlines라는 좋은 책 두권을 바탕으로 말씀을 묵상하며 성경에 대한 이해와 실력 그리고 영성을 쌓아가는 것이었습니다.

* "성경 읽기와 묵상"의 "위대한 도전"을 시작합니다
with Hannah's Bible Outlines & NIV The Grace and Truth Study Bible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09/with-hannahs-bible-outlines-niv-grace.html

묵상을 하다가, 중간에 영어로 조금씩이라도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 이제는 영어로 써야겠습니다 :) with 다음 꼬마사전 & Grammarly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0/with-grammarly.html

그리고 거의 3개월이 지난 오늘, 창세기 묵상을 마쳤습니다. 

이 감격을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지금까지 10년 정도 목회하면서, 많은 설교를 했고 많은 묵상을 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묵상을 이 정도로 자발적으로, 그리고 이 정도로 수준있게는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의 삶에 가장 중요한 이정표를 오늘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 묵상들은 설교를 위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설교의 1차적인 자료로서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 묵상들은, 설교라는 제가 해야만 하는 어떤 일이라는 맥락을 완전히 벗어나서, 그저 하나님의 말씀에 제 마음을 쏟고, 그 말씀 안에서 감격하고, 그리고 본문을 잘 설명한 책을 바탕으로 현재의 수준에서 한 걸음 더 공부한 그런 내용입니다. 

그리고 가급적 평이한 문체로 적었습니다. 성도님들께서 내용들을 읽고 함께 묵상할 수 있기를 바랬기 때문입니다. 이 글들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가까이 하실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글들의 목적을 충분히 이룬 것입니다.

창세기 전체를 묵상하면서 느낀 것은,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입니다. 묵상은, 그것 자체로 아름답고 좋은 것입니다. 내 영혼을 밝히고, 내 영혼에 양식을 먹으며, 최고의 파티에서 최고의 음식들로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묵상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 그분의 뜻을 알아가고, 그것에 대한 결심과 새로운 영적인 세계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오랜 시간 노력하며 말씀을 묵상했지만, 단연코 이번 창세기 묵상이 저의 영적인 세계에 전혀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습니다. 

신앙의 삶은, "훈련"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며, 그와 동시에 "훈련"입니다. 훈련이라는 것은 나를 치고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삶의 가장 우선 순위에 그분의 뜻을 두는 것입니다. 하루에 한시간 정도를 바로 이 일에 끊임없이 할애하면서 느낀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감각은 하루 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꾸준함과 방향이 동시에 필요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러한 저의 묵상의 방법이, 꾸준함과 방향을 동시에 추구하였다는 점에서 스스로에게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학습은, 좋은 교사와 자발성이 넘치는 학생이 필요합니다. 저는 스터디 바이블을 읽으면서 좋은 교사를 만났고, 그리고 자발성이 넘치는 학생으로서 묵상하고 공부하였습니다.

여전히 부족한 부분은 많이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다가 궁금한 점들이 많이 있었지만, 충분히더 살펴보지 못하고 넘어가야 했던 적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약 6-7년 정도 전체 말씀을 이렇게 한번 묵상한 다음에, 다시 추가하여서 묵상하게 될 때에, 다시 한번 그 모든 것들에 대하여 새롭게 도전할 때가 오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좋은 목회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설교도 잘하고 싶습니다. 성경에 대해서 잘 알고 싶고 배우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의 삶에 가장 우선 순위에 항상 성경이 있기를 원합니다. 평생동안 저를 위하여 끊임 없이 기도하시는, 말씀의 목회자가 되기 위하여 기도해주시는 저의 부모님의 기도가, 저의 삶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아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래에 링크를 통해서 모든 묵상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창세기 1장 / 만물의 창조자 그리고 그분의 영광스러운 대리자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1/1.html

창세기 2장 / 절대적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라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1/2.html 

창세기 3장 / 하나님을 배신한 인간 그리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빛나는 은혜와 사랑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1/3.html

창세기 4장 / 죄의 본질, 그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1/4.html

창세기 5장 / 어둠 속에서 소망을 보다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1/5.html

창세기 6장 /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만났을 때 일어난 일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1/6.html

창세기 7장 / 절대 심판 속에서 구원 받은 유일한 자들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1/7.html

창세기 8장 / 택한 자를 기억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그분을 향한 참된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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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9장 / 새로운 인류 역사의 시작, 그리고 노아의 아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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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0장 / 수 많은 사람들,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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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1장 /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 그리고 아브람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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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2장 / The call and journey of Abra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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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3장 / The separation from 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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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4장 / The deliverance of 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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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5장 / The covenant m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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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6장 / The birth of Ishm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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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7장 / The reaffirmation of the coven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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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8장 / The destruction of Sodom and Gomorr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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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9장 / The visitation of So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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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0장 / The deception of Abimel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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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1장 / The birth of Isa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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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2장 / The sacrifice of Isa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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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3장 / The death of Sar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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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4장 / 리브가를 찾아서 데려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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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5장 / 아브라함의 마지막 그리고 에서와 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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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6장 / 이삭의 복과 우물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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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7장 / 결국 야곱이 장자의 복을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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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8장 /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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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9장 / 라반과의 만남, 그리고 대사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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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0장 / 야곱의 아들들과 하나님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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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1장 / 속이는 라반 vs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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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2장 / 얍복 나루,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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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3장 / 화해 그리고 아름다운 헤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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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4장 / 세상의 기준 vs 하나님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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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5장 / 야곱 가정의 영적인 각성과 하나님의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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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6장 / 에서의 후손들의 번성과 부유함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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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7장 / 그의 꿈이 참으로 이루어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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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8장 / 유다의 선택과 하나님이 이루신 결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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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9장 / 요셉의 섬김과 형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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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0장 / 하나님의 자녀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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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1장 / 하나님의 지혜 그리고 성도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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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2장 / 요셉의 형들의 회개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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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3장 / 공감, 과정, 그리고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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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4장 / 타인을 위한 순수한 희생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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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5장 / Too Good to be True & 복음을 누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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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6장 /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 그리고 그 안에서의 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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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7장 / 세상에서 가장 뿌듯한 바로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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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8장 / 야곱을 기르신 하나님, 그리고 나중된 자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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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9장 / 모든 삶은, 하나님의 뜻 안에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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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50장 / 당신이 진짜 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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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 봤니? - 창세기 11장 /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 그리고 아브람의 등장

 

심판의 홍수와 노아로 부터 새롭게 역사가 시작되면서 모든 것이 해결 된 것 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여전히 타락한 본성 그대로입니다. 인간은 언어가 하나였을 분 아니라, 뜻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탑을 쌓아 올려서 신의 영역에 다다르고자 합니다. Grace and Truth 스터디 바이블은, 이것은 아담과 하와라는 두 사람이 아닌 이제는 인류 전체가 여기에 가담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바벨론의 이름의 의미는 "하늘의 관문"을 의미합니다. 자신이 누구인가를 깨닫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아닌, 신이 되고 싶어하는 인간의 탐욕을 보여줍니다. 

말 그대로 거의 모든 생물들이 다 죽임을 당하는 심판 속에서도, 인간의 내면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타락을 생각할 때에, 앞으로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하나님이 이루실 친히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GT 스터디 바이블이 여러 부분에서 탁월하지만, 특히 이번 장에 해설은 연신 감탄을 하게 됩니다. 인간은 탑을 쌓고 너무나 자랑스러워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너무 작은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내려와서 보셔야 했습니다. 인간의 가장 위대한 업적도, 하나님 앞에서는 너무나 초라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흩어버리십니다. 

하나님을 반역하는 인간의 하나됨은 쓸데가 없고 악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진정한 하나됨이야 말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오히려 이번 장에서, 교회의 하나됨의 신비함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셈의 족보가 나타납니다. GT 스터디 바이블은 셈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이름"이라는 것을 주목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이름을 내려고 바벨탑을 세웠지만, 하나님께서 새로운 인류의 이름을 보여주시고 있다고 이해합니다. 

셈의 후손을 통해서, 드디어 그 유명한 아브람이 등장합니다. GT 스터디 바이블은 아브람의 형제인 하란의 죽음과 아브람의 아내인 사래의 불임을 통해서 죽음의 권세라는 주제를 드러낸다고 설명합니다. 목회자들은 다양한 상황의 성도님들을 만납니다. 

한번 상상해 보았습니다. 만약 아브람의 가정을 제가 심방했다면, 참으로 마음이 무거웠을 것입니다. 교회에 처음 나온 아브람을 만나고 새가족 심방을 가서 그의 가족 상황에 대해서 물어 보았습니다. 

그는 주저하며 말을 꺼냅니다. 그의 아내는 불임이며, 그의 형제는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표정에서 암담함이 보입니다. 가장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서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의 가정에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비추어 우리의 삶을 바라볼 때에, 우리는 가장 어두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얼마든지 기대할 수 있으며, 또한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창세기 11장에서는, 창세기 12장과는 약간 다른 관점으로 아브람의 우르에서의 출발을 설명합니다. 아버지인 데라가 살아 있을 때에는, 아브람은 아버지의 리더쉽 아래에 있었을 것이며, 데라는 자신의 어떤 이유로 인하여서 우르에서 출발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유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데라 일행은 중간에 하란에서 머물게 되고, 데라는 하란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When we meditate on Genesis 11, we should be surprised by the unchangeable nature of depraved humans. They saw and heard about God's severe judgment for their sin. However, they became one as the desire to make a great building to show their fame, to build their empire, and to reach God's domain. 

God did not please their trial because it was based on their sinful nature. The purpose of the human is to obedience to God and serve him according to his will. They divided human languages and scattered them.

But we see hope in the followed story about Abram. He was the descendent of Shem. The study bible shows that the shadow of death covered his family. Abram's brother died and his wife was barren. However, God will use him and unfold his great plan of salvation ultimately through the cross of Jesus Christ soon.

2021년 11월 29일 월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 봤니? - 창세기 10장 / 수 많은 사람들,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목적

미국에 와서 목회를 하면서 운전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제가 워낙 방향치이기 때문에 GPS를 좋은 것을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구글맵이 가장 좋은 GPS가 되었습니다. 세상이 너무나 빨리 변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도퇴되는 사람들로 인해 마음이 무겁습니다. 

창세기 10장에서는, 노아의 아들들이 온 땅에 흩어진 것을 보여줍니다. Grace and Truth 스터디 바이블은, 함은 막내가 분명하지만, 셈과 야벳 중에 누가 장자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창세기 10장을 읽으면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미국에 산지 10년이 되었지만 미국 주 위치도 다 모릅니다. 하물며, 세상의 모든 곳으로 흩어진 이들의 이야기는 저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이야기로 들립니다.

하지만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분명 10장에 등장한 흩어진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시간적으로는 11장의 바벨탑 사건 이전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함의 손자인 니므롯에 대한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는 세상의 첫 용사라고 소개됩니다. 스터디 바이블은 그의 이름이 "반역"이라는 히브리어 단어에서 유래했으며, 그를 이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라고 설명합니다. 

니므롯은 사냥꾼이며 동시에 도시를 세운 사람입니다. 그는 고대 사회에 있어서 위대한 일을 이룬 사람입니다.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에서 시작되었는데, 아마도 니므롯이 바벨탑이라는 하나님에 대한 반역 행위의 지도자였을 수도 있다고 해석합니다. 

이 당시에 인류의 총 숫자는 어느 정도였을까요? 오늘 말씀에서 셀 수 없을 정도의 자녀들과 민족들이 등장합니다. 모두가 다양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러한 다양성 속에서,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모델들이 있습니다.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사람,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 자신의 제국을 이룬 사람, 그리고 사람들 위에 리더가 되는 사람, 모두가 이런 삶을 꿈 꿉니다. 

미국에 오니 사람들이 더 다양하게 살아갑니다. 심각하게 잘못된 모습이 아니라면 상대방을 충분히 존중하는 것이 교회에서 조차 미덕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마치 삶의 다양성이야 말로 우리가 지켜야할 마지막 보루인 것 처럼 여길 때가 종종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다양한 직업과 다양한 환경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의 삶은 두 가지 방향 중에 하나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반역"하고 있는가? 아니면 나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는가?

하나님께 순종하자라는 표현은 참으로 단순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정말 엄청난 무게를 담고 있습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적을 수 밖에 없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통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안에는, 천국의 환희가 숨어 있습니다. 과연 저와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In Genesis 10, we see the offspring of Noah's family. The grandson of Ham was Nimrod. Nimrod was a valiant warrior on the earth. Grace and Truth study bible suggests that Nimrod's meaning of the name is "rebellion". The study bible suggests that he was the leader of Babel. Maybe, he was the role model of the ancient world. 

In this society, the variety of our life is a kind of value we should keep. Even in the church, we say that this is my privacy. Actually, our lifestyle should be respected. However, in our life, we have only two ways spiritually. The one is the rebellion. And the other one is obedience. What are the attitude of me and you?

2021년 11월 28일 일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 봤니? - 창세기 9장 / 새로운 인류 역사의 시작, 그리고 노아의 아들들

 

홍수가 그친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이것은 창세기 1장을 다시 생각나게 합니다. 그러나 인간과 창조 세계와의 관계 안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동물들은 인간을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동물을 먹을 것입니다.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성경에 처음 등장하고 있습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살인을 금하십니다. 인간은 고귀한 존재입니다. 어떤 존재에서 진화되어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가 존귀한 존재입니다. 만약, 냉혹한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인간을 살인하는 것이 동물을 죽이는 것과 동일하다고 주장한다면, 성경적인 확고한 인간에 대한 이해 없이는 우리는 강력하고 진실하게 대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Grace and Truth 스터디 바이블은, 하나님께서 노아와 모든 피조물과 맺으신 언약이, 완전히 새로운 언약이 아니라 창세 때부터 깨어진 언약을 다시 세우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완전하게 맺으시기 위해서 무지개를 보이십니다. 인간이 어떻게 하는 것과 상관 없이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맺으시는 언약입니다.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충만하게 보여줍니다. 

무지개를 싫어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보는 사람들은 항상 탄성을 지릅니다. 어쩌면 모든 인류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는 것 처럼 느껴집니다. 어떤 이들은 무지개를 그저 우연히 만들어진 것으로 여길지 모르지만, 그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하늘에 띄우실 때 마다, 자신의 은혜의 약속을 기억하십니다.

장면이 급격히 바뀝니다. 성경은 노아의 아들들을 소개하면서, 함이 "가나안의 아버지"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아는 사람이 이 소개를 본다면, 이스라엘의 대적 그리고 타락한 가나안이 도대체 어떤 조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확 궁금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매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노아가 술에 취해서 벌거 벗었습니다. 성경은 노아의 잘함 혹은 잘못함에 대해서 특별히 언급하시지 않습니다. 다만 그 아버지의 벌거벗음에 대하여서 그의 아들들이 어떻게 행동했는가에 주목합니다. 다른 두 아들과 다르게 함은 아버지의 하체를 봅니다. 

노아는 함을 저주합니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서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예언합니다. 스터디 바이블은 신명기 22장 30절과의 연관성을 고려하여서, 단순히 함이 아버지의 하체를 본 정도가 아니라, 어머니와의 성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혹은 단순히 함이 겸손한 태도가 없었음을 보여줄 수도 있다고 설명합니다. 

저주만이 아니라 오히려 축복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셈에 대한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셈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셈의 축복은 야벳을 포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셈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축복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 오십 년을 살았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노아의 삶에 많은 일들이 있었겠지만, 그의 믿음, 그의 순종, 그리고 그를 통한 후손들의 축복을 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우리는 삶의 많은 일들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붓습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을 제대로 붙들고 있는가요?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에 온 힘을 집중하고 있습니까? 과연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이 눈여겨 보실만한 것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After the flood, God made the covenant again with Noah and every living creature. It is very similar to Genesis 1 and was renewing of that. In this chapter, fear appeared. It is very curious for me. The fear is in the relationship between humans and animals. 

When we see the rainbow, we exclaim that it is beautiful. It is not made by chance. It is the proof of God's grace. God promised not to destroy humans with the flood as before he did.

The bible focuses on Ham who was the father of Canaan. He had sinned to his father so he was cursed. On the other hand, Shem and Japheth were blessed. Especially, through Shem, Jesus Christ will be b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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