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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16일 금요일

CGN 하루 20분 공동체성경읽기 장별 요약 - (구02)출애굽기



1. 출애굽기 개요 및 배경  

1) 시기: 요셉의 죽음 이후부터,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하여 성막을 세우는 출애굽 2년 차 1월 1일까지의 기록

2) 주요 주제

 (1)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 

 (2)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과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막 

 (3) 백성들의 불신앙과 죄성

 (4) 반역하는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과 자비 

2. 출애굽기의 핵심 

1) 핵심 구절 :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출 15:13) 

2) 의미 

 (1) 구속의 근거는 하나님의 인자하심(헤세드)이다. 

 (2) 주님은 그분의 권세로 백성을 구속하시고 인도하신다.

 (3) 구속 받은 백성의 의무와 특권은 거룩한 처소인 성막이다.

 (4) 출애굽 사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가 얻은 하나님의 구원을 설명하고 보여주는 최고의 사건이다.


* 1월 18일 

* 출애굽기 1장: 출애굽의 배경과 박해

1) 야곱의 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한 후,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크게 번성합니다.

2)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바로가 등장하여 이스라엘을 압제하고 남자를 학살하려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한 산파들(십브라, 부아)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 출애굽기 2장: 모세의 등장과 훈련 

1) 레위 지파 부모에게서 태어난 모세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바로의 궁중에서 성장합니다.

2) 40세에 스스로 구원자가 되려 했으나 살인을 저지르고 미디안 광야로 도피하게 되며, 그곳에서 다시 40년간 겸손의 훈련을 받습니다.  

3)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백성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십니다. 

* 출애굽기 3장: 하나님의 부르심과 계시  

1)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2) 모세의 주저함에 하나님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시며,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있는 자(여호와)'로 계시하십니다


* 1월 19일 

* 출애굽기 4장: 하나님의 종의 조건과 세 가지 표적 

하나님은 모세가 자신은 능력이 없다고 항변할 때, 내가 너와 함께한다는 증거로 세 가지 표적을 주십니다. 

1) 지팡이가 뱀이 되는 표적: 하나님을 의지할 때 주어지는 권능을 상징합니다. 

2) 손에 나병이 생겼다 치유되는 표적: 모세 자신의 연약함과 죄성을 하나님이 아시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를 사용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 나일 강물이 피가 되는 표적: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십니다. 

4) 동역자 아론: 계속해서 말을 못 한다고 사양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그의 형 아론을 대변인으로 붙여주십니다. 

* 출애굽기 4장 후반: 할례와 언약의 회복 

모세가 애굽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나님이 그를 죽이려 하시는 난해한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모세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사역하기 전, 언약 백성의 징표인 할례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내 십보라가 아들에게 할례를 행함으로써 위기를 넘깁니다. 

* 출애굽기 5장: 바로의 거절과 깊어지는 고난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내 백성을 보내라"고 선포하지만, 바로는 여호와를 알지 못한다며 거절합니다. 오히려 히브리 백성들에게 짚을 주지 않고 벽돌을 만들게 하는 등 노역을 더욱 가혹하게 만듭니다. 이로 인해 백성들과 장로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게 됩니다. 

* 출애굽기 6장: 하나님의 약속과 레위 족보 

낙심한 모세에게 하나님은 다시 한번 확신을 주십니다. 

1) 강한 손의 역사: 하나님께서 강한 손으로 바로를 굴복시키고 백성들을 인도해 내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2) 레위 지파의 족보: 6장 중반에는 갑자기 족보가 등장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아론과 모세, 그리고 엘르아살과 비느하스 등)를 통해 구속의 역사를 이루어가실 것임을 보여주는 계보적 확증입니다.


* 1월 20일 

* 출애굽기 7장: 재앙의 시작과 첫 번째 재앙 

1) 배경과 목적: 모세는 순종했으나 상황은 악화되어 백성의 원망을 사고 바로는 더 완강해졌습니다. 

2) 하나님의 주권 선포: 지팡이가 뱀이 되는 이적을 보이셨는데, 이는 애굽인들이 섬기는 신의 형상을 압도함으로써 하나님이 그들 위에 계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3) 제1재앙 (피): 나일강(애굽의 생명줄)을 피로 변하게 하심으로, 생사와 화복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 출애굽기 8장: 두 번째 - 네 번째 재앙 (구별의 시작) 

1) 제2재앙 (개구리): 애굽 술사들도 흉내를 냈으나, 바로는 고통이 잠시 가시자 다시 마음을 완강하게 먹는 반복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2) 제3재앙 (이): 중요 분기점으로, 이때부터 애굽의 요술사들이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하며 더 이상 흉내 내지 못하게 됩니다. 

3) 제4재앙 (파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사는 고센 땅에는 재앙이 임하지 않게 하여 당신의 백성을 구별하셨습니다. 

4) 바로의 타협: 바로가 "이 땅에서 제사하라", "너무 멀리 가지는 마라"며 조금씩 타협안을 제시하기 시작합니다. 

* 출애굽기 9장: 다섯 번째 - 일곱 번째 재앙 (심판의 심화) 

1) 제5재앙 (가축의 돌림병): 애굽의 가축은 죽었으나 이스라엘의 가축은 하나도 죽지 않아 철저한 구별을 보여주십니다. 

2) 제6재앙 (악성 종기): 요술사들조차 바로 앞에 서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신체적 고통이 따르는 재앙이었습니다. 

3) 제7재앙 (우박): 불덩이가 섞인 전무후무한 우박이 내려 애굽 온 땅의 채소와 나무를 초토화시켰습니다. 

4) 하나님의 의도: 이 재앙을 통해 '온 천하에 나와 같은 자가 없음을 네가 알게 하리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하십니다. 

5) 바로의 완강함: 숨을 쉴 만하면 다시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거역하는 인간의 완악함을 보여줍니다. 

6) 성도의 구별: 재앙이 심해질수록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특별히 보호하시고 세상과 구별하십니다.


* 1월 21일 

* 출애굽기 10장: 여덟 번째와 아홉 번째 재앙

1) 제8재앙 (메뚜기): 애굽 전역을 초토화시킨 메뚜기 떼로 인해 신하들이 "나라가 망했다"며 바로에게 간청하지만, 바로는 장정들만 가라는 조건을 내걸며 완전히 굴복하지 않습니다. 

2) 제9재앙 (흑암): 3일 동안 애굽 전역이 캄캄해집니다. 이는 태양신의 아들이라 자처하던 바로의 권위를 꺾는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바로는 가축은 두고 떠나라고 타협안을 제시하나, 모세는 예배를 위해 가축 한 마리도 남길 수 없다며 거절합니다. 

* 출애굽기 11장: 마지막 재앙의 예고와 준비 

1) 장자의 죽음 예고: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모든 처음 난 것(사람부터 가축까지)이 죽게 될 마지막 재앙을 예고하십니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사람들에게 은금 패물을 구하여 출애굽을 준비하게 됩니다. 

* 출애굽기 12장: 유월절과 무교절 

1) 유월절(Passover): 재앙의 사자가 어린양의 피가 발린 집을 보고 '넘어간다'는 뜻입니다. 흠 없는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밤에 고기를 구워 쓴 나물, 무교병과 함께 급히 먹어야 했습니다. 

2) 무교절: 구원받은 백성이 죄 없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함을 상징하며, 7일 동안 누룩 없는 빵(무교병)을 먹는 절기입니다. 

* 출애굽기 12장 후반: 열번째 재앙과 출애굽의 시작 

1) 제10재앙 (장자의 죽음): 밤중에 애굽의 모든 장자가 죽는 대재앙이 일어나자, 바로는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떠나라고 명령합니다. 

2) 출애굽: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에 거주한 지 430년 만에 라암셋을 떠나 숙곳으로 향하며 대장정을 시작합니다. 장정만 60만 명에 달하는 큰 군대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오게 됩니다.


* 1월 22일

* 출애굽기 13장: 벼랑 끝으로의 인도와 하나님의 배려

1) 뜻밖의 경로: 하나님은 블레셋 사람의 땅이 가깝지만, 전쟁을 보고 백성들이 낙심하여 이집트로 돌아갈까 봐 일부러 멀고 험한 홍해 광야 길로 돌려 인도하십니다. 

2) 벼랑 끝의 하나님: 강사님은 이 장면을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벼랑 끝에 세우시는 경험'을 하게 하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인간의 눈에는 막막한 길이지만, 사실은 백성들의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의 깊은 배려였습니다. 

3) 임재의 상징: 그 막다른 길 위에서도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으로 한 번도 백성 곁을 떠나지 않고 지키셨습니다. 

* 출애굽기 14장: 막다른 길에서 마주한 진퇴양난

1) 갇혀버린 이스라엘: 바로는 이스라엘이 홍해 근처 비하히롯 앞에 장막을 치자, 그들이 '광야에 갇혔다'고 판단하고 추격을 시작합니다. 

2) 백성의 절망과 원망: 뒤에는 이집트의 정예 병거들이 쫓아오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은 완전한 막다른 길에서, 백성들은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모세를 원망합니다. 

3)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은 이 위기를 통해 '내가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고 말씀하시며, 인간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그 지점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결국 바다를 마른 땅처럼 가르시어 진정한 탈출구를 여십니다. 

* 출애굽기 15장: 찬양의 고백과 광야의 쓴물  

1) 승리의 노래: 막다른 길에서 건짐 받은 감격으로 모세와 미리암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 마라의 쓴물과 십자가: 구원의 기쁨도 잠시, 광야 길 3일 만에 마주한 쓴물 앞에서 백성은 다시 불평합니다. 이때 나무 한 가지(학자들은 이를 십자가로 해석)를 던져 물을 달게 바꾸시는 역사를 보여주십니다. 

3) 엘림의 안식: 마라의 시험을 통과한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은 물 샘 12개와 종려나무 70그루가 있는 거대한 오아시스 엘림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 1월 23일 

* 출애굽기 16장: 공급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난 지 한 달이 되어 먹을 것이 떨어지자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해 응답하십니다. 

1) 만나를 통한 훈련: 하루치만 거두게 하시고 안식일 전날에는 이틀치를 거두게 하심으로써, 탐욕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지 테스트하셨습니다. 

2) 영적 의미: 이 사건은 단순한 배고픔의 해결을 넘어, 예수님만이 진정한 '생명의 떡'이심을 가르치시는 과정입니다. 

* 출애굽기 17장: 반석에서 물을 내심과 아말렉 전투

백성들이 마실 물이 없어 다시 원망하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로 반석을 치라고 명령하십니다. 

1) 생수의 근원: 반석에서 물이 나온 사건은 훗날 우리를 위해 몸을 깨뜨려 생수가 되어주신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2) 여호와 닛시: 아말렉과의 첫 전투에서 모세가 산에 올라 손을 들고 기도할 때 이스라엘이 승리합니다. 승리는 인간의 힘이 아닌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주는 '여호와 닛시(여호와는 나의 깃발)'를 선포하게 됩니다. 

* 출애굽기 18장: 이드로의 방문과 행정 조직 정비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방문합니다. 

1) 지혜로운 권면: 과중한 업무로 지친 모세를 본 이드로는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워 일을 분담할 것을 제안합니다. 

2) 동역의 모델: 이를 통해 모세는 중요한 재판에 집중하고, 백성들은 효율적인 지도를 받으며 광야 길을 평안히 갈 수 있는 질서를 갖추게 됩니다.


* 1월 24일 

* 출애굽기 19장: 시내산 언약의 시작 

1) 배경: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난 지 3개월 만에 시내산에 도착했습니다. 이들은 이곳에서 약 1년 동안 머물며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율법을 받게 됩니다. 

2) 언약의 핵심 (출19:5-6):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라는 비전을 주셨습니다. 

3) 백성의 응답: 백성들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준행하겠다고 응답하며, 성결하게 준비한 뒤 하나님의 강림을 맞이합니다. 

*. 출애굽기 20장: 십계명 반포와 그 의미 

1) 직접적인 계시: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직접 들을 수 있도록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도 죽지 않은 것은 엄청난 사건입니다. 

2) 율법의 기초: 십계명은 도덕법의 기초이자 율법 전체의 뿌리가 됩니다. 

3) 순종의 성격: 계명은 단순히 지켜야 할 규칙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전제된 믿음의 순종입니다. 

4) 모세의 중보: 하나님의 임재가 너무나 두려웠던 백성들은 모세에게 '당신이 대신 듣고 전해달라'고 요청합니다. 

* 출애굽기 21장: 시민법과 하나님 나라의 정신 

1)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자비: 21장부터 나오는 세부 법규들은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자비의 기초를 보여줍니다. 이 법들의 목적은 적어도 공동체 안에 억울한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종의 규례와 인권: 히브리 종은 7년째에 해방되어야 하며, 주인을 사랑하여 스스로 종으로 남기를 원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됩니다. 또한 여종의 인권에 대한 규정은 당시 고대 세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파격적인 보호 장치입니다. 

3) 사회적 책임: 상해 및 주인의 책임에 관한 규정들은 하나님이 생명과 인간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시는지를 보여줍니다.


* 1월 25일 

* 출애굽기 22장: 사회적 책임과 약자 보호 

1) 개인 재산 보호: 억울한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원칙 아래 개인 재산을 보호하는 규례가 나옵니다. 

2) 사회적 책임: 혼전 관계, 무당, 수간, 우상 숭배 등에 대한 규례가 포함됩니다. 

3) 약자에 대한 자비: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고 과부와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얼마나 자비로운 분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 출애굽기 23장: 공평한 사회와 절기 

1) 재판의 공평: 허위 사실 유포(가짜 뉴스)를 금지하고, 뇌물과 거짓 증거를 경계하여 공평한 재판이 이루어지게 합니다. 

2) 배려가 담긴 안식년/안식일: 단순히 종교적 의무가 아니라, 가난한 자와 들짐승, 나그네까지 쉬게 하려는 하나님의 배려가 담겨 있습니다. 

3) 3대 절기 (무교절, 맥추절, 수장절):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을 늘 기억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라는 의미입니다. 

4) 순종의 근거: 하나님의 이 모든 명령은 약속과 함께 주어지는 것이기에, 그 약속을 믿어야 온전히 순종할 수 있습니다. 

* 출애굽기 24장: 언약 체결과 비준 

1) 피의 언약: 19장에서 시작된 언약의 과정이 마무리되는 장면입니다. 모세가 피를 백성에게 뿌리며 '언약의 피'(출 24:8)로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관계를 확정합니다. 

2) 언약식의 형식: 이스라엘 리더들(모세, 아론, 장로 70인 등)이 하나님 앞에서 함께 먹고 마시는데, 이는 고대 근동의 언약 비준 방식입니다. 

3) 40일간의 산 위 체류: 이후 모세는 시내산에서 40일간 머물며 돌판과 성막 설계도, 제사 제도를 받게 됩니다.


* 1월 26일 

* 출애굽기 25장: 성소 기구와 하나님의 임재 

25장은 성소 안의 핵심 기구들을 다루며, 이는 곧 우리와 만나주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1) 예물의 의미: 이스라엘 백성이 기쁨으로 드린 예물로 성막을 짓게 하셨습니다. 

2) 증거궤(언약궤)와 속죄소: 

 (1) 하나님의 임재와 보좌를 상징하며, 그 안에는 만나, 아론의 지팡이, 십계명이 들어있습니다. 

 (2) 속죄소(뚜껑): 피가 뿌려짐으로 속죄가 일어나는 곳이며, 두 그룹(천사)이 하나님의 거룩을 호위합니다. 

3) 진설병 상: 

 (1) 12개의 떡은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합니다. 

 (2)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을 떠받치고 계심과,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항상 보고 계신다는 은혜를 의미합니다. 

4) 등잔대: 

 (1) 살구꽃 형상은 생명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2) 성소의 유일한 빛으로서 '세상의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 출애굽기 26장: 성막의 구조와 덮개 

26장은 성막의 외형과 덮개를 다루며, 그리스도의 성품과 교회를 상징합니다. 

 1) 4중 덮개 (그리스도의 사역): 

  (1) 청색/자색/홍색 실

  (2) 염소털로 만든 천

  (2)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을 상징

  (3) 해달의 가죽: 겉은 투박하고 매력 없으나(인성), 그 안에 들어가야만 영광을 볼 수 있는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2) 널판과 띠: 

 1) 48개의 널판이 서로 연결된 모습은 구속받은 성도들이 어깨를 맞대고 세워가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3) 휘장: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며, 그룹(천사)이 수놓아져 하나님의 거룩함을 엄격히 구별합니다. 

* 출애굽기 27장: 번제단과 성막의 뜰 

27장은 성막 외부의 뜰을 다루며,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상징합니다. 

1) 놋 제단 (번제단): 

 (1) 성막에서 가장 큰 기구로, '놋'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2) 제물이 태워지는 이곳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장 직접적으로 가리킵니다. 

2) 성막의 뜰과 울타리: 

 (1) 하얀 세마포 울타리는 그리스도의 무결함과 순결을 상징합니다. 

 (2) 뜰의 문: 지성소 휘장과 달리 그룹(천사) 자수가 없습니다. 이는 죄인 누구라도 들어올 수 있도록 개방된 구원의 문을 의미합니다. 

3) 등불 관리: 

 (1) 제사장은 24시간 등불이 꺼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지키신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 1월 27일 

* 출애굽기 28장: 제사장의 의복 

제사장은 '옷의 사람'으로, 옷을 통해 구별되는 존재입니다. 구약 시대에 제사장의 직분을 통해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여주십니다. 대제사장은 아래의 특별한 옷을 입습니다

1) 에봇: 앞치마 형태의 옷으로, 어깨 부분(견대)에 두 개의 호마노 보석이 있습니다. 각 보석에는 이스라엘 6지파씩 총 12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제사장이 하나님의 모든 백성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2) 판결 흉패: 가슴에 다는 흉패로 12개의 보석에 각 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품에 품고 계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백성들을 보신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3) 우림과 둠밈: 판결 흉패 안 주머니에 있는 두 개의 돌로, 국가의 중대사에서 하나님의 뜻을 물을 때 사용되었습니다.  

4) 청색 겉옷 & 금패: 청색은 그리스도의 천상적 성품을, 이마의 금패('여호와께 성결')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함에 대한 모형입니다. 

5) 일반 제사장: 보석이나 화려함 없이 세마포 속옷, 띠, 그리고 관만을 착용했습니다. 

* 출애굽기 29장: 제사장 위임식 절차 

아론과 그 아들들의 위임식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이중적으로 대표하며, 네 가지 중요한 절차를 거칩니다. 

1) 물로 씻기: 중생의 씻음을 의미합니다. 

2) 의복 입히기: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을 상징합니다 (로마서 13:14). 

3) 관유 붓기: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상징합니다. 

4) 피 뿌리기: 그리스도의 피로 인한 거룩함과 성결을 의미합니다 (베드로전서 1:2). 

* 출애굽기 29장 38절 이하: 상번제 

1) 매일의 제사: 아침과 저녁으로 매일 변함없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입니다.

2) 하나님과의 만남: 이 제사를 통해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고 그들 중에 거하시며,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 1월 28일 

* 출애굽기 30-31장: 성막 기구들의 영적 의미

성막의 각 기구가 그리스도의 사역과 성령의 사역을 예표합니다 

1) 금 향단: 번제단이 '희생제물 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면, 금 향단은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중보자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2) 속전: 생명의 값으로 드리는 속전은 빈부귀천에 상관없이 동일한 구속의 비용이 적용됨을 보여줍니다. 

3) 물두멍: 제사장들이 손발을 씻는 곳으로, 하나님과의 교통에서 개인적인 거룩함과 순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합니다. 

4) 관유와 향: 거룩한 관유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오직 하나님께만 드려지는 거룩한 향은 그리스도의 완전하심을 나타냅니다. 

5) 성막 기술자: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세워 성막을 건축하게 하심으로써 실제적인 지침을 주십니다. 

* 출애굽기 31장: 안식일 규정의 반복과 강조 

1) 안식일 규정은 앞서 16장과 20장에서도 나왔지만 31장에서 다시 반복됩니다. 

2) 이유: 하나님이 거듭 강조하시는 이유는 안식일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나타내는 '언약의 정체성의 표징'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어기는 자를 죽이라 하실 만큼 엄중한 명령입니다. 

* 출애굽기 32장: 금송아지 배교 사건

모세가 시내산에서 증거판을 받는 동안 밑에서는 이스라엘의 배교가 일어납니다. 

1) 배교의 본질: 이 사건은 '진노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자기들의 감각을 만족시키는 신'을 임의로 만든 사건입니다.

2) 죄의 심판: 모세는 내려와 돌판을 깨뜨리고 죄를 다룹니다. 여호와의 편에 선 레위인들을 통해 죄를 범한 3,000명이 심판을 받게 되며, 이는 하나님의 공의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 1월 29일 

* 출애굽기 33장: 하나님의 임재와 모세의 중보 기도 

1) 심판 이후의 상황: 금송아지 사건으로 3,000명이 죽는 심판이 있었지만,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2) 하나님의 선언: 하나님은 '가나안 땅으로는 보내주겠지만, 나는 너희와 함께 가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3) 모세의 결단: 모세는 성공(가나안 입성)보다 '하나님의 동행'이 더 중요하다며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달라고 간구하며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 집중합니다. 

* 출애굽기 34장: 언약의 갱신과 모세의 광채 

1) 두 번째 돌판: 하나님은 모세에게 직접 돌판을 깎아 산으로 올라오라고 명하시고, 다시 40일간의 금식이 시작됩니다. 

2)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은 모세를 반석 틈에 숨기시고 당신의 이름을 선포하며 지나가십니다. 이 영광을 본 경험은 모세가 평생을 견디게 한 힘이 되었습니다. 

3) 변화된 얼굴: 산에서 내려온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 백성들이 두려워할 정도였습니다. 고린도후서 3,4장을 함께 읽는 것이 좋은데,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볼 때 그 형상으로 변화되는 거룩한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 출애굽기 35장: 성막 건축을 위한 자원하는 예물 

1) 말씀의 선포: 모세는 안식일 준수와 하나님의 명령을 다시 선포합니다. 

2) 성막 준비: 하나님이 다시 동행하시기로 약속하셨으므로, 그분이 거하실 거룩한 처소인 '성막'을 지을 준비를 합니다. 

3) 기쁨의 헌상: 억지가 아니라 마음이 감동된 자들이 자원하여 예물을 드리고,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이들이 은사대로 성막을 만드는 순종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 1월 30일 

* 출애굽기 36장: 자원하는 헌신과 성막의 본체 

1) 백성들의 자원함: 금송아지 사건 이후 시작된 건축에서 가장 큰 특징은 백성들의 '자원하는 마음'입니다. 

2) 차고 넘치는 예물: 백성들이 너무 많이 가져와서 모세가 '더 이상 가져오지 말라'고 공포할 정도로 풍성한 헌신이 있었습니다. 이는 성막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지어짐을 보여줍니다. 

3) 성막의 골격: 성막 덮개(휘장), 널판, 기둥 등 성막의 외형과 기초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규격대로 제작되었습니다. 

* 출애굽기 37장: 성막 내부 기구와 신학적 의미 

1) 내부 기구 제작: 언약궤(법궤), 진설병 상, 등잔대, 금 향단 등 지성소와 성소 안의 핵심 기구들이 만들어졌습니다.

2)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요한복음 1장 14절의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가 '성막을 치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이 기구들이 상징하는 임재의 실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 출애굽기 38장: 성막 뜰과 재료의 총계 

1) 뜰의 기구: 번제단, 놋 물두멍, 성막 울타리 등 외부 뜰의 기구들이 완성되었습니다. 

2) 재료의 결산: 성막에 들어간 금, 은, 놋의 물목을 계산하며 성막 건축이 마무리됩니다. 

3) 성도의 몸과 교회: 바울 사도가 말한 것처럼(고전 3:16), 이제는 우리가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 종말론적 완성 (계시록과의 연결) 

1) 영원한 장막: 성막의 역사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 요한계시록 21장의 '새 예루살렘'에서 완성됩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영원히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의 장막'이 최종 목적지입니다. 

2) 삶의 적용: 우리는 장래에 완성될 교회의 모습을 기대하며, 오늘 우리 자신이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온전히 세워져 가야 합니다.


* 1월 31일 

* 출애굽기 39장: 제사장의 의복 제작과 성막 완공 

39장은 성막에 들어갈 기구들에 이어, 그곳에서 섬길 제사장들의 거룩한 옷을 만드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1) 제사장 의복의 의미: 대제사장의 옷은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여러 상징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1) 중보자: 범죄한 백성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기에, 그들을 대신할 중보자가 필요함을 보여줍니다. 

 (2) 백성을 품음: 대제사장은 백성들의 이름을 어깨에 짊어지고 가슴(흉패)에 품은 채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3) 구별됨: 아론 역시 연약한 인간이자 속죄가 필요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이 명하신 거룩한 옷을 통해 다른 이들과 구별되었습니다. 

2) 성막 역사의 종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모든 기구와 의복이 완공되었습니다. 모세가 그 모든 것을 점검하고 축복하며 제작 과정이 마무리됩니다. 

* 출애굽기 40장: 성막 봉헌과 하나님의 임재 

40장은 완성된 성막을 세우고 하나님 앞에 봉헌하는 의식과 그 결과를 다룹니다. 

1) 봉헌의 시기: 출애굽 한 지 정확히 1년이 되는 날(첫째 달 초하루)에 성막을 세우라는 명령이 내려집니다. 

2) 순종의 반복: 40장 전반에 걸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라는 표현이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설계도대로 온전히 순종했음을 강조합니다. 

3) 성막 건립 순서: 성막 안쪽(증거궤)부터 시작하여 바깥쪽(뜰의 휘장) 순서로 세워집니다.  

4) 쉐키나의 영광 : 모든 역사가 마치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게 임합니다.

 (1) 모세조차 감히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임재가 나타납니다. 

 (2) 이 구름(인재의 상징)은 이후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길을 갈 때 행진과 멈춤을 결정하는 가이드가 됩니다. 

5) 요약: 출애굽기는 언약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이제 그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로 삼으시는 이야기로 마무리됩니다.


* CGN 하루 20분 공동체성경읽기 장별 요약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6/01/cgn-20.html

2022년 11월 14일 월요일

Double / 출애굽기 34장 1-9절 주일 설교 (설교문)

* Double / 출애굽기 34장 1-9절 주일 설교 (준비 과정)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double-34-1-9.html

* 출애굽기 34장 1-9절 설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독점적인 사랑을 받는 민족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친히 이방 땅에 살고 있는 아브라함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복을 주시며 그와 그의 후손들을 통해서 온 세상이 복을 얻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그리고 이삭의 아들 야곱을 통해서 가족이 늘어났습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을 이집트의 총리로 만드시고 극심한 기근 가운데 그들을 돌보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이집트에서 노예로 고통 당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향한 약속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모세를 보내셨습니다. 여호와께는 오직 그분의 사랑으로 이집트의 모든 우상들을 치시고 바로의 아들을 치시며 결국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밖으로 이끌어내셨습니다. 거대한 홍해 바다를 가르시며 바로와 군사들을 물 안에 수장시고 그분의 능력과 그분의 사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 아래로 이스라엘 백성을 모으시고 시내산 위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그의 백성들이 마땅히 지켜야하는 법칙으로써 그분의 십계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모세가 시내산 위에서 내려오지 않는 것입니다. 40일이 지나도 내려오지 않자 백성들이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모세의 생사를 확인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신뢰가 흔들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난데없이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버리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금송아지를 여호와라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 여호와의 이름을 모욕하고 그분의 명예에 먹칠을 하고 춤추며 노래하고 음란한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으로 부터 이어진 500년에 가까운 하나님의 사랑은 40일을 기다리지 못한 백성의 배신으로 인해서 철저하게 망가지고 더럽혀진 것입니다.

드디어 산에서 내려온 모세가 그 참혹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모세는 분노하며 십계명의 돌판을 그들을 향해 던져 버렸습니다. 모세는 그들의 배신과 그 죄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았습니다. 여호와의 모든 사랑과 신뢰를 버린 이것은, 마치 신실한 배우자를 버리고 외도를 한 것과 동일한 것이라고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혹시 성도님들께서는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해 보신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서로가 마음을 나누는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나를 속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배신의 상처를 위로하다" 라는 책의 저자인 이브 우드는 배신 당한 사람들을 위한 책을 쓰면서 자신의 이야기로 그 책을 열고 있습니다.

기도의 응답이라고 생각하며 한 사람을 남편으로 맞이했습니다. 행복하게 시작한 그녀의 결혼 생활은 안타깝게도 순탄하지가 못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와 같이 이중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때로는 그녀를 지지했지만 또 어느 순간은 한 없이 그녀를 공격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남편의 외도의 결정적인 증거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경험을 이렇게 적어 놓았어 "나의 결혼 생활에 대한 환상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나는 황폐해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배신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하고 있어 "배신이란 신뢰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당신은 더 이상 당신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 사람이 실제로 과연  누구인지조차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자신이 직접 배신을 당한 사람으로서 그것은 한 사람의 육체적 정신적 모든 부분을 황폐하게 한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무서운 하나님이다 구약의 하나님은 보복하는 하나님이다 과연 그 말이 맞는가?

우리가 냉정하게 구약을 평가해 본다면 여호와 하나님은 배신당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다른 누가 아니라 자신의 백성에게 배신 당하고 버림 받은 것입니다. 그분이야 말로 상처 받은 신으로써 우리 앞에 계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저지른 이 엄청난 상처와 배신 앞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목숨을 걸고 중재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백성 전체가 망하는 것은 겨우 막을 수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들과 앞으로 동행 하는 것을 거절하셨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모세 입장에서도 할 말이 없는 것이지

그러나 우리가 주목할 것은 염치 불구하고 할 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세가 계속적으로 여호와께 매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3 13절 하반절에 이렇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무슨 의미인가? 이렇게 황당하고 이렇게 악한 백성이라도 주의 백성으로 다시 받아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간구대로 그들과 함께 가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더 간절하게 이렇게 간구하고 있습니다. 33 18절 말씀입니다.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대범한 요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여호와 하나님께 이렇게 요구한 적이 없었습니다. 물론 모세는 이미 하나님의 임재를 여러번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처음 만날 때에 떨기 나무에서 그리고 시내산에서의 임재도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가 요구하는 것은 그런 차원의 임재가 아니라 자신의 두 눈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그 깊은 본질을 보기 원한다, 여호와 하나님 자신을 직접 보고 싶다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아마도 여호와 하나님께 일종의 보증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의 눈으로 본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약속을 지키실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오늘 말씀 5절에 보니 모세가 원하는대로 여호와께서 강림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섰다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셨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6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4: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나 이상하지 않은가? 첫째로 이상한 것은 모세는 여호와의 영광을 보기를 원했는데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영광을 그에게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 그분의 이름을 두번 더블로 선포하셨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여호와께서 선포하셨다는 것입니다. 선포라는 것은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인 것입니다. 선포하는 사람이 그것을 선포하면 그것이 끝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라진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모세는 인간 중보자로 여호와께 매달렸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당신께서 용서해 주셔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처 받은 여호와께서는 쉽게 마음을 돌이키시지 못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대화들을 통해서 모세 때문에 모세를 봐서 이제 겨우 함께 가겠다고 약속하신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완전히 분위기가 바뀌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을 보여 달라는 모세의 요청 앞에서 그분께서 자신의 이름을 선포하시면서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습니다. 이제 여호와께서 어떻게 하시는가? 모세의 간구나 모세의 부탁이나 누구의 요청이 아니라 여호와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선포하시는 것이지 스스로 있는 자니라

저는 처음 관심을 가지고 오늘의 본문을 접했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여전히 이 장면을 읽으면 마음이 먹먹합니다. 이 본문이 매우 특별한 것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시며 반복적 더블로 말씀하신 것은 성경을 통틀어서 여기에 한 번 밖에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출애굽기 3장에서 여호와께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셨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여호와라는 이름 그 자체가 그런 뜻입니다. 여호와는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분이십니다. 우리는 누구로부터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그 어떤 것을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물과 공기와 음식이 있어야 존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여호와는 누구이신가? 그분은 우리와 존재 자체가 다른 분이십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과도 본질적으로 다른 분이십니다. 그분은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의지하지 않으시며 오히려 모든 것의 창조자이시며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정말 흥미롭지 않은가? 모세는 여호와의 영광을 보여달라고 했는데 여호와는 자신의 이름을 선포하십니다. 여호와라 여호와라 라고 말씀하시며 그분의 이름을 두번으로 연속해서 선포하십니다.

이런 마음에 묵상을 하게 되었어 이 여호와라는 더블로 스스로 부르시는 그분의 자기 선포는, 우리의 앞에 펼쳐지는 일종의 광대한 장면이다 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댄버에 살면서, 가을 날에 록키 산맥 안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산을 넘어 한참을 달려서 산들의 안쪽 어딘가를 지나갈 때에, 그때 너무 아름다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평생동안 단 한번도 보지 못했던 가을의 풍경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인간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절대적인 압도적인 풍경 앞에서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의 말씀의 장면이 마치 그런 것과 같습니다. 지금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사실 얼굴을 들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신에게 버림 받아 마땅하며 그저 하나님께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반응하시는가? 스스로 존재하시는 광대하신 여호와를 선포하시며 여호와 자신의 그 본질을 근거로 하여서 이 모든 배신과 분노를 떨쳐 내시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스스로 자신이 누구이신가를 선포하시며 자신이 인간과는 다른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분의 위대한 이름과 그분의 위대한 성품이 이 모든 비참하고 슬픈 이야기를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사실상 버림 받아 마땅한 그분의 백성의 운명이 여호와의 이름이 더블로 광대하게 선포될 때에 새로운 빛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분의 백성이 여호와를 배신하고 실망시키고 분노하게 했지만 그러나 그들의 운명이 백성 자신에게 달려 있지 않고, 스스로 계시는 여호와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과 그리고 여기 있는 우리에게 선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그분의 절대적인 선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6절에 계속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라고 말씀하시지

무슨 의미인가? 그분의 성품을 풍성하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들은 이 단어와 표현들과 그 연결들이 바로 이것이 여호와라 부르는 분의 본질입니다. 스스로 존재하시는 자 영원하시며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시며 인간이라는 존재를 뛰어넘는 그분께서, 모세가 보여달라는 그 분의 영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인간의 언어로 풀어서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자비라는 것은, 부모가 자녀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그 어떤 부모도 자녀의 잘못에 일대일로 반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모욕을 참고 인내 하는 것입니다. 자녀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그를 버리지 않는 것이 부모입니다.

은혜라는 것은, 도움을 필요하는 자들에게 거저 호의를 베푸는 것입니다. 도움이 필요해서 절박해서 눈물을 흘리는 자에게 모른척하거나 냉정하게 대하지 않고, 내가 굳이 그래야 하는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친절을 베푸는 것이 바로 은혜라는 것입니다.

진실이라는 것은, 그분을 신뢰할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께 진실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여호와께서는 자신을 배신한 그분의 백성에게 조차 신뢰할 수 있는 분으로 여전히 기꺼이 존재하시겠다고 선포하십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보여준 그들의 패역한 태도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더 큰 품으심을 보여주는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주님은 더블로 자신의 이름을 선포하시는가? 이스라엘 백성의 배신과 실패가 그분의 이름의 그 광대하심을 넘어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자신들을 버릴까 두려워하며 염려하고 괴로워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과 위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신약 성경에 모세가 다시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수난을 받으시기 얼마전에 그분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 앞에서 변하셨습니다. 얼굴이 마치 해와 같이 빛나고 옷은 눈부시게 희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과연 누구이시길래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가? 예수님께서는 이미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 9절 말씀입니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오늘 말씀에서 모세가 직접 보기를 갈망하던 그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의 모든 범죄와 배신과 반역을 포용하고 넘어서며 그들을 여전히 사랑하신다는 그 여호와의 이름의 더블로 전해지는 은혜의 선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상 가운데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임하셨습니다. 본질상 성부 하나님과 영원히 동등하신 성자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역사 가운데 섬광처럼 시간을 가로질러 가장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은 가장 빛나는 영광을 가지신 하나님이셨지만, 동시에 두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육체를 가지신 분이셨습니다.

그분이 자신의 영광의 작은 부분을 잠깐 드러내셨을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무슨 의미인가? 모세는 율법을 받은 자로서 구약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이 주어졌지만 그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모든 인간이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행하시는가?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진정한 중보자로 오셨습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모세가 중재자로 등장하기는 하지만 모세는 예수님의 그림자에 불과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백성의 용서를 구하면서 기껏해야 자신의 작은 생명을 걸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영원의 가치를 가지신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기 위해서 죄인을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아담 이후로 모든 인간은 죄를 범하고 자신의 창조자에게 대항하고 그분을 배신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기꺼이 아버지께 순종하시며 인간의 모든 죄의 댓가를 십자가에서 치르시기 위해서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

모세는 그 날 드디어 본 것입니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그 여호와의 영광 그 본질과 아름다움 여호와라 여호와라 선포하시며 인간의 죄악의 배신의 역사를 거스르시는 그 위대하신 여호와의 이름이 이 땅에서 실현 된 것을 본 것입니다.

로마서 3 23절과 24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이라는 죄의 댓가를 치르심으로 자신의 의로움을 그분을 믿는 우리에게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배신자를 너는 신실한 자라 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반역한 이들을 너는 하나님의 자녀라 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5 8절에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무슨 의미인가?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드러난 하나님의 은혜의 선포와 자비와 긍휼하심과 그 계명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번 한주간도 어쩌면 어제 밤에도 어쩌면 오늘 아침에도, 우리는 여전히 여호와를 배신하며 여호와를 실망시키며 그분께 큰 아픔을 안겨드렸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우리가 좌절하거나 삶을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며 우리의 도움이 되시며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였으며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를 여호와께서 포기하시지 않고 끝까지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라는 것입니다.

저에게 좋은 영향을 준 책들이 많이 있지만, 제 인생을 통틀어 가장 선한 영향력을 준 책은 필립 얀시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라는 책입니다. 거기에 나오는 얀시의 친구 다니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어느 늦은 밤 얀시를 찾아와서 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결혼 생활 15년 만에 신실한 아내를 떠나기로 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신이 한동안 잊고 있었던 살아 있는 느낌을 되찾아 주는 젊은 여자를 만났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오늘 밤 자네를 보자고 한 것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혀 온 질문 때문일세 자네는 하나님이 지금 내가 하려는 끔찍한 일까지도 용서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얀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의 질문은 살아 있는 뱀처럼 식탁 위에서 꿈틀거렸고 나는 감히 대답을 하기 전 커피를 석 잔이나 비웠다" 성도님들께서는 이 질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여호와의 자비하심에 대한 그분의 선포 앞에서 모세가 그분께 "경배"로 반응했다는 것입니다. 8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급히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여호와 앞에서 급하게 속히 바로 반응하면서 엎드렸습니다. 그의 겸손한 반응이 연속된 단어들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라 도대체 왜 그랬을까?

물론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아니 저는 모세가 왜 이렇게 까지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스라엘의 배신이나 혹은 불륜 정도는 뭐 그 정도는 당연히 용서하셔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은혜와 자비의 하나님이시라면 그렇게 하셔야만 되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질문할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얀시는 어처구니 없는 그의 친구를 너무나 안타까워 하면서, 하나님의 용서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용서란 베푸는 편 못지 않게 받아들이는 자가 있어야 온전한 것이 된다 죄를 인정하지 않는 자는 용서를 받아들일 수 없다"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세가 왜 그렇게 바닥에 엎드려 경배할 수 밖에 없었는가?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그 죄의 심각함을 알았고 마음 아파했습니다그 아픔과 괴로움과 슬픔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그것을 기꺼이 용서하시는 여호와의 용서의 가치를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정도 죄는 마땅히 용서 해야하지 않겠냐는 뻔뻔한 태도를 가지고 결코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참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은, 매 순간 죄악된 나의 본질을 가슴 아파하며 여호와께 기도하며, 매 순간 그분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는자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 사람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여호와께 참되게 경배하는 자이며,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가운데 거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보면서 또 하나 우리가 주목할 것은, 여호와께서는 여전히 동일한 십계명을 모세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4 28절 하반절에 이렇게 말씀하시지 “28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처음의 십계명은 다 부서졌지만 다시 십계명을 하나님께서 기록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렇게 십계명을 지키지 못했다면 차라리 한 두개 정도는 제외하고 다시 주시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전혀 물러서실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용서하시며 받아주시며 격려하시며 동시에 다시 한번 동일한 십계명을 주시면서 동일한 충성과 동일한 헌신과 사랑을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께서 우리를 다루시는 방식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넘어지고 실패한 이스라엘 백성을 품으시며 그들을 인도하시고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시며, 그분의 신실한 계명과 그 준엄한 말씀 앞에서 다시 한번 도전하며 살아갈 것을 엄숙하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 46-48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정말 놀라운 말씀이 아닙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들의 삶의 기준이 어디에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이 바로 너희의 기준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 마다, 저의 전 존재를 부르시는 어떤 신성한 부름을 느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완전한 의로움을 주셨습니다. 그분 앞에 용서를 구하며 나아가는 우리에게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그 완전한 의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더 이상 우리의 구원이라는 것이, 내가 어느 정도의 순종을 보여주느냐에 달려있지 않고 오히려 여호와의 능력에 그리고 그 이름에 달려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여호와는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그분의 자녀로서 그분의 사랑의 은혜에 응답하며 경배하는 자로서 여호와의 그 용서의 가치를 아는 자로서 반응할 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도대체 아버지의 온전하심이란 것이 무엇일까? 예수님께서는 그 온전하심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자 한번 여기서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도대체 이것이 우리에게 무슨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가? 어떤 분들은 이렇게 이야기하실 수 있겠습니다. 아 목사님 알겠습니다, 그럼 친절을 많이 베풀라는 말씀이군요? 물론 그렇게 이해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사실상 지금 성경이 말씀하고자 하는 바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모세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할 때에 여호와의 그 본질 그분의 그 본성 그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보여달라고 했을 때에 여호와께서 무엇을 선포하셨는가? 여호와의 자비, 은혜, 신실하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분의 그 놀라운 선포가 실제로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셨을 때에 도대체 그리스도의 그 본질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와 그 신실하심이 그대로 유지되어서 이 세상 가운데 나타나신 것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 것인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아버지의 온전하심처럼 온전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분처럼 자비, 은혜, 신실하심을 보이고 실천하고 나타내는 것이 결코 변두리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의 근본적인 정체성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그것이 우리의 전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의 본질로서 존재해야 하는 것이며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전념해야 하는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최근에 저에게 좋은 영향력을 준 책은 "전념"이라는 책입니다. 애덤 그랜트라는 베스트셀러 저자는 이 책을 평할 때에 21시기에 행복과 성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평가를 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피트 데이비스는 지금 시대를 이렇게 평가하고 있어 액채 근대라는 표현처럼 현대인들은 어느 한 가지 정체성, 장소, 공동체에 스스로 묶어두기를 원치 않으며 그래서 마치 액체처럼 어떠한 형태의 미래에도 맞춰서 적응할 수 있는 유동적 상태에 머무른다. 사람만 그런 것도 아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 역시 액체와 같은 상태를 유지한다. 사람들이 어느 하나의 직업이나 역할, 생각이나 신념, 집단이나 기관에 매달려서 오랫동안 같은 형태에 머무르지 못하는 것처럼, 사회도 우리를 진득하게 품어주지 않는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끊임없이 탐색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액체 근대다라고 이 시대를 평가하고 있습니다.

성도님들은 이 내용을 통해서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크리스천의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크리스천이라고 말은 하지만, 성도의 그 본질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거기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은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처럼 액체처럼 방향 없이 그저 흘러가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이시는 요구하시는 그 본질에 매달리지 않고, 그저 세상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여기 기웃 저기 기웃거리면서 나는 도대체 삶의 방향을 알지 못한다고 한탄하면서 액체처럼 방황하며 세월을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자신에게 질문하고 싶은 것입니다. 과연 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완전하심 그분의 본성인 자비와 은혜와 긍휼과 신실하심을 내 인생의 중심의 본질로 삼고 있는가? 그것이 나의 삶의 목적이며 방향이며 나의 삶의 전부이며 다른 어떤 일이 일어나도 반드시 고수해야 할 나의 모든 것이며 내가 반드시 전념해야 하는 그 삶의 목표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실천하고 있는가? 그것을 여쭤보고 싶은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 1-4절 말씀입니다.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세상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보여주십니다. 과연 은혜의 반대가 무엇인가? 무정한 것입니다. 과연 은혜의 반대가 무엇인가? 원통함을 풀지 않는 것입니다. 과연 신실함의 반대가 무엇인가?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여호와의 이름과 그분의 성품보다, 세상의 모든 쾌락과 즐거움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이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은 하나님의 성품과 정확히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 여호와라는 그 더블 선포가 의미하는 무한한 여호와의 자비, 긍휼, 신실하심이야 말로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 꿈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변화시키고 싶습니다 교회 안에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도대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무엇일까?

저는 때론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르다라는 생각을 종종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말로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고, 내가 변화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 길에 대해서는 무시하거나 무관심하거나 그 안으로 들어가 전념하기를 주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방법에 대해서 오늘 말씀에 나오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의 더블의 선포가 바로 그 자리로 우리를 이끌어가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미 베푸신 여호와 은혜와 자비와 사랑을 그리고 그분의 진실하심을 우리가 진중하게 받아들이고, 그 가치야 말로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임을 깨닫고 그 길을 기꺼이 걸어가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진정한 변화는 어디에서 일어나는가? 배신이 난무하는 끔찍하고 비참한 현장 속에서 여호와라 여호와라 선포하시는 그분의 더블의 선포가 임할 때에 거기에서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여호와의 온전하심이 드러난 곳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운명의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원수를 원수로 갚지 않는 자비와, 베풀 필요도 없지만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은혜와, 남들이 나를 저버린다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내 자리를 지키는 진실함이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흔들고 그들을 바꾸고 그 누구도 생각해보지 못한 새로운 곳으로 그들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더 많은 것을 그리고 좋은 것을 가지고 여기저기 그럴 듯한 곳을 탐색한다고 해서 나 자신과 세상은 절대 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 안에서 교회 밖에서 어떤 이들이 되어야하겠는가? 여호와의 본질을 소유한 자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자녀로서 우리의 모든 것 우리의 삶의 전부를 걸어서 여호와의 그 이름의 위대하심에 전념하여서 세상 속에 드러내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길을 기꺼이 걸어가는 사람이야, 말로 여호와께서 더블로 광대하게 선포하셨던 그분의 이름의 가치를 알고 하나님의 자녀의 명예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이번 한 주간 동안 그리고 우리 평생에 여호와의 이름을 묵상하시고 붙드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의 본질을 향하여 전념하시며 추구하시며 살아가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이 시간에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앞에 추악한 죄인인 저를 기꺼이 구원하시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품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여호와의 놀라운 자비와 그 은혜에 언제나 감사하며 경배하는 참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둘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저를 붙들어주시기 원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의 깊은 사랑과 은혜와 자비와 진실함이 저의 삶의 본질이 되기 원합니다. 여기저기 방황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하시고 저의 남은 평생을 성도의 본질에 전념하는 제가 되도록 인도하여주시옵소서,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함께 기도하기 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문" 전체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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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ble / 출애굽기 34장 1-9절 주일 설교 (준비 과정)


저는 다른 사람과 저를 비교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제가 흔들리지 않는 방향성과 목표가 있는가, 제가 얼마나 충실하게 준비했는가,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가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른 방향인데, 몸은 고달픕니다. :)

이번에 주일 설교로 이 본문을 정한 이유는, 제가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가 주일 설교를 꾸준하게 해야 한다면 목회적인 부분까지 충분히 고려해야 하지만, 한번 하는 경우에는 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본문을 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목회적인 고려를 넣기로 생각했습니다

이 본문은, 난이도로 따지자면 지금까지 제가 한 설교 중에 최고의 난이도를 가진 본문이었습니다. 일단 자주 다뤄지는 본문이 아니고, 아주 쉽게 풀어낼 수도 없는 본문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저는, 이스라엘의 결정적인 실패 이후에 등장하는 여호와의 이름의 더블의 선포가 제 자신과 성도에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더 충분히 연구하고 설교 안에서 풀어내고자 하는 결심으로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역시나, 쉽지는 않았습니다. 설교 자체를 조금이라도 쉽게 가려면 본문 안에서만 내용을 풀어내는 것이 훨씬 쉽습니다. 그런데 네러티브는 전혀 다릅니다. 이 본문은 네러티브와 해석의 깊이라는 두가지를 한꺼번에 다 잡아야 하는 본문이었습니다

첫째로 이 본문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부터 이야기 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야만 이스라엘 백성이 배신한 그 장면을 부각시키면서, 성도님들로부터 정서적으로 공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쉽지가 않았습니다. 출애굽기 34장까지 오는 그 모든 과정을 초반에 설명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압축하고 압축해서 초반 7분 정도를 인트로에 사용했습니다. 설교 본문의 body를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무심한 듯 빠르게 지나가는 이 인트로에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해석의 내용을 위해서 살펴본 자료는, 스터디 바이블 뿐 아니라 제가 가진 출애굽기 주석은 모두 살펴 보았습니다. 합쳐서 대략 서른권 정도 될까요? 너무 버거워서 평소처럼 모든 것을 기록하지도 못했습니다. 줄을 치면서 필요한 것들을 최대한 머리 속에 넣고, 동시에 틀을 짜면서 주석들을 읽었습니다

여러 주석들을 한꺼번에 보면 비교가 저절로 됩니다. 평소에는 정말 탁월하다고 생각했던 John Currid의 출애굽기 주석은 너무나 평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거의 처음으로 제대로 읽어본 Peter Enns의 주석은 탁월했지만, 본문 해석에 있어서 조금은 조심스럽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히려 큰 도움이 되었던 주석은 Exaling Jesus in Exodus Kregel Exegetical Library 출애굽기 주석이었습니다. 물론 주석의 시리즈마다 어느 정도 특징이 있지만, 결국 그 주석을 쓰는 것은 저자이고, 저자가 탁월하면 그 주석이 탁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Spurgeon said, “Why, it is the greatest petition that man ever asked of God” (“View”). Moses wanted to see the radiance and splendor of God. Think about it! He had already seen glory. He saw it at the burning bush, with the 70 elders, on the mountain top, in the tent of meeting, and through all the miracles. Yet Moses longed to see more. Had he not seen enough? No. He had a taste of glory, and it made him long for more.

Tony Merida, Exalting Jesus in Exodus (Nashville, TN: Holman Reference, 2014), 33:18–35:3.

It is no exaggeration to say that Exodus 34:6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verses in the Bible. It is repeated numerous times in Scripture (Pss 86:15; 103:8; 145:8; Joel 2:13; Jonah 4:2). When someone wanted to know what God was like, they could quote this verse. After saying His sacred name “Yahweh,” which God revealed to Moses at the burning bush—denoting His self-sufficiency and self-existence—He explained the meaning of that name more fully by highlighting several attributes of Himself. This could be a sermon in itself, but just consider them briefly for now.

Tony Merida, Exalting Jesus in Exodus (Nashville, TN: Holman Reference, 2014), 33:18–35:3.

רַב־חֶסֶד וֶאֱמֶת (“rich in grace and faithfulness”): On חֶסֶד (“grace”), see below. The word אֱמֶת (“faithfulness”) implies that something is dependable, solid, has integrity, and stands in contrast to something that fails when needed most (the “bruised reed”). In this context, it means that when one needs mercy, one can rely upon YHWH.

וְחַטָּאָה (“forgiving iniquity and transgression and sin”): The verb נשׂא when used with “sin” as its object means to carry away the sin; that is, the word essentially means “forgive.” It is used here with three different terms as its object: “iniquity and transgression and sin.” The point is that YHWH forgives all manner of immorality, disobedience, indiscretion, rebellion, or more generically, sin. There are no degrees or types of sin that are beyond YHWH’s power or willingness to forgive. YHWH forgives sin of every kind and shape.

Duane A. Garrett, A Commentary on Exodus: Commentary, Kregel Exegetical Library (Grand Rapids, MI: Kregel Academic, 2014), 653.

사실 이 본문은 너무 중요해서, 위의 설명에서 보시는 것처럼 구약의 여러 군데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주제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넓게 펼쳐지는 맥락에서 주석가들이 그렇게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주석이라는 틀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초점을 더 맞춰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을 다룬 아티클까지 더 찾아봤어야 했는데 그것이 아쉽습니다

특히 어느 주석에서 존파이퍼 목사님도 이 본문에 대한 아티클을 쓰셨다고 보았는데 언젠가 확인해 보아야겠습니다. 저는 구약 전공이 아니지만, 이 본문으로부터 풀어나간다면 구약학의 학위 논문도 충분히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의 오해는, 마치 주석만 열심히 읽으면 설교가 저절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주석은 주석일 뿐입니다. 그것은 내용을 만드는 일차적인 재료에 불과합니다. 주석의 내용들을 사용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설교에 사용되는 구조와 흐름과 언어적인 표현들 그리고 전달 등은 결국 설교자가 만들고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가 정말 어렵습니다

원래 준비한 원고는 45분 정도였습니다. 토요일 오전까지 준비한 내용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성도님들이 45분의 설교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았고, 저도 세번의 설교를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하루 동안, 33분 정도로 압축하고 압축해서 설교를 했습니다심지어, 단어의 반복이나 조사의 사용까지 하나하나 점검하면서 군더더기를 제거했습니다.

먼저 구조적으로 보면, 이 설교는 대략 이런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큰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마치 원 포인트처럼 논리적인 흐름을 가집니다. 1. 이스라엘의 배신 => 책 인용 (배신이란 것의 비참함에 대한 공감) => 상처 받은 하나님 => 모세의 간구 => 여호와의 이름의 더블의 선포의 의미 =>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냄 => 모세와 그리스도 => 그리스도의 은혜

2. 책 인용 (은혜의 남용에 대한 경고 도입) => 참된 성도에 대한 이해 3. 십계명을 다시 주심 => 성도의 의무 => 아버지의 완전하심에 대한 설명과 깨우침 => 책 인용 (성도의 삶의 전념의 필요성) => 도전 4. 결론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논리적으로 너무 아름답다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그 짧은 시간동안 펼쳐지는 논리 구조는 황홀함 그 자체여서, 정말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금은 성도님들께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저의 설교 안에서도 아름답고 질서정연한 논리 구조를 제시하기 위해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다시 설교의 구조를 돌이켜보면, 그렇게 어려운 내용은 아닙니다. 그러나 굉장히 빠른 전개 속에서 흐름을 따라가야 하는 부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설교자인 제 자신에게 더 부담을 지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설교 중에 버벅이거나 주저하거나 흔들리면, 당연히 성도님들도 설교의 흐름을 놓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설교 원고를 준비하면서, 어느 정도 원고가 완성된 다음부터는 실제로 설교 하는 것처럼 부단히 발음과 어조와 액션 등을 연습했습니다.  

설교를 준비한 사람으로서 설교의 흐름 중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하나님의 영광이 그리스도로 나타나셨다라는 부분, 그리고 모세와 그리스도의 만남을 연결한 부분입니다.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설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감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설교 초중반부터 그리스도를 등장시키고 설명하는데 집중했습니다.

예전에는 그리스도의 중요성과 그분에 대한 묵상과 설명을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그 부분을 완전히 해결했습니다. 정말 충분하게, 교리적인 내용을 감동적으로 설명하시는 것을 들으면서 나도 저 정도까지는 풀어서 설명해야겠다는 가이드를 얻었습니다.

설교 안에서 책을 세번 인용했습니다. 평소 때에는 많으면 두번까지 인용하는데 세 번은 처음입니다. 그래도, 흐름상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인트로에서 인용한 책은 일반 심리학 책인데 이번에 처음 발견했고 내용을 다 읽지는 못했습니다. 번역서는 이미 절판 되어서 아마존 영문판에 공개된 것 정도를 다 읽어 보았습니다. 책 내용이 참 좋아서 나중에라도 꼭 다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사실상 성경에 있어서 죄와 함께 등장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가 배신이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두 권은 평소에 좋아하던 책입니다. 저에게 정말 큰 영향을 준 책들입니다. 저는 설교에 꼭 책을 인용해야 한다는 그런 압박감은 없지만, 설교를 준비하면서 평소에 읽었던 책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적절하게 인용할 수 있었습니다

전달이라는 측면에서는, 철저하게 팀켈러 목사님의 스타일을 최대한 사용해 보았습니다. 저는 원래 말이 빠른 편인데 지금까지는 상당히 자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팀켈러 목사님은 쉴 부분은 충분히 쉬지만, 그러나 어떤 부분에서는 마치 속사포와 같은 연속된 논리들은 주저하지 않고 빠르게 말하더군요. 영어라서 그런지 더 멋집니다. 그래서 저도 그분처럼 특정 부분에서는 속도를 매우 빠르게 진행했습니다. 다만 충분한 완급 조절을 위해서 때론 느리게 때론 빠르게 변칙적으로 언어를 구사했습니다

전달이라는 측면에서 이번에 가장 신경 쓴 것은, “인용 성경 구절을 읽을 때의 톤” 입니다. 가급적 저는 설교 안에서 성경 인용을 적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왜냐하면 성도님들이 너무 많은 정보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약에 인용 구절이 많아진다면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톤을 완전히 바꾸어서 성도님들이 완전히 새롭게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설교에서 처음으로, 굉장히 작은 목소리로 또 낮은 톤으로 성경을 읽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톤이 너무 연기 같거나 혹은 과장 되었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저는 제가 정말 느끼는 그대로, 그리고 성도님들이 더 집중할 수 있도록 그런 차원에서 새롭게 시도해 보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시도한 것은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여러 번 이런 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구절을 그렇게 읽지는 않지만, 종종 그렇게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약간 무심한 듯이, 그러나 정말 낮은 톤으로, 그리고 빠르게 인용 성경 구절을 읽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것이 너무 좋았고 새로웠고 이번에 저의 설교에 처음으로 시도하면서 저도 좋았습니다

3주 정도 전부터 본문을 정하고 천천히 묵상하면서 준비했습니다. 과연 매주 이렇게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못할 것 같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평범한 저의 지나친 도전입니다. 들어간 생각들과 고민들을 다 정리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습니다. 설교에 대한 갈망이 있는 누군가와 한 문장 한 문장 짚어가면서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아마 밤을 샐 듯 합니다. 그래서 아주 핵심적인 저의 고민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설교 원고를 다 마무리하고 방에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기도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곡의 가사처럼, More of you, Less of me 이것이 언제나 저의 기도이며 목표입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말씀을 전한다는 것이 너무 벅차서, 넘치게 하나님께 감사로 올려드렸습니다.

실제 설교 중간에 저도 모르게 세번 정도, 약간 잘난 척을 하고 싶은 혹은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삼십분이 넘는 시간 동안, 준비한 설교를 멈추지 않고 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순간 순간 주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했습니다. 계속 기도하면서 설교를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쉽지 않은 설교였습니다. 그런데 일흔이 넘으신 권사님이 은혜 받으셨다고 활짝 웃으시면서 인사하셨습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기뻤습니다. 어린 제가 감히 어르신께 어떤 부분이 은혜로우셨냐고 물어볼 수는 없었지만, 은혜 받으셨다는 것 자체가 참 좋았습니다. 손을 잡아주시는데 손이 따뜻했습니다

아직 신앙이 어린 젊은 집사님 한 분이 너무 좋았다고, 어렵지 않았다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습니다. 단순히 제가 어느 정도로 설교를 했느냐를 떠나서,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합신을 졸업한지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 설교학 교수님들의 말씀이 여전히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성도는 주일에 설교 한번 들으러 교회 오는 거라고, 그러니까 정말 정성들여서 잘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일 설교가 강단에서 약해지는 것을 염려하시며 눈물로 학생들에게 호소하셨습니다. 그 절절하고 아린 마음이, 여전히 저에게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좋아지기 위해서, 글도 쓰고 고민도 하고 정리도 합니다. 어려운 고비를 지나고 나니, 힘들게 하던 몸살도 좋아진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며칠동안 계속 먹었던 약기운에 어지러웠는데 이제서야 조금은 머리가 개운합니다. 저의 작은 도전들과 발걸음들을 하나님께서 선하게 사용하시기를 언제나처럼 기도합니다.

* "설교문" 전체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_4.html

2022년 7월 19일 화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출애굽기 5장 / 순종이라도, 삶은 순탄하지 않다

 

모세는 정말 어려운 길을 내딛었습니다. 두려움과 염려로 떨고 있었지만, 여호와를 의지하여서 이집트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백성들은 그를 통해서 여호와께서 일하심을 보고 여호와께 머리 숙여 경배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용기와 위로를 얻었을 것입니다.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모세와 아론은 바로에게 바로 찾아갑니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모세가 바로에게 가서 한 이야기가, 하나님께서 처음 그들에게 말하라고 명령하신 내용과 다소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은 "출3:18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 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장로들과 같이 가지도, 혹은 상황에 대해서 설명하지도 혹은 허락을 구하지도 않습니다. 아주 짧은 내용으로 명령하는 것 처럼 선포할 뿐입니다. 당연히 바로는 거기에 대하여서 콧방귀를 뀌면서 허락하지 않습니다. 

어디서부터 문제가 된 것일까요? 심각하게 상황이 틀어지기 시작합니다. 바로는 백성이 노역을 쉬려는 꾀병으로 이해하고 더 그들의 노력을 심하게 만들어버립니다. 백성이 모세의 말을 거짓말이라고 여기도록 만듭니다. 더 몸을 고되게 만들어서, 딴 생각을 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백성의 리더들이 바로에게 찾아가 호소하지만 바로는 자신의 뜻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리더들의 분노를 모세와 아론이 뒤집어 쓰게 됩니다. 바로 앞에 장에서는 모세와 아론을 존중하고 그들의 의견을 들었지만, 그러나 일이 틀어져 자신들에게 피해가 가게 되자 리더들은 이 모든 책임이 모세와 아론에게 있다고 주장합니다. 

어디서부터 문제가 된 것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잘잘못을 어찌 칼로 자르듯이 딱 말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모세는 바로에게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은 속이 뒤집어지는 일이라 피했는지도 모릅니다. 그저 빨리 자신의 역할을 해치워버리고 싶어서 퉁명스럽게 이야기했는지도 모릅니다. 백성은 자신이 피해를 입게 되자 더 이상 모세와 아론을 지지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부족함을 덮어주기에는 너무나 인내가 부족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모세 입장에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든 과정이었지만, 여전히 모세는 실수가 있습니다. 완전한 순종이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요? 모세는 순종했지만, 그러나 당장 모세의 눈 앞에는 큰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이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선하게 인도하실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밖에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그분께서 모든 일을 그분의 뜻대로 온전하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We assume that when we obey God's command, there will be a good conclusion. but, the problem is that our obeying has a lot of errors. we can't figure out every aspect of our life and the effects of our every behavior. 

I think that Moses did his best to obey God's command. but, surprisingly, his mention of Paraho was slightly different. maybe he does not want to have a long conversation with Pharaoh. Maybe Moses's attitude was so rude in the sight of the Paraho. Anyway, Pharaoh made fun of Moses and he ordered Israel to make brick in harsh conditions.  

therefore, the leaders of Israel were angry with Moses and Aron. They don't have the patience to be with Moses to go further. I think that Moses was really embarrassed by this situation. Only God can control this messy situation. He will rearrange and will make right it with his sovereignty. 

2022년 5월 31일 화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출애굽기 4장 / 주저하는 모세를 계속 격려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그분이 누구이신지, 그리고 그분이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를 모두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그러나 모세는 주저합니다. 자신을 믿거나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너무나 이해가 됩니다. 그는 이미 마음이 너무나 연약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며 그를 격려하십니다. 지팡이로, 손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물이 피로 변하는 이적을 허락하십니다.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께서 "가능성"을 열어 두신다는것입니다. 백성이 어떻게 무조건 할 것이다 라고 하시지 않고, 그들의 반응에 맞춰서 행동할 수 있도록 모세에게 가능성을 열어 두십니다. 

그런데 모세는 여전히 주저합니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아주 완고하게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합니다. 자신은 본래 말을 잘 하지 모한다고 말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충분히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의 왕자로 자랐던 모세가 과연 말이 부족한 것인가? 모세가 가고 싶지 않은 마음에 끝까지 변명을 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이쯤되면 하나님께서 화를 내실만도 한데, 하나님은 끝까지 격려하십니다. 모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한계와 어려움을 계속 호소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 자체를 그리고 모세 자체를 창조하신 분이 자기 자신임을 말씀하십니다. 인간의 모든 조건과 어려움 조차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한다면, 그 모든 어려움과 조건을 뛰어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보낼 만한 자를 보내라고 말합니다. 그제서야 하나님께서 화를 내십니다. 그리고 다시 모세를 향해서 그의 형 아론을 붙여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며, 그가 어떤 일을 행할지를 정해 주십니다. 그는 모세의 입이 되어 줄 것입니다. 

모세가 장인 이드로에게, 단순히 가족들이 살아 있는지 보러 간다라고 말한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는 모세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그와 40년을 함께 한 가족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드로에게 처음에는 상세하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모세가 이드로에게 이별을 고하고서는 여전히 주저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격려하십니다. 애굽에서 모세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다 죽었다 라고 말씀하시고, 그 이후에야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떠납니다. 모세는 계속 자신의 능력의 부족을 주장했지만, 어쩌면 그가 이집트로 가고 싶지 않았던 가장 큰 깊은 내면의 이유는 생명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인 듯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시고 가라고 명령하셨지만, 갑자기 그를 죽이려고 하십니다. 십보라는 모세의 아들을 할례를 하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놓아 주십니다. 왜 굳이 이 부분에서 할례가 등장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구약 전체에서 보여주는 것은 그 누구라도 감히 할례가 없다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집트로 돌아가고자 했던 그 모든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두려움과 떨림과 주저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씨름하였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이적들을 보고, 백성들이 믿고 여호와께 머리 숙여 경배합니다. 앞으로 수 많은 어려움이 여전히 앞에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장면을 통해서 모세를 크게 위로하셨을 것입니다.

In this chapter, we see the hesitation of Moses. I understand that he was in the wilderness for 40 years. Surely, this harsh environment has diminished his self-confidence. God understands it and he encourages him with his word, miracles. However, Moses was reluctant to do his mission. 

I assume that he was afraid to lose his life. He fled from Egypt to save his life. So, to enter Egypt, he should endure severe danger to lose his life. But God ease his mind with his word that the people who wanted to kill him were dead.

We see the long struggle of Moses to have a conviction to return to Egypt. But, Moses saw the elders, and all of the Israelites listened to the word of God and worshiped him. Net Bible translated "they bowed down close to the ground." GT study bible emphasizes that this attitude is totally different from Egyptians including Pharaoh. Of course, there will be many hardships to complete Moses' mission. However, I am sure that at this time, Moses was comforted a 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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