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곡은, 어노인팅 찬양팀의 예배인도자 컨퍼런스 2008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십자가를 통하여 죄인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그분의 진정한 가치를 아름다운 멜로디 속에서 탁월하게 드러낸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히브리서 12: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여기서 바라보자 라는 것은, ‘신뢰함으로 시선을 고정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환경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지속적으로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온전하게 하시는 이 :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믿음 안에서 인내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분 앞에 놓여 있는 기쁨에 초점을 맞추셨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의 모범이자 모델이 되십니다. 그분의 관심은 십자가의 고뇌가 아니라, 승리의 면류관이었으며, 고통이 아니라 보상이었습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Heb 12:2.
요한복음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에베소서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시편 29:2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고린도전서 1: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복음의 정수를 잘 드러낸 찬양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본질 상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시지만, 그분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기꺼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 주셨다. 빛이신 주님께서 기꺼이 어둠 속으로 들어오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활짝 열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드러내신다. 우리는 우리의 노력과 자격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사랑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상식과 기대와 상상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이시다. 그분은 참으로 아름다운 분이시며,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고 동시에 우리의 주인이 되시며, 우리에게 끝없는 감동과 감격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이 찬양을 부를 때 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 가운데 깊이 들어가기를 원한다. 또한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오직 그분께 한 없는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리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대한다.
이 곡은
다윗의 장막의 ‘세상의 빛으로 오신 주’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두운 세상 속으로 기꺼이
찾아 오셨고, 오직 그분만이 죄인을 구원하시며 온전케 하시며 채우시는 분이심을 고백하는 너무나 아름다운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요한복음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요한복음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내 은혜가
너에게 족하다’ 라는 말씀은, 거짓 성경 교사들과 고린도 성도들이 가지고 있던 근본적인 복음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반영하기 때문에, 고린도 후서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내용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인생에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자신의 약함이나 고난이나 고통을 피하거나
탈출하게 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의 강조점은, ‘하나님의 능력’은 그러한 시련을 피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어려운 시기 가운데에서도 성도가 사랑을 베풀며,
세상을 치유하며 섬기는 신실한 삶을 살도록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143.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빛 되신 주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음을 담대하게 선언하고 있다. 이것이야 말로 기독교의 핵심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과 본질상 동등하신 분이시지만 죄인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셨고,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죄를 대속하셨다. 그리고 이것을
믿는 사람은 그 누구라도 의롭다 여기심을 받고 구원을 받으며 주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이 단순히 지옥에 가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자녀인 우리를 계속적으로 회복시키시는 분이시고, 충만하게
채우시는 분이시다. 심지어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도 주님께서는 역사하시며 우리를 온전케 하는 분이시다
라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연약할 때에 그리스도를 더욱 의지하게 되고, 그분으로 부터 영적이 능력을 공급 받는 것을 더 깊이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영적인 진리와 기쁨과 은혜와 감격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분을 더 알아가고 묵상하고 붙들고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충만한 삶의 비밀이다. 그러므로 이 찬양을 부를 때 마다, 오늘도 나를 다시 일으키시고
강하게 하시며 충만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새롭게 발견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이 곡은
꿈이 있는 자유 1집에 수록된 곡이다. 꿈이 있는 자유는
정종원, 한웅재로 구성된 CCM 듀엣이고, 깊이 있는 가사와 서정적인 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팀이다. 이
곡은 죄인에게 찾아오신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감동적으로 그려낸 찬양이다. 오직 그분만이 진리이시고
그분이 나를 부르셨고 누구라도 오직 그분을 만나야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음을 고백하고 선포하는 탁월한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빌립보서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베드로전서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그 어떤 찬양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자 되심을 탁월하게 드러낸 곡이다. 영원한 어둠 속에서 방황하며 살아가던 죄인에게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찾아오시고 그를 부르시고 계심을 너무나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죄인을 찾고 계신다. 세상에서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잃어버리고 죄의 노예로 살 수 밖에 없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에 진리 되신 그분을 통해서 삶의 참된 목적을 발견하게 된다. 그분을 나의 구원자로
믿고 받아들일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죄로부터의 자유를 얻게 되며, 하나님을 향하여 그리고 그분을 위하여 살아가는 인간의 참된 행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찬양을 부르면서, 빛 되신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감격을 다시 한번 누리기를 원한다. 또한 빛 되신 주님 안에서 걸어가며 주님을 전하며
선포하며 진정한 자유와 기쁨을 마음껏 누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잠언 6:23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6:23 For these commands are a lamp, this teaching is a light, and the corrections of discipline are the way to life,
요한복음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8:12 When Jesus spoke again to the people, he said, "I am the light of the world. Whoever follows me will never walk in darkness, but will have the light of life."
초막절에는 이스라엘을 광야 가운데 인도하신 하나님의 불기둥을 기념하는 찬란한 빛의 의식이 포함되었습니다. 빛은 보이는 것과 지식을 얻기 위해서 필수적이며, 그러므로 삶에서 필수적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도 매우 지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는 여전히 그들은 어둠 속을 헤매는 것입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525.
야고보서 1: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1:21 Therefore, get rid of all moral filth and the evil that is so prevalent and humbly accept the word planted in you, which can save you. 1: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1:22 Do not merely listen to the word, and so deceive yourselves. Do what it says. 1: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개역개정) 1:25 But the man who looks intently into the perfect law that gives freedom, and continues to do this, not forgetting what he has heard, but doing it--he will be blessed in what he does. (NIV)
믿는 이의 마음에 심어진 하나님의 말씀은 온유함으로 즉,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영혼으로 저항이나 논쟁이나 의문 없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일상 생활에 적용해야 합니다.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라는 것은 사랑의 법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율법을 요약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이 찬양은, 말씀의 능력과 목적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찬양이다. 모든 이들은 어두움 가운데 살아간다. 그저 세상의 방식대로 혹은 내가 살아가고 싶은대로 살아간다. 그러나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똑똑한 사람도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소경에 불과한 것이다. 오직 진리인 말씀만이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려주시며, 나에게 어떤 소망이 있는지를 알려주시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그리고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때에, 우리에게 드디어 참된 소망이 주어지는 것이다.
말씀을 따른다 라는 것은 때론 매우 추상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시며, 그분을 따를 때에 생명의 빛을 얻는다고 하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가 빛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야 말로 빛 가운데 그리고 말씀 가운데 걸어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율법의 요약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내 삶에 말씀이 들어온다는 것 그리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겠다는 것은, 사랑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의미이다. 나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가던 삶에서 그 방향을 돌이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아무런 대가 없는 은혜를 베푸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갈 때에, 어둡고 소망 없는 세상 속으로 위로와 사랑의 빛이 비춰질 것이며 주님의 영광이 찬란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찬양을 부르면서 말씀에 대한 간절함과 사랑의 실천으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란다.
팀켈러 목사님의 한편의 설교는, 한권의 책과 같습니다. 성경의 그리고 삶의 가장 중요한 내용들을 진하게 달여서 우려낸 액기스와 같다고 항상 느낍니다. 겨우 35분의 설교인데, 세상을 다 담아 놓은 듯한 광대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들으면 마음이 벅차기도 하고, 또 마음이 한 없이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한편의 설교를 최소한 다섯번 정도 듣고 스크립트를 보는데, 제 작은 마음에 담기에는 너무 큰 내용들입니다. 그리고 깨닫는 바가 너무 많아서, 글로 다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표를 줄였습니다. 어짜피 100편의 설교를 다 듣기 전에는 기록할 것은 기록하고 넘어갈 것은 넘어가자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정리하지 못해도, 마음에 가장 크게 남은 단 한가지라도 기록해 놓는다면, 그것이 저의 삶과 목회에 가장 중요한 기둥과 같은 내용이 될 것입니다.
저 역시 설교자이기 때문에, 설교자의 관점에서 아무래도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듣게 되는 듯 합니다. 예를 들어서 이번 설교처럼 "자유"라는 주제라면, 도대체 이 자유라는 것을 어떻게 설교의 맥락으로 풀어낼 것인가 궁금해하며 듣게 됩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것은 새로운 깨달음과 감격으로 인도합니다.
이 설교에서 핵심은, 서구 사회에서 주장하는, 어떠한 절제도 없는 완전한 자유라는 것은 허구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주장하는 자유는, 어떤 것으로 부터 완전하 자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숭고한 가치를 위하여 자유한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팀 켈러 목사님의 논리 중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목표 혹은 자유라는 것은, 서로 상충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단 것을 먹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을 먹을 자유가 있지만, 오래 살고자 하는 자신의 자유와는 상충되는 것입니다.
이것처럼 자유는 서로 상충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단순히 자유롭고자 한다라는 단순한 명제만으로 삶이 해결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유를 논할 때에는, 내가 어떤 것을 절제하여야만 더 큰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추구하는 자유는, "창조주가 만든 설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마치 물고기가 물 안에 있을 때에 완전한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이라는 존재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그리고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설계 안에서 자신의 자유를 추구할 때에,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번 설교가 참 좋았던 것은, 제가 요즘에 경험하는 많은 것들을 성경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사람들은, 절제하고 훈련하는 삶을 정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내가 살고 싶은대로 사는 것을 진정한 자유로운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요즘에 절실하게 마음에 품은 단어들은, "절제, 훈련, 집중, 전진" 이런 단어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제 자신을 더 얽어매는 더 혹독한 생활로 저를 밀어 넣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제 마음이 한 없이 자유롭습니다. 더욱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깊어지고, 제 삶의 진실한 의미를 누리고 있다고 느낍니다.
이것이야 말로, 팀켈러 목사님이 설교하신 것처럼, 부정적인 자유가 아니라, 긍정적인 자유이며, 나 자신의 많은 것을 가장 숭고한 자유함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며, 하나님 안에서 저의 모든 잠재력을 발휘하는 기쁨입니다.
아홉 번째 강의는 Sermon Preparation 입니다. 처음에 이 제목을 들었을 때에는, 드디어 뭔가 존파이퍼 목사님의 설교 비법이 등장하는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분만이 가지고 있는 어떤 특별한 설교 준비 방법이 있을까? 그렇게 질문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시더군요. 파이퍼 목사님은 여기서 말하는 설교 준비는, 설교 시작 바로 전에 하는 그런 준비가 아닙니다. 파이퍼 목사님은, 설교에 영향을 주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말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굉장히 진지한 얼굴로, 본인의 한편의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서 40년이 필요했다고 말씀하시네요.
본인이 청소년 시절 아팠던 바로 그 경험이 설교에 들어가고,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었던 바로 그 경험이 설교에 들어갔다고 말합니다. 결혼 생활의 어려움, 그리고 부모로서의 고민들이 또한 설교에 들어갔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곧,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설교자를 준비시키신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야고보서 4장 17절 부터 인용합니다.
야고보서 4: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4:13 Now listen, you who say, "Today or
tomorrow we will go to this or that city, spend a year there, carry on business
and make money."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4:14 Why, you do not even know what will
happen tomorrow. What is your life? You are a mist that appears for a little
while and then vanishes. 4: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4:15 Instead, you ought to say,
"If it is the Lord's will, we will live and do this or that."
말씀을 인용한 이후에, 사람의 존재가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십니다. 우리는 미래를 알지 못합니다. 잠깐 후에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라고 고백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 말씀을 바탕으로, 파이퍼 목사님은 사람의 삶이라는 것은 "연기와 같은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삶의 실재를 깨닫는 것"이야 말로, "설교자가 말하는 그 내용"을 빚어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인간의 삶에 대한 실재의 경험이, 바로 설교를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15절에서 "말하기를" 이라는 부분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면서 파이퍼 목사님의 야고보서 4장 13-15절에서 뽑아낸 원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삶, 그리고 모든 실재에 대한 경험이 설교자가 말하는 설교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의 고통의 경우에, 파이퍼 목사님은 그것을 꺼려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그러면서 마틴 루터가 설교를 준비하는데 있어서 세명의 위대한 스승이 있다고 말한 것을 인용합니다. 그것은 기도, 묵상, 그리고 고난입니다. 모든 설교에 있어서 위대한 신학교가 바로 고난입니다. 그리고 루터가 인용한 시편 119편 71절을 인용합니다.
시편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119:71 It was good for me to be afflicted so that I might
learn your decrees.
고난을 당하였기 때문에, 고난 당한 설교자가 전하는 바로 그 내용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 준비는 고통을 찾아 나서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에서 벗어나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경시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주님께서 그 고난이 당신에게 얼만큼 필요한지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1장 6절을 인용합니다.
고린도후서 1:6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1:6
If we are distressed, it is for your comfort and salvation; if we are
comforted, it is for your comfort, which produces in you patient endurance of
the same sufferings we suffer.
이것은, 하나님께서 때로는 그들의 목자에게 고난을 주심으로, 목자가 자신의 양들을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를 알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설교자의 고난이, 성도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우리의 설교 준비에 있어서 매우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이런 맥락에서 존 파이퍼 목사님은 또 한 곳을 인용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8-9절입니다.
고린도후서 1: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1:8 We do not want you to be uninformed,
brothers, about the hardships we suffered in the province of Asia. We were
under great pressure, far beyond our ability to endure, so that we despaired
even of life. 1: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1:9 Indeed,
in our hearts we felt the sentence of death. But this happened that we might
not rely on ourselves but on God, who raises the dead.
여기에서 파이퍼 목사님은, 설교자가 부활을 설교 할 때에는 고난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진심어린 마음이 있어야 하며, 그래야만 부활에 대해서 설교할 때 꾸며서 억지로 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설교자를 죽음의 문턱으로 이끌고 가셔서, 그 이후에 설교자는 부활에 대해서 제대로 설교 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실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결국 어떻게 설교를 준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살아내고, 신뢰하고, 고난을 끌어 안으라"라고 파이퍼 목사님은 대답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조언에 조금 더 설명을 덧붙입니다.
설교 준비라는 것은 설교자가 읽는 모든 것 그리고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책과 영화 등등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삶의 실재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보아야만 합니다.
당신은 설교자이기 때문에, 그것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휴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소설 속의 가공된 삶을 혹은 길에서 발견하는 또 다른 사람들의 삶을 설교자의 마음 속에 가져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설교자가 삶의 충만한 그 실재 그리고 신적인 실재를 이해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어느 공간으로 들어가든지 간에 사람들에 대하여 무심해서는 안되며, 사람들의 행동, 동기, 그들이 보는 것,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가지는지 등등에 대해서 반드시 보고 공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이 아니라 실제 사람을 만나고 알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설교자가 잘 알아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사람은, "설교자 자신"입니다. 파이퍼 목사님은 자신이 느끼는 많은 감정들에 대하여서 예를 들어, 동기, 기쁨, 환호, 좌절 등의 역동성에 대해서 자기 자신을 살피고 또 공부함으로써 그 누구를 살피는 것보다 인간에 대하여 더 잘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설교자의 자기 인식이야 말로, 절대적으로 설교 준비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만약 자기 자신을 살피지 못하고, 자기 자신에게 다다르지 못한다면, 그런 설교자는 설교를 해서는 안됩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설교자는 자신의 실상을 모르는 사람들을 향해서 설교하는 것이기 땜눙비니다. 설교자 자신의 교만, 두려움 등등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자신을 알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고 조언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단순히 세상과 사람과 자기 자신을 보아야 할 뿐 아니라, 성경을 보아야만 한다고 강조합니다. 설교자는 성경의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성경으로 차고 넘치게 되고 거기에 완전히 빠져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으로 완전히 마음을 적셔야 합니다. 물론 다른 책을 읽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성경이 설교자의 삶을 지배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삶의 모든 것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Kilby Clyde가 C.S. 루이스의 말을 인용해서 책의 제목으로 삼은 것을 알려줍니다. 그것은 "깨어있는 지성 (A Mind Awake)"입니다. 루이스는 모든 것에 있어서 깨어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의 매우 견고하고 또 구체적인 실재들을 엮어서 사람들이 듣기에 너무나 매력적으로 만들어냈다고 설명합니다.
저도 루이스를 너무 좋아합니다. 단 한줄만 읽어도 마음이 밝아지는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아마 주님 오실 때 까지 가장 영향력 있는 크리스천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루이스의 글이 그렇게 좋았던 이유를, 너무나 명확하게 파이퍼 목사님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루이스는 한마디로 "삶의 모든 실재에 있어서 깨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말씀하는 것은, 설교 예화에 관련된 책을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본인의 세미너리 수업의 일화를 이야기합니다. 모두가 조용한 그 순간에 엠뷸런스 사운드를 듣지 못했던 것을 설명합니다. 누군가가 엠뷸런스 속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을 텐데 그 사람을 태우고 가는 엠뷸런스 소리도 듣지 못했다면 어떻게 설교를 할 수 있겠는가 라고 말했던 교수님의 탁월한 조언을 알려줍니다.
단순히 예화집만을 가지고서는 사람들의 삶에 다다를 수가 없습니다. 설교자는 이웃의 고통에 대해서 전혀 무관심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자신의 삶의 모든 부분에서 완전히 각성된 상태에서 살아야만 합니다. 삶의 모든 즐거움, 사람들, 자기 자신, 고통, 등등에 있어서 완전히 깨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삶의 모든 것이 설교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며 강의를 마칩니다.
저는 파이퍼 목사님의 진지한 얼굴을 너무 좋아합니다. 강의를 위한 강의가 아니라, 이분이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 삶의 실재를 꾸밈 없이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강의이며 동시에 진실한 호소라고 생각합니다.
설교는 참으로 신비한 것이라고 느낍니다. 원래 언어란 것이 신비로운 것입니다. 단어와 단어가 모여서 결국 문장을 만들고 의미를 빚어냅니다. 마치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그런 것처럼 우리의 글 속에는 의미와 힘과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설교는 철저하게 성경적이어야 하지만, 또한 동시에 철저하게 인간적이라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결국 설교의 대상은 성도님들이며 살아있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삶의 실재를 경험하고 있는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설교도 철저하게 인간적이어야 합니다.
목회자로서 저에게 정말 쉽지 않은 것은, 공감 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공감이 뛰어난 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성도님이 아프고 힘들고 고난 당할 때 함께 울어주시던 어머니의 진실한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회자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읍니다. 여전히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의 마음에는 공감이 부족합니다.
제 생각에는 고난으로 공감이 생기는 듯 합니다. 석사 과정 중에 허리가 아파서 일주일 동안 누워지낸 적이 있습니다. 그 다음부터 허리가 아프다는 분만 만나면 너무나 공감이 됩니다. 그런 면에서 주님이 설교자에게 주시는 고난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설교의 준비라는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강의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설교 준비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사람에 대한 이해 혹은 삶의 실재에 대한 이해"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심지어 이 강의의 흐름 안에서, 단 한권의 책 성경의 사람이 되는 것 보다 더 먼저 등장한 것이, 사람에 대한 이해입니다.
사람에 대한 연구가 성경 연구보다 더 앞에 오는 이 강의의 흐름을 놓고, 어느 누가 파이퍼 목사님이 성경을 경시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파이퍼 목사님은 설교를 준비하는데 있어서 사람을 알아가고 사람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그만큼 강조하고 싶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에게는 설교 준비만큼, 때로는 더 중요한 것이 사람과의 만남, 심방입니다. 그리고 독서입니다. 책상 앞에만 앉아서 책만 펴 놓고 있을 때에는 사람을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람에 대한 통찰이 풍부한 책들을 읽을 수 있겠지만, 고난 당하는 누군가를 만나 대화하며 위로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야 말로 사람을 알아가는 가장 중요한 방법입니다. 목회자의 의무이며 특권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이번 강의를 통해 제가 바른 방향으로 목회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요즘 제가 관심있게 보는 책들이 모두 "사람에 대한 책"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북클럽을 학위 논문 주제로 다룰만큼 책을 좋아합니다. 평소에 여러 종류의 책들을 동시 다발적으로 읽어나갑니다.
하지만 저는 책을 단순히 지식의 확장을 위해서 사용하기 보다는, 사람과 삶의 실재를 이해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번 강의를 통해서 저의 책을 보는 성향과 방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최근에 감동 깊게 읽고 실제로 삶과 설교에 많은 통찰력을 제공해준 책들은 대부분 인간의 삶 자체를 다룬 책들입니다. 삶의 목적, 삶의 의미, 삶의 현실을 다룬 책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책들을 부지런하게 읽는 것은,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반복적으로 힘을 써서 심방을 하고 책을 읽고 성경을 묵상하며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 스스로 평가할 때에는 저의 설교에 진실성이 조금은 올라갔구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단순히 성경이 이렇게 이렇게 이야기한다는 논리를 펼치는 것에서 넘어서서, 진실로 우리의 삶의 실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고민이 아무래도 설교에 묻어 나오는 듯 합니다.
특별히 최근에 했던 새벽 설교에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에 대하여 깊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목회자로서 성도로서 사람들과 대화하며 관찰했던 모든 것이, 삶의 목표와 동기에 대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그 열망이야 말로, 사실상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이해를 가지고 설교를 준비하였습니다.
파이퍼 목사님의 설교 강의를 저의 삶의 현 시점에서 공부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진실한 눈을 어디에서 볼 수 있겠습니까? 어디에서 이런 강의를 듣겠습니까? 어디에서 이런 진실한 조언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한번 한번의 강의를 영어로 다 듣고 공부하고 확인하고 스스로를 그것에 따라 반추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압니다.
그러나 오늘 강의를 통해서 강조하신 것 처럼, 우리는 삶의 실재를 살아가야만 합니다. 물러서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고 그 험난한 길을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야만 합니다. 삶의 모든 실재에 있어서 완전히 깨어 있어야 합니다. 제 스스로를 향한 다짐이며 격려입니다. 바라기는 강의를 통해 배우고 익히고 계속적으로 훈련하면서, 성도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그들의 삶의 실재를 보듬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의 설교를 통해서, 누군가가 좀 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