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1일 목요일
기도하는 것의 기쁨, 온 가족이 함께 기도를 배우다 - Piercing Heaven: Prayers of the Puritans
2025년 10월 7일 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236) - 내 안에 가장 귀한 것
1. 가사 살펴보기
내 안에 가장 귀한 것 예수를 앎이라
금 은보다 더 귀한 것 예수를 앎이라
세상 지식보다 귀한 것 예수를 앎이라
내 안에 가장 귀한 것 예수를 앎이라
예수의 이름 존귀한 그 이름
예수의 이름 능력의 그 이름
2. 곡 소개
이 곡은, 아이자야씩스티원 팀의 예슈아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분이심을 인정하고, 또한
그분의 이름 안에 능력이 있음을 고백하는 너무나 아름다운 찬양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빌립보서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립보서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최후의 심판 때에는 심판받는 사람들조차도 예수님의 권위와 통치권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지금 당장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고 그분께 삶을 헌신하든지, 아니면 그분이 다시 오실 때 강제로 그분을 주님으로 시인하게 될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라도 다시 오실 수 있습니다. 당신은 그분을 만날 준비가 되셨습니까?
Tyndale, Chronological Life Application Study Bible, ed. Susan Perlman, Second
Edition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2023), 1758.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분을 영접한다는 것은 예수님에 관한 몇 가지 사실에 지적으로 동의하는 것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관계 속에서 그분을 환영하고 그분께 복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개인적인
신뢰를 내포합니다. 그의 이름이라는 것은 그분에 관하여 참된 모든
것, 따라서 그분의 인격 전체를 가리킵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019.
요한복음 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예수님의 떠나심으로 인해 슬픔에 빠진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그분의 즉각적인 임재 없이도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자원을 제공해 주시겠다는
약속으로 위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도 끝에 형식적으로 붙이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다음을 의미합니다: 믿는 자의 기도는 자기중심적인 목적이 아닌, 예수님의
뜻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이어야 하며, 기도는 자신의 공로나 자격이 아닌, 예수님의 공로에 근거해야 하며, 오직 예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John F.
MacArthur Jr., The MacArthur Study Bible: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hville, TN: Thomas Nelson
Publishers, 2006), Jn 14:13.
사도행전 3: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치유할 권위와 능력을 주신 분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사도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하실 수 있는 일을 강조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마치 마법처럼 사용되어서는 안 되며, 믿음 안에서 사용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우리 기도의 능력을 부여하시는 것은 단순히 그 이름의 소리가 아니라, 바로 메시아 그분 자신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Tyndale, Chronological Life Application Study Bible, ed. Susan Perlman, Second
Edition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2023), 1549.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귀함을 잘 드러낸 찬양이다. 예수님은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시고, 그분은 너무나 가치 있는 분이기 때문에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야 말로 성도가 할 수 있는 가장 의미있는 일인
것이다.
성경은 예수님의 이름이 존귀하며 그분의 이름에 능력이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는데,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야 말로 그 어떤 죄인이라고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분 자신을 기꺼이 환영하는 것이며
그분을 개인적으로 신뢰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 전부터 아버지 하나님과 본질상 동등한
분이셨지만, 그분은 기꺼이 자신을 낮추어 이 땅에 오셨고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그분의 능력과 그분의 자격을 증명하셨으며,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래 누리셔야 하는 자리로 다시 그분을 높여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이름을 믿고 그분의 존귀함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그분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이야 말로 마땅한
태도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오직 예수님의 공로에 근거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올려 드리는 우리의 모든 기도가, 예수님의
뜻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찬양을 부를 때 마다, 오직 그리스도의 이름에 의지하여 우리가 구원 받았음을 기억하고 감사하기를 원한다. 또한 그의 이름을 존귀히 여기는 자로서 오직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기도하고, 더 나아가 오직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기를 결단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5년 8월 2일 토요일
더 깊은 기도를 향해서
지금 돌이켜 보면, 어머니의 귀한 사랑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늘 저에게 말씀을 읽고 기도하라고 하셨지만, 어린 저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가 않았습니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성경을 읽기를 시작했으니, 한편으로는 참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참 아쉽기도 합니다. 그나마 그때 정신을 차린 것이 감사하고, 또 한편으로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도 있습니다.
개인 기도 노트를 만든지 몇년이 되었습니다. 거창하지 않고 아주 간단한 노트입니다. 셀폰 메모장에 성도님들의 기도 제목을 적어 놓고 개인 기도할 때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많은 기도 부탁 속에서 잊는 것이 죄송해서, 또 좀 더 진지하게 기도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입니다.
이틀정도 마음이 쉽지 않았는데, 더 기도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기도하다가, 갑자기 말씀을 적어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간절해져서 그런 듯 합니다. 어머니께서는 굴곡진 인생을 걸으시면서, 늘 성경을 펴고 읽으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우시면서 기도하는 모습도 참 많이 보았고, 그것이 저의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녹아 있습니다.
어머니의 진실함과 절박함에 아직 제가 따라갈 수 없지만,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듯 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도 그리고 목회도, 인간의 능력이 역할을 하는 것은 아주 아주 적은 부분인 듯 합니다. 예전에는 너무 막막해서 한숨이 나오던 순간이 거의 대부분이었다면, 이제는 조금은 믿음이 더 생겨서, 기도 제목으로 적고 기도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기도 노트는 점점 길어집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성경 구절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기 전에 읽고 이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라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의 삶 역시 돌이켜보면 녹녹치 않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저를 더 연단시키시는 것이 뜻인 듯 합니다. 어쩌면 이제 시작일 수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두려운 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은 그분의 뜻대로 이루시며 영광 받으시는 분이기에 저는 순종할 따름입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벧전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요일 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수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잠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 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히 12: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이 말씀들을 단숨에 읽고 나니, 그제서야 마음에 평안이 찾아옵니다. 어디로 나가야 할지를 조금은 더 선명하게 발견하게 됩니다. 말씀이 문자로 머무르지 않고, 저의 생각과 마음 그리고 전 존재에 스며들기 원합니다. 그럴 때에 저의 인생에 두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걸음 한걸음이 진정한 천국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소망하며 끊임없이 전진하기 원합니다.
2025년 2월 11일 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204) - 우리의 고난을 다 아셔서
1. 가사 살펴보기
우리의 고난을 다
아셔서
한 걸음도 귀하게
보신 아버지
우리 맘 위로하시고
길을 비추시는
평강의 주 의지합니다
우리의 필요를 다
아셔서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아버지
주의 꿈꾸게 하시고
새 힘 더하시는
능력의 주 신뢰합니다
우리 주 하나님
참 소망되신 주
진리 되시는 성령님
계시네
나의 왕 하나님
완전하신 계획
변함없으신 주 바라봅니다
2. 곡 소개
이 곡은, 피아워십팀의 “나의 예수님”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주님께서 우리의 고난과 필요를
다 아시고, 주님의 계획 가운데 그분의 능력 주심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성도의 아름다운 고백을 담고
있는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시 56:8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56:9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들이 물러가리니 이것으로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내가 아나이다
눈물은 아마도 기도를 의미하거나, 더 구체적으로는 울음을 동반하는 탄식을 가리킬 것입니다. 병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기도를 저장하셨다가 나중에 응답하신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성도들의 기도를 향으로 표현한 요한계시록의 이미지와 유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위하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놀라운 평안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Kevin R. Warstler, “Psalms”,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와/과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867.
시 37:23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37:24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마 6: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끈질긴 기도를 장려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와의 개인적인 관계가 없는 자들의 피상적이고 반복적인 기도를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른 종교인들처럼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은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한 분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것을 아시며, 기도는 “아버지, 당신이 가장 잘 아십니다”라고
고백하는 신뢰를 키워주는 것입니다.
Bruce Barton, Philip Comfort기타, Life Application
New Testament Commentary (Wheaton, IL: Tyndale, 2001), 31.
롬 15: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머리로 믿는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경험적인 현실이며, 하나님의 약속을 실현하는 믿음을 통해 성령에 의해서 만들어지며, 기쁨과 평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바울의 소망이 암시하는 것처럼 그것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와/과Gerald M.
Bilkes, 편집자,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639.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하나님에 대한 깊은 소망을
담고 있는 곡이다.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나의 마음과 아픔을 온전히 알 수 없다 하더라도,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의 고난과 내 마음을 다 아신다는 것이다. 그분은
나의 눈물을 기억하시며 반드시 그 기도에 응답하실 것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계획하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에, 성도는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며 새로운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은 성령님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소망이 넘치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들이 얻는 가장 큰 유익은 그 마음 안에서 솟아나오는 강렬한 소망이며, 세상이 줄 수 없는 가장 순수한 기쁨과 평강을 하나님께로 부터 얻게 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어려운 시대에 수 많은
고난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러나 우리가 삶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며 우리를
신실하게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찬양을 부를 때 마다, 새롭게
용기를 얻고 주님을 향해 더 간절히 기도함으로 믿음의 길을 전진해 나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4년 9월 15일 일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93) - 신실하게 진실하게
1. 가사 살펴보기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하나님 나의 마음
만져주소서
하나님 나의 영혼
새롭게 하소서
하나님 나의 기도
들어주소서
하나님 주의 길로
인도하소서
2. 곡 소개
이 곡은, 하스데반 선교사님의 곡으로 올네이션스 경배와 찬양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주님 앞에서 진실한 삶을 살기를 간구하면서 그러한 삶을 위한 성도의 마음의 변화와 기도, 그리고 주님을 향한 순종을 결단하는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시편 51:6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51:6 Surely you desire truth in the inner parts; you teach me
wisdom in the inmost place.
시편 15:1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15:1 A psalm of David. LORD, who may dwell in your sanctuary?
Who may live on your holy hill? 15: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15:2 He whose
walk is blameless and who does what is righteous, who speaks the truth from his
heart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명령에 대한 순종을 내면에서부터 온전함을
가지고 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지혜의 근원이시지만, 그러나 그 지혜는 사람의 마음과 소통이 일어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명령이 성도의
마음에 거한다는 말씀과 유사한 것입니다.
Kevin R. Warstler, “Psalms,”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863.
시편 24:3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24:3 Who may ascend the hill of the LORD? Who may stand in his
holy place? 24: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24:4 He who has clean hands
and a pure heart, who does not lift up his soul to an idol or swear by what is
false.
손이 깨끗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해치거나 그들의
피를 흘리게 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강인한 성품, 투명함 그리고 이타심으로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드립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Study Bible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08), Ps 24:4.
미가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6:8 He has
showed you, O man, what is good. And what does the LORD require of you? To act
justly and to love mercy and to walk humbly with your God.
우리는 인자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진실하고 적극적으로 동정심과
친절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는 자비를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왜 중요할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자비로운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진심으로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는 한 그들의 행동은 진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J. Wesley Adams and Donald C. Stamps, Fire Bible
(Springfield, MO: Life Publishers International, 2011), Mic 6:8.
에베소서 4: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4:25 Therefore each of you must put off falsehood and speak
truthfully to his neighbor, for we are all members of one body.
속이는 것, 어리석은
약속을 하고 신뢰를 저버리는 것, 그리고 거짓 변명을 하는 것은 모두 거짓말의 한 형태이며, 그리스도인은 이에 관여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일은 진실에 기초하고 있으며, 교회나 성도는 그들이
진실하지 않다면 주님께서 사용하실 적합한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John F. MacArthur Jr., The MacArthur Study
Bible: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hville, TN: Thomas
Nelson Publishers, 2006), Eph 4:25.
요한삼서 1: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1:4 I have no greater joy than to hear that my children are
walking in the truth.
헬라어 원문에서 ‘나의’ 라는 단어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요한은 믿음 안에서 이루어진 그의 영적 자녀들의 올바른 행실로 인해 그의 마음이 기뻤습니다.
진리 안에서 행하는 자들은 온전함을 가지는 사람들입니다. 성도의 고백과 생활 사이에 이분법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4. 찬양에 대한
묵상
우리는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비난 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여전히 우리의 예배는 지속되고
있고, 기도와 찬양의 기회들은 넘쳐나고 있고, 심지어 온라인으로까지
신앙의 교육들이 주어지는데 여전히 우리는 제자리걸음을 걷는 것처럼 보인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기독교 신앙을 추상적인 어떤 것으로 바꾸어 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기도하고 찬양하고 예배하는 그 행위 자체가 마치 신앙의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고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찬양이 고백하는 것처럼,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진실함이다. 우리의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거짓을 버리고 진실해 지는
것, 우리의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깨끗하고 정직해지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 안에 깊이 품고 살아가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의 언어와 태도가
아름다워지는 것, 이 모든 것들을 가장 우선 순위에 놓고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이야 말로, 새롭게 우리의
방향을 조정할 때이다. 표면적으로 그럴듯한 신앙이 아니라, 내면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가장 진실한 신앙으로 우리의 방향을 정하고, 바로 그곳을 향하여 담대하게 포기하지 않고 전진해야
할 때이다. 그러므로 이 찬양을 부를 때마다, 진실한 신앙에
대한 우리의 고백과 갈망이 넘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이 찬양을 부르는 나 자신부터 가장 진실한 사람으로
믿음으로 살아가시는 바로 그 한사람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4년 7월 14일 일요일
내 영혼에, 상쾌한 빛이 들어오다 - 순전한 기독교의 짧은 부분들에 대한 작은 생각들
저는 어렸을 때 부터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도대체 훌륭한 사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물론 훌륭한 사람을 보면서 그에게 찬사를 보내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훌륭한 사람이 만들어지는 그 방법을 알 수 있다면, 저도 꼭 그렇게 되고 싶었습니다
신학을 공부하고 철이 들면서 그리고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결국 훌륭함은 모방에서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즉, 탁월함을 모방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온전히 소화하는 것이, 훌륭함에 대한 첩경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팀캘러 목사님도 좋아합니다. 팀캘러 목사님은 '21세기의 C. S. 루이스'라고 불리웠습니다. 루이스를 읽고 팀캘러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제가 깜짝 놀란 것은, 그분의 설교 곳곳에 결정적인 부분에서 루이스의 논리와 그의 생각과 글들이 묻어나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팀캘러 목사님의 훌륭함은, 루이스로 부터 만들어진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아마도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 저에게 왜 루이스를 좋아하느냐고 물어보신다면, '단 두문장만 읽어도 저의 영혼에 상쾌한 빛이 비추이기 때문이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책이 많이 있습니다. 저 역시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아쉽게도 그 중에 대부분은 지루했습니다. 무엇인가 힘주어 이야기하는 것 같았지만, 정작 마치 미로를 헤매이는 것처럼 저를 제대로 인도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저에게 루이스는, 아주 짧은 몇 구절만 읽어도 저의 마음을 새롭게 만드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의 책을 읽으면, 심지어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루이스는 다정한 사람입니다. 그의 글과 그의 신앙은 마치 저에게 상쾌한 가을 바람과 같아서, 저의 영혼을 전혀 다른 그 어떤 곳으로 이끌어 갑니다. 그와 함께 거닐다 보니, 하나님의 아름다우심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루이스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고전학과 영문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중세와 르네상스 문학 교수로 섬겼습니다. 그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15세 때에 무신론자가 됩니다. 그러나 신앙 서적과 친구의 영향으로 다시 서서히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31세가 되어, 지적으로 정직한 자세를 가진다면 하나님을 믿을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얻고 진정으로 회심하게 됩니다.
순전한 기독교는, 제2차 세계대전 시절 평신도와 무신론자들을 위한 라디오 방송에서 그가 발표했던 것을 책으로 엮어낸 것입니다. 루이스 평신도로서 교파를 초월해서 기독교인들이 공통적으로 믿고 있는 것을 다루고, 그러한 믿음의 내용들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충실하게 설명하였습니다.
저는 이십대 초반에 순전한 기독교를 처음 읽었습니다. 물론 그때도 참 좋았지만 역시나 루이스의 글을 충분히 이해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루이스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내면 안에 새로운 깊이를 만들어 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담임 목사님의 안식년 동안 잠시 주일 강단을 섬기면서, 저의 부족한 부분을 절감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앞으로 저의 삶을 다져나갈 방법을 고민하던 중에, 루이스를 아주 천천히 읽기로 결심했습니다. 아쉽게도 이 시대는 속도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저는 반대로 접근하고 싶었습니다. 아주 천천히 다시 새롭게, 기독교 신앙의 탁월한 내용을 저의 영혼 안에 새겨 넣고 싶었습니다.
순전한 기독교는 전체적으로 네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째로는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옳고 그름이라는 선과 악이라는 개념을 반드시 전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그렇게 발견한 절대 선 앞에서 자신에 대해서 절망하게 될 때에야 결국 하나님을 발견하고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그렇게 하나님을 믿게 된 이들이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하는가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삼위 일체 하나님의 개념을 바탕으로 참된 성도됨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면서, 새로운 생명을 얻은 새 사람으로 적극적으로 살아갈 것을 권면합니다.
저의 짧은 글 쓰기로는 이 책의 깊이와 감동을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다만 가장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는 것이야 말로 신앙 생활의 원동력을 가져다 준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모태신앙으로 자라서 수도 없이 복음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복음은 어떤 의미에서 매우 단순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단순한 진리를 아는 것과, 이것의 깊이와 충격을 온전히 이해하고 내 삶에 근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런면에서, 루이스 그리고 순전한 기독교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루이스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사실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가치를 온전히 드러내며 동시에 너무나 신선하고 감동적으로 전해주기 때문에 그가 탁월한 신앙인으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루이스가 순전한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자연법에 대한 것은, 기독교를 이해하고 변증하는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겉으로는 절대적인 진리 혹은 법칙을 부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사람들이 행동해야 한다는 본능을 내면에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증명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명확하게 그것을 어기고 있임을 지적하며 인류 전체를 몰아갑니다.
물론 위의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평범하게는 이렇게 접근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며, 죄인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정도로 논리를 풀어가도 괜찮을 것입니다. 그러나 루이스는, 인간에 대한 철저한 관찰에 기반하여 우주적인 관점으로 인간의 합리성을 존중하면서도,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중요한 이유들에 대해서 설득적으로 논증하고 있고, 바로 이런 부분이 루이스의 탁월함입니다.
최근에 순전한 기독교 천천히 읽기를 반년 만에 끝냈습니다. 다시 책을 열어보니, 책의 거의 대부분이 줄과 메모들로 가득합니다. 이 모든 것을 한편의 글로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만 제가 설교에 인용했던 몇가지 구절 정도, 그리고 저에게 영감을 주었던 몇 부분들을 인용하고 저의 짧은 생각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루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독교는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용서를 약속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회개할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 자신에게 용서가 필요하다고 생각지 않는 사람에게는 기독교가 아무 의미도 가질 수 없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야 말로, 기독교 신앙의 근본을 잘 짚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를 포함한 우리는, 나의 죄성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없이 살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주 거칠게 말하자면, 내가 얼마나 죄인인가를 깨닫는 것이 바로 신앙의 성숙의 척도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사람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가치와 소중함은, 그저 내가 처음에 기독교의 문 안에 발을 들여 놓을 때만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의 평생을 살아가면서 그것의 깊이를 더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첫 순간에 회개를 하고, 그리고 평생 회개를 합니다. 우리는 회개할 수록 용서를 받고, 회개하면서 그리스도를 알아갑니다. 그래서 저는 회개와 기독교를 완전히 결합하여 성경적으로 드러내는 루이스가 참 좋았습니다.
또 루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탄이 우리 옛 조상들의 머리속에 불어넣어 준 생각은 그들도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 마치 스스로 자신을 창조하기라도 한 양 자존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스스로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있다, 하나님 밖에서 하나님과 상관 없이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죄의 근본이 무엇인가를 잘 드러낸 부분입니다. 죄의 본질은 내가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내가 어떤 도덕적인 잘못을 하는 것을 넘어서서, 혹은 내가 나 중심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넘어서서, 나 자신이 '신'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목적, 방향, 내용 등을 철저하게 내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저는 성도로 또 목회자로서, 이렇게 무섭고 또 무거운 죄에 대한 개념을 항상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왜 이것이 그렇게 중요할까요? 왜냐하면 이러한 루이스의 죄에 대한 설명 혹은 논리는 우리의 성화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성화는 단순히 예배를 열심히 드리거나, 혹은 성경을 열심히 읽는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대적하는 맥락에서의 나는 없고 오직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그것은 나의 삶의 전 존재를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맞추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창조주이시며 왕이신 그 지위를 온전히 회복하시고, 나는 호흡 한번 조차 오직 그분께 모든 것을 맞추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상 우리의 구원에 '나'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존재하시며, 우리는 그분의 극진한 사랑을 받은 자들로 그리고 오직 그분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생의 목적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때문에, 저는 루이스를 좋아합니다.
루이스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적들의 점령 지역, 이것이 현재 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기독교는 합법적인 왕이 이를테면 변장을 한 채 어떻게 이 지역에 상륙했는가에 관한 이야기로서, 우리 또한 이 거대한 파괴 작전에 참여할 것을 촉구합니다. 교회에 가면 동지들의 비밀 무전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들이 우리를 교회에 못 나가게 하려고 그토록 노심초사하는 것입니다. 적은 이 일을 위해 우리의 자만과 게으름과 지적 허영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에 교회의 정체성에 대해서 많은 혼란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마치 교회가 사교 모임인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도 종종 계셨습니다. 현대화 되어 버린 교회에 출석하다 보면, 교회의 정체성이 매우 희미해 지는 듯 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매일 교회에 나오는 목회자인데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루이스의 글을 통해서, 교회의 본질에 대한 상상력이 가득한 그리고 가슴 벅찬 묘사를 만납니다. 우리는 일종의 비밀 결사대와 같습니다. 우리는 변장한 왕을 모시고 있고 그분은 반드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비밀 무전을 통해서 우리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우리의 미래를 가늠하면서 그것을 가슴에 품고 살아갑니다.
저는 교회에 대한 평범한 설명을 싫어합니다. 그저 무감각하게 교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마음이 많이 상합니다. 그러나 루이스의 설명 속에서 새로운 기쁨을 발견합니다. 성도에게 주어진 교회 생활 이라는 것이 이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는 진실한 신앙의 동료이며 저의 친구입니다. 그를 통해 교회에 대한 참된 영적인 감각과 기쁨이 제 안에 살아나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루이스를 좋아합니다.
루이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사람이 기도하고 있는 대상-그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입니다. 또한 그가 기도하도록 밀어주고 있는 주체-원동력-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이 사람이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길 내지는 다리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한 평범한 사람이 기도하고 있는 평범한 작은 침실 안에서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삼중적인 생명 전체가 실제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사람은 좀더 높은 종류의 생명-제 표현대로라면 조에, 또는 영적인 생명-속으로 들어 올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 안에 이끌려 들어가고 있는 동시에, 여전히 자기 자신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기도에 대한 루이스의 이 설명을 읽을 때 마다, 마음에 전율합니다. 물론 기도 열심히 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신다 라는 아주 단순한 표현도 진리입니다. 그러나, 루이스는 다릅니다. 저는 다른 그 어떤 기도에 대한 설명보다 루이스의 설명을 제일 좋아합니다. 루이스는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기도의 목표, 기도의 원동력, 그리고 기도의 길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안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이보다 더 탁월하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기도는 너무나 아름다운 것입니다. 어쩌면 세상이 거들떠 보지도 않는 연약한 우리들이, 우리의 거칠고 아픈 손을 모아 주님 앞에 기도할 때에, 그것이 영적으로 얼마나 충격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고 또 얼마나 아름답게 영원에 맞닿아 있는 것인지를 그는 보여줍니다. 마치 보이지 않는 하늘을 활짝 열어 젖히고 그 비밀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저는 루이스를 읽을 때 마다 이런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루이스를 좋아합니다.
루이스는 그의 책의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을 포기하십시오. 그러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것입니다. 자기 새명을 버리십시오. 그러면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찾으면 결국 미움과 외로움과 절망과 분노와 파멸과 쇠퇴만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찾으면 그를 만날 것이며, 그와 함께 모든 것을 얻을 것입니다."
루이스는 불신자들에게, 그리고 어쩌면 신앙의 생명력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저 신앙의 논리나 멋들어진 말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 자체가 지금 그리고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하는 우리의 실재적인 운명입니다. 그래서 저는 루이스의 책을 그저 논리로 읽지 않습니다. 이 모든 내용이 저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저는 한없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루이스가 이야기한 것처럼 단 하나도 남기지 않고 저의 모든 것을 포기하기를,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찾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저의 모든 것이 되는 그 궁극적인 상태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렇게 저를 결단하게 만들고 바로 잡아 주기 때문에 저는 루이스를 참 좋아합니다.
글을 맺어야겠습니다. 지금 저의 기분은, 마치 보석이 가득 담긴 보물 상자를 품에 안고서는, 작은 손에 그 보물 중에 몇개를 잡고서 꺼내 자랑하고 있는 어린아이 같습니다. 너무 반짝이고 행복한데, 이 보물을 다 설명할 재주가 저에게 없어서 한 없이 아쉬울 뿐입니다.
루이스를 읽은 저의 벅찬 마음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어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짧은 글을 통해서 루이스를 잠시 접하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만족합니다.
언젠가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이 글을 읽으신 누군가와, 선선하고 아름다운 날에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루이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마음이 하나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 저의 인생에 가장 큰 기쁨일 것입니다.
2024년 3월 21일 목요일
동생의 손을 잡고 거리를 걷다
부모님이 화목하지 못하면 자녀들이 크게 고통을 받습니다. 신앙이 없는 아버지와 교회에 열심인 어머니는 그 사이에 필연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몫은 고스란히 저와 동생의 것이었습니다.
11년만에 동생의 얼굴을 보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순탄치 않은 생활과 어려움에도 아픔을 훌훌 털어내고 열심히 살고 있어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미국에 산다는 이유로 뭐 하나 제대로 해준 것도 없이 시간만 흘렀습니다. 경주 시내를 같이 잠깐 걸으면서 용기를 내서 말했습니다. '오빠 손 좀 잡고 걸어보자'
동생 손이 이렇게 따뜻했다는 것이 기억이 났습니다. 겨우 몇분이었지만 너무 행복했습니다. 무리해서 일을 해서 관절염이 있고 부은 손가락을 실제로 잡아보니 마음은 더 아픕니다.
그래도 많이 씩씩해 보여서 다행입니다. 적어 놓고 계속했던 동생을 위한 기도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생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더 많이 기도해야겠습니다.
2024년 2월 26일 월요일
목회는, 보이지 않는 것 2
누군가와 함께해 보지 않으면, 그 사람이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종종,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 사람을 평가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때론 화가 납니다. 그리고 마음이 아픕니다. 어떻게 저렇게 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저의 어머니도 또 장모님도, 평생을 교회의 부엌에서 일하셨습니다. 그 수 많은 시간을 나의 가족 뿐 아니라 영적인 가족들을 먹이기 위해서 힘을 쓰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에서 권사님들께서 음식을 해주시면 그렇게 마음이 죄송스럽습니다. 손수 음식을 하시고 식사하자고 부르시면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합니다. 제가 어떻게든 식사라도 더 한번 사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분들의 노고는 다 갚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말로만 하는 목회는 거짓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는, 그 사람의 삶 속에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저 몇 마디 말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정말 아픈 것이 무엇인지 들어주는 것입니다. 실제로 움직이는 것이며, 그리고 그와 발걸음을 맞추는 것입니다. 목회는, 남이 하는 것을 놓고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의 정황 속으로 뛰어들어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를 불러주시는 곳에서는 저 역시 최선을 다합니다. 저의 원래 성격은 내성적이고 조용하지만, 일부러 쾌활하게 행동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목회이기 때문입니다. 남을 먼저 배려하고, 나의 성향을 뛰어 넘어서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고, 한번 더 웃음으로 용기를 주는 것이 목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존경하는 분들이 참 많이 생겼습니다. 평신도이지만 진실하고 아름답게 사역하는 분들입니다. 보이지 않게 수고하는 분들입니다. 그들의 수고의 아마도 팔할은 우리가 보지도 못하는 영역 속에 존재하는 그런 분들입니다.
이익을 위하여 교회를 섬기는 분들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내가 얻는 것을 바라지 않고 순수하게 베푸는 분들을 보면, 겉과 속이 같아서 그렇게 투명한 분들을 보면 마음이 울컥합니다. 그분들이야 말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입니다. 목회가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실망하지 않고 자신의 맡은 사명에 집중하는 분들입니다.
주님께서 다 아시고 갚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목회자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런 분들을 최선을 다해서 격려합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이름을 제 기도 노트에 적어 놓았습니다.
하나님, 그분에게 힘을 주시기 원합니다. 낙심하지 않도록 인도해주시기를 원합니다, 보이지 않는 그 목회의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도록, 주님께서 힘을 더 해 주시기 원합니다. 이것이 목회자로서, 교회를 섬기는 귀한 분들을 위한 진실한 기도입니다.
The Precious Death of the Saint / 시편 116편 15절 하관 예배 영어 설교
추천 글
로고스 프로그램으로, 평신도 성경 공부하기 with 스터디 바이블 노트 Study Bible Notes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시 119:103) 누구나 성경을 열심히 읽으라는 말은 듣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꿀보다 달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