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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25일 일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90) - 우리는 주의 움직이는 교회

 


1. 가사 살펴보기

우리는 주의 움직이는 교회
이곳은 주님을 위한 자리
내가 기도하는 모든 땅 위에서
하나님 예배받을 그 날을 고대하네 

나의 노래로 주님의 성전을 지으리
높임을 받으소서
이스라엘의 찬송 중 거하신 주님은
거룩하십니다 

두 손 들어 주님의 보좌를 만들고
온 맘 다해 경배하리
그룹 날개 사이에 임하신 것처럼
내 위에 임하소서 

하나님 우리가 이 곳에 섰으니
이 땅을 치유하소서
하나님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주를 높이리다 

열방들아 주님을 송축할지어다
그 발 아래 입맞추라
영원한 통치자 주 예수 그리스도
그는 위대하신 왕 우리 왕 

 

2. 곡 소개

곡은, 예수전도단에서 부르기 시작한 곡으로 2020년에 앨범에 수록 되었고, 최근에 여러 팀을 통해서 불려지면서 더 은혜를 끼치고 있는 곡이다. 이 곡은, 교회의 영적인 본질과 그 역동성에 대해서 노래한다. 교회는 쉼 없이 움직이며 세상 끝까지 나아가는 것이고, 주님은 그분의 교회에 친히 임재 하시며 다스리신다는 성경적인 진리를 힘있는 멜로디에 담아낸 아름다운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1:8 But you will receive power when the Holy Spirit comes on you; and you will be my witnesses in Jerusalem, and in all Judea and Samaria, and to the ends of the earth.”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이라와 땅끝이라는 것을 통해서, 사도들의 사명의 범위가 전세계를 향해 지리적으로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의 증인이라는 것은, 사도들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즉 그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그의 왕국과 주권에 대하여 증거하고 선포하도록 부름 받았음을 보여줍니다.

John D. Barry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Ac 1:8.

시편 22: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22:3 Yet you are enthroned as the Holy One; you are the one Israel praises.

놀라운 사실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과 관계를 맺기로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의 거룩함은 두려움보다는 찬양을, 공포보다는 신뢰를 불러일으키는 사랑스러운 거룩함입니다.

Holman Bible Publishers, CSB Disciple’s Study Bible: Notes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807.

에베소서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13 And you also were included in Christ when you heard the message of truth, the gospel of your salvation. When you believed, you were marked in him with a seal, the promised Holy Spirit, 1:14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14 who is a deposit guaranteeing our inheritance until the redemption of those who are God’s possession—to the praise of his glory.

하나님께서 진리의 말씀으로 그리고 성령을 통해서 구원하신 이 모든 것은 단순한 사실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 모든 것을 이루신 하나님의 영광을 적극적으로 찬양하는데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신 우리의 구원의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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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2: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2:15 so that you may become blameless and pure, “children of God without fault in a warped and crooked generation.”[a] Then you will shine among them like stars in the sky

하나님의 자녀들은 아직 온전히 소유하지 못한 어떤 것을 향해서 성장해 나가야 합니다. 흠이 없다는 것은 때문에 비난 받지 않는 것이며, 순전하다는 것은 죄가 섞이지 않은 순수한 삶을 의미합니다. 빛들로 나타내며 라는 것은 당신은 빛나야 합니다라고도 번역할 있습니다. 마치 어둠 속에서 태양과 달과 별이 빛나는 것처럼 성도는 자신의 성품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John F. MacArthur Jr., The MacArthur Study Bible: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hville, TN: Thomas Nelson Publishers, 2006), Php 2:15.

고린도후서 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개역개정) 6:16 What agreement is there between the temple of God and idols? For we are the temple of the living God. As God has said: “I will live with them and walk among them, and I will be their God, and they will be my people.” (NIV)

고린도에는 이방인의 신전이 많았기 때문에 성도들은 바울의 의도를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특별한 건물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사람들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성도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이 어디에 사는가가 아니라 그들 자신이 누군가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들과 함께 하십니다

Tyndale, Chronological Life Application Study Bible, ed. Susan Perlman, Second Edition.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2023), 1670.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하나님이 임재하신, 그리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교회의 본질에 대해서 탁월하게 드러낸 찬양이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임재하신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과 그분의 은혜로 죄인을 부르시고 거듭나게 하셨고, 더 나아가 주님의 자녀들 안에 친히 거하시며 언제나 그들과 동행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두려움과 좌절도 넘어서는 영적인 위로와 권능을 언제나 공급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하신 전능자께서 기꺼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언제나 감격하며, 또한 오직 그분께 찬양을 올려드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교회는 주일에 한 곳에 모이기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전진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주님이 명하신 것처럼 땅 끝까지 전진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그분의 왕 되심을 선포하고 드러내는 사람들인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세상 가운데 빛이 되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그 자리에서, 주님의 왕 되심을 인정하며 주님을 따르고 주님께 순종할 때에 참된 빛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찬양을 부를 때 마다 우리의 정체성을 새롭게 깨닫고 감격하기를 원한다. 이 힘있는 찬양 속에서 성경적인 교회됨을 새롭게 발견하고 세상을 향해 힘있게 전진해 나가기를 원한다. 비록 세상은 어둡고 슬픔이 가득하지만, 주님의 자녀 된 우리를 통하여 주님의 정의와 공의 사랑이 세상 속에 드러나고 세상을 치유하는 아름다운 역사가 풍성하게 일어나기를 바라고 기대한다.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4년 7월 1일 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82) - 삶으로

 



1. 가사 살펴보기


세상의 부와 세상의 명예

세상 자랑 모두 내려놓고

날 구한 십자가 날 씻긴 보혈

주의 은혜를 깊이 생각합니다

 

나의 나 된 것 내 모든 것 다

거저 받은 선물 내 삶을 은혜로

가득 채워주셨네

 

나의 나 된 것 내 모든 것 다

거저 받은 선물 내 삶을 주신분께

다시 올려드리니

 

나는 삶으로 주님을 노래합니다

나를 통하여 주님만 높임 받으소서

나는 삶으로 주님을 예배합니다

나의 삶을 빛으로 사용하소서

 


2. 곡 소개


이 곡은, CCM 그룹인 히즈윌의 2015년에 발매된 '선물' 앨범에 수록된 타이틀 곡이다. 이 곡은, 우리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임을그리고 주님의 자녀됨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자신의 삶 전체로 주님을 높이고 주님을 드러내기 원하는 신앙 고백을 담은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고전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15:10 But by the grace of God I am what I am, and his grace to me was not without effect. No, I worked harder than all of them--yet not I, but the grace of God that was with me.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바울의 이해와 감사는 그의 섬김과 사랑에 영감을 주었습니다은혜에 대한 이러한 감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섬기는데 있어서 힘과 동기를 부여해 주는 것입니다.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1359.

 

에베소서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2:8 For it is by grace you have been saved, through faith--and this not from yourselves, it is the gift of God--

구원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며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사람들이 생각할 때에 자신이 선한 일을 해서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그러나 바울은 그 누구도 자신의 구원을 얻을 수 이을 정도로 완벽한 삶을 살거나 선행을 행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Candi Finch, ed., “Ephesians,” in The Study Bible for Women, Holman Christian Standard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4), Eph 2:8–9.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12:1 Therefore, I urge you, brothers, in view of God's mercy, to offer your bodies as living sacrifices, holy and pleasing to God--this is your spiritual act of worship.

구약에서 제사에 사용되던 언어는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삶을 묘사하는데 사용됩니다몸이라는 것은사람의 전체를 의미합니다몸과 영혼은 모두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산 제물입니다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생명을 누립니다영적 예배라는 것은자신의 전 생애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J. I. Packer, Wayne Grudem, and Ajith Fernando, eds., ESV Global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2012), 1597.

 

고린도전서 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개역개정6:20 you were bought at a price. Therefore honor God with your body. (NIV)  

신자가 자기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이유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기 떄문입니다이렇게 값을 치르고 구매하는 것의 의미지는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음 의미하는 것이며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지불하신 값의 지불을 통해 노예를 구속하신 것을 가리킵니다그러므로는 논리적으로 필수적인 결론인데신자들은 자신의 몸을 포함하여 존재 전체로 하나님을 높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061.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복음의 정수를 담고 있다인간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인간은 당연히 일부분은 선한 존재이며 선을 행하는 존재이지만거룩하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기준에는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죄로 망가진 존재이다인간은 그 본성에서부터 죄로 타락하였기 때문에그의 구원을 위해서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일하셔야 한다성경은 죄인 중의 일부가 하나님에 의해 은혜로 선택되었고하나님의 사랑과 보호하심 가운데 살아가며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그 나라에 들어감을 말씀하신다그러므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할 일이 없는 것인가우리는 구원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구원 받은 자녀로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주님을 위해서 살아간다이것은 지극히 합리적이고 또 마땅한 논리이다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사신 것이다주님이 은혜를 베푸심으로 우리는 주님의 것이 되었다그러므로 이미 주님의 것이 된 우리는마땅히 그분을 위하여 살아가는 존재들인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주인이시기에우리는 교회 안에서 만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의 삶에서도 오직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다그렇다면 과연 누가하나님을 향하여 탁월하고 진실하게 순종할 수 있는가그것은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고 마음에 감격하는 사람만이 더 주님을 사모하며 자신의 생명까지라도 기꺼이 주님을 위하여 드릴 수 있는 것이다그런 면에서 기독교는 피상적인 종교가 아니다기독교는 역사 가운데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 은혜와그것에 감격하고 반응하여 그분에게 자신의 전부를 드리는 인간의 아름다운 순종과 명예를 보여주는 것이다이 찬양을 부를 때 마다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더 깊이 깨닫고오직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아름다운 순종의 열매를 맺으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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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4일 일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68) - 아무도 예배하지 않는

 

1. 가사 살펴보기

아무도 예배하지 않는 그곳에서 주를 예배하리라
아무도 찬양하지 않는 그곳에서 나 주를 찬양하리라
누구도 헌신하지 않는 그곳에서 주께 헌신하리라
누구도 증거하지 않는 그곳에서 나 주를 증거하리라 

내가 밟는 모든 땅 주를 예배하게 하소서
주의 보혈로 덮어지게 하소서
내가 선 이곳 주의 거룩한곳 되게 하소서
주의 향기로 물들이소서

 

2. 곡 소개

곡은, 하나님 앞에서 올려드리는 예배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깨닫게 하는 곡이다. 자신을 섬기며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오직 주님만 섬기고 주님만 찬양하겠다는 결단을 담은 곡이다. 더 나아가 자신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드러내고 주님의 향기를 나타내겠다는 기독교 세계관의 정수를 담고 있는 찬양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열왕기상 18:30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18:30 Then Elijah said to all the people, "Come here to me." They came to him, and he repaired the altar of the LORD, which was in ruins. 18:36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18:36 At the time of sacrifice, the prophet Elijah stepped forward and prayed: "O LORD, God of Abraham, Isaac and Israel, let it be known today that you are God in Israel and that I am your servant and have done all these things at your command. 18: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18:37 Answer me, O LORD, answer me, so these people will know that you, O LORD, are God, and that you are turning their hearts back again." 

엘리야의 기도는 그들의 대적들의 기도와는 다르게 단순한 기도입니다. 그는 두가지를 간구합니다. 하나는 그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셨던 언약에 따라 하나님께서 역사해주시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선조들 때부터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D. A. Carson, ed.,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579.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12:1 Therefore, I urge you, brothers, in view of God's mercy, to offer your bodies as living sacrifices, holy and pleasing to God--this is your spiritual act of worship.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12:2 Do not conform any longer to the pattern of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Then you will be able to test and approve what God's will is--his good, pleasing and perfect will.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 구약에서 제사에 사용되던 언어는,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삶을 묘사하는데 사용됩니다. 몸이라는 것은, 사람의 전체를 의미합니다. 몸과 영혼은 모두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산 제물이며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생명을 누립니다. “살아있다”라는 말은, 구약의 동물 제사처럼 그들이 죽지 않을 것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영적 예배라는 것은, 자신의 전 생애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J. I. Packer, Wayne Grudem, and Ajith Fernando, eds., ESV Global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2012), 1597.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온 나라가 하나님을 떠났을 때에 우상의 선지자들과 대적하며 하나님 앞에 제사를 올려드린 엘리야를 생각나게 한다. 중요한 것은, 엘리야의 시대 뿐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도, 세상의 가치관과 세상의 영향력은 끊임없이 성도들을 영적으로 공격하며 우리를 변질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엘리야는 여호와 앞에서 제단을 쌓고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언약에 따라서 역사하시기를, 그리고 주님의 백성이 그분이 하신 놀라운 일들을 기억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간구한다. 참된 예배의 핵심이 이것이다. 우리는 예배 가운데 언약의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붙들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셨고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나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참된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세상을 이기는 주님의 자녀로서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온전히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드러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전 존재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의 목적이 여호와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고 그분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을 반드시 기억하면서 경주해야 하는 것이 성도의 삶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찬양을 부를 때 마다, 우리의 예배가 온전히 회복되기를 원한다. 언약의 하나님, 그분의 백성을 지키시고 돌보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붙들며, 그분을 향하여 새롭게 충성을 맹세하고 사랑을 고백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한다. 또한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그 어떤 작은 것까지 오직 주님의 뜻 가운데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시는 분들 되시기를 기도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3년 8월 12일 토요일

나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십자가 / 예레미야 15장 10-21절 주일 설교 (설교문)

 


* 나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십자가
/ 예레미야 15장 10-21절 주일 설교 (준비 과정)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8/15-10-21.html


 기도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영광스러운 주님 앞에 예배하게 하시며 존귀한 주의 말씀을 듣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주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세상의 고난과 어려움이 닥쳐올 때에 오직 주님을 바라봅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너무나 어리석어 우리의 귀가 닫힐 때에라도 성령의 충만함을 새롭게 허락하시며, 우리의 영혼 가장 깊은 곳으로 주의 말씀을 넣어 주시옵소서. 오늘 시간이 우리의 가운데 가장 복된 시간이 되기 원하오니, 주님께서 친히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관계의 깨어짐

영화 중에 많이 등장하는 단골 소재는 시간 여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과거에 바꾸고 싶어하는 일이 있는 것입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반드시 선택을 바꾸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성도님들께서는 다시 한번 과거로 돌아가서 선택할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돌아가고 싶은 선택의 순간이 있으십니까?

 

 전도사의 선택

저는 신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저의 교회에서 전도사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스물 일곱의 나이였습니다. 저는 당시에 전체 찬양팀을 책임 지고 있었고 저녁 예배 찬양을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청년부 찬양 인도는 저보다 두살이 많은 형님이 섬기고 계셨습니다. 그분도 교회에서 잔뼈가 굵은 아주 영향력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좋은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청년부 찬양팀 안에서 편애가 매우 심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여러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게 되었습니다. 제가 당시에 책임자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저보다 어린 동생들이 저를 찾아와서 하소연을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여러가지 정황으로 보았을 때에 제가 바로 잡아야하는 것이 분명했지만 쉽지가 않았습니다. 첫째로는 제가 대해야 하는 상대가 저보다 연장자라는 것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와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사실상 교회에서 찬양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던 사람이었고 실력적으로도 인맥적으로도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찬양팀에 문제가 있다 라는 것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가 않았지만 정작 거의 한달을 고민한 같습니다. 왜냐하면 고민과 어려움이 마음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문제를 직접적으로 제기 한다면 과연 어떻게 것인가? 그분과 나와의 관계는 어떻게 될것인가? 후에 나의 사역은 과연 어떻게 것인가? 혹시라도 내가 오히려 공동체에서 고립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깊은 두려움 때문에 하루에 몇번씩 스스로에게 질문했습니다. 내가 굳이 문제를 꺼내서 공론화 시킬 필요가 있는가? 계속 고민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였습니다.

 

 예레미야

혹시 성도님들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에 대해서 어떤 감정을 가지고 계십니까? 물론 그의 메시지는 매우 중요하지만 사실 저는 예레미야라는 사람에게 관심이 가는 같습니다

그는 아마도 스무살 부터 거의 40 동안 선지자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맡겨진 사명이라는 것은 그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는 오늘 말씀 10절에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10 내게 재앙이로다 나의 어머니여 어머니께서 나를 세계에 다투는 자와  싸우는 자를 만날 자로 낳으셨도다 ...“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새번역 성경은 말씀을 이렇게 직설적으로 번역했습니다. “! 어머니 원통합니다 나를 낳으셨습니까?”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예레미야는 그가 경험하는 고통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다면 좋았겠다 라며 아픔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아픔의 이유는 무엇인가? 10 마지막에 말하는 것처럼 나를 저주하는도다라는 것이 그의 고통의 원인이었다 라는 것입니다.

 

  예레이야와 관계

어떤 분들은 오늘 말씀을 보면서 그의 아픔을 이렇게 과소평가할 수도 있을 같습니다. “아니 이정도 어려움 쯤은 버텨야지 선지자가 이렇게 약한가?”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나라를 통틀어서 예레미야를 지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백성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고 결국 망한다 라는 그의 메시지 때문에 그는 실제로 죽음의 위협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이러한 인간 관계의 문제는 예레미야에게 있어서 가장 연약한 부분이었던 같습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서 소명을 주실 때에 그는 1 6절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6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특별히 나이가 어린 자신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염려하였던 것입니다. 괜히 나이도 어린 자신이 나섰다가 감당하지 못할 어려움을 겪을까봐 처음부터 두려워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어떻게 되었는가? 그가 예상한대로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는 평생동안 사람들로 부터 비난과 정서적인 학대를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단절

영국에서 두번이나 올해의 저널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요한 하리 라는 사람은 10 부터 항우울제를 복용한 우울증 환자입니다. 그는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문가들을 인터뷰하면서 우울증의 원인에 대해서 파고 들어가면서 책을 썼습니다. 그는 사실상 현대인의 우울증의 가장 원인은 "단절" 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중에 하나가 "타인과의 단절"이지 거기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1970년대 중반에 신경과학자인 카치오포는 자신의 지도 교수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지도 교수는 인간을 바라볼 때에 마치 인간이 외딴 섬처럼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의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에만 관심을 가지고 그것만이 마치 우울증의 모든 원인인 것처럼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파치오포는 이것에 반박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일상 생활을 하는 동안에 심장 박동을 측정하면서 그것의 변화가 있을 때에 얼마나 외로움을 느끼는지 혹은 친밀감을 느끼는지 기록을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람들이 외로움을 느낀다고 기록했을 때에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의 농도가 치솟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수준은 사람이 살면서 겪을 있는 가장 충격적인 일을 겪을 때와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저는 책을 읽으면서 예레미야가 생각이 났습니다. 40 동안 모든 친밀한 관계가 단절되고 고통 속에 몸부림치고 있는 예레미야가 어떻게 보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

그런 맥락에서 참으로 감사하고 놀라운 것은, 내가 태어났는가 한탄하면서 괴로워하는 예레미야를 하나님께서 책망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오히려 부드럽게 위로하시는 것입니다. 11절입니다.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를 강하게 것이요 너에게 복을 받게 것이며 내가 진실로 원수로 재앙과 환난의 때에 네게 간구하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위로하시면서 세상 모든 사람이 너를 등지고 버릴 지라도 나는 여전히 너를 위하고 있다 라고 강조하십니다. 진실로 너를 강하게 하겠다 너에게 복을 주겠다 라고 약속하십니다.

 

 여전한 사명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예레미야를 위로하시고서는 그에게 다시 한번 사명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13절과 14 까지입니다. 유다 백성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13절에서는 유다의 죄로 말미암아 모든 재산은 탈취를 당하게 것이며 14절에서는 나의 진노의 맹렬한 불이 유다를 사를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도님들은 말씀을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저는 오늘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너무하신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 지금 예레미야 선지자가 자기는 죽기 일보 직전이라고 소리치는데 그렇다면 지금 상황에서 가장 쉬운 해결 방법은 무엇인가? 그냥 심판의 선언의 수위를 낮추면 된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화가 많이 나셨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나라가 위기를 겪겠지만 완전히 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라고 예레미야가 있도록 해주시면 좋을텐데 하나님께서는 도저히 물러설 마음이 전혀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고통의 이유

예레미야의 입장에서는 말씀이 어떻게 들리겠는가? 그는 아마 화가 많이 났을것입니다. 혹은 하나님께서 해도 해도 너무 하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차마 밖으로 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드디어 토로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15 말씀입니다. “15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오니 원하건대 주는 나를 기억하시며 돌보시사 나를 박해하는 자에게 보복하시고 주의 오래 참으심으로 말미암아 나로 멸망하지 아니하게 하옵시며 주를 위하여 내가 부끄러움 당하는 줄을 아시옵소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에서 진하게 배여 있는 그의 정서는 무엇인가? 여호와를 향한 회의감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신다고 처음부터 약속하셨지만 상황은 그가 핍박 받는 것으로 계속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부분은 후반부입니다. 주의 오래 참으심으로 말미암아 나로 멸망하지 아니하게 하옵시며 주를 위하여 내가 부끄러움 당하는 줄을 아시옵소서 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예레미야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기를 원합니다. 그가 지금 분노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물론 예레미야는 관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랫동안 사람들로 부터 따돌림을 당하였기 때문에 그는 정신적으로 피폐해졌고 아마도 심각한 우울증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단계 깊이 내려가서 그의 내면을 살펴보니 그는 지금 너무나 억울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단순히 말씀을 전하고 선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선지자의 역할을 하고 보니 그것은 무엇인가? 메시지 때문에 그가 수모를 당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그는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심각한 정서적인 손해를 봐야 했습니다. 그는 수치를 당하고 모멸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문제는 자기 자신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시키셨다는 이유 때문에 그런 아픔을 겪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하소연

그래서 17절에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7 내가 기뻐하는 자의 모임 가운데 앉지 아니하며 즐거워하지도 아니하고 주의 손에 붙들려 홀로 앉았사오니 이는 주께서 분노로 내게 채우셨음이니이다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의미인가? 마치 이런 장면이 눈에 보이는 같습니다. 어떤 유대인들이 즐겁게 파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밤이 깊도록 사람들은 즐겁게 웃으면서 서로 대화를 하고 즐기고 있었어 그런데 예레미야가 홀로 길을 걸어가다가 소리를 듣고 자기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는 것입니다. 그는 멀리서 사람들의 실루엣을 멍하니 바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이렇게 살게된 이유가 무엇인가? 주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진리를 따른다는 것이 결국 이런 상황을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18절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18 나의 고통이 계속하며 상처가 중하여 낫지 아니함은 어찌 됨이니이까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시리이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말씀은 성경을 통틀어서 하나님을 모욕하는 가장 심한 모욕 중에 하나입니다. 사실 예레미야는 예레미야 2 13절에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전하였습니다. “2:13 백성이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것인데 …” 라고 선포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생명의 근원이다 라고 말했던 예레미야가 오늘의 탄식 속에서는 주님은 마치 물이 말라서 나를 속이는 샘과 같습니다 라고 완전히 반대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가 정말 실망한 것은 단순히 사람과의 관계의 단절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하고 이런 손해를 보았고 그래서 나는 이상 이런 여호와를 신뢰할 없다는 것입니다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뜻으로 인해서 이렇게까지 고통 받아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수모를 참야아 한다는 사실 때문에, 자신이 생각하던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자신이 실제로 하나님의 종으로 경험하는 현실이 너무나 거리가 있다고 느껴진 것입니다

도대체 여호와를 섬긴다는 것이 무엇인가? 도대체 여호와를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는 정신적인 어려움과 혼란 속에서 결국 내뱉지 말아야 하는 말을 뱉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기꾼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크게 실망했습니다

 

 돌아오라

놀랍게도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19 전반부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 헛된 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말한다면 너는 나의 입이 것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여전히 그분의 따뜻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마음을 돌이키라 그리고 헛된 것을 버리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무엇이 헛된 것인가?

지금 예레미야의 모든 감정을 이해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그러나 그가 생각하고 주장하는 것들은 모두 헛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모욕을 받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며, 다른 사람 때문에 내가 이렇게까지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도 견딜 없다라는 자기만의 생각으로 만들어진 신앙이라는 것은 헛되다 라는 것입니다. 중심적인 내가 판단하고 내가 생각하는 선지자의 역할과 신앙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요구하시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바로 자리로 돌아오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험

마태복음 4장에서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광야로 들어가서 금식하셨습니다. 그때 마귀가 그를 찾아와서 시험하였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데리고 높은 곳으로 가서 세상의 모든 영광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마태복음 4 9 말씀입니다. “4: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라고 마귀가 이야기하였습니다. 무슨 의미인가? 자신에게 굽히고 한번만 제대로 한다면 예수님의 목적을 이루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가장 쉬운 길로 가라고 유혹하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끔찍한 고난을 그분의 신적인 권능으로 이미 알고 계신 것입니다. 바로 부분을 마귀가 파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통과 억울한 따위는 피할 있다고 거짓으로 유혹하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엄청난 유혹이 어디에 있겠는가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10 ...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예수님은 유혹 앞에서 물러서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오히려 사탄에 대하여 정면으로 도전하시고 책망하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동등되신 분이셨지만 자신은 오직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다시 말해서 오직 주님의 방법인 십자가에 순종하겠다고 마귀에게 선언하시며 그를 물리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꾸짖음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베드로가 인생 통틀어 가장 귀한 고백을 합니다. 마태복음 16 16절에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예수님께서 고백을 너무나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때 갑자기 베드로가 화를 내면서 예수님을 꾸짖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 22 말씀입니다. “16: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무슨 의미인가? 베드로는 당시 다른 사람들이 생각했던 바로 방식대로 메시아는 억울하게 죽는 존재가 아니라 당당하게 승리하고 인정 받고 높아지는 존재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에게 있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정말 확실한데 십자가를 져야 하냐며 오히려 감히 예수님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 마태복음 16 23 말씀입니다. “16:23 ... 사탄아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말을 듣고 물러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순간만큼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호되게 책망하십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십자가의 희생과 억울한 길을 걸어가기를 거절하며 심지어 그것을 가로 막고 비난하는 자야 말로 사탄이며 그것은 거짓 신앙에 불과하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빚진 것이 없으신 예수님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10 마지막에 예레미야의 탄식이 새롭게 들렸습니다. “10 ... 내가 꾸어 주지도 아니하였고 사람이 내게 꾸이지도 아니하였건마는 나를 저주하는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혹시 성도님들께서는 빚이 있으십니까? 혹시 억울하게 독촉 전화를 받아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마치 예레미야의 심정이 그런 것입니다. 자신은 사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런 취급을 당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20 28절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0:28 인자가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사람들이 하는 가장 착각은 예수님께서 땅에 오신 것이 뭔가 아쉬워서 혹은 뭔가 책임을 지기 위해서 혹은 우리에게 뭔가 얻을 것이 있어서 찾아오셨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타락과 망가진 세상에 대해서 도대체 하나님이 무슨 책임을 가지고 계십니까? 오히려 그분의 형상을 따라 가장 아름답게 만들어진 인간이 하나님을 배신했고 그분을 대적했고 그분에게 상처를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에게 빚을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인간의 멱살을 잡고 너는 끔찍한 빚을 갚고 결과를 책임지라고 요구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값을 치르신 예수님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토록 섬김 받으시기 합당한 분이십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인간이 되셔서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럴 필요도 없었고 그러지 않아도 되었지만 삼위 일체 하나님의 약속과 결단과 그분 자신의 사랑과 순종으로 인하여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예수님도 온전한 인간이셨기 때문에 마치 예레미야가 그러했던 것처럼 자신의 고통과 자신의 감정과 버림 받는 것과 아버지 하나님과의 단절과 모든 것을 너무나 고통스러워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 39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26:39 ... 아버지여 만일 만하시거든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한걸음도 물러서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단호한 기도한 것처럼 기꺼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셨습니다

아무 죄도 없으신 그분께서 마치 자신이 받아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조롱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마치 자신이 흉악한 죄인인 것처럼 죄의 댓가를 치르셨습니다. 우리가 갚아야 하는 죄의 빚을 그분이 해결하신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에 감히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자리에 모여서 주님의 영광스러운 자녀라 칭함을 받으며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기적을 이루어 내신 것입니다.

 

 공동체가 답인가?

앞에서 말씀드린 요한 하리의 책을 읽어보면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을 위해서 그가 찾는 답은 공동체 안에 있습니다. 사람이 모든 관계에서 단절되었을 때에 진실한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도대체 진실한 공동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저는 오늘 말씀에서 가장 가슴 아픈 장면이라면 19절의 마지막 부분인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

예레미야가 그토록 갈망했던 것은 무엇인가? 그는 사람들에게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따뜻한 인간 관계를 원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그들에게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시는 것입니다. 지금 공동체는 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잠시 돌아가서 얄팍한 인간 관계를 누릴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아무런 문제의 해결책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너에게 돌아와야 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멀리하고 타락한 백성의 마음이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의 마음에 제대로 들어갈 때에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공동체를 이룰 있다는 것입니다.

 

 병든 공동체

그러므로 우리가 착각하는 것이 무엇인가?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대단한 변화가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그토록 다시 돌아가고 싶던 이스라엘 공동체는 지금으로 치면 병든 교회라는 것입니다. 진짜 교회 혹은 건강한 교회였다면 예레미야가 최고로 소중한 사람으로 대우를 받았겠지만, 병든 교회에서는 진리가 필요 없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예레미야는 필요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마치 현대 사회에서 능력이 없고 학력과 인맥과 돈이 없으면 무시 당하는 것처럼 그들은 예레미야를 무시하고 경멸하는데 있어서 어떤 거리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유다 백성은 견고한 공동체였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성전도 있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도 있었고 예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마음에 진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넣고 힘써 붙들고 약자를 위하여 기꺼이 삶을 헌신하며 인내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오직 자기와 친한 자들과 하나가 되고  나아가 약한 자를 무시하고 학대하며 속이고 거짓말 하고 빼앗는데 익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연약한 예레미야의 소외와 그의 절망과 고통을 누구도 여겨 보거나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변화

그러므로 공동체의 진정한 변화와 소망이라는 것은 오직 십자가의 진리가 안에 들어가야만 일어나는 것입니다. 십자가라는 것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라는 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기꺼이 그렇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얽어매고 자신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하는 것이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자신의 손해를 기꺼이 감당하는 것이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바로 사람 때문에 진정한 공동체가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칭하실 때에고아와 과부의 아버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고아와 과부야 말로 가장 연약한 자이며 소외 받는 자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가진 것이 없으면 처절하게 무시 당하는 세상에서 공동체 안에서 과연 누가 그들에게 손을 내밀 있는 것인가? 오직 십자가를 마음에 품은 사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그분의 희생이라는 것이 자신에게 너무나 소중한 것이고 그것이 자신의 본질이라고 여기는 사람 때문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굳이 우선 순위를 따지자면. 변화의 순서는 공동체가 변하고 내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해야 공동체가 변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사람이 많이 모여서 공동체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나라는 존재를 뛰어 넘어서 십자가를 자신의 가운데 살아가는 바로 사람 때문에 공동체가 진정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공동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변화시킨다

저는 오늘 예레미야의 상황을 보면서 위대한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가 생각이 났습니다. 로마 교황청이 베드로 성당의 건축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면죄부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면죄부라는 것은 이미 죽은 어떤 사람을 위해서 돈을 내면 사람의 영혼이 연옥을 벗어나게 된다는 돈으로 구원을 사는 참담할 정도로 성경적인 주장이었습니다. 돈에 눈이 멀어서 성경을 버리고 사람을 속이는 일이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일어난 것입니다. 면죄부라는 끔찍한 교회의 주장으로 인해서 영적으로 고아와 과부와 같은 사람들 성경을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은 영혼을 유린 당했습니다. 루터는 사제였기 때문에 면죄부에 대해서 설교를 해야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양심에 맞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에 정식으로 이것을 항의하고 글을 썼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95개조의 항의문을 작성하고 사람들에게 알리게 되었습니다. 소식이 보름만에 독일에서 퍼지고 6 만에 유럽 사람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은 당시에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던 교황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루터는 1521 4 18일에 왕국의 회의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단으로서 심문을 받게 됩니다. 교황의 대리인으로 알레안더는 루터의 글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내용을 그대로 계속 주장할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한번 루터가 받은 압박을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를 지지하던 많은 이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예레미야가 그러했던 것처럼 사실상 그는 세계를 상대하며 비난과 대적을 당하는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저 그가 모든 것을 눈감고 면죄부에 대해서 침묵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말씀에 따라 교회를 사랑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는 자리까지 끌려 오게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가 내리는 결정은 그의 운명을 바꾸게 것입니다.

 

  루터의 결단과 영향

그가 느끼는 정서적 압박이 얼마나 심했던지 루터는 생각할 여유를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동일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내가 인용한 성경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고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사로잡힌 되었습니다. 나는 철회할 수도 없거니와 철회하지도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의 양심에 불복하는 것은 옳은 것도 안전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도우시옵소서 아멘"

그의 말을 듣고서 한쪽에서는 탄식이 나오고 다른 한쪽에서는 환호가 터져나왔습니다. 루터는 말씀에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십자가의 신학을 주장했고 그가 은혜 받은 대로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진 사람이었습니다

루터는 유명한 95개조 반박문의 마지막 항목을 이렇게 장식하는 것입니다.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고난과 죽음과 지옥까지 통과하는 자가 그리스도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안전하게 보장된 평화보다는 수많은 시련을 통해 하늘에 들어간다는 것을 더욱 굳건히 신뢰해야 한다라고 적었습니다 

루터는 자신의 미래, 자신의 감정, 자신의 인간 관계, 혹은 자신의 처지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뜻을 앞세우면서 기독교의 역사를 새롭게 세운 인물로 우뚝 서게 것입니다. 그는 교회를 성경적으로 개혁한 인물이며 바로 지금 우리가 예배 가운데 믿고 선언하고 고백할 때에 "주의 말씀"이야 말로 어떤 인간의 주장과 선언도 뛰어 넘는 유일한 진리이며 우리의 운명을 맡길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역사적인 토대와 근거를 제시한 위대한 신앙인입니다.

 

 내가 했던 결단 과연 잘한 것일까?

성도님들께서는 진정한 신앙의 성숙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분들은 마치 어떤 것을 계속 배우고 공부해 나가는 자체가 혹은 기도를 많이 하는 자체가 신앙의 성숙이라고 생각하시는 같습니다. 물론 그런 것은 매우 소중하며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의 성숙은 자신이 배우고 익힌 십자가의 길을 애써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는가? 다른 이유는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손해를 기꺼이 감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치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길을 묵묵히 걸어가며 자신을 바꾸고 내가 속한 공동체를 바꾸어나가는 것이 신앙의 성숙입니다.

설교의 앞에서 말씀드린 저의 경험은, 저의 어린 목회자 시절 가운데 가장 감당하기 어려운 시험이었습니다. 제가 안하고 싶었고 피하고 싶었지만 그러나 제가 일을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저에게 자리를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섬기는 것은 그냥 단체가 아니라 주의 몸된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어느날 용기를 내어서 사람들을 소집했습니다. 찬양팀과 관련된 모든 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이야기를 꺼내는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저도 느낄 있었습니다. 누구누구 형제님 제가 이런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혹시 사실입니까? 그리고 저는 그런 부분들이 분명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이야기를 들은 당사자가 굉장히 당황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야기가 맞았기 때문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그분이 행동하던 많은 부분들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찬양팀 멤버들이 힘들어 하던 많은 부분들이 해소가 되었습니다. 동생들이 찾아와서 감사를 표하며 진심으로 기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저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사실 그분은 오랫동안 저와 친분이 있던 분입니다. 그런데 사건 하나로 인하여서 관계가 많이 틀어졌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관계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사실상 제가 그분을 통해서 누리던 모든 것들을 잃었습니다. 저는 아주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만약 다시 때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것인가?” 그러나 항상 결론은 똑같이 끝납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그때 잘했다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제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결론

말씀을 맺기를 원합니다. 오늘 예레미야는 너무나 심각한 외로움과 고통 속에 놓여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억울하게 당해야 했던 상황들이 하나님 때문에 일어난 것임을 토로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묵묵히 그의 이야기를 들으시며 그를 위로하시며 달래시며 너는 다시 나에게 돌아오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고 자신이 당하지 않아도 되는 모욕과 수치를 당하는 그것이 선지자의 일이요 하나님의 자녀의 본분 이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의 모든 상황은 마치 성자 하나님께서 당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분은 죄인을 사랑하신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기꺼이 일을 하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향하여 거침없이 전진하며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영광스러운 교회가 만들어지고 우리가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걸어가시기를 바합니다. 그리하여 자신과 교회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두움과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주님의 기쁨이 되시며 온전한 빛으로 걸어가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통성 기도

시간에 통성으로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먼저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저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시기 원합니다, 때로는 제가 도저히 극복할 없을 같은 상황들이 있습니다, 이상 주님의 뜻을 따를 없을 같은 절망도 경험합니다, 주님께서 위로하여 주시고 저에게 새롭게 힘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저도 걸어가기 원합니다, 자신을 변화시키며, 공동체를 변화 시켜 나가기 원합니다, 오직 말씀에 매인 사람이 되게 하시고, 주님 안에서 용기를 가지고 믿음으로 저의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시간에 말씀을 묵상하시며 통성으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축도

이제는우리를 위하여 기꺼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낙심한 우리를 넉넉히 위로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우리에게 새롭게 용기와 능력을 부어주시는 성령 하나님의 교통하심과 인도하심이 이제는 나와 공동체를 위하여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기 원하는 모든 믿음의 성도님들의 머리 위에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 드리옵나이다, 아멘

* "설교문전체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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