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신01)마19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신01)마19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22년 8월 10일 수요일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14) - 나를 따르라 (본회퍼) /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의 참된 의미

 




저는 굉장히 지적인 것을 강조하는 환경 속에서 신앙 생활을 했습니다. 어렸을 때 부터 보수적인 장로 교회에서 자랐고, 또 대학부에서는 북클럽을 중심으로 신앙을 배웠습니다. 책을 읽고 토론하고 배우는 것이 가장 좋은 신앙의 성숙이라고 배워왔고 또 그것을 저의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축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북클럽을 잘 공부해보고 싶어서 유학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저의 마음에 가지고 있던 깊은 의구심은, "도대체 성도의 성숙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였습니다. 그 누구보다 많은 책을 읽고 공부를 한 분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지적인 것만으로는 절대로 신앙의 성숙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은 우리의 현실 속에서 너무나 확연하게 볼 수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도대체 우리의 신앙에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하여서 의견이 여전히 분분하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theme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 입니다. 최근에 진정한 제자에 대한 설교는 사실 저를 향한 설교였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것은 그분의 제자가 아닙니다. 그분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과 열망이 없는 사람은 사실상 성도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그저 지식적으로 기독교를 이해한 것일 뿐, 그 마음 안에서 성령의 회심이 일어난 사람으로 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자신의 마음에 불을 다시 붙여야 합니다.

본회퍼의 나를 따르라는, 제자도에 대한 설교를 준비하면서 그때 이미 구입했습니다. 하지만 여력이 되지 않아 최근에 읽기 시작했습니다. 적어도 제가 이해할 때에, "책 그 자체"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먼저 진리가 바탕이 되고 그것으로 고민하는 책이어야 하고, 그리고 거기에 더하여 그것에자신의 삶 전체를 걸고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의 삶이 변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나를 따르라는 이 책은, 진리를 담고 있으며, 진리로 고민하는 책이며, 한 사람의 삶을 걸고 달려갈만한 고귀한 책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본회퍼의 가장 탁월한 점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은 절대적"이라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아, 얼마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씀에 대한 이해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조금 마음에 안심이 됩니다. 

요즘에 트랜드는, 성도님들이 질문하는 것에 대해서 목회자가 친절하게 답변하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성경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그것에 대해서 잘 답변하는 것으로 목회자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해하는 것 자체가 마치 기독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Core Christianity"도 마찬가입니다. 

그런데 저의 마음에 항상 드는 생각은, "과연 이러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의 그 마음 깊이 있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심지어 "주일에 나는 가족들과 자주 놀러다니는데 크리스천이다, 꼭 주일에 교회에 나가야 하는가?" 라고 질문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마음이 답답하더군요, 성경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단순히 나의 지적인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정말 그 말씀을 잘 알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쳐서 하나님 앞에 드리기 위한 것인가? 라는 부분에서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회퍼는 예수님께 찾아온 한 부자 청년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이러한 현대인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는 어떤 영생에 대한 호기심은 있었지만, 자신의 호기심에 대한 답변이 필요했던 것이지, 절대자에 대한 순종과 그분께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정확하게 이것입니다. 

저는 본회퍼가 말하기를 "그가 위대한 스승에게 기대하는 것은 본질적인 의견 표명이지, 무조건 의무를 지우는 신적 지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라는 부분이 너무나 강렬하게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현 시대의 설교 그리고 설교자 그리고 성도들에게 울리는 경종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설교는 무엇일까요? 설교는 본질적으로 "신적인 지시"입니다. 그것은 "위대한 의무"입니다. 제가 최대한 설교를 무겁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리고 저의 모습이 무겁게 다가가기를 바라는 것은, 설교는 신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설교가 일종의 권면이나, 훈계나, 혹은 그저 듣기 좋은 가르침에 불과하다면 저 역시 제가 편한대로 해 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는 것은 신의 말씀이며, 신적인 지시이기 때문에 한 없는 무게감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는 분위기적으로 내용적으로 압도적이어야 합니다. 

물론 설교는 설득적인 내용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충분히 설득적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설교가 결국 지적인 유희로 끝난다면, 어떤 설명으로 끝난다면, 그리고 설교를 듣는 청중 역시 그러한 것을 기대하고 설교를 듣는다면, 설교자에게도 그리고 성도에게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애시당초 그 누구도 설교에 대해서 그렇게 기대하지 않으면서 삶이 변하기를 기대했다면, 그것이야 말로 가장 큰 모순이 아닐까요?
  


그런 면에서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하나님의 계명을 힘써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절대적인 당위적인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그저 행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혹은 나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조차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본회퍼는 믿음과 행위를 그렇게 명백하게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가 보기에는 사실상 믿음과 행위를 구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믿음이 연약해 졌다면, 오히려 하나님 앞에 더욱 한걸음 나아가라고 촉구합니다. 우리의 순종을 통해서 믿음을 새롭게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제 자신을 보면서, 더 이상 기독교를 "나 자신의 견고한 지적인 체계" 속에 가두지 않기 원하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분을 붙들고, 그분께 순종하는 것, 그것이 기독교입니다. 그것 외에는 모든 것이 부차적인 것입니다. 이러한 방향으로 보니 저의 배움과 삶이 새롭게 보입니다. 제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더욱 확실하게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참된 신앙의 길을 힘써 걸어가겠다고 다시 한번 결심합니다.

*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전체 글 모음
/ 당신을 변화시키기 위한 "가장 아름다운 길"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3/blog-post_6.html

2022년 1월 29일 토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마태복음 19장 / 결혼의 가치 & 재물이 아닌 하나님을 택하라

 


예수님께서는 갈릴리를 떠나 유대 지방으로 가십니다. GT 스터디 바이블은, 바리새인들 사이에서 합법적인 이혼 근거에 대해서 상당한 논쟁이 있었다고 알려줍니다. 바리새인들은 이 주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그들의 관심은 "어떤 이유가 있다면 아내를 버려도 되는가 안되는가?"입니다. 이들의 말 속에서는 결혼의 소중함보다는, 내가 원한다면 아내를 버리고 싶은데 그것이 언제 가능한가에 더 초점이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혼의 제도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임을 강조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지으셨고 한 몸이 되게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나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결혼의 목적이 얼마나 신성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일깨우시며, 사실상 이혼은 거의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바로 바리새인들이 반박합니다.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고 버릴 수 있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이혼할 수 있는가 없는가가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인간의 마음이 악하기 때문에 그것을 허락하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음행이라는 특정한 상황에서만 이혼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GT 스터디 바이블은 "간음"이라고 사용되는 헬라어 단어가 따로 있음을 설명하면서, 사실상 여기서 말하는 음행이라는 것은 매우 포괄적인 성적인 일탈이라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형태로든 성적인 순수함을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이혼의 사유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너무나 당황합니다. 이렇게 이혼이 어렵다면 차라리 혼자 사는 것이 낫겠다고 주님께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은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독신으로 남아있을 수도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주십니다. 결혼은 성경적인 것이며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했다면 하나님이 이루신 그 결혼이 유지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독신으로 남아 있는 것도 주님의 뜻일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찾아옵니다. 이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한가지 확고한 생각은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계명을 지키라는 말씀에 이 사람은 자신이 다 지켰다고 말합니다. 도대체 이 놀라운 자신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GT 스터디 바이블은, 하나님만이 선하신 분임을 깨달아야만, 선행이 영생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라고 설명합니다. 좀 더 풀어서 이해하자면, 하나님은 선 그 자체이시기 때문에, 감히 하나님 앞에 그분이 만족하실 만한 완전한 선행을 행할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의 교만의 가장 깊은 곳을 파고 들어가십니다. 21절에 명령이 무려 네가지나 연속하여 등장합니다. "가라", "너의 소유를" 팔아라,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고 나를 "따르라" 입니다. 이 사람은 사실상 하나님 대신에 자신의 재물을 신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오직 재물이 이 사람의 삶의 이유였습니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이 사람은 자신의 영적인 현실을 보지 못하고, 말씀을 잘 지키고 있다고 착각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토록 당당하던 이 사람은 갑자기 근심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영적인 현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보다는, 근심하며 주님을 떠납니다. 이 사람이 과연 자신의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었을까요? 그리고 다시 주님께 돌아왔을까요? 성경은 이 부분에 대해서 열린 결말로 남겨 놓습니다. 

재물을 붙들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기가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재물은 세상의 신입니다. 모든 것을 약속하는 전능한 존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불가능해 보이는 구원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행하심을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큰 위로입니다. 

이 모든 이야기를 옆에서 지켜본 베드로는 자신들이 무엇을 얻을 것인가를 주님께 여쭤봅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이 받게 될 특별한 상급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은 하늘의 상급과 영생이 있을 것을 약속하십니다. 

늘 30절이 마음에 이해가 잘 되지 않았던 구절입니다. GT 스터디 바이블은 문맥을 살려서 이렇게 해석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하늘의 상급은 선물이며, 보상을 받기 위해서 주님을 섬기는 자는 나중이 되지만, 순수하게 주님께 순종하며 감사하는 자는 먼저 되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좀 더 묵상해야하겠지만, 일단 이 정도 수준의 이해가 충분해 보입니다. 

In Matthew 19, Jesus deals with marriage and money. Pharisees test Jesus about the condition of a divorce. When we see their question, their desire is to make divorce easy. For me, it is almost impossible to see the weight of the marriage in their mind. 

About the divorce, Jesus emphasizes the origin of marriage from God. God designed it and make it a holy institution. Therefore, without sexual immorality, it is impossible to divorce. However, at the same time, Jesus says that it is possible to live alone. 

In this age, money is a god. It seems that money has the power to sovereign people's minds and bodies. But the real salvation is to accept God as his only one Lord. Someone came to Jesus to ask how to get eternal life. However, if he can not understand who God is, he can not realize his spiritual reality. Jesus commends him that go sell your possessions and give the money to the poor, and then follow me. 

Surprisingly, the mood is changed dramatically. At the first time, the young man was so proud of his lifestyle and his obedience to God. However, he became very sorrowful when Jesus pinpoint this weakness. How about our attitude toward money? These are very critical questions for me and you. 

추천 글

로고스 프로그램으로, 평신도 성경 공부하기 with 스터디 바이블 노트 Study Bible Notes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시 119:103) 누구나 성경을 열심히 읽으라는 말은 듣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꿀보다 달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

리딩 크리스천 독서 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