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걸음씩 계속 걸어가는 것에 대하여
- 옵시디언에 독서 명언을 모으기 시작하다
지나간 삶을 돌이켜 보면, 어떤 변곡점이 존재합니다. 한 사람의 삶의 방향을 제대로 잡아가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것은 책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이의 조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 삶의 분명한 목표를 가지면서도 다른 이의 탁월한 조언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세컨드 브레인의 개념을 처음 접하는 순간 제 삶을 변화시킬 가장 중요한 개념이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리고 비록 느리지만, 그것을 저의 삶의 현실에 구현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도전하고 적용했습니다.
*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21) 세컨드 브레인 (티아고 포르테)
/ 옵시디언(Obsidian)으로 두번째 뇌를 만들기 시작하다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12/21-obsidian.html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그동안 마인드맵과 워드에만 존재하던 저의 설교를 드디어 옵시디언에 완전히 통합시켰습니다. 그리고 추가로 로고스의 설교 매니저까지 함께 사용하면서 현재로서 제가 이룰 수 있는 극한의 효율성을 달성하고 있습니다.
목회자의 효율성은, 목회자의 운명입니다. 효율성 없이 목회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퀄리티 있게 준비해야 하는 계속되는 설교, 소중한 성도님들과 직접 만나기 위한 기회와 시간들, 그리고 가정과 나 자신을 돌보기 위한 그 모든 순간들을 확보한다는 것은 나의 효율성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제 담임 목회를 시작하는 저의 입장에서 삶의 효율성이라는 것은, 반드시 평생을 노력하고 달성해야만 하는 가장 절실한 목표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서 마인드맵을 사용했습니다. 거의 20년이 다 되어 갑니다. 사실 이것만해도 대단한 것입니다. 적어도 저의 관점에서는, 마인드맵을 사용해야만 논리적으로 탁월한 그리고 분량으로도 균형잡힌 설교를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몇년 전부터 갑자기 마음이 허전했습니다. 마음에 견디기 어려운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설교를 했지만 여전히 각각의 설교 한편으로만 남아 있는 이 모든 내용들을, 어딘가에 종합해서 데이터로 만들 수는 없을까라는 궁금증과 갈망이 제 안에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최근에 옵시디언을 사용하면서, 그리고 독서명언들을 발췌해서 본격적으로 모으기 시작하면서 마음에 또 다른 갈망이 생겼습니다. 소중하게 모은 이 명언들을 실제 설교에 최대한 쉽게 통합할 수는 없을까? 그리고 설교 안에 이 내용들을 통합하면서도 더 나아가 장기적으로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차근차근 저의 원래 설교 준비 스타일 부터 살펴 보고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기존의 저의 설교 준비는 마인드맵으로 준비하고, 그것을 한글 혹은 워드 파일에 붙여 넣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 구절과 문단의 중요 문장들을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하이라이트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실제 노트 내용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가? 이것이 두번째 문제였습니다. 일단 마인드맵에서 전체 복사를 해서 워드나 한글에 붙이면, 아래 그림에서 예레미야 51:45-53 이라는 내용 아래처럼 내용이 붙게 됩니다. 즉 문단 소제목이 있고 그 아래에 문단의 내용들이 보기 좋게 정렬이 됩니다. 저는 이 부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만약에 이런 식으로 보기 좋게 붙지 않느다면 또 다시 편집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추가 편집이 필요 없다는 것만해도 이미 상당한 효율성을 달성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번째 문제는, 어떻게 독서 명언을 연결할 것인가 였습니다. 이것도 간단합니다. 이미 설교 원고를 붙여 두고서는, 그 앞에다가 옵시디언에 이미 모아두고 있는 독서명언 중 하나를 연결했습니다. 핵심은 노트의 연결입니다. 물론 또 다른 매모 앱에 어떤 독서 명언 데이터 베이스를 만들고 그것을 다시 옵시디언에 카피해도 되겠지만, 저는 제 설교 안에서 인용 노트를 실제로 연결해 놓아야 보기도 좋고 또 앞으로 사용하기에 유용하리라고 확신했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중요한 것이 바로 옵시디안의 노트 링크 기능입니다. 사용하면 할 수록 놀라는 기능입니다. 그래서 아래처럼 만들었습니다. 아래에 파란색 밑줄로 표시된 '성도의 성숙은... 것이다'는 제가 원래 순전한 기독교를 읽고 감동 받은 부분을 노트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옵시디언의 노트 링크 기능을 이용해서 설교 안에 통합을 했습니다.
노트 링크를 위한 단축키는 [[ ]] 입니다. 괄호 안에다가 링크 제목을 넣으면 자동으로 링크가 생성됩니다. 물론 설교 원고를 쓸 때에 이미 그 노트를 기억하고 옵시디언에서 검색해서 읽어보았고, 이후에 원고 안에 내용을 인용했습니다.
그러나 핵심은, 설교 원고 앞 부분에 직접 그 내용을 실제 링크를 걸어 놓는 것입니다. 나중에 다시 설교를 열어보더라도 어떤 책과 저자를 인용했는지를 쉽게 기억하고 추가적으로 이 설교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노트를 링크를 건 것입니다.
더 깊어지는 제 자신을 만들기 위해서 루이스를 아주 조금씩 읽기로 결심했습니다. 조금씩 읽는 것은 묵상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서입니다. 정보에 압도되는 시대, 쓸데 없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마음에 품고, 또 품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것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한 걸음' 입니다. 놀랍게도 조금씩 읽다보니 순전한 기독교의 거의 막바지에 도달했습니다. 읽으면서 성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이 한권에 다 들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마음에는 아쉬움의 절반으로, 그리고 다음 책에 대한 기대의 절반으로 차 있습니다.
며칠 동안 교회에 대해서 깊이 생각했습니다. 이런 저런 문제들, 이런 저런 전략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읽은 루이스의 조언이 마음에 크게 남았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평생동안 낮추고 겸손하게 살았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책은 '거의' 영원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있게 말합니다. '교회는 오직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이끌어 작은 그리스도로 만들기 위해 존재합니다'
솔직한 제 생각에 이 시대는 '거짓과 사기의 시대' 입니다. 심지어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조차 수 많은 거짓말 혹은 그들의 착각을 듣습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에 따라서 교회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그것은 헛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질을 모르거나 한참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중요합니다. 설교가 중요합니다. 교리가 중요합니다. 양육이 중요합니다. 행정이 중요합니다. KM이 중요합니다. EM이 중요합니다. 사역이 중요합니다. 가정이 중요합니다. 부모가 중요합니다. 선교가 중요합니다. 행사가 중요합니다. 건물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오직 성도가 그리고 나 자신이 그리스도께 이끌리며, 그분을 닮아가기 위하여 존재해야만 합니다.
저는 바로 이 부분에서, 한 사람 그리고 그 교회의 영적인 수준이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고자 하는 열망이 없는 설교는 사실상 헛된 것입니다. 주님을 경험하지 못하고 내가 변화하지 않는 예배는 우리를 지치게 합니다. 주님을 닮아가지 않는 교리 교육은 그저 교양 수업에 불과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시지 않는 행정은 교회를 더욱 완고하게 만들 뿐입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목적과 기쁨이 없다면 KM과 EM의 연합은 그저 인간적인 친교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리스도 가운데 들어가지 않는 선교라는 것은, 배낭 여행에 불과합니다. 주님의 임재가 없는 건물이라면, 아무리 화려한 곳이라도 그곳은 그저 창고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숨을 크게 들이마십니다. 제 마음을 온전히 새롭게 해봅니다. 저 역시 종종 성도로서 그리고 목회자로서 제 자신의 삶의 목적, 그리고 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루이스의 말을 평생 기억하기 원합니다. 제 자신이 평생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그리고 제가 하는 모든 섬김과 일들이 '오직' 다른 이들을 그리스도를 닮게 만드는 것이 되기를 원합니다.
* 크리스천 북클럽, 그리스도를 닮게 하는 '유일한' 길
https://jungjinbu.blogspot.com/2024/04/blog-post_15.html
나는 한 권의 책을 책꽂이에서 뽑아 읽었다. 그리고 그 책을 꽂아 놓았다.
그러나 나는 이미 조금 전의 내가 아니다.
- 앙드레 지드
무엇인가 읽어낸다는 것은, "나"라는 작은 자아를 벗어나는 길입니다. "어설픈 한계" 속에 갖혀서 다른 것을 알지 못하고 마치 나의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가는 나에게, "변화"라는 생소한 것을 가져다 주는 "가장 아름다운 길"입니다.
이십대 부터 본격적인 독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독서가 좋아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독서는 저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어떤 것이 되었습니다. 많이 힘을 씁니다. 왜냐하면, 독서가 세상의 모든 것은 아니지만, 독서를 하지 않는 탁월한 사람은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지 않으면 소중한 것들이 아쉽게 사라집니다. 그래서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소중하게 마음에 남은 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저의 영혼과 마음 속에서 힘을 발휘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의 짧은 글들이, 제 자신에게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도 작은 디딤돌이 될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특별판)
- 세계관을 변화시키는 크리스천 북클럽 (정진부) / 교회의 미래를 북클럽으로 열다
https://jungjinbu.blogspot.com/2026/05/blog-post_515.html
*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26)
- 빅 리셋 (심효연) / 오직 하나님의 뜻 안에서 발전하고 조율하라
https://jungjinbu.blogspot.com/2026/07/26.html
*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25)
- AGI 천사인가 악마인가 (김대식) / 두려운 미래를 걸어가야 하는 우리를 생각하며
https://jungjinbu.blogspot.com/2025/11/25-agi.html
*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24)
- 이세돌, 인생의 수 읽기 (이세돌) / 실패를 넘어 전진하는 위대함
https://jungjinbu.blogspot.com/2025/11/24.html
*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23) - 의지력의 재발견 (로이 바우마이스터)
/ 선택, 초점, 습관, 그리고 의지력 = 크리스천의 삶의 변화시키는 핵심 키워드
https://jungjinbu.blogspot.com/2024/06/23.html
*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22) - 보랏빛 소가 온다 (세스 고딘)
/ 가장 탁월한 것으로 소수에게 집중하라
https://jungjinbu.blogspot.com/2024/03/22.html
*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21) - 세컨드 브레인 (티아고 포르테)
/ 옵시디언(Obsidian)으로 두번째 뇌를 만들기 시작하다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12/21-obsidian.html
*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19) - 한 번 더'의 힘 (에드 마일렛)
/ 시간을 압축하라, 당신의 "하루"는 "삼일"이다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7/19.html
*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18) - 멘탈리티 (팀 그로버)
/ 최고들의 정신 세계, 바로 그것이 “당신의 것”이 되게 하라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3/16.html
*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17)
- 하버드 상위 1퍼센트의 비밀
/ 부정적 신호를 차단하고, 진실한 길을 걸어가라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8/1_29.html
*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16)
- 담임목사가 되기 전에 알아야 할 7가지 Part 2
/ 설교는 예배의 중심이며,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다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8/blog-post_10.html
*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15)
- 교회를 부탁해 / 교회가 회복하기 위한 본질의 길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8/blog-post_11.html
*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14)
- 나를 따르라 (본회퍼) /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의 참된 의미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8/by_10.html
*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01)
- All You Can Eat 리디셀렉트 : 세상의 모든 책을 월정액으로 읽으세요
https://jungjinbu.blogspot.com/2019/08/all-you-can-eat.html
조지 휘트필드(George Whitefield)의 전기 저자인 해리 스타웃(Harry Stout)은 칼빈주의 복음전도자인 휘트필드가 미국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때,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과 아주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고 기록한다. 두 사람 서로가 갖고 있는 사상의 차이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두 사람이 서로 친했다는 사실에 다소 놀랄 것이다. 휘트필드는 칼빈주의 교리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갖고 있었고 청렴하고 도덕적으로 엄격한 “청교도”라는 용어의 표상이었다. 반면에 프랭클린은 종교에 대해서도 모독하는 발언을 일삼았던 종교회의주의자였을 뿐만 아니라 성적으로도 문란하다는 소문도 있었다.
프랭클린이 하나님께 선택받지 않은 자들 중 하나인지는 우리가 알 수 없을지라도 그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인 증거로만 볼 때에는 그는 분명 선택받지 않은 자들의 범주 안에 들기에 충분했다. 또한 휘트필드도 프랭클린의 영혼이 구원을 받았다고 평가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칼빈주의 복음전도자 휘트필드가 종교회의주의자인 프랭클린과 시간을 보낸 것은 단지 그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가정할 수밖에 없다.
과연 하나님은 휘트필드가 벤저민 프랭클린과 함께 즐기는 시간을 허락하셨을까 하는 중요한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물론 어느 칼빈주의자라도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대답할 것이다. 하나님은 두 사람의 우정을 통해 미리 예정하신 특별한 목적이 있으셨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먼 미래에 대한 목적론적인 논의 말고, 그들이 나눈 순수한 우정 자체에 대해서 묻고 싶다. 하나님은 휘트필드가 프랭클린과의 사귐을 즐기는 것을 허락하셨을까? 우리 주님은 두 사람 사이에 주고받는 우정을 그저 기쁘고 즐거운 일로 여기셨을까? 하나님은 그 두 사람이 편지를 통해 주고받는 내용들에 흡족해하셨을까?
휘트필드는 친구의 건강을 걱정해주었고 필라델피아에 갈 때마다 그의 집에 머물기를 원했으며 프랭클린이 잘못한 일로 가슴 아파했다. 하나님은 선택받지 않은 백성 중의 하나라고 거명된 사람과 나눈 우정 자체에 관심이 있으셨기 때문에 휘트필드가 프랭클린과 나눈 시간이 발생하기를 원하셨던 것일까? 다시 말해 구원의 특별한 은혜 바깥의 사람들에게 있는 선하고 아름답고 진실한 것들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안에 있는 믿음의 사람들과 그렇지 않는 자들 사이를 어떻게 명확히 구분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이 질문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면서 이를 근본적인 질문과 연결하였다. 우리가 선택받은 백성으로서 특별한 은혜의 경계 바깥에 있는 자들에게 있는 선하고 아름답고 진실한 것들에 대해 과연 하나님의 관점과 동일하게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는가
리처드 마우, 문화와 일반 은총: 하나님은 모든 아름다운 것 가운데 빛나신다, trans. 권혁민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2),
57–59.
만일 우리가 신학적으로 성령께서 믿지 않는 자들에게도 생명을 선물로 주시고, 더 나아가 지성, 음악적인 재능, 건강, 튼튼한 체력과 같은 타고난 재능을 주셨다고 말할 수 있다면, 왜 우리는 성령 하나님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과 의지가 건설적이며 외적으로 선한 것들을 행할 수 있도록 주권적으로 역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가? 예를 들어,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종 고레스가 유대인들을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칙령을 반포한 것이 하나님의 영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고 해서 신학적으로 문제가 되는가? 만일 우리가 교리문답적인 관점에서는 그러한 일들이 모두 선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영의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 주님이 인간의 모든 역사를 다스리시고, 인간들이 선을 행하도록 이끄신다고 말한다고 해서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 이러한 역사는 결국 하나님이 정하신 목적에 따라 움직이는 데 말이다.
John Bolt, “Common Grace, Theonomy, and
Civic Good: The Temptations of Calvinist Politics,” Calvin Theological Journal 33, no. 2 (November 2000): 237.
리처드 마우, 문화와 일반 은총: 하나님은 모든 아름다운 것 가운데 빛나신다, trans. 권혁민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2),
73.
학위를 위한 공부가 모두 끝난다면 정말 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좋아하는 C.S. 루이스나 마이클 호튼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저의 독서를 지켜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훨씬 더 큰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다양한 책을 한꺼번에 읽어나가는 것"입니다.
물론 이십대 때에는, 제가 중요하게 읽어나가야 하는 책들이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신학을 진지하게 공부하기 위해서 그리고 미래를 위해서 반드시 기본적으로 소화해야 하는 책들이 있었습니. 그리고 오래전에 그것을 정리해 놓았고 이 책들이 저의 생각과 삶의 방향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 정진부 목사의 "독서 간증"
https://prezi.com/xkmxlmjzkp-x/for/?utm_campaign=share&utm_medium=copy
하지만 사십대의 저는 조금 달라졌습니다. 제가 기본적으로 익혀야할 내용들과 책들을 섭렵한 이후는, 이제 저는 일종의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세상을 자유롭게 탐구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한 분야에 굳이 얽매이지 않고, 어쩌면 저와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은 그런 책이라도 자유롭게 읽고 생각하고 적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깊이 있는 책 한권을 여러번 보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입니다. "정독의 독서"는 한 사람의 사고를 확장시키며 그 내용을 내면 속으로 자리잡게 합니다. 저 역시 단 한권의 책을 들고 그 책을 붙들고 씨름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다섯권 정도의 책을 동시에 읽어나가면서 저는 한권을 정독하는 것과는 또 다른 기쁨을 맛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넓은 세상 속에서 다양한 진리의 조각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사실 신학책만 읽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비슷한 맥락의 비슷한 해석과 비슷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가장 익숙한 일입니다. 물론 그것은 가치 있는 일입니다. 진리인 성경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다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장 익숙하기 때문에 제가 염려하는 것입니다. 성도님들에게, 그리고 제 스스로에게조차 마음에 와 닿지 않는 성경 해석에 대한 이야기만 붙들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세상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가지는 목표는 너무나 숭고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성도의 가장 높은 수준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 속에 매몰되지 않고 세상을 배우고 이해하고 평가하고 극복해 나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그것을 성경적으로 극복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독교 세계관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안에만" 매몰된다면, 그러한 숭고한 목표는 실질적으로는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성경만 알아서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성경만 이해해서는 나의 삶 가운데 그것을 실제로 어떻게 적용할지도 방향을 잡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면에서 목회자로 그리고 성도로서 제 삶 속에서 다양한 책을 읽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절박해집니다.
만약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세상의 것과 하늘의 것"으로만 나눈다면 사실상 다양한 책을 읽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배척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교회의 주인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주인이 되십니다. 여호와께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의 죄를 억제하시며, 죄인들에게도 여전히 탁월한 지성과 통찰력을 주십니다. 심지어 어떤 부분에서는 성도를 넘어서는 지식과 지혜들을 그들에게 주심으로 하나님께서 여전히 세상 속에서 그분의 자비를 드러내심을 보이십니다.
흘러가듯이 사는 것 같았는데 저도 모르게 뭔가 새로운 방향을 찾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섯권 정도를 한꺼번에 틈나는대로 읽으면 매우 놀라운 시너지 효과가 있습니다. 다양한 책들이 비교가 되고, 그 안에서 저자들의 논리를 한꺼번에 생각하게 되고, 그것이 더욱 확장되어서 성경적인 이해와 비교해보게 됩니다.
이러한 독서법은, 단순히 신학 책 한권을 읽어나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내면의 치열함을 만들어냅니다. 혹은 세상과 저의 영적인 대결이기도 합니다. 배우면서 도전하면서 싸우면서 겸손해지면서 성숙해집니다. 이것은 제가 과거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고, 저에게 있어서 삶의 지식의 확장과 성경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새로운 방향입니다.
물론 지금 읽고 있는 책들은 모두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자가 진실하게 마음을 담아서 쓴 책이라면, 비록 부족하더라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의 책들 중 대부분은 철저하게 진화론을 기반으로해서 쓰여진 책들입니다. 읽으면서 철저히 반대하고 또 마음이 상당히 불편한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저는 그런 책을 읽으면서 도대체 하나님의 창조라는 것이 이 시대에, 그리고 제 자신에게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그 어느때 보다 진지하게 탐구하게 됩니다.
제가 "이렇게 책을 읽어서 요즘에 너무 행복하다"고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소박한 것에서 행복을 느끼니 좋겠다"고 아내가 웃더군요. :) 어쩌면 저의 행복의 기준이 매우 낮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행복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책을 사랑하시는 분이라면, 세상 속에 하나님의 진리가 흩뿌려져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분이라면, 그리고 궁극적인 성도의 영적인 성숙을 추구하는 분이라면, 다양한 책을 한꺼번에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시 119:103) 누구나 성경을 열심히 읽으라는 말은 듣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꿀보다 달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