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찬양은, 성도가 하나님 안에서 사랑, 기쁨,
위로, 그리고 축복을 받는 존재임을 깊이 깨닫게 하는 곡이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이 바로 교회 공동체이며, 그
안에서 성도 개개인을 향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가고 있음을 일깨워주는 아름다운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렙 31:3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영원한 사랑 :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은혜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심지어 이스라엘의 대다수가 그 사랑을 거절하더라도 이 언약적, 관계적 사랑은 중단시킬 수 없습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428.
습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기뻐하시고, 그들에 대한 사랑 안에서 안식하시며, 그들에 대해 기뻐 노래하시는
것은 불가해하지만 귀중한 진리이며,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의 반응으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313.
고후 1: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1: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종종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려운 상황을 겪게 하셔서 다른
사람들에게 체험적으로 사역하고 그들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다른 성도들에게 위로를 베풀 때, 당신은 하나님의 위로를 전달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것이며, 당신의 삶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실체의 더 깊은 차원을 경험하도록 자신을 여는 것입니다.
엡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이 구절은 종종 ‘송영(doxology)’이라
불리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열거하며 그분께 경배와 찬양, 영광을
돌리는 표현입니다. 이 장엄한 부분에서 바울은 교회가 성부, 성자, 성령을
통해 누리는 복에 대해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를 축복하셨습니다. 이 복에는 그리스도와의 연합,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은 신분, 양자됨, 구속, 선택 등이 포함됩니다. 또한
모든 영적 은사와 섬김의 능력도 구원받는 순간 하나님께서 모든 신자에게 주시는 이 영적 복에서 흘러나옵니다.
David S. Dockery, “Ephesians,”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870.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태도를 가지고 계시고 어떤 은혜를 부어주시는가를 깊이 깨닫게 하는 곡이다. 굉장히 단순한 가사이지만, 성경적으로 깊은 은혜를 담고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분의 자녀를
사랑하시고 그분의 사랑 속에서 성도를 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를 너무나 기뻐하시며 아버지가
자녀를 대하는 것처럼 기쁨으로 우리를 대하신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하신다. 우리의
고난과 어려움을 모른 척 하시지 않으시고 깊이 위로하시며, 또한 그 위로가 우리를 통하여 다른 이들에게
흘러가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신다. 교회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하늘의 복을 누린다. 우리는 주님의 선택 속에서 구속을 받아 주님의 자녀가 되었다. 또한 우리가 교회를 섬기는 모든 능력과 세상을 살아갈 힘을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끊임없이 얻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찬양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된다. 때로는
세상의 기준과 판단 속에서 살아가면서 스스로 낙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 있다 하더라도, 다시 한번
이 찬양을 부를 때에 우리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하나님 안에서 깊은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된다. 그러므로 이 찬양을 부를 때마다, 우리의 마음이 회복되고 주님 안에서
새로운 용기를 얻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목회자에게 가장 기쁜 소식은, 함께 신앙 생활하시는 성도님들께서 말씀에 관심이 있는 것을 볼 때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더 알고 싶어하는 것이야 말로 신앙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더욱 깊은 신앙으로 우리를 이끌어가기 때문입니다.
섬기는 교회 집사님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목사님, 말씀 중에 Put your hope in God 이라는 말씀이 있더라구요, 혹시 성경에 그 말씀이 몇번 나오는지, 그리고 특별히 hope이라는 것이 어디에 어떻게 나오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이렇게 물어보셨습니다.
몇가지 대안이 떠올랐습니다. 처음에는 로고스를 쓰는 법으로 가르쳐 드려야 하는가 고민하다가 마음을 접었습니다. 로고스를 늘 곁에 놓고 쓰지만 저 역시 상당히 번거로울 때가 많이 때문입니다.
복잡해서 안 쓰는 것보다, 간단한 것이라도 자주 놓고 쓰는 것이 최고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떠오른 것이 갓피플 앱입니다. 가볍게 쓸 수 있는 다양한 앱이 있지만, 저는 그 중에 갓피플 성경을 가장 좋게 봅니다. 혹시 처음 들어보셨다면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의 앱 스토어에서 찾으시면 됩니다. 아니면 아래 링크를 사용하세요.
설치하신 이후에 실행을 시키시면 아래와 같은 화면이 나옵니다. 물론 처음 설치한 분은 아래처럼 색깔이 들어간 하이라이트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 표시는, 제가 묵상하면서 줄을 친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갓피플 앱은 성경 앱이지만 모든 것이 다 들어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주 기본적인 성경 정도만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에 집사님께서 문의하신 위의 질문을 성경 프로그램 안에서 해결하기 위해서는, 몇가지를 추가로 구입하셔야 합니다.
갓피플 앱에 들어가는 성경 자료들을 구입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먼저 아래 화면 상단에 ‘개역한글’ 이라고 적혀 있는 아이콘을 클릭하시면, 내가 나의 셀폰에서 어떤 성경 역본을 볼지를 정하는 화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아래 화면이 역본을 선택하는 화면입니다. 처음 설치하신 분은 화면이 조금은 당연히 다를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미 'NLT' 와 '개역개정'을 구입했기 때문입니다. 새번역 등은 제가 구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역본구매'라고 옆에 따로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제가 확인해 보니 위에서 물어보신 'Put your hope in God'은 NIV 번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NIV로 검색하려면 그 성경이 프로그램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최소한 개역개정 (나중에 한글로 검색하기 위해서) 혹은 NIV 성경을 구입하려면 어디로 들어가야 할까요? 그것은 아래 화면에서 맨 아래 우측에 있는 '역본,음원 스토어'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그럼 다시 아래와 같은 화면이 나옵니다. 알아보기 쉽게 역본 이름이 나와있고 또 가격이 나와 있습니다. 개역개정은 충격적이게도 1불도 안하네요, 그리고 쭉 내려가보면 NIV도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스토어 페이지의 거의 맨 아래에 내려가면 '원어사전 스트롱코드 성경 SET'도 있습니다. 앞으로 계속 이 성경앱을 사용하실 것을 염두에 두신다면, 이 세가지 정도는 구입하셔야 아래 설명대로 따라오실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위에 과정을 거쳐서 역본과 원어사전을 설치 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설명하겠습니다. 본격적으로 성경으로 찾아들어가서, 내가 원하는 단어가 들어간 성경 구절이 있는지를 찾아봐야겠습니다.
일단 시편 42편을 찾아 들어가 보겠습니다. 다시 처음 화면으로 가셔서 본인의 화면에서 왼쪽 상단에 성경 장 (ex) 창세기 1장)을 누르시면 아래처럼 성경 장절을 찾아갈 수 있는 화면이 뜹니다.
그리고 시편 42편을 찾아들어가면 아래처럼 화면이 나옵니다. 확인해 보니 NIV 성경에 집사님께서 말씀하신 그 구절이 확실히 있네요. 보시기 편하게 일부러 제가 하이라이트를 넣었습니다. 저는 영어 성경이 한글 성경보다 위에 있는데, 그 이유는 역본을 보는 셋팅을 영어를 우선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드디어 성경 프로그램 안에서 ‘검색’을 할 차례입니다. 검색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상단에 화면에 ‘돋보기 표시 아이콘’을 클릭하면 됩니다. 돋보기를 클릭하면 성경 구절을 검색할 수 있는 화면으로 바뀝니다.
바로 아래 화면이 검색 창입니다. 아직 검색어를 넣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당연히 맨 위에 칸이 공백입니다. 그리고 빈칸 아래에 역본이 나오는데 괄호 안에 있는 것(ex) ESV)은 내가 구입하지 않아서 사용할 수 없는 것이고, 괄호가 없는 것(ex) NIV)는 내가 구입했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역본입니다.
여담으로 내가 구입하지 않은 것도 검색 자체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보기가 아주 불편하기 때문에, 구입하는 것을 추천드리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검색을 할 수 있을까요? 간단하게 구글 검색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제가 몇가지 테스트를 해 보았는데, 일단 'put hope'으로 검색하시기를 추천합니다. 두 단어가 시편 42편 5절에서 핵심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hope 만 넣으면 지나치게 많이 검색이 됩니다. 그리고 put은 더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Put hope 이라고 검색어를 넣으면, 말씀 구절 안에 배열 혹은 단어 사이에 거리와 상관 없이 그 구절에 Put 이나 Hope 이 나오는 모든 구절이 검색이 됩니다. 아쉽게도 구글 검색에서 흔히 사용하는 따옴표를 넣거나 혹은 수식을 넣어서 검색하는 고급 기능은 없어 보입니다.
그래도 'put hope' 이 들어간 성경 구절을 찾아주는 이 정도 검색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렇게만 검색해도 시편 전체에서 열여섯 구절을 추려서 보여줍니다. 그럼 이제 내가 직접 구절들을 확인하면서 정말 시편 42편 5절과 동일한 말씀 혹은 거의 유사한 말씀인지 살펴보면 되는 것입니다.
아래 그림이 실제 검색 결과입니다. 언뜻 보이는 것만 살펴봐도 시편 43편 5절이 시편 42편 5절과 거의 동일한 말씀입니다. 물론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 관점에서 더 흥미로운 것은, 시편 119편 43절에 put my hope in your laws, 그리고 74절에 put my hope in your word 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을 그분의 말씀과 연결할 수 있는 강력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기억할 것은, 위에 검색한 화면에서 검색된 성경 구절을 클릭하면 아래 처럼 그 구절로 직접 이동한다는 것입니다. 참 편리하지요? 10년전만 해도 최소 수십만원 이상 되는 성경 프로그램의 기능을, 갓피플 성경은 가볍게 구현합니다.
자 그렇다면 질문 하나가 남았습니다. '소망을 두라' 라는 말씀을 좀더 깊이 들어갈 차례입니다.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성경은 번역이 된 책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한국어로 '소망을 두라' 라는 것은, 목적어가 있고 동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원어상으로는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집사님께서 원하신대로, 어디에서 이 소망이라는 단어가 그리고 어떻게 사용되는가는 살펴보기위해서는, 영어 검색이 아니라 원어 검색으로 들어가야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갓피플 성경에서 어떻게 해야 원어 검색을 할 수 있을까요? 아래 그림에서 다시 시편 42편 말씀으로 돌아왔습니다. 만약에 아까 위에서 '원어사전 스트롱코드 성경 SET'를 구입하셨다면, 화면의 왼쪽 아래에 노란색 아이콘 '원어사전'이 보이실 것입니다. 그것을 클릭합니다.
그럼 아래와 같은 화면으로 바뀝니다. 화면이 바뀐 것은, 번역 성경을 보다가 특별한 원어 성경 자료로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어쩌다가 보면 내가 의도하지 않게 다른 구절이 뜰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시편 42편 2절을 보고 싶은데, 원어 성경 화면에서는 시편 42편 5절이 뜨는 경우입니다. 그럴 때에는 왼쪽 위에 '시편 42편 5절'을 클릭하시면 내가 원하는 구절을 직접 찾아갈 수 있습니다.
어쨌든, 아래 화면을 보면, '소망을 두라' 라는 것이 히브리어로는 '야할' 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원어 아래 번호는 스트롱 코드라는 것으로 원어에 매겨진 고유 번호입니다.
사실 원어는 동사의 형태 등에 대한 자세한 자료가 필요하지만, 갓피플 성경은 과감히 생략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그게 더 편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목표는, 야할이라는 단어가 어디에서 쓰였는지를 확인하는 것 그것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아래 그림에서 야할이라는 설명창을 보면 동사에 대한 여러가지 설명이 등장합니다. 동사의 형태에 따라서 문맥에 따라서 어떤 다양한 의미를 가지는 것에 대한 설명입니다. 중요한 것은, 원어의 의미는 문맥이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단어의 기본적인 뜻이 있지만, 그 문맥 속에서 그 단어의 최종적인 뜻이 결정됩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많은 설명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아래 화면에서 '이 원어가 사용된 구절' 입니다. 이게 집사님께서 원하시던 것입니다. '야할이라는 히브리어 단어가 사용된 모든 구절'을 다 검색해 주는 것입니다. 기본적인 맥락은 위에 NIV 에서 검색하던 것과 동일하지만, 원어 차원에서 검색한다는 점이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그리고 아래 이미지가 그 결과입니다. NIV에서는 put hope으로 검색한 것이 16개였지만, 원어 검색으로는 소망을 두는 야할 이라는 단어가 19번 등장합니다. 중요한 것은, 문맥에 따라서 내가 생각하지 않은 뜻을 가지고 사용된 구절들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단 검색을 하고 그 이후에 결과를 가지고 분류하고 분석하는 것은 사용자가 해야 하는 역할입니다.
조금 도움이 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결론적으로, 갓피플 성경을 사용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필요한 역본과 원어 사전을 사용하시고, 영어 그리고 원어 검색 기능을 사용하시면 됩니다. 동일한 원리로 한글 성경 검색도 가능합니다. 아주 작은 팁이지만, 여쭤보신 집사님에게 그리고 말씀을 사랑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스무살 때에는 서른의 삶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공부가 다 끝나기 전에는 공부가 끝난 이후의 삶과 목회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2011년 유학을 시작한 이후에 모든 과정은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때론 눈물도 흘렸고, 아픈 마음을 부등켜 안은 적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 속에서 한가지 분명한 목표는 있었습니다. ‘나는 성숙한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
성숙이라는 것은, 단순히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숙은 다면적인 것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것은 매우 단순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탁월한 작가들의 글을 읽고, 그들을 만나야 합니다. 독서는 그저 글을 읽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어떤 밝은 빛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눈이 부시고 온 몸이 따뜻해지는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여전히 그대로이지만, 그러나 모든 것이 새로운 세상입니다.
만약에 혹시라도 미국의 어느 작은 Panera 빵집에서 루이스를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혹시 저에게 그와의 한번의 만남이 가능하다면 저의 시간의 몇년 정도를 기꺼이 대신 내어 놓을 의향이 있습니다. 아마 그와 함께하는 단 몇시간이, 저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많은 만남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에게 결정적인 만남은 단지 몇 번에 불과합니다.
작년에 담임 목사님께서 안식월을 가지시면서 격주로 주일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 시간은 저에게 큰 의미의 시간이었습니다. 저의 단점과 장점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어쩌면 교회의 가장 중요한 시간에 저의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는 너무나 소중한 기회이자 특권이었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그 역할을 마무리하면서 직후에 결심한 것들 중에 하나가, ‘천천히 루이스를 읽는 것’이었습니다.
위에 글을 쓴 것이 작년 8월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이 2024년 5월 중순입니다. 거의 9개월만에,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를 정독해서 다 읽었습니다. 혹시 너무 느리다고 생각하셨나요? 저는 살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천천히 읽었으면 어땠을까? 그의 마지막 권면, 혹은 선언이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찾으면 그를 만날 것이며, 그와 함께 모든 것을 얻을 것입니다.”
저자와의 인격적인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책을 읽을 때에 저자를 만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다정하게 제 앞에 앉아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그런 착각입니다. 그 말이 너무나 생생하게 다가와서, 마치 육성으로 저의 귀에 들리는 듯한 그런 감각입니다.
성숙은 실천의 모습을 포함하지만, 저는 성숙이란 어떤 영적 감각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책을 속독하는 것보다 정독하는 것이 훨씬 좋아 보입니다. 아주 짧은 한 문단이라도 그것을 음미하고 또 음미하면서, 그 의미 속에 깊이 들어가고, 저자와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저의 내면 안에 그 말의 깊이를 새겨 넣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그러나 분명한 실체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을 변화시키는 신비로운 과정이니다.
아주 아주 천천히, 순전한 기독교를 읽었습니다. 이렇게 책을 느리게 읽은 것은 저 역시 처음입니다. 얼마나 많은 줄을 치고 속으로 음미했는지 모릅니다. 특히 후반부가 좋았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그리고 그리스도의 생명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수준에서 그것을 설명합니다. 그 설명을 신중하게 읽고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행복을 누립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설교들이, 하늘의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여전히 땅의 것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설교를 듣고 실망할 때에, 제 마음에 감당하기 어려운 큰 슬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루이스의 표현과 설명과 그의 설득은, 그는 분명히 하늘의 것을 이야기한다는 감각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행복했습니다. 제 자신이 이 땅에 발을 딛고 있지만, 그러나 하늘의 부르심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뜻 가운데 들어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가 가장 실감나게 경험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것을 공부했고 많은 것을 읽었지만, 여전히 저는 어린아이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평생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정확하게 말하면 말씀 속으로 들어가고, 그리고 루이스와 함께 그 모든 영적인 감각을 누리고 싶습니다. 놀라우신 하나님에 대하여서 그는 저에게 가장 친절한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안내자입니다. 이러한 기쁨을 누리는 것이 너무 큰 욕심일까요? 아니면 그저 몽상에 불과할까요? 아니면 성도가 누릴 수 있는 중요한 영적 각성일까요?
다음 책으로는 무엇을 읽어야 할까 생각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읽고 정말 좋았던 영광의 무게를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루이스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그러나 넘치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성도의 삶을 계속 걸어갈 수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저에게 허락하신 큰 복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주의 사랑 날 완전케하네 주의 사랑 날 새롭게하네 끝이 없는 주의 사랑만이 내 영혼 자유케하시네
주의 사랑 날 완전케하네 주의 사랑 날 새롭게하네 오 주님 나의 삶을 통해 주 영광 나타내소서
2. 곡 소개
이 곡은, 마커스 찬양팀, 그리고 함부영씨의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시편 84편을
바탕으로 한 곡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와 그분과의 깊은 교제를 사모하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주님의 완전한 사랑 안에서 영혼이 회복되어, 평생
동안 자신의 삶을 통해 오직 주님만을 드러내고자 하는 갈망을 담은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시편 84: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84:1 For the director of music. According to gittith. Of the
Sons of Korah. A psalm. How lovely is your dwelling place, O LORD Almighty! 84: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84:2 My soul yearns, even faints, for the courts of the LORD; my
heart and my flesh cry out for the living God. 84: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84:3 Even the sparrow has found a home, and the swallow a nest
for herself, where she may have her young--a place near your altar, O LORD
Almighty, my King and my God. 84:4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 84:4 Blessed are those who dwell in your house; they are ever
praising you. Selah
84:10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84:10 Better is one day in your courts than a thousand
elsewhere; I would rather be a doorkeeper in the house of my God than dwell in
the tents of the wicked. 84: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84:11 For the
LORD God is a sun and shield; the LORD bestows favor and honor; no good thing
does he withhold from those whose walk is blameless. 84:12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개역개정) 84:12 O LORD Almighty,
blessed is the man who trusts in you. (NIV)
이 시편은, 예루살렘의 중앙 성소인 하나님의 집을 묘사하면서 시작이 됩니다. 그곳은 주님이 거하시는 곳이기 때문에 아름답고 기쁜 곳입니다. 바로 이것이, 신실한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며 갈망하는 이유입니다. 이곳이, 예배자가 실제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마음과 육체가 기쁨으로 노래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의 집이 환영하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심지어 참새와 제비도 그곳에서 집을 찾는다면, 겸손하고 신실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를 외면하실 까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부분은,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에 대하여 묘사합니다. 그는 진심으로, 하나님의 궁정에서 보내는 하루를, 다른 곳에서 보내는 천 날보다 더 좋아합니다. 그는 악인의 장막에 거할 때 얻을 수 있는 어떤 이익보다, 내 하나님의 집에서 섬기는 가장 낮은 직책을 더 좋아합니다. 이 시편에서 가장 좋은 부분은, 성전에서 환영 받는 것입니다. 신실한 사람들은, 정직한 사람의 삶에 대해 그들이 표현하는 만큼 다른 것들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참으로 축복 받았습니다!
J. I. Packer, Wayne Grudem, and Ajith
Fernando, eds., ESV Global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2012), 794-5.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여호와를 예배하고 그분을 가까이 하는 것이 인생에 최고의 기쁨이라는 고백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주님의 사랑이 나를 새롭게 한다라는 고백이다.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깊은 영적인 교제를 누리는 것은, 성도에게 주어진 가장 독보적인 즐거움과 감격이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감히 그것과 견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어떤 곳에서의 천 날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하루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고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는, 얼마나 큰 축복을
받은 것인가?
참새와 제비는
가장 작은 미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심지어, 그러한 미물일
지라도 하나님의 전에서 보금자리를 얻고 그분의 사랑을 얻는다. 마치 그런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부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풍성하고 따뜻하기 때문에, 그분을 간절히 찾고 갈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풍성한
은혜를 부어 주신다.
세상에서 무시 받고 절망하고 지친 사람, 자신의
죄로 인해서 괴로워하고 낙망한 사람이 이 은혜의 주님을 찾을 때에, 세상이 줄 수 없는 완전한 용기와
소망을 주님께로부터 얻게 되는 것이다.
바라기는 이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을 가까이하는 것의 독보적인 가치를 새롭게 경험하기를 원한다. 또한 우리의 삶 전체가 오직 주님을 향하며, 주님의 사랑 안에서, 주님을 풍성하게 드러내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은혜를 누리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삶이 어렵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누구나 자신의 삶에 대해서 아파하고 고민할 것입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너무나 비관적으로 보이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감사보다는 고통과 비참함이 가득한 것이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삶을 인정합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때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선포합니다.
“인생의 때”에 대한 가장 유명한 본문의 설교를 준비하면서, 마음이 두근거렸습니다. 물론 설교할 것이 기대가 된 것도 있지만 긴장이 되었습니다. 혹시 지난 주처럼 차가 도로에 서면 어떻게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의 저의 때는, 하나님께서 그 시간에 도로에서 떨면서 주님께 기도하도록 하신 때입니다. 그리고 또 오늘은, 무사히 설교단에 서게 하셨습니다.
어린 시절보다는 저의 내면이 참 강해졌지만, 또 한편으로는 더 연약해진 듯 합니다. 마음에 갈등과 낙심하는 일들이 있었는데, 이번 설교를 통해서 제 자신이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그것이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전도서 설교는 한 구절 한 구절의 의미보다는, 전체적인 맥락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그리고 주님을 향한 참된 믿음으로 영원하신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것은, 동일한 본문을 보면서도 어떤 스터디 바이블들은 한 없이 비관적이고, 또 어떤 책들은 매우 긍정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본문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희망적이고 또 영적인 소망들을 담고 있다고 이해했습니다.
스터디 바이블들이 비슷한 내용들을 담고 있었지만, 평소에 자주 보지 않던 Defenders’ Study Bible의 내용이 은혜롭고 참 좋았습니다. 모든 성경 구절에 대한 설명이 있지는 않지만, 내용이 참으로 충실하고 또 은혜롭습니다.
Ecclesiastes 3:1
a time to every purpose. In Ecclesiastes 3:2–8 of this chapter there is a
remarkable listing of twenty-eight “times,” arranged in fourteen pairs of
opposites (e.g., “a time to be born, and a time to die”). Every timed event has a “purpose” (Ecclesiastes 3:1) and every
thing is “beautiful” in God’s time for it (Ecclesiastes 3:11). Even when in our time,
we may not understand how a particular event can be either purposeful or
beautiful, we can have faith that, in God’s time, it is (Romans 8:28).
Although it is beyond our finite comprehension, it is still bound to be true
that the infinite God “worketh all things after the counsel of His own will” (Ephesians 1:11).
Welwyn Commentary 전도서 주석은 사실 언제 구입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전도서주석을 찾아보니 이미 가지고 있더군요. 다만 John Currid의 주석을 좋아하는데 내용이 굉장히 탄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덕분에 1절에 대한 이해부터 자신 있게 논지를 펴 나갈 수 있었습니다.
The opening line of this verse
literally reads, ‘To everything there is an appointed time.’ Some translations render ‘appointed time’ as ‘season,’ and that certainly is a proper
translation of the word. However, it often is better translated as a reference
to a set, fixed time. For example, Ezra tells the people of Judah to come to
Jerusalem as follows: ‘Let all in our cities who have taken foreign wives come at
appointed times’ (Ezra 10:14). Also, Nehemiah says that he established the work
of the priests and Levites in Jerusalem and that he ‘provided for the wood offering
at appointed times’ (Nehemiah 13:31). The Hebrew word in those cases is not
referring to some generic time or season, but to definite times. Thus, it is
likely that the proposition of the verse in front of us simply means that for
everything that happens there is a set, fixed, and appointed time.
11절과 12절에대한이해는, 최근에들었던팀켈러목사님의로마서설교에먼저영향을받았습니다. 영원을사모하는마음은모든이들이일반은총의관점에서는가진것이지만, 그러나그리스도안에서참된하나님의자녀의특징으로더깊이들어갔습니다. 그리고 12절에말씀처럼, 참으로기뻐할수있는사람은오직그리스도안에있는자만이그러할수있다고논리를전개했습니다. 이부분은어떤주석의도움을받지않고제안에서묵상한내용을풀어낸것입니다.
14절과 15절은시간관계상거의언급하지않았습니다. 특별히 15절은해석의관점이상당히복잡하게얽히고있어서, 새벽에간단히설명하기는무리라고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14절에대한과학적이해는다음에언젠가이본문으로설교하게된다면충분히주목할만한부분이었습니다.
Ecclesiastes 3:14
shall be for ever. In addition to emphasizing
the immutability of God and His works, this passage anticipates the great
scientific principle of conservation (conservation of energy, mass, momentum,
charge, etc.). Nothing is now being either created or annihilated. An entity
may be changed in character and even deteriorate in quality, but it must be
conserved in quantity.
저도 저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때를 분명하게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정하시고 저의 미래를 이끌어가십니다. 비록 제 눈에는 많은 부분이 답답하고 아쉽고 때론 슬프지만,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소망과 은혜와 기쁨을 누립니다. 제가 설교한 그 내용에 제 자신이 먼저 진실하기를 원합니다. 저 역시 은혜를 누리며, 주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 전도서 3장 1-15절설교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궁금증을 다루고 있는 본문입니다. 아마도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이런 궁금증이 있을 것입니다. 도대체 내가 원하는 일은 언제 이루어질 것인가? 예를 들어서, 내 사업은 언제 성공하게 될 것인가? 내 자녀는 언제 결혼하게 될 것인가? 이 고난의 시간은 언제 지날 것인가? 이런 궁금증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그러한 "언제"라는 궁금증에 대한 중요한 답변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 눈을 사로잡는 것은 "범사에" 라는 표현입니다. 범사라는 것은 모든 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우리가 언급했던 모든 질문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다 포함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2절부터 8절까지 말씀하십니다. 이 부분을 읽어보면 어떤 규칙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2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치 이런 것처럼, 다양한 경우의 처음과 끝을 포함해서 8절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14개의 상반된 상황에서 발생하는 28개의 특정한 시간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체라는 개념"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14와 28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완전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자주 사용되는 7의 배수입니다. 쉽게 말해서 이 안에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점은 분명한 것입니다. 2절에서 8절까지는 1절의 말씀을 풀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인생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에는 누군가가 정해놓은 때가 있다 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은 아무 목적 없이 아무런 방향 없이 우연히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혹은 세상 안에 속해 있는 어떤 존재가 그 때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뛰어넘으시는 창조주이신 여호와께서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그 정확한 때를 정하신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9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9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라고 말씀하십니다. 언뜻보면 이 말씀은 굉장히 부정적이고 염세적인 분위기를 보이고 있습니다. 앞에 내용을 생각하면 그렇게도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천하의 모든 일들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고 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일어난다면 그거 일 좀 해봐야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렇게 들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10절에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10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행해야 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주신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행하기 위하여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일이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결정을 넘어설 수는 없다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11절에 너무나 감사한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우리 인간은 본능적으로 좋은 쪽을 항상 바라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 보다는 당연히 생명을 원하고 전쟁보다는 당연히 평화를 원하고 우는 것 보다는 당연히 웃는 것을 원하는 것이지 잃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을 누가 깨닫는 것인가” 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나 깨닫는 내용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상식과 본능을 아득히 뛰어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11절에 보니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이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특징입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것을 본능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거절하는 사람까지라도 이런 영원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 영적인 아주 기초적인 개념들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더 깊이 들어가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 라는 이 영적인 놀라운 진리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신뢰하는 자들에게만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8장 39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이 놀라운 고백,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 라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부어지는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을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놀라운 믿음의 고백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12절과 13절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3:12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3: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늘 말씀의 겉모습만 보면서 굉장히 부정적인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인간이 그렇게 바라고 소망하고 갈망하는 것이 있지만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며 인간이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라는 말씀 때문에 그렇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초대 교회의 순교자 폴리캅 감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폴리캅이 박해 가운데 잡히게 되었습니다. 로마의 황제를 주님으로 부르고 희생 제사를 드리라고 협박 당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욕하면 자유를 얻을 것이라고 회유 당했습니다. 그때 이렇게 그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86년 동안 그분을 섬겨왔지만 그분은 내게 절대로 해를 입히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나의 왕이요 나의 구주이신 그분을 욕할 수 있겠습니까?”
불에 태워서 죽이겠다는 협박 앞에서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한 시간 동안 타다가 잠시 후면 꺼져버리는 불로 나를 위협하고 있지만, 경건치 못한 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심판과 영원한 형벌의 불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지체하고 있습니까? 당신이 원하는 대로 속히 시행하시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는 확신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의 안면에는 은혜가 충만했다 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