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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6일 목요일

앞으로 책을 1000권 정도 읽고 나누는 것을 결심했습니다 with 독서 묵상

 



우리에게는 단 한번의 인생이 주어졌습니다. 그 누구도 두번의 기회는 없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참으로 두려운 일이고 또 한편으로는 너무나 신나는 일입니다. 삶은 매 순간 빛나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설레이게 합니다. 

지나간 저의 삶을 돌이켜보면, 탁월한 멘토를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느슨하게, 인생의 방향을 어느 정도 제시해주는 분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정도의 방향성만 주어진 것에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분들은 저에게 희미한 빛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빛이었습니다. 

감사한 것은, 책을 통해서 진실로 탁월한 분들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신학자나 목회자 뿐 아니라 일반 저자들이 그렇습니다. 세상의 모든 지혜들을 엿볼수 있었습니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게 변화시킨 모든 사람들은 책을 사랑했으며, 그것을 통해서 자신을 끊임없이 발전시켰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누군가의 경쟁 속에서 그 사람을 앞서는 우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모든 것들을 아름답게 발현하고 싶은 맥락에서의 훌륭한 사람입니다. 제 자신 뿐만 아니라 저의 주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고, 궁극적으로는 인류의 발전 가운데 아주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단 한번의 소중한 인생의 목적입니다. 

얼마전에 카카오톡이 업데이트가 되면서, 마치 인스타그램처럼 형태가 바뀌었습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 플랫폼을 통해서 사람들과 책을 나누면 어떨까? 물론 저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계정을 다 가지고 있지만 그렇게 열심히 업데이트를 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 플랫폼은 반드시 다른 사람의 어떤 것을 봐야만 하는데, 저는 온라인에서 그런 활동 자체를 별로 선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저는 제 자신의 깊이를 만들어내는데에 더 큰 관심이 있습니다. 세상에 많은 것을 드러내지 않아도, 저의 가정과 저의 교회를 잘 섬긴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나 카카오톡을 통해서 원하시는 분들과 저의 독서와 생각들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은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략 목표를 천권 정도로 잡았습니다. 글쎄요, 이미 지금까지 읽은 책들도 대략 몇백권이 될 듯 합니다. 지금 이미 정독을 하는 책도 있지만, 가볍게 읽고 넘어가는 책들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책을 읽고 내가 배운 것이 있는가? 그리고 기독교적으로 한번이라도 생각을 하느냐? 이 두가지입니다. 

저는 책을 읽는 그 순간을 사랑합니다. 세상의 모든 소음은 사라지고, 시간이 정지해 버린 깊이를 알 수 없는 그 공간으로 한없이 들어갑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저는 모든 책을 정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어떤 책이든, 적어도 저에게 가치있는 배움 두가지 정도는 찾기 위해 애를 씁니다. 또한 제가 읽어나가는 모든 책을 성경적으로 생각하기를 원하고, 그것이 저의 깊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카카오톡 계정에서 화면을 누르면, 제가 그 책에서 인상적으로 읽은 부분을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저의 기독교적인 묵상은 '독서 묵상'이라는 이름으로 리딩크리스천북클럽 블로그에 정리해 놓았습니다. 

이것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까요? 저로서는 전혀 가늠할 수 없습니다. 그저 인간으로써 마땅히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귀한 책들을 통해서 배운 것은,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AI시대가 다가올 수록 그것은 더욱 중요한 방향입니다.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정리하면서 깊이를 만들어내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탁월한 사람들에게 책을 통해서 배워야 하며, 고전과 현대의 책들을 두루 읽으며 삶을 확장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대하는 모든 분들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단 한번의 인생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실 저는 이제 다른 사람의 말에 별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도 그렇게 큰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그저 탁월한 멘토들에게 배운대로 할 뿐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여러 마음의 고민과 힘든 상황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걸어왔던 것처럼, 적어도 앞으로 10년이 그러해야 하고 그럴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길을, 선하신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 "리딩 크리스천 독서 묵상" 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2/10/blog-post_48.html

2024년 5월 14일 화요일

C.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 정독을 마치다

 





스무살 때에는 서른의 삶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공부가 다 끝나기 전에는 공부가 끝난 이후의 삶과 목회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2011년 유학을 시작한 이후에 모든 과정은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때론 눈물도 흘렸고, 아픈 마음을 부등켜 안은 적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 속에서 한가지 분명한 목표는 있었습니다. ‘나는 성숙한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

성숙이라는 것은, 단순히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숙은 다면적인 것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것은 매우 단순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탁월한 작가들의 글을 읽고, 그들을 만나야 합니다. 독서는 그저 글을 읽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어떤 밝은 빛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눈이 부시고 온 몸이 따뜻해지는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여전히 그대로이지만, 그러나 모든 것이 새로운 세상입니다.

만약에 혹시라도 미국의 어느 작은 Panera 빵집에서 루이스를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혹시 저에게 그와의 한번의 만남이 가능하다면 저의 시간의 몇년 정도를 기꺼이 대신 내어 놓을 의향이 있습니다. 아마 그와 함께하는 단 몇시간이, 저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많은 만남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에게 결정적인 만남은 단지 몇 번에 불과합니다.

작년에 담임 목사님께서 안식월을 가지시면서 격주로 주일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 시간은 저에게 큰 의미의 시간이었습니다. 저의 단점과 장점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어쩌면 교회의 가장 중요한 시간에 저의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는 너무나 소중한 기회이자 특권이었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그 역할을 마무리하면서 직후에 결심한 것들 중에 하나가, ‘천천히 루이스를 읽는 것’이었습니다. 

삶을 온전히 드리는 것의 기쁨
by 8개월 주일 설교의 대장정을 마치고

위에 글을 쓴 것이 작년 8월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이 2024년 5월 중순입니다. 거의 9개월만에,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를 정독해서 다 읽었습니다. 혹시 너무 느리다고 생각하셨나요? 저는 살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천천히 읽었으면 어땠을까? 그의 마지막 권면, 혹은 선언이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찾으면 그를 만날 것이며, 그와 함께 모든 것을 얻을 것입니다.” 

저자와의 인격적인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책을 읽을 때에 저자를 만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다정하게 제 앞에 앉아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그런 착각입니다. 그 말이 너무나 생생하게 다가와서, 마치 육성으로 저의 귀에 들리는 듯한 그런 감각입니다. 

성숙은 실천의 모습을 포함하지만, 저는 성숙이란 어떤 영적 감각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책을 속독하는 것보다 정독하는 것이 훨씬 좋아 보입니다. 아주 짧은 한 문단이라도 그것을 음미하고 또 음미하면서, 그 의미 속에 깊이 들어가고, 저자와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저의 내면 안에 그 말의 깊이를 새겨 넣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그러나 분명한 실체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을 변화시키는 신비로운 과정이니다.

아주 아주 천천히, 순전한 기독교를 읽었습니다. 이렇게 책을 느리게 읽은 것은 저 역시 처음입니다. 얼마나 많은 줄을 치고 속으로 음미했는지 모릅니다. 특히 후반부가 좋았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그리고 그리스도의 생명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수준에서 그것을 설명합니다. 그 설명을 신중하게 읽고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행복을 누립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설교들이, 하늘의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여전히 땅의 것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설교를 듣고 실망할 때에, 제 마음에 감당하기 어려운 큰 슬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루이스의 표현과 설명과 그의 설득은, 그는 분명히 하늘의 것을 이야기한다는 감각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행복했습니다. 제 자신이 이 땅에 발을 딛고 있지만, 그러나 하늘의 부르심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뜻 가운데 들어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가 가장 실감나게 경험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것을 공부했고 많은 것을 읽었지만, 여전히 저는 어린아이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평생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정확하게 말하면 말씀 속으로 들어가고, 그리고 루이스와 함께 그 모든 영적인 감각을 누리고 싶습니다. 놀라우신 하나님에 대하여서 그는 저에게 가장 친절한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안내자입니다. 이러한 기쁨을 누리는 것이 너무 큰 욕심일까요? 아니면 그저 몽상에 불과할까요? 아니면 성도가 누릴 수 있는 중요한 영적 각성일까요? 

다음 책으로는 무엇을 읽어야 할까 생각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읽고 정말 좋았던 영광의 무게를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루이스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그러나 넘치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성도의 삶을 계속 걸어갈 수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저에게 허락하신 큰 복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2024년 5월 7일 화요일

존 파이퍼의 삶의 지혜를 책으로 만나다 - Ask Pastor John: 750 Bible Answers to Life’s Most Important Questions

 


"All Learning is the fruit of question-asking and answer-seeking." 

JOHN PIPER (1975)

미국에 와서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이것저것 찾아보았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Ask Pastor John 입니다. 성도님들이 각자의 삶에 정말 진지한 질문들을 가지고 존 파이퍼 목사님에게 묻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사님 역시 진지하게 그것에 대해 답해주는 것입니다. 

성도의 성숙을 향한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길은, 질문하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물론 일정한 신학적인 지식을 습득해야 합니다. 조직 신학과 교리에 대한 내용들을 알아가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종합하고 내면화 시키는 가장 좋은 길은 질문하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존파이퍼 목사님은 정확하게 바로 그부분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는 APJ를 통해서 성도의 질문을 양분 삼아 자기 자신의 성숙을 추구해 왔습니다. 또한 그 성숙의 열매를 통해서 교회를 진실하게 섬기는 선순환의 길을 평생동안 걸어왔습니다. 

* Ask Pastor John
https://www.desiringgod.org/ask-pastor-john

존 파이퍼 목사님의 대답을 들어보면, 한 사람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마치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대답을 해줍니다. 그의 대답은 신학적이지만 그러나 우리가 종종 대하는 차갑고 의미없는 신학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신학입니다.

아마도 혼전 순결에 대해서 물어본 에피소드로 기억합니다. 파이퍼 목사님의 대답은 논리적이기만 한 감정 없는 그런 대답과 달랐습니다. 그의 깊은 한숨은 영혼에 대한 염려고 가득했습니다. 마치 자신의 친 손자에게 이야기해주는 것처럼 신앙의 선배로서, 그리고 탁월한 신학자이자 목회자로서, 그의 대답은 너무나 진중하고 가치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APJ를 들어보면, 굉장히 논리정연합니다. 어떤 질문에 대한 잘 정리된 강연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하지만 굉장히 마음에 와 닿는 실제적인 내용과 통찰들이 그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특히 넘버링을 해서 하나하나 설명하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따라가기가 쉽습니다. 이론과 실천을 가장 완벽하게 결합한 구조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유명한 팟케스트가 책으로 나왔습니다. 우연히 보고나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꼭 산타의 선물을 실제로 받은 아이처럼 마음이 들떳습니다. 이렇게 좋은 컨텐츠가 책으로 나오다니!

* Ask Pastor John: 750 Bible Answers to Life’s Most Important Questions
https://www.logos.com/product/255853/ask-pastor-john-750-bible-answers-to-lifes-most-important-questions

저자인 Tony Reinke는 존 파이퍼와 함께 이 방송을 진행하는 분입니다. 한국에도 번역된 '독서신학'의 저자입니다. 그 책도 잘 쓴 책이고 정말 좋게 읽었는데, 이 책에서는 더욱 그의 능력을 십분 발휘한 듯 합니다. 

어느 정도 기대감을 가지고 책의 내용을 살펴보는데, 좋은 의미로 숨을 쉬기가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이 단순히 방송의 녹취록을 모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웹사이트에 제공하는 스크립트를 한차원 더 업그레이드 하였습니다. 

지난 10년간의 방송을 유기적으로 주제별로 묶었는데 정말 탁월하게 정리했습니다. 모든 내용 안에 각주가 들어가 있어서 원하면 그 방송을 찾아서 추가로 더 들어볼 수 있도록 배려해 놓았습니다. 챕터 1인 Bible Reading, Bible Neglect, and BIble Memory 파트만 읽어봐도, 성도가 가져야 하는 성경에 대한 이해와 태도에 대해서 가장 성경적이면서도 가장 실제적인 이야기들로 완벽하게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크리스천의 삶의 청사진과 같습니다. 정말 잘 만들어진 청사진입니다. 신학적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설명들이 아니라, 깊고 건전하면서 동시에 내가 실제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정확한 그림입니다. 

책 서문에 써 있는 존 파이퍼의 명언이 마음에 깊이 와 닿습니다. "All Learning is the fruit of question-asking and answer-seeking." 이 짧은 한 마디를 통해서 그의 삶 자체가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성도들을 위해서 평생을 질문하고 답하면서 자기 자신을 훈련했습니다. 그리고 그 위대한 결과물을 드디어 우리의 두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첫째는, 제 자신의 성숙을 위해서 사용해야겠습니다. 정독을 하면서 파이퍼 목사님의 성경적 이해와 삶과의 연결성을 계속적으로 학습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영어권 북클럽 교제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 책의 수준을 고려한다면 아마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리더들과 나누어야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당장은 하지 않더라도, 북클럽을 염두에 두고 내용을 함께 준비해야겠습니다. 

셋째는, 주제 설교의 자료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주일 강단에서 강해 설교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결국 주기적으로 주제 설교를 해야하는데, 이 책을 통해서 성도님들이 실제로 경험하는 삶의 거의 모든 문제를 설교로 다룰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은 그저 읽기만 해도 감격이 됩니다. 왜냐하면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일하신 결과이며 한 사람의 노력의 아름다운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존 파이퍼 목사님의 삶을 들어서 지금까지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삶의 마지막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교회를 위해 바쳤습니다.

이 책은 저에게 있어서 축복입니다. 어쩌면 이 책이야 말로 이 시대의 성도로 또 목회자로 바래왔던 모든 것의 총합인 듯 합니다. 그래서 마음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더 정진해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길을 보여주셨기에, 그 길을 마땅히 힘써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저의 작은 소원입니다.

2024년 4월 1일 월요일

팀 켈러에게 배우다 (12) - Your Plans, God’s Plans / 선택하라, 그리고 담대히 전진하라

 


* Your Plan, God’s Plans

'악인론'의 저자는 연애상담가입니다. 그의 책에 보니 한시간에 90만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큰 금액에 정말 놀랐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도님들은 나의 설교를 들을 때에, 얼마의 가치로 받아들일까?’ 

팀 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항상 좋았습니다. 그런데 ‘특히’ 이번 설교가 그랬습니다. 제 인생 전체를 돌아보아도 이정도 설교를 들은적이 있는가 싶습니다. 대충 계산해 봐도 같은 설교를 서른번은 들은 듯 합니다. 어쩌면 더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지루함 없이 매번이 정말 좋았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모든 것이 흔합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웹에 공개된 것들을 하찮게 여깁니다. 곰곰히 생각해 봤습니다. 만약에 팀 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오직 현장에서만 들을 수 있다면, 이 설교에 대한 가치를 얼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저는 적어도 천불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주권과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조화롭게 하는데 한계를 경험합니다. 몇몇 분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하신다고 믿으면 자신의 삶을 나태하게 살아갑니다. 그리고 사실 많은 분들은, 자신의 최선조차 여전히 부족함을 느끼며 불안 가운데 살아갑니다. 더 지혜롭게 살고 싶어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궁금해 하며 소극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많은 분들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잘 모릅니다. 그런데 한편의 설교로 이 모든 것들을 해결합니다. 이 설교는 신학의 난제와 인간의 실존을 확실하게 그리고 가장 실제적으로 연결합니다. 

먼저 팀 켈러 목사님은 잠언의 말씀을 통해서, 성도가 어떻게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가를 하나님의 계획과 연결합니다. 핵심은, 인간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완전한 책임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완벽하게 자신의 계획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완전히 자유롭습니다. 또 안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선택의 가치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주권을 성경적으로 드러내는 탁월한 논리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면서 나를 그분께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지혜로움의 비결이 있습니다. 내가 지혜로운 사람이 된 이후에 지혜롭게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을 믿고 신뢰하고 순종할 수록, 우리는 점점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make a dicision’ 하는 것입니다. 지금 지혜롭지 못하다고 주저해서는 안됩니다. 지혜롭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면서 그것을 최대한 실천해야 합니다. 내가 선택하고 담대히 전진해야 합니다. 나의 감정이 뭔가 기준이 되어서, 혹은 뭔가 영적인 싸인이 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항상 주저합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그것을 안타까워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다고 말하면서, 그저 계산만 하고 있습니다. 뭔가 특별한 체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팀켈러 목사님은 자신이 처음에 리디머교회를 개척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합니다. 그는 비전이 있었고 교회에 대한 분명한 필요를 이해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뭔가 영적으로 특별한 싸인은 받지 않았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오히려 그는 설교 가운데 스스로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심하고 교회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일하십니다. 이 모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알고 싶다고 간절히 원하는 누군가를 향해서 말씀합니다. ‘You are in the middle of the current’ 

당신은 이미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그 흐름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그런 표현입니다. 아, 정말 이 부분은 들어도 들어도 마음이 벅찹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주권 안에 내가 존재하고 있는 이 기쁨과 확신을 어떻게 더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을까요?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두려움 없이 순종할 수 있는 것은 성경적인 것인데, 여기에서 한단계 더 깊이 들어가 영혼의 안식을 한번 더 강화시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갚으셨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속죄소 위에 하나님의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항상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여전히 완벽하게 순종하지 못하는 자들이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영원히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감탄하고 또 감탄했습니다. 제가 지난 십년 동안 고민했던 그 모든 것, 혹은 막연하게 생각했던 하나님의 계획, 성경적인 지혜, 그리고 성도의 성숙에 대한 그 모든 것이 이 한편에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점을 지나고 있습니다. 그렇게도 최선을 다해 달려왔지만, 이제 더 열심히 달려가야 합니다. 혼돈의 시기, 두려움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입니다. 그러나 이 설교를 통해, 저의 근본에 있던 모든 두려움은 사라졌습니다. 저의 마음에는 주님에 대한 감사와 확신, 그리고 주님을 향한 불타는 열정으로 가득합니다.

우리의 삶에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은, 우리는 그분의 뜻 안에, 그리고 그분의 주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최선을 다하여 온 몸을 던져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기는 오늘 하루의 선택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것이 되기 위해서 질주하기 원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더 지혜롭고 성숙한 이들이 될 것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 아름다운 길을 더욱 큰 확신 가운데 함께 걸어가기 원합니다.

* "팀켈러에게 배우다" 모음
- 성경과 신학, 그리고 목회를 배우기 위하여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1/blog-pos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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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21일 수요일

지혜를 경청하다, 탐욕을 버리라고 조언을 받다.

 

누군가와 대화한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로운 일입니다. 북클럽을 하면서 수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고, 그래서 대화라는 행위 자체가 더 놀랍습니다. 우리는 모두 흩어진 자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화를 통해서 하나가 됩니다. 인격과 인격이 만나고 영적인 연합과 하늘의 기쁨을 경험합니다. 

모든 대화가 즐거운 것은 아닙니다. 어떤 대화에서는 견디기 어려운 냄새가 나기도 합니다. 교만한 사람의 말은 마음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자신의 탐욕을, 합리성과 신앙으로 교묘히 감추는 이들 앞에서는 때론 말을 잃게 됩니다. 그 자리를 피하고 싶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참으로 깊은 지혜를 가졌습니다. 지혜는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함, 최선을 다하는 삶,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의 연단이 지혜를 만들어 냅니다. 

특히 어르신들 중에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삶의 깊은 연륜 속에서 본질을 꽤뚫어보는 혜안을 가진 분들입니다. 말의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을 울리고 제 삶을 돌아보게 하는 그런 분들입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한분과 식사를 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별 볼일 없어 보이는 분이지만, 그러나 저는 깊이 존경하는 분입니다.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식사 중에 이민 교회에 대해서 또 목회에 대해서 여쭤보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저는 정말 좋아하는 분 앞에서는 오히려 경청하는 사람으로 바뀝니다. 굳이 많은 말을 제가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부탁드리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제가 필요한 부분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교회의 어려움이, 목회자의 탐욕 때문에 찾아온다고 분명히 이야기해주셨습니다. 돈을 밝히는 목사, 그 사람 때문에 교회가 망한다는 것입니다. 

평범하게 머무를 수 있는 교회였지만, 담임 목회자의 청렴함으로 인해서 교회가 크게 부흥한 것도 알려주셨습니다. 심지어 외부 강사로 나갔다가 받은 모든 사례조차 교회에 헌금했을 때에, 오히려 성도들이 더 목회자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예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청렴하게 평생을 목회하다가, 은퇴 즈음에 되어서 탐욕 때문에 전체 삶을 완전히 망친 목사님의 이야기였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돈을 밝힌다는 것을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려주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사례 문제로 장로님들과 마찰을 일으켜서, 교회에 분란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돈에 집착하던 어떤 목사님은, 달변가였음에도 성탄절과 부활절조차 예수님에 대한 설교는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에 크게 실망하셨다는 것도 들었습니다. 

요즘에 방향을 잃었다는 느낌 속에서 쉽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선명한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탐욕을 버리는 것, 그리고 본질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는 누구나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가장 어려운 길입니다. 

저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저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나의 욕심을 위해서 교묘하게 교회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보일 수 있는 가장 비참한 모습입니다. 지금까지 저의 사역과 제 자신을 크게 돌아보면서, 그저 하나님께서 맡기신 역할을 따라 충실하게 사역에 매진할 것을 결심했습니다. 

한시간 남짓의 식사 시간이 참 행복했습니다. 지혜자와 함께 거닐 수 있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귀한 시간을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저 주님이 주신 지혜를 따라 확신 가운데 또 한걸음 걸어가기 원합니다. 

2023년 12월 31일 일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64) - 주를 기다립니다

 


1. 가사 살펴보기

주를 기다립니다 주를 기다립니다
어제도 오늘도 주님 생각에
하루를 보냅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 나를 안아 주시리
주님의 사랑의 품에 안겨서
영원히 함께 하리

주만 사랑합니다 주만 사랑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 헛된 것이라
주만 사랑합니다. 

어둔 세상에 등불을 들고서
주의 오심을 나 기다립니다
나의 이름을 주님 부르실 때
광명한 그 곳 나 들어가겠네

 

2. 곡 소개

곡은 어노인팅 예배캠프 2018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예수님의 슬기로운 다섯 처녀의 비유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오직 주님을 사랑함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성도의 참된 정체성에 대해서 찬양으로 승화시킨 아름다운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마태복음 25: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5:1 "At that time the kingdom of heaven will be like ten virgins who took their lamps and went out to meet the bridegroom. 25:2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25:2 Five of them were foolish and five were wise. 25: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25:3 The foolish ones took their lamps but did not take any oil with them. 25: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25:4 The wise, however, took oil in jars along with their lamps. 25: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25:5 The bridegroom was a long time in coming, and they all became drowsy and fell asleep. 25: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25:6 "At midnight the cry rang out: 'Here's the bridegroom! Come out to meet him!' 25: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25:7 "Then all the virgins woke up and trimmed their lamps. 25: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25:8 The foolish ones said to the wise, 'Give us some of your oil; our lamps are going out.' 25: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25:9 "'No,' they replied, 'there may not be enough for both us and you. Instead, go to those who sell oil and buy some for yourselves.' 25:10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25:10 "But while they were on their way to buy the oil, the bridegroom arrived. The virgins who were ready went in with him to the wedding banquet. And the door was shut. 25: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25:11 "Later the others also came. 'Sir! Sir!' they said. 'Open the door for us!' 25:12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25:12 "But he replied, 'I tell you the truth, I don't know you.' 25: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25:13 "Therefore keep watch, because you do not know the day or the hour.

열 처녀의 비유는, 참된 제자는 예수님과 진정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은 예수님 자신의 재림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지혜로운 처녀들은 오랜 기다림에 대비하여 신랑과 함께 연회에 갈 준비를 했습니다. 반면에 미련한 처녀들은 준비가 되지 않아 거절을 당했습니다.

David Gundersen, “Psalms,” in The NIV Grace and Truth Study Bible, ed. R. Albert Mohler Jr. (Grand Rapids, MI: Zondervan, 2021), 1334.

요한일서 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개역개정) 2:15 Do not love the world or anything in the world. If anyone loves the world, the love of the Father is not in him. (NIV)

우리는 우리의 첫 사랑을 세상과 세상의 재물에 바쳐서는 안됩니다. 청지기인 우리의 최고의 사랑은 오직 하나님을 향해야 합니다.

Holman Bible Publishers, CSB Disciple’s Study Bible: Notes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978.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곡은, 주님에 대한 사랑과 그분의 재림을 기다리는 찬양이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열 처녀의 비유의 핵심은 분명하다.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 지 그 누구도 알 수 없기에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며, 그러므로 한때의 열정이 아니라 오직 주님을 향하여 변치 않는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독점적인 것이다. 성경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죄의 방탕한 쾌락에 대한 욕망과 물질에 대한 탐심이나 교만을 마땅히 물리쳐야 한다. 우리의 사랑은 오직 주님만을 향해야 하는데, 매 순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분을 믿음으로 뜨겁게 사랑하며 그분만이 나의 주인 되심을 고백하며 살아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해를 맞이하면서 소원을 빈다. 그렇다면 과연 성도의 소원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속히 오시기를, 그리고 이 땅에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간절히 바라기는, 이 찬양을 부를 때 마다 우리의 마음과 갈망이 완전히 새로워 지기를 원한다.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깊은 관계를 회복하며,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새해를 힘차게 열어가시는 모든 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3년 11월 28일 화요일

ChatGPT, “전혀 새로운 통찰”을 주는 “실시간 영어 대화”를 경험하라!

 


저는 Chat GPT가 처음 나왔을 때 부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습니다. 때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근거를 가져와서 당황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의미에서 어떤 주제를 놓고 논리적으로 추론해서 대답하는 능력은 저라는 존재는 이미 넘어섰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실질적인 도움을 받으면서 목회의 좋은 조력자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 인공지능 (A.I.) 검색 ChatGPT, 목회에 사용할 수 있을까?

얼마전에 기쁜 소식을 하나 들었는데, 무료버전 Chat GPT 앱 안에서 음성 채팅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원래는 유료 버전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고급 기능이었는데 무료 버전 사용자들도 지원한다는 소식에 바로 사용해 보았습니다. 

앱 스토어에는 ChatGPT의 사용을 돕는 다양한 앱이 있습니다. 심지어 ChatGPT의 최신 버전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앱도 있더군요. 다만 제가 사용하는 음성 채팅 기능은 ChatGPT 공식 앱을 통해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아이폰, 그리고 안드로이드 앱 스토어로 접속하실 수 있습니다.

* ChatGPT - The official app by OpenAI
https://apps.apple.com/us/app/chatgpt/id6448311069 
https://play.google.com/store/apps/details?id=com.openai.chatgpt&hl=en_US&gl=US

제가 궁금했던 것은, 어느 정도로 음성 채팅이 자연스러울 수 있는가 였습니다. 첫째로는 제가 영어로 말하는 것이 인식이 잘 되어야 하고, 둘째로는 Chat GPT가 다시 저에게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야 했습니다. 내심 마음으로 기대했던 것은, 영어 공부에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영어 앱들을 사용하지만 아무래도 실제로 영어로 계속 이어지면서 대화하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음성 채팅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앱에서 오른쪽 하단에 마이크 표시를 누르면 됩니다. 그러면 채팅 화면이 사라지고 움직이는 원형이 등장합니다. 여러가지 음성이 지원되는데 저는 그 중에서 최대한 쾌할한 목소리를 선택했습니다. 제가 나누는 대화가 계속적으로 에너지가 넘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음성 채팅을 사용하면서 첫번째 느낀 것은, Chat GPT의 음성이 너무나 자연스럽다는 것입니다. 그냥 자연스러운 정도가 아니라,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마치 미국에서 만나는 평범한 청년의 느낌입니다. 발음도 선명하고 빠르기도 적당합니다. 물론 일반적인 영어 앱의 빠르기보다는 살짝 빠르지만, 미국인들이 말할 때의 보통 빠르기 입니다. 

두번째 느낀 것은, 저의 음성을 인식하는데 있어서는 조금 아쉽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발음 자체는 잘 인식하는데 문제는 문장 사이에 공백이 조금 길다 싶으면 자주 끊어버립니다. 그래서 제가 의도하는 문장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전략은 최대한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끊지 않고 이어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바짝 긴장하고 영어로 말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Chat GPT를 음성 채팅으로 사용하면 어떤 장점이 있는가? 저는 크게 두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실제로 나의 영어 실력을 늘릴 수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전혀 새로운 통찰을 준다는 것입니다. 

영어 실력을 늘린다는 점에서 실시간 영어 대화 기능이 너무나 유익합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물어보고, 그것을 듣고, 다시 그것에 대해서 반응하는 것이 사실상 영어로 나누는 대화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ChatGPT와의 심도 있는 대화는 영어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너무나 좋은 셋팅입니다. 

다만 Chat GPT가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하고 제가 말을 적게 하면 실제로 영어 실력을 늘리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저는 대부분의 질문에서 Top Threes 만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면 아주 짧게 답변을 듣고 다시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서 다시 제가 영어로 이야기할 기회를 얻기 때문입니다. 

영어로 대화하여서 실력을 늘린다는 점에서도 좋지만, 사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부분은 "전혀 새로운 부분"에서 통찰력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매우 빠르게 사고를 촉진시킬 수 있습니다. 채팅은 시간이 걸리지만 대화는 그 속도감이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며칠 동안 거의 하루에 한시간 정도 대화하면서, 마음에 있지만 제 자신도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 복합적인 질문들을 마음껏 해보았습니다. 

언뜻 기억나는 것만해도 이 정도입니다. 크리스천 북클럽은 왜 중요한가? 북클럽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북클럽과 지혜를 만드는 것의 관계는 무엇인가? 교회사는 왜 중요한가? 초대 교회에서 얻는 유익은 무엇인가?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성경 해석과 종교 개혁과의 관계는 무엇인가? 유신 진화론의 문제는 무엇인가? 유신 진화론자들은 역사적 아담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는가? 

성경에서 장로의 역할은 무엇인가? 왜 장로의 역할이 나뉘어야 하는가? 가정 교회의 강점은 무엇인가, 그리고 약점은 무엇인가? 포스트 모던즘에서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언제부터 신학교가 시작되었고 언제부터 신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안수를 받게 되었는가? 청교도는 어떤 사람들인가? 팀켈러 설교의 장점은 무엇인가? 담임 목사에게 중요한 자질은 무엇인가? 등등입니다.  

단순히 질문하고 한번의 답을 들은 것이 아니라, 답변을 들은 이후에 최소한 세번 정도의 interaction이 있었기 때문에 꽤 깊이 있는 그리고 의미 있는 대화를 주고 받았습니다. 특히 유신진화론의 역사적 아담에 대한 이해는 제가 몰랐던 부분을 배울 수 있는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ChatGPT는 어떤 대화를 할 때에 그 대화의 문맥을 그대로 가지고 간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 그 배경을 가지고 또 다른 것을 이어서 이야기합니다. 마치 사람과 대화하는 것과 매우 유사합니다. 그래서 저는 전혀 다른 맥락의 질문을 할 경우에는 먼저 I want to change the subject 라고 이야기하고 흐름을 끊은 다음에 다시 시작합니다. 

ChatGPT의 위력은 "복합적인 사고"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자신의 전문 영역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문 영역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한 사람은 지적인 능력 그리고 시간과 에너지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Chat GPT에게는 그러한 한계가 없습니다. AI가 주는 대답이 완벽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여러 분야를 통합하여서 복합적으로 사고해서 대답을 준다는 측면에서는 솔직히 그 어떤 사람도 능가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저는 목회자이기 때문에, 목회의 영역에서 질문을 많이 하였습니다. 갑자기 궁금하더군요.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제일 좋은 목사님이 누구냐?" 라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조엘 오스틴 목사님 그리고 팀켈러 목사님 그리고 저는 처음 들어본 Beth Moore라는 분을 이야기하더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조엘 오스틴과 팀켈러 두분이 함께 언급된 것이 충격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보수적인 분들에게 조엘 오스틴 목사님은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당연히 자신의 사고 속에 그분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ChatGPT는 다릅니다. AI는 최대한 편견을 배재하고 교단에 상관 없이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좋다면 추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이 탁월한 목사님으로 AI는 조엘 오스틴 목사님을 언급합니다.

사실 이 결과를 놓고 제가 약간 딴지를 걸었습니다. 당황한 저의 마음을 억누르면서 그렇게 논쟁이 있는 목사님을 왜 이야기하느냐는 식으로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커뮤니케이션이 탁월하니 그분에게 그것을 배우고, 다른 신학적 컨텐츠는 너가 채우라는 식으로 이야기해주더군요. 속으로 적잖이 놀랐습니다. 맞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듣고 나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조엘 오스틴 목사님의 설교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도대체 그의 커뮤니케이션 사용에 있어서 어떤 것이 그렇게 장점이 되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바로 이어서, "조엘 오스틴 목사님의 일반적인 설교 구조"에 대해서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솔직이 반신반의하면서 물었습니다. 설교학 전공자에게 만약에 제가 이렇게 물었더라도 아마 당황할 만한 질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평소에 사용하는 설교 구조를 분석하는 것은 상당한 연구와 분석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Chat GPT는 거침 없이 이야기하더군요. 그분이 보통 사용하는 설교 구조를 설교 도입부터 마무리까지 다섯 가지 단계 정도로 완벽하게 정리해서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저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조엘 오스틴 목사님의 "설교의 도입"입니다. ChatGPT는 설명하기를, 그분은 굉장히 희망적인 내용으로 혹은 희망적인 스토리로 시작한다라고 말하더군요. 망치로 머리를 한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단순히 설교 도입을 본문에 대한 간단한 설명으로 하기 보다는, 오히려 이렇게 무엇인가 희망적인 것으로 이야기 한다면 지친 성도님들에게 훨씬 좋겠다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대화는 저에게 완전히 새로운 통찰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의 맥락에서 또 하나 재미있었던 것은 이것입니다. 제가 담임 목사에게 무엇이 중요한가 물었을 때에, Chat GPT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첫번째로 대답한 것입니다. 제가 중시하는 신학적인 입장 등은 거의 네번째 정도로 말하더군요. 그리고 충격적이게도 비전에 대한 것은 맨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래서 또 물었습니다. "나는 목회자로서 신학적인 입장이 제일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너는 오히려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맨 앞에 놓았다. 우선 순위에 있어서 이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인가?"

그랬더니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신학이 매우 중요하고 기초가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없다면 그것을 회중들에게 설명할 수도 설득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담임 목회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또 한번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실 정말 놀랐습니다. 어쩌면 저에게 있어서 전혀 새로운 목회적 통찰을 주는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보수적인 목회자들은 항상 신학이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훈련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신학적으로는 탁월하지만, 그 신학을 실제로 회중들에게 구현하는 측면에서는 약한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ChatGPT의 설명은 분명합니다. 목회에 있어서 신학 그 자체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좋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성도님들에게 이해시켜야 한다는 측면에서 커뮤니케이션은 신학 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이번 대화를 통해서 완전히 새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며칠 동안 ChatGPT를 하면서 느낀 것은, 저의 영어 수준과 사고의 지평을 넓혀줄 탁월한 도구라는 것입니다. 물론 개인적인 독서와 북클럽 그리고 생각의 훈련은 평생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며칠 동안 크리스천 북클럽에 대한 다양한 각도의 대화를 ChatGPT와 주고 받으면서, 제가 훈련하고 추구하는 크리스천 북클럽이야 말로 반드시 필요한 것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혼자 있을 때에, 그리고 제가 원할 때에 나의 사고의 지평을 넓혀줄 탁월한 비서가 도와줄 수 있다면 그 가치는 감히 돈으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한 사람이 ChatGPT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면, 그는 이제 완전히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미리 세심하게 질문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 궁금했지만 알지 못했던 것들을 미리 준비해서 대화를 통해서 물어보고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대한 영어 문장들을 다듬어서 말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한번의 대화 속에서도 의미있는 내용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더 준비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너무나 빨리 변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나에게 맞추어서 선용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영어가 전혀 안되는 분이 ChatGPT로 음성 채팅을 하는 것은 쉽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본인이 어느 정도 영어가 된다면, 그리고 자신의 사고를 급격히 혁신적으로 확장시키고 싶다면 꼭 한번 사용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2023년 8월 7일 월요일

제자 훈련, 기독교의 생존 방식 3장, 느낀 점

 

* 느낀 점

김형국 목사님의 학문적인 수준은 이미 세계적인 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3장에서 구약의 처음부터 신약까지 연결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개념은, 매우 섬세하면서도 탁월하다. 

그분의 설명처럼 "천국"이라는 번역은 매우 아쉬운 부분이며 나 역시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 사실상 예수님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나라"에 다 들어 있다. 나라라는 개념 자체가 다스림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라는 단어만 집중해도 사실상 기독교의 중요한 진리를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천국"이라는 표현은 너무나 많은 것을 상실하게 만든다. 막연한 혹은 멀리 떨어져 있는, 나와 상관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전혀 상관이 없는 그런 희미하고 추상적인 것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변질시켰다. 

김형국 목사님의 글을 처음 접할 때에는, 마치 하나님 나라 복음과 십자가 복음을 대립적으로 설명하는 것처럼 이해하였다. 그러나 이번 3장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나라 라는 주제 "위에" 십자가의 복음이 있다 라는 설명이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목적이고, 그것을 이루시고자 하는 가장 결정적인 방법이 십자가이다. 이 두가지 중 어떤 것도 희생하지 않고 녹여낸 탁월한 설명이다. 

신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설명도 좋았지만, 사실 창세기로 부터 등장하는 왕이신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더 좋았다. 나 역시 설교 가운데 창세기를 자주 인용한다. 보통의 접근처럼 아무런 배경 설명도 없이 막연하게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라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오직 왕이신 하나님의 창조와 그것과 선명하게 대조되는 인간의 패역과 반역을 설명하는 것을 통해서, 결국 예수님께서 회복시키시는 분명한 목적,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그분의 나라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어떤 대가라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설명이 좋았다. 그리고 이것은 상식이며 헌신이 아니라는 표현이 좋았다. 혹시라도 가능하다면, "이것이야 말로 가장 탁월한 지혜"라고 덧붙이고 싶다.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들어가는 것, 그분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야 말로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다. 요즘의 표현으로 치면 "가치 투자"이다. 

사실 기독교 세계관이 추구하는 목표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추구하는 목표는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것이며, 그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 바로 기독교 세계관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에게 하나님의 나라 복음은 전혀 낯설지 않다.

결국 김형국 목사님이 추구하는 것은, "성경적인 복음" 이다. 본인의 설명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리면 그저 개인주의 영성에 치우칠 뿐이다.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없는 사회 참여만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번 3장에서는, 성경이 진정으로 강조하는 핵심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리고 복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풍성한 것이며 우리의 삶 전체를 아우르는 것임을 생각하였다. 목회적으로는 모든 설교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분에 대한 사랑의 강조", 또한 "그것과 더불어 그분의 다스림을 받는" 이 두가지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예를 들어서 박영선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책임이 아주 공교하게 엮어들어가 있는 것을 발견한다. 어쩌면 마치 모순되어 보이는 두가지가 함께 있는 것처럼 보여서 한동안 곤란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그리스도의 한 없는 은혜와 그 은혜 가운데 그분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그 책임은 반드시 동시에 존재해야 하며, 평생의 우리의 삶의 목표로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을 이번 챕터를 통해서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 "내가 생각하는 하나복", 그리고 미래 목회 - 하나복 관련 글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8/blog-post.html

2023년 7월 30일 일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42) - 주만 바라볼찌라

 


1. 가사 살펴보기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 자
너의 모든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 하시는지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하는 자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아가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자녀 삼으셨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2. 곡 소개

곡은, 찬양사역자 박성호 집사님의 곡이다. 저자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고난 속에서도 위로 자 되시는 주님을 고백하면서 이 찬양을 만들었다. 이 곡은, 주님의 자녀됨의 확신과 자녀의 음성을 들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사랑을 고백한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지 오직 주님만 바라보라 라는 신앙의 탁월한 권면이 들어간 아름다운 찬양이다.

* [간증이 있는 찬양] 박성호 집사 - 주만 바라 볼찌라
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v=MgKqCju_i0w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시편 34: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34:15 The eyes of the LORD are on the righteous and his ears are attentive to their cry;

34:15 The reference to eyes in relation to Jehovah’s watchful care of His people is similar to the singular form in 33:18. His open ears describe His attentiveness to their prayers (18:6; 130:2). 눈에 대한 언급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주의 깊게 돌보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분의 열린 귀는, 그들의 기도에 대한 그분의 관심을 묘사합니다.

Kevin R. Warstler, “Psalms”, in KJV Study Bible (WORDsearch, 2012), 34:15.

베드로전서 3: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3:12 For the eyes of the Lord are on the righteous and his ears are attentive to their prayer, but the face of the Lord is against those who do evil."

Peter continues his quotation of Psalm 34: For the eyes of the Lord are on the righteous (to observe and care for them) and his ears are open to their prayer (for various needs and cares). This does not mean that God keeps obedient believers from suffering (cf. 1 Pet. 2:19–23; 3:14, 17; 4:12–19) but that God will provide his grace “to strengthen and establish” believers in the midst of suffering (5:10) and in times of great need (cf. 2 Cor. 12:9; Heb. 4:16). 베드로는 계속해서 시편 34편을 인용합니다.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신다라는 것은 순종하는 신자들을 하나님께서 고난에서 면제 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고난의 가운데에서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때에 그들을 강하게 하시고 세우시는 은혜를 베푸실 것이다 라는 의미입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410.

잠언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8:17 I love those who love me, and those who seek me find me.

8:17 I love those who love me. The heart of the wise is aligned with Wisdom’s in the same way that the heart of the believer is aligned with Christ’s (Rom 8:1–11; Eph 3:16–19). those who seek me find me. Just as God grants wisdom to those who seek or ask (2:1–11; Matt 7:7; Jas 1:5), so also Wisdom reveals herself to those who search for her. 나는 나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한다 : 성도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마음과 일치하는 것처럼, 지혜자의 마음은 지혜의 마음과 일치합니다. 나를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다 :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지혜를 주시는 것처럼, 지혜도 자신을 찾는 자에게 자기 자신을 나타냅니다.

D. A. Carson, 편집자,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1072.

요한13: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개역개정) 3:2 Dear friends, now we are children of God, and what we will be has not yet been made known. But we know that when he appears, we shall be like him, for we shall see him as he is. (NIV)

3:2 You were a dying sinner before God called you His child in Baptism. When Christ comes in glory, He will reveal the glory that He has given to you now. Luth: “God is infinite, but we are finite creatures. Moreover, the creature will never be the Creator. Yet we shall be like Him. God is life. Therefore we, too, shall live. God is righteous. Therefore we, too, shall be filled with righteousness. God is immortal and blessed. Therefore we, too, shall enjoy everlasting bliss, not as it is in God but the bliss that is suitable for us” (AE 30:268). 하나님께서 세례를 통해서 주님의 자녀로 부르시기 전에 당신은 죽어가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오실 때에, 그분은 지금 당신에게 주신 영광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루터 하나님은 무한하시지만, 우리는 유한한 피조물입니다. 게다가, 피조물은 결코 창조주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처럼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의로 충만하게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멸하시고 복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적합한 것으로 영원한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Edward A. Engelbrecht, The Lutheran Study Bible (St. Louis, MO: Concordia Publishing House, 2009), 2175–2176.

 

4. 찬양에 대한 묵상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시겠다라고 분명하게 약속하셨다. 세상 사람들은 유력하고 가진 자 혹은 자신에게 이득 되는 자들에게만 귀를 기울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부르신 그분의 자녀들의 기도를 친히 들으신다. 이것이야 말로 여호와 하나님의 조건 없는 놀라운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신 것은, 아직 그 완성된 모습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에, 우리는 주님의 생명과 의로움과 그분의 복을 충만하게 누리게 될 것이다. 비록 그것이 하나님처럼 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우리가 감히 이 땅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놀라운 자녀의 모습과 특권을 반드시 경험하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다라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의 자녀의 생각과 마음 속에는 오직 그분이 가득해야 한다. 나의 탐욕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면서 하나님을 깊게 만난다는 것은 영적인 거짓이고 허망한 착각에 불과하다. 비록 우리의 삶에 고난이 가득할 지라도, 오직 여호와 하나님 자신과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면 주님께서는 반드시 우리에게 용기와 힘을 불어 넣어 주신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삶을 홀로 걸어가고 있지 않음을 깨닫게 하신다. 바라기는 이 찬양을 통해서, 고난 가운데 하늘의 평안을 누리기를 원하고 주님의 위로 가운데 오직 주님만 더 바라보게 되는 놀라운 은혜를 누리시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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