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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15일 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224) - 들어오라 지성소로 오라

1. 가사 살펴보기

들어오라 지성소로 오라 어린양의 보혈로써
찬양하며 주님 앞에 나와 보좌 앞에 경배하세 

왕의 왕 주께 거룩한 손들고
경배해 주님께 경배해 주님께

 

2. 곡 소개

곡은, Come Into The Holy of Holies 라는 곡의 번안곡이다. 이 곡은 구약의 배경 속에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지성소로 들어가는 장면을, 신약의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힘입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으로 탁월하게 해석한 곡이다. 또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거룩한 주님께 찬양을 올려드리겠다는 아름다운 고백을 담을 담고 있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히브리서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대제사장이 동물의 피로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의 피, 즉 그분의 죽음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Zondervan, NIV Application Bible Notes: Bringing the Ancient Message of the Bible into Your World (Grand Rapids, MI: Zondervan, 2025), 2050.

히브리서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나아갈 것이니라라는 표현은 현재 시제로 쓰여 있고, 이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성도와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관계 속에 있는 것임을 나타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끊임없이 그분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언제든지 그의 임재 가운데 들어갈 수 있으며, 또한 담대함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Zondervan, NIV Application Bible Notes: Bringing the Ancient Message of the Bible into Your World (Grand Rapids, MI: Zondervan, 2025), 2041.

디모데전서 2: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요한계시록 4: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성도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다루고 있는 찬양이다. 성도는 살아계신 하나님 앞으로 언제나 담대하게 나아가는 사람이다. 구약 시대에는 대제사장만이 지성소로 일년에 한번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데, 그 유일한 이유는 우리의 의로움이나 선함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힘입어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전능하시며 만물을 다스리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는, 우리가 원할 때에 언제든지 나아갈 수 있고 그분을 만날 수 있다. 그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기꺼이 용납하시고 만나 주시며 우리의 모든 어려움과 기도를 들어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에 낙심과 절망이 있다 하더라도, 이 찬양을 통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소망을 얻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가 그분을 만나고 경배할 때에 우리의 영혼과 육신이 회복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허락하신 영생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주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심을 발견하며,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용기를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찬양을 부를 때 마다, 아버지 하나님께 가장 깊은 친밀함으로 나아가기를, 그리고 주님 안에서 온전한 회복을 맛보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2년 3월 9일 수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72) - 주님의 숲

 

1. 가사 살펴보기

어느 날 문득 당신이 찾아온 푸르른 저 숲 속에
평온하게 쉴 수 있는 곳을 찾아
당신이 지나온 이 거리는 언제나 낯설게 느껴
그 어디에도 평화 없네 참 평화 없네

당신이 느꼈던 지난날에 슬픔의 기억들은
생각하고 잊어버리고 또 생각하네

그렇지만 당신의 앞에 펼쳐진 주님의 숲에
지친 당신이 찾아온다면 숲은 두팔을 벌려
그렇게도 힘들어했던 당신의 지친 어깨가
이젠 쉬도록 편히 쉬도록 여기 주님의 숲에 우


2. 곡 소개

곡은 CCM 그룹 사랑 이야기2집에 수록된 곡이다. 사랑 이야기는 김현중과 김재중 두 형제가 결성한 그룹이다. 이 곡은,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영혼의 쉴 곳을 찾아 헤매고 있는 누군가가, 주님의 숲에 들어와 드디어 진정한 쉼을 얻게 되었다는 것을 아름다운 멜로디와 세련된 가사로 풀어낸 탁월한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출애굽기 20: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20:8 "Remember the Sabbath day by keeping it holy.

20:8 Remember the Sabbath day. The OT Sabbath was the seventh day of the week. Keeping that day holy meant setting it apart and making it different from other days. No one was to work. Instead, they were to use it as a time of rest from normal activity and to worship and honor God. Their focus was to be on spiritual and eternal things (vv. 9–11; cf. Ge 2:2–3; Isa 58:13–14). (1) The Israelites were expected to follow the example God himself set when he rested after six days of creation (v. 11; Ge 2:2–3). God set this day aside for our own good, to provide a day of spiritual, mental and physical refreshment. (2) The Sabbath was a sign that they belonged to God (31:13). (3) It also reminded them of their miraculous rescue from slavery in Egypt (Dt 5:15; see Mt 12:1, note). 안식일을 기억하라 : 구약의 안식일은 그 주의 일곱째 날이었습니다. 그 날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은, 그것을 구별하고 다른 날과 다르게 만드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날에는 일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대신에, 그들은 오히려 일상의 활동을 쉬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경외하는 시간으로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들의 초점은 영적이고 영원한 것들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하신 후에 안식하실 때 친히 보여주신 본을 따라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해 이 날을 따로 떼어서, 영적, 정신적, 육체적으로 새롭게 되는 날로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은 그들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표징이었습니다. 또한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기적적으로 구출된 것을 생각나게 하였습니다.

J. Wesley Adams and Donald C. Stamps, Fire Bible (Springfield, MO: Life Publishers International, 2011), 20:8.

이사야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40:31 but those who hope in the LORD will renew their strength. They will soar on wings like eagles; they will run and not grow weary, they will walk and not be faint.

40:29–31 The source of strength is in the realm not of the physical but of the spiritual. The argument is exactly the same as that in ch. 30 (see note on 30:1–18). Those who rush to rely on the strength resident in creation (“youths,” v. 30) will inevitably fail, but those who “hope in” (v. 31) the Lord, the Creator, will discover reservoirs of strength and endurance of which the world knows nothing. 힘의 근원은 육체적인 영역이 아니라 영적인 영역에 있는 것입니다. 피조물 안에 있는 힘에 의지하려고 달려가는 사람은 틀림 없이 실패할 것이지만, 창조주이신 주님을 앙망하는 사람들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힘과 인내의 저수지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D. A. Carson, ed.,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1235.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11:28 "Come to me, all you who are weary and burdened, and I will give you rest.

11:28–30 Come to Me, all who are weary and heavy-laden. There is an echo of the first beatitude (5:3) in this passage. Note that this is an open invitation to all who hear—but phrased in such a way that the only ones who will respond to the invitation are those who are burdened by their own spiritual bankruptcy and the weight of trying to save themselves by keeping the law. The stubbornness of humanity’s sinful rebellion is such that without a sovereignly-bestowed spiritual awakening, all sinners refuse to acknowledge the depth of their spiritual poverty. That is why, as Jesus says in v. 27, our salvation is the sovereign work of God. But the truth of divine election in v. 27 is not incompatible with the free offer to all in vv. 28–30. 이 구절 안에는 첫 번째 팔복의 메아리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듣는 모든 사람을 위한 공개적인 초대입니다. 그러나 초대에 응답하는 유일한 사람은, 자신의 영적 파산과, 율법을 지킴으로써 자신을 구원하려는 짐에 눌린 사람들이라고 표현되었습니다. 인간의 죄악 된 반역의 완고함은 하나님의 주권적으로 부으시는 영적 각성이 없으면 모든 죄인들이 영적 빈곤의 그 깊이를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John F. MacArthur Jr., The MacArthur Study Bible: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hville, TN: Thomas Nelson Publishers, 2006), 11:28–30.

히브리서 4: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4:9 There remains, then, a Sabbath-rest for the people of God; 4: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4:10 for anyone who enters God's rest also rests from his own work, just as God did from his. 4: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4:11 Let us, therefore, make every effort to enter that rest, so that no one will fall by following their example of disobedience.

4:10 rest from his own work: This may refer to the rest believers will enter in when they finish their work for God’s kingdom on this earth (see Rev. 14:13). 안식할 때가 : 이것은 아마도 신자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그들의 모든 일들을 마칠 때 들어갈 안식을 가리키는 듯 합니다.

4:11 us: Including himself as well as his readers, the author exhorts believers to be diligent, a phrase meaning “make every effort.” to enter that rest: The rest is not automatic. Determined diligence is required. The danger is that believers today, like the Israelites of the past, will not stand, but fall in disobedience.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 저자는 자신과 독자를 포함하여 신자들에게 모든 노력을 기울이다를 의미하는 부지런함을 간곡히 권면합니다. 안식은 자동적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결의에 찬 부지런함이 필요합니다. 오늘날의 신자들에게 위험이라는 것은,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했던 것처럼, 바로 서 있지 못하고 불순종에 빠지는 것입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4:10–11.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현대인들이 가장 갈망하는 휴식의 이미지인 숲이라는 주제를 찬양 가운데 풀어낸 아름다운 곡이다. 성경은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참된 쉼을 주시는 분이심을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시고 쉬셨으며, 하나님께서 쉬신 것처럼 안식일을 기억하여서 거룩히 지키라 명하셨다.

하나님께서 쉼을 명하시고, 특별히 한 날을 구별하셨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쉼이라는 개념은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이 아니다. 인간은 단순히 육체적인 쉼을 통하여서 온전한 회복을 추구한다. 물론 육체적인 쉼은 너무 중요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완전한 쉼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 그런 맥락에서 이 곡은, 가장 친숙한 거리에서도 평화를 얻지 못하는 그리고 과거의 아픈 기억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노래한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자기에게 오라고 초대하신다. 오직 예수님을 믿을 때에만, 스스로의 인생을 반드시 책임져야 하는 엄청난 압박감과, 나의 영원한 운명을 확신할 수 없는 끔찍한 두려움이 사라진다. 나의 가장 괴로운 기억 조차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선으로 만들어 버리시는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쉼을 얻게 된다. 나의 죄를 인정하며,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시며, 나의 구원자가 되심을 인정할 때에, 죽음조차 극복하는 진정한 쉼이 찾아온다.

결국, 인간의 진정한 쉼과 행복은 우리의 영혼의 회복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우리를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아버지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우리의 삶에 진정한 쉼이 찾아온다.

안타깝게도, 이 땅 가운데에서 완전한 쉼을 누릴 수는 없다. 우리에게는 끊임없이 어려움과 괴로움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는 쉼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모든 삶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할 때에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쉼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면서, 완전한 쉼을 기대하면서, 오늘 하루를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기를 힘써야 한다.

삶으로 드리는 찬양 프로그램 전체 곡의 묵상을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1년 11월 11일 목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창세기 2장 / 절대적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라

 

창세기 2장으로 넘어와서 세상과 그 안에 들어가야 할 모든 것들이 완성됩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무엇이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날에 안식하십니다. 

스터디 바이블은 일곱째 날이 하나님이 축복하신 유일한 날인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은 하나님이 주실 종말의 영원한 안식을 찾는 날이라는 것을 설명합니다. 이 부분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창조는 이미 그 안에 완전한 안식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런면에서 이제는 주일로 바뀐 "하나님 안에서 안식의 의미"라는 것은, 종말을 바라보며 그 날을 소망하며 그 안에서 쉼을 얻는 것이 아닐까요? 저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어쩌면 지금의 우리의 설교의 내용은 너무나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상황"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영원한 안식을 묵상하고 그 안에서 힘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인간의 창조에 대한 부분을 좀 더 추가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흙으로 부터 만들어졌지만, 인간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 인간이 살아 있는 존재가 됩니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하나님께서 친밀하게 대하시는 존재가 되었고 특별한 존재가 됩니다. 

에덴 동산은 풍족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안에 있는 두가지 중요한 나무를 언급합니다. 그것은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명하신 "경작하며 지키게 하는 것"은 마치 농부가 밭을 갈고 돌보는 것과 유사한 것임을 스터디 바이블은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완전하게 만드시고, 그것을 돌보며 그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인간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특별한 존재로 만드시고, 아름다운 살 곳을 주시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도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누리기 위한 조건으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어기면, 죽음을 맞이합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명령을 주시면서 이유를 설명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현 시대에 있어서 가장 염려하는 것 중에 하나는, 마치 누군가가 나에게 "이성적으로 성경을 이해시키기만 하면" 내가 잘 믿을 것이라는 태도입니다. 말씀을 대할 때에 "내가 이해할 수 있다면" 이것이 정말 진리라고 생각하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명령은, 이유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굳이 이유가 있다면 "하나님이 명령하셨기 때문에" 그것이 "옳은 것"이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분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인간은 분명 가치 판단을 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판단하는 모든 근원은 사실상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큰 기준 안에서 판단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옳고 그름 혹은 우리의 삶의 방향은 우리가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그렇게 살아가면 됩니다. 그것이 축복의 길입니다.

아담은 지금 타락한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지적인 능력을 지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생물들의 존재를 보고서 그 대상의 본질을 파악해서 모든 이름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는 자신의 베필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NET BIBLE은 돕는 베필이라는 것이 자칫 오해를 불러 올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여기서 히브리어는 종속의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성경에서 하나님을 묘사할 때에,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을 우리를 위해서 하시며 필요를 채우시는 분으로 묘사하는 것 처럼, 여자의 창조는 단순히 돕는 자가 아니라 indispensable companion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아담으로 부터 여자를 만드십니다. 그리고 아담은 완전히 만족합니다.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연합하도록 하신 것이 하나님 이심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결혼은 인간이 사회적인 발전에 따라 만든 제도가 아니라, 신적인 제도임을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In Genesis chapter 2, we see the abundant blessing from God who is the creator. God finished the work and he ceased on the seventh day. It shows that the ultimate ending and the rest God will provide to his people. 

God made Eden and placed him in that to care for and maintain it. Adam could enjoy everything in it except on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God forbade to eat the fruit of that tree.  Interestingly, there is no reason for that. Of course, Adam could know the reason for that with his own ability based on the name of the fruit. 

God forbade Adam to eat the fruit to make him know who Adam is. Adam is God's creation and his nature and his limitation to serve and follow his creator. If Adam wants to live with God's blessing, he should follow God's commandments. 

The woman was created from the man by God. There are no differences in the nature of the man and woman. Both are noble according to God's image. Some people understand the helper which is a description of the woman as the inferior nuance. But, the Hebrew word does not contain that nuance. A woman is an indispensable companion of the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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