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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14일 일요일

내 영혼에, 상쾌한 빛이 들어오다 - 순전한 기독교의 짧은 부분들에 대한 작은 생각들

 


저는 어렸을 때 부터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도대체 훌륭한 사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물론 훌륭한 사람을 보면서 그에게 찬사를 보내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훌륭한 사람이 만들어지는 그 방법을 알 수 있다면, 저도 꼭 그렇게 되고 싶었습니다 

신학을 공부하고 철이 들면서 그리고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결국 훌륭함은 모방에서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즉, 탁월함을 모방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온전히 소화하는 것이, 훌륭함에 대한 첩경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팀캘러 목사님도 좋아합니다. 팀캘러 목사님은 '21세기의 C. S. 루이스'라고 불리웠습니다. 루이스를 읽고 팀캘러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제가 깜짝 놀란 것은, 그분의 설교 곳곳에 결정적인 부분에서 루이스의 논리와 그의 생각과 글들이 묻어나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팀캘러 목사님의 훌륭함은, 루이스로 부터 만들어진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아마도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 저에게 왜 루이스를 좋아하느냐고 물어보신다면, '단 두문장만 읽어도 저의 영혼에 상쾌한 빛이 비추이기 때문이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책이 많이 있습니다. 저 역시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아쉽게도 그 중에 대부분은 지루했습니다. 무엇인가 힘주어 이야기하는 것 같았지만, 정작 마치 미로를 헤매이는 것처럼 저를 제대로 인도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저에게 루이스는, 아주 짧은 몇 구절만 읽어도 저의 마음을 새롭게 만드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의 책을 읽으면, 심지어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루이스는 다정한 사람입니다. 그의 글과 그의 신앙은 마치 저에게 상쾌한 가을 바람과 같아서, 저의 영혼을 전혀 다른 그 어떤 곳으로 이끌어 갑니다. 그와 함께 거닐다 보니, 하나님의 아름다우심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루이스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고전학과 영문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중세와 르네상스 문학 교수로 섬겼습니다. 그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15세 때에 무신론자가 됩니다. 그러나 신앙 서적과 친구의 영향으로 다시 서서히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31세가 되어, 지적으로 정직한 자세를 가진다면 하나님을 믿을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얻고 진정으로 회심하게 됩니다. 

순전한 기독교는, 제2차 세계대전 시절 평신도와 무신론자들을 위한 라디오 방송에서 그가 발표했던 것을 책으로 엮어낸 것입니다. 루이스 평신도로서 교파를 초월해서 기독교인들이 공통적으로 믿고 있는 것을 다루고, 그러한 믿음의 내용들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충실하게 설명하였습니다.

저는 이십대 초반에 순전한 기독교를 처음 읽었습니다. 물론 그때도 참 좋았지만 역시나 루이스의 글을 충분히 이해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루이스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내면 안에 새로운 깊이를 만들어 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담임 목사님의 안식년 동안 잠시 주일 강단을 섬기면서, 저의 부족한 부분을 절감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앞으로 저의 삶을 다져나갈 방법을 고민하던 중에, 루이스를 아주 천천히 읽기로 결심했습니다. 아쉽게도 이 시대는 속도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저는 반대로 접근하고 싶었습니다. 아주 천천히 다시 새롭게, 기독교 신앙의 탁월한 내용을 저의 영혼 안에 새겨 넣고 싶었습니다.  

순전한 기독교는 전체적으로 네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째로는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옳고 그름이라는 선과 악이라는 개념을 반드시 전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그렇게 발견한 절대 선 앞에서 자신에 대해서 절망하게 될 때에야 결국 하나님을 발견하고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그렇게 하나님을 믿게 된 이들이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하는가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삼위 일체 하나님의 개념을 바탕으로 참된 성도됨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면서, 새로운 생명을 얻은 새 사람으로 적극적으로 살아갈 것을 권면합니다. 

저의 짧은 글 쓰기로는 이 책의 깊이와 감동을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다만 가장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는 것이야 말로 신앙 생활의 원동력을 가져다 준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모태신앙으로 자라서 수도 없이 복음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복음은 어떤 의미에서 매우 단순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단순한 진리를 아는 것과, 이것의 깊이와 충격을 온전히 이해하고 내 삶에 근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런면에서, 루이스 그리고 순전한 기독교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루이스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사실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가치를 온전히 드러내며 동시에 너무나 신선하고 감동적으로 전해주기 때문에 그가 탁월한 신앙인으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루이스가 순전한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자연법에 대한 것은, 기독교를 이해하고 변증하는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겉으로는 절대적인 진리 혹은 법칙을 부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사람들이 행동해야 한다는 본능을 내면에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증명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명확하게 그것을 어기고 있임을 지적하며 인류 전체를 몰아갑니다. 

물론 위의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평범하게는 이렇게 접근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며, 죄인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정도로 논리를 풀어가도 괜찮을 것입니다. 그러나 루이스는, 인간에 대한 철저한 관찰에 기반하여 우주적인 관점으로 인간의 합리성을 존중하면서도,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중요한 이유들에 대해서 설득적으로 논증하고 있고, 바로 이런 부분이 루이스의 탁월함입니다.

최근에 순전한 기독교 천천히 읽기를 반년 만에 끝냈습니다. 다시 책을 열어보니, 책의 거의 대부분이 줄과 메모들로 가득합니다. 이 모든 것을 한편의 글로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만 제가 설교에 인용했던 몇가지 구절 정도, 그리고 저에게 영감을 주었던 몇 부분들을 인용하고 저의 짧은 생각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루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독교는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용서를 약속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회개할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 자신에게 용서가 필요하다고 생각지 않는 사람에게는 기독교가 아무 의미도 가질 수 없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야 말로, 기독교 신앙의 근본을 잘 짚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를 포함한 우리는, 나의 죄성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없이 살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주 거칠게 말하자면, 내가 얼마나 죄인인가를 깨닫는 것이 바로 신앙의 성숙의 척도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사람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가치와 소중함은, 그저 내가 처음에 기독교의 문 안에 발을 들여 놓을 때만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의 평생을 살아가면서 그것의 깊이를 더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첫 순간에 회개를 하고, 그리고 평생 회개를 합니다. 우리는 회개할 수록 용서를 받고, 회개하면서 그리스도를 알아갑니다. 그래서 저는 회개와 기독교를 완전히 결합하여 성경적으로 드러내는 루이스가 참 좋았습니다. 

또 루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탄이 우리 옛 조상들의 머리속에 불어넣어 준 생각은 그들도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 마치 스스로 자신을 창조하기라도 한 양 자존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스스로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있다, 하나님 밖에서 하나님과 상관 없이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죄의 근본이 무엇인가를 잘 드러낸 부분입니다. 죄의 본질은 내가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내가 어떤 도덕적인 잘못을 하는 것을 넘어서서, 혹은 내가 나 중심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넘어서서, 나 자신이 '신'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목적, 방향, 내용 등을 철저하게 내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저는 성도로 또 목회자로서, 이렇게 무섭고 또 무거운 죄에 대한 개념을 항상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왜 이것이 그렇게 중요할까요? 왜냐하면 이러한 루이스의 죄에 대한 설명 혹은 논리는 우리의 성화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성화는 단순히 예배를 열심히 드리거나, 혹은 성경을 열심히 읽는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대적하는 맥락에서의 나는 없고 오직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그것은 나의 삶의 전 존재를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맞추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창조주이시며 왕이신 그 지위를 온전히 회복하시고, 나는 호흡 한번 조차 오직 그분께 모든 것을 맞추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상 우리의 구원에 '나'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존재하시며, 우리는 그분의 극진한 사랑을 받은 자들로 그리고 오직 그분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생의 목적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때문에, 저는 루이스를 좋아합니다.

루이스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적들의 점령 지역, 이것이 현재 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기독교는 합법적인 왕이 이를테면 변장을 한 채 어떻게 이 지역에 상륙했는가에 관한 이야기로서, 우리 또한 이 거대한 파괴 작전에 참여할 것을 촉구합니다. 교회에 가면 동지들의 비밀 무전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들이 우리를 교회에 못 나가게 하려고 그토록 노심초사하는 것입니다. 적은 이 일을 위해 우리의 자만과 게으름과 지적 허영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에 교회의 정체성에 대해서 많은 혼란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마치 교회가 사교 모임인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도 종종 계셨습니다. 현대화 되어 버린 교회에 출석하다 보면, 교회의 정체성이 매우 희미해 지는 듯 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매일 교회에 나오는 목회자인데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루이스의 글을 통해서, 교회의 본질에 대한 상상력이 가득한 그리고 가슴 벅찬 묘사를 만납니다. 우리는 일종의 비밀 결사대와 같습니다. 우리는 변장한 왕을 모시고 있고 그분은 반드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비밀 무전을 통해서 우리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우리의 미래를 가늠하면서 그것을 가슴에 품고 살아갑니다. 

저는 교회에 대한 평범한 설명을 싫어합니다. 그저 무감각하게 교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마음이 많이 상합니다. 그러나 루이스의 설명 속에서 새로운 기쁨을 발견합니다. 성도에게 주어진 교회 생활 이라는 것이 이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는 진실한 신앙의 동료이며 저의 친구입니다. 그를 통해 교회에 대한 참된 영적인 감각과 기쁨이 제 안에 살아나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루이스를 좋아합니다.

루이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사람이 기도하고 있는 대상-그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입니다. 또한 그가 기도하도록 밀어주고 있는 주체-원동력-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이 사람이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길 내지는 다리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한 평범한 사람이 기도하고 있는 평범한 작은 침실 안에서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삼중적인 생명 전체가 실제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사람은 좀더 높은 종류의 생명-제 표현대로라면 조에, 또는 영적인 생명-속으로 들어 올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 안에 이끌려 들어가고 있는 동시에, 여전히 자기 자신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기도에 대한 루이스의 이 설명을 읽을 때 마다, 마음에 전율합니다. 물론 기도 열심히 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신다 라는 아주 단순한 표현도 진리입니다. 그러나, 루이스는 다릅니다. 저는 다른 그 어떤 기도에 대한 설명보다 루이스의 설명을 제일 좋아합니다. 루이스는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기도의 목표, 기도의 원동력, 그리고 기도의 길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안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이보다 더 탁월하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기도는 너무나 아름다운 것입니다. 어쩌면 세상이 거들떠 보지도 않는 연약한 우리들이, 우리의 거칠고 아픈 손을 모아 주님 앞에 기도할 때에, 그것이 영적으로 얼마나 충격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고 또 얼마나 아름답게 영원에 맞닿아 있는 것인지를 그는 보여줍니다. 마치 보이지 않는 하늘을 활짝 열어 젖히고 그 비밀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저는 루이스를 읽을 때 마다 이런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루이스를 좋아합니다.

루이스는 그의 책의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을 포기하십시오. 그러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것입니다. 자기 새명을 버리십시오. 그러면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찾으면 결국 미움과 외로움과 절망과 분노와 파멸과 쇠퇴만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찾으면 그를 만날 것이며, 그와 함께 모든 것을 얻을 것입니다."

루이스는 불신자들에게, 그리고 어쩌면 신앙의 생명력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저 신앙의 논리나 멋들어진 말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 자체가 지금 그리고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하는 우리의 실재적인 운명입니다. 그래서 저는 루이스의 책을 그저 논리로 읽지 않습니다. 이 모든 내용이 저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저는 한없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루이스가 이야기한 것처럼 단 하나도 남기지 않고 저의 모든 것을 포기하기를,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찾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저의 모든 것이 되는 그 궁극적인 상태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렇게 저를 결단하게 만들고 바로 잡아 주기 때문에 저는 루이스를 참 좋아합니다. 

글을 맺어야겠습니다. 지금 저의 기분은, 마치 보석이 가득 담긴 보물 상자를 품에 안고서는, 작은 손에 그 보물 중에 몇개를 잡고서 꺼내 자랑하고 있는 어린아이 같습니다. 너무 반짝이고 행복한데, 이 보물을 다 설명할 재주가 저에게 없어서 한 없이 아쉬울 뿐입니다. 

루이스를 읽은 저의 벅찬 마음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어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짧은 글을 통해서 루이스를 잠시 접하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만족합니다. 

언젠가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이 글을 읽으신 누군가와, 선선하고 아름다운 날에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루이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마음이 하나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 저의 인생에 가장 큰 기쁨일 것입니다.

2023년 8월 19일 토요일

The Case for Christ Devotions for Kids 묵상 (1) - 저는 주의 말씀을 받듭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구입하고 공부하지만, 실제로는 제 자신을 위해서 더 유익이 되는 책이 있습니다. 리 스트로벨의 The Case for Christ Devotions for Kids 입니다. 실제로 10살이 되는 첫째 아들과 읽어보니 아직은 약간 이해해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서 제가 먼저 읽고 아이를 위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Audible로도 나와 있어서 평소에 듣고 다시 텍스트를 읽어보면서 묵상합니다.

* 로고스 어디까지 써 봤니?
- 사랑하는 아들아, 아빠와 함께 하자꾸나
"The Case for Christ Devotions for Kids: 365 Days with Jesus"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2/case-for-christ-devotions-for-kids-365.html

요즘에 제가 마음에 가장 크게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태도" 입니다. 예전에는 인간의 지성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의 배경과 문맥을 이해하고 단어를 이해하고, 신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지성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요즘에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지성이 중요하지만, 사실상 가장 중요한 것은 태도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입니다. 단순히 지성이 신앙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학력이 낮고 배움이 부족하고 이해가 부족한 신앙인들의 훌륭한 믿음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지성적으로는 부족하지만, 그러나 진실한 믿음으로 탁월하게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는 분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저는 인간의 지성을 중시하지만, 그것은 하나님 앞에 절대 겸손을 전제로 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태도는 "지성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절대 겸손"이 필요합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죄인이며, 주님의 자녀 역시 근본적으로 회복되는 과정 중에 있을 뿐입니다. 성도의 모든 존재와 삶의 한 걸음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달려 있으며 그 말씀에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리스트로벨의 표현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존귀하시고 영원하신 왕을 이해할 때에 우리의 지성을 이해하는 것은, 마치 지렁이가 인간을 이해하려는 것 같다라는 표현입니다. 이것이 태도입니다. 저는 두렵습니다. 세상의 풍조가 두렵습니다. 신학하는 어떤 이들의 모습이 두렵습니다. 그들은 마치 자신에게 말씀을 분석하는 지성이 있다면, 그것으로 하나님을 다 이해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 가운데 진정한 마음의 겸손함이 없다면, 자신의 지성적인 능력을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선상에 놓는다면, 그것은 사실상 모든 것을 다 잃은 것입니다. 

인간은 인간입니다. 죄인은 죄인입니다. 그것이 진실입니다. 예전에는 보수 신앙이, 그저 신학교에서 그것을 배웠기 때문에 저에게 남아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소위 말해서 보수 신앙이야 말로, 성경적인 것입니다. 말씀을 존귀히 여기고, 그 말씀은 진리임을 고백하고, 말씀이야 말로 나의 모든 이성과 경험을 뛰어넘는 유일한 권위임을 인정하는 것이야 말로 복된 삶의 단 하나의 길입니다. 

리스트로벨의 말씀의 인용이 절묘합니다. "너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라는 잠언 3장 5절 말씀이 새롭게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마음이 복잡하지만, 저의 가야 할 길을 선명하게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며 주님만을 찬양합니다. 호흡이 코에 달린 인간을 의지하지 않기 원합니다. 오직 주의 말씀이 저의 삶의 기준과 인도자가 되실 뿐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도, 말씀이 있기에 두렵지 않습니다. 이것이 저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진실한 고백입니다.

2023년 8월 5일 토요일

풍성한 삶으로의 초대 - 청년편 5강 세상이 깨진 이유와 죄의 본질, 느낀 점

 

* 느낀 점

김형국 목사님의 실제 강의를 들었을 때에도, "참 이분은 진실한 분이다" 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정말 자신이 신뢰하는 것을 누군가에게 간절히 알려주기를 원하는 태도가 참 좋았습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이 "남을 설득 하는 것" 입니다. 사실 귀찮은 일입니다. 듣던지 안 듣던지 그냥 내가 할 말만 하고 가버리는 것이 가장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 혹은 신앙에 회의를 가진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까지 설득하려는 것은 이러한 시도 자체만으로도 그리고 이렇게 탁월한 결과에 큰 박수를 치고 싶고 또 김형국 목사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영상이 참 좋았습니다. 사실 저는, "죄는 깨어짐이며,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 죄이다" 라는 표현이 너무 단순화된 죄의 설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상을 다시 듣고보니, 충분히 성경적인 설명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상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주신 분을 무시하는 것이라는 논증이 참 좋았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짐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무시함으로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을 받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남을 비교하고, 삶의 목적을 찾기 어렵고 사명을 찾을 수 없고 자기 중심적으로 살게 된다는 탄탄한 논리적 흐름이 참 좋았습니다. 정말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물론 한가지 약간 아쉬움 혹은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도 있었습니다. 사과 나무 비유로 죄를 설명하면서 "다 잘려버린 본체인 마음이 문제가 없더라도, 뿌리인 하나님과의 관계가 죽어 있다면 그것이 죄"라는 설명은 모순점이 보였습니다. 단 한번도 성경에서는 마음에 문제가 없는 상태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는데, 왜 마음에 문제가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일까? 이 설명의 정확한 의미는 아마 또 다른 내용을 통해서 계속 살펴봐야 할 듯 합니다. 

김형국 목사님의 변증은 탁월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법칙을 만드셨고,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인간"이라는 것은 팀켈러 목사님의 중요한 논지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 논증이야 말로 세상 사람들 심지어 기독교 인들이 마땅히 말씀을 순종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이미 알던 부분이지만 새롭게 들어서 좋았습니다. 

"40대가 되기 전에는 자신이 죄인임을 잘 인정하지 못한다" 라고 말씀하신 것은, 정말 많은 이들과 대화를 나눠본 사람이 할 수 있는 탁월한 통찰이라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젊은 이들 역시 자신의 인생의 유한함을 깨달을 수 있도록 부드럽게 이야기하시는 모습과 태도가 참 좋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생의 유한성을 깨닫도록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형국 목사님은 계속적으로 "진실하게 질문을 던지는 것" 그리고 "진실한 각성을 하는 것" 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저도 백퍼센트 동의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렇게 해야 할까요? 

이미 자신의 사고가 굳어버린 오래된 신앙인을 변화시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단순히 일방적인 강의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끊임없이 질문함으로써 그 사람이 생각할 수 있도록 자극하고, 다른 사람의 격려와 수정을 받으면서 스스로 새로운 각성을 만들어내도록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사실 이것이야 말로 크리스천 북클럽의 핵심이고 목적입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복과 제가 추구하는 크리스천 북클럽의 확고한 연관성을 드디어 제대로 발견하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제가 담임 목회를 시작하게 된다면, 저는 풍삼초 정도는 충분히 적극적으로 사용할 듯 합니다. 

풍삼초의 영상과 책을 가지고 북클럽을 계속적으로 진행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그 이후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또 다른 책들과 제가 경험한 좋은 책들을 가지고 계속적으로 성도의 생각과 마음과 삶을 변화시키는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 "내가 생각하는 하나복", 그리고 미래 목회 - 하나복 관련 글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8/blog-post.html

풍성한 삶으로의 초대 - 청년편 2강 무신론과 유신론, 소통하시는 하나님, 느낀 점

 

* 느낀 점

이 강의는 굉장히 깊은 내용을 심플하게 다루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김형국 목사님의 전제는, "신이 있다 없다라는 것은 증명할 수 없다, 이것은 일종의 신념체계, 세계관이다. 과학과 종교는 상호 보완적이다" 입니다. 오히려, 어떤 것이 내 삶을 더 잘 설명해 줄 수 있는가? 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신을 감히 알 수 없는데, "하나님은 소통하는 신"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좋았습니다. "소통"이라는 단어가 이 시대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단어이기 때문에, "소통하는 하나님" 이라는 표현만으로도 교회에 대하여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조차 충분히 매력적으로 들리게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듣는 사람에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태도로 접근하는 것은 김목사님의 큰 강점입니다. 다만 무신론과 유신론은 결국 전제일 뿐이기 때문에, 인간이 그것을 선택하는 것에 불과하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제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과학이라는 것을 마치 종교와 동등한 입장에 서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도 다소 아쉬웠습니다. 

사실상 인간의 과학이라는 것은, "인간의 이성이 설명할 수 있는 수준에서 논리적인 것"입니다.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은 얼마든지 일어나며 우리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오히려 합리적인 과정을 거쳐서 논의를 들어가면, 결국 절대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주와 인간의 복잡성을 인격적인 존재의 계획과 섭리를 배제하고 설명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물질로 부터 온 것이라면, "그 가장 초기에 물질"은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인가라는 질문에 인간은 대답할 수 없습니다. R.C. 스프로울이 "창조인가 우연이가"에서 진지하게 다룬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유신론의 논증입니다. 

그런면에서, 이 영상이 무신론자에게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겠지만, 과연 가장 좋은 방법으로서의 기독교로의 초대인지는 저로서는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적어도 저의 입장에서는 유신론은 단순히 전제가 아니라, "합리적인 논리의 귀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소통하시는 것을 그 내용을 텍스트화 한 것이 구약이라는 표현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매우 타당한 말 같아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제 관점에서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설명으로 들렸습니다. 왜냐하면, 마치 성경을 하나님의 이야기를 담은 어떤 스토리집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스스로 증거하시기를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이야기를 적어 놓은 것과, 성경 자체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완전한 것이다 라는 표현은 유사하지만 사실상 그 진지함 혹은 영적인 깊이는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마치 하나님께서 자신이 하신 일을 이렇게도 적어 놓고, 저렇게도 적어 놓았는데, 그것을 내가 읽고 맞는지 틀린지 보는 태도가 과연 성경적인 태도인가는 저는 의구심을 가집니다. 죄인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성경에 대하여 반감을 가집니다. 죄인이 경외감 없이 성경을 보는데, 그 영혼이 변화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이것이 저의 중요한 질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그 기본적인 영적인 시각이 비뚤어져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유신론과 무신론에 대한 열린 태도로 임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상태에 있습니다. 아무리 유신론에 대한 합리적인 증거를 보여줘도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그런 인간에게 두개 중에 하나가 너에게 무엇이 맞는지 생각해 보라고 권유하는 것이 과연 좋은 방법인가? 그런 부분에서는 저는 다소 회의적입니다. 

예전에는,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고 적은 피켓을 들고 다니는 분들이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미국 하이웨이 근처에는 가끔씩 비슷한 문구들을 크게 써 놓았습니다. 이것에 대하여 사람들은 손가락질 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런 분들 중 누군가가 교회에 대해서 혐오감을 느끼게 되는 걸림돌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정말 그것이 답이 아닐까요? 저는 모든 이들에게 어떤 대답이든 충실하게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러한 대답과 권유가 기독교로 회심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시며, 그런 면에서 그분은 인간의 이성과 과학 위에 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최선의 설득이 있어야겠으나, 복음을 그 마음에 들어가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영상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성경관이 하나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의 완전성이 얼마나 더 소중한가에 대해서 오히려 역으로 생각하고 성경에 대하여 더 새롭게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내가 생각하는 하나복", 그리고 미래 목회 - 하나복 관련 글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8/blog-post.html

풍성한 삶으로의 초대 - 청년편 1강 세 가지 문과 세 가지 장애물, 느낀 점

 

* 느낀 점

한 사람의 언어를 들어보면, 그 사람의 관점 혹은 태도를 금방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김형국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낀 것은, 이 분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분들의 옆에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영상의 내용이 참 따뜻하고 좋았고, 나와 다른 누군가를 대적하지 않고 대화하려는 마음이 열린 분이기에 풍삼초까지 만들어 내셨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어권에는 좋은 영상들이 너무 많습니다. 굉장히 세련되고 누가 봐도 한번 더 보고 싶은 그런 영상들입니다. 그런 면에서 영상의 퀄리티 자체가 너무 좋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만들어진 풍삼초의 영상을 새롭게 청년들을 위해서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책이 훨씬 편한 저이지만 굳이 영상으로 풍삼초를 보게 되었습니다.

풍삼초가 단순히 새가족 교제 정도가 아닌가 짐작했었는데, 굉장히 수준 높은 변증학 책이라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어려운 내용을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게 쉽게 설명하신 것이 좋았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세가지 계기인 "생활 양식, 경험 혹은 고통, 그리고 탐구" 라는 것은 많은 분들과 함께 대화 나누면서 발견한 중요한 통찰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신앙에는 이 세가지가 모두 필요하다라는 것도, 균형을 잃어버린 한국 기독교에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생활 양식으로 하나님을 만난 분들은 하나님을 탐구하는데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혹은 하나님을 탐구하는데만 익숙한 분들은, 하나님을 경험하는데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경험이 약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온전한 신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이 영상을 통해서 확인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풍삼초 시리즈가 "생각"이라는 부분에 포커스를 맞춘 것입니다. "삶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라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김형국 목사님의 목적은 충분히 신학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말 생각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라는 반문도 하게 됩니다. 이 시대는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유투브 영상도 극단적으로 짧아야 합니다.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 시대에, 누군가가 생각하도록 끌어내는 것이 참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저는 "그렇게까지 많은 질문에 대해서 기독교가 일일이 답해 주어야 하는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제 기억으로 팀캘러 목사님은 오히려 질문에 답하지 말고 불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오류를 역으로 공격하라고 설명했던 적이 있습니다. 김형국 목사님이 매우 탁월한 분이지만, 영상을 들을 때에 한편으로 제 마음에는, 마치 사람들에게 설명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납득시키지 않으면 진정한 기독교가 아닌 듯한 뉘앙스를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남녀 사이에 무턱대고 믿을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충분한 질문과 거기에 맞는 대화와 설득이 있어야 한다는 점은 목회자로서 제 자신의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대화와 설득의 과정을 목회자가 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쉐퍼가 주장한 것처럼, 정직한 질문에 정직한 대답이라는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방향성을 한국적으로 가장 충실하게 구현한 분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김형국 목사님의 따뜻함과 태도를 잘 배워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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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26일 수요일

하나님나라복음으로 교회 세우기 공개강좌 3강 / 요약 및 느낀 점

 

요약

 

하나복 DNA 어떻게 출발을  것인가목회는 매우 어려운 것이다그러므로 평생 준비하는 것이다사역자에게 필요한 5가지 영역이 필요하다하나님 나라 복음 신학이 분명해야 하고 그것으로 성경을 보는 눈이 깊어져야 한다그리고 사람의 영적 성숙에 대한 그림이 있어야 한다이러한 영적 성숙은 건강한 교회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이런 공동체를 세워야 한다교회가 사이즈가 커갈 수록 좋은 영성을 담을  있는 자기들의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그리고  네가지를 기초해서 설교하고 가르칠  있는 목회자가 필요하다

 

가장 필요한 것은 “전도와 회심”이다한국 교회에서 회심이 없으면 게임이 끝난 것이다교회 안에도 회심   사람들이 많이 있다회심한 이후에 사람들을 키워야 한다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제자도이다그리고 이후에 하나님 나라 복음의 공동체를 세워야 한다그리고 이미 준비된 자료들을 가지고 성도들이 스스로 복음을 전하도록 해야 한다풍삶기를 통해서 제자도를 가르치게 되면 결국 목회자 자신이 변하게 된다왜냐하면 영혼을 만지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강의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의 중요성”이다지난 한달 동안 불신자를 만나서 한시간 이상 이야기해본 적이 얼마나 있는가목회자가 제일 잘하는 영역인데 목회자가 안하면 누가 복음을 전하겠는가이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교회 안에 머무르고 교회 운영만 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교회 속에 고립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고의도적으로 불신자를 만나야 한다목회자가  일을 하지 않으면 다른 교회 성도들이 오기만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의 핵심은 “복음 전도”이다복음 전도는 훈련해야 개발이 되는 것이고 은사가 아니라 명령에 대한 순종이다기독교의 목표는 세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이다그러므로 성도들이 친구들과의 관계를 서서히 회복해야 한다불신자를 만나야 한다그리고 교회 안에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회심하면 성장할  있다그런데 성장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비정상이다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성장하지 않은 사람은 회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교회 안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라처음에는  받아들일 만한 사람에게 시도하고 점점 난이도를 높이는 것이 좋다

 

과거에는 권위그리고  외운 내용을 가지고 전도를 했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진정성을 가진 사람이 전도할  있는 것이다대면식으로 전도하는 것은 점점 상황이 쉽지 않고현재에는 인격적이고 관계 중심적인 생활 방식으로서의 복음 전도가 필요하다사람을 사랑하고 복음을 제대로 전달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

 

물론 결정적인 순간에  정리된 복음을 전할  있어야 한다 사람에게 맞게 결정적인 상황에서 반드시 복음을  전할  있어야 한다마치 집안에 아이들이 태어나면 기쁜 것처럼 새로운 생명이 교회 안에서 계속 탄생해야 한다그러므로 관계 전도로 가다가 결정적인 복음을 전하도록 훈련해야 한다풍성초에 인도자반 강의에전도에 대한 내용이  정리되어 있다

 

전도에는  단계가 있는데전도 이렇게  단계이다오늘날에는 “전 단계”를 잘해야 한다복음을 만나기 전까지 장애물들이 많이 있는데크리스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지적인 질문들그리고 삶의 고통 등이 있다그러므로 이러한 것들을 먼저 치워줘야 복음을 들을  있는 단계가 되는 것이다다시 말해서 먼저 불신자의 마음을 만져야 하는 것이다복음을 전하려고  때에 나오는 질문들은 거의 정형화 되어 있고 거기에 대한 답을 www.imseeker.org 정리해 놓았다그리고 복음 전하고   후에 과정이 풍성한 삶의  걸음 이다

 

복음을 받아들일  있도록  단계부터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지만 한편으로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서 그가 리서치 하는 것을 도와주어야 한다 사람의 고민과 풀리지 않는 부분을 풀어주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그리고 요한복음을 통해서 스스로 예수님을 발견할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특별히 무신론자로서 지적 질문이 많거나상처가 깊은 사람은 예수님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이런 사람들이야 말로 주님의 잃어버린 양이고 포기하지 말고 같이 걸어가줘야 한다

 

결국 복음 전도는 배우는 것이다실패해도 괜찮다복음 전도는 성령님께서 하시는 것이다 책임은 선명하게 전하는 것이고 믿는 것은 상대방의 책임이다복음 전도는 계속 일어나야 하는 것이고 그것을 꿈꿔야 한다교회가 건강한가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교회를 통해서 몇명이 회심하였는가 이다회심하지 않으면  세대를 넘어갈  없다주님의 칭찬을 받을  없다.  

 

 

느낀점

 

마지막 공개 강좌도  좋았습니다저는 김형국 목사님의 접근법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목사님에게는 무엇이 교회의 본질이며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한 확고한 답이 있습니다그리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서 목회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은연 중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어떤 목회자가 있고 교회가 거기에 맞춰가는 것입니다그러나 사실교회가 필요한 것을 목회자가 사명감으로 채우고 이뤄나가는 것이야 말로 성경적입니다아마도 김목사님이 이렇게 열정적으로 사역을 계속   있는 것도자신이 교회를 위하여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항상 어떤 주제를 설교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는데, 하나님 나라, 영적 성숙, 공동체, 영성을 담는 시스템이라는 큰 틀을 제시하시고 그것을 담은 설교를 해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너무나 좋은 조언이었습니다. 물론, 그것을 탁월하게 해 낼 수 있을 것인가는 여전히 큰 부담입니다

 

불신자와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언제인가라는 질문은 저의 마음을 아프고 부끄럽게 합니다믿지 않는 사람을 만날 기회를 거의 만들지 않고 기존에 성도님들을 돌보는 것에 급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교회 안에도 여전히 회심하지 않은 분들이 계시다는 것은  도전입니다 부지런하게 성도님들과 연락을 나누고그들의 영적인 필요를 채우고 어떻게든 그분들의 마음을  주님과 가까워지도록 만들어야 하는  책임감을 느낍니다

 

저는 김형국 목사님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좋았습니다결국 목회는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  본질이기 때문입니다영혼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이 원동력이 되어서 끊임없이 훈련하고 방법을 만들고 책을 쓰시는 모습이본질에 근거한 목회자의 바른 방향을 보는  같아서 귀감이 되었습니다 역시 제가 섬기는 영혼들을 더욱 사랑하고 그분들을 섬기고 성장하게 만들어 교회를 세우게 하는 성경적인 목회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 "내가 생각하는 하나복", 그리고 미래 목회 - 하나복 관련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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