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심방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심방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25년 2월 14일 금요일

인생의 해가 진다면, 그 때에도 아름답고 싶다

 

긴 하루였습니다. 새벽부터 시작하는 목회자의 하루, 여러 일들과 회의와 또 이어지는 심방, 이제는 익숙해질만도 한데, 여전히 때로는 낯선 일과입니다. 온 몸의 힘을 다 써야 감당할 수 있을 때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한 장로님과 권사님을 심방하였습니다. 저의 부모님보다 더 연세가 많으신 분들입니다. 손자 뻘에 불과한 저를 존대해주시고 또 식사를 사주셨습니다. 제가 대접하고 싶었지만 한사코 거절하셨습니다. 목회자라는 이유로 섬겨주시는 깊은 사랑이, 한 없이 송구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두분의 지난 어린 시절, 6.25 전쟁을 겪어야 했던 이야기들, 가족의 아픔들, 그리고 현재 두분의 신앙 생활 등등이 주제였습니다. 수 많은 어려움을 넘어서야 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말씀, 그리고 이제 언제까지 살지 모르겠다라는 그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가장 좋았던 것은, 두분의 견고한 신앙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비난하지 않고, 그리고 지난한 현실에 잠식되지 않고, 그저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주님 붙들고 전진하시는 두분의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두분의 그 작은 방에, 장로님의 기도를 위한 성경 구절들이 적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그것을 붙들고 하루 세번씩 간절히 기도하신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나누시는 모든 진실함이, 까마득한 신앙의 후배인 저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하늘이 참 예뻤습니다. 노을이 지는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때입니다. 차가 신호에 멈춰선 잠깐 동안 사진을 찍고, 저의 삶의 방향을 가늠해 보았습니다. 두분의 삶이 참 아름답고, 그리고 아름답게 저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가 저물기 전에 가장 아름다운 하늘의 노을처럼, 그렇게 두분처럼, 제 인생도 끝까지 신앙으로 아름답기를 바라며 하루를 마무리 합니다.

2024년 2월 26일 월요일

목회는, 보이지 않는 것 1

 

따뜻함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집니다. 세상은 점점 식어가지만, 그럴 수록 따뜻한 분들의 그 온기가 더 힘을 발휘합니다. 그런 분들 옆에 잠시라도 머물수 있다면, 그 잠깐의 대화가 지친 삶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주일에 사역하는 분주한 중에 권사님 한분이 잠깐 말을 걸어 오셨습니다. "목사님, 꿈에 목사님이 나왔어요. 그런데 성도님 차가 많이 망가졌는데 그걸 다 일일이 고치고 계시더라구요. 제가 꿈을 자주 꾸는 사람이 아닌데 목사님이 참 이런 일도 다 하시는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목사님 안보이는데서 열심히 섬기시는구나 생각했어요. 하나님께서 다 기억하시고 갚아주실꺼에요."

무슨 말을 해야할지 잠시 고민했습니다. 사실 약간 마음에 떨림도 있었습니다. 한번도 보시지 않은 저의 사역을 너무나 확신있게 말씀하시는 나이든 권사님이 참 귀여우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꿈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아니지만, 권사님의 따뜻한 한 마디가 참 힘이 되었습니다.

사실 지난 몇 주가 참 분주했습니다. 성도님들 돌아보면서 연락하면서 심방하면서 저의 한계까지 제 자신을 밀어 붙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권사님에게 제가 이런 저런 일을 이렇게 열심히 했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웃으면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셨군요 권사님, 권사님 꿈에 제가 다 나오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

주일의 사역이 끝이 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회는, 보이지 않는 것이지" 평소에 잘 알고 있는 명제라고 생각했는데 새삼스럽게 느껴졌습니다. 한 성도님이 교회로 나오기 위해서 수십번의 연락과 인내가 필요했습니다. 한 사람이 세워지기 위해서 긴 시간의 경청과 조심스러운 대화가 필요했습니다. 

예전에는, 사람이 조금 더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속이 참 아팠습니다. 그런데 이제서야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절대로 저의 수고를 누군가 온전히 알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하나님 앞에서, 목회자로서 양심에 따라서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칭찬해 주시기를 소망할 따름입니다. 

목회가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더 성도님들을 살피고 돌보아야겠습니다. 그래서 사역의 기대치는 무한대로 뻗어나갑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성도님들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열심히 하겠다"라는 말 뿐입니다. 마땅히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에 집중하겠습니다. 그리고 제 삶의 마지막에,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 받는 때를 기다립니다.

2023년 5월 9일 화요일

어머니에게 목회를 배웠고, 앞으로도 그럴꺼에요



저의 어머니는 목사이십니다. 시골에서 작은 개척교회를 하고 계십니다. 그 전에는 오랫동안 규모 있는 교회에서 여전도사님으로 섬기셨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통해서 목회를 배웠습니다. 어머니의 목회는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우는 목회 그리고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목회였습니다. 성도님들 중에 영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을 부지런히 살피고, 그 어떤 환경에 처한 분들도 그 사람의 처지로 그 사람을 편애하지 않고 돌보셨습니다. 

제 어린 마음에도 어머니의 진실함이 기이하게 보였습니다. 크면서 더 그렇습니다. 이제 저도 중년을 넘어가보니 세상은 그 사람의 가진 그것으로 그 사람의 가치를 정합니다. 

세상의 기준을 거스르는 어머니의 목회를 보고 자라서 그것이 저의 목회의 중요한 기준점이 되었습니다. 목회자는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사회적 지위가 있는 분을 당연히 만날수도 있고 만나야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렇지 못한 분들을 훨씬 더 많이 만나는 것이 목회입니다. 

담임 목회를 생각해야하는 시점에 들어오니, 요즘처럼 진짜 목회가 무엇인지 생각을 많이한 적이 없습니다. 안수 받은지 십년이 훌쩍 넘으니, 정말 목사가 필요한 분들이 누구인가를 알게 됩니다. 가난하고 궁핍한자,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는 자, 목회자의 그 한번의 간절한 중보의 기도의 가치를 아는 분들이 목회의 대상입니다. 

놀랍게도 아니 어쩌면 당연하게 교회 안에조차 목회자가 필요 없는 분들이 많습니다. 신앙의 이야기가 너무나 낯선 분들도 많습니다. 

목회자의 학력과 재산, 그리고 집안 배경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분들도 보았습니다. 제가 가진 것이 없어서 마음이 힘든 적은 거의 없었는데 막상 그런 경우를 경험하니 마음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세상이 병들어서, 목회자의 가치조차 그의 조건으로 만들어진다니 너무나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제 그러려니 합니다. 주님을 간절히 바라고 주님의 손길을 기대하는 분들은 얼마든지 있고, 저는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그분들을 만나고 돕기 위해서 사역합니다. 제 발걸음의 방향이 어디로 향해야하는지 주님이 보여주십니다.

삶이 어렵고 힘든 분들은 물 한잔을 놓고 만나도 그렇게 마음이 편합니다. 커피 한잔 빵 하나라도 저는 제가 사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되려 오랜 가족을 만난 것 같고 가장 친한 친구와 오랜 만에 만난 것처럼 그렇게 친근합니다. 하지만 그 중심에 하나님을 사모하지 않는 분과의 만남은, 산해진미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종종 느끼곤 합니다. 

어느날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동네에 있는 감옥에 무조건 찾아가셔서 제소자들을 만나고 예배 드리고 싶다고 어머니께서 직접 사역의 길을 여셨습니다. 무기수중에 여자들이 많다고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연세가 많이 든 작은 체구의 여자 목사를 볼때에, 그곳의 예배 드리는 분들은 어떻게 어머니를 볼까 종종 생각합니다. 어쩌면 천사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방문 때 마다 간식비를 염려하셨는데 기적적으로 매번 채우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처럼 이미 주어진 양들을 돌보는데도 버거운 저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에서 사역하시는 어머니를 항상 존경합니다.

한국에 들어가본지 거의 십년이 되어서 어머니께서 사시는 곳도, 어머니의 사역의 현장도 한번 방문하질 못했습니다. 그래도 모든 것이 눈에 선합니다. 항상 심방이 많아서 종종걸음으로 걸으시는 어머니이시기 때문입니다. 

심방 사이에 잠깐 확인하니 어머니 카톡이 와 있어서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제 마음이 이렇게 좋은데 하나님은 그 마음이 어떠실까요?

심방 약속된 성도님을 기다리면서 짬을 내어 글을 썼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가진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삶에 가장 큰 축복임을 깨닫고 감사할 뿐입니다. 어머니 사랑해요, 아들도 계속 어머니의 목회를 따라가겠습니다.

*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고, 
커피 한잔 기부를 통해 정진부 목사를 응원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buymeacoffee.com/jungjinbu5

2022년 1월 29일 토요일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 _9강 설교를 준비하기(Sermon Preparation) / 요한복음 8장 21-30절 설교

 


* 이전 글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_8강 본문 선택하기
(Choosing the Text) / 요한복음 6장 41-59절 설교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1/8-choosing-text.html

아홉 번째 강의는 Sermon Preparation 입니다. 처음에 이 제목을 들었을 때에는, 드디어 뭔가 존파이퍼 목사님의 설교 비법이 등장하는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분만이 가지고 있는 어떤 특별한 설교 준비 방법이 있을까? 그렇게 질문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시더군요. 파이퍼 목사님은 여기서 말하는 설교 준비는, 설교 시작 바로 전에 하는 그런 준비가 아닙니다. 파이퍼 목사님은, 설교에 영향을 주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말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굉장히 진지한 얼굴로, 본인의 한편의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서 40년이 필요했다고 말씀하시네요. 

본인이 청소년 시절 아팠던 바로 그 경험이 설교에 들어가고,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었던 바로 그 경험이 설교에 들어갔다고 말합니다. 결혼 생활의 어려움, 그리고 부모로서의 고민들이 또한 설교에 들어갔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곧,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설교자를 준비시키신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야고보서 4장 17절 부터 인용합니다. 

야고보서 4: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4:13 Now listen, you who say, "Today or tomorrow we will go to this or that city, spend a year there, carry on business and make money."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4:14 Why, you do not even know what will happen tomorrow. What is your life? You are a mist that appears for a little while and then vanishes. 4: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4:15 Instead, you ought to say, "If it is the Lord's will, we will live and do this or that."

말씀을 인용한 이후에, 사람의 존재가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십니다. 우리는 미래를 알지 못합니다. 잠깐 후에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라고 고백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 말씀을 바탕으로, 파이퍼 목사님은 사람의 삶이라는 것은 "연기와 같은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삶의 실재를 깨닫는 것"이야 말로, "설교자가 말하는 그 내용"을 빚어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인간의 삶에 대한 실재의 경험이, 바로 설교를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15절에서 "말하기를" 이라는 부분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면서 파이퍼 목사님의 야고보서 4장 13-15절에서 뽑아낸 원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삶, 그리고 모든 실재에 대한 경험이 설교자가 말하는 설교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의 고통의 경우에, 파이퍼 목사님은 그것을 꺼려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그러면서 마틴 루터가 설교를 준비하는데 있어서 세명의 위대한 스승이 있다고 말한 것을 인용합니다. 그것은 기도, 묵상, 그리고 고난입니다. 모든 설교에 있어서 위대한 신학교가 바로 고난입니다. 그리고 루터가 인용한 시편 119편 71절을 인용합니다. 

시편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119:71 It was good for me to be afflicted so that I might learn your decrees.

고난을 당하였기 때문에, 고난 당한 설교자가 전하는 바로 그 내용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 준비는 고통을 찾아 나서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에서 벗어나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경시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주님께서 그 고난이 당신에게 얼만큼 필요한지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1장 6절을 인용합니다. 

고린도후서 1:6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1:6 If we are distressed, it is for your comfort and salvation; if we are comforted, it is for your comfort, which produces in you patient endurance of the same sufferings we suffer.

이것은, 하나님께서 때로는 그들의 목자에게 고난을 주심으로, 목자가 자신의 양들을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를 알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설교자의 고난이, 성도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우리의 설교 준비에 있어서 매우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이런 맥락에서 존 파이퍼 목사님은 또 한 곳을 인용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8-9절입니다. 

고린도후서 1: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1:8 We do not want you to be uninformed, brothers, about the hardships we suffered in the province of Asia. We were under great pressure, far beyond our ability to endure, so that we despaired even of life. 1: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1:9 Indeed, in our hearts we felt the sentence of death. But this happened that we might not rely on ourselves but on God, who raises the dead.

여기에서 파이퍼 목사님은, 설교자가 부활을 설교 할 때에는 고난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진심어린 마음이 있어야 하며, 그래야만 부활에 대해서 설교할 때 꾸며서 억지로 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설교자를 죽음의 문턱으로 이끌고 가셔서, 그 이후에 설교자는 부활에 대해서 제대로 설교 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실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결국 어떻게 설교를 준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살아내고, 신뢰하고, 고난을 끌어 안으라"라고 파이퍼 목사님은 대답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조언에 조금 더 설명을 덧붙입니다. 

설교 준비라는 것은 설교자가 읽는 모든 것 그리고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책과 영화 등등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삶의 실재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보아야만 합니다. 

당신은 설교자이기 때문에, 그것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휴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소설 속의 가공된 삶을 혹은 길에서 발견하는 또 다른 사람들의 삶을 설교자의 마음 속에 가져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설교자가 삶의 충만한 그 실재 그리고 신적인 실재를 이해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어느 공간으로 들어가든지 간에 사람들에 대하여 무심해서는 안되며, 사람들의 행동, 동기, 그들이 보는 것,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가지는지 등등에 대해서 반드시 보고 공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이 아니라 실제 사람을 만나고 알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설교자가 잘 알아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사람은, "설교자 자신"입니다. 파이퍼 목사님은 자신이 느끼는 많은 감정들에 대하여서 예를 들어, 동기, 기쁨, 환호, 좌절 등의 역동성에 대해서 자기 자신을 살피고 또 공부함으로써 그 누구를 살피는 것보다 인간에 대하여 더 잘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설교자의 자기 인식이야 말로, 절대적으로 설교 준비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만약 자기 자신을 살피지 못하고, 자기 자신에게 다다르지 못한다면, 그런 설교자는 설교를 해서는 안됩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설교자는 자신의 실상을 모르는 사람들을 향해서 설교하는 것이기 땜눙비니다. 설교자 자신의 교만, 두려움 등등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자신을 알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고 조언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단순히 세상과 사람과 자기 자신을 보아야 할 뿐 아니라, 성경을 보아야만 한다고 강조합니다. 설교자는 성경의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성경으로 차고 넘치게 되고 거기에 완전히 빠져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으로 완전히 마음을 적셔야 합니다. 물론 다른 책을 읽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성경이 설교자의 삶을 지배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삶의 모든 것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Kilby Clyde가 C.S. 루이스의 말을 인용해서 책의 제목으로 삼은 것을 알려줍니다. 그것은 "깨어있는 지성 (A Mind Awake)"입니다. 루이스는 모든 것에 있어서 깨어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의 매우 견고하고 또 구체적인 실재들을 엮어서 사람들이 듣기에 너무나 매력적으로 만들어냈다고 설명합니다. 

저도 루이스를 너무 좋아합니다. 단 한줄만 읽어도 마음이 밝아지는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아마 주님 오실 때 까지 가장 영향력 있는 크리스천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루이스의 글이 그렇게 좋았던 이유를, 너무나 명확하게 파이퍼 목사님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루이스는 한마디로 "삶의 모든 실재에 있어서 깨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말씀하는 것은, 설교 예화에 관련된 책을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본인의 세미너리 수업의 일화를 이야기합니다. 모두가 조용한 그 순간에 엠뷸런스 사운드를 듣지 못했던 것을 설명합니다. 누군가가 엠뷸런스 속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을 텐데 그 사람을 태우고 가는 엠뷸런스 소리도 듣지 못했다면 어떻게 설교를 할 수 있겠는가 라고 말했던 교수님의 탁월한 조언을 알려줍니다. 

단순히 예화집만을 가지고서는 사람들의 삶에 다다를 수가 없습니다. 설교자는 이웃의 고통에 대해서 전혀 무관심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자신의 삶의 모든 부분에서 완전히 각성된 상태에서 살아야만 합니다. 삶의 모든 즐거움, 사람들, 자기 자신, 고통, 등등에 있어서 완전히 깨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삶의 모든 것이 설교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며 강의를 마칩니다. 

저는 파이퍼 목사님의 진지한 얼굴을 너무 좋아합니다. 강의를 위한 강의가 아니라, 이분이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 삶의 실재를 꾸밈 없이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강의이며 동시에 진실한 호소라고 생각합니다. 

설교는 참으로 신비한 것이라고 느낍니다. 원래 언어란 것이 신비로운 것입니다. 단어와 단어가 모여서 결국 문장을 만들고 의미를 빚어냅니다. 마치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그런 것처럼 우리의 글 속에는 의미와 힘과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설교는 철저하게 성경적이어야 하지만, 또한 동시에 철저하게 인간적이라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결국 설교의 대상은 성도님들이며 살아있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삶의 실재를 경험하고 있는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설교도 철저하게 인간적이어야 합니다. 

목회자로서 저에게 정말 쉽지 않은 것은, 공감 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공감이 뛰어난 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성도님이 아프고 힘들고 고난 당할 때 함께 울어주시던 어머니의 진실한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회자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읍니다. 여전히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의 마음에는 공감이 부족합니다. 

제 생각에는 고난으로 공감이 생기는 듯 합니다. 석사 과정 중에 허리가 아파서 일주일 동안 누워지낸 적이 있습니다. 그 다음부터 허리가 아프다는 분만 만나면 너무나 공감이 됩니다. 그런 면에서 주님이 설교자에게 주시는 고난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설교의 준비라는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강의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설교 준비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사람에 대한 이해 혹은 삶의 실재에 대한 이해"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심지어 이 강의의 흐름 안에서, 단 한권의 책 성경의 사람이 되는 것 보다 더 먼저 등장한 것이, 사람에 대한 이해입니다. 

사람에 대한 연구가 성경 연구보다 더 앞에 오는 이 강의의 흐름을 놓고, 어느 누가 파이퍼 목사님이 성경을 경시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파이퍼 목사님은 설교를 준비하는데 있어서 사람을 알아가고 사람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그만큼 강조하고 싶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에게는 설교 준비만큼, 때로는 더 중요한 것이 사람과의 만남, 심방입니다. 그리고 독서입니다. 책상 앞에만 앉아서 책만 펴 놓고 있을 때에는 사람을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람에 대한 통찰이 풍부한 책들을 읽을 수 있겠지만, 고난 당하는 누군가를 만나 대화하며 위로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야 말로 사람을 알아가는 가장 중요한 방법입니다. 목회자의 의무이며 특권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이번 강의를 통해 제가 바른 방향으로 목회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요즘 제가 관심있게 보는 책들이 모두 "사람에 대한 책"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북클럽을 학위 논문 주제로 다룰만큼 책을 좋아합니다. 평소에 여러 종류의 책들을 동시 다발적으로 읽어나갑니다. 

하지만 저는 책을 단순히 지식의 확장을 위해서 사용하기 보다는, 사람과 삶의 실재를 이해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번 강의를 통해서 저의 책을 보는 성향과 방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최근에 감동 깊게 읽고 실제로 삶과 설교에 많은 통찰력을 제공해준 책들은 대부분 인간의 삶 자체를 다룬 책들입니다. 삶의 목적, 삶의 의미, 삶의 현실을 다룬 책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책들을 부지런하게 읽는 것은,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 책 어디까지 읽어 봤니? -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 내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서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08/blog-post_6.html

*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 보통 사람들의 전쟁 / 성도에게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의 의미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08/blog-post_30.html

*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 싱크 어게인 / "경청"을 통해서 "다시 생각하도록" 배려하라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2/blog-post_76.html

반복적으로 힘을 써서 심방을 하고 책을 읽고 성경을 묵상하며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 스스로 평가할 때에는 저의 설교에 진실성이 조금은 올라갔구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단순히 성경이 이렇게 이렇게 이야기한다는 논리를 펼치는 것에서 넘어서서, 진실로 우리의 삶의 실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고민이 아무래도 설교에 묻어 나오는 듯 합니다. 

특별히 최근에 했던 새벽 설교에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에 대하여 깊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목회자로서 성도로서 사람들과 대화하며 관찰했던 모든 것이, 삶의 목표와 동기에 대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그 열망이야 말로, 사실상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이해를 가지고 설교를 준비하였습니다. 


파이퍼 목사님의 설교 강의를 저의 삶의 현 시점에서 공부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진실한 눈을 어디에서 볼 수 있겠습니까? 어디에서 이런 강의를 듣겠습니까? 어디에서 이런 진실한 조언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한번 한번의 강의를 영어로 다 듣고 공부하고 확인하고 스스로를 그것에 따라 반추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압니다. 

그러나 오늘 강의를 통해서 강조하신 것 처럼, 우리는 삶의 실재를 살아가야만 합니다. 물러서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고 그 험난한 길을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야만 합니다. 삶의 모든 실재에 있어서 완전히 깨어 있어야 합니다. 제 스스로를 향한 다짐이며 격려입니다. 바라기는 강의를 통해 배우고 익히고 계속적으로 훈련하면서, 성도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그들의 삶의 실재를 보듬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의 설교를 통해서, 누군가가 좀 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존파이퍼 목사님의 설교 클리닉에 대한 분석과 적용은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 _ 10강 설교 구성하기
(Lecture Introduction: Preaching Is a Great Thing)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8/10-lecture-introduction-preaching-is.html

* 존 파이퍼 "설교 클리닉" 전체 글 모음 / "설교의 대가"에게 설교를 배우라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3/blog-post_9.html

추천 글

로고스 프로그램으로, 평신도 성경 공부하기 with 스터디 바이블 노트 Study Bible Notes (2023년 9월 업데이트)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시 119:103) 누구나 성경을 열심히 읽으라는 말은 듣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꿀보다 달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

리딩 크리스천 독서 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