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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1일 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61) - 주만 의지해

 


1. 가사 살펴보기

의지했던 모든 것 변해가고 억울한 마음은 커져가네
부끄럼 없이 살고 싶은 맘 주님 아시네
모든 일을 선으로 이겨내고 죄의 유혹을 따르지 않네
나를 구원하신 영원한 그 사랑 크신 그 은혜 날 붙드시네 

주어진 내 삶이 작게만 보여도 선하신 주 나를 이끄심 보네
중심을 보시는 주님만 따르네 날 택하신 주만 의지해
보이는 상황에 무너질지라도 예수 능력이 나를 붙드네
보이지 않아도 주님만 따르네 내 평생 주님을 노래하리라

 

2. 곡 소개

곡은, 마커스워십 2018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보이지 않는 주님이 은혜로 붙드시고 성도를 이끄시기에, 더욱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걸어가겠다는 성도의 아름다운 결단을 담은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로마서 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12:21 Do not be overcome by evil, but overcome evil with good.

성도의 단순한 친절이 때로는 놀라운 일을 일으킵니다. 적대적인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켜서 회개 시키기도 하고, 혹은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Study Bible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08), Ro 12:20–21.

빌립보서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1:6 being confident of this, that he who began a good work in you will carry it on to completion until the day of Christ Jesus.

하나님께서 성도 안에서 착한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성도들의 구원을 이루는 노력을 행할 동기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2108.

시편 37:23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37:23 If the LORD delights in a man's way, he makes his steps firm; 37:24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37:24 though he stumble, he will not fall, for the LORD upholds him with his hand.

어떤 이들은 크리스천이 마치 넘어지지 않는 사람인 것처럼 여깁니다. 그러나 성도의 특권은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성도의 공동체의 특징은 넘어진 사람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격려해 주는 것입니다.

Reading Christian Book Club

고린도후서 5: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개역개정) 5:7 We live by faith, not by sight. (NIV)

성도가 미래에 부활한다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확신할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로 인하여, 그리고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임재해 계신다는 것으로 인하여 우리는 분명한 증거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Study Bible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08), 2 Co 5:7.

특히 지금 시대는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와 그 힘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이 더 겉모습에 매달릴 수록, 성도는 말씀과 기도를 통해 더 깊은 영적인 세계로 들어가며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지배하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Reading Christian Book Club

 

4. 찬양에 대한 묵상

성도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미래는 분명히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그 미래를 확신하며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모든 유혹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비록 우리의 미래가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역사 가운데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확고한 증거들을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은, 우리가 미래를 확신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증거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고난 속에서도 여전히 넘치는 은혜를 붓고 계시며, 부인할 수 없는 하늘의 기쁨과 감격을 주시면서 우리를 책임지시고 이끌어가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찬양의 고백처럼, 우리는 보이는 상황에 억눌리지 않고 그리고 당장 나의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도 마땅히 전진해야 한다. 비록 성도라도 당연히 넘어질 수 있겠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승리를 확신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 찬양을 부를 때마다, 절대적인 사랑으로 붙드시는 주님만 더욱 의지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서로 격려하며 서로를 일으켜 세우며 함께 주님을 따르는 은혜가 넘치시기를 기대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3년 7월 16일 일요일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19) - '한 번 더'의 힘 (에드 마일렛) / 시간을 압축하라, 당신의 "하루"는 "삼일"이다

 



시편 90: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개역개
정) 
Teach us to number our days,
that we may gain a heart of wisdom. (NIV)

65세에 은퇴할 경우, 오늘로서 저에게 8204일이 남았습니다. 아, 시간의 흐름이란... 시간은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이자 친구이며, 또한 동시에 가장 큰 적입니다. 사라지는 듯한 이 시간이 너무나 아쉬워 저는 몸부림칩니다. 

어렸을 때에는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피식 웃었습니다. 굳이 그렇게 오래 사는데 집착할 필요가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직 젊었기 때문에 시간의 소중함을 몰랐고,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잔인한 것인가를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멘탈리티를 하루에 한번 꼭 봅니다. 그리고 신학책을 포함해서 다양한 책들을 봅니다. 멘탈리티가 이미 자기 계발서이지만 또 다른 자기 계발서 한권 정도는 더 추가해서 보는 편입니다. 제 자신을 끊임없이 새롭게 자극하기 위해서입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삶의 좀 더 의미있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시간을 가치 있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자기 계발서들이 모두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어떤 부분에서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저자가 다르기 때문에, 그들이 걸어온 삶의 궤적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자기 계발서에는 "독특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독특함이 저에게는 큰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저보다 앞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혜를 배우는 것이 너무 즐겁습니다. 

평소에 저의 모토는 "딱 한걸음만 더" 입니다. 이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책을 읽고 있고 감동을 받고 있기 때문에, 심지어 실천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제 자신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록하지 않은 것은 희미해지며, 희미해지는 것은 영향력을 잃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영혼의 안쪽으로 깊이 집어 넣기 위해서는, 충분히 생각해야하며 그것을 글로 선명하게 새겨야 합니다. 

이 책은 제목이 너무 좋아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막상 책장을 펼치니 별로 재미는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아마존 베스트 1위에 등극하는 책들은 다 좋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에 책이 별로이면, 다시 목차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목차에서 마음에 드는 장으로 바로 넘어갑니다. 이렇게 하면 생각보다 얻는 것이 꽤 있습니다. 굳이 모든 책을 처음부터 정독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자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첫 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마음에 드는 곳으로 부담없이 넘어갔고, 기대하지 않았던 큰 교훈을 발견하였습니다. 

저자인 에드 마일렛은 "하루를 삼일처럼" 산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당신도 그렇게 해보라고 권면합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단순하고 말장난 같기도 합니다. 하루가 삼일이라니? 그냥 하루 세등분을 해서 사는 것과 무슨 차이인가? 처음에 든 생각입니다. 

그런데 저자의 논리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 시대는, 과거와 완전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편지 하나를 보내는데에도 며칠을 써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몇초만에도 가능합니다. 다시 말해서, 과거와 지금은 전혀 다른 세상이며, "시간이 가진 가능성의 크기"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와 현재의 하루는 절대로 같을 수 없습니다.

과거에 하루에 하던 일을, 지금은 오전이면 가능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것을 저자는 "시간을 압축한다"라고 말합니다. 표현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압축적으로 사용할 때에, 하루는 세번으로 늘어나며 삼일의 크기 혹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니, 저자의 말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과거에 한달 동안 붙들고 있던 일도 오전에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로고스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십권의 책을 한번에 읽어나가고, 그것이 디지털로 연결되고 하나의 네트워크로 완성되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시너지를 만들어냅니다. 동일한 시간 안에, 차원이 다른 깊이의 학습과 묵상을 가능하게 합니다. 사실상 다른 이들과 전혀 다른 시간의 가치를 누리는 것입니다. 

마치 그런 것처럼, 지금 시대에 맞춰서 하루를 생각하라는 것이 저자의 조언입니다. 일단 저는, 옳다고 생각되고 마음에 확신이 들면 바로 그 순간부터 실천합니다. "하루를 삼일처럼 살아라"라는 조언도 마찬가입니다. 며칠 동안 적용해 보고 저는 너무 좋았습니다. 사실, 일종의 매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스스로 착각할 정도로 저에게 변화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참 흥미롭습니다. 시간을 압축한다니, 그리고 하루를 삼일처럼 산다니, 그리고 그것일 실제로 나의 삶에 이루어지고 있다니, 저는 이것을 개관적으로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흥미롭습니다. 

이런 일들이 저에게 일어났습니다. 첫째로, 마음이 편합니다. 하루가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 너무 아쉽고 한스러워서 분통이 터졌었는데, 하루가 삼일이라고 생각하니 어느 정도 마음의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새벽 혹은 아침에 눈을 떠서 하루를 계획할 때에, 그 하루를 여유 있게 세등분하고, 세등분하여서 그것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오후를 지나면서 "아, 이제 나의 새로운 하루가 남았구나, 조금 더 잘 살아봐야겠다, 계획한 것을 조금 더 충실하게 해봐야겠다"라는 마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둘째로, 짜투리 시간을 더 잘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라는 시간은, 단 한번의 결심과 의지로는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루에 한 두번 효율을 극한으로 올렸다가도, 나머지 시간들은 좀 더 여유롭게 지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하루에 한 두번 정도 잘 했다라는 스스로를 향한 자부심의 한편에는, 나머지 하루는 적당히 살아도 된다라는 어리석은 여유로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짜투리 시간을 별로 소중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를 삼일로 살면서는 모든 것이 새로워졌습니다. 제가 오전에 한번 효율적으로 어떤 일을 한다고 해도, 아직 저에게는 며칠이 더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순간 순간이 굉장히 의식이 되고 진실해짐을 느꼈습니다. 작은 순간도 더 소중하게 여겨져서, 그것이 암송이든, 영어 공부이든, 아니면 책을 읽는 것이든 무엇이든 추가로 더 하게 되었습니다. 

셋째로, 패배감에서 많이 벗어났습니다. 열심히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의 깊은 잠재 의식 속에는 짙은 패배감이 있었습니다. 하루를 잘 보내다가도 밤이 되면 지치기 때문에, 밤 시간을 잘 못 보낸 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루를 삼일로 계산하면, 저는 대부분 이틀은 잘 보내고 나머지 삼일째를 놓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제가 잘 보낸 것들을 좀 더 명확하게 구체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다시 한번 회복하고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둘째 날인 오후를 충실하게 보내지 못했다 하더라도, 밤이라는 저의 남은 하루는 여전히 있기 때문에 다시 마음을 돌이켜서 세번째 날에 충실하게 살수 있다는 것입니다. 약해진 마음에서 용기 있는 마음으로의 전환이 쉽게 이루어집니다. 

넷째로, 충분한 휴식의 개념이 바뀌었습니다. 저 역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 종종 있습니다. 혹시라도 여유가 되면 그날 만큼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충분히 쉬었지만 거기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쓸데 없이 더 시간을 쓴다는 것입니다. 늦잠을 잤으면 거기에서 이제 일어나면 되는데, 굳이 내 마음속에 "하루는 잘 쉬어야지"라는 그 모호한 생각 때문에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루의 삼분의 일 정도만 쉬면, 충분히 회복이 된다는 것을 느낍니다. 오전만 쉬어도, 저는 하루를 쉰 것입니다. 하루를 압축적으로 쉬었기 때문에, 여전히 저에게는 이틀이 남아 있고, 그 이틀을 다시 활동함으로써 삶의 리듬을 잃어버리지 않는 엄청난 유익을 얻었습니다. 

지금 저는 두번째 날인 오후를 보내고 있습니다. 첫째 날인 오전도 굉장히 의미있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을 크게 기대하게 됩니다. 저는 지금 보내는 두번째 하루가 너무 마음에 듭니다. 며칠 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글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삼일째 하루도 기대를 합니다. 가족과 함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그리고 부족한 설교 준비에 더 매진할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의 남은 날을 계수할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이것보다 더 지혜로운 기도가 어디에 있을까요? 하나님 없는 사람들도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기 위해서 자신의 남은 날을 계산합니다. 하물며, 여호와의 백성이 그분께서 선물로 주신 시간을 잘 사용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에 있을까요? 

하루라는 긴 시간을 고군분투하던 제가, 이제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삼일의 시간을 압축적으로, 이전보다 약 30퍼센트 이상의 높은 효율과 의지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제 평생을 하루를 삼일로 살겠습니다. 더 부지런하게, 더 능동적으로, 더 의미있는 삶을, 하나님 앞에서 오직 그분을 위하여 살아가겠습니다. 

*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전체 글 모음 / 당신을 변화시키기 위한 "가장 아름다운 길"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3/blog-post_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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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5일 월요일

"Maybe so, sir, but not today" by 탑건 메버릭 Quote -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해서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간다는 것

 

"The end is inevitable, Maverick. Your kind is heading to extinction." -Admiral Cain

"Maybe so, sir, but not today." -Maverick

저에게 지금까지 가장 큰 영향을 준 영화는, 고3때에 보았던 주성치의 서유기입니다. "한 남자의 이루어졌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린 영황입니다. 아직도 마지막 장면을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하네요. :) 언뜻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B급 감성의 코미디 영화이지만, 사랑의 본질을 보여주는 가장 완벽한 스토리와 연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유기 이후에, 저에게 다시는 인생 영화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탑건 메버릭을 보기 전에는 그랬습니다. 영화관에서 감동을 받아서 결국 영화를 구입했습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운동을 하면서 몇번을 더 보았습니다. 아마 미국으로 지역이 셋팅 되어서인지 자막은 영어 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대사의 깊은 맛을 더 음미하고 있습니다. 

탑건의 메버릭은, 여전히 "캡틴"입니다. 그는 파일럿이야말로,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비행기보다 파일럿이 여전히 더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환경은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파일럿이 필요 없는 세상이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더욱 설 자리를 잃어갑니다. 그는 최고의 파일럿이지만, 세상은 더 이상 그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 처럼 보입니다. 

케인 제독은, 그가 탑건 교관으로 차출되었다는 소식을 알려줍니다. 케인은 무인 전투기에 전쟁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당연히 메버릭을 탐탁지 않게 생각합니다. 떠나는 메버릭의 머리 뒤로 이렇게 말을 던집니다.

The end is inevitable, Maverick. Your kind is heading to extinction.

아주 단순한 대사이지만, 그 의도는 확실합니다. 메버릭과 같은 전투기 조종사들은 이제 사라질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종말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전투기보다 조종사들이 중요하다고 믿어도, 결국 그들과 그들이 붙들던 이상은 사라질것입니다. 메버릭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 다시 돌이키며, 제독을 향해 메버릭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Maybe so, sir, but not today.

아주 짧은 대사이지만, 제 영혼 어딘가에 이것이 깊이 남았습니다. 영혼의 흔적은 보이지 않지만, 결코 지워지지 않습니다. 메버릭도 알고 있습니다. 자신과 같은 조종사들,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결국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not today". 

메버릭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바로 그 오늘" 입니다. 메버릭 역시 자신의 운명과 앞길을 알고 있지만, "바로 그날 하루만큼은" 여전히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겠다는 것입니다. 

비록 암울한 혹은 정해진 미래가 다가오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하루는 소신을 가지고 살아가겠다는 것입니다.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환경과 미래에 대하여, 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놀라우리만큼 숭고한 태도와 진정한 위대함을 경험했습니다. 

요즘처럼, 제 자신의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흘러간다고 느낀적이 없습니다. 아마 앞으로 더 그렇겠죠.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처럼 하루를 보내고 잠이 들 때 즈음에, "나의 오늘"을 돌이켜봅니다. 오늘 하루는 의미있는 삶을 살았는가? 부끄럽기가 한이 없습니다. 아무리 제 자신에게 너그러운 기준을 제시한다하더라도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제가 스스로를 평가할 때에, 어느 정도 이상주의자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 새롭게 제 자신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더 이상주의자 그리고 원칙주의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봐도 지나칩니다. 깨달은 것은 어떻게든 실천하고 싶고, 알게 된 것은 어떻게든 실현시키고 싶습니다. 그것이 저라는 사람입니다. 단 한걸음도 물러서고 싶지 않습니다. 완벽을 향해 도전하고 싶고, 내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 그것을 이루고 싶습니다.

하루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지극히 성경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거짓없이 순수하게 마음 깊이 들어오고 저의 삶의 목표가 되고 나서야, 미처 예상하지 못한 큰 어려움이 그 안에 도사리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루에 대한 소중함이 너무 커서, 저도 모르게 제 마음이 눌리고 있습니다. 쉽게 다른 이들에게는 드러내기 어려운 무거움입니다. 마치, 죽음을 바로 목전에 두고 있는 것과 같은 기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부러 이것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은, 저의 무거움이 타인에게 짐이 되고 싶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밤이 되는 것이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삶의 마지막에 하루를 더 다가섰는데,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은 자리 어딘가 서 있다는 것이 제 자신을 힘들게 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사라질 저의 운명에 대항하여 담대히 거슬러 전진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저도 메버릭처럼, 이런 절박함 때문에 더욱 더, 저의 이상과 존재 가치를 "오늘 이 하루동안" 여전히 지켜내고 싶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다른 사람이 저를 어떻게 보는가는, 저에게 별로 큰 관심사는 아닙니다. 지난 시간과 현재를 돌이켜보면, 저는 여전히 아웃사이더에 가깝습니다. 저 역시 사람이기에 다른 이의 평가를 기대할 수 밖에 없지만, 최대한 신경쓰지 않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여전히 그럴 것입니다. 

타인의 평가는 중요합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과 교류하는 것은 결국 내가 누구인가를 새롭게 조명하게 합니다. 그러나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면, 역설적으로 타인의 평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저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이미 제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붙드는 것은 "본질"입니다. 하나님 앞에 성실한 삶을 살았는가, 주님 보시기에 그리고 제 자신이 보기에 의미있는 삶을 살았는가, 그리고 가장 높은 이상을 추구하기 위하여 오늘 하루를 바로 그 길을 담대하게 걸어갔는가, 이것이 바로 저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본질입니다. 

내일은 저에게 어떤 하루가 펼쳐질까요?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오늘을 돌이켜보며, "다시 새롭게 오늘이 될 저의 내일"을 기대해봅니다. 저의 오늘이 존재하기 때문에, 저의 내일이 존재합니다. 우리의 오늘이 의미가 있다면, 그래서 우리의 내일이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저의 이상에는 다다를 수 없다는 것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 저의 육체와 정신도 연약해 진다는 것을. 언젠가 저의 모든 꿈과 모든 결심과 모든 도전과 모든 열정과 모든 노력들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가진 운명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주어진 이 하루 만큼은, "not today", 바로 오늘은 아직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2022년 1월 21일 금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마태복음 17장 / 믿음의 힘에 대한, 의심과 과신 사이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말씀하신 후에 일주일이 지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 셋을 따로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십니다. GT 스터디 바이블은 아마도 이 산이 헤르몬 산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들 앞에서 변화되십니다. 그 얼굴과 옷이 다 변합니다. 예수님께서 원래 가지신 영광의 일부분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십니다. 너무나 놀라운 것은, 로마서 12장 2절에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라는 부분에서 "변화"라는 단어가 동일한 헬라어입니다. 이 부분은 성도의 성화와 변화라는 측면에서 추후에 충분히 묵상해야 할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합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등장합니다. 구약의 가장 중요한 두 인물입니다. 율법과 선지자를 대표하는 두 분입니다. 구약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렸고 그분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구절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역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짐을 보여주는 감격적인 순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은 자신의 사랑 받는 아들임을 다시 한번 확증해 주십니다. 성경의 모든 것이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제자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겠다는 것의 의미를 묻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이 바로 그 였음을 알려주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요한을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역시 고난 받으실 것입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께 간절히 간구합니다. 자신의 아들이 간질이 심한데 제자들은 고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께 간구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스터디 바이블들은 예수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자신의 제자들까지 포함하여 그들을 책망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들은 여전히 "믿지 않는 자"들 입니다. 특별히 마태복음 17장에서 예수님께서 그분의 영광을 보이신 것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제자들에게는 20절에 따로 말씀하시기를 그들은 "믿음이 작은 자들"이라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단 한번 밖에 등장하지 않는 표현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위에서 언급한 믿음이 없는 자들과 믿음이 적은 제자들과는 분명히 구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시대에 목회자들의 많은 비판들은 지나치게 믿음이 좋은 분들을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너무 지나치게 이성을 무시하고 마치 광신자처럼 사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비판합니다. 

그런데 저는 늘 성경은 우리의 믿음 없음에 대하여 책망하시는 것을 느낍니다. 목회의 현실 속에서 광신적인 믿음을 가지신 분들 보다는, 오히려 믿음이 너무나 연약하여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도전하지 못하는 분들을 더 자주 만납니다.

그런 면에서, 이 본문을 통해 믿음의 힘에 대한 의심과 과신 사이의 스펙트럼을 봅니다. 저는 제 자신을 판단할 때에, 더욱 주님을 향한 견고한 믿음을 가지고 싶습니다. 당신은 과연 어떠합니까? 믿음이 너무 작은 자여서 삶의 어떤 변화도 경험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In Matthew 17, I see that Jesus changed to his glorious status. Moses and Elijah appeared, talking with him. This shows that the Old Testament fulfilled in Jesus Christ. 

When we ponder the glorious Jesus, the lake of faith is prominent in the succedent story. Jesus rebukes the people around him with faithlessness. However, Jesus rebukes his disples for their little faith. 

Many pastors rebuke the church for a fanatic believer. However, in the reality, I found that many believers have a little faith problem. We do not have enough faith in Jesus Christ. So, we do not challenge for a higher goal in our life to make joy my heavenly father. I always feel that my faith is so small that can reach the standard God requested of me. Ar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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