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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19일 금요일

복종이 무엇인지는 오직 복종을 통해서 배운다 / 레위기 26장 27-39절 설교

 

모든 성도는 자신의 삶 속에서 변화를 꿈꿀 것입니다.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요? 사실 성도의 변화의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성령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거룩한 소원을 심으시고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십니다. 우리의 변화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며,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맡겨 드려야 합니다.

성도의 변화라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이끌어가시고 완성하시는 것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가 자발적으로 걸어가야만 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우리 자신을 드려야하고, 단순히 생각만 하고 있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실제로 행동으로 나를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책상 앞에서 왜 나는변하지 않지라고 고민하는 것만으로는 삶이 바뀌지 않습니다. 내가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바로 그부분을 실제의 행동으로 공략해야 합니다.

다양한 책들을 동시에 읽어나가는 것은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며 동시에 위험한 것입니다. 세상에 완전한 책은 오직 성경 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모든 책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책들을인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떤 내용을 평가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고 더 많은 수고가 필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바로 써 먹는 심리학의 중요한 이론을 제공하는 제임스 윌리엄은, 철저한 무신론자로 보입니다. 그리고 극단적인 경험주의자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참된 진리와 철저하게 멀어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심리학 실험들을 통해서 발견한 그의 통찰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단순히 생각을 바꾸는 것이 행동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바뀌어진 사람처럼 행동 할 때에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오히려 바꾸어진다는 것입니다. 충분히 성도들에게 적용해볼만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지적인 만족에만 머무르는 수동적인 신앙을 바꾸어줄 중요한 도전입니다.


그리고 본회퍼 목사님의 나를 따르라는 너무 탁월해서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지금까지 그분을 그저 순교자로만 이해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지적으로 탁월한 분이, 자신의 삶을 실제로 그 진리를 위해서 살아내고야 말았다는 사실 앞에서 마음이 숙연해 집니다.



"복종이 무엇인지는 오직 복종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다"라는 본회퍼 목사님의 외침에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복종에 대한 고민이 복종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오히려 철저한 복종을 먼저 요구함으로써 결국에는 참된 성도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말씀합니다

결론적으로 제임스 윌리엄은 약간은 수준 낮은 인간의 변화를 추구합니다. 충분히 그 방법은 실용적이며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을 읽고 저는 더 용기 있는 사람인 것 처럼, 그리고 더 차분한 사람인 것 처럼, 더 꿈을 가진 사람인 것 처럼 행동하고 제 마음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성도의 성숙은,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심리학은 자신의 행복과 성공이 궁극적인목표이며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다 사라질 것들입니다. 그러나 오직 성령님만이, 자신의 생명조차 그리스도를 위하여 기꺼이 드리는 참된 복종으로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오직 주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복종을 통해서 복종이 무엇인가를 배웁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저 이 길이야 말로, 성도인 제가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 레위기 26 27-39절 설교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레위기 26장의 말씀의 맥락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계명을 지킬 때와 지키지 못할 때에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어떻게 상을 받고 벌을 받는지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계시는 맥락입니다.

그리고 이미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앞 부분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지 않는 백성의 모습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들이 망하게 될 것이라고 충분히 경고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27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7 너희가 이같이 될지라도 내게청종하지 아니하고 내게 대항할진대 28 내가 진노로 너희에게 대항하되 너희의 죄로 말미암아 칠 배나 더 징벌하리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이 무엇인가? 27절 앞 부분에 “너희가 이같이 될지라도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고” 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의 모습을 묘사하실 때에 단순히 너희가 나에게 청종하지 않는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계속된 문맥 속에서 드러나는 것 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죄악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그 길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반복되는 완고함으로 인하여서 문제가 계속 심각해 지고 있습니다. 이쯤하면 돌이켜야 하는데 돌이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하여서 또 다시 하나님의 징계가 내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그치지 않고 계속되는 그 완고함의 결과는 무엇인가? 사실 이어지는 말씀이 너무 끔찍한 내용이기 때문에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을 정도입니다. 29절에 너희가 자녀들의 살을 먹게 될 것이다 30절에 하나님께서 백성의 시체를 황폐해진 우상 위에 던지실 것이다, 그리고 31절에서는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1  너희의 향기로운 냄새를 내가 흠향하지 아니하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치 말씀의 이 장면이 눈 앞에 보이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의 마음은 전혀 돌이키지 않은 채로 하나님께여전히 대항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종교적인 행위를 동원해서 하나님을 진정시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제사라도 성대하게 한번 치뤄서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절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순종을 제사보다 낫다고 말씀하시며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반복적인 완고한 태도로 인하여서 추가로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가? 36절과 37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6 너희 남은 자에게는 그원수들의 땅에서 내가 그들의 마음을 약하게 하리니 그들은 바람에 불린 잎사귀 소리에도 놀라 도망하기를 칼을 피하여 도망하듯 할 것이요 쫓는 자가없어도 엎드러질 것이라 37 그들은 쫓는 자가 없어도 칼 앞에 있음 같이 서로 짓밟혀 넘어지리니 너희가 원수들을 맞설 힘이 없을 것이요” 라고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죄의 결과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단순히 자신의 삶 가운데 닥쳐오는 외부적인 어려움 혹은 징계정도로 이해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정말 더 큰 문제는 무엇인가? 죄를 짓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들의 그 깊은 마음과 영혼 속에 더 큰 문제가 생기며심각한 병이 든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표현이 얼마나 생생한지 깜짝 놀랄 정도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람에 날리는 잎사귀라는 것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우리가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이런 잎사귀에 놀라는 일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런데 죄라는 것이 얼마니 치명적이고 무서운 것인지 멀쩡한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한 없이 연약하고 또 연약하게 만들어서 잎사귀가 날리기만 해도사람이 놀라서 도망을 치고 심지어 쫓는 자가 없어도 두려움과 괴로움 속에서 전전긍긍하게 되는 그리고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위협 앞에서도 완전히마음이 무너져버리는 비참한 형국이 된다는 것을 경고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추가적인 징계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38절에 보면 너희가 여러 민족 중에서 망할 것인데 이어서 39절에주목해서 보아야 하는 부분은 마지막 부분입니다.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쇠잔하며 그 조상의 죄로 말미암아 그 조상 같이 쇠잔하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쇠잔하다 라는 표현은 다른 구약의 본문에서는 "썩는다" 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비참한 모습인가? 물론 이 말씀은 비유적인 표현이지만 마치 요즘 시대에 유행하는 좀비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여기 저기에서 픽픽 쓰러지고 점점썩어져 사라지는 것입니다, 너무나 허망한 모습으로 최후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 이유를 다시 한번 분명히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 주변의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지 않고 남탓을 할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망하게 될 결과에 대해서 분명하게보여주시면서 이것은 다른 누구의 잘못이나 심지어 하나님의 탓이 아니라 그들의 죄가 그리고 조상들의 죄가 그들을 스스로 망하게 한다는 것을 분명히말씀하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성도님들께서는 오늘 말씀을 보시면서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저는 굉장히 마음이 무겁다고 느꼈습니다. 말씀을 그대로 읽는 것 조차 힘들다고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이 말씀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며 또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나는 것인가를 다시 한번 깊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가장 가슴 아픈 장면이 29절의 말씀입니다. 29 너희가 아들의 살을 먹을 것이요 딸의 살을 먹을 것이며” 라고 말씀하십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가슴 아픈 장면이 실제로 역사 가운데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6장에 보면 북이스라엘의 아홉번째 왕 여호람 왕이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로 쳐들어왔을 때에 성에 먹을 것이 없어서 이런 참상이 그 안에서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예레미야애가 4 10절 말씀에도 보면 예루살렘 성이 적군에 의해서 포위되었을 때에 이런 참상이 일어났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인 레위기 말씀이 주어진 것은 대략 BC 1400년 경에 주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참상이 일어난여호람 왕의 사건은 대략 BC 850년 정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오늘 레위기 말씀을 통해서 과연 무엇을 하시고 계시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에게 닥쳐올 미래를 보시면서 무려 600년 전에 그들에게 미리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이들은 이 경고를 무시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이렇게 끔찍한 일이 실제로 어떻게 일어나냐고 반문하면서 당장 자신의 눈 앞에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들이 경고를 받기를 간절히 원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죄로 인하여 스스로 망하기 않기를바라시는 것이고 인간의 시간의 개념을 훌쩍 뛰어 넘어서 무려 600년 전에 미리 경고하시면서 그들을 도우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의 말씀은 참으로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참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다시 한번 새롭게 깨닫게 되는 은혜의 말씀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보면서 또 하나 깊이 묵상하게 된 것은 "지속적으로 대항하는 죄인의 태도”입니다. 27절에서 "대항할진대" 라는 히브리어 원어는"적개심을 가지고 걷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오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다루시는 부분이라는 것이 단순히 한 인간의혹은 공동체의 심리적인 부분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주목해야합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단순히 마음으로 하나님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드러나는 그들의 살아가는 그 삶의 모습과 행동과 태도가 여호와 하나님을 미워하며 반항하는 모습으로 실제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오늘의 말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아 죄라는 것이 이렇게 비참한 것이구나” 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진지하게 받아들여야합니다. 하나님께서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우리가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죄가 필연적으로 가지고 오는 그 끔찍함만 쳐다 볼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는 우리의 실제의 삶을 돌이켜 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 삶의 걸어가는 방향을 실제로 바꾸어서 새로운 한걸음을 시작하는 것 바로 그것이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최근에 아주 흥미롭게 보고 있는 책이 "지금 바로 써먹는 심리학" 이라는 책입니다. 저자인 리처드 와이즈먼은 영국에서 심리학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제목만 보면 굉장히 가벼운 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데 읽기는 어렵지 않지만 내용은 굉장히 탁월한 책입니다. 이 책은 "인간이 어떻게 변화할 수있는가"를 다룬 책입니다. 보통 우리는 사람의 변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의 어떤 행동을 바꾸기 위해서는 생각을 먼저 바꾸어야 한다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으로 자신의 삶을 이해한다면 충분히 생각이 바뀔 때까지 그저 공부하면서 내가 변화 되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면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심리학자인 제임스 윌리엄의 "가정 이론"을 바탕으로 인간의 변화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변화는 마치 내가 되고 싶은그런 사람인 것 처럼 내가 먼저 행동을 시작할 때에 그 사람의 변화가 시작된다는 것을 주장했습니다. 우리가 보통 가지고 있는 생각과 완전히 반대 라는 것입니다. 생각하기 때문에 행동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하기 때문에 그러한 생각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이 주장을 입증하기위해서 수 많은 실험들을 그 증거로 들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이 사람의 주장은 치명적인 오류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정말 좋았던 한가지는 인간의 행동과 정신의 연결된 관계를 매우강조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저자는 우리가 마치 어떤 사람인 것 처럼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다시 말해서 마음과 육체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비슷한 맥락에서 제가 요즘에 아주 감동 깊게 읽고 있는 또 다른 책은, 본회퍼 목사님의 나를 따르라 라는 책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까지 탁월한책은 거의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제가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은 예수님을 시험하면서 이것 저것 질문만 하고 있었던 율법 교사를 예로 들면서 본회퍼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던 부분입니다. 예수님을 바로 앞에 있던 율법 교사는 사실상 순종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저 예수님을 시험하고자하는 마음으로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는가? 내 이웃이 누구인가? 이렇게 예수님께 질문만 던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본회퍼 목사님은 바로 그런 율법 교사와 같은 사람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십니다. “매 순간, 모든 상황에서 행동과 복종을 요구받는 자는 나다 다른 사람의 자질을 따져 물을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 내가 행동하고 내가 복종하면서, 다른 사람의 이웃이 되어야 한다 혹여 그대가 깜짝 놀라 “그러면 행동하는 법을 미리 알고 숙고해야 하지 않나요? 라며 다시 한 번 묻는다면, 다음과 같은 교훈만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을 알고 숙고하려면 언제나 행동하고, 그대 자신을 언제나 요구받는 자로 여겨야 한다.” 복종이 무엇인지는 복종하면서 배우는 것이지 질문을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굉장히 놀라운 부분입니다. 완전하게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마치 일반 심리학에서 주장할 때에 행동이 먼저 앞서 나가야만 그 사람의 마음이 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 처럼, 본 회퍼 목사님의 신앙에 대한 이해는 내가 말씀을 단순히 깨달음을 얻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언제나 행하기로 요구 받는 자로 받아들이는 것이고, 복종이 무엇인지를 오직 복종을 통해서 배우는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얻고 무엇을 경험하셨습니까? 또 어떤 부분을 가장 마음 깊이두셨습니까? 간절히 바라기는 여호와께서 경고하신 죄에 대한 끔찍한 결과를 우리가 심각하게 여기며 경외함으로 이 말씀을 함께 받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 가운데 혹시라도 여호와를 대적하며 불신앙으로 걸어가는 부분이 지금 있다면, 그것을 실제로 돌이켜서 복종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저죄의 무서움에 대해서 생각만 하고 죄의 결과에 대한 지적인 분석이나 질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불순종과 반역을 끊어내고 순종하라 명하시는하나님의 엄위하신 명령 앞에서 오직 믿음의 복종으로 반응하시는 모든 사랑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며 돌보시며 인도하시며 경고하시며 주님의 자녀된 삶을 붙들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앞에서 순종의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삶의 방향을 실제로 돌이키는 제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오늘 이 하루가 주님께 진심으로 복종하며 나아가는 진실한 하루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이렇게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문" 전체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_4.html

2022년 8월 9일 화요일

가장 높은 수준의 거룩을 추구하라 / 레위기 22장 17-33절 설교

 

설교가 쉽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입니다. 설교는 너무나 어려운 것입니다. 설교는 성경 안에 목회자 자신의 삶과 성도의 삶을 녹여내는 것입니다. 복잡한 것이고 실제적인 것이고 또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설교는 결국 목회자 본인이 고민하는 만큼, 그리고 본인이 가고자 하는 그 목적을 향하여 부단히 가는 그만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설교를 준비할 때 마다 기대감이 있습니다. 기대감이 없다면 기대감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살아계시며, 설교를 준비하는 저에게 그리고 설교를 함께 듣는 성도들에게 반드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설교는 창의성이 필요했습니다. 말씀의 문맥을 고려하면서 충분한 목회적인 상상력이 필요했습니다. 복음의 내용이 손상되지 않으면서도, 마땅히 추구해야 하는 거룩의 길을 설득적으로 제시해야 하는 어려운 미션을 해내야했습니다. 


성화의 측면을 여러가지로 제시할 수 있겠지만, 성도의 마음 안에 있는 어떤 갈망을 운동 선수의 최고가 되고자 하는 갈망과 연결해 보았습니다. 완벽한 비유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원대한 꿈, 가장 높은 수준의 거룩에 대한 갈망이 설교하는 저의 마음 가운데에 그리고 함께 듣는 성도님들의 마음 가운데 불처럼 일어나기를 기대하면서 설교를 준비하고 설교했습니다. 한번의 설교와 설교문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고 또 제가 한 설교 그 자체가 저의 삶 가운데 실현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 레위기 22장 17-33절 설교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어떤 것을 드려야 하는가 그것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8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2:18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드려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문제는, 단순히 제사장만이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반드시 함께 알고 있어야 하는 매우 중요한 말씀이라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18절에 보니 이렇게 시작하십니다. 서원제물이나 자원 제물로 바칠 경우에 다시 말해서 여호와께 이미 드리겠다고 약속한 것을 드리거나 혹은 즐거운 마음으로 여호와께 추가로 어떤 것을 바칠 때에는 19절에 보니 “22:19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소나 양이나 염소의 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하나님께서 드리는 동물의 종류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동물이 흠이 없는 것에 강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 주목할 것은 죄를 속하기 위해서 반드시 드려야하는 번제나 속죄제도 없는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리고 거기에 더하여서 자기가 스스로 하나님께 약속으로 제물을 바치는 사람도 그리고 하나님께 자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추가로 바치는 사람도 마땅히 없는 것을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20 부터는, 방금 말씀하신 내용이 구체적으로 풀어서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22절을 눈여겨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굉장히 구체적으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22:22 너희는 것이나 상한 것이나 지체에 베임을 당한 것이나 종기 있는 것이나 습진 있는 것이나 비루먹은 것을 여호와께 드리지 말며 이런 것들은 제단 위에 화제물로 여호와께 드리지 말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만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기준이 얼마나 엄격한지를 수가 있습니다. 눈과 같은 중요한 장기에서 시작하여서 몸의 일부분이 상한 것도 용납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순히 신체의 일부분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체가 흠이 없어야 하는 것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피부에 어떤 병이 있거나 부스럼이 있는 것도 바치지 말아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더욱 주목해서 볼만한 것은 24 하반절입니다. “너희의 땅에서는 이런 일을 행하지도 말지며?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5절에서는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22:25 너희는 외국인에게서도 이런 것을 받아 너희의 하나님의 음식으로 드리지 말라 이는 결점이 있고 흠이 있는 것인즉 너희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지 못할 것임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을 염두에 두고 계신 것을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갈 땅은 어떤 곳인가?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나라들에 둘러쌓여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우상을 섬기며 그리고 사실은 그들 자신을 섬기는 철저한 이방인들의 나라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가는 땅에서는 만큼은 반드시 구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살아갈 곳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곳이며 그들은 분명히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5절에서 말씀하시기를외국인에게서도 이런 것을 받아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도 한번 충분히 상상해 있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어떤 사람이 슬쩍 말을 던지는 것이지선생님, 제가 이번에 제가 괜찮은 동물을 선생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조금 흠은 있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상급 양입니다 생각에는 이정도 양이면 당신의 하나님께 바치는 용도로도 괜찮을 합니다이렇게 슬쩍 말을 던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다른 외국인이 무슨 말로 짐승을 넘겨주던지 간에 하나님의 기준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어떤 것도 드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정도 쯤에서 한번 생각해 내용이 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께서 본문의 말씀을 주신 것일까? 라는 근본적인 이유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말씀은 죄를 사하는 제사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언급되는 자원하는 제와 서원에 대한 제사는, 하나님이 굳이 시키시지 않았지만 본인이 더욱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위해서, 본인이 더욱 하나님께 다가가기 위해서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인 교제를 위하여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라고 말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관계로 비유하자면 어떤 것인가?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어떤 사람이 있는데 사람과 깊은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 사람과 식사를 하고 선물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런 자리에서 볼품없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전혀 정성이 들어 있지 않은 볼품 없는 선물을 준다면 그것보다 이상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는 오늘 말씀이 마치 그런 맥락에서 이해가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이 인간의 어떤 근원적인 모순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순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때로는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싶다고 말하면서 하나님께 자신을 모두 드리고 싶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정작 우리의 삶의 내면을 깊숙히 들여다 보면 그저 그런 그런 태도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가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말로는 나의 삶을 드리겠습니다 라고 화려하게 말하지만, 정작 하나님께 나의 지극히 작은 일부분만 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말과 서원과 전혀 상관 없는 이상한 모습으로 살아가면서 그것을 정상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두가지 역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서 거룩을 추구해야 하며 또한 동시에 완전한 거룩을 이룰 없는 존재입니다. 군대에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정말 모처럼만에 소대원 20명이 돼지고기 회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준비는 가장 계급이 낮은 저와 다른 동기 두명이 하게 되었습니다. 일이 많았는데 중에 아주 중요한 것이 상추를 씻는 것이었습니다. 태어나서 그렇게 열심히 상추를 씻어본 적이 없는 같습니다. 군대 들어가기 전에 어머니께서 시키실 때에는 대충 대충 씻었는데 군대에서 하도 욕을 많이 얻어 먹어서 제가 많이 변한 것입니다

한장 한장 정성으로 200 정도를 씼었습니다. 회식 장소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고참들 앞에 당당하게 내어 놓았는데 눈을 의심하게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씻었는데 상추 장에 달팽이 한마리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가지고 나간거라도 어떻게 수도 없었습니다. 식은 땀이 흐르고 어찌할바를 모르는데 고참 중에 한명이 상추를 고기로 쌌어 그리고 입으로 넣었습니다. 다행히 고기와 달팽이가 같이 씹혔는지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상추 달팽이 사건은 영원히 마음에 묻어 두었습니다.

보통 열심이 넘치는 성도님들의 오해는,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을 만족시킬 있다 라는 착각입니다. 내가 열심히 신앙 생활하고 봉사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기준에 흡족하게 도달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정말 가능한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레위기 말씀을 통해서 반복적으로 보여주시는 것이 하나님께서는 없는 것을 받으신다 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그분의 완벽한 기준을 요구하시는 분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있겠습니다. “이야 놀랍습니다 당신 정도면 신앙 생활 열심히 합니다그런데 우리를 말씀 앞에 비추어 본다면 우리는 어떤 존재입니까?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가장 아름다운 선을 행하는 순간에도 우리의 선과 우리의 의로움은 여전히 더럽혀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장 탁월한 선행에 조차 우리의 욕심과 이기심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궁극적인 의로움은 어디에서 와야만 하는 것인가?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오는 것입니다. 로마서 3 20절과 24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되었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린도후서5 21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은 결코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결코 완전에 다다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께서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의 댓가를 친히 해결하시고 그분의 완전한 의를 우리에게 입히신 것입니다. 우리가 평생동안 한순간도 완벽을 이룬 적이 없지만 오직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의로움을 이루심으로 우리는 그분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에 우리의 마음이 어떠합니까? 우리를 위하여 이루신 놀라운 사랑과 은혜에 감격하며, 그분의 한량 없는 은혜 안에서 무한한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서 한가지 우리에게 주어지는 말씀은, 우리는 반드시 거룩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32절과 33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2:32 너희는 성호를 속되게 하지 말라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거룩하게 함을 받을 것이니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요 22:33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자니 나는 여호와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자신을 우리에게 설명하시는가?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는 어떤 분이신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며 우리의 거룩을 유지하게 하시는 분이시며 거룩함을 위하여 일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되시고 나아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기 위해서 우리를 기꺼이 구원하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거룩함 이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고 훨씬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함이라는 것을, 어떤 선택 사항 중에 하나로 받아들이는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레위기는 무엇을 말씀하는가? 거룩함은 하나님의 백성의 핵심적인 정체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오늘 본문의 말씀은 거룩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인간의 심각한 모순을 일깨우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싶다라는 그런 말을 하면서도 자원하는 제사와 서원하는 제사를 드리면서까지도 오히려 없는 것을 하나님 앞에 은근슬쩍 내어 놓으면서 하나님을 속이고 적당한 것을 드리고자 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제가 요즘에 흥미롭게 보고 있는 엘리트 마인드라는 책은, 체육 선수들의 심리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저자가 사람을 최고의 선수로 만들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정리한 책입니다. 저자는 스포츠 선수들을 탁월하게 만드는 방법들이 단순히 선수들 뿐만 아니라 기업과 리더쉽에서도 중요한 원리가 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당연히 이쪽 분야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선수들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태도로 훈련에 임하는 가의 그런 모든 내용이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중에 한가지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저자가 바버라라는 육상 선수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바버라는 이미 세계 선수권 대회에 예선을 통과 했습니다. 그리고 올림픽 대표로 통과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저자와의 깊은 대화에서 바버라가 알게 것은 자신의 깊은 마음 속에서는 자신의 한계를 밀어붙이고 끌어올려서 경기에서 순위권에 생각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1등을 하겠다는 생각도 사실은 전혀 없었다는 것을 완전히 새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저자가 이야기해 것은 이것입니다. 실제로 금메달을 따리라고 기대하고 있는 선수는 다른 선수들보다 이미 훨씬 유리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금메달을 기대하는 선수는 매일 훈련 마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목표로 하는 것을 마음에 두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훈련과 태도와 모든 것이 다를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바라가 1등을 기대하지 않는 자체가 이미 경기를 포기한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저는 내용을 보면서 우리의 신앙과 거룩함에 대한 추구가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는 마치 오늘 말씀에서 나오는 처럼 하나님께 자원하고 서원하는 것을 얼마나 많이 말로 고백하고 결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어떤 사람들인가? 거룩함에 대한 가장 깊은 열망 갈망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있습니다. 자신을 아주 냉정하게 살펴보자면 거룩하고 싶다라고 말을 많이 하고 기도도 하지만 정작 탁월한 거룩함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있는가에 대해서 심각한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한번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혹시라도 성도님들께서는 이런 거룩에 대한 열망이 있으십니까? 내가 우리 헤브론 교회에서 가장 거룩한 사람이 되겠다 혹은 나아가서, 내가 일리노이에서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겠다 혹은 나아가서, 내가 당대에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동행하는 사람이 되겠다 라고 마음 깊은 곳에서 진실하게 결심해 보신적이 있으십니까? 현재의 나를 초월하는 어떤 거룩한 탁월한 목표를 세우고 영적인 목표가 자신의 삶의 가장 숭고한 것임을 인정하면서 목표를 향해서 전력을 다해서 매일 매일 끊이지 않고 달려간적이 있으십니까? 그리고 기대감과 소망을 가지고 하루를 가장 치열하게 노력하면서 살아본적이 있는가? 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는 것입니다.

아니면 옆을 돌아보니 승리와 우승과 면류관에 대한 기대감이 없는 사람들로 가득하기 때문에, 그저 세상 사람들 이정도 수준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저 천국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만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아무런 기대감 없이 살아가고 계신 것은 아닌가? 혹은 이런 위대한 거룩의 결단을 하는 사람을 쳐다보면서 저렇게 별나게 신앙 생활 하는가 라고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지는 않은가 라는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해보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세상과 분명히 구분되시는 분이시며 가장 순결하시고 가장 진실하시고 가장 아름다운 분이십니다. 그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주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행위나 우리의 의로움에 근거하지 않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주권적인 은혜로 구원하신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거룩을 요구하시며 우리가 마땅히 걸어가야 길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로마서 12 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시지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전서 1 15절과 16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의 모든 행실에 거룩을 갈망하고 추구하라고 그리고 우리의 생각 만이 아니라 우리의 몸과 존재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라고 우리의 가장 숭고한 거룩의 목표를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여러 결심들을 아뢰며 서원을 하며 하나님 앞에서 자원하는 결심들을 아뢰지만, 자신의 결심과 서원에 미치지 못하는 턱없이 초라한 삶을 드릴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어쩌면 우리의 마음 가운데 정말 거룩에 대한 열망이 있는지를 하나님 앞에서 진지하게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구원에 감사하며 그분의 놀라운 은혜를 높이고 찬양 드리며, 그분이 요구하시는 거룩의 수준에 있어서 세상 어떤 사람도 넘보지 못할 목표와 기대감을 가지고 오늘 하루와 평생을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문" 전체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_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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