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9일 화요일

가장 높은 수준의 거룩을 추구하라 / 레위기 22장 17-33절 설교

 

설교가 쉽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입니다. 설교는 너무나 어려운 것입니다. 설교는 성경 안에 목회자 자신의 삶과 성도의 삶을 녹여내는 것입니다. 복잡한 것이고 실제적인 것이고 또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설교는 결국 목회자 본인이 고민하는 만큼, 그리고 본인이 가고자 하는 그 목적을 향하여 부단히 가는 그만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설교를 준비할 때 마다 기대감이 있습니다. 기대감이 없다면 기대감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살아계시며, 설교를 준비하는 저에게 그리고 설교를 함께 듣는 성도들에게 반드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설교는 창의성이 필요했습니다. 말씀의 문맥을 고려하면서 충분한 목회적인 상상력이 필요했습니다. 복음의 내용이 손상되지 않으면서도, 마땅히 추구해야 하는 거룩의 길을 설득적으로 제시해야 하는 어려운 미션을 해내야했습니다. 


성화의 측면을 여러가지로 제시할 수 있겠지만, 성도의 마음 안에 있는 어떤 갈망을 운동 선수의 최고가 되고자 하는 갈망과 연결해 보았습니다. 완벽한 비유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원대한 꿈, 가장 높은 수준의 거룩에 대한 갈망이 설교하는 저의 마음 가운데에 그리고 함께 듣는 성도님들의 마음 가운데 불처럼 일어나기를 기대하면서 설교를 준비하고 설교했습니다. 한번의 설교와 설교문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고 또 제가 한 설교 그 자체가 저의 삶 가운데 실현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 레위기 22장 17-33절 설교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어떤 것을 드려야 하는가 그것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8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2:18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드려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문제는, 단순히 제사장만이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반드시 함께 알고 있어야 하는 매우 중요한 말씀이라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18절에 보니 이렇게 시작하십니다. 서원제물이나 자원 제물로 바칠 경우에 다시 말해서 여호와께 이미 드리겠다고 약속한 것을 드리거나 혹은 즐거운 마음으로 여호와께 추가로 어떤 것을 바칠 때에는 19절에 보니 “22:19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소나 양이나 염소의 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하나님께서 드리는 동물의 종류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동물이 흠이 없는 것에 강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 주목할 것은 죄를 속하기 위해서 반드시 드려야하는 번제나 속죄제도 없는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리고 거기에 더하여서 자기가 스스로 하나님께 약속으로 제물을 바치는 사람도 그리고 하나님께 자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추가로 바치는 사람도 마땅히 없는 것을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20 부터는, 방금 말씀하신 내용이 구체적으로 풀어서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22절을 눈여겨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굉장히 구체적으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22:22 너희는 것이나 상한 것이나 지체에 베임을 당한 것이나 종기 있는 것이나 습진 있는 것이나 비루먹은 것을 여호와께 드리지 말며 이런 것들은 제단 위에 화제물로 여호와께 드리지 말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만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기준이 얼마나 엄격한지를 수가 있습니다. 눈과 같은 중요한 장기에서 시작하여서 몸의 일부분이 상한 것도 용납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순히 신체의 일부분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체가 흠이 없어야 하는 것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피부에 어떤 병이 있거나 부스럼이 있는 것도 바치지 말아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더욱 주목해서 볼만한 것은 24 하반절입니다. “너희의 땅에서는 이런 일을 행하지도 말지며?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5절에서는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22:25 너희는 외국인에게서도 이런 것을 받아 너희의 하나님의 음식으로 드리지 말라 이는 결점이 있고 흠이 있는 것인즉 너희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지 못할 것임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을 염두에 두고 계신 것을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갈 땅은 어떤 곳인가?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나라들에 둘러쌓여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우상을 섬기며 그리고 사실은 그들 자신을 섬기는 철저한 이방인들의 나라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가는 땅에서는 만큼은 반드시 구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살아갈 곳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곳이며 그들은 분명히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5절에서 말씀하시기를외국인에게서도 이런 것을 받아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도 한번 충분히 상상해 있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어떤 사람이 슬쩍 말을 던지는 것이지선생님, 제가 이번에 제가 괜찮은 동물을 선생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조금 흠은 있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상급 양입니다 생각에는 이정도 양이면 당신의 하나님께 바치는 용도로도 괜찮을 합니다이렇게 슬쩍 말을 던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다른 외국인이 무슨 말로 짐승을 넘겨주던지 간에 하나님의 기준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어떤 것도 드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정도 쯤에서 한번 생각해 내용이 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께서 본문의 말씀을 주신 것일까? 라는 근본적인 이유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말씀은 죄를 사하는 제사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언급되는 자원하는 제와 서원에 대한 제사는, 하나님이 굳이 시키시지 않았지만 본인이 더욱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위해서, 본인이 더욱 하나님께 다가가기 위해서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인 교제를 위하여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라고 말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관계로 비유하자면 어떤 것인가?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어떤 사람이 있는데 사람과 깊은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 사람과 식사를 하고 선물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런 자리에서 볼품없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전혀 정성이 들어 있지 않은 볼품 없는 선물을 준다면 그것보다 이상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는 오늘 말씀이 마치 그런 맥락에서 이해가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이 인간의 어떤 근원적인 모순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순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때로는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싶다고 말하면서 하나님께 자신을 모두 드리고 싶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정작 우리의 삶의 내면을 깊숙히 들여다 보면 그저 그런 그런 태도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가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말로는 나의 삶을 드리겠습니다 라고 화려하게 말하지만, 정작 하나님께 나의 지극히 작은 일부분만 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말과 서원과 전혀 상관 없는 이상한 모습으로 살아가면서 그것을 정상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두가지 역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서 거룩을 추구해야 하며 또한 동시에 완전한 거룩을 이룰 없는 존재입니다. 군대에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정말 모처럼만에 소대원 20명이 돼지고기 회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준비는 가장 계급이 낮은 저와 다른 동기 두명이 하게 되었습니다. 일이 많았는데 중에 아주 중요한 것이 상추를 씻는 것이었습니다. 태어나서 그렇게 열심히 상추를 씻어본 적이 없는 같습니다. 군대 들어가기 전에 어머니께서 시키실 때에는 대충 대충 씻었는데 군대에서 하도 욕을 많이 얻어 먹어서 제가 많이 변한 것입니다

한장 한장 정성으로 200 정도를 씼었습니다. 회식 장소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고참들 앞에 당당하게 내어 놓았는데 눈을 의심하게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씻었는데 상추 장에 달팽이 한마리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가지고 나간거라도 어떻게 수도 없었습니다. 식은 땀이 흐르고 어찌할바를 모르는데 고참 중에 한명이 상추를 고기로 쌌어 그리고 입으로 넣었습니다. 다행히 고기와 달팽이가 같이 씹혔는지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상추 달팽이 사건은 영원히 마음에 묻어 두었습니다.

보통 열심이 넘치는 성도님들의 오해는,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을 만족시킬 있다 라는 착각입니다. 내가 열심히 신앙 생활하고 봉사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기준에 흡족하게 도달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정말 가능한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레위기 말씀을 통해서 반복적으로 보여주시는 것이 하나님께서는 없는 것을 받으신다 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그분의 완벽한 기준을 요구하시는 분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있겠습니다. “이야 놀랍습니다 당신 정도면 신앙 생활 열심히 합니다그런데 우리를 말씀 앞에 비추어 본다면 우리는 어떤 존재입니까?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가장 아름다운 선을 행하는 순간에도 우리의 선과 우리의 의로움은 여전히 더럽혀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장 탁월한 선행에 조차 우리의 욕심과 이기심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궁극적인 의로움은 어디에서 와야만 하는 것인가?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오는 것입니다. 로마서 3 20절과 24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되었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린도후서5 21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은 결코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결코 완전에 다다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께서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의 댓가를 친히 해결하시고 그분의 완전한 의를 우리에게 입히신 것입니다. 우리가 평생동안 한순간도 완벽을 이룬 적이 없지만 오직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의로움을 이루심으로 우리는 그분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에 우리의 마음이 어떠합니까? 우리를 위하여 이루신 놀라운 사랑과 은혜에 감격하며, 그분의 한량 없는 은혜 안에서 무한한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서 한가지 우리에게 주어지는 말씀은, 우리는 반드시 거룩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32절과 33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2:32 너희는 성호를 속되게 하지 말라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거룩하게 함을 받을 것이니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요 22:33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자니 나는 여호와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자신을 우리에게 설명하시는가?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는 어떤 분이신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며 우리의 거룩을 유지하게 하시는 분이시며 거룩함을 위하여 일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되시고 나아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기 위해서 우리를 기꺼이 구원하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거룩함 이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고 훨씬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함이라는 것을, 어떤 선택 사항 중에 하나로 받아들이는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레위기는 무엇을 말씀하는가? 거룩함은 하나님의 백성의 핵심적인 정체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오늘 본문의 말씀은 거룩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인간의 심각한 모순을 일깨우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싶다라는 그런 말을 하면서도 자원하는 제사와 서원하는 제사를 드리면서까지도 오히려 없는 것을 하나님 앞에 은근슬쩍 내어 놓으면서 하나님을 속이고 적당한 것을 드리고자 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제가 요즘에 흥미롭게 보고 있는 엘리트 마인드라는 책은, 체육 선수들의 심리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저자가 사람을 최고의 선수로 만들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정리한 책입니다. 저자는 스포츠 선수들을 탁월하게 만드는 방법들이 단순히 선수들 뿐만 아니라 기업과 리더쉽에서도 중요한 원리가 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당연히 이쪽 분야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선수들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태도로 훈련에 임하는 가의 그런 모든 내용이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중에 한가지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저자가 바버라라는 육상 선수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바버라는 이미 세계 선수권 대회에 예선을 통과 했습니다. 그리고 올림픽 대표로 통과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저자와의 깊은 대화에서 바버라가 알게 것은 자신의 깊은 마음 속에서는 자신의 한계를 밀어붙이고 끌어올려서 경기에서 순위권에 생각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1등을 하겠다는 생각도 사실은 전혀 없었다는 것을 완전히 새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저자가 이야기해 것은 이것입니다. 실제로 금메달을 따리라고 기대하고 있는 선수는 다른 선수들보다 이미 훨씬 유리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금메달을 기대하는 선수는 매일 훈련 마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목표로 하는 것을 마음에 두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훈련과 태도와 모든 것이 다를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바라가 1등을 기대하지 않는 자체가 이미 경기를 포기한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저는 내용을 보면서 우리의 신앙과 거룩함에 대한 추구가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는 마치 오늘 말씀에서 나오는 처럼 하나님께 자원하고 서원하는 것을 얼마나 많이 말로 고백하고 결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어떤 사람들인가? 거룩함에 대한 가장 깊은 열망 갈망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있습니다. 자신을 아주 냉정하게 살펴보자면 거룩하고 싶다라고 말을 많이 하고 기도도 하지만 정작 탁월한 거룩함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있는가에 대해서 심각한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한번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혹시라도 성도님들께서는 이런 거룩에 대한 열망이 있으십니까? 내가 우리 헤브론 교회에서 가장 거룩한 사람이 되겠다 혹은 나아가서, 내가 일리노이에서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겠다 혹은 나아가서, 내가 당대에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동행하는 사람이 되겠다 라고 마음 깊은 곳에서 진실하게 결심해 보신적이 있으십니까? 현재의 나를 초월하는 어떤 거룩한 탁월한 목표를 세우고 영적인 목표가 자신의 삶의 가장 숭고한 것임을 인정하면서 목표를 향해서 전력을 다해서 매일 매일 끊이지 않고 달려간적이 있으십니까? 그리고 기대감과 소망을 가지고 하루를 가장 치열하게 노력하면서 살아본적이 있는가? 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는 것입니다.

아니면 옆을 돌아보니 승리와 우승과 면류관에 대한 기대감이 없는 사람들로 가득하기 때문에, 그저 세상 사람들 이정도 수준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저 천국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만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아무런 기대감 없이 살아가고 계신 것은 아닌가? 혹은 이런 위대한 거룩의 결단을 하는 사람을 쳐다보면서 저렇게 별나게 신앙 생활 하는가 라고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지는 않은가 라는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해보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세상과 분명히 구분되시는 분이시며 가장 순결하시고 가장 진실하시고 가장 아름다운 분이십니다. 그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주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행위나 우리의 의로움에 근거하지 않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주권적인 은혜로 구원하신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거룩을 요구하시며 우리가 마땅히 걸어가야 길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로마서 12 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시지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전서 1 15절과 16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의 모든 행실에 거룩을 갈망하고 추구하라고 그리고 우리의 생각 만이 아니라 우리의 몸과 존재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라고 우리의 가장 숭고한 거룩의 목표를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여러 결심들을 아뢰며 서원을 하며 하나님 앞에서 자원하는 결심들을 아뢰지만, 자신의 결심과 서원에 미치지 못하는 턱없이 초라한 삶을 드릴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어쩌면 우리의 마음 가운데 정말 거룩에 대한 열망이 있는지를 하나님 앞에서 진지하게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구원에 감사하며 그분의 놀라운 은혜를 높이고 찬양 드리며, 그분이 요구하시는 거룩의 수준에 있어서 세상 어떤 사람도 넘보지 못할 목표와 기대감을 가지고 오늘 하루와 평생을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문" 전체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_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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