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10일 수요일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14) - 나를 따르라 (본회퍼) /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의 참된 의미

 



저는 굉장히 지적인 것을 강조하는 환경 속에서 신앙 생활을 했습니다. 어렸을 때 부터 보수적인 장로 교회에서 자랐고, 또 대학부에서는 북클럽을 중심으로 신앙을 배웠습니다. 책을 읽고 토론하고 배우는 것이 가장 좋은 신앙의 성숙이라고 배워왔고 또 그것을 저의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축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북클럽을 잘 공부해보고 싶어서 유학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저의 마음에 가지고 있던 깊은 의구심은, "도대체 성도의 성숙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였습니다. 그 누구보다 많은 책을 읽고 공부를 한 분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지적인 것만으로는 절대로 신앙의 성숙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은 우리의 현실 속에서 너무나 확연하게 볼 수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도대체 우리의 신앙에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하여서 의견이 여전히 분분하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theme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 입니다. 최근에 진정한 제자에 대한 설교는 사실 저를 향한 설교였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것은 그분의 제자가 아닙니다. 그분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과 열망이 없는 사람은 사실상 성도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그저 지식적으로 기독교를 이해한 것일 뿐, 그 마음 안에서 성령의 회심이 일어난 사람으로 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자신의 마음에 불을 다시 붙여야 합니다.

본회퍼의 나를 따르라는, 제자도에 대한 설교를 준비하면서 그때 이미 구입했습니다. 하지만 여력이 되지 않아 최근에 읽기 시작했습니다. 적어도 제가 이해할 때에, "책 그 자체"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먼저 진리가 바탕이 되고 그것으로 고민하는 책이어야 하고, 그리고 거기에 더하여 그것에자신의 삶 전체를 걸고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의 삶이 변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나를 따르라는 이 책은, 진리를 담고 있으며, 진리로 고민하는 책이며, 한 사람의 삶을 걸고 달려갈만한 고귀한 책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본회퍼의 가장 탁월한 점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은 절대적"이라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아, 얼마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씀에 대한 이해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조금 마음에 안심이 됩니다. 

요즘에 트랜드는, 성도님들이 질문하는 것에 대해서 목회자가 친절하게 답변하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성경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그것에 대해서 잘 답변하는 것으로 목회자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해하는 것 자체가 마치 기독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Core Christianity"도 마찬가입니다. 

그런데 저의 마음에 항상 드는 생각은, "과연 이러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의 그 마음 깊이 있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심지어 "주일에 나는 가족들과 자주 놀러다니는데 크리스천이다, 꼭 주일에 교회에 나가야 하는가?" 라고 질문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마음이 답답하더군요, 성경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단순히 나의 지적인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정말 그 말씀을 잘 알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쳐서 하나님 앞에 드리기 위한 것인가? 라는 부분에서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회퍼는 예수님께 찾아온 한 부자 청년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이러한 현대인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는 어떤 영생에 대한 호기심은 있었지만, 자신의 호기심에 대한 답변이 필요했던 것이지, 절대자에 대한 순종과 그분께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정확하게 이것입니다. 

저는 본회퍼가 말하기를 "그가 위대한 스승에게 기대하는 것은 본질적인 의견 표명이지, 무조건 의무를 지우는 신적 지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라는 부분이 너무나 강렬하게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현 시대의 설교 그리고 설교자 그리고 성도들에게 울리는 경종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설교는 무엇일까요? 설교는 본질적으로 "신적인 지시"입니다. 그것은 "위대한 의무"입니다. 제가 최대한 설교를 무겁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리고 저의 모습이 무겁게 다가가기를 바라는 것은, 설교는 신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설교가 일종의 권면이나, 훈계나, 혹은 그저 듣기 좋은 가르침에 불과하다면 저 역시 제가 편한대로 해 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는 것은 신의 말씀이며, 신적인 지시이기 때문에 한 없는 무게감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는 분위기적으로 내용적으로 압도적이어야 합니다. 

물론 설교는 설득적인 내용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충분히 설득적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설교가 결국 지적인 유희로 끝난다면, 어떤 설명으로 끝난다면, 그리고 설교를 듣는 청중 역시 그러한 것을 기대하고 설교를 듣는다면, 설교자에게도 그리고 성도에게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애시당초 그 누구도 설교에 대해서 그렇게 기대하지 않으면서 삶이 변하기를 기대했다면, 그것이야 말로 가장 큰 모순이 아닐까요?
  


그런 면에서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하나님의 계명을 힘써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절대적인 당위적인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그저 행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혹은 나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조차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본회퍼는 믿음과 행위를 그렇게 명백하게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가 보기에는 사실상 믿음과 행위를 구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믿음이 연약해 졌다면, 오히려 하나님 앞에 더욱 한걸음 나아가라고 촉구합니다. 우리의 순종을 통해서 믿음을 새롭게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제 자신을 보면서, 더 이상 기독교를 "나 자신의 견고한 지적인 체계" 속에 가두지 않기 원하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분을 붙들고, 그분께 순종하는 것, 그것이 기독교입니다. 그것 외에는 모든 것이 부차적인 것입니다. 이러한 방향으로 보니 저의 배움과 삶이 새롭게 보입니다. 제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더욱 확실하게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참된 신앙의 길을 힘써 걸어가겠다고 다시 한번 결심합니다.

*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전체 글 모음 / 당신을 변화시키기 위한 "가장 아름다운 길"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3/blog-post_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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