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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1일 일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51) - 예수 주 이름

 


1. 가사 살펴보기

모든 만물의 창조자 저 온 우주의 주관자
그가 죄인 구하려 보내심 받으셨네
말구유에 놓이신 하나님의 독생자
그의 손 못 박혔고 외면을 당하셨네 

예수 거룩한 영광의 이름
예수 어린양 영광 받으실 이름 

사람으로 오신 주 그 이름 임마누엘
희생양이 되신 목자 십자가에 죽었네
우리를 살리시려 무덤에 누이셨고
삼일 만에 일어나사 사망을 정복했네 

예수 거룩한 영광의 이름
예수 어린양 영광 받으실 이름
예수 거룩한 영광의 이름
예수 어린양 영광 받으실 이름

예수, 예수 거룩한 이름
예수, 예수 뛰어난 이름

 

2. 곡 소개

곡은, 2015년도에 발매된 스캇 브래너 목사님의 예수 주 이름싱글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마치 한편의 위대한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감동을 준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그 핵심을 압축적으로 짚어 내었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영광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드러내는 너무나 아름다운 찬양이다.

* 예수 주 이름 앨범 소개
https://music.bugs.co.kr/album/481051?wl_ref=S_tr_01_04

 

3. 말씀으로 바라보기

마태복음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1:23 "The virgin will be with child and will give birth to a son, and they will call him Immanuel"--which means, "God with us."

1:23 Immanuel, Matthew tells us, means God is with us. Jesus Christ is incarnate deity. That is the essence of Christmas. All the problems in this world can be traced back to sin, and Jesus Christ entered the world to forgive us for our sins, give us victory over our sins, and give us an eternal home free from sin. That truth is what Christmas is all about. If you miss that, you’ve missed the point. 마태복음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 처럼, ‘임마누엘’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크리스마스의 본질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들은 죄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죄에 대한 승리를 주시기 위해서, 또한 죄로부터 자유로운 영원한 집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진실이 바로 크리스마스의 모든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이것을 놓친다면, 요점을 놓친 것입니다.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1095.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1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1:2 He was with God in the beginning.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3 Through him all things were made; without him nothing was made that has been made.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1:4 In him was life, and that life was the light of men. 1: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1:5 The light shines in the darkness, but the darkness has not understood it.

1:3 All things … by him. Christ is the Creator of the entire universe, including men and angels (v. 10; Col. 1:16–17; Heb. 1:2, 10–12). This clearly implies that He was not created, for any thing made was created by Christ.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되었으니 : 그리스도는 사람과 천사를 포함하여 우주의 창조주이십니다. 이것은 그분이 창조된 분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하게 암시합니다. 왜냐하면 만들어진 모든 것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509.

1:3 made through him. God the Father did his work of creation through the activity of the Son. This verse disproves any suggestion that the Word (the Son; John 1:14) was created. 성자 하나님의 사역을 통하여 성부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이 구절은, 말씀이신 성자께서 창조되었다는 어떤 제안도 반박하는 것입니다. 

J. I. Packer, Wayne Grudem, and Ajith Fernando, eds., ESV Global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2012), 1479.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14 The Word became flesh and made his dwelling among us. We have seen his glory, the glory of the One and Only, who came from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we have seen his glory. His “glory” is beheld, even as God’s was in the wilderness (Ex. 16:1–10; 33:18–23), in the tabernacle (Ex. 40:34, 35), and later in the temple (1 Kin. 8:1–11). There may also be a reference to the transfiguration, since John, along with Peter and James, witnessed it (Matt. 17:1–5). Moses had asked to behold the Lord’s glory but could only glimpse His back (Ex. 33:18–23). “Glory” applies supremely to God, the Creator and Ruler of the universe, the One before whom all knees must bow. The Son has the divine glory by right (17:5). The Reformers declared their faith with the motto soli Deo gloria (to God alone the glory).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 광야에서, 성막에서, 그리고 후에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영광 나타나고 있다. 베드로, 야고보와 함께 요한도 그것을 목격했기 때문에 아마 예수님의 변모 사건을 언급하는 것일 수도 있다. 모세는 여호와의 영광 보기를 간구했지만, 단지 그의 등만 얼핏 있었다. “영광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자 통치자이신 하나, 모든 이가 무릎을 꿇어 경배해야 하는 유일한 한분에게만 궁극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신적인 영광을 공유하는 권한을 가지신다. 종교개혁가들은 솔리 데오 글로리아’ 즉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란 표현으로 자신들의 믿음을 고백했다.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1852.

디모데후서 1: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1:10 but it has now been revealed through the appearing of our Savior, Christ Jesus, who has destroyed death and has brought life and immortality to light through the gospel.

1:10 The manifestation of God’s plan and grace has been revealed, or brought to light, in the appearing of our Savior Jesus Christ. abolished death: Fear of dying might have caused believers to shrink from testifying about their faith. The Greek term translated life is typically used of eternal life in the New Testament. God’s life, unlike the life of humans, is immortal; He cannot die. Through their faith in Christ, believers have inherited eternal life. We have nothing to fear, not even death. Therefore we can proclaim with boldness our trust in Christ.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드러났습니다. 사망을 폐하시고 :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신자들은 자신의 믿음을 증언하는 일을 꺼렸을 수도 있습니다. “생명으로 번역된 헬라어 용어는 일반적으로 신약에서 영원한 생명을 의미하는데 사용됩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인간의 생명과 달리 불멸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죽으실 없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상속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담대하게 선포할 수 있습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2 Ti 1:10.

히브리서 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개역개정) 2:9 But we see Jesus, who was made a little lower than the angels, now crowned with glory and honor because he suffered death, so that by the grace of God he might taste death for everyone. (NIV)

2:9 glory and honor. Because Jesus became “obedient to the point of death … God highly exalted Him” (Php 2:8, 9). By His redemptive work, Christ has fulfilled all that is required as the supreme representative of mankind. By His incarnation, substitutionary sacrifice, and victory over sin and death (cf. Ro 6:23; 1Jn 4:10), He has fulfilled man’s original purpose. As the Second Adam (1Co 15:47), He was for a short time lower than the angels. Now He has glory and honor, and all things (including angels) are subject to Him. 영광과 존귀 예수님은 죽기까지 복종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분을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속죄의 사역을 통해 인류의 최고 대표자로서 요구되는 모든 것을 성취하셨습니다. 둘째 아담으로서 그분은 잠시 동안 천사들보다 낮아 지셨습니다. 이제 그분께는 영광과 존귀가 있고 천사를 포함하여 모든 존재가 그분께 복종합니다. 

John F. MacArthur Jr., The MacArthur Study Bible: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hville, TN: Thomas Nelson Publishers, 2006), Heb 2:9.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탁월하게 드러낸 찬양이다.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신 성자 하나님께서, 한없이 낮아지심으로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찾아오셨다. 그분은 가장 고귀한 자기 자신을 죄인을 위해서 주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믿음으로, 죄인이 그분의 의로움을 힘입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가 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인류의 영원한 대적인 죽음을 정복하셨다. 또한 지금 그분은 자신의 온전한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계시며 모든 존재는 그분께 복종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원히 찬양과 경배 받기 합당한 분이시며 영광스럽고 존귀하신 분이시다. 그분의 이름은 성도가 평생동안 찬양해야 하는 가장 존귀한 이름이다. 이 귀한 찬양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지기 원한다. 죄인이 자신의 위대함을 높이고 드러내는 이 타락한 세상 속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은혜 그리고 죽음을 정복하신 십자가의 능력과 부활을 고백하고 감격하고 그 안에서 더 견고한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기대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19년 12월 18일 수요일

'강해'와 '주제'사이 - '설교의 퓨전'을 꿈꾸다 / 스캇 브래너 - 경배합니다



예전에 이런 농담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설교와 심방 아니면 목회 할만 하겠다!' 피식 웃으면서도 마음으로는 크게 공감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설교와 심방은 목회의 꽃이면서 동시에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현재, 한 주에 고정적으로 두편, 그리고 많을 때에 세편의 설교를 합니다. 아마 한국 교회 평균에 훨씬 못 미치리라 생각합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단독으로 목회하면서 새벽과 수요일 저녁과 주일을 포함하여 거의 여덟번 이상 설교를 하리라 예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쉽지 않은 목회적인 상황 속에 계신 분들 앞에, 항상 마음이 겸손해 집니다.

설교를 계속 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저는 '설교의 구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청중이 다양하고 상황이 다르지만, 어떻게 해야 성경적이고, 설득적이고, 감동적인 설교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언제나 가장 큰 질문입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읽으실 이 내용은, 저의 고민의 작은 결과입니다. 철저하게 신학적인 혹은 설교학에 기반한 내용은 아니지만, 제 경험과 목회적 감각에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생각해 주신다면 좀더 편안한 마음으로 읽으실 수 있을 듯 합니다.

제 목표는 언제나, '주제 설교와 강해 설교를 퓨전'하는 것입니다. 주제 설교는 어떤 해당하는 주제를 미리 가지고 다양한 성경 구절을 들어가며 논지를 이끌어가는 것이고, 강해 설교는 성경 한 본문을 중심으로 본문의 맥락과 그 뜻을 살피며 논지를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주제 설교는, 흥미를 끌고 적용성은 강하지만, 본문 자체에서 지지 받는 느낌이 약하고, 강해 설교는, 본문 자체에서는 지지를 받지만, 매우 지루해지기 쉽고 적용이 약합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실험해 본 '퓨전 설교'의 구조는 이렇습니다.


Step 1. 본문을 열어가는 예화 and or 본문에 대한 간략한 배경 설명

=> 대부분의 성도님들은 성경을 한주일에 한번도 안 읽어보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대한 간단한 배경 설명 혹은 그 본문의 맥락에 대한 설명이 필수적입니다. 다만 절대로 TMI(too much information)는 피해주세요. 설교 초반부터 모든 흥미를 다 잃어버립니다. 세심하고 짧은 문장들로 필요한 내용들만 짧게 말해야 합니다.
ex) 아마 처음 오늘 본문을 접하시는 분도 계실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어떤 성경에 어느 부분에 속한 부분으로, 이런 역사적인 맥락 혹은 지리적인 맥락에서 쓰였습니다. 


Step 2. 본문에 대한 간략한 문법적 and or 신학적 설명  

=>  이제 본격적으로 설교가 시작됩니다. 다만 이 부분에서는 '절대로' 본문 속에 '모든' 문법적 사항이나 신학적 사항을 다루지 않습니다. 물론 목회자는 설교 준비 중에 중요한 문법적 사항과 신학적 사항을 체크해야 합니다. 그러나, 본인이 조사한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하는 TMI이야 말로 현대 설교에서 피해야 할 금기 사항입니다. 현대 성도들은 인내심이 많지 않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추후에 좀더 깊이 다루어야 할 문법적 and or 신학적 설명을 '맛보기'로 조금씩만 다루면서 청중의 흥미를 돋굽니다.
ex) 오늘 말씀은 구조적으로 두가지 문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 문단은 여기에서 저기까지, 둘째 문단은 여기에서 저기까지입니다. 첫째 문단에는, 흥미롭게도 이런 이런 단어들이 반복되고 있고, 이런 문법적인 특징들이 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교리들에서 주로 다루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내용들이 언급되고 본문이 마무리가 됩니다. 


Step 3. 적용 1

=> 본문에 대한 간략한 설명 이후에, 바로 적용으로 들어갑니다. 실제로 설교를 들으면, 굉장히 적용이 빨리 나온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 부분에서 성도들은 마음에 안심을 하게 됩니다. '아 이제 복잡한 이야기는 안들어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강해 설교가 자칫 뜬 구름 잡는 이야기에 그칠 수 있지만, 적어도 설교 초중반에 적용을 선제적으로 만들어서 제시해 주면, 설교자 입장에서도 그리고 청중 입장에서도 '설교의 분명한 삶에서의 영향과 결과'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ex) 오늘 말씀의 첫번째 적용은 "이렇게 하자" 입니다. 

=>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왜'입니다. 즉, step 2에서 다루었던 간략한 문법적 and or 신학적 설명을 좀더 '심화시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당신이 들은 적용이라는 것이, 그저 쉽게 나온 내용이 아니라, '본문에서 확실히 강조하고 있고 지지하고 있는 내용'이라는 인상을 주어야 합니다.
ex) 본문을 다시 한번 보시면, 우리가 눈 여겨 봐야 할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아주 흥미롭게도, 바로 앞 본문과 뒷 본문이 대조적으로 연결이 되면서, 이런 이런 단어가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즉 이 본문에서 저자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 또한 제가 제시하는 퓨전 설교는, 강해 설교보다 좀더 자유도를 가집니다. 즉 본문이 이야기하는 바를 충실히 이야기 해야 하지만, 또한 목회자 본인이 '충분히' 본문을 묵상하고 확신을 가진 내용이라면, 그 사고와 적용의 범위를 '좀더 넓게'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본문에서 약하게 다루는 부분이라도, 그것이 목회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마치 주제 설교를 하듯이 내 앞에 앉아 있는 청중을 향한 목회자의 진심을 설교에 불어 넣는 것입니다. ex) 제가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가장 감동 깊었던 부분이 이 부분입니다. 이 부분이 굉장히 특별히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우리 교회가 생각이 났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제시하는 '퓨전 설교의 적용'은, '일반적인 적용'과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본문 설명을 TMI로 계속 한 다음에, 그저 마지막에 마치 못해 스쳐 지나가듯이 하는 적용이 아니라, 적용 파트를 미리 당겨서 시작하고, 이때 본문 내용을 좀더 심도 있게 다루면서, 목회자의 진심과 청중을 향한 고려까지 넣어서 적용을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물론 강해 설교와 다르게, 적용 파트에서는 설교자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실제적인 이야기들로 반드시 채워야 합니다. 즉, 그저 '다 하나님 은혜입니다' 라는 수준에서 그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ex) 놀라운 것은, 루터가 바로 이 부분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and or 제가 조사해 보니 이런 설문 조사가 있었습니다 and or 제가 예전에 읽은 책에서 이런 내용이 있었는데 이 본문과 아주 잘 매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적용이야 말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Step 4. 적용 2

=> 왜 적용이 굳이 두개인가? 이건 순전히 제 경험의 결과입니다. 보통 20분-30분 설교의 기준으로 적용 한개는 너무 내용이 빈약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적용 세개는 사실 내용을 다루기에 너무 벅찹니다. 그래서 두개만 다룹니다. 이상하게 적용 1, 적용 2 이렇게 두개만 다루다 보면, 듣는 분들도 편안함을 느끼고, 준비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본문이 아주 선명해 집니다. 그리고 당연하게 적용 2 부분에서도, 적용 1과 동일한 논리 구조로 내용을 풀어갑니다.
ex) 오늘 첫번째 적용은 "이렇게 하자" 였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두번째 적용은 "또 이렇게 하자" 입니다. 


Step 5. 결론 

=> 학문적인 글쓰기의 마무리의 의미는 '요약' 입니다. 아쉽게도, 본인이 설교 가운데 했던 말과 전혀 상관없는 or 변두리의 논지로 마무리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았습니다. 설교에서의 결론은 아주 심플합니다. '절대' 다른 내용을 언급하지 마세요. 결론이란, 내용의 요약 그리고 적용 두가지의 강조입니다. ex)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오늘 핵심 내용은 이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적용은 이렇게 두가지였습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모든 성도님들께서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이렇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상의 내용을 더욱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Step 1. 본문을 열어가는 예화 and or 본문에 대한 간략한 배경 설명
=> 흥미를 끌면서 문맥과 배경에 대한 도입

Step 2. 본문에 대한 간략한 문법적 and or 신학적 설명
=> 흥미를 끌기 위한 본문 내용 맛보기 

Step 3. 적용 1
=> 흥미를 끌기 위해, 심화된 본문 해석과 목회자의 진심으로부터 적용 끌어내기 

Step 4. 적용 2
=> 흥미를 끌기 위해, 또 다른 대지 하나를 적용

Step 5. 결론
=>요약 및 적용 강조


실제로 이렇게 설교 해 보면, 딱 강해와 주제 설교 중간 정도의 느낌입니다. 원포인트 설교의 성격을 가지면서도 투포인트이고, 동시에 적어도 두가지 적용점을 가진 주제 설교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청중의 흥미를 잃지 않고 실제적인 강조점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본문의 내용을 어느 정도 충실히 다루기 때문에, 설교자인 내가 전혀 이상한 이야기를 했다는 느낌 보다는, 그래도 오늘 말씀에 충실했다는 뿌듯함이 남습니다.

원래 이 구조는 새벽 설교 구조로 연습하다가, 최근에 공예배 설교에 30분 정도 길이의 설교에 적용한 것을 동영상을 업로드 했습니다. 설교를 한번 들어보시면 어느 정도 위에 설명이 이해가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대단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 열심히 썼는데, 제 스스로 민망합니다. 다만 평소에 고민하던 부분을 정리할 수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설교에 대한 고민은 평생 지속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고민은, 주의 교회를 섬기기 때문에 행복한 고민입니다. 저는 앞으로 최소 5년 정도는 이 구조를 계속 다듬어 나가려고 합니다. 함께 기도하며 고민하는 모든 목회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설교의 영감이 언제나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행복 :)

p.s. 자매품, '로고스를 이용한 설교 준비 노하우'는
아래 링크를 참조해 주세요.

https://jungjinbu.blogspot.com/2015/07/12-7-1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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