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5일 일요일
사랑하는 예찬팀에게 마지막 인사를 올리며 (찬양의 순간 속에, 우리는 영원하다) / 내 삶의 이유라 - JB & Faith Piano)
2023년 9월 8일 금요일
2023 예찬 집회를 앞 두고
그런 면에서 찬양팀은 언제나 도전입니다. 특히 예찬 집회가 그렇습니다. 단순히 나 혼자서 잘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팀을 이룬다는 것은 나를 희생하는 일이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함께 마음을 모으는 일입니다. 누군가와 하모니를 이루며 한시간 이상의 찬양 집회를 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사람은 두가지 압박 속에 살아갑니다. 하나는 나의 내면의 목소리입니다. "너 같은 사람이 뭘 하겠어?" 본능적인 외침입니다. 나 자신조차 나를 신뢰하지 못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길 때에, 우리는 자기 자신이 가진 가능성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외부의 목소리입니다. "너 같은 사람이 뭘 하겠어?" 사람들은 격려의 말을 하기 보다는 남을 폄하하는 말을 훨씬 쉽게 합니다. 대부분 그 일을 해보지도 않은, 그 사람의 노력에 발 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남이 잘되는 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죄악된 본성에서 나오는 질투의 표현입니다.
팀 그로버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대다수 사람에게는, 도전의 길을 향하여 노력을 기울일 용기가 없습니다. 용기 없는 자들은 다른 사람을 폄하하는데 집중합니다. 그래서 예찬 집회와 같은 도전적이고 위대한 일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마음을 집중해야 합니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위대한 목표를 끊임없이 바라봐야 하고, 거기에 걸맞는 연습과 정신력을 키워야 합니다. 그리고 강인한 마음으로 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예찬팀은 인내와 실력과 마음을 갖춘 분들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우리가 잘 해 왔다고 확신합니다. 다른 사람이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든지 간에, 심지어 내 자신의 내면에서 무엇이라고 하든지간에, 우리는 지금까지 잘 해 왔고 오늘 집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쓸데 없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쓸데 없는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연습과 노력에 집중하시고, "오늘 내가 무엇을 해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집중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무대는 "우리의 무대"입니다. 하나님의 무대이지만, 동시에 우리의 무대입니다. 한 사람의 일생 동안에 이렇게 아름답고 귀한 무대에 설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될까요? 오늘 우리 앞에 놓여진 시간은 각자의 삶에 가장 큰 영광이고 특권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기쁨의 무대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내 삶의 마지막 무대라고 생각하시고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매번 설교 때 마다 이것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고 설교합니다. 찬양 인도도 그렇습니다. 인생에 마지막은 반드시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억할 때에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그 가치를 제대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오늘 무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제가 책임지고 이끌어가겠습니다. 전혀 염려할 필요 없습니다. 다만 마지막으로 부탁드릴 것은 언제나 드렸던 말씀 그대로입니다.
싱어분들은 가급적 편안한 목소리로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은혜로운 마음으로 부르더라도 또 한편으로는 "마음을 냉정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발음"을 빨리해서 노래가 쳐지지 않게 최대한 신경을 써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내가 악기보다 절대로 느리게 부르지 않게 부르겠다" 라고 결심하면서 끝까지 부르시면 좋겠습니다.
악기팀 그동안 참 수고하셨습니다. 악기들이 합을 맞추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혹시라도 합을 맞춘 부분이 틀리더라도 절대로 당황할 필요 없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전체적인 흐름이고 마지막까지 집회를 잘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준비한 만큼 하시면 충분히 잘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집회를 위해 준비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이 귀한 팀에서 인도를 맡은 것은 저의 삶에 가장 큰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큰 축복입니다. 오늘 집회 가운데 잘 부탁드리고 최고의 찬양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리며 또 성도님들과 나누는 시간 되기를 원합니다.
* 홈 레코딩, 어디까지 해 봤니? 76 -2
/ 라이브 투트랙을 마스터링 해보자 (2023 예찬 찬양 집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9/76-2-2023.html
2023년 5월 20일 토요일
나와 우리의 "한계"를 넘어, "한걸음 더" 나간다는 것
2022년 7월 23일 토요일
노래를 잘하고 싶어서, 오늘도 공부합니다.
크리스천들은 각자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가장 큰 소망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크리스천은 그 아래에, 자신의 소망을 하위 영역으로 가지고 살아갑니다. 저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하나님을 잘 드러내기 위해서 노래를 잘 하고 싶습니다.
제가 노래를 잘하고 싶었던 것은, 순전히 CCM 가수 박종호씨 때문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그분은 저의 목표입니다. 박종호씨를 모창하면서 발성의 기본적인 부분들을 깨달았습니다. 저에게 발성의 감각은, 코와 이마 사이로 나오는 일종의 단단한 소리입니다. 말 소리와는 다르지만 소리를 약간 띄워서 내는 듯한 느낌, 그리고 그것이 이마를 넘어서서 어떤 공간으로 앞서 나간다는 그런 느낌입니다.
노래를 잘 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젊은 시절 그것으로 한참을 고민했고 배우기 위해서 찾아다니기도 했고, 지금도 공부중입니다. 할수만 있다면, 은퇴하기 전까지 한걸음이라도 더 노래를 더 잘 하기 위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요즘에는 유투브 영상이 너무 좋아졌습니다. 과거에는 정말 알음알음으로 배워야했던 많은 것들이 공개되어 있고, 탁월하게 설명하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예전부터 영상을 통해서 유익을 얻었는데 몇가지 영상을 링크를 걸고 제가 도움을 얻었던 부분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요즘에 찬양을 하면서 많이 느낀 것은, 제 목소리가 좀 답답해 졌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앞으로 멀리 틔여진 소리라고 스스로 생각한 부분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너무 마이크를 의지하고, 또 한편으로는 부드럽게 발성이 된다는 느낌을 많이 못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차에 아래 영상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2022년 6월 14일 화요일
예찬 찬양 집회 2부 분석 (대 곡을 소화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 "대 곡"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의 기쁨
찬양팀의 수준을 끌어 올린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모든 팀들이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성도님들이 좋아하시는 대중적인 찬양곡을 잘 소화하며, 그것을 실제로 집회 가운데 은혜롭게 승화시킬 수 있는 팀을 누구나 꿈꿉니다. 그러나, 그것을 위하여 전략을 짜고, 그것을 실제로 수행하여서 팀을 세워간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며 마치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어떻게 제가 이런 중요한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한주 한주 계속 고민하면서 감당할 뿐입니다.
* "자신의 팀"을 충분히 파악해야, 대 곡을 시도할 수 있다
찬양 인도자는, 자신의 팀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각 멤버들의 성격, 성향, 신앙 수준, 노래와 연주 수준 등등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 한 사람의 그 한번의 호흡을 통한 노래와 연주가 합쳐져서 팀의 찬양이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저의 팀의 건반은 네박 중에서 세박과 네박 사이가 좀 빨라서 수정을 오랫동안 부탁드렸습니다. 드럼은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림샷에서 스내어로 넘어가는 시점이 좀 늦어서 그 부분도 오랫동안 수정했습니다. 싱어분들도 스타일이 다 다릅니다. 성악 스타일부터 발성이 좀 약한 분들 등등 다 개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도자는 그 모든 분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자신이 목표로 하는 팀의 색깔에 최대한 가깝게 끌고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너무 지나치게 자세하게 분석한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씀드려서, 찬양팀 개인 개인의 음악성은 0.2-3초 정도에서 결정이 됩니다. 그 어간에서 아름다움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러한 개인의 순간의 판단과 음악성이 모여서 팀을 이룹니다. 그 찰나의 순간을 인지하고 찬양을 소화하는 능력이 결국 팀의 수준을 결정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찬양 인도자는 거의 편집증에 가까운 디테일한 완벽을 추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설령 그것이 당장 완성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현실을 철저하게 분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 대 곡은 "디테일과 지속성"이 중요하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팀원들이 가진 디테일과 완성도를 어느 정도까지 유지할 수 있는가가 관건입니다. 예를 들어서, 5분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도, 10분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10분을 음악적인 디테일을 유지하는 것보다 20분은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현재 저의 팀은 최상의 컨디션으로 20분 정도를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1시간은 어떨까요? 1시간을 내가 하는 찬양의 음악적인 디테일을 유지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의 능력을 완전히 초월하는 일입니다.
* 찬양팀의 팔할은 "음향"이 결정한다
찬양팀은 음악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음향적인 부분이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제가 직접 레코딩하고, 믹싱 마스터링까지 좀 더 탁월하게 할 수 있기 위해서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만큼 들리기 때문이고, 아는 만큼 팀을 살피고, 아는 만큼 엔지니어에게 부탁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경우에 간과하는 것이 엔지니어의 중요성입니다. 그런데, 엔지니어의 역할은 "결정적"입니다. 물론 음악성이 떨어지는 것을 음향으로 보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로, 음악성이 아무리 좋아도 엔지니어가 서포트하지 못하면 그 집회는 실패할 가능성이 거의 백퍼센트입니다. 사실상 집회의 수준과 감동은 엔지니어의 손에서 팔할이결정됩니다. 다행히 저희 교회의 엔지니어로 섬기시는 분은 최고의 실력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은 언제나 존재할 수 있습니다.
* 집회에는 언제나 "변수"가 존재한다
저는 평소에 젠하이저 무선 마이크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노후가 되어서인지 이번에 거의 마지막 리허설 중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운드가 들어가기는 하는데 거의 80 퍼센트가 사라지면서 로우 패스 하이 패스 필터가 엄청 걸린 것 같은 아주 이상한 사운드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굉장히 당황했습니다.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모릅니다. 저는 사운드 자체에 아주 예민하기 때문에 모니터를 조율하는데 시간을 많이 썼습니다. 그렇게 오래 연습하고 조율한 익숙한 마이크로 해도 집회가 힘든데, 집회 준비 마지막에 마이크가 문제라니 앞이 캄캄했습니다.
급한대로 엔지니어께서 유선으로 교체해주셨습니다. 아마도 마이크 입력 채널이 바뀌었으니 당연히 셋팅도 다시 했습니다. 그런데 집회가 끝나고 알았습니다. 놀랍게도 싱어분들 모니터에 제 목소리가 안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다 여쭤보진 않았지만 아마 싱어용 모니터 전체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상했는지 모릅니다. 평소에는 제 목소리가 싱어분들 모니터에 들어가기 때문에 가이드가 당연히 됩니다. 당연히 제가 의도하는 대로 더 수월하게 부르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이렉트로 모니터로 나오는 제 목소리 없이 이 큰 집회를 마쳤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참 자랑스러웠습니다. 싱어분들의 수준이 놀랍고 감사했습니다. 영상에서 들으시는 것 처럼 전체 집회를 꽤 근사하게 정말 잘 하셨기 때문입니다. 많이 연습했고 연습한 만큼 좋은 모습으로 끝까지 임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팀 싱어들도 음악에 맞춰서 자신의 노래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싱어분들과 함께 연습한 것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 드디어 시작된 2부
자 이제 1부가 끝이 나고 2부로 넘어갑니다. 사실상 2부는 곡의 선곡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앞에서 이미 좋은 곡들을 많이 했기 때문에, 2부에서는 뭔가 새로우면서도 뭔가 더 음악적으로 영적으로 뛰어난 곡들이 배치되어야 합니다. 소위 말해서 "대 곡"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 "팀 뿐 아니라 교회를 이해해야" 대 곡을 할 수 있다
아마 저를 포함해서 모든 찬양 인도자들은 "대 곡"을 하고 싶은 갈망이 있을 것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대곡이라 하면, 곡 구성이 드라마틱하고 어느 정도 높은 음들이 존재하고 리듬이 화려하거나 어려운 그런 곡들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찬양팀의 음악성을 잘 드러낼 수 있는 곡을 말합니다. 그런데, 대 곡에 대한 담대한 시도는 실질적으로 두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찬양팀 자체의 실력"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서 아무리 찬양 인도자나 팀 전체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거나 해서는 안되는 곡이 존재합니다. 문제는 음악성입니다. 음악성이 받쳐주지 않는데 무리해서 곡을 부르게 되면, 그 곡에 대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기 때문에 당연히 은혜를 끼치기 어렵습니다.
둘째로는, "회중의 반응"입니다. 예를 들어서 감사하게도 찬양팀이 충분히 준비가 되어서 어떤 곡을 부른다고 해도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회중이 그 곡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진다면 사실상 은혜를 받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 부분이 더 어렵습니다. 찬양 인도자는 섬기는 교회의 회중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회중을 고려할 때에 상대적으로 너무 어려운 리듬, 너무 어려운 코드, 너무 화려한 연주는 그런 의미에서 은혜를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 PPT의 형태는 매우 중요하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은 PPT의 문제입니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젊은 분들은 가사만 있어도 몇번 듣고 잘 따라서 부르십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연세가 드신 분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평소에 신곡은 악보가 있는 PPT를 사용합니다.
문제는 실제 이렇게 큰 집회 때에는 악보를 띄우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악보가 좋기는 하지만, 그 악보를 눈으로 확인하고 따라 부르면서 그 악보 자체에 얽매인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악보를 따라가는데 급급하기 때문에 어떤 영적인 충만함을 경험하고 누리는 것이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집회는 모두 "글자로만" PPT 를 준비하였습니다.
8) 2부의 시작 / 내 마음을 가득 채운
저는 2부 첫 곡을 "내 마음을 가득 채운"으로 선택했습니다. 원래 자신이 없었는데 악기팀 디렉터께서 추천하셔서 고민하다가 선택했습니다. 주저했던 이유는, 제가 늘 하고 싶었고 또 어렵다고 생각했던 곡이 바로 "내 마음을 가득 채운" 이기 때문입니다. 거의 15년 정도를 찬양 인도를 했지만, 제대로 성공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일단 일렉이 없는 것은 둘째 문제입니다. 가장 어려운 점은, 리듬이 너무 어려워서 부르기가 어렵습니다. 혹시 싱어가 탁월해서 이런 고급스러운 리듬을 소화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교회의 컨택스트 안에서 회중이 받아들이기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감사하게도 오랫동안 한 교회를 섬기면서, 이제는 이 두가지가 이번에 어느 정도 충족이 되었다고 생각이 되어서 찬양 인도자로 처음으로 이 곡을 제대로 시도하였습니다.
저는, 집회의 모든 곡을 유명한 찬양팀의 카피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찬양팀의 수준도 다르고 회중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만 가이드가 필요할 때는 확실하게 레퍼런스 곡을 카피해서 나가야 합니다. 이번에는 "나비 워십"의 곡 버전으로 준비했습니다. 정말 탁월한 팀입니다. 한국 교회에 이렇게 좋은 팀들이 많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다양한 버전을 많이 시도해 보았는데, 그중에 그나마 가장 쉬우면서도 은혜롭게 나눌 수 있는 버전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악기팀 디렉터께서 악기팀용 악보를 따로 준비해오셨고 철저하게 악기팀을 지도해 주셨습니다. 일단 일렉 기타가 워낙 연주력이 뛰어나서 많은 부분이 커버 되었습니다. 이런 리듬의 곡은 드럼 베이스 건반이 정말 중요합니다. 이미 탁월한 분들이라 잘 하셨습니다. 그래서 연주 자체는 수월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이번에 저의 팀의 싱어분들을 가장 칭찬하고 싶은 부분이 바로 이 곡입니다. 처음에 인트로가 끝나고 싱어가 시작되는 부분을 들어보시면, "팀원들이 얼마나 많이 연습했는지" 정말 확 드러납니다. 거의 얼굴에서 빛이 나는 수준입니다. 노래에 두려움이나 주저함이 없습니다. 저도 당연히 이 곡을 소화하기 위해서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기타 리듬을 따로 일렉 기타분에게 배웠습니다. 중간에 계속 등장하는 디미니쉬 코드까지 다 소화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리듬 자체는 지키기 위해서 많이 노력했습니다.
이 버전이 너무 빠르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불러보면 약간 어색한 느낌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수적인 교회에서도 이 정도 빠르기라면 충분히 성도님들이 함께 부를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에, 정말 좋은 빠르기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생각하는 것은, 찬양팀은 그 교회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회중을 배려하지 않는 찬양팀은, 그 교회 찬양팀이 아니라 그저 객원 찬양팀에 불과합니다.
이 곡은 미디엄 테포이지만 손을 들고 찬양할 수 있는 아주 독특한 곡입니다. 이미 금요일에 총 다섯 번 정도 회중들과불러 보았기 때문에, 실제 집회 때에도 후렴을 하면서 손을 들고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에 매우 최적화된 그런 찬양 인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세가 드신 성도님들도 정말 좋아하시면서 함께 불렀습니다.
9) 은혜 아니면
미디엄 템포의 곡이 끝나고 "은혜 아니면"을 이어서 불렀습니다. 이 곡은, 마커스 곡 중에서도 특히 깊은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곡은 약간 쉬어가는 느낌의 곡으로 넣었습니다. 앞 부분 까지는 굉장히 열정적으로 힘있게 불렀다면, 집회의 어떤 부분에서는 매우 묵상적으로, 매우 편안하게 또 매우 깊이 부를 수 있는 그런 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금요일마다 자주 불렀고 그런 저의 목적에 딱 맞는 곡이 이 곡이라고 느꼈습니다.
실제로 찬양 인도를 하면, 내가 생각하고 의도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얼마든지 진행될 수 있습니다. 찬양 집회는 성령의 역사이고 살아 움직이는 것입니다. 저는 원래 좀 더 부드럽고 약하게 진행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성도님들이 여기까지는 힘이 넘치셔서 악기팀도 제 의도보다는 좀 더 힘있게 나갔고 결론적으로 그것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계획한 것 처럼, 통성 기도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후렴 한번 더 바로 이으면서 곡을 마무리하였습니다.
10) 주 예수 나의 산 소망
드디어, 두 곡이 남았습니다. 이 정도까지 왔을 때에 정말 마음이 평안하고 좋았습니다. 팀원들이 너무 잘 해주셨고 집회가 은혜로웠기 때문입니다. 사실 집회가 있는 주간에 특히 사역이 많았습니다. 목회자가 찬양 인도를 한다고 해서 거기에만 매달릴 수 없습니다. 거기다가 긴장했는지 집회 삼일전 부터 배탈이 나서 몸이 탈진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님께서 힘을 주셔서 큰 실수 없이 여기까지 했다는 것이 너무 기뻤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집회의 대망의 절정을 여는 "주 예수 나의 산 소망"입니다. 생각해 보니, 저는 이 곡의 원곡을 거의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다만 레위지파의 번안 곡을 듣고 너무 좋다고 생각해서, 몇달 동안 연습했습니다. 레위 지파의 버전은 제가 생각할 때에 CCM 음반 중에 탑 20 정도에 들어가는 탁월한 곡입니다.
이런 곡을 실제로 찬양 집회 안에서 소화하는 것은 정말 쉽지가 않습니다. 듣고 좋다고 느끼는 것과, 우리 팀이 곡을 불러서 다른 사람들이 좋게 듣게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그러나 제가 판단하기로는, 제가 섬기는 찬양팀이 이제는 이 정도 대 곡을 하 수 있을 수준으로 올라갔다고 느꼈습니다. 싱어팀과 악기팀이 이제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연습 중에는 참 죄송스럽게도 팀원 분들에게 이런 저런 마음 아픈 이야기들도 많이 하였습니다. 그래도 잘 인내해주시고 또 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제 곡이 시작됩니다. 메인 건반이 연습을 많이 해주셔서 처음에 들어가는 것이 어색함이 없습니다. 원래는 처음부터 아주 강하게 들어가셨지만, 제가 "점점 크게의 느낌"으로 인트로 첫 마디를 시작해 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정말 완벽하게 소화해 주셨습니다.
계속 말씀드린 것 처럼, 곡의 시작의 다이나믹이 정말 중요합니다. 다행히 싱어분들도 처음의 시작 부분을 정말 약하고 부드럽게 잘 불러주셨습니다. 곡의 느낌을 잘 살려주셨습니다. 곡의 분위기와 느낌과 감동은, 후렴을 세게 불러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1절부터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처음에 악기가 많이 빠져 있을 때에 이 정도 부르기가 정말 어려운데 싱어팀이 잘해주셨습니다. 저의 어쿠스틱 기타가 좀 아쉬운데 기타를 배울 시간이 없네요. 장기적으로 보자면 좀 레슨을 받아야 할 듯 합니다.
이 곡은, 2절까지의 하고 첫 후렴이 등장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처음에 후렴으로 들어갔을 때에, 좀 더 다이나믹을 강하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그 당시에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이미 악기팀 전체가 큰 흐름을 다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은 뒷쪽에서 채우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특별히 화음이나 멘트로 드라이브를 걸지 않고 계속 찬양을 이어나갔습니다.
약간 아쉬운 것은, 아무래도 싱어분들이 후반부로 들어가면서 악기의 리듬을 타는 것이 완벽하지는 못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고려할 것은, 이미 직장 일로 피곤한 금요일 밤, 그리고 이미 아홉 곡이나 부른 상태라는 것입니다. 거의 50분을 서서 찬양을 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정말 대단한 분들입니다. 그런 면에서 한분 한분이 정말 엄청나게 수고하시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곡의 백미는, "언약된 아침"이라는 부분부터 시작되는 3절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깊이와 능력을 드러내는 엄청난 부분입니다. 다른 찬양에서 들을 수 없는 굉장히 유니크하고 가슴이 벅차는 멋진 부분입니다. 이것으로 인해서 대곡이 더욱 위대한 곡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감동적인 부분을 찬양팀이 충분히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엔지니어께서 믹싱을 너무 잘하셔서 탐 소리가 정말 예술입니다.
이런 폭발적인 사운드 속에서, 리더가 화음이나 어떤 즉흥적인 라인을 넣는 것은 위험이 큽니다. 자칫 자신의 소리를 모니터링 하지 못하고 어긋나게 부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풀밴드의 큰 사운드 속에서는 모니터를 충분히 듣고 있는 리더 역시 자신의 노래를 감당하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하필 이 타이밍에, 즉흥적인 라인을 꼭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제 마음에 강하게 들었습니다. 마지막 후렴으로 넘어가는 부분에서, "주 예수 승리하셨네" 끝 부분에서 "할렐루야~"라고 제가 넣은 것은 레위 지파의 원곡을 따라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평소 리허설 때에는 한번도 하지 않았다가, 이 날만 시도한 것입니다. 막상 집회 가운데에서는 이 부분을 꼭 해야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다만 아쉽게도, 아주 약간 긴 느낌이 있습니다. 발성을 조절하면서 마지막 부분에서 소리를 끊을 때에 아주 찰나의 주저함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기팀이 워낙 계속 합을 맞추는 연습을 했기 때문에, 마지막 포즈 이후에 후렴으로 합을 맞춰서 탁월하게 후렴으로 잘 넘어갔습니다.
"아~ 아~"라고 라인을 넣는 것은, 남자 싱어께서 잘 해 주셨습니다. 연습 때도 잘해주셨는데 실제로도 너무 잘해주셔서 하모니를 아주 잘 이루었습니다. 마스터링 버전에서는 좀 튀게 들리지만, 실제 집회 때에는 매우 잘하셨던 부분입니다. 저도 마음 같아서는 더 하모니를 넣고 싶었지만 최소한도로 그쳤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마지막 곡 까지 목이 상하지 않은 상태로 불러야했기 때문입니다.
아마 제 기억으로는, 이 곡에서는 "손을 들고 찬양합시다" 등의 멘트는 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영상에서 보시는 것 처럼 거의 모든 성도님들이 손을 들고 찬양하시고 계시네요. 누군가가 멘트를 하거나 시키지 않아도, 함께 하시는 모든 성도님들 가운데 은혜가 있고 또 찬양 가운데 깊이 들어가신 것 같아서 그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이 곡을 실제로 부를 때, "그 현장의 분위기"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찬양팀 전체가 거의 몸을 던져서 부른 곡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몸을 던져서 부르고 연주해도 실제로 이런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것은 정말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포인트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열정은 과욕"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저와 팀이 하나가 되어서 결국 해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또 많은 연습의 결과로 이 곡을 아름답게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곡을 마치면서는, 의도적으로 보통이었으면 했을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는 돌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다음 곡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집회였다면, 그냥 이 곡으로 끝내도 충분히 훌륭했겠지만, 이제는 마지막 대곡, "선한 능력으로"가 등장할 차례입니다.
11) 선한 능력으로
드디어, 마지막 곡에 다다랐습니다. 사실 이 때즈음에, 제 마음에 좀 긴장이 되었습니다. 앞의 곡으로 집회를 마무리 해도 되지만, 마지막 정점을 이 곡을 통해서 찍고 싶었습니다. 제 스스로 원대한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이 곡에 담고 이 곡을 통해서 표현하기 원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곡에 정말 팀의 전부를 걸고 싶었고 그렇게 부탁드리고 그렇게 연습했습니다. 과연 연습한 것을 보여드릴 수 있을까 살짝 긴장이 되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을 믿고 곡을 시작하였습니다.
원래 선한 능력은, 제가 별로 좋아하던 곡이 아닙니다. 멜로디가 너무 단순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사의 깊이는 그 어떤 곡보다 탁월합니다. 본회퍼 목사님이 보낸 마지막 편지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인 깊이는 다른 곡을 초월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박자"입니다. 저는 왠만해서는 절대로 3박자 곡을 하지 않습니다. 밑져야 본전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3박자 곡은 자칫하면, 평범한 왈츠곡 느낌으로 변하면서 가사의 깊이를 경험하는 것이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위러브 팀의 버전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너무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빠르기 보다 훨씬 느리게 시작하고, 중간이 넘어서서 곡의 빠르기를 완전하 바꾸어서 약간 하드롹 발라드 같은 그런 느낌으로 바꾸었는데, 제 개인적으로는 한국 교회 모든 찬양 중에 탑 3 안에 들어간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가급적 이 곡을 한번 그런 비슷한 느낌으로 만들어서 불러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 곡을 주제곡으로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의미있는 곡으로 정한 것은, 제 마음 속에 있는 깊은 갈망 때문입니다. 사실, 제 마음을 글로 적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제 마음 안에는 깊은 눈물이 있습니다. 목회자는 속으로 우는 사람입니다. 다만 저는 공동체야 말로, 미래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신앙 생활을 그저 개인적인 성숙, 개인적인 영적인 훈련 등으로 치환하면서, 공동체의 소중함을 잊어 버렸습니다.
놀라운 것은, 마커스의 경우 선한 능력으로의 찬양을, "개인 경건의 찬양"으로 바꾸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제가 이해하기로는 그렇습니다. 저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번 집회에 사용된 곡과 가사를 비교해 보시면, 마커스의 곡은 전혀 다른 가사입니다. 아쉬운 일입니다.
예전에 어느 블로그에서 독일어 원어를 번역한 것을 보았는데, 원래 본회퍼 목사님의 편지는, 교회 공동체를 염두에 둔 간절한 편지였습니다. 자신의 죽음의 위기 속에서 본회퍼 목사님은 공동체의 사랑과 지지와 하나됨을 경험하며 기대하며 이 가사를 쓴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펜데믹을 경험하고 있는 어려운 성도님들의 마음 속에, 정말 공동체의 소중함과 하나됨이 각인되기를 바랬습니다. 그런면에서 저는 이 곡을 이끌어갈 때에 처음에는아주 잔잔하게 시작해서, 극도로 폭발적인 분위기까지 이끌어내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이 곡은,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획된 곡입니다. 관건은 모두가 춤을 추는 듯한 "쿵짝짝 쿵짝짝" 분위기를 만들면 안됩니다. 뭔가 숙연한 분위기 그러나 진중하면서도 깊이 있는 분위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왈츠 분위기가 나지 않기 위해서, 인트로부터 최대한 건반이나 기타 스트록의 리듬을 줄였습니다. 바이올린에게도 부탁드리기를, 최대한 리듬을 길게 빼서, 두 마디가 마치 한 마디처럼 느껴지게 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정확하게 저의 뜻을 이해해서 소화해 주셨습니다.
위러브의 경우에는 제 기억으로는, 중간에 조 옮김을 하면서 후반부에는 급격하게 빠르게 연주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 집회에서는, "처음의 빠르기로 그 깊이를 마지막 까지 유지하면서" 함께 찬양하기를 바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빠르기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곡의 빠르기는 정말 찬양의 분위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예를 들어서, 예전에 한참 들었던 어노인팅의 "거룩한 성전에 거하시며" 라이브 곡은 처음에는 좋은 빠르기였다가 드럼이 빨라지면서 아쉬움이 컸습니다. 약간 곡의 흐름이 마지막에 무너졌습니다. 라이브 앨범이라 고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들을 때 마다 아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이 곡을 준비하면서, "마지막 곡의 성패"는 처음의 시작의 빠르기를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라고 악기팀에게 여러번 부탁드렸습니다.
처음에 바이올린이, 탁월하게 정말 제가 딱 원하던 빠르기로 인트로를 시작하셨습니다. 의도적으로 바이올린만 들어가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1절이 등장하면서 모든 악기팀이 그리고 싱어팀이 연습한 대로 해 주셨습니다.
3절에서 "주께서 밝히신 작은 촛불이" 부터 악기팀이 드라이브를 걸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그리고 4절 "이 고요함이 깊이 번져갈 때" 부터 정말 강하게 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이 부분도 저의 판단이었는데 매우 좋았습니다. 음악은 매우 드라마틱해지는데, "고요함이 깊이 번져간다"라고 싱어들이 고백할 때에 어떤 영적인 힘과 깊은 감격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성도님들의 평생에 마음에 남을 만한 폭발적인 느낌으로 4절을 해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정말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연습 때의 베스트를 백퍼센트로 잡는다면, 실제 집회 때에는 구십 퍼센트 정도를 해냈습니다. 정말 너무 행복했습니다
약간의 아쉬움은, 드럼의 심벌 계열을 좀 더 화려하게 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혹은 약간 더 느리게 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정말 좋았습니다. 제가 처음에 의도하고 기도한대로, 아마 성도님들의 마음 가운데 이 곡이 그리고 가사가, "선한 능력이 우리를 감싸신다"는 그 찬양의 메시지가 강하게 남았을 것입니다.
강한 다이나믹이 끝나고, 마지막에 제가 솔로로 아주 조용하게 부른 부분은 의도적입니다. 인도자의 목소리를 평소에도 너무 많이 듣기 때문에 회중에게 지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원래 솔로를 좋아하진 않지만 의도적으로 넣었습니다. 아주 강한 다이나믹 이후에, 아주 약한 느낌으로 더 찬양의 내용을 마음에 깊이 남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잔잔하게 통성 기도로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을 담임 목사님의 통성 기도로 마쳤습니다.
사실 후반부의 콘티에서 10분 정도를 더 끌 수 있었습니다. 끈다는 표현 보다는, 더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여지가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정면에 있는 시계를 보니 벌써 9시 20분이 되었더군요. 집회가 8시에 시작했으니 이미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9시 반은 상당히 늦은 시간입니다. 그리고 연세 드신 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마스크를 쓰시고 찬양하면서 탈진하는 상황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정말 아쉬웠지만 공동체 전체를 위해서, 약간의 아쉬움을 마음에 품고 반복을 약간씩 줄이는 형식으로 집회 시간을 최종적으로 조절했습니다.
* 찬양 집회를 마치며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라고 말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사운드는 사라집니다. 저는 이것이 너무 아쉽고 속상하고 허전합니다. 영원한 천국 속에서는, 영원한 사운드 속에서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그 순간의 감동과 감격, 그 순간의 눈물과 애틋함은 지금은 동일하게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기록으로 그것을 남기면, 훨씬 오래 가리라 생각합니다.
찬양 인도를 준비하면서, 그리고 실제로 찬양을 하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합니다. 오랫동안 찬양 인도를 했지만, 아쉽게도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상세하게 해준 분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CFNI에서 Worship and Technical Arts 과정을 공부할 때에도, 이렇게 디테일하게 배우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지금 이 순간에도 동 시대에 함께 찬양 인도를 하는 많은 찬양 인도자들과 저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찬양팀 멤버로서 이 글을 읽는다면, 찬양 인도자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마음의 계획과 하나님과 팀원들을 향한 깊은 갈망들을 약간이나마 엿보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정도 수준으로 다시 섬길 수 있을까요? 아니, 다시 이런 기회가 저에게 올까요? 하나님께서는 펜데믹을 통해서 우리의 계획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면에서 오히려 우리의 계획과 노력은 더 빛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언제 기회가 찾아올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저에게 혹은 당신에게 찬양 인도와 찬양팀을 부탁한다면, 그때에는 망설임 없이 나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든 순간의 소중함을 알고, 끊임없이 전문적으로 준비하며, 섬길 그날을 위해서 바로 오늘 헌신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규모의 집회는 저의 능력을 넘어가는 것입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저는 가려주시고 오직 하나님께서 드러나시기를" 기도하면서 집회에 임했습니다. 이번 집회를 계획하게 하시고 완성하게 하시며 찬양을 부르게 하시고, 또 그것을 기뻐 받으신 하나님께만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 예찬 찬양 집회 1부 분석 (찬양 집회는 "연주력과 흐름"에 집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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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찬 찬양 집회 1부 분석 (찬양 집회는 "연주력과 흐름"에 집중해야 합니다)
찬양 인도는 예배의 시작을 열기 때문에 부담이 됩니다. 사실 너무 어려운 자리입니다. 대부분의 집회에서 찬양팀은 집회의 시작을 여는 역할을 합니다. 설교자는 영적인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에 나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찬양 인도자와 찬양팀은 가장 어려운 시간에 가장 어려운 역할을 맡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몇 배의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찬양 인도는 누군가 알아주는 자리가 아닙니다. 잘해야 본전인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수 많은 요구 사항을 듣게 됩니다. 곡이 너무 최신이다, 곡이 너무 옛날 곡이다, 너무 느리다, 너무 빠르다, 더 열정적이면 좋겠다, 너무 열정적이다 등등 도저히 한번에 소화할 수 없는 부탁들을 동시에 받는 것이 찬양 인도자의 자리입니다.
이런 수 많은 부담감을 안고 1시간 이상의 집회를 기획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솔직하게 그건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찬양 인도를 해보지 않은 분들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본인이 찬양 인도자의 자리에서 단 10분이라도 인도해 본 분이라면, 제 말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요즘에 유투브가 보편화 되면서 사람들의 착각은, "우리 교회도 이 정도는 찬양 해야 한다"라는 착각입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프로 가수들도 완성도 있는 곡을 한곡 라이브로 부르는 것이 쉽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경연 프로그램에 나와서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하는 가수들을 보면서도 우리는 그것을 애써 무시하고 삽니다. 한국 교회의 몇몇 팀들이 라이브 실황을 업로드 하면서, 이제는 우리 교회도 저정도는 해야 하지 않는가 라는 일종의 지나친 기대가 교회를 사로 잡고 있는 듯 합니다.
음악의 어려운 점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단 시간 내에 업그레이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일 어려운 점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숙련되게 노래하고 악기를 다루기 위해서는, 최소 5년 이상은 꾸준하게 관심을 가지고 연습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실상 남들이 듣기에 그래도 괜찮은 정도로 들립니다. 감동적인 것도 아니고 그저 들을 정도의 수준이 목표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일주일 조차 끈기를 가지고 하지 못하는 현대인에게 있어서 찬양팀에 그렇게 헌신하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정말 가능할까요?
그런 면에서 항상 마음이 무겁습니다. 누군가를 설득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입니다. 찬양은 장기적인 사역이고, 너무나 어려운 것이며, 큰 헌신이 따른다라고 말하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별로 말을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짐을 얹는 것 보다는, 차라리 위로를 바라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 "로컬 처치"의 어려움
찬양 인도와 찬양팀 사역이라는 것이 원래 이렇게 어려운 것인데, 하물며 로컬 처치는 어떠할까요? 제가 공부했던 CFNI 는 전 세계에서 찬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악보도 못 보는데 너무나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기계처럼 드럼을 치는 청년도 보았습니다. 세상에는 천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곳은, 특별히 애를 쓰지 않아도 그저 찬양 한곡을 부르기만 해도 은혜가 됩니다. 화음이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그런 곳은 세상에 몇 군데 존재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로컬 처치입니다. 음정과 박자에 맞춰서 피아노를 쳐 줄 수 있는 분이 한명만 있어도 사실상 하나님의 은혜가 크게 임한 곳입니다. 반주자가 없어서 반주기를 틀고 찬양하는 곳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 많이 틀리는 반주 보다는 그저 반주기가 더 효율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듣기 좋은 코드를 연주할 수 있고, 그것을 음악적으로 살릴 수 있는 그런 반주자가 있다면, 목회자는 매주 감사 표현을 해도 모자르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함께 하는 반주자 분들에게 늘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런 저의 마음의 표현입니다.
* "주제와 곡"을 정하면서
이번 찬양 집회를 위해서 저에게 주어진 1시간 20분 정도의 시간 속에서, 실제 찬양은 1시간 5분에서 10분 정도였습니다.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기도하면서 전체 11곡을 정했습니다. 최근의 찬양과 과거의 찬양을 적절하게 조화시키고, 주제 곡으로는 맨 마지막 곡인 "선한 능력으로"를 정했습니다.
찬양 인도자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찬양 인도자는 찬양 인도 뿐 아니라 "전체 찬양팀의 방향"을 디렉팅 해야 합니다. 물론 악기 팀 디렉터가 따로 있다면 가장 좋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전체적인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찬양팀 리더입니다. 반주자에게 곡을 주면서 나는 이것을 하고 싶은데 분위기를 좀 정해달라라는 것은 사실 상당한 무리가 따르는 요구입니다. 왜냐하면 전체적인 방향을 정하고 끌고 나가는 것은 결국 인도자 본인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찬양 집회를 준비하면서 새로운 곡은 "입례", "예수 예수", "내 마음을 가득 채운", "주 예수 나의 산 소망", 그리고 "선한 능력으로" 입니다. 이 곡들은 5개월 전에는 제가 섬기는 교회에서는 단 한번도 불러본 적이 없는 곡들입니다. 전체 찬양 곡 중에서 거의 절반이 새로운 곡이라는 의미입니다. 너무 모험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적으로, 찬양 집회 때에 내가 너무 잘 아는 곡만 나오면 식상해 하고 또 새로움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어느 정도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5개월 정도 전부터 금요일 마다 있는 집회 가운데 곡을 연습하기 시작했습니다. 회중이 곡을 익힐 시간이 필요했고, 동시에 싱어분들도 함께 익힐 수 있도록 돌아가면서 곡을 넣은 것입니다. 큰 집회이기 때문에 몇주 전에 집중적으로 연습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오히려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기존의 금요 집회를 포함해서 연습을 하도록 스케쥴을 정했습니다. 저만의 노하우는, 예를 들어서 20분 찬양 인도라고 한다면 네곡 중에 세곡은 정말 너무나 익숙한 곡으로 넣고, 나머지 한 곡을 새로운 곡으로 넣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곡을 배치하면 큰 장점이 있습니다. 성도님들이 자신이 너무 익숙한 곡들로 부르다가 새로운 곡을 만나기 때문에, 그렇게 낯설어하지 않습니다. 찬양 인도자가 자신들을 무시한다고 거의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전 곡인데 내가 몰랐다 라고 생각합니다. 최대한 마음에 저항감을 낮추기 위해서는, 새로운 곡을 아주 오래된 곡 사이에 넣어서 저항감을 줄여야 합니다. 물론, 아주 오래된 곡을 식상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 한 곡에 코드 하나 정도는 변환을 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 찬양 집회의 "목표"
이런 과정을 거쳐서 최종적으로 집회가 시작되기 한 두주 전에는, 적어도 금요일에 꾸준하게 오시는 분들은 집회의 곡을 다 익힌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오해는, "찬양 집회 한번으로 온 교회를 뒤집겠다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됩니다. 기적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그러나 현실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예를 들어서, 평생 한번 찬양 집회에 온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찬양 집회에 오셨다면, 그분은 집회 곡의 대부분을 단 한번도 불러본 적이 없을 가능성이 거의 백퍼센트입니다. 현실적으로 어안이 벙벙하다가 집에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목표는, 제가 이끄는 찬양팀 멤버들이 먼저 은혜를 받는 것, 그것이 가장 우선 순위이고, 그 다음이 금요일에 자주 오시는 분들이 좀 더 새롭게 준비된 모습으로 깊이 찬양을 경험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습니다.
* "실질적인 곡 흐름"을 구성하기
그렇다면 곡의 구성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메뉴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보통 예배로 나아감 => 죄를 회개함 =>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 => 주님의 은혜에 대한 고백 => 결단 정도의 흐름이면 좋습니다. 순서는 약간 바뀔 수 있지만, 대부분 저는 이 정도 흐름을 염두에 둡니다.
다만 혹시 인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리고 싶은 것은, "곡의 주제보다 곡의 코드 흐름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단지 네곡으로 찬양 인도하는데, 네 곡이 전부다 코드가 다 달라서 끊어져야 한다면, 혹은 코드를 연결해도 너무 어색해서 이질감이 크다면, 사실상 그 찬양 인도는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음악은 끊어져서는 안됩니다. 세컨이 있다면 세컨이 패드를 계속 눌러줘야 합니다. 메인 건반은 끊임없이 연결되는 코드를 짚고 있어야 합니다.
찬양 인도는 흐름이 너무나 중요하며, 흐름은 때론 주제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찬양 인도에서 "인도"를 앞세우지 말고 "음악"을 더 앞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찬양 집회는 설교의 시간이 아니라는 것이 저의 철학입니다. 그래서 가급적 멘트는 줄여서 합니다. 찬양의 메시지가 중요하지만, 메시지로 설교를 해서는 안됩니다. 음악에 메시지를 입혀야 합니다. 그러므로 "음악적인 흐름"이 먼저입니다. 이번 집회는 한시간이 넘기 때문에 부득이 완벽하게 다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실제로 콘티를 다 연주해 보고 제가 직접 정해서 적절한 곳에서 끊고 멘트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저의 목표는 모든 콘티들이 음악적으로 최대한 이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 "전체 곡 진행"에 대한 이해와 구성 / 1) 입례
최근에 한국 교회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팀은 위러브입니다. 너무 한국적이지도 너무 미국적이지도 않은 정말 세련된 팀 색깔과 음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입례는 처음 듣고 완전히 반했던 곡입니다. 처음에 집회를 열어 가기에 좋은 곡입니다.
보통 저는 긴 집회에서는 통성 기도로 시작합니다. 통성 기도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반주를 하는 악기팀의 정보량을 많이 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시작할 곡의 인트로를 여러번 반복하면 성도님들이 들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멜로디 라인을 따라가느라 기도가 어렵습니다.
사실 이번 집회 때에는 통성 기도 때에 일렉 기타가 라인을 들어가면서 약간 정보량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제 마음에 일렉이 자유도를 어느 정도 갖기를 원했기 때문에 이 부분은 제가 추가로 컨트롤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전략적으로 최대한 음의 정보량을 줄여서 다순하게 G => Gsus4를 반복해서 연주하면서 통성 기도를 이끌었습니다.
통성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보통의 집회에서는 리더가 마이크를 적당히 사용해서 같이 기도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훨씬 자연스럽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제 목이 상하지 않는 정도로 함께 기도하면서 은혜의 분위기를 준비해갑니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곡이 시작됩니다. 이미 연습한 대로 저의 사인에 맞춰서 바이올린 연주가 인트로로 들어갑니다. 악기팀 디렉터가 계셨기 때문에 논의를 많이 했습니다. 사실 제가 섬기는 찬양팀의 세션들은 다 프로급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축복입니다. 찬양의 첫 시작은 저도 굉장히 긴장이 됩니다. 그리고 입례가 특히 어려운 곡입니다. 시작음인 "우리"에서 같은 음을 높이를 맞춰서 내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많이 연습했는데 시작 점을 싱어분들이 한번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아쉽습니다. 그래도 이정도면 훌륭합니다.
* 찬양팀 음악의 아름다움은 어디서 오는가? by 싱어의 역량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4/by.html
위의 글에서 주장한 것 처럼, 저는 찬양팀의 생명은 "싱어"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악기들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만약 싱어들이 완벽하다면, 피아노 한대와 기타 한대만으로도 최고로 훌륭한 찬양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는 30분 까지도 은혜롭게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약강을 조절할 수 있고, 멜로디 틀리지 않으면서 감성을 자신의 발성에 담을 수 있다면 최고의 싱어입니다.
이번 전체 집회를 평가한다면, 제가 싱어 분들에게 부탁드린 80퍼센트 이상을 해 주셨습니다. 음악에 매일 매진할 수 없는 일반인의 기준으로 보자면 정말 대단한 수준입니다. 찬양팀 싱어로 서는 것은, 노래방에서 내가 마이크 잡고 한곡 부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입니다.
라이브 음악은 살아 있어서 변화무쌍합니다. 막상 무대에 올라가서 라이브로 풀 밴드로 반주가 나오는데 내가 내 노래를 붙잡고 부른다는 것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정말 기적과 같은 수준입니다. 물론 저의 팀의 싱어분들도 흔들린 부분들이 많았지만, 당장 하루 이틀에 해결될 부분은 아닙니다. 만약 이분들이 앞으로 5년에서 10년을 더 노력한다면, 그 때에는 더 놀라운 모습을 보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입례의 경우, 원곡에서는 "우릴 채우시리라" 마지막 부분에서 끝음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처음이 시작됩니다. 저는 사실 그것이 굉장히 어색하다고 느껴졌습니다. 레코딩 상황에서는 끝음과 첫 음이 겹치면서 멋이 있지만, 실제로 라이브 상황은 어색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충분히 뒤를 더 끌고 다시 앞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미 건반, 드럼과 오래 함께 했기 때문에 리더인 저도 박자를 세면서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저 몸이 가는대로 함께 들어가도 다른 악기들과 거의 완벽하게 맞습니다. 지금 계산해 보니, 마지막 마디 포함해서 8박을 세고 다시 앞으로 돌아갑니다.
자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과연 얼만큼 찬양곡을 반복할 것인가" 입니다. 저는 바로 이 부분이, 찬양 인도자의 "역량의 꽃"이라고 생각합니다. 찬양을 반복하는데 있어서 고려해야 하는 수 많은 변수가 있습니다. 실제로 인도하다보면 성령님께서 뜨겁게 감동을 주실 때가 있고, 청중들의 목소리가 더 커지면서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찬양팀 자체가 은혜를 받아서 곡이 뜨거워지는 때가 있습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계획과 사전 연습에서는 충분히 반복이 좋고 혹은 더 반복하고 싶었는데, 실제로 집회로 들어가니 그 곡을 부르는 청중들이 힘이 없거나, 혹은 부르는 찬양팀이 그 곡을 더 지탱하기가 어렵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결국 찬양 리더는, "이 모든 것을" 아주 세밀하게 듣고 느끼고 살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찬양 인도자의 머리 속에 수십가지 생각이 동시에 스쳐 지나갑니다. 이번에 한번 더 반복할까? 아니면 다음 곡으로 갈까? 두번 더 반복하면 다음 곡이 규모가 더 있는데 혹시 다음 곡이 더 약해지는 것 아닐까? 악기 팀에게 싸인을 지금 드릴까? 악기팀은 여전히 다이나믹을 살리고 싶어하는데 싱어팀이 무리가 되더라도 좀 더 반복하는 것이 좋을까? 이 모든 것을 귀로 듣고 판단하면서 인도해야 합니다.
거기다가 곡이 반복된다면, 반복을 위한 일종의 전략이 필요합니다. 만약에 악기팀이 연주력이 좋아서, 두번째 반복을 리듬과 화음적인 측면에서 변화를 줄 수 있다면 가장 좋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리더는 자신의 멘트를 통해서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이번에 예찬 집회 중에 저의 멘트를 보시면 "동일한 멘트"가 거의 없습니다. 악보를 최대한 키워서 출력하기 때문에 공간이 없어서 악보에 적어 놓지는 않았지만, 저 혼자서 연습하면서 이미 플랜을 짜서 어떤 멘트를 할 지 충분히 숙지한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그 타이밍에 나온 것입니다. 이번 집회는 멘트가 어색하지 않고 평소보다 좋았다고 자평하고 싶습니다. 멘트는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음악의 박자에 잘 맞아요 합니다. 아주 어울리는 박자에 어울리는 짧은 그 신선한 멘트로 인해서 집회의 분위기가 바뀝니다.
이번 집회는 한 시간 정도의 집회였기 때문에, 한 곡이 은혜가 된다고 해서 너무 지나치게 반복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어떤 절정을 맛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큰 그림을 가지고 리더는 접근해야 합니다. 제가 세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입례는 네번 정도 반복한 듯 합니다. 만약 저에게 어디까지 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열번 정도까지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번은 네번으로 족합니다.
2) 그 사랑
다음 곡인 마커스의 그 사랑은, 거의 실패가 없는 곡입니다. 물론 난이도는 높습니다. 여성 분들에게 높은 키입니다. 그러나 워낙 멜로디가 아름답고 가사가 탄탄해서 모든 성도님들이 좋아하십니다. 앞에 곡과 이어서 하기 좋게 G키 곡으로 연결했습니다. 찬양 콘티를 짜다 보면 G, A, D 키 곡들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래서 찬양 인도자는 이 세가지 키 가운데, 자신에게 가장 자신 있는 필살기와 같은 곡들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찬양팀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것이, 큰 사운드로 앞의 곡이 끝나고, 바로 뒤에 곡을 잔잔하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찬양 집회에서 다이나믹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것은 곡 안에서의 다이나믹과, 곡과 곡이 이어지는 다이나믹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살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사실상 거의 5년을 이것을 위해서 연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제서야 만족할 정도의 다이나믹을 특히 싱어들이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입례가 매우 강렬했지만, 그 사랑이라는 다음 곡으로 너무 부드럽게 잘 넘어 갔습니다.
함께 섬기는 드럼이 워낙 밸런스 조절이 좋습니다. 일단 이번 집회에서는 전체적으로 두번 반복 그리고 필요하다면 후렴 한번 더 정도로 플랜을 짰기 때문에 큰 무리 없이 곡이 진행이 됩니다. 제가 한 것 처럼, 중간 중간에 가사를 불러 드리는 것은 정말 감각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보통 1절에서는 하지 않고 그대로 곡을 따라 부릅니다. 그리고 두번째 정도에 그 가사를 리마인드 하는 것이 좋겠다 싶을 때 사용합니다. 이것도 오랜 동안 찬양 인도를 하면서 익힌 부분입니다.
원래 저는 그 사랑을 부를 때에 화음을 많이 넣곤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집회의 풀 밴드의 상황에서는 제 역할을 조절을 하는 것이 훨씬 좋겠다고 느꼈습니다. 이미 화음은 악기들이 충분히 채워 넣었습니다. 그래서 화음은 최대한 자제하고 멜로디에 집중하면서 집회 전체를 이끌어가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었습니다.
실제로 집회로 들어가면 정말 중요한 부분은 "반복의 싸인"을 어떻게 할 것인가? 입니다. 수신호를 할 수도 있고, 입모양으로 무언으로 사인을 줄 수도 있습니다. 여러가지로 시도해 보았지만 저 같은 경우는 "마지막으로" 라는 싸인을 사용합니다. 그럼 찬양팀 전체가 이제 마지막 반복이라는 것으로 인지하고 가급적 최고의 다이나믹을 가지고 후렴을 반복하게 됩니다. 훈련이 잘 된 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물론 이렇게 한번 한 다음에 리더 입장에서 조금 부족하다 싶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당황할 필요 없이 "마지막으로" 라고 한번 더 싸인을 드리면 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끝날 때 즈음에는 영상처럼, 리더는 반드시 드럼 쪽 혹은 건반 쪽으로 보면서 시선을 맞춰서 곡이 마무리 된다는 싸인을 드려야 합니다.
3) 임재
그리고 이제 임재로 이어집니다. 첫 곡이었던 "입례" 성향 상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역사하여 주시기를 바란다"라는 맥락에서는 아주 좋은 선곡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앞에 곡에서 G => E => A 로 이어지는 흐름이 아주 좋았습니다.
예를 들어서 20분의 찬양 인도를 하게 되면, 어느 시점에서는 은혜를 끼쳐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1시간의 집회이기 때문에 너무 급하게 이 곡을 달려갈 필요는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차분하게 가사를 음미하면서 부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물론 이러한 차분한 찬양은 전적으로 싱어들의 역량이 받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강하게 부르는 것은 쉽지만, 약하게 부드럽게 부르는 것이 어렵습니다. 특히 임재와 같은 곡에서 "이곳에 오셔서~"와 같은 끝음을 애매하게 빼는 부분은 부르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곡 자체만 놓고 아주 냉정하게 표현하자면, 약간 맥이 빠지는 형태입니다. 그런 면에서 싱어들이 그곳을 잘 처리하고 악기가 받쳐주어야 하는 곡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싱어팀에서 감사하게 잘 소화해 주셨습니다.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에 이 곡을 인도하면서 "주님의 이름이"라는 부분이 굉장히 크게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영상에서 보시는 것 처럼 그 부분에 대한 맨트를 여러번 반복하면서 강조했습니다. 일종의 메시지의 강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드러나는 것은 성경을 관통하는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이것에 대한 인식은 평소의 저의 성경 통독과 묵상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이 찬양 인도 가운데 발현된 것입니다.
음악적으로는, 후렴을 많이 신경썼습니다. 특별히 세컨 건반으로 참여하신 객원 세션이 후렴의 코드를 마지막에 바꾸신 부분이 참 좋았습니다. 제가 추가로 제안해서 더 드라마틱하게 바뀌었습니다. 굉장히 듣기 좋게 들립니다. 그러면서 두번을 후렴을 하면서 다음 곡으로 넘어갑니다.
4) 나의 백성이 (후렴으로)
느린 곡을 연속해서 부르는 것은 굉장히 좋기도 하지만, 굉장히 위험성이 큽니다. 자칫하면 분위기가 지루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몇가지 방법이 있겠습니다. 가장 무난하게는 한 곡을 마무리하고 다음 곡을 연결하는 경우입니다. 그리고 한 곡을 마무리하고 키를 올려서 다음 곡을 하는 경우입니다 (다음 곡의 원키가 더 높은 경우). 이런 경우 훨씬 지루함이 없어지고 신선한 느낌이 듭니다. 혹은 한 곡을 후렴에서 다이나믹을 그대로 살려서 다음 곡 후렴으로 연결하는 경우입니다. 가장 드라마틱한 연결이 가능한 경우입니다. 이번 집회는 마지막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임재"에서 "나의 백성이"로 연결하면서는 후렴으로 바로 넘어 갔습니다.
"집회에서 멘트의 사용"은 양날의 검입니다. 찬양 집회는 설교의 시간이 되어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멘트가 없으면 집회가 살아나지가 않습니다. 영상에서 보시는 것 처럼, 이번에 나의 백성이로 들어가는 약 두마디 정도 안에 "아주 짧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넣었습니다.
물론 집회 전에 어느 정도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저도 이렇게 까지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임재와 나의 백성이는 전혀 연결이 될 수 없는 곡 처럼 느껴질 수 있는데, "우리를 주님 앞에 정결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라는 이 멘트를 통해서 다음 곡의 성격이 정해진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굉장히 자연스럽게 연결되었습니다.
제가 중간에 하는 멘트 혹은 즉흥적인 찬양 라인을 넣는 것은 따로 롤 모델은 없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찬양 인도자는 Ron Kenoly입니다. 다만 저 같은 경우는, 가사를 일반적인 어조로 강하게 불러주는 것, 그리고 찬양 라인을 즉석에서 만들어서 넣는 것을 번갈아가면서 사용하는 편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Ron Kenoly를 조금은 따라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곡을 평소에 많이 부르고 또 연습을 종종하지만, 의도적으로 이때 노래로 만들어서 즉석에서 넣어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하지는 않습니다. 많은 부분이 즉흥적이고 또 이런 부분은 충분히 성령님의 역사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나의 백성이 후렴을 연결하고 "딱 한번만" 후렴을 하고, 그 이후로 벌스로 돌아가서 불렀습니다. 물론 두번 정도 후렴을 할 수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다이나믹을 줄여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훨씬 좋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이런 다이나믹 조절에서 드럼의 역할이 정말 큽니다.
그리고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찬양팀과 회중에 대한 배려이기도 합니다. 나의 백성이의 경우에는 굉장히 대곡입니다. 은혜 가운데 불러도 거의 백퍼센트 지칩니다. 그래서 분위기를 극도로 끌어 올리기 보다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오히려 이득이 되었습니다. 지금 내가 부르는 부분도 중요하지만, 뒤에 이어질 부분도 중요하기 때문에 항상 찬양 인도자는 전체를 머리 속에 넣고 있어야 합니다.
영상에서 보시면, 약간 무난하게 1절을 부르고 2절을 넘어갑니다. 그래도 충분히 좋았습니다. 너무 모든 곳에 액센트를 넣으면 정작 강하게 해야 할 곳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집회 때에 제 느낌은, 1절 후렴으로 가면서 오히려 성도님들이 더 강하게 부르고 싶어 하셨는데, 그런 분위기에 흔들리지 않고 찬양팀 전체가 자신들의 페이스를 유지해서 참 좋았습니다.
2절로 넘어갈 때에 보통 "2절로 합시다" 라는 표현은 잘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곡은 연습 때에는 사실 1절만 놓고 거의 연습했기 때문에 악기 팀에게 확실히 싸인을 드리는 것이 필요해서 이렇게 한 것입니다. 2절의 가사의 경우에는 정말 깊은 가사이기 때문에, 영적인 겸비함에 대한 강조를 위해서 가사를 많이 언급하면서 멘트를 했습니다.
그리고 통성 기도를 합니다. 통성 기도의 경우, 보통은 "이때에 통성 기도를 하겠다" 라고 찬양팀과 약속을 합니다. 전형적인 경우에는, "후렴을 건반이 메인이 되어서 연주"하거나 혹은 "근음이 되는 키로 코드 연주"를 단순하게 합니다.
이번의 경우에는 원래 계획은, 통성 기도 멘트가 시작되면 후렴을 연주하기로 했지만, 분위기가 맞지 않아서 메인 건반이 빠르게 잔잔한 후렴으로 전환하였습니다. 메인 건반의 집회에 대한 집중도가 엄청나고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이 보이는 부분입니다. 이런 분이 함께 한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가 통성 기도 멘트를 마무리하면서 메인 건반에 맞춰서 저의 어쿠스틱 기타로 타고 들어갔습니다. 그러면서 드럼이 잘 들어오셨고 또 일렉이 잘 맞춰 주셨습니다.
이번에 일렉으로 함께 하신 분은 정말 탁월한 연주자입니다. 보통은 일렉이 없어도 좋았지만, 확실히 일렉이 있으면 통성 기도 타이밍에 힘이 있습니다. 저는 통성 기도를 짧게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성도님들도 기도할 시간이 충분히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곡의 경우에는 후렴이 길었지만 일부러 끊지 않고 충분히 기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드렸습니다. 당연히 기도 이후에 후렴으로 타고 들어오기 위해서는, 리더가 그 타이밍을 잘 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후렴 전체를 무려 두번 반복할 때까지 기다리고 마지막으로 후렴으로 한번 더 불렀습니다.
아마 리더로 섬기시는 분들은 늘 느끼겠지만, 어떤 곡이든지 마지막에 끝날 때가 참 어렵습니다. 좋은 방법은 "충분히 점점 느리게"로 끝나는 것입니다. 연습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냥 비슷한 빠르기로 끝나면 어색합니다. 좀 과장되게 충분히 느려지면서, 건반도 코드를 잡은 손을 때지 말라고 부탁드리면서, 어쿠스틱 기타도 부드럽게 스트록으로 끝나면 자연스럽게 끝낼 수 있습니다.
5) 생명 주께 있네 + 6) 기뻐하며
아마 한국 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가장 좋아하고 친숙한 빠른 곡 두곡입니다. 인트로는 제가 코드만 만들고 나머지는 세션 분들이 알아서 채워 주셨습니다. 만들어오신 일렉 라인이 정말 환상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찬양팀의 큰 오해가 "멋진 인트로"에 대한 오해인 듯 합니다. 인트로가 최대한 화려하고 멋져야만 빠르 곡을 신나게 혹은 느린 곡을 멋지게 할 수 있다는 오해입니다. 물론 멋진 인트로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꼭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만든 인트로는 C D Em X 3 => Dsus4 D 입니다. 굉장히 단순합니다. 물론 일렉이 있어서 이번에 더 멋졌지만, 평소에도 딱 이 코드로 진행했을 때에 크게 부족하다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만약에 보통의 경우처럼 그 곡의 후렴으로만 인트로를 들어가는 것은 많이 밋밋하겠지만, 심플한 코드로 인트로로 들어가도 충분히 좋습니다.
가창의 경우에는, 저 같은 경우는 빠른 곡은 싱어분들이 오히려 스타카토 처럼 불러 달라고 부탁드립니다. 빠른 곡을 발라드 처럼 부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머라이어 케리는 제외입니다. 머라이어 케리 곡을 최근에 들으면서, 아주 섬세하게 부드럽게 이어지는 호흡 속에서 맞추는 리듬감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저 역시 머라이어 케리가 아니기 때문에, 무조건 끊어서 부릅니다.
"기뻐하며 왕께"로 이어지는 인트로는, 악기팀 디렉터로 섬기신 베이스께서 제안하신 것입니다. 기뻐하며 왕께의 첫째 줄을 가지고 인트로 라인을 만든 것입니다. 특히 이 두 곡의 빠른 곡은 세컨 건반으로 섬기신 객원 세션께서 정말 잘해주셨습니다. 음악을 전공하시고 이미 연주 경험이 풍부한 분이라 엄청나게 큰 서포트가 되었습니다.
이번 전체 집회에서 세컨 건반에게 부탁드린 것은, 가급적 모든 화음에서 패드 계열로 부탁드린 것입니다. 집회 전체 가운데 소리가 풍성하게 차 있기를 원했습니다. 물론 이걸 위해서는 엔지니어와 모니터가 받쳐 줘야 합니다. 감사하게도 잘 소화해주셨습니다.
코드에서 살짝 변환이 있었는데 "능력 주께 있네" 그리고 "소망 주께 있네" 는 A/G, Cm6/G로 제가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귀한 나의 예수님 찬양합니다"는 B/Eb, E로 제가 바꾸었습니다. 특별히 화성악을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리를 말하기는 어렵지만, 제 마음 속에 있는 코드로 이렇게 바꾸는 것이 더 곡이 새롭게 들리겠다 싶어서 바꾸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참 좋았습니다.
7) 예수 예수
빠른 곡 두곡이 끝나고 1부를 마무리하는 느린 곡인 "예수 예수"가 이어집니다. 이번 전체 집회를 통해서 가장 큰 곡 중에 하나였습니다. 빠른 곡이 마무리되면서 원래 어노인팅의 인트로를 그대로 따라 들어갔습니다. 처음 시작이 당김음으로 건반이 연주 되어야 하기 때문에, 메인 건반이 참 쉽지 않은 곡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무난하게 지나갔습니다.
제가 섬기는 팀의 가장 큰 장점은, "바이올린"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팀마다 상황이 다를 것입니다. 전공을 하셨고 오랫동안 함께 하신 권사님이시기 때문에 정말 저의 손발처럼 맞춰 주십니다. 연주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듣기만 해도 은혜가 됩니다. 제 바로 옆에서 사운드와 연주가 정말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보통 이런 멜로디 라인을 준비할 때에 일렉과 바이올린이 겹칠 수 있는데, 사전에 조율해서 바이올린이 할 부분 또 일렉이 할 부분을 철저하게 나누어서 준비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섬기는 팀은 서로가 서로를 세워주는 귀한 분들입니다. 일렉이 솔로로 들어갈 경우에는, 가급적 바이올린은 솔로 라인은 피하고 해당 마디의 코드 안에서 길게 연주해 달라고 미리 부탁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이번 집회에서 지금까지 불렀던 곡들은, 반복을 할 여지가 여기저기에서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예수" 이 곡은 거의 짜여진 순서대로 가는 것이 가장 좋게 느껴졌습니다. 딱 완벽하게 좋게 이미 짜여진 곡입니다. 그래서 곡의 순서를 어노인팅의 원곡대로 거의 동일하게 갔습니다.
세션의 부분에서는 특별히, "브릿지 넘어가는 부분에서 합"을 맞추는 것을 여러번 연습했습니다. 풀 밴드의 셋팅에서는 결국 연주의 합이 맞아야 어떤 음악적인 완성도가 높아지는데 그런 부분에서 이번 집회는 굉장히 다양한 부분에서 합을 맞추고 연습을 했습니다. 악기팀 디렉터로 섬기신 베이스 주자가 워낙 경험이 많으셔서 좋은 제안을 많이 해주셨고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 집회 전체를 2부로 나눈다면 언제 1부가 끝나야 할까?
"예수 예수"로 1부가 끝이 났습니다. 이번에 정말 고민했던 부분이 과연 어느 정도 곡을 부르고 1부를 마무리해야 하는가 였습니다. 담임 목사님의 설교를 10분 정도로 예상 했는데, 체감상 전체 콘티의 약 2/3를 마치면서 1부를 마무리를 했습니다.
예전에는 1부를 조금 짧게 하고, 설교 이후에 본격적으로 2부로 찬양하는 것으로 흐름을 짰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해보니, 그것보다는 1부에서 찬양을 정말 충분히 하고 그 이후에 설교를 듣는 것이 훨씬 좋다는 것입니다. 이미 일곱 곡을 불렀기 때문에 찬양팀도 휴식이 절실히 필요하고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몸은 휴식하면서 또 영혼을 채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미 모든 주제와 흐름에 대해서 담임 목사님께 상의 드렸기 때문에, 선한 능력으로 주제에 맞춰서 설교를 해 주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찬양 인도자는 항상 담임 목사님과 좋은 커뮤니케이션을 가져야 합니다. 결국 교회는 하나의 영적인 흐름으로 가야하는 것이며, 찬양팀의 모든 사역은 담임 목사님의 목회를 돕는 방향으로 진행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2부 분석으로 이어집니다.
* 예찬 집회 2부 분석 (대 곡을 소화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2.html
2022년 4월 2일 토요일
찬양팀 음악의 아름다움은 어디서 오는가? by 싱어의 역량
참 흥미로운 것은, 음악을 만들지 못하는 사람도 음악의 좋고 나쁨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지 못한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본인이 찬양을 잘 부르지 못해도, 혹은 악기를 연주하지 못해도, 어떤 사람의 노래가 혹은 어떤 찬양팀의 음악이 아름답다고 분명히 느낍니다. 그 이유는 정확하게 말하지 못하지만, 그러나 어떤 지점에서 분명히 좋은 감정 좋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고 성도님들은 그것을 은혜를 받았다 라고 말합니다.
찬양팀에게 있어서 생명과 같은 마이크와, 그 마이크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음악적으로 사용하면 좋을지는 이미 예전에 글로 정리한 적이 있습니다. 읽어보시지 않았다면 꼭 읽어보시고 연구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 현대적인 찬양팀을 위한 마이크 사용법 from 가수 정진운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09/from.html
물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없다면, 찬양팀의 음악은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목소리와 우리의 연주를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성령님의 역사로만 설명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아티스트들도 정말 아름다운 음악들을 얼마든지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않는 자들에게조차 일반적인 은총을 통해서, 그분의 아름다우심을 음악을 통해서 드러내십니다.
보통 찬양팀을 하게 되면 악기팀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악기는 정말 중요합니다. 음악적인 악기 연주가 받쳐주지 않는다면 어떤 곡을 완성도 있게 찬양으로 올려드리기는 정말 어려울 것입니다. 물론 음향이 너무 중요합니다. 사실상 어떤 의미에서 찬양팀 음악의 아름다움은 100퍼센트 음향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훌륭한 엔지니어는 찬양팀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요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양팀을 섬기면 섬길수록 중요한 것은 "싱어의 역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악기가 훌륭하고 싱어가 훌륭하다면 좋은 찬양팀입니다. 하지만 "악기가 훌륭해도 싱어의 역량이 떨어지면", 절대로 훌륭한 찬양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싱어들이 어떤 느낌으로, 어떻게 음들을 처리하며, 어떻게 강조점을 넣는가를 통해서 찬양팀의 색깔이 완전히 바뀌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 자신과 찬양팀을 염두에 두고, 음악적인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한 저의 고민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음이 시작되는 바로 그 순간"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미국 유학 나오기 전에 음악하는 친구가 Ken Reynolds를 저에게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처음에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도대체 찬양을 이렇게 세련되게 만들 수 있는가? 요즘에는 한국에도 이런 스타일의 찬양을 하는 팀들이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켄 레이놀즈를 뛰어넘는 팀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흑인의 소울에서 나오는 것은 연습에서 나온다기 보다는, 타고난 그 어떤 것으로 부터 나오는 듯 합니다. 물론 연습도 엄청나게 했을 것입니다. 어떤 리듬감의 완벽함에서 오는 감격은, 제 느낌으로는 0.2-3초 어간의 밀고 당기는 수준에서 결정이 됩니다.
2. "발성 자체의 다양함"이 필요하다.
위의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노래의 시작점과 끝점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탑 가수들의 노래를 들어보면, 모두가 들어가는 노래의 시작점과 끝 점에 엄청나게 공을 들입니다. "타이밍을 완벽하게 음악적으로" 맞춥니다. "어떤 음"도 "지나치게" 늘어지게 끌게 부르지 않습니다. "딱 좋을 정도"로 음악을 방해하지 않고 그 위에 얹어서 보컬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음악은 처음과 끝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중간"이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노래의 어떤 음의 시작점과 끝 점 사이의 중간은 어떨까요? 예를 들어서 어떤 음이 세박 정도를 지속해야 할 때에, 도대체 그 긴 공간은 어떻게 채워야 할까요? 이 부분 역시 매우 어려운 부분입니다.
최근에 라디님의 12 month를 들었습니다. 라디는 한국의 알앤비 장르에서 이미 탑클래스의 가수입니다. 너무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저와 동갑이지만 어떤 미소년보다 더 아름다운 목소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저는 이 곡이 "피아노만으로 반주"한다는 것을 10번 정도 노래를 듣고서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노래에 완전히 빠져서, 가창력에 완전히 몰입이 되어서, 도대체 다른 악기가 어떻게 등장하는지를 분석할 틈도 없었습니다. 라디님의 노래가 "너무나 변화 무쌍하고 전혀 지루함이 없어서" 피아노 하나의 악기만으로도 완벽한 곡을 만들어 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기존의 ccm에서 아쉬운 것은, 그리고 일반적인 찬양팀에 있어서 아쉬운 것은 "노래의 변화" 가 "너무 적다"라는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너무 밋밋"합니다. 멜로디 하나 하나 사이사이, 그 음의 사이사이에 변화가 너무 적습니다.
예를 들어서, 위의 곡에서 라디의 발성을 들어보면, 끝음 처리들이 동일한 곳이 거의 없습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직선으로 끌고, 어떤 부분에서는 코에 소리를 집중해서 바이브레이션을 넣습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바이브레이션을 한 음의 처음부터 넣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완전히 끝 쪽에만 사용합니다. 곡의 전체를 비교적 약하게 부르지만, 모든 기교들을 사용해서 보컬 자체를 지루하지 않게 만들기 때문에, 이 곡은 아름답게 완성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부분을 어떻게 찬양팀에 적용할 수 있을까요? 저는 "찬양 자체에 대한 편견"이 깨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편견은, "한국 찬양의 편견" 입니다. 한국 사람들의 생각에는, "찬양은 성악 발성으로" 혹은 "찬양은 강하게 부르는 발성으로 부른다"는 일종의 선입견이 있는 듯 합니다. 물론 그런 부분이 일정 부분에서는 당연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속삭이듯이 부르는 부분은 존재하지 않고" 모든 부분을, 너무 강하게 너무 세게 불러 버린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그 마음에 다가가는 곡들은" 부드러운 곡 혹은 부드러운 부분들입니다. "처음에 약하게 시작"되고 또 "변화가 다양한 곡"들입니다. 반드시 모든 음들은 "변화"가 들어가야 합니다. 그 음의 높이를 유지하면서도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찬양팀의 싱어라면 "다양한 발성"을 연구해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스스로 연구를 많이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저 같은 경우도, 어떤 부분에서 어떤 음에서 바이브레이션을 어떻게 얼만큼 넣을 지, 어떤 부분에서 강조점을 둘 지에 대해서 계속 고민합니다. 아래 곡은, 최근에 만든 커버곡입니다.
3. "음의 끝음 처리"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내용은, 이것입니다. 어떤 음이든지 정확한 타이밍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정확한 타이밍에 끝나야 합니다. 한가지 오해가 있는 듯 합니다. 특별히 찬양팀 싱어는 "팀 사역"입니다. 절대로 수퍼스타 한명으로 팀이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리더 혼자 혹은 싱어 혼자 만드는 것이 찬양팀이 아닙니다. "팀이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혼자서 너무 길게 부른다거나 하면" 결국 음악적으로 "큰 손해"를 가져옵니다. "전체적인 통일성"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그 음 사이에서 다양한 발성을 개인적으로 연구하면서 다양성을 넣어서 지루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한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끝 음의 처리" 입니다. 예를 들어서, 세 박의 음을 끌어서 그 음을 마무리하는 방법은 다양할 것입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끝나는 타이밍에 그냥 입을 다물면 됩니다. :) 하지만 아무도 이렇게 추천하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성대로 통과되는 공기의 흐름을 적게 만들어서 자연스럽게 fade out 시키는 것을 추천합니다.
하지만 탁월한 가수들은, "자기들만의 끝음 처리 능력"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어떤 음이 끝나는 그 느낌"이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 가수의 개성이 드러납니다. 저는 다양한 가수들의 노래를 분석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가 또 하나 존경하는 뮤지션은 다빈크님입니다. 한국의 최고의 뮤지션 윤상님과 함께 활동했고 본인이 곡 전체를 프로듀싱하는 가수이며 키보디스트입니다.
다빈크님의 발라드들은 주로 건반 위주로 진행이 되고, 강한 일렉기타들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순전히 보컬과 코러스들을 더블링해서 입히면서 다이나믹을 만들어냅니다. 보컬의 활용만으로 이정도 다이나믹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다빈크님이 거의 유일합니다. 저는 ccm 커버를 만들면서 제 노래가 너무 밋밋해서 고민하면서 다빈크님을 많이 따라해서 발성을 연습했습니다. 저는 다빈크처럼 모든 음을 꺾어서 처리하지는 않지만 이분을 연구하는 것이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위에는 거의 다 남자 곡들입니다. :) 저는 제가 남자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남자 보컬들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정말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여자 가수는 벤 입니다. 가수 거미 같은 경우는 알앤비를 추구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찬양팀에 적용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그리고 소향님은 일반인이 접근하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그리고 발성이 찬양팀과 전혀 맞지 않습니다. 하지만 벤의 경우에는 전형적인 발라드 가수이며 그런 점에서 배울 점이 너무 많습니다.
2021년 9월 3일 금요일
현대적인 찬양팀을 위한 마이크 사용법 from 가수 정진운
최근에 한 영상을 보고 찬양팀 멤버들이 함께 보면 큰 유익이 되겠다 싶어서 간단히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찬양팀 하면 떠오른 것이 무엇인가요? 그것은 마이크입니다. :) 찬양팀은 단순히 내 목소리로만 사람들에게 노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음향 시스템을 이용해서 찬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음향 시스템으로 들어가는 그 첫 시작이 바로 마이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마이크를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보통 TV에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흉내내는 정도에 그칩니다. 어떤 분들은 마이크를 가슴 높이에 놓고 노래하는 분들도 계시고, 또 어떤 분들은 입에 바짝 붙여서 라인을 손에 감은채 부르는 분들도 계십니다.
우리가 다양한 모습으로 마이크를 사용하는 것은 좋지만, 문제는 그러한 우리들의 마이크 사용법이 찬양의 전체적인 퀄리티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내 목소리를 어떤 식으로 처리하고 어떻게 다루어야 그것이 음향적으로 좋게 들리는 것일까를 고민하는 것은,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을 고민하기 이전에 가장 기초적인 부분이면서 또 중요한 부분입니다.
저는 이 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 이미 유명한 가수로 활동하는 정진운님이 자신이 어떻게 마이크를 사용하는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찬양은 정진운 님이 설명하는 기본적인 song form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통 성도님들이 좋아하시는 찬양들이 대부분 발라드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발라드 가수의 마이크 사용법과 이해를 배우는 것은 찬양팀 멤버들에게 매우 유익하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이 영상에서 좋게 생각하고 또 함께 배웠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간단히 정리해봅니다. 첫째로, 우리는 마이크를 사용한다는 것 자체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찬양팀의 보컬은 마이크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내가 마이크를 사용하는 것이 찬양팀의 결과물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항상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마이크에 대고 박수를 치지 말아야 합니다. 마이크는 음향 시스템을 통해서 스피커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보통 본인의 마이크가 켜져 있는가를 체크하기 위해서 마이크 헤드를 때리는 분이 종종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최종단인 스피커의 고장을 가져오는 아주 안 좋은 버릇입니다. 그리고 동일한 관점으로 마이크를 박수를 친다고 때리게 되면 또한 스피커에 무리를 줍니다. 그러므로 박수는 팔꿈치를 치는 것으로 대신해야 합니다.
셋째로, 마이크 헤드를 잡으면 안됩니다. 마이크 헤드를 잡으면 내 목소리가 제대로 마이크로 들어가지 않고 굉장히 거북한 소리가 들립니다. 방송에서 힙합 가수들이 그렇게 할 때도 있지만 그것은 극단적인 경우이며 엔지니어에게 후처리에 대한 큰 부담을 줍니다. 라이브 셋팅에서 섬기는 찬양팀은 보통의 정상적인 마이크 잡는 방식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로, 벌스, 프리코러스, 코러스 등을 나누어서 마이크 사용법을 가져야 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정진운님은 이 영상에서 발라드 가수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기술들을 모두 가르쳐주었습니다. 핵심은, "벌스 부분은 작게 조곤조곤 대화하듯이 마이크를 가까이 대고 숨소리를 섞어서 불러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정말 두가지 핵심은, 마이크를 가까이 대고, 동시에 작게 조곤조곤 부르라는 것입니다. 두가지가 동시에 되어야 합니다. 마이크만 가까이 대고 크게 불러서도 안되고, 마이크를 멀리 대고 작게 불러서도 안됩니다. 마이크를 가까이 대고 조곤조곤 속삭이듯이 불러야 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CCM쪽의 찬양팀들과 발라드 가수들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찬양팀들은 보통 벌스를 너무 크게 부릅니다. 너무 힘을 주어서 부르고 너무 발성적으로 부르고 너무 강하게 부르고 너무 한 음들을 길게 빼서 부릅니다.
물론 그렇게 부른다고 찬양을 망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듣는 사람이 찬양에 빠져들거나 감정 선을 살려서 듣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언제나 예외는 존재하겠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마이크를 사용하는 찬양팀 싱어들은 벌스 부분은 살살 불러야 합니다. 그리고 조곤조곤 불러야 합니다. 그리고 가급적 각 음들을 끝까지 빼지 않고 약간은 음들 사이에 공간을 두고 불러야 합니다.
물론 이렇게 다 부를 수 있다면 모두가 프로 가수가 되었겠죠 :) 그래서 저는 보통 저는 찬양팀 안에서 주문할 때에 "벌스는 살살 약하게 불러주세요" 라고 부탁드립니다. 이 부분을 정진운 님이 정말 잘 설명해주셨습니다. 영상에서 마이크를 가까이 대고 공기를 좀 더 넣어서 부르는 것이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를 살펴보시면, 실제로 내가 찬양의 벌스를 부를 때에 큰 유익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코러스로 넘어갔을 때에 적절한 마이크 거리와 성량을 조절하는 것도 너무 중요한 부분입니다. :) 특히 저 역시 찬양을 하다보면 지나치게 큰 소리를 낼 때가 많습니다. 제 자신이 들을 때에는 그것이 더욱 드라마틱하고 은헤롭다고 느끼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지나치게 마이크를 가까이하고 소리를 지른다면, 그것은 사실 상대방을 괴롭게 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리고 그것을 컨트롤 하는 엔지니어에게 오히려 부담을 주게 됩니다.
그래서 앞으로 저도 연습할 부분은, 감정이 복받치고 은혜로운 코러스 파트에 들어갈 수록 마이크를 조금은 더 띄우고 적당한 수준에서 부르는 것입니다. 물론 마이크를 띄워주는 그 강도에 대해서는 정진운 님이 이야기하시는 것 처럼 점진적으로 멀어져야 할 것입니다.
적당한 수준에서 마이크를 띄운다는 것은 정진운 님의 영상을 보니 딱 주먹 하나에서 하나 반 정도입니다. 저도 이정도를 추천합니다. 평소에 벌스 부분에서는 주먹 반개 정도를 마이크에서 띄우고 부르고 후렴에서는 맥시멈으로 주먹 하나 반 정도를 띄우고 부르는 것입니다.
찬양팀을 이루어서 함께 찬양한다는 것은, 정말 종합 예술입니다. :) 찬양이 시작되어서 15분에서 20분 정도를 끊이지 않고 찬양을 한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그리고 마이크를 사용하여 찬양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신경쓸 것이 많고 공부할 것이 많은 엄청난 자리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 귀한 역할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바라기는 비록 정진운 님은 발라드 가수이지만, 이 분의 영상을 통해서 마이크 사용법과 감정을 처리하는 발성 등을 잘 배우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찬양이 좀 더 아름다운 그리고 음악적으로 완성된 찬양이 되기를 원합니다. :)
2021년 8월 18일 수요일
'하나님을 송축한다' 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 송축? 낯설지만 익숙한 단어
시편 63:3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63:3 Because your love is better than life, my lips will glorify you. 63:4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개역개정) 63:4 I will praise you as long as I live, and in your name I will lift up my hands. (NIV)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기록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행동해야 할 궁극적이고도 바른 방향을 배우며,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찬양할 때에 많이 듣는 것인 '송축하다'라는 가사입니다. 특별히 영어권에서 '10,000 Reasons'라는 찬양을 원곡에서는 'Bless the Lord' 라고 표현된 분을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송축해 내 영혼' 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하였습니다. 보통의 일상의 언어로는 '송축하다' 라는 표현을 잘 사용하지 않지만, 이 찬양을 통해서 성도님들에게 더 많이 익숙해진 듯합니다.
* 송축의 사전적 정의
저를 포함해서 보통의 성도님들은 사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전이라는 것은 복잡한 개념을 간단하고 명확하게 짚어 주기 때문에 성경 사전을 사용하는 것은 신앙에 큰 유익을 줍니다. 송축이라는 것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송축(頌祝, praise) 하나님 앞에 몸과 마음을 바쳐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행위.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의 한 표현으로 대상은 늘 ‘하나님’(대하 2:12; 시 16:7)이거나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성호)이다(시 96:2). 송축은 삶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찬양하는 내용이 중심 줄거리를 이룬다(대상 16:36).
가스펠서브, 라이프 성경사전 (서울시 종로구 경희궁1길 5-9(03176): 생명의말씀사, 2006), 568.
이 한가지 정의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것이 풍성합니다. 송축하는 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다해서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 대상은 하나님이시며 그 내용은 그분이 이미 이루신 일들 입니다.
* 송축의 성경적 정의
시편 63편에서 다윗은 주님을 송축하며, 손을 들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위에서 우리가 살펴본 정의 그대로입니다. 단순히 입술로만 주님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온 몸을 사용하여서 여호와를 높이는 것이 그분을 송축하는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스터디 바이블들은 이 말씀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요?
63:4 lift up my hands. This signifies praise, as it does in 134:2. Elsewhere, this action more commonly signifies prayer (e.g., 28:2; 44:20; 77:2; 88:9; 141:2; 143:6).
이 말씀에서 손을 든다는 것은 찬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시편의 또 다른 말씀 (ex) 28:2) 에서는 더 일반적으로 이 동작은 기도를 의미합니다.
D. A. Carson, ed.,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948.
63:3–5 The psalmist expresses his
joy in knowing God and his determination to continue praising God throughout
his life. Lovingkindness may also be translated “loyal love” (13:5). Praise is
a vocal, public act in the Psalms (Heb. 13:15). bless … hands: Praise (the meaning of bless here)
and raising the hands in worship are often associated in the Psalms (134:2). To
lift the hands to the Lord expresses dependence on Him, coupled with an
acknowledgment of His power, wonder, and majesty (77:2). be satisfied … with joyful lips: In coming to the Lord in praise,
the poet finds the refreshment he has sought (v. 1).
시편에서 찬양은 목소리로 공개적으로 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시편에서 찬양하고 예배에서 손을 드는 것은 종종 연결되어 있습니다. 손을 든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 경이로움 그리고 위암에 대한 인정과 함께 그분을 의존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시 63:3–5.
위의 스터디 바이블의 설명에서 아주 흥미로운 것은, 여호와께 손을 드는 것이 다른 본문에서는 기도와 연결하여서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양은 곡조가 있는 기도이며, 기도 속에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또한 손을 든다는 외적인 행위는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확고한 표현이며, 그분의 능력과 경이로움과 위엄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 송축 = 손을 들어 하나님을 인정하고 높이고 칭찬함으로 찬양하는 것
한국 문화는, 누군가를 칭찬하는 것을 그렇게 썩 좋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어떤 분들은, 칭찬을 하면 그것을 받는 사람이 교만해 진다 라고도 말씀합니다. 그러나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장점을 잘 알아주고 격려하고 칭찬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어떤 방식이든 할 수만 있다면 다른 사람을 깔보고 평가 절하하는 세상 속에서,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칭찬함으로써 나는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누군가를 칭찬하는데 익숙하지 않다면, 하나님을 칭찬하는 것도 그러할 것입니다. 내 눈 앞에 보이는 누군가를 칭찬하는 연습을 해본적도 없는데,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높이고 칭찬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모든 찬양 속에서, 다윗의 결단처럼 여호와를 마음껏 송축하기를 원합니다. 그분이 이루신 수많은 일들과 친절과 사랑과 은혜를 내 입술로 고백하며 감격하기 원하고, 또 두 손을 높이 들고 주님을 의지하며 그분을 인정하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성도의 마땅한 목표이며 삶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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