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님의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카톡을 읽고 어떻게 답을 드리면 좋을까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저도 어제 찬양이 참 좋았습니다. 거의 대부분 마음에 의도한 대로 진행된 것도 좋았고, 또 팀원분들이 함께 은혜롭게 찬양하는 소리를 듣는 것도 참 좋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찬양 가운데 역사하신다는 영적인 깊은 확신이 또 좋았습니다.
몇달 전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좀 더 찬양팀의 찬양을 다양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부탁의 전화였습니다. 그때 제 상황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아무리 타이레놀을 먹어도 몸은 좋아지지 않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침체의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제 상황을 설명드리고 양해를 구했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목사님, 저는 목사님 믿고 지금까지 왔는데 어떻게 합니까?" 잠들어가는 저의 마음을 깨운 한마디였습니다.
설교는 너무나 어렵습니다. 하지만 설교보다 더 어려운 것이 찬양 인도입니다. 신경 쓸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보통 선곡을 할 때에 여러가지를 고려합니다. 말씀과의 연관성, 곡 사이의 그리고 곡 전체의 흐름, 멤버들의 연주력과 가창력, 회중의 곡에 대한 친밀도, 곡의 높이 그리고 곡이 가지는 느낌과 뉘앙스 등등을 모두 고려합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우리가 손에 들려지는 그 네곡과 다섯곡 자체가, 예술의 과정의 결과입니다.
실제로 찬양이 시작되면 더 많은 것을 고려합니다. 곡의 빠르기, 팀원들의 컨디션, 사운드의 크기와 질감, 싱어분들의 한분 한분의 가창력, 그리고 어디에서 어느만큼 반복할 것인가의 상황 판단, 흐름의 진행을 계획대로 할 것인가 즉흥적으로 더 추가할 것인가,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고려하면서 시간이 흘러갑니다.
이미 충분히 잘 하고 있기 때문에, 예찬팀에 더 이상 큰 부담을 드리지 않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제 자신을 향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금요 찬양을 하고 맡은 사역을 다 하면서, 추가로 주일에 설교하는 것은 이미 제 육체적 한계를 넘어서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야기 나누면서 여전한 예찬팀의 갈망을 보았습니다. 여러가지 제안하시는 것들을 주의 깊게 들었습니다. 팀원 분들이 이야기하신 것들은, 아마도 주님께서 주시는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누구나 가장 은혜로운 예배를 꿈꾸며, 그것을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한번의 찬양 세션이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것은, 너무나 복잡하고 심오한 과정입니다. 어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처음 시작의 부담을 짊어지고 솔로로 시작하는 순간부터,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까지 마무리되는 과정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빚어가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모든 역량이 총 동원되어야 했습니다.
만약에 싱어분들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다면, 어제의 결과는 없었을 것입니다. 악기팀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다면 마찬가지로 어제의 결과는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충분히 기도하고 먼저 연습하지 않았다면, 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충분히 연습이 될 때에, 어제와 같은 결과를 경험하게 됩니다.
정다빈 전도사님이 찬양팀 시작할 때에, 정말 진지하게 부탁했습니다. 피아노는 0.5초라도 쳐지면 안되고, 한곡 안에서 코드를 두번 이상 틀리면 안된다, 솔직한 저의 마음이었습니다. 누군가가 기분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맡은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결국 팀의 하모니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전도사님이 열심히 따라주었고 거의 저의 기준에 부합하게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형승 집사님은, 더 완벽한 연주를 위해서 드럼 심벌을 개인의 것으로 매주 가져오십니다. 정우철 집사님은 베이스가 자신의 삶의 전부입니다. 전문 베이스 주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입니다. 첫 곡에서 부터 송근선 권사님이 아주 부드럽게 연주하시면서 아름다운 힘을 더한 것은, 수천 시간의 음악적 역량이 쌓인 결과입니다. 이러한 마음과 태도와 열심이, 결국 지금의 예찬팀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는 제 자신의 한계를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찬팀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그렇게 한걸음을 더 나아가는 사람은, 거기에 걸맞는 희생과 댓가를 반드시 치뤄야 합니다. 희생이 없다면, 아름다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바라는 바와 실제의 삶을 전혀 상관 없는 것으로 살아갑니다. 멘탈리티에서 팀 그로버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자신이 진정 무엇을 이룰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고 그것을 직접 확인하려는 사람은 그보다 훨씬 더 적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일반적인 예배와 설교로는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다." 저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장 완벽한 예배와 가장 완벽한 설교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을 뿐입니다. 저는 언제나 꿈을 꾸고 그것을 위해서 걸어갑니다.
저의 설교를 들으시는 분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숨도 쉬지 못할 만큼 긴장하고 압도적으로 듣게 되는 날을 꿈꿉니다. 저는 제가 찬양할 때에, 처음에 들이마시는 호흡만으로도 은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예찬팀이 함께 음을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사람들이 마음에 감동이 되기를 원합니다.
"미쳤다" 혹은 "교만하다" 그런 누군가의 말은 정말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다른 누군가와 나를 비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주신 가슴 벅찬 숭고한 목표와, 그것을 향한 상상을 초월하는 열심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이제는 그런 것이 없으면, 교회는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진정한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입니다. 어설프고 엉성한 것들은 다 사라질 것입니다.
장로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장로님이 처음에 가졌던 단점들이 거의 대부분 고쳐졌기 때문입니다. 벌스에서 부드럽게 부르는 것, 그리고 마지막 음을 너무 끌지 않는 것 등 제가 부탁드리는대로 거의 완벽하게 곡을 소화해오시고, 또 창법으로도 찬양팀에 맞는 창법으로 잘 바꾸셨습니다. 장로님의 찬양이 팀 전체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바라기는, 장로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찬양의 그 가장 완전한 극치"를 향해서 "평생"을 달려가시기를 바랍니다. 아마 저에게도 어쩌면 장로님에게도 이 시간들이, 가장 완전한 찬양팀에서 가장 아름답게 찬양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시간이 소중합니다. 예찬팀을 인도하는 단 한 순간도 허투르게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예찬팀은 저에게 너무 소중하고, 모든 것이 영광스러운 순간입니다. 그래서 저의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고 또 섬기기를 원합니다, 늘 감사드리고, 제가 예찬팀을 섬기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렇게 함께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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