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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30일 토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창세기 46장 /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 그리고 그 안에서의 감격

 

요셉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리고 이집트로 불렀다는 이야기를 듣고 야곱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납니다. 하지만 야곱의 마음에는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창세기 26장에서 이집트로 내려가지 말라고 야곱에게 말씀하신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가나안 땅의 최 남단의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그 밤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십니다. 야곱의 이름을 두번 부르십니다. 애굽에서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가시겠다고 하시며 다시 너를 인도하여 올리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야곱의 긴 족보가 등장합니다. 놀라운 것은, 가장 심각한 기근의 시간 동안에 이들이 살아 남았고 또한 번성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약속을 이루고 계십니다. 

그리고 27절에 등장하는 "애굽에 이른 자가 모두 칠십명이었더라"라는 말씀을 통해서 이들의 번성의 완전함을 보여줍니다. 흥미롭게도, 스터디 바이블은 창세기 10장에서 70개의 족속들의 수를 창세기 46장의 70명과 연결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믿음의 눈에서 볼 때에 새로운 인류가 등장하고 있다고 해석합니다. 

그리고 결국, 야곱은 요셉을 만나게 됩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끌어 안고 웁니다. 성경에 있어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에 하나입니다. 야곱의 마음 속에 실질적으로 죽었다고 생각했던 요셉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요셉의 모든 고난의 시간은 바로 이 장면을 위해서 존재했던 것입니다. 

스터디 바이블은, 이러한 아버지와 아들의 감격적인 그리고 감정적인 재회(emotional reunions)가 이곳이 마지막이 아님을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말라기 4장은 이러한 아버지와 아들의 화해와 연합의 중요성을 언급합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15장에서 탕자의 이야기에서 가장 극적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저는 항상 언약 신학 혹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라는 내용이 언급될 때 마다, 굉장히 차가운 논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을 세우시고 성취한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지만, 그것이 저의 감정까지 연결되는 것에 있어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창세기 46장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분의 약속을 이루어가지는 그 과정 속에서, 그 최종적인 목적이 아버지와 아들의 연합이라는 것을 깨닫고 크게 감격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감정적인 연합입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놀라움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구원을 계획하시며 이루시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단순히 "논리"로만 받아들입니다. 식어진 마음으로 믿음을 "논리"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구원의 논리"를 가지고 있으나, 그 최종적인 결과와 목적은 "구원의 감격"입니다. 어떤 분들은 신앙은 너무 감정적이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 모든 사람이 자신의 감정에만 매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저는 그 말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그러나,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도 기다렸던 주인이 돌아오면 기쁨에 춤을 추면서 좋아하고 품에 안깁니다. 

그런데 하물며, 우리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분의 구원을 세우시고 이루시고 그분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시는데, 우리가 그저 그것을 논리로만 여기며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 속에서 충분히 감정적이지 못하다면, 오히려 그분을 향한 우리의 뜨거운 마음을 죄악시 한다면, 우리의 신앙에 대한 태도가 무엇인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In this chapter, we see the most emotional reunion in the Bible. Joseph and his father finally met. They hugged and wept. How can we describe this scene with some words? 

For a long time, as the pastor, whenever I heard that God's plan and his sovereignty, I felt it is so cold logic. I know the God of Trinity is love. They made the plan of redemption for sinners with their love. However, I felt the word of the plan itself is so cold. 

However, I found the ultimate goal of God's great plan. It is the emotional reunion. There is indescribable joy and gratitude in our spiritual union with God. Our salvation is not the logic itself. The understanding of the logic of salvation is not our gold. I know that it is a critical one but it is not the final goal. 

the grace and truth study bible shows that this emotional reunion is the main theme in the bible. Jesus Christ himself showed that the great father and the prodigal son's emotional reunion. We should have an experience emotional relationship with God who is our father and lord. 

2021년 10월 29일 금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창세기 45장 / Too Good to be True & 복음을 누린다는 것

 

유다의 진심어린 호소까지 본 요셉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억제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형제들 앞에 서 있는 이집트의 총리가, 바로 그들의 형제 요셉이라는 것을 밝힙니다. 형제들은 너무 놀라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합니다. 

놀라운 것은, 요셉이 형제들을 위로한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가장 극적인 자리에서 요셉은 매우 격정적입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서 부터 우러나오는 논리는 매우 차분하며 또 성경적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하셨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이 자신을 이집트로 보내셨다고 말합니다. 무려 두번이나 강조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모든 계획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냅니다. 

요셉은 오랜 세월동안 하나님의 뜻을 고민했고, 그 안에서 답을 찾았으며, 그리고 이제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형제들에게 알려줍니다. 형제들이 아버지를 모시고 오기를, 그리고 이집트에서 같이 이 흉년을 이겨낼 것을 제안합니다. 

이 장면을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아마 마이클 호튼의 책 제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Too Good to be True!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그것이 진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좋은! 그런 뜻입니다. 자신들이 팔았던 요셉이 살아있고,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으며, 그들이 비웃던 하나님의 꿈은 이루어졌으며, 이제 요셉이 자신들을 초청하고 있다는 것은, 진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좋은 일입니다. 

아주 흥미로운 것은, 요셉은 베냐민의 목을 안고 웁니다. 베냐민도 요셉의 목을 안고 입니다. 요셉이 형제들과 입맞추며 웁니다. 그런데 형들은 울지 않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 주목합니다. 요셉이 믿기 어려울 만큼의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를 이야기하고 강조하고 그 안에 들어오라고 하는데, 형들은 선뜻 그 속으로 들어오지 못합니다. 

5절에 보니 요셉은 형들에게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라고 말합니다. 넷 바이블은 "do not be upset and do not be angry with yourselves because you sold me here"이렇게 번역합니다. 

요셉의 염려는, 형들이 스스로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과거에 대한 진실한 회개가 있는 것은 좋지만, 그 안에 매몰되어 버리는 것을 요셉이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태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더 흥미로운 것은, 요셉의 당부입니다. 24절에 보니 아버지에게 보내면서 "길에서 다투지 말라"라고 당부합니다. 이유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는 것을 염려하지 않았을까요? 요셉을 팔게 된 것이 누구의 책임인가를 확실하게 하려고 하는 것을 막은 것은 아닐까요? 요셉의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형제들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요셉이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성화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성도의 심리는 어떠해야할까요? 저는 심리 전공이 아닙니다. 그러나 보편적인 한국 성도님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해결할 수 없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다라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평생 죄인"입니다. 

물론 우리는 죄인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게 합니다. 그래서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이미 들어가 있음을 알려줍니다. 주님 안에서 기뻐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평생동안 분노하고 한탄합니다. 회개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나친, 혹은 도를 넘어선 자기 비난과 한탄은 결국 복음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복음을 누리라는 말이 너무나 공허하게 느껴집니다. 그것은 목회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설교의 최종적인 목적은 누군가를 정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스스로를 비난하고 정죄하며 평생 괴로워하도록 만드는 것이 최종적인 목적이 아닙니다. 

결국 설교의 목적은 한 사람이 은혜 가운데 들어오도록, 그리고 은혜를 누리도록, 그리고 은혜 안에서 끊임 없이 돌이키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창세기 45장은 설교자에게도 또 성도님들에게도 신앙의 태도에 대한 결정적인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I think this chapter is very critical to understanding the attitude of God's people. I was surprised by Joseph's confession about his situation. Even he said twice that God sent him to Egypt. He doesn't blame his brothers. Rather, he insists that there has been God's providence in him and his brothers. So he stresses that his brothers should not be angry about themselves. However, his brothers can't do that. They did not weep with Joseph.

I think that Some Korean Christians blame themselves severely. I know that we need sincere repentance before God. We should mourn for our sins. But, the final goal of our mind and attitude is not mourning. It is the joy and satisfaction with God's grace and Jesus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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