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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19일 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229) - 온전케 되리


1. 가사 살펴보기

주 앞에 나와 제사를 드리네
마음열어 내 삶을 드리네
주를 봅니다
끝없는 사랑 나 회복 시키네 

이제 눈 들어 주 보네
그 능력 날 새롭게 해
주님의 사랑 날 만지시니
내 모든 두려움 사라지네 

폭풍 속에도 주 붙들고 믿음으로 주와 걷네
갈보리 언덕 너머 그 어느날
주안에 온전케 되리

 

2. 곡 소개

곡은, Parachute Band Complete이라는 곡의 번안곡이다. 이 팀은, 뉴질랜드에서 결성된 기독교 워십 밴드이다. 그리고 번안된 곡은 한국 교회 안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 곡은, 진실하게 예배하는 성도를 회복시키시는 능력의 주님에 대한 고백과,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할 때에 더욱 온전케 하시는 그분의 놀라운 섭리와 계획을 아름답게 그려낸 찬양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시편 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시편 103: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103:3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103:4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이사야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요한일서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믿는 자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며, 이때에 두려움은 내쫓깁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그분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은 공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깨달음이 우리의 마음과 영혼 깊숙이 스며들 때, 우리는 사랑 안에서 온전하게 되고 심판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264.

베드로전서 5: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여기서 말씀하는 잠깐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승천으로부터 시작하여 세상 끝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의 기간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이 땅에서의 삶은 눈에 띄게 짧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고통이 길고 심하더라도 영원한 기쁨에 비하면 잠시입니다. 회복시키다, 굳건하게 하다, 강하게 하다, 견고히 세우다 라는 네가지 동사는,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잃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실 것임을 상기시킵니다. 고난이 먼저 오지만, 그 뒤에는 영원한 영광이 따릅니다. 은혜로 성도들을 효과적으로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힘을 굳세게 하셔서 끝까지 견디도록 하실 것입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413.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곡은, 성도를 온전케 하시며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와 믿음을 담고 있는 곡이다. 이 곡은 아주 분명하게 예배에서 시작한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내어 놓고, 진실하게 회개로 나아가며 주님을 갈망하고 바라보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회복시키시는 가장 중요한 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볼 때에,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넘치게 베푸신 사랑을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자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내어주신 것과,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사랑하시며,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가장 완전하게 인도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도의 삶이라는 것은 수 많은 고난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리고 믿음으로 살아가려 할 때에 손해를 감수할 수 밖에 없지만, 주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채우실 것이라고 약속하시는 것이다. 이 땅에서의 고난은 잠깐이지만, 성도는 영원한 주님의 나라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영원한 사랑으로 이 땅에서의 마지막 날까지 우리를 지탱하실 것이며 또한 결국 완전케 하실 것이다. 우리는 가장 거룩해진 모습으로 영원한 충만함을 누리며 아버지 하나님과 끊없는 만족과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찬양을 부를 때에, 성도에게 이미 주어진 너무나 아름다운 미래에 대한 기쁨과 감격을 누리며, 진정한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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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2일 토요일

더 깊은 기도를 향해서

 

지금 돌이켜 보면, 어머니의 귀한 사랑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늘 저에게 말씀을 읽고 기도하라고 하셨지만, 어린 저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가 않았습니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성경을 읽기를 시작했으니, 한편으로는 참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참 아쉽기도 합니다. 그나마 그때 정신을 차린 것이 감사하고, 또 한편으로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도 있습니다. 

개인 기도 노트를 만든지 몇년이 되었습니다. 거창하지 않고 아주 간단한 노트입니다. 셀폰 메모장에 성도님들의 기도 제목을 적어 놓고 개인 기도할 때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많은 기도 부탁 속에서 잊는 것이 죄송해서, 또 좀 더 진지하게 기도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입니다. 

이틀정도 마음이 쉽지 않았는데, 더 기도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기도하다가, 갑자기 말씀을 적어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간절해져서 그런 듯 합니다. 어머니께서는 굴곡진 인생을 걸으시면서, 늘 성경을 펴고 읽으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우시면서 기도하는 모습도 참 많이 보았고, 그것이 저의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녹아 있습니다. 

어머니의 진실함과 절박함에 아직 제가 따라갈 수 없지만,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듯 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도 그리고 목회도, 인간의 능력이 역할을 하는 것은 아주 아주 적은 부분인 듯 합니다. 예전에는 너무 막막해서 한숨이 나오던 순간이 거의 대부분이었다면, 이제는 조금은 믿음이 더 생겨서, 기도 제목으로 적고 기도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기도 노트는 점점 길어집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성경 구절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기 전에 읽고 이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라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의 삶 역시 돌이켜보면 녹녹치 않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저를 더 연단시키시는 것이 뜻인 듯 합니다. 어쩌면 이제 시작일 수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두려운 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은 그분의 뜻대로 이루시며 영광 받으시는 분이기에 저는 순종할 따름입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벧전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요일 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수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잠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 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히 12: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이 말씀들을 단숨에 읽고 나니, 그제서야 마음에 평안이 찾아옵니다. 어디로 나가야 할지를 조금은 더 선명하게 발견하게 됩니다. 말씀이 문자로 머무르지 않고, 저의 생각과 마음 그리고 전 존재에 스며들기 원합니다. 그럴 때에 저의 인생에 두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걸음 한걸음이 진정한 천국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소망하며 끊임없이 전진하기 원합니다.

2025년 5월 27일 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217) -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1. 가사 살펴보기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나의 몸을 산제사로 드리는 것
내 몸을 쳐 순종함으로
거룩하고 받으실만한 산제사로 드리는 것​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는
상하고 통회하는 나의 마음
가난한 맘으로 나아가
회개하며 그에 합당한 참된 열매 맺는 삶​

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는
거듭난 생명으로 주님과 사귀는 삶
주님을 더 알아가고 내 모든 것을 다 아뢰며
믿음으로 주님과 함께 걷는 것

 

2. 곡 소개

곡은, 어노인팅 예배캠프 2024에 수록된 곡이다.이 곡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를 깊이 이해하면서 성도의 몸과 마음, 삶의 열매, 그리고 주님과의 동행으로 예배 드리기를 갈망하는 아름다운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라는 것은, 적어도 세 가지의 가능한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하나님의 자비를 생각할 때, 우리의 헌신은 이성적으로 합당한 것입니다. 우리의 헌신은 동물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바치는 영적인 예배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완전히 인식한 상태에서 드리는 지적인 예배입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Study Bible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08), Ro 12:1.

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마음이 상한 사람은 깊은 회개의 심령으로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영혼을 합당한 제물로 받아 주십니다. 악인은 마음이 상한 자를 미워하지만,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치유하십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Study Bible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08), Ps 34:18.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참된 예배는 성령님께서 인간의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역사하실 때에 일어납니다. 옛 언약의 성전으로 크게 특징지어지는 외적인 예배는,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성령님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는 단순함과 특권으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516.

요일 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빛 가운데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삶 속에서 반영하는 것을 의미하며, 바른 교리와 도덕적 순결을 모두 포함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은, 하나님 그리고 사람 사이에서의 깊은 교제와 모든 죄로부터 점진적인 정결함을 가져옵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430.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참된 예배가 무엇인가를 아름답게 묘사한 곡이다. 예배는 단순히 외적으로 교회 안에서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 자체를 드리는 것이 예배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충분히 이해해야 하고, 그러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생각할 때에, 마땅히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이다. 또한 예배는 우리의 마음을 드리는 것인데, 깊은 회개 속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여야 하며, 그렇게 예배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시는 것이다.

구약에서는 실제로 성전이 존재했고 그것을 통해 예배 드렸지만, 이제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님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단순히 정해진 예배 시간에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동안 빛 되신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며 죄에서 점점 멀어지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는 것이다.

팬데믹 이후로 예배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졌다. 그렇다면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인가? 아니면 나의 기쁨을 위해서 잠깐 교회에서 드리는 종교적인 의식인가? 이 찬양을 통해서, 성경적인 예배가 회복되기를 원한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 올려 드리고, 합당한 삶의 열매를 오직 그분께 드리고, 또 주님과 진실하게 동행함으로 우리의 삶 전체를 예배로 올려드리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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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6일 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215) - 눈을 들어 주를 보라


1. 가사 살펴보기

눈을 들어 주를 보라 주의 영광을 보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 주의 영광을 보라

주는 빛 거룩과 진리 능력의
주의 영광 나타나셨네 

선포하라 선하신 주 주의 인자는 영원함이라
선포하라 선하신 주 주의 인자는 영원함이라

 

2. 곡 소개

곡은, 현대적인 워십 운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Chris BowaterSee His Glory의 번안곡이다. 이 곡은, 성도의 평생 동안에 추구해야 할 영적인 태도를 알려준다. 우리에게 이미 드러내신 주님의 영광을 바라볼 것과, 영원한 주님의 인자를 선포할 것을 권면하는 아름다운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6: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6: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6: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히브리어에서 반복은 최상급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절대적으로 거룩하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영광이라는 말은 중요함과 무게감을 내포합니다. 땅의 모든 영광은 궁극적으로 사람이 아닌 여호와께 속한 것입니다.

D. A. Carson, ed.,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1178.

이사야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호나상은,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을 예표합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251.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은혜가 진리가 충만하더라 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영광을 묘사하는 것이며 출애굽기 34 6절에 나오는 여호와 하나님의 인자와 진실과 병행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가진 선하심의 본질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은혜로운 언약적 사랑을 의미하며, 진실함은 신실한 말씀, 즉 진리를 뜻합니다.

D. A. Carson, “The Gospels and Acts,”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1892.

고후 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거울에 비친 주님의 영광을 바라볼 때 그들은 같은 형상으로 변화됩니다. 종교 개혁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두 가지 유익, (1) 칭의와 (2) 변화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경험하고 믿음으로 그분을 바라볼 때에, 그들은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됩니다. 영광에서 영광에 이른다는 말씀은, 변화가 점진적인 성화를 통해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의 사역을 통해 신자들의 삶에 이러한 변화를 일으키십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674.

136: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곡은, 성도가 마땅히 추구해야 할 평생의 태도를 그려낸 곡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오직 주님만이 위대하신 분이심을 깨닫기 위해서이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분만이 온 세상을 다스리시며, 그분의 뜻대로 이 세상을 이끌어 가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분의 위대하심을 늘 묵상하며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은, 성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온전히 보여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신약의 관점에서 이 곡을 이해하자면, 주의 영광을 본다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볼 때에, 우리는 후렴의 가사처럼 그리고 고린도후서 3장의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주님의 인자의 영원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고 감격하게 된다. 모든 죄인은 영적으로 죽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 가운데 비추심으로 죄인이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주목하고, 그것을 묵상하고 붙들 때에, 그분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그리고 그분의 거룩하심을 닮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찬양을 통해서, 우리에게 온전히 나타나신 하나님의 영광,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기를 원한다. 이 찬양을 부르면서, 나의 삶을 통해서 오직 주님만이 영광 받으시기를, 그리고 주님께 감사하며 주님을 닮아가기로 더욱 결단하고 믿음으로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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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29일 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214) - 내 맘을 엽니다

 

1. 가사 살펴보기

사랑의 예수님 나를 찾아오셔서
십자가로 대속 하사 내 마음 두드리네 

오 사랑의 예수님 지금 내 맘을 엽니다
내 안에 거하셔서 나의 생명 되소서

 

2. 곡 소개

곡은, 팀룩워십의 Invitatino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찾아오시며, 그분에게 마음을 여는 자에게 생명이 되신다는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드러내는 아름다운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예수님께서는 교회 안으로 억지로 들어오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회중 가운데 어떤 한 사람이라도 그분의 뜻에 순종함으로 문을 연다면,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들어가 함께 먹을 것입니다. , 그분의 초대에 응답하는 신자들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실 것입니다.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1514.

31: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새 언약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율법을 그의 백성들의 마음과 생각에 기록하시겠다는 약속을 포함합니다. 이는 돌판에 기록된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옛 언약과 대조됩니다. 새 언약은 그들의 내면을 변화시켜 실제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신명기 30장은 이미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인해 옛 언약이 결국 저주와 포로로 끝날 것을 예상하고 있었으며, 그 후에 하나님이 그의 백성의 마음을 변화시키시고 새롭게 하실 것(신명기 30:6)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새 언약은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을 통해 시작되었으며, 옛 언약의 목적을 성취합니다. 성령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은 주님을 알게 되며, 그리스도께 반응하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죄는 용서받고 우리의 악은 더 이상 기억되지 않습니다.

D. A. Carson, ed.,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1349.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영접송이라는 제목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는 간절한 고백을 담고 있다. 기독교 신앙은 단순히 종교적인 교리를 믿는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분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 밖에서 그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시며, 누구든지 그분의 음성을 듣고 마음의 문을 열면 그분의 은혜를 입고 그분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놀라운 일은, 하나님께서 이미 구약에서부터 약속하신 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그분의 백성의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두시고, 그들이 마음에서부터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법을 따르게 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결단은, 지금 예수님을 향해 마음을 여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나를 대신해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으로 믿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성도는, 예수님을 향해서 자신의 마음을 언제나 활짝 여는 사람이다. 예수님이 내 마음에 계심을 언제나 의식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성도의 인생이란, 주님과 동행하면서 그분과의 깊은 영적인 교제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때로는 죄로 인해서 우리의 마음이 주님으로부터 돌아서더라도, 그분을 향해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돌이켜야 한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삶에 풍성하게 드러나시는 믿음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이 찬양을 부를 때 마다, 내 안에 계신 주님을 기뻐하면서 더욱 그분과의 친밀함을 깊이 누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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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4일 화요일

목회의 은혜를 나누며 (11) - 나눔의 기쁨이 넘치는 12구역의 모임에 함께 하다

 


저는 매달 마다 구역 예배가 기다려 집니다. 설교하고 가르치는 것이 저의 일이지만, 사실 저는 듣는 것을 더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님들의 사는 이야기들을 듣는 것은 저의 행복입니다. 그래서 성도님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매번 구역 모임에 찾아갑니다. 그리고 필요한대로 이제 한창 자리잡고 있는 북클럽 셋팅을 조율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12구역에 참석하고 참 좋았습니다. 구역장이신 한영의 권사님께서 구역원들에게 전화하시고 또 상황을 부지런히 살피히면서 사랑으로 돌보시는 모습이 정말 좋았습니다. 결국 공동체가 세워지는 것은 누군가의 헌신적인 사랑을 통해서 세워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깊이 경험했습니다. 모임 전에 안부를 물으면서 서로 오고가는 삶의 이야기들 속에서 듣는 것이 좋았고, 서로 격려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권사님께서는 제가 준비해 드린 교안을 잘 이해하시고 차분하게 잘 인도하셨습니다. 

김완근 장로님께서 말씀 나눔 인도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베테랑 중에 베테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최대한 자신의 말을 자제하시면서도 필요할 때에 적절히 이야기하시고, 또 구역원들의 발표의 작은 부분들이라도 격려하시고 함께 박수치게 하는 모든 부분들이 저의 철학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계시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서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고, 또 그 안에서 행복을 만들어 내시는 모습 속에서 저 역시 너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구역원 중에 한분이, 말로는 나는 잘 못한다고 하시지만 실제로는 참 잘하셔서 좋았습니다. 신앙은 항상 발전하는 것이고 또 그 발전하시는 모습이 보여서 좋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나의 모습에서 '딱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입니다. 당연히 북클럽 셋팅은 마음에 부담이 됩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나의 발전을 원한다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소그룹을 원한다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잠시의 어려움을 넘어가서, 나의 말로 나의 신앙으로 고백하고 또 격려받고 나누는 모든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성경적인 기쁨을 충만하게 경험합니다. 결국 그 모임은 다시 오고 싶은 모임이 되는 것입니다.

저 역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준비하신 사랑의 간식을 나누면서 또 좋았습니다. 사실 많이 피곤한 상태였지만 전혀 피곤하지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모임에 기쁨이 있고 즐거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성도님들께서 발표하신 부분에서 장점들을 짚어 드렸습니다. 제가 모든 부분에서 말씀드리지는 않지만, 말씀 나눔을 통해서 성장하고 계시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작은 부분들이라도 성도님들께서 스스로 전진해 나가시는 모습이 벅차고 좋았습니다. 구역의 기쁨이 곧 교회 전체의 기쁨이라는 확신 가운데 모임을 나왔습니다. 

앞으로도 12구역 안에서 하나님의 기쁨이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헌신적으로 섬기시고 구역을 이끌어가시는 한영의 권사님에게 하나님께서 넘치는 은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미 탁월한 김완근 장로님의 리더십이, 앞으로 구역 모임이 지속될 수록 더욱 발전되고 빛나시기를 또한 기도합니다.

I look forward to the district worship service every month. Preaching and teaching are part of my ministry, but, in truth, I enjoy listening even more. Listening to the life stories of our church members brings me great joy. That is why I make it a priority to attend each district gathering, eager to hear their stories. At the same time, I am also adjusting the setup of the book club, which is now taking root. 

Attending the 12th district gathering this time was a truly wonderful experience. I was deeply touched by the dedication of Deacon Han Yeong-ui, who diligently checks in on the members, makes phone calls, and cares for them with love. Once again, I was reminded that a community is built upon the sacrificial love of someone who commits to its growth. I enjoyed listening to the members share about their lives before the gathering officially began, and it was heartwarming to witness their encouragement for one another. Deacon Han also led the discussion with a calm and clear understanding of the study guide I had prepared. 

I was particularly amazed by Elder Kim Wan-geun’s leadership in facilitating the discussion. He truly is a veteran among veterans. He wisely refrained from speaking too much himself but stepped in at just the right moments. His encouragement of even the smallest contributions from the members and his ability to create an atmosphere where everyone could join in—even celebrating each other’s sharing with applause—made me realize how well he understands my vision. He ensured that no one was left out, allowing everyone to participate in the discussion, and in doing so, he fostered a sense of joy and belonging. Witnessing this made me personally feel deeply happy and fulfilled. 

One of the members mentioned feeling inadequate in sharing but, in reality, did an excellent job. Faith is always about growth, and I was grateful to see that growth happening. The key is to take just "one more step" forward from where we are today. Naturally, the book club structure may feel like a challenge at first, but if we truly desire to grow and seek a small group that pleases God, it is absolutely necessary. Once we overcome the initial difficulty, we can experience the joy of professing our faith, receiving encouragement, and sharing together in a deeply biblical way. This process transforms the gathering into one that people will long to return to. 

I, too, was so engaged in the meeting that I lost track of time. Sharing the lovingly prepared refreshments added to the warmth of our fellowship. Despite being quite tired that day, I did not feel weary at all, because the gathering was filled with joy and delight. Though the time was short, I was able to highlight the strengths of the members’ contributions. I may not have commented on every single detail, but I was fully convinced that they are growing through these discussions. Seeing the members take steps forward, even in small ways, was truly moving. I left the meeting with the firm belief that the joy of the district gatherings ultimately contributes to the joy of the entire church. 

I continue to pray that the 12th district will be overflowing with God's joy. I also pray that God will pour out abundant grace upon Deacon Han Yeong-ui, who serves with such dedication despite the challenges. Additionally, I pray that the outstanding leadership of Elder Kim Wan-geun will shine even brighter as the district gatherings continue to flourish.

* 볼티모어 교회 칼럼, 목회의 은혜를 나누며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5/02/blog-post.html

2025년 1월 21일 화요일

목회의 은혜를 나누며 (2) - 끊임없는 재창조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다

 



* 공동의회를 마치며

공동의회는 지역 교회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지난 한해를 돌아보고 또 새로운 한해를 계획하면서 함께 마음을 모으는 중요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첫 공동의회를 진행하면서 제 마음에 든 생각은, 우리 모두가 교회를 참으로 사랑한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는 성도님들의 귀한 사랑과 수고와 섬김으로 전진합니다. 작년 한해 동안 성도님들께서 힘을 다하여 교회를 섬기심으로 볼티모어 교회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좋은 마음으로 미래를 논의하면서 교회가 더 발전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나눈 모든 내용들이 또한 감사했습니다. 


* 재창조를 통해 전진해야 한다

올 한해가 볼티모어 교회에 굉장히 중요한 한해가 되리라고 예상합니다. 목회적인 면으로도 그리고 교회의 성장의 면으로도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우리의 입장에서는 계속적으로 우리 자신을 재창조하면서 계획을 실행하고 전진해야 합니다. 

50년의 긴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 교회를 지키시고 인도해주셨습니다. 지금까지 성도님들의 귀한 수고를 통해서 교회가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올 한해야 말로 다시 한번 우리 자신이 도약해야 할 때라고 믿습니다. 50주년 기념 예배 가운데 설교했던 것처럼, 진실한 사랑으로 섬기는 교제, 모든 세대가 은혜를 누리는 예배, 그리고 성숙과 복음 전파를 이루는 교회를 향해서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목회적인 비전을 교회 안내에 자세히 소개하였습니다. 

* 볼티모어 교회 환영의 글
https://kpcbmd.org/about/


* 함께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도, 그리고 교회의 역사 속에서도, 안주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면 도퇴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연약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쉽게 주저 앉고 방향을 잃어버리고 주저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현실을 과감하게 넘어서고 도전해야 합니다. 저를 포함해서 모든 성도님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새롭게 창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 안에서 비전을 붙들고 끊임없이 나 자신을 쇄신하면서 전진할 때에 하나님께서 교회에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공동의회 가운데 함께 참석해주시고 섬기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교회를 향한 사랑의 마음으로 제안해 주신 모든 의견들에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말씀해주신 것들을 최선을 다해서 목회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볼티모어 교회가 주님 안에서 사랑으로 마음이 모아지고, 힘있게 미래를 향해서 전진해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 Reflections on the Congregational Meeting

The congregational meeting holds great significance for a local church. It is an important time for us to reflect on the past year and unite our hearts as we plan for the new year. While leading this first congregational meeting, one thought deeply resonated with me: we all truly love our church.

The church moves forward through the precious love, dedication, and service of its members. I am deeply grateful that Baltimore Church has come this far because of your wholehearted service throughout the past year. I am also thankful for the meaningful discussions we had, sharing a collective desire for the church to grow and flourish in the future.


* Advancing Through Renewal

I expect this year to be a very significant one for Baltimore Church, both pastorally and in terms of its growth. Everything must be guided by God’s good and sovereign will. However, from our perspective, we must continually renew ourselves, implement plans, and move forward.

For 50 long years, God has protected and guided this church. The valuable efforts of our members have brought us to where we are today. I believe that this year is the time for us to take another leap forward. As I shared during the 50th-anniversary service, we must move together toward a church characterized by fellowship rooted in sincere love and service, worship where all generations experience grace, and maturity that leads to evangelism. This pastoral vision has been described in detail in the church guide.

* Welcome Message of Baltimore Church
https://kpcbmd.org/about/


* Moving Forward Together into the Future

In both an individual’s life and the history of a church, a desire to remain complacent inevitably leads to decline. Because we are all frail, it is easy to fall, lose our way, or hesitate. However, we must boldly overcome these realities and challenge ourselves. Each one of us, myself included, must renew ourselves. When we hold onto the vision God has given us and continuously refine ourselves in faith, moving forward, God will pour His grace upon the church.

I sincerely thank everyone who attended and served during the congregational meeting. I also deeply appreciate all the suggestions made with love for the church. I will do my utmost to implement these ideas pastorally. Moving forward, I hope Baltimore Church will continue to unite in love under the Lord and advance powerfully toward the future.

* 볼티모어 교회 칼럼, 목회의 은혜를 나누며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5/02/blog-post.html

2024년 6월 17일 월요일

그리스도인으로 불리다 / 사도행전 11장 19-26절 주일 설교 (설교문)

 


- 기도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아름다운 주님의 날에 주님 앞에서 예배를 드리며, 주님의 음성을 들을 있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반석이시며 산성이십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위로이시며 소망이십니다. 말씀을 통하여 주님을 만날 때에, 우리의 영혼이 뜨거워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바로 오늘의 시간이 우리의 삶에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되도록, 주님께서 친히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 한국에서의 만남 

한국에서의 여정 이번에 11년만에 한국을 방문하면서 좋은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방문했기 때문에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 미션이었습니다. 그래서 만나야 하는 분들과 미리 약속을 잡았습니다. 중에 한분이 '광주 교회' 섬기고 있는 전의진 목사님 입니다

제가 사우스웨스턴 신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만난 분입니다. 저와 동갑이고 믿음과 설교가 탁월한 분인데 미국에서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개척했는데 코로나가 터진 것입니다. 중간에 전화 통화를 몇번 했는데 마음이 많이 무거웠습니다. 얼마나 어려움이 있을지 충분히 예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들어가기 전에 연락을 드렸습니다. 목사님, 제가 광주에 한번 내려가겠습니다 이렇게 연락을 나누었습니다.


-  쉽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들어가니까 쉽지가 않았습니다. 일단 해야 일이 너무 많고 만나야 하는 분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반드시 광주를 가야 한다 라는 생각을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방문이 그분에게 의미하는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분은 정말 저의 격려가 필요한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끝까지 하루를 남기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미국 들어오기 한주 금요일에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수서에서 SRT 열차를 예약을 했는데 새벽 첫차였습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버스가 없었는데 택시를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걸어갈 생각을 하고 새벽 네시쯤 일어났습니다. 장모님 댁에서 40 정도 수서역까지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기차를 타고 2시간 정도 걸려서 드디어 광주송정역에 도착을 했습니다.

거의 6 만에 만났는데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르니다. 바로 어제 만난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물론 저는 주로 듣는 입장이었습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께서 어떻게 선하게 인도하셨는지를 들었습니다. 사실은 당연히 제가 식사를 대접하려고 내려갔는데, 자기 나와바리에 왔으니까 자기가 대접해야 한다고 주장하셔서 혹시라도 개척교회 하시는 목사님 마음에 상처가 될까봐 그냥 감사하다고 밥을 얻어 먹었습니다. 그리고 헤어지는데 마음이 너무 뭉클했습니다. 만약에 제가 가지 않았다면 아마 평생을 후회했겠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

오늘 말씀에 보니 여러 사람들의 여행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11 19절에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11:19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마 성도님들께서는 스데반 집사님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 믿음과 성령의 충만함으로 가장 탁월한 사람 한명이었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이 설교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진정한 구원자이시고 왕이시라고 설교했을 때에, 메시지에 분노한 유대인들이 그를 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죽였습니다. 참으로 끔찍한 일이었고 교회의 아픔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죽음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스데반의 사건 이후에 교회가 핍박을 받으면서 결국 성도들이 흩어지게 것입니다.


도망자

혹시 성도님들은 도망자의 위치에 처해보신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 속에서 흩어지는 성도들의 마음을 능히 짐작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아마도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것조차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생명의 위협 속에서 흩어진 이들이 무엇을 하였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19 하반절과 2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1:19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11:20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예수를 전파하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 안디옥이라는 곳은 굉장히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왜냐하면 로마 제국에서 세번째로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국제적인 무역 도시였고 정치의 중심지였고 핫플레이스였습니다. 유대인들을 포함해서 다양한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었고 그래서 도덕적으로 방탕한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흩어진 사람들은 바로 이곳에서 예수를 전파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단순히 유대인들 이라는 하나님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는 사람에게만 전한 것이 아니라, 헬라 사람들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이방인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 그리고 주의 손이 함께 하셨다

그런데 2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1: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누가는 지금 로마의 중심 도시에서 일어난 놀라운 일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손이 함께 하셨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행을 떠날 밖에 없었던 이들의 상황을 돌이켜 보시길 바랍니다. 이들은 고향을 강제로 떠났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생명을 염려해야 했습니다. 교회가 무너지고 성도가 흩어지고 서로의 생사도 확인할 없는 절박하고 힘든 상황 속에서 일이 제대로 풀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러한 극심한 고난 속에서 보여주는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자신의 환경에 굴하지 않고 자신들이 마땅히 해야 혹은 옳은 자체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인종이 다르고 환경이 다른 많은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이었겠는가

그런데 초대 교회 성도들이 바로 일을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들 자신도 일어날 결과에 대해서 당연히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저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일을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그들의 열심과 그들의 도전 가운데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열매를 맺게 하신 것입니다.


- 바나바를 보내다

안디옥에서 일어난 엄청난 소식이 예루살렘 교회에까지 퍼졌습니다. 사도들은 소문을 파악하기 위해서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냈습니다. 혹시 성도님들께서는 바나바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그는 초대 교회에서 좋은 소문이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팔아서 넉넉히 베풀었던 사람입니다. 원래 이름은 요셉인데 그가 워낙 탁월하게 위로하고 격려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바나바라는 이름을 얻은 것입니다

24절은 그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11: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그는 착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착하다 라는 말은 딱히 정의하기가 어렵지만, 분명히 있는 것은 사람이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보면 어떤 느낌이라는 것이 있는 같습니다.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고 자꾸 보고 싶은 사람이 있고, 그래서 사람을 만나면 내가 힘을 얻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나바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의 부분이 저의 마음에 깊이 닿았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말씀에서 착한 사람이라는 것과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것을 하나로 연결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성령이 충만하다 믿음이 충만하다라는 것을, 우리의 성품과 태도와 분리시켜서 자주 생각하는 같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성품이 매우 좋고 자신을 희생할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도들은 그를 파송해서 상황을 살피도록 하는 것입니다


- 바나바의 태도 : 은혜를 기뻐하다

그리고 23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1:23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안디옥에 도착하자 마자 바나바가 보인 첫번째 반응이 무엇이었는가?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말씀이 마음에 깊이 닿았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생각하는 것을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똑같은 상황을 보고서도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것입니다. 만약에 길을 걷는데 내가 지금 집을 구입하거나 렌트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길을 가면서 주변에 있는 집들만 사람의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그런데 바나바는 도착하자 마자 무엇을 보았는가?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바나바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에 대해서 관심이 넘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주로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으로 마음을 채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나바는 완전히 반대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그곳에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고 계시는가 라는 하나님 중심적인 갈망으로 가득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도착하자 마자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순수한 이방인들을 그렇게 혐오했는데, 이방인들 역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변화된 것을 보면서 크게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바나바의 태도 2 : 겸손하게 권면하다 

그리고 그가 무엇을 이야기했는가? 모든 사람에게 말하기를,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혹시 성도님들께서는 권위적인 사람을 만나보신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권위적인 사람은 굉장히 대하기 어려운 사람입니다

권위가 있는 사람과 권위적인 사람은 다른 것입니다. 권위적인 사람은 힘으로 누군가를 억누르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이 상대방 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나이나 연륜이나 학력이나 지식을 은근히 내세우면서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대하면 굉장히 불편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면에서 바나바의 모습은 정말 놀라운 것입니다. 그는 지금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로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위치와 역할이 얼마나 대단한 것입니까? 그의 신앙의 수준이나 평판이나 모든 것이, 얼마든지 그가 거들먹거리거나 혹은 교만하게 혹은 권위적으로 대할 있는 모든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가 한가지를 지속적으로 강조했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라는 것입니다.

바나바는 안디옥 성도들을 사랑했고 그들의 상황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필요한 조언을 있었습니다. 화려한 도시의 거친 환경 속에서 그들의 믿음이 흔들리기 쉽기 때문에, 오직 주님을 소중히 여기고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라고 간곡히 간구하는 것입니다


- 바나바의 결과

그래서 결과는 무엇인가? 24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에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약에 성도님들께서 바나바의 사역을 평가하신다면 어떻게 평가하실 있을까요

저는 바나바야 말로 위대한 사역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성품이 참으로 좋은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새롭게 탄생하는 교회 가운데 엄청난 영적인 동력을 불어 넣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도착한 이후에 놀라운 일들이 벌어진 것입니다. 바나바를 통해서 무리가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사실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충분히 성공한 사역이라고 부를 있는 것입니다. 


- 사울을 찾으라 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25절에 정말 뜻밖의 말씀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누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11: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미 충분히 부흥하고 있는 안디옥 교회 가운데 전혀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혹시 성도님들께서는 사울이 누구인지 기억하십니까? 사울은 스데반이 잔인하게 죽임을 당할 때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7 58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7:58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앞에 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8 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8: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그리고 3절에 “8: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한마디로 사울은, 초대 교회를 핍박했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7장과 8장의 말씀을 읽으면서 굉장히 소름 돋는 부분은, 그렇게 잔인하게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장면에서 그리고 교회가 핍박을 당하는 슬프고 아픈 장면에서 사람의 실명이 등장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사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찾아오시다

그러나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어느 그를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그가 성도들을 잡아 들이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가다가 하늘로 부터 홀연히 빛이 비추인 것입니다. 그가 땅에 엎드러져 소리를 들었습니다. 사도행전 9 4 말씀입니다. “4 ...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음성은 그를 향한 사랑과 책망을 담고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긍휼히 여기시며 돌이키시는 음성을 들은 이후에 사울이 완전히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즉시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하기 시작하였어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가? 사울이 변한 것을 놀라워하면서도 아무도 그를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제까지 교인들을 잡아 가두던 사람이 바뀌었다고 말한다면 사람들이 과연 그를 쉽게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런데 바로 그때 사울을 도와주었던 사람이 바나바입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데려다가 예루살렘의 사도들에게 같이 갔습니다.그리고 바울의 회심과 그의 진심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회심한 사울에게 다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사울은 예루살렘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다가 살해의 위협을 당하면서 고향인 다소로 피신할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 다시 사울을 부르다 

그리고 나서 오늘 말씀까지 대략 8 정도가 흐른 것입니다. 학자들은 동안의 사울의 행적에 대해서 여러가지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사도행전은 그것에 대해서 전혀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19 말씀에 이렇게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19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도님들은 스데반 하면 누가 떠오르십니까? 저는 거의 자동반사적으로 사울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아마 말씀을 기록한 누가도 마찬가지이지 않았을까요? 지금 안디옥에 복음을 전하러 사람들이 거기까지 떠밀려 갔는가? 원흉은 사실상 사울이라는 것입니다. 사울 때문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고향을 등졌습니다. 사울 때문에 어떻게 보면 그들의 삶은 완전히 망가진 것입니다. 성도님들 같으면 괴로움과 아픔을 잊을 있겠습니까 

그런데 바나바는 지금 무엇을 하는가? 사울을 데려오겠다고 다소로 찾아가는 것입니다. 다소는 안디옥에서 100마일이 넘는 거리에 있습니다. 혹시 성도님께서 바나바의 입장이라면 굳이 거리를 여행하면서 사울을 찾아가시겠습니까

아니면 깊이 들어가서 사울을 자신의 사역 속에 끌어들이고 싶겠습니까? 이미 충분히 성공적이고 이미 많은 이들이 주님께로 돌아왔는데, 물론 사울이 능력이 탁월하고 주님께로 확실히 회심했다고 말하지만 과연 그를 안디옥의 새로운 공동체로 데리고 오는 것이 공동체에 정말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리고 사울의 입장에서도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사울이 바나바를 만났을 때에 그가 얼마나 깜짝 놀랐을까요? 사울은 아마도 자신의 삶에서 어두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을 것이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사용하시겠다고 말씀하셨지만, 회심한 사울을 믿는 사람은 처음에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가 열심으로 사역하고 복음을 전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오히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고향으로 도망갔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8년이 지났습니다.

사울이 마음에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아마도 자신의 인생이 실패했다고 느끼지는 않았을까요? 아마 자신에게는 이상 어떤 희망도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거기다가 안디옥에 같이 가야한다는 바나바의 말을 들으면서 자신 때문에 도망가야 했던 사람들이 거기 있다면 그들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 심적으로 부담은 아니었을까요?


누가가 강조하는

이러한 어려움과 갈등 속에서 26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년간 모여 있어 무리를 가르쳤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혹시 성도님들께서는 어디에 포커스를 맞추시고 싶으십니까? 언뜻 보면 우리는 무리를 가르쳤다 라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싶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가르침이야 말로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런데 흥미로운 것은, 무리를 가르쳤는데 중요한 안디옥 교회에서 가르친 내용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가르침의 내용은 분명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5 42절은 이렇게 말씀하시지 “5:42 ...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는 여러 곳에서 사도행전의 가르침이라는 것은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쳤다는 것을 확실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미루어 짐작할 있는 것은, 분명히 안디옥 교회에서의 가르침이라는 것도 예수님의 말씀과 그분이 하신 일에 대하여 가르친 것입니다.

그런데 안디옥에서는 뭔가 다른 맥락으로 일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한번 기억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누가는 안디옥 교회가 세워진 과정 자체에 굉장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여행과 사람들의 움직임과 사람들의 선택을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바나바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과연 그가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어떤 일을 했는가? 심지어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다소까지 가서 누구를 데려왔는가? 그리고 결국에는 사람이 어떻게 마음이 합쳐져서 사역했는지를 의도적으로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 안디옥 교회의 분위기 

그런 면에서 한번 상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안디옥 교회의 분위기가 어떠했을까요? 정확하게 말하면 함께 한몸처럼 사역하는 바나바와 사울을 보면서 사람들은 어떤 것을 그들의 영혼 속에 경험했을까요? 아마도 그들은 바나바를 통해서 어떤 따스함을 지속적으로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는 권위적인 사람이 아니라 섬김의 사람이었고 마음이 진실하고 선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사울은 어떠한가? 사실상 안디옥 교회 성도들 앞에 사울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자체가 마치 소설과 같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울은 어떤 의미에서 원수 중에 원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원수가 자신들의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은, 기적이라는 말로도 표현할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바나바가 그런 사울을 데리고 왔다는 또한 기적입니다. 만약에 바나바가 사울을 돌보지 않았다면, 교회의 가장 핍박자요 죄인이었던 그에게 친절과 은혜를 베풀지 않았다면 과연 사울이 자리에 있을 수나 있었겠습니까?

사람들은 바나바와 사울을 만나고 교제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의 무엇인가에 대해서 깊이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설명하는 복음을 들으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가에 대해서 깊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 도대체 어디까지 뻗어나갈 있는가를 실제로 눈으로 보고 경험하면서 깊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안디옥까지 보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게 하신 목적에 대해서 깊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 속에서 안디옥 교회를 생각할 때에, 사람들이 단순히 가르침만 받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 이들은 바나바와 사울이라는 어떤 창을 통해서 복음을 배운다는 것입니다. 바나바와 사울이라는 사람의 인격과 삶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바나바와 사울이라는 사람 자체가 바로 복음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정말 흥미로운 것은, 바로 여기 안디옥의 믿음의 성도들이 그리스도인 이라고 처음으로 불림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입니까?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의 무리이다 라는 이야기를 교회 밖에서 부터 듣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사도행전을 읽을 마다 부분이 제일 감동적입니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도대체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림을 받았을까 그것이 마음에 있던 가장 중요한 질문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오늘 설교가 중요한 질문을 향한 답변이며, 바로 내용을 성도님들과 함께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 북클럽의 시작

작년 정도에 갑자기 마음에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교회 안에서만 양육 프로그램을 하지 말고, 혹시 교회 밖에서도 북클럽을 한번 해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와 지역 커뮤니티를 연결할 어떤 연결고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성도가 그렇게 많다고 하는데, 신앙이 없거나 혹은 교회를 떠나버린 누군가를 만날 있는 그런 기회가 있다면 정말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연말에 교회가 얼마나 많이 바쁩니까? 저에게 맡겨진 감당하는 것도 벅차던 시기입니다. 그런데도 마음 한켠에는 뭔가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자꾸 커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담임 목사님께 상의를 드렸습니다. 함께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제가 때에는 선교적인 측면에서도 이런 모임이 필요해 보입니다, 제가 목사라는 것을 밝히지만 부담 없는 일반 소설로 모임을 이끌면서 일반적인 북클럽 형태로 교회 밖에 사람들을 만날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담임 목사님께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고민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공감하시고 한번 해보라고 격려해주셨습니다. 그때 부터 저의 다른 사역이 시작된 것입니다.

어떤 책으로 하면 좋을까 굉장히 고심을 했는데, 기독교적인 색체를 가지고 있지만 일반 소설인 불편한 편의점으로 책을 잡았습니다. 사람들을 모아야 하기 때문에 제가 직접 광고도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있도록 리브인 시카고 사이트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광고지를 출력해서 H마트에도 직접 가져다가 붙였습니다. 그리고 저와 같이 양육 프로그램을 성도님들에게, 혹시 이런 필요가 있는 분이 있다면 연결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열심히 준비를 하면서도 기도를 하면서도 마음 안에 여전히 의심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과연 이것이 어떻게 것인가? 과연 목사가 하는 일반 북클럽에 교회 밖의 사람이 것인가그런데 정말 기적적으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의 소개를 받고, 그리고 광고를 보고 모임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올해 1 중순에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분으로 시작했는데 그중에 한분만 제가 아는 분이고 세분은 저도 완전 처음 만나는 분들이었습니다.  모임은 일반 북클럽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신앙적인 배경 같은 것은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중에야 어떤 분들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한분은 기초적인 신앙은 있지만 교회에 안나가는 분, 두분은 그래도 기독교 신앙이 어느 정도 있는 분, 한분은 카톨릭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 아주 가끔씩 성당을 나가시는 분이셨습니다. 


- 북클럽의 추억

모임을 시작하려고 파네라에 앉아서 기다리는데, 얼마나 마음이 두근거렸는지 모릅니다. 과연 모임이 도대체 어떻게 진행이 것인가? 같이 하겠다고 오시는 분들은 도대체 어떤 분들일까? 목사라는 밝히고 모이는데 혹시 모임이 잘못되는 것은 아닐까? 온갖 생각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처음에 한분이 카페에 들어오실 때에, 그분이 주저하던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사실 그분은 자신은 이런 모임 안할꺼라고 이야기 하러 오신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얼굴이나 한번 보고 말해야겠다 라는 심정으로 오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한분이 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눈빛이 범상치가 않았습니다. 목사에 대한 불신 때문에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오신 것입니다. 처음에 그분의 눈빛을 보는데 저도 마음이 얼어붙는 같았습니다. 그저 마음으로 속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해주시기만 바라면서, 가급적 밝게 활짝 웃으면서 그들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첫날부터 하나님께서 정말 놀랍게 인도하셨습니다. 북클럽 샘플을 진행하기 위해서 제가 준비해간 자료를 너무나 마음에 들어하셨습니다.

사실 자료를 준비하기 위해서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일반 심리학 책에서 준비해간 짧은 아티클이 그날 히트를 쳤습니다. 함께 대화를 나누는데 서로 마음이 통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처음에 시간을 예상하고 갔는데 모임을 거의 두시간을 함께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기뻤던 것은, 처음에 목사를 향한 의심으로 가득했던 그분의 눈이 모임을 마칠 때에는 너무나 따뜻한 눈빛으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모임을 여덟번 정도 모이면서 한국 가기 전에 한권을 끝냈습니다. 모임을 마치고 소감문을 적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처음에 의심의 눈으로 참여하셨던 그분께서 이렇게 소감문을 적어주셨습니다 “목사님만이 가지고 계신 남의 말을 경청해주시고 호응하시는 추임새는 정말 따뜻했습니다. 움추려든 마음에 힘이 실리고 저도 배울점이 많아 너무 좋았어요” 라고 적어주셨습니다.

글을 읽는데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주신 마음에 따라서 모임을 시작했을 뿐인데, 역시 마치 천국을 경험하는 같은 아름다운 시간들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음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에서 상처 받아서 교회를 나가지 않는 그분이 적어도 목사에 대한 좋은 마음을 가질 있게 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저에게는 감사와 기쁨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스도인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안디옥 교인들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이름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오히려 도시 사람들이 성도들을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랬을까? 그것은 그들에게 어떤 특별한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안디옥 사람들은 복음의 선명한 메시지를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세상의 창조주이신데,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신한 죄인들을 위하여 기꺼이 땅에 오셨다는 복음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분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지만, 오직 그분 자신의 은혜와 사랑으로 인하여서 죄인을 대신하여서 잔인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그분은 놀랍게도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그분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영원히 사랑하시고 다스리시고 보호하시며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복음의 복된 소식은 단순히 논리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바나바는 가장 착하고 겸손한 사람으로 격려의 사람으로, 그리고 사울을 안디옥 교회에 데리고 와서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실제로 보여주는 사람으로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사울은 그리스도를 핍박했던 흉악한 죄인이었는데, 자신의 핍박으로 흩어진 사람들로 인해 세워진 바로 교회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사람들은 거기에 있는 사울이라는 존재가 지금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복음 자체라는 것을 몸으로 전율 가운데 매일 바라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렇게 그리스도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들을 이끌고 은혜가 그들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때에, 안디옥의 시민들은 그들을 기꺼이 그리스도인이다 라고 부르게 것입니다. 


- 작은 그리스도 

작년 말에 개인적으로 하나 결심한 것이 있었습니다. C.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를 읽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읽은 책이지만 아주 천천히 읽기로 결심했습니다. 거기에서 정말 감동 깊게 읽은 부분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교회는 오직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이끌어 작은 그리스도로 만들기 위해 존재합니다. 일을 하지 않는다면 교회 건물도, 성직자도, 선교도, 설교도, 심지어 성경 자체도 시간 낭비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목적은 하나뿐입니다. 우주 역시 다른 목적을 위해 창조되었을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라고 루이스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저의 설교를 준비하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과연 나의 설교는 사람들을 작은 그리스도로 만드는 설교인가? 설교를 준비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과연 작은 그리스도로 자라가고 있는 사람인가? 그리고 시간에 성도님들께 이렇게 여쭙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께서는 과연 한번의 예배를 통해서, 그리고 삶의 과정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있는가? 바로 그것을 여쭤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인인 것을 알리라

요한복음 13 34절과 35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4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제자인 알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있을 때에, 다시 말해서 단순히 주님의 가르침이 우리에게 있을 때가 아니라 주님의 베풀어주신 은혜가 우리의 가운데 살아 있을 때에, 세상 사람들은 기꺼이 우리를 크리스천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2 1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은혜를 경험한 바울 사도는 우리는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아마도 자기 자신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나타나신다는 것을 기독교 역사상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확실하게 있는 것은, 우리가 어떤 향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명예가 바닥에 떨어진 시대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존귀함이 짓밟히고 있는 시대 속에서 다른 누가 아니라 바로 여기에 있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존재를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여기에 이렇게 있는 자체가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랑과 주권으로 우리를 영적으로 살리시고 인도하심으로 자리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대는 은혜를 잃어버린 시대입니다.  세상은 당한 것을 갚고야 마는 세상이고, 끝까지 찾아가 잔인하게 복수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기를 원합니다.  험악하고 타락한 세상 속에서 작은 그리스도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에, 특히 교회 밖에서, 나의 직장에서, 나의 비지니스에서, 나의 인간 관계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가를 나의 삶으로 증명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은 마지막 때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지만 기꺼이 누군가가 우리를 보았을 때에, 사람은 정말 예수에게 속한 사람이구나 라는 가장 값진 명예로 살아가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기도 

시간에 말씀을 가지고 같이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기도하실 때에는, 아버지 하나님 저의 삶에 일어나는 많은 고난의 의미를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인도하심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바라보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지혜롭게 걸어갈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둘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저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기를 원합니다, 친절하고 따뜻하고 은혜가 넘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써 오직 주님의 아름다움을 세상 속에 드러내는 복된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여주시옵소서, 이렇게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문전체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_4.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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