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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25일 월요일

언제나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본질을 향하여 한걸음 더




모든 사람이 그런 것처럼, 저 역시 종종 상황에 매몰됩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마음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 지금까지 걸어 왔는가에 대한 초점이 흐려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깐의 운동의 시간이지만, 의도적으로 성경과 탁월한 책으로 저의 시간을 채웁니다. 어딘가로 숨고 싶은 저의 마음을 새롭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을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답답한 나 자신을 뛰어 넘기 위해서는, 내 손을 잡아 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가끔씩은 그런 생각을 합니다. 바울 사도를 직접 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루이스와 차 한잔을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칼빈과 마주 앉아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 바램은 이루어질 수 없지만 글을 통해 얼마든지 그들과 만날 수 있습니다. 

피고석의 하나님을 천천히 음미하여 읽을 수 있는 것은, 인생의 가장 큰 기쁨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꼭 필요한 조언을 발견해서 더욱 감사했습니다. 루이스의 글은 언제나 힘이 있습니다. 모든 부분을 동의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는 제가 다다를 수 없는 탁월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홀로 빛나는 사람처럼, 마치 다른 세상에서 온 것처럼, 그런 통찰과 따뜻함을 전해 줍니다. 

충분히 글을 읽으면서 다시 마음이 새로워졌습니다. 저의 삶의 목적은, 세상을 가능하면 선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인내로 견디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이 전혀 없다는 생각과 마음에 확신이 들었습니다. 무엇을 해야할 지 다시 한번 분명해 졌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책을 읽는다고 삶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실한 마음, 변하고자 하는 열망, 치열한 도전, 그리고 분명하고 탁월한 방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변화는 정말 어렵습니다. 수 많은 크리스천들이 탁월한 삶을 살아가지만, 그러나 또한 수 많은 크리스천들이 아쉽게 삶을 낭비하는 이유입니다. 

집으로 들어와 제 마음을 움직인 문구들을 다시 정리하였습니다. 굉장히 고된 작업입니다. 마냥 편하게 살고 싶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에 부지런히 움직여 봅니다. 다시 글을 쓰면서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습니다. 지난 10년은 제 마음에 큰 고난입니다. 견디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의도적으로 제 마음을 새롭게 하기 원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본질을 향해서 계속 전진하기를 다짐해 봅니다.

2023년 9월 11일 월요일

로고스 어디까지 써봤니? - 드디어 나온다! 해석과 적용의 든든한 동반자 Life Application Study Bible! (=에브리데이 스터디 바이블)

 


저는 심심하면 로고스 사이트에 들어가서 검색을 합니다. 검색어는 "study bible" 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저에게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신다면 아마 "스터디 바이블"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우연히 스터디 바이블의 장점을 접한 이후에 이제는 목회와 개인적인 성경 공부에 있어서 저의 취미이자 본질이 되었습니다. :)

스터디 바이블 시장은 이미 무르익었습니다.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스터디 바이블은 출시된 듯 합니다. 교단별로도 있고 주제별로도 있습니다. 로고스는 경쟁사인 올리브트리보다는 스터디 바이블 쪽에 늦게 신경을 쓰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상당히 주력하고 있는 분야가 되었습니다. 

로고스 회사의 사용자 포럼에 보면, 아주 오래전부터 출시해 달라고 요구하는 스터디 바이블이 있었습니다. 바로 "Life Application Study Bible" 입니다. 이미 영어권에서는 탑 스터디 바이블이고 한국에서는 최근에 에브리데이 스터디 바이블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습니다. 워낙 내용이 탁월해서 저도 꼭 보고 싶었는데 로고스에는 없어서 그동안 너무 아쉬웠습니다. 

* 에브리데이 스터디 바이블

견디다 못해(?) 저는 올리브트리에서 구입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올리브트리는 로고스보다는 작은 회사로 보이지만, 적어도 스터디 바이블 쪽에서는 로고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데이터베이스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관심 있는 스터디 바이블 중에 로고스에 없는 것들은 이미 이곳에서 구입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 NLT Life Application Study Bible, Third Edition
https://www.olivetree.com/store/product.php?productid=56100

저는 목회자들에게야 로고스가 최고의 앱이라고 생각하지만, 보통의 성도님들에게는 올리브트리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올리브트리도 개역 성경은 무료이고, 더 놀라운 것은 스터디 바이블의 표준격인 ESV 스터디 바이블의 축약 버전 "ESV Global Study Bible"이 무료입니다. 다시 말해서, 온 가족이 단 1불도 추가로 들지 않고 영어로 성경을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아래 글을 참조하시면 좋겠습니다. 

* 올리브트리, 어디까지 써 봤니?
- 로고스의 보조 프로그램으로 "Olive Tree"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 개역성경 무료

* 올리브트리, 어디까지 써봤니?
- 형이 거기서 왜 나와? "ESV Global Study Bible" 무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5/esv-global-study-bible-in.html

자, 서론이 길었습니다. 제가 왜 갑자기 Life Application Study Bible 이야기를 하는가? 왜냐하면 드디어 로고스에서, Life Application Study Bible이 출시되었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출시 전 프리퍼브의 모집 단계입니다. 

로고스는 사람들이 관심 있을만한 자료를 먼저 수요 조사를 합니다. 그리고 수익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이후에 출판합니다. 현재 Gathering interesting 으로 모집 단계이지만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렸던 스터디 바이블이 등장한 것은 정말 반가운 소식입니다. :)


다만 이번에 사전 조사에 들어간 이 스터디 바이블은, 기존의 Life Application Study Bible의 추가 변형 버전으로 보입니다. 제품 소개를 보니 "주석 노트"는 Life Application Study Bible의 기존 자료를 사용하되 추가적인 자료를 더하고 연도별로 성경을 묶은 듯 합니다. 틴데일 출판사에 들어가서 샘플을 찾아보니 주석 노트는 완벽하게 동일하네요. 

자 그렇다면 우리의 관심사는 이것입니다. 굳이 이 스터디 바이블을 구입해야 하는가? 특히 저처럼 기존에 스터디 바이블을 많이 가지고 계신 분들이 고심하리라 예상합니다. 

일단 제가 이미 올리브트리에서 구입해서 사용하면서 느낀 점은 이것입니다. Life Application Study Bible 은 최소 다른 스터디 바이블 두권 반 정도의 효과가 있습니다. 적용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탄탄한 성경 해석을 바탕으로 적용이 들어가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충분히 두권 정도는 뛰어 넘고 두권 반 정도의 효과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스터디 바이블이라는 포멧의 한계는 있습니다.지나치게 내용이 짧다고 느낀 부분도 있고 해석도 부족하다고 느낀적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한번 내용을 비교해 보면 어떨까요? 저는 창세기 2장 16-17절을 비교 타겟으로 잡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금하시는 장면입니다. 이 본문을 정한 이유는, 개인적으로 복음과 인간의 실존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이라 생각하는 본문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올리브트리 버전 Life Application Study Bible 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 Life Application Study Bible 창세기 2:16-17 해석 / 95점


사실 내용을 읽어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과연 저에게 저 짧은 내용 안에 저렇게 핵심적인 내용을 말할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저는 못한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먼저 인간의 자유에 대한 심원한 의미를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선택할 자유를 주셨고 그 자유가 없다면 감옥에 갇힌 자와 같기 때문에 선택이 없는 자유는 엄밀히 말하면 자유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두 나무는 선택의 훈련을 제공하기 위해서 주어졌습니다(물론 이렇게만 협소하게 해석하는 부분은 약간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당신의 삶에서 옳고 그름의 선택의 기로에 설 때에,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라고 해석합니다. 

저는 이 해석이 마음에 듭니다. 이 설명에는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질문 "하나님은 왜 굳이 선악과를 만드셨는가?"에 대한 좋은 대답이 있습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성도들이 삶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그리고 혹은 설교자가 설교를 통해서 강조할 수 있는 선택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만약에 저에게 이 본문으로 설교하라고 한다면 반드시 이 메시지를 포함할 것입니다. 

비록 Life Application Study Bible 이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저는 이 부분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구입했습니다. 이 본문을 놓고 보자면 저는 95점을 주고 싶습니다. 

* The NIV Grace and Truth Study Bible 창세기 2:16-17 해석 / 80점

자 그렇다면, 이렇게 좋은 해석과 적용을 기준점 삼아서 다른 스터디 바이블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비교하면서 Life Application Study Bible의 가치를 가늠해 보기 위함입니다. 

첫번째 대상은 The NIV Grace and Truth Study Bible입니다. 일단 저는 이 스터디 바이블을 정말 좋게 생각하고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의 리뷰는 아래 글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 로고스 어디까지 써 봤니?
- 진정한 본문 이해를 위한 새로운 스터디 바이블을 기대하다!

NIV The Grace and Truth Study Bible

그렇다면 The NIV Grace and Truth Study Bible은 이 부분을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요? 일단 분량이 상당히 짧습니다.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리고 설명은 굉장히 정석적인 해석입니다. 선악과를 금하신 것은 인간의 도덕적인 자율성을 표현하는 것이고, 풀어서 설명하면 선악과를 금하심으로 인간의 도덕적인 가치는 오직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이것을 어김으로써 선과 악을 인간 스스로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설명은 정석이지만, 적용이 역시나 아쉽습니다. 그저 있는 사실 그대로를 설명하는대에는 충실하지만 Life Application Study Bible 의 설명이 적용이라는 측면에서는 워낙 탁월했기 때문에 더 아쉽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점수는 80점입니다. 

*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창세기 2:16-17 해석 / 60점

자, 그렇다면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는 어떨까요? 한국에 성경신학 스터디 바이블로 소개되었고 카슨이 총 편집을 맡은 저명한 스터디 바이블입니다. 저도 평소에 믿고 잘 사용하는 스터디 바이블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내용을 살펴보니 정말 실망스러웠습니다. 


일단 이 본문 자체에 관심이 거의 없는 듯 합니다. 제가 잘 모르지만, 성경신학에 있어서 선악과를 따 먹은 것 자체가 정말 중요한 것이 아닌가요? 많이 실망스럽습니다. 

분량도 적은 스터디 바이블 포멧인데, "금하신 이유가 성경에 설명되어 있지 않다"라는 말을 적어 놓은 것 자체가 실망스럽습니다. 위에 두 스터디 바이블은 충분히 적극적으로 본문을 해석해 놓은 것에 비하면 이러한 멘트는 실상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뒷 부분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들이 순종했고 그것이 심히 좋았다는 것과, 인간이 불순종한 것이 생명의 반대인 죽음을 가져올 수 있다라는 설명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스터디 바이블을 보는 대상이 좀 더 보통의 성도님들을 위한 것임을 감안할 때에는 솔직히 제 관점에서 이러한 해석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라는 식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저도 이 스터디 바이블을 늘 살펴보고 도움을 많이 얻지만 적어도 이 본문은 60점입니다. 

*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창세기 2:16-17 해석 / 90점

자 이제, 마지막 비교입니다. 이 스터디 바이블은 제가 정말 강력하게 추천하는 스터디 바이블입니다. 해석은 조금 약하지만, 각 장에 있는 본문 적용 묵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창세기 2:16-17 부분은 해석도 정말 괜찮았습니다. 특히 선악과에 대한 명령은 단순히 순종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뢰에 대한 시험이라는 부분은 다른 스터디 바이블이 짚어내지 못한 깊은 부분입니다. 본문의 인격적인 따뜻함을 깊이 발견합니다. 본문에 대한 전혀 새로운 관점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좋았던 것은 창세기 본문의 신약과의 연결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서 죽음이 들어왔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 연결을 통해서 조금 더 공부해 들어가는 사람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위치와 그분의 놀라운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게 바로 성경 신학 아닌가요? 결국 구약과 신학의 연결을 제대로 보여주어야 좋은 성경 해석이 아닌가요? 이 설명을 보고 나니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이 더 초라하게 보이네요. 성경 해석과 신약과의 연결이 너무 좋아서 90점입니다.

* 결론 - Life Application Study Bible? 해석과 적용의 든든한 동반자 

결론입니다. 단지 창세기의 한 본문을 가지고 비교해 보았을 뿐이지만, 제가 사용할 때에 느낀 장점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Life Application Study Bible은 비교적 탄탄한 성경 해석을 바탕으로 적용이 탁월합니다. 

좋은 해석과 분명한 적용은 주석류를 통해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궁극적인 두가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면에서 이 스터디 바이블은 어쩌면 모든 성도와 설교자의 꿈을 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올리브트리를 통해서 Life Application Study Bible을 이미 잘 사용하고 있지만, 로고스 안에서도 나오면 구입할 예정입니다. 아무래도 주로 쓰는 어플 안에 들어가 있을 때에 그 활용도가 훨씬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내용이 마음에 드시고 또 저와 같은 목적을 가지고 계시다면 프리퍼브 단계에서 미리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

* 로고스 프로그램으로, 평신도 성경 공부하기 with 스터디 바이블 노트
https://jungjinbu.blogspot.com/2017/10/blog-post.html

* "로고스 성경 프로그램" 전체 글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html

2022년 12월 23일 금요일

진정한 성도의 사랑 그리고 기도 / 요한1서 3장 13-24절 설교

 



어머니께 전화 드리는 것은 저의  기쁨입니다혈육의 관계를 넘어진실한 목회자의 감격과 조언을 들을  있기 때문입니다최근에 허리가 많이 아프시다고 해서 걱정을 했습니다그렇게도 많이 다른 분들을 먹이고 심방 다니시느라 고생한 덕분입니다그나마 조금 나아지셨다고 해서 안심할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서 마음이 들떠 계셨습니다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줄 떡을 준비하셨다고 하셨습니다가장 연약하고 돌봄을 받지 못하는 분들에게도 나눠줄 것이 있어서 기뻐하셨습니다오늘 설교의 내용이 어머니의  속에 그대로 살아 있었습니다사랑하는 어머니를 통해서 땅에 기꺼이 오신 예수님의 뒷모습을 엿볼  있었습니다.

오늘 새벽은 영하 28도까지 떨어졌습니다최근에 하이웨이에서 타이어가 문제가 생겨서 멈춘적이 있었습니다 친데 덮친 격으로갑자기 시동까지 걸리지 않아서 많이 당황을 했습니다급격하게 떨어지는 온도 속에서 자칫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언뜻 했습니다 경험 때문인지오늘 교회까지 가는 길이 적잖이 부담이 되었습니다.

사실  시동이 문제였습니다예전 차가 동일한 환경에서 시동을 걸었다가 엔진이 망가졌기 때문입니다다시 차를 구입할 형편은 안되기에 시동을 거는데 마음이 조마조마했습니다저의 삶에 대한 고민의 무게와설교자의 설교의 무게를 잠시 비교해 보았습니다가는 길에 대한 두려움을 억누르고설교에 대한 기대와 뜨거움을 가지고 어두운 밤으로 달려 나왔습니다.

짧은 본문이지만본문 자체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가지고 있는 요한 1서에 대한 주석을 아마 거의  살펴   합니다복잡하게 연결되는 문장들의 구성 속에서문법적인 부분에서 논쟁들이 많았습니다심지어 Exegetical Summary 조차  문제들을  다루지 못한다는 점에서 놀랐습니다보이스 목사님의 설교집에서도 문법적인 설명을 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것을 보면서  방향이 저의 방향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가지 해석에 대한 방향이 있을 때에설교자가 가지는 이해와 성경 읽기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특별히 19절이 많이 복잡했습니다다만 평소에 요한 1서를 읽으면서 제가 이해했던 방향으로 핵심을 짚어가며 설교했습니다그나마 Lutheran 주석이 핵심을 정리해주어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19. Hereby shall we know that we are of the truth. Hereby, that is, if we love in deed and truth, this is evidence that we are born of the truth, and of God. And shall assure (persuadeour heart before him. This evidence of brotherly love which establishes the fact that we are born of the truth and of God, gives us also the assurance that we are children of God. The heart is here conceived of as the seat of the whole spiritual life as in James 5:8; 1 Pet. 3:4, and as the seat of consciousness of the truth as in James 1:26. John here uses the word heart as including the conscience, for it is the conscience which excites and disquiets the heart, and which needs to be guided and pacified.

Revere F. Weidner, Annotations on the General Epistles of James, Peter, John, and Jude, ed. Henry Eyster Jacobs, vol. XI, The Lutheran Commentary (New York: The Christian Literature Co., 1897), 311.

그리고 주석들은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아신다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굉장히 강조점을 두었고 칼빈의 경우에는 이것을 경고의 의미로 이해했다고 어느 주석에서 읽었습니다다만 저는 다른 주석가들의 이해를 따라서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방향으로 암시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형제에 대한 이해는 루터의 설명이 너무 마음에  닿았습니다스터디 바이블이 루터 원전과 연결되어 있어서 너무 편리했습니다로고스 프로그램을그리고 루터란 스터디 바이블을 이용하는  유익입니다.

3:18 Love is prompted and proceeds from the truth and is carried out in actual deeds done for the benefit and blessing of another. Whatever tends to our brothers salvation is done in truth. Luth: To love a brother who is kind and pleasant in returnthis is a trivial matter. This is the way the world also loves. The crowd judges friendships by their usefulness. Accordingly, John does not say: Let us love those who are saintly, agreeable, and rich. No, he says: Let us love the brethren, in such a way that then nothing but the brotherhood is loved and regarded; for a brother is loved out of a sense of duty, not because of usefulness and not because of praise. All the gifts we have should serve those who do not have them. For example, he who is learned should serve him who is not learned; he who is rich should serve him who is poor; he who is sensible should serve him who is foolish, etc. (AE 30:27879).

Edward A. Engelbrecht, The Lutheran Study Bible (St. Louis, MO: Concordia Publishing House, 2009), 2177.

추가로 약간 무리를 해서 오래 전에 읽었던 루이스의 “네 가지 사랑”을 다시 펼쳐 보았습니다문장들이 너무 황홀 했습니다과연 제가 절반이라도 이해하고 읽고 있는 것일까요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이 예전보다는 조금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 느꼈습니다그리고 데이비드 플랫의 “복음이 울다”는 다시 한번 탁월하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연약한 자를 향한  마음의 공감이야 말로성도의 본질이며 성도가 가져야할 궁극적인 방향입니다.

사랑을 베푸는 방향에서 재물을 쓰는 것이야 말로 너무나 탁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분에 대한 내용은 최근에 들은 팀캘러 목사님의 어느 설교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마지막 부분에서 요한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자신의 말씀 속에   언급합니다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역과연약한 성도를 위한 마음과 그들의 기도를 동일 선상에 놓습니다 부분이 너무 충격이었고 너무 좋았습니다.

너무 어렵게 준비한 설교였고교회까지 가는 길이 쉽지 않아서 많이 피곤했습니다그래도 좋았습니다설교는 설교자의 놀라운 특권이고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뜨거운 것처럼성도님들도 그렇게 들어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무엇보다 설교하는  자신이 말씀에 깊이 은혜를 받았습니다하나님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요한1 3 13-24

성도님들께서는 혹시 누군가의 미움을 받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만약에 내가 잘못을 해서 누군가 나를 미워한다면 원인이 나에게 있기 때문에 그나마 마음이  힘들  같습니다그런데 만약에 내가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 억울하게 미움을 받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아마도  사람의 마음은 크게 낙심할 것이고 너무나 슬퍼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오늘 말씀 13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13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에서는  그룹이라는 분명한 구분이 등장하고 있습니다여기서 "형제들"이라는 것은 주의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고 "세상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을 지칭하는 것입니다아마도 편지를 받는 성도들의 마음 가운데그들이 받는 미움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고 있었던  같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아니 내가 이렇게 사랑을 많이 베푸는데  미움을 받는 것인가 나는 내가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미움을 받는 것인가내가 다른 이들을 구제하고 돕는데  오히려 사람들은 나를 비난하는 것인가이러한 마음에 의문과  어려운 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미워하여도라는 것은 매우 강하게 싫어하고 적대감을 가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이것은 성도들이 받는  미움이라는 것이 매우 비상식적인 것이고 불합리한 것이고 고통스러운 것임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도가 받는 미움에 대하여 요한 사도는 어떻게 말씀하시는가“이상히 여기지 말라” 라고 말씀하십니다영어 번역들은 대부분 "놀라지 마라라고 번역을 하였습니다우리가 주목할 것은  말씀이 명령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요한 사도는 우리의 놀라고 상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계시는 것입니다우리의 마음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시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놀라지 말아라 그리고 이상하게 여기지 말아라 라고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놀라지 말아야 하는가 이유에 대해서 14절에 말씀하시고 계십니다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여기서 요한 사도께서는 두가지 점에서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십니다첫째로 세상이 그렇게 우리를 미워하는 것은 그들 안에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그리고 사랑이 없기 때문에 확실한 것은 그들은 생명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생명은 영적인 생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영적인 생명이라는 것은 단순히 살아있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영적인 생명이라는 것은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신 여호와를 아는 것이고하나님을 떠나서 죽어있던 영혼에게 하나님께서 은혜의 선물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우리가 영적인 생명을 얻으면서 이제서야 드디어 여호와를 섬기게 되는 것이고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고 진정한 사랑을 우리 마음에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우리는 어떤 사람들인가우리는 영적인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여호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며그분을 우리의 삶에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입니다그러나 영적인 생명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고 마귀의 손아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며 자신의 이기심과 유익을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세상이 성도를 미워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우리를 위로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맥을 가만히 보면약간의 내용의 변화가 있다는 것을  수가 있습니다처음에 사도 요한이 말씀하실 때에는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이 너를 미워해도 놀라지 마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그러다가 생명을 말씀하시면서 교회 공동체 안으로  말씀의 초점이 옮겨가고 있습니다. 14절에 보니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라고 말씀하십니다. 15절에서는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형제는 교회 안에 형제 자매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그런 맥락에서 15절에 말씀은 굉장히 충격적이라고 말씀드릴  있겠습니다15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교회 안에서 다시 말해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형제 자매를 미워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우리가 주목할 것은 여기서 "미워한다"라는  동사가, 13절에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라는 동사와 동일한 동사이다 라는 것입니다.

무슨 의미인가교회 공동체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그들은 겉보기에는 성도와 동일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그들은 분명히 교회 공동체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내면은 전혀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그들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세상 사람들이 그런  처럼 동일하게 생명이 있는자를 미워하며 핍박한다는 입니다하나님과 다른 형제들을 사랑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되려 그것을 비난하며 힐난하며  사람과 선행을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언뜻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입니다아니 굳이  사랑을 베푸는 성도를 미워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황당한 미움이 존재하는 이유는 미워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이다 라고 요한 사도는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진정한 성도와 아닌 성도를 판단할  있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무엇인가성경은 말씀하시기를그것은 자신의 형제를 사랑하는자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14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3: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읽을 때에 적잖이 놀랐던 것은 사랑이 가지고 있는  위치 때문에 그렇습니다우리는 사랑이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실상 그것을 신앙의 그렇게 결정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  같습니다사랑할  있으면 좋기는 한데그것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것이그리고 꾸준하게 성경 공부를 하는 것이그리고 좋은 책들을 읽는 것이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그런데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아니다  사람이 정말 하나님의 자녀인가를   있는 것은 사랑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먼저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것이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라는 점입니다여기서 말씀하시는 것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랑이 아니라 상대방을 사랑하는 사랑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과연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바로  사람 하나님의 자녀라고 확신할  있는 바로  사람은누구를 사랑하는 사람인가?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계속적으로 반복해서 형제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루터는  부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대중들은  사람이 유용하다면 쓸만하다면  사람과 우정을 가지고자 합니다따라서 사도 요한은 말할 때에 신앙이 좋고 유쾌하고 부유한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형제를 사랑합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라고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무슨 의미인가진정한 성도의 사랑의 대상은모든 사람들을 포함한다는 것입니다물론 성도도 자신의 가족과 자신에게 힘이 되는 사람과 따뜻하고 친절하고 신앙이 좋은 사람을 사랑할  있습니다그러나  사랑의 대상이 그런 사람들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라는 것입니다참된 성도에게 사랑의 대상이 제한되어 있지 않습니다형제라는 것은 나에게 유익을 주는 존재만이 아니라 사실상 우리의 도움을 필요하는 가장 연약한 자들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누군가는 이렇게 심각하게 질문하실  있을  같습니다“목사님 저는 지금 목사님께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저는 분명히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저에게 힘이 되고 아름답고 예쁘고 돈이 많고 저의 뒷배경을  만한 사람들만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 그렇게 크게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까

저는 충분히 그들을 사랑하고 있습니다그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이렇게 심각하게 질문하실  있을  같습니다 그럴까그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사랑이라는 것은 그런 사랑과는 너무나 거리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이라는 것은하나님의 본질이신  사랑이라는 것은세상 사람들이 주장하는 사랑과는 사실상 완전히 반대의 지점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C.S. 루이스는 그의  네가지 사랑에서 하나님의 본성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하나님 안에는 채움을 필요로 하는 어떤 욕망이 없으며 다만 주고자 하는 풍부함이 있을 뿐입니다”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무슨 의미인가하나님의 본질인 사랑이라는 것은철저하게 다른 이에게 주고자 하는 것임을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16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참된 사랑을 안다는 것입니다예수님의 관점에서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우리라는 존재는 어떤 사람이었는가예수님께서는사랑스럽고 가까이 하고 싶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우리가 아니라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분을 미워하고 온통 자기 밖에 모르는 죄인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버리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받은 사랑이라는 것이가장 연약하고 볼품 없고 가치 없는 자에게 주어진 사랑이라는 것입니다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고 고백하고성령 하나님을 통하여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였고그분이 우리의 머리가 되시는 참된 자녀가 되었다면 가장 연약한 자에게 베푸는 사랑을 가져야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라는 의미입니다

요한 사도는 우리의 사랑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16절부터 말씀하십니다“우리가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 누군가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겠습니다목숨을 버리는 것이 어떤 것입니까참으로 흥미로운 것은 17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3:17 누가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속에 거하겠느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16절과 17절이 연속된 말씀이라는 것이 너무 흥미롭다고 느껴졌습니다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우리가 살아가는 시대가 어떤 시대입니까재물을 위하여 사람을 속이고 사람을 해치는 시대입니다 때문에 가족이 깨어지고  때문에 친구가 원수가 되는 시대입니다

지구 전체 인구는 70억명을 돌파했습니다그러나 2008 1월에 발행된  의학 전문지에서는전세계 5 이하 어린이 사망 원인의 35퍼센트가 굶주림에 따른 것이라고 보고하고 있습니다그래서 사실상 돈이야 말로 우리의 목숨과 같은 것이다 그렇게 충분히 말할  있는 것입니다.

저는 항상 흥미로운 것이사람들이 사랑을 베푸는 것에 대하여 굉장히 어렵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그리고 사랑이라는 것을 매우 추상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그런데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우리가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내가 가진 재물로 어려운 형제를 도와준다면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베푸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작은 물질이 사랑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그것은 선물일 수도 있고 음식일 수도 있고 따뜻한  한끼일 수도 있고  한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리스도의  베푸신 사랑의 본질이라는 것이가장 연약한 자를 향한 신의  사랑이라는 것이우리의  손과 우리의 물질과 우리의 베푸는 것을 통하여 어둡고 소망 없는  세상 속에 흘러 들어간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정말 놀라운 말씀이 아닙니까?

그런데  앞부분의 말씀도 참으로 놀랍지만 부분의 말씀은  놀랍다고 말씀드릴  있겠습니다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은 자가 마땅히 형제를 도와야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면서그리고 그렇게 도울  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면서그것이 우리 자신에게도  유익이 된다는 것을 19절과 20 그리고 22절에 말씀하십니다.

먼저 19절과 20절입니다3: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우리 마음을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3:20 이는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마도 모든 성도님들의 마음 가운데 구원에 대한 확신을 어떻게 얻는가거기에 대해서 모두가 관심이 있으실  같습니다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우리가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과연 무엇을 통해 확신할  있는가

로마서 10 9절에 말씀하십니다10:9 네가 만일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는다면그분을 나의 구원자로 주인으로 고백한다면우리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확신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가우리의 내면이 감정이 많이 흔들린다는 것입니다우리는 구원 받은 이후에도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우리의 죄들과 실패와 연약한 부분들이 끊임 없이 우리를 연약하게 만들고 구원을 의심하게 한다는 것입니다바로  때에 우리가  속에서 행했던  진실한 순수한  사랑이우리가 정말 구원 받은 사람이라는  확신을 우리 마음에 심어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말로만으로 설명할  없는 것입니다이것은 경험해  사람만이 느낄  있는 복받치는 감격입니다 영혼의 깊은 곳에서 부터 솟아오르는 기쁨입니다하나님과  사이에 어떤 즐거움입니다.

우리가 정말 연약한 자들에게 우리의 손을 내밀 때에내가 나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상대방을 위하여 수고를  때에부족한 나의 물질을 쪼개고  쪼개어서 누군가에게 아낌 없이 베풀 때에바로  사실을 통해서 우리 마음에 확신할  있다는 것입니다“아 그렇구나 내가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구나하나님의  진실한 마음을 품은 사람이구나하나님의 생명이  안에 있는 것이구나예수님께서 바로 나를 이렇게 사랑하신 것이구나” 그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이러한 진실한 사랑을 행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 속에 구원에 대한 확신  아니라 우리의 기도 생활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3: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3: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기도하는 성도의 참된 마음을   있는 것입니다하나님의 자녀의 마음 속에 무엇이 가득한 것인가형제를 향한 사랑으로 가득한 것입니다

물론 성도도 여전히 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가 완벽하다 하나도 흠이 없다 그런 뜻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합니다그도 이기심도 있고 자신에 대한 연민과 분노도 있습니다그러나 그것을 훨씬 넘어서는 형제를 향한 진실한 사랑으로 가득해져 있다 라는 의미입니다그의 마음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그의 삶의 전체의 방향성을 주장하는 그것이 바로 형제를 향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성도가 어떤 기도를 하겠습니까연약한 자를 위하여 기도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스스로 힘으로는 도저히 일어설  없는 사람들영적으로 연약해져서 지쳐버린 사람들금전적인 어려움으로 눈물 흘리는 사람들아무도 돌아보지 않아서 외로움에 사무치는 사람들그런 사람들을 위하여 실제로 행동하고 움직일 뿐만 아니라 당연히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을 기대하며 갈망하며 바로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기도를 어떻게 들으시겠는가너무나 기뻐하실 것이 틀림 없는 것입니다성경은 22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3: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뻐한다” 라는 단어는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가운데 행하셨던 바로  모든 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요한복음 8 29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8: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정말 놀라운 말씀이지 않은가

진실한 사랑으로 행하는 연약한 형제를 위한  기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입니다예수님이 온전히 이루신  땅에서의  구원의 일처럼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우리의 진실한 중보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영적으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를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몇년 동안 읽었던  중에 가장  마음을 움직였던 책은 "복음이 울다라는 책입니다 책에서 저자인 데이빗 플랫 목사님은자기 자신을 돌아보면서 책의 서문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지난 수많은 예배들을 돌아보면 나와 우리 교인들이 식수나 식량이 절대적으로 모자란 사람들소중한 가족과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해 함께 눈물을 흘렸던 순간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토록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보며 가슴 아파 우는 일에 인색한 것일까?

저와 성도님들의 삶과 내면은 과연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간절히 바라기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내면을 다시 한번 살펴   있는 귀한 믿음의 계기가   있기를 원합니다우리의 삶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살펴   있기를 원합니다나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이 힘차게 움직이고 있는지 확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나의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사용하는  대상이 과연 연약한 형제 자매들인지를 점검해   있기를 바랍니다나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대상이  있고 능력이 있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인지아니면 가장 연약한 자들인지를 다시 한번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방향이 다시 한번 새로워지고그리스도의  사랑이 다시 한번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하고우리의 기도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워지는 모든 귀한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문전체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_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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