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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6일 토요일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_ 4강 강해란 무엇인가?(Lecture 4: What Is Expository?) / 사사기 2장 11-23절 설교

 


* 이전 글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_ 3강 설교란 무엇인가?
(Lecture 3: What is Preaching?) / 출애굽기 39장 22-43절 설교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0/lecture-3-what-is-preaching.html

존파이퍼 목사님의 설교에 대한 철학은 일관적입니다. Expository Exultation 입니다. 설교란 무엇인가를 강의 영상마다 초반에 계속적으로 반복하면서 듣는 우리의 마음을 집중시킵니다. 

오늘의 내용은 Expository를 다룹니다. 그리고 존 파이퍼 목사님은, "설교자가 강해를 통해서 보게 된 것을 크게 즐거워하는 것이 설교"라고 설명합니다. 

강해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명백하게 텍스트의 의미를 드러내는 것,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보이는 것" 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몇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첫째, 모든 설교는 메시지와 포인트는 하나나 여러개의 성경적인 텍스트로부터 와야 함을 의비합니다. 강해라는 것은 설교자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한구절 한구절 설교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강해라는 것은 어떤 길이의 혹은 어떤 성경의 구절로 설교 본문을 잡든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성경 본문의 진정한 의미를 청중들을 위해서 끌어내어서, 청중이 그들의 마음으로 분명하게 그것과 씨름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파이퍼 목사님이 설교를 설명할 때에, 그가 사용하는 "의미"라는 단어의 뜻은,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과 인간이 청중과 소통하기 위해서 의도된 실재(reality)"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파이퍼 목사님이 말하는 의미라는 것은, 단순히 본문의 단어들의 문법적인 내용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또한 제가 이해하기로는, 설교자는, 저자들이 사용한 단어들과 논리들을 가지고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그 실재"를 우리의 언어로 담아서 청중들에게 전해야 하며, 청중들이 그것을 이해하고 그것으로 도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존파이퍼 목사님은 이번 강의에서 "실재"라는 단어를 계속 사용합니다. 이 영상의 후반부까지 충분히 그것에 대해서 설명하시지만 영영 사전에서 그 의미를 찾아보았습니다. 

reality

noun (plural realities)

1    the state of things as they actually exist, as opposed to an idealistic or notional idea of them.

Catherine Soanes and Angus Stevenson, eds., Concise Oxford English Dictionary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4).

사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reality의 의미는, 어떤 사물이 이상주의적이거나 관념적인 적인 상태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상태를 실재라고 표현하는 듯 합니다. 조금 더 실감나게 이해하자면, "어떤 대상이 다른 어떤 형태가 아니라, 정말로 그 대상이 존재해야 하는 바로 그 모습으로 존재하는 바로 그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제가 이해할 때에, 파이퍼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실재라는 것은, 말씀이 정말로 의미하는 것, 말씀이 정말로 드러내서 소통하고자 하는 중심 내용, 말씀이 반드시 드러내고자 하는 그 어떤 것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파이퍼 목사님의 설교론에서 강해라는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설교자의 강해를 통해서 청중이 "본문의 실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것에 직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의 예로서 드는 것이 골로새서 1장 4-5절입니다. 

골로새서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1:4 because we have heard of your faith in Christ Jesus and of the love you have for all the saints-- 1: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1:5 the faith and love that spring from the hope that is stored up for you in heaven and that you have already heard about in the word of truth, the gospel

여기서 파이퍼 목사님은, 성도의 사랑이란 하늘에 쌓아 둔 소망 때문임을 말씀의 핵심으로 강조합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서 설교자가 이 부분을 설교할 때에, "서로 사랑해야 하며, 사랑은 소망에 뿌리를 두고 있을 때 일어나는 것이니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가집시다"라는 식으로 설교해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설교하지 말아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러한 설교는 "사랑이 무엇인지", "사람들이 행하고 느끼기 원하는 그 사랑이 무엇인지", "그리고 정말 소망이 무엇인지" 그런 것에 대하여서 설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설교자에게 자신이 많이 들어왔던 단어들을 설교 중에 듣지만, 그러나 그것이 "정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설교자가 단순히 "소망으로 인해서 사랑해야 한다"라고만 말한다면, 그것이 과연 이 세상이 가지고 있는 소망과 무엇이 다른가를 성도들에게 설명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원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과연 그것이, 말씀과 그 논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알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설교자들이 이런 실수를 하는 이유는, 아직 설교자가 본문의 실재를 다루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사랑이 무엇인지, 소망이 무엇인지를 다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재를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을 풀어서 설명하면서, 설교자가 성경적으로, 경험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이 세상에서 다시 말해서 청중의 가장 실제적인 자리에서 그 실재가 작동하는 것을 밝혀내지 못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존파이퍼 목사님은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의 실재를 명백하게 드러내는 것" 이것이 바로 설교를 살아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만약 설교자가 단순히 본문의 구조 등에 혹은 친숙한 단어들 논리 구조들, 그것들을 종합해서 결론을 이끌어내는 식의 설교를 한다면, 본문의 실재를 놓치는 것입니다. 청중들은 실재를 살아가고 있고, 성경 역시 실재를 다루고 있으며, 그러므로 강해 설교는, 의미 혹은 실재를 본문으로 부터 반드시 끌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서, 설교의 구조를 언급하며 추가적으로 설명하십니다. 존파이퍼 목사님의 설교의 구조에 대한 철학이 조금 등장합니다. 파이퍼 목사님에 따르면, 성경 본문의 구조는 설교의 구조를 지배해야(govern) 하지만, 그것은 완전히 동일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 구절의 단어들이나 논리 구조를 따라서, 동일하게 설교를 구성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정 반대의 순서로 구성을 짜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강해 설교라는 것은, "성경 본문의 구조를 따라가고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그 본문의 실재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아마도 파이퍼 목사님은, 보통 생각하는 강해 설교, 다시 말해서 성경의 한구절 한구절은 반드시 순서에 따라서 모든 단어와 구조를 설명하면서 내용을 이끌어가는 그런 강해설교를 염두에 두고 염려하시는 듯 합니다. 

오히려 설교자는, 본문의 실재를 나의 설교에 담아서, 나의 설교의 구조를 "청중들의 위하여서"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중요한 것은, 본문의 실재를 드러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강해에서, "명백하게 의미가 드러났다는 것은", 설교자가 강조하는 포인트들이 성경으로 부터 온 것임을 분명히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의 중요성에 대해서 파이퍼 목사님은 설교자들에게 호소합니다. 

특히 젊은 목회자들이 설교를 위해서 많은 공부를 하지만, 그리고 설교 중에 좋은 것들을 말하지만, 청중들은 설교자가 그들을 돕기 전에는 진정한 말씀의 실재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자신이 말하는 바가 말씀에서 왔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두 가지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첫째로, 왜냐하면 설교는, 설교자의 권위나 아이디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설교자가 설교를 할 때에, 정작 청중들이 성경 본문과 설교의 내용을 연결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결국 설교자가 자신의 목소리에 청중들이 의지하도록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합니다. 설교자는 청중들이 설교자가 아니라 말씀에 집중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청중들이 "말씀을 어떻게 읽는가를 훈련 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설교자의 올바른 강해를 통해서", 청중들은 그들 스스로, 성경에 어떤 실재가 있는가를 배우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파이퍼 목사님은, 강해라는 것이 "두 실재의 만남"임을 강조합니다. 강해는, 설교라는 것은 명백하게 본문의 의미 실재를 성경으로 부터 끌어내는 것인데, 그것을 청중을 위하여 아주 분명하게 언어적으로 만들어서, 그것을 가지고 청중들의 삶 속에 깊게 파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중들이 그것을 가지고 씨름하도록 하고, 성경의 실재와 청중의 삶이라는 두 실재가, 삶이 변화되는 그 순간에 함께 모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 하나님께서 설교자 뿐 아니라 청중들이 큰 기쁨 가운데 들어가게 하시는 Exultation이 됩니다. 

파이퍼 목사님의 이 강의에 대해서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사실 강의를 여러번 들으면서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젊은 목회자들에게 하시는 그 호소에서는 눈물이 쏟아 졌습니다. 설교에 대한 진지함, 설교를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확신, 그리고 성경적으로 정립한 확고한 설교에 대한 철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설교를 가르쳐 주신 박완철 교수님께서 항상 강조하셨던 "말씀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존파이퍼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실재"이구나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제대로 배웠고 또 그 방향대로 부족하지만 지금까지 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참 그 길이 쉽지는 않습니다. 적당한 수준에서, 어디에서 들어본 말들로, 피상적이고 좋은 말들로 설교를 채워놓고 싶다라는 생각이 가끔 듭니다. 왜냐하면, "말씀의 실재"를 청중들의 언어로 아주 선명하게 만들어내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존파이퍼 목사님이 "청중"들을 굉장히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 저는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보통 강해 설교라고 하면, 어려운 원어, 그리고 복잡한 구조들을 밝혀내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리고 성도님들이 대부분 알아듣지 못하지만, 그렇게 설명을 했다는 사실 자체로 만족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존파이퍼 목사님은 그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영어를 제가 정확하게 이해했는지는 의심이 있지만, 적어도 제가 이해할 때에 파이퍼 목사님은 성경의 언어 구조 등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말씀의 실재는 아니라고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또 동시에 그런 어어와 구조등이 사용되기는 해야 합니다. 그럼녀서도 성경의 실재, 다시 말해서 말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청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해야 합니다. 엄청나게 대단한 비전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파이퍼 목사님의 설교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목회자에게는 중요한 현실적인 작업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성경의 실재를 이해하는 것, 둘째는, 청중의 실재를 이해하는 것, 셋째로는, 청중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 세가지 중에 하나라도 약화된다면, 성경적인 설교와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설교의 구조를 살짝 언급하시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저는 파이퍼 목사님의 책과 설교들을 통해서 주해적인 도움은 종종 받았지만, 구조적인 부분은 따로 분석해 본적이 없습니다. 이 설교 클래스를 다 마무리하고 나면 한번 시도해 보아야겠습니다. 다만 제 스스로 추구하는 "퓨전 설교"의 형태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 설교, 이렇게 내용을 준비하고,
이렇게 구성하고, 이렇게 전달하라! (제 2편 : 설교 구성)
https://jungjinbu.blogspot.com/2020/07/2.html

파이퍼 목사님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퓨전 설교는 본문의 실재를 목회자가 이미 파악한 다음에, 서론과 본론 초반에서는 살짝 그 실재를 보여주면서 흥미를 돋웁니다. 그리고 본문의 중요 구성에서는 "본문의 실재"와 "청중의 실재"가 만나는 장으로 "적용"을 강조합니다. 

앞으로 이 강의를 어떻게 풀어내실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이 강의의 마지막 부분, "두 실재의 만남"을 강조하시는 것이 참 흥미로웠습니다. 그것이 강해 혹은 설교입니다. 물론 말씀에서 실재를끌어내는 것을 강해라고 설명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는 그 개념을 확장시킵니다. 

설교 안에서는 말씀의 실재와, 청중의 실재가 반드시 만나야 합니다. 말씀의 실재가 청중에게 다가가야 하고 그것이 그들에게 도전이 되고 그것과 씨름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면에서 저는, 저의 퓨전 설교가 강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본문의 긴 부분을 적용에 할애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그것이 성도님들에게 설득력있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본문의 실재라는 것을 목회자가 충분히 이해하고, 그것을 염두에 두고 성도님들의 실재를 가지고 함께 씨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할 때에는, 사실 설교의 적용 파트를 길게 두는 것이 훨씬 난이도가 높습니다. 단순히 전반부에 충분히 본문에 대해서 해설을 하고, 그리고 이후에 적용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말씀과 성도의 실재의 두 존재를 염두에 두고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퓨전 설교는 의도적으로 간단한 배경, 본문의 구조 등을 꼭 설명을 드립니다. 그리고 설교의 논리를 풀어갈 때에 그것이 단순히 설교자인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충분히 본문에 근거한 것임을 최대한 드러내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것은 존파이퍼 목사님이 강조하시는대로 성도가 스스로 말씀을 보는 법을 익힐 수 있도록 돕는 저의 배려이기도 합니다.

보통 금요일에 설교하기 때문에 주일 저녁 정도에는 이미 그 다음주 설교를 준비하면서 파이퍼 목사님의 강의를 듣습니다. 이번 강의는 들으면서 마음이 굉장히 무거웠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기쁨도 있습니다. 이번 본문인 사사기를 준비하면서, 본문의 실재에 대해서 참 많이 생각을 했습니다. 

사사기가 참 어려운 것이, 영적으로 추락하는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본문의 실재를 어떻게 드러내는가를 바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여기 보세요, 이 사람들이 지금 영적으로 추락하고 있습니다!"라는 명제의 반복은, 사실상 아무것도 이야기 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됩니다.

도대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영적인 추락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으신 것일까요? 그리고 현대와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인 우리에게, 이스라엘의 영적인 추락의 이 말씀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런 고민을 가지고 설교를 준비해 보았습니다. 

또 앞으로 기대가 됩니다. 한걸음 한걸음 다시 설교를 배우면서, 그리고 그동안 고민하고 공부했던 것들을 다시 확인하고 점검하고 수정하면서, 그렇게 좀 더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설교자로 걸어가야겠습니다. :)

존파이퍼 목사님의 설교 클리닉에 대한 분석과 적용은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_ 5강 희열이란 무엇인가?
(What is exultation?) / 사사기 6장 1-10절 설교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1/5-lecture-5-what-is-exultation-6-1-10.html

* 존 파이퍼 "설교 클리닉" 전체 글 모음 / "설교의 대가"에게 설교를 배우라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3/blog-post_9.html

2021년 10월 25일 월요일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_설교는 위대한 일입니다 (Lecture Introduction: Preaching Is a Great Thing) / 출애굽기 35장 20-29절 설교

 


설교를 잘하고 싶은 것은, 아마도 모든 목회자들의 바램일 것입니다. 좋은 설교를 듣고 싶은 것은, 아마도 모든 성도의 바램일 것입니다. 설교는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존 파이퍼 목사님의 설교 수업을 듣고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얼마나 허술한지, 지난 번 글의 주제였던 존파이퍼 목사님의 간증이 설교 수업의 서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서론 강의는 따로 있었네요. 서론 강의를 몇번에 걸쳐서 내용을 듣고 숙지하면서 느낀 점들을 적어 봅니다. 

사실 영어라는 언어는, 한글 보다 훨씬 의미가 함축적입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영어 한 문장 안에 한글로 풀어내면 세 문장 정도의 의미를 담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단지 10분 남짓의 영상이지만, 실제로 이것을 신학교의 컨텍스트 안에서 풀어낸다면 세시간 정도의 클래스는 너끈히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기록하고 남길 수는 없지만, 간단하게 이렇게 이해되었습니다. 설교란 무엇인가? Worship 그리고 Expository Exultantion 입니다. 

이 두 가지에 집중하면서, 먼저 존파이퍼 목사님은 고린도전서 1장 21절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설교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preaching is a great thing)를 설득력있게 설명합니다. 

고린도전서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개역개정) 1:21 For since in the wisdom of God the world through its wisdom did not know him, God was pleased through the foolishness of what was preached to save those who believe. (NIV)

위 말씀에 따르면, 설교야 말로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멸망하는 죄인을 구원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구(instrument)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는 너무나 위대한 것입니다.

저는 사실 고전 1:21의 "전도"라는 부분을, 개역 개정의 번역에 따라서 보통 생각하는 전도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저의 큰 오해였네요. :) 이것은 다른 영어 번역본들이 모두 preach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이해하는 설교로 이해하는 것이 바른 이해입니다.

그리고 파이퍼 목사님은, 에베소서 3장 8절을 인용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입니다. 

에베소서 3: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개역개정) 3:8 Although I am less than the least of all God's people, this grace was given me: to preach to the Gentiles the unsearchable riches of Christ, (NIV)

도대체 어떤 사람이, 평생동안 측량할 수 없는 풍성함을 다룰 수 있는가? 라고 파이퍼 목사님이 반문합니다. 이것은 저에게 있어서는 획기적인 설명입니다. :) 설교자는 삶이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묵상하고 공부해야 할 주제가 끊어질 수가 없습니다. 설교자는 평생동안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나타내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설교는 위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디모데후서 4장 2절 말씀을 인용합니다. 파이퍼 목사님은 말씀의 논리 구조에 주목합니다. 1절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라는 전제를 강조한 다음에 이제 그 전제를 바탕으로 하여 2절에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라는 명령이 등장한다는 것을 주목합니다. 

디모데후서 4:1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4:1 In the presence of God and of Christ Jesus, who will judge the living and the dead, and in view of his appearing and his kingdom, I give you this charge: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개역개정) 4:2 Preach the Word; be prepared in season and out of season; correct, rebuke and encourage--with great patience and careful instruction. (NIV)

이것보다 더 설교를 명령하는데 있어 "위대한 서론"은 없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설교의 궁극적인 중요성(ultimtate seriousness)"를 보여준다고 말씀합니다. 저 역시 너무나 동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앞에서,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염두에 두고 기억해야 할 것이, "설교는 하나님의 명령이며, 너무나 위대한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파이퍼 목사님에 따르면, 설교는 필수적이며 다른 것과 비교될 수 없습니다. 설교는, 가르침도, 나눔도, 토론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유일한 것이며, 다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영상의 후반전에서는, 아주 복합적인 논리로 들어갑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바로 그 본성에 뿌리박고 있는 것입니다(it is rooted in the nature of the very being of God).

존파이퍼 목사님은 먼저 삼위 일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언급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한분이시지만 그러나 세 위격을 가지고 계십니다. 서로는 서로를 향하여 영원히 완벽하게 알고, 영원히 완벽하게 사랑하시며, 영원히 완벽하게 기뻐하시며, 영원히 완벽하게 이해하십니다. 성령님이 삼위 간에 교통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이런 방식으로 혹은 이것을 염두에 두고 만드셨습니다. 여기에서 논리적인 연결 고리는 매우 함축적입니다. 아마도 파이퍼 목사님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생각해야 하는 것 처럼, 설교를 듣는 인간의 고귀함과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본래적인 의도를 생각해야 함을 의도하신 듯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존재인데, 그것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위대하심을 보고, 우리의 마음은 그분의 가치로 인해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설교는, 하나님께서 소통의 도구로서 주신 것인데, 다른 어떤 것과 다르게 하나님의 계시와 그분의 백성을 연합시키시기 위해서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expository는 진리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드러내며 그분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설교라는 expository와 exultation 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게 되는 것으로 그분에게 영광을 돌릴뿐 아니라 그것을 다른 이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exultation을 exaltation으로 알아들었습니다. :) 발음은 비슷하지만 뜻은 완전히 다르네요. exultation은 무척 기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중에 강의를 들으면서 파이퍼 목사님 본인이 스펠링을 정확하게 말해주시면서 의도를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이어서 설교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영상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이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그대로 옮기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Exposition bringing out reality that is in the text and verbalizing it for the understanding of those created in the image of God and exulting over what we have seen and what we have said so that our hearts are appropriately responding to the beauty of what's there. They can come awake with us to that truth and that worth. 

어떻게 보면 평범한 설교의 정의라고 볼 수 있지만, 저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을 향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설교라고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저의 이해는 이렇습니다. 설교는 단순히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회복해야 하는,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서 회복할 수 있는, 그리고 하나님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 있는 인간을 향해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설교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설교 자체에 대해서는 고민했지만, 설교를 듣는 청중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단순히 청중의 문화적인 맥락에 대해서는 고려해본 적이 있지만, 정말 "청중"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서 가장 근본적인 부분을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인간은 설교를 반드시 필요로 하며, 그렇기 때문에 설교자는 이 설교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가지고 언제나 설교에 임할 수 있겠다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당신에게, 이 강의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저는 설교는 Worship이다 라는 정의에서부터 턱 하고 숨이 막혔습니다. 보통 설교자들에게 있어서 초점은, "어떻게 설교를 잘할 것인가" 혹은 "어떻게 말씀을 잘 풀어낼 것인가" 혹은 "어떻게 통찰력 있게 이야기할 것인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파이퍼 목사님에게 설교는 그 무엇보다 먼저 Worship입니다. 그것은 강해이기도 하고, 말씀을 드러내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에게 선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설교자 자신의 예배가 바로 설교입니다. 

그런 면에서 제 자신을 많이 돌아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설교자인 저 자신이며, 누군가에게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라고 말하기 이전에, 제 자신의 하나님 앞에서의 성찰과 엎드림이 바로 설교라는 것을 새롭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 개인적으로는, 이 강의를 통해서 설교자로서의 제 자신을 완전히 새롭게 정립하게 되었습니다. 

목표를 정히 보았습니다. 한주에 하나 영상을 보고, 제 설교에 실제로 적용해 보는 것입니다. 이번 강의를 듣고서, 설교는 worship이다 라는 이해,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설교를 반드시 필요로 하는 인간을 향한 선포라는 이해를 가지고 한 설교입니다. 너무나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했고, 최선을 다해서 말씀의 의미를 드러내고, 최선을 다해서 핵심 내용을 강조했습니다.


저는 사실 굉장히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설교 단에 올라가면 저도 모르게 부끄러움이 몰려오고, 왠지 뭔가 말하기가 민망하고 그런 느낌을 많이 가집니다. 언젠가 존파이퍼 목사님의 모습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저 스쳐지나갔던 그 설교 영상 속에서, 팔을 한 없이 높이 치켜 올려들었던 존 파이퍼 목사님의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한 없이 부족한 저를 설교자로 세우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설교가 저의 개인적인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앞으로도 한 없이 부끄러울 것입니다. 하지만 설교가 하나님의 일이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길이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에게 행해져야 하는 유일 무일한 어떤 것이라면, 이제는 부끄러움 없이 설교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설교는 위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존파이퍼 목사님의 설교 클리닉에 대한 분석과 적용은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 _1강 설교자 만들기
(Lecture 1: The Making of a Preacher)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0/1.html

* 존 파이퍼 "설교 클리닉" 전체 글 모음 / "설교의 대가"에게 설교를 배우라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3/blog-post_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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