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cture 1: The Making of a Prea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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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강의는, 시리즈 강의의 기초를 놓는 강의입니다. 그러므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파이퍼 목사님은 설교의 정의(definition)를 내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추구하고 훈련하기 위해서는 정의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경적인 설교의 정의를 정립하기 위해서, 세 군데의 성경 본문을 살펴보겠다고 말합니다.
첫째로 디모데후서 3장 16절부터 4장 2절까지입니다. 여기서 목사님이 주목하는 것은 그 맥락입니다. "모든 성경"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어 있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든 선한 일을 행하는데 있어서 그들을 구비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말씀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디모데후서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3:16 All Scripture is God-breathed and is useful for
teaching, rebuking, correcting and training in righteousness, 3: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3:17 so that the man of God may be thoroughly equipped
for every good work.
4:1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4:1 In the presence of
God and of Christ Jesus, who will judge the living and the dead, and in view of
his appearing and his kingdom, I give you this charge: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4:2 Preach the Word; be prepared in season and out of
season; correct, rebuke and encourage--with great patience and careful
instruction.
그리고 바로 "이런 말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어서 4장 1절과 2절이 연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컨텍스트의 중요성입니다. 바로 "이러한 말씀"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설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절에서 "전파하라"라는 것은 원어적으로 케루소인데, 이것은 가르침이 아니라 "보도(herald)"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예를 들어, 왕의 명령을 받은 그 마을의 소식을 알리는 자 혹은 전령이, 왕이 어떤 주제에 대해서 알리는 것이고, 자신을 돌이키고 은혜를 구하라 라고 외치는 것임을 설명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거리의 모퉁이에서 전도를 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가르치는 방법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전령에게는 새로운 소식(news)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것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둘째로, 로마서 10장 14-15절입니다. 파이퍼 목사님은 10장 14절에 "전파하는 자가"에서 동일한 원어가 사용되었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전파하는 자는, "보내심을 받은 자"입니다.
로마서 10: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0:14 How, then, can they call on the one they
have not believed in? And how can they believe in the one of whom they have not
heard? And how can they hear without someone preaching to them? 10: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10:15 And how can they preach unless they are sent? As it
is written, "How beautiful are the feet of those who bring good
news!"
여기에서 파이퍼 목사님은, 설교자에게는 기록된 말씀이 있고 보내심을 받은 사람인 것을 강조합니다. 전령은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왕의 대리자로서 왕이 싸인한 서류를 들고 마을에 가는 것입니다. 설교자도, 마치 그와 같은 것입니다. 설교는 자신의 권위에서 나오는 어떤 것이 아니라, 그에게 임무를 준 분의 권위에 의거해서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골로새서 1장 28절입니다. 여기서 "전파하여"라는 것은 원어적으로는 카탕겔레오이며, 이것은 케루소는 아니지만, 그것과 매우 비슷한 것임을 강조합니다. 카탕겔레오는 일종의 알리는 것이며 선포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개역개정) 1:28 We proclaim him, admonishing and teaching everyone
with all wisdom, so that we may present everyone perfect in Christ. (NIV)
그분을 어떻게 선포하는가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문법의 구조상, 사람들에게 경고하고(개역개정은 권하고로 번역),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을 반복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그분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파이퍼 목사님은 이 모든 것을 결합해서, 설교의 정의를 이끌어냅니다. 그것은, 보냄을 받은 자로써, 하나님의 권위있는 말씀을 보도(herald) 하는 것이며, 그리고 그 안에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는 herald하는 것이며, news quality를 가져야 하는 것이며, best news in all the world임이 드러나야 합니다. 이것은, 설교 중에서 굉장히 실제적인 것들(practical)을 언급할 때에도 동일하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는, 말씀으로 부터 명백하게 흘러나와야 하는 것이고, 그 안에 충분한 가르침을 담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가르침은, 하나님의 말씀이 명백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to make the message plain) 존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전령의 입장에서 어떤 말을 할 때에, 마을의 사람들이 그 의미를 잘 모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령의 입장에서는 설명을 추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존파이퍼 목사님은 자신의 설교에 대한 정의를 두가지로 결론을 내립니다. 그것은 "Expository Exultation"입니다. 그리고 다음 강의에서 이 두가지를 좀 더 이야기하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오늘 다룬 세 본문에 바로 이 내용이 들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번 강의를 들으면서 제가 가장 크게 얻은 것은, 설교자의 정체성과 컨텐츠입니다. 설교자는 자신의 권위로 서는 사람이 아니며, 하나님의 권위에 입각해서 그분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특별히 가장 저에게 좋았던 부분은, 가장 실천적인 내용 조차 뉴스의 수준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스스로에게 가장 경계하고 주의하는 부분은, 대면대면하게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성도님들 다 이거 아시는 내용이죠?"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떨어트리며, 설교자 스스로 말씀의 권위를 떨어트리는 매우 악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매번 설교 때 마다, 오늘 내가 말씀을 대할 때 경험하는, 가장 새로운, 가장 경이로운 수준의 말씀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강의를 통해서 설교에 대한 태도, 저의 정체성, 그리고 말씀에 대한 감각 등을 완전히 새롭게 다시 한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크게 배운 것은, "설교자가 어느 정도까지 말씀을 설명해야 하는가?" 의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선포할 때에, 모든 설교자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자칫 강해 설교라는 것을, "마치 말씀의 가진 모든 단어의 의미와 문법 구조까지 다 설명하는 것"으로 동일시 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성도들이 듣다가 지쳐서 잠들 때까지 계속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파이퍼 목사님의 지혜가 오늘 강의 안에 들어 있습니다. 물론 앞으로 강의를 들어보아야하겠지만, "성도들이 말씀을 이해했다고 생각되는 수준까지" 가르치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설교자가 가진 설교의 내용은 전적으로 하나님으로 부터 온 것이지만, 성도와 말씀 사이에 서 있는 설교자가 어느 수준까지 말씀을 설명하고 가르쳐야 하는 부분에서 아주 지혜로워야 함을 보여줍니다. 설교자는 자신의 청중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너무 얕거나, 너무 지나치지 않게, 그들에게 말씀을 선포하며 설명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이런 내용들을 들으면서, 지난 주 새벽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내세울 것 없는 제 자신의 권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권위자로서,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드러나시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말씀의 모든 내용들이 가장 새로운 뉴스의 퀄리티를 가지며 새롭게 다가오기를 기도하고 준비하면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에 들었던 "하나님의 말씀을 반드시 필요로 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이라는 가장 중요한 이해를 붙들고 설교하였습니다.
(Lecture 4: What Is Expository?) / 사사기 2장 11-23절 설교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3/blog-post_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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