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신04)요16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신04)요16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25년 6월 3일 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218) - 봄

 


1. 가사 살펴보기

산꼴짜기 여기저기 봄의 향기가
겨우내 숨어 있던 산새들의 노래 들리고
산등성이 하얀 눈은 이제 보이지 않고
이것이 우리주님 약속하신 봄의 모습 아닌가 

싱그러운 봄 같은 그 분의 향기
따스한 사랑으로 내 삶을 아름답게 하네
그 분으로 가득한 하루 또 하루
이것이 우리주님 약속하신 봄의 모습 아닌가 

내가 염려했던 지난 날들과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던 추운 겨울은
주님의 약속대로 흔적도 없고
내 하나님 행하신 일 만물이 찬양하누나

 

2. 곡 소개

곡은, 김명식 1영원한 사귐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어두운 밤과 같은 어려운 시간을 지나고, 그분의 약속대로 따스한 봄과 같은 회복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감사를 가득 담은 아름다운 찬양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아가서 2:10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2:11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2:12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2:13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봄의 이미지는, 교회가 어둠과 죽음의 시대를 뒤로 남겨두고, 풍성한 삶과 기쁨 안에서 주님과 함께 걷도록 초대하는 것입니다. 무화과 나무와 포도 나무는, 다윗의 후손의 왕국에서 번영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재림 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946.

시편 30:4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30:5 그의 노여움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요한복음 16: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16: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세상은 제자들이 슬퍼할 때 기뻐했지만, 제자들은 (사흘 후에) 예수님을 다시 보고 기뻐할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는 종종 하나님의 가치와 정반대에 놓여 있습니다. 이로 인해 믿는 이들은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삶이 힘들더라도, 언젠가 우리는 기뻐할 것입니다. 미래와 하나님의 약속에 우리의 시선을 고정해야 합니다.

Tyndale, Chronological Life Application Study Bible, ed. Susan Perlman, Second Edition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2023), 1489.

고린도후서 4: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여기서 주목한다는 것은, “우리의 시선을 고정하는 것”, “묵상하는 것”, “심사숙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동사의 명사 형태는 “목표”를 의미합니다. 성도가 용기를 잃지 않기 위해 우리의 초점을 보이는 것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것으로 옮겨야 하며, 일시적인 문제들로부터 자신이 받게 될 영광스러운 영원한 상급으로 옮겨야만 합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2 Co 4:18.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계와 성도의 영적인 회복을 너무나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는 곡이다. 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겨울과 같은 힘들고 고된 시간을 반드시 지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이 찬양의 가사처럼, 끝나지 않고 영원할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고 또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는 것이다.

그러나 겨울의 시간은 반드시 지나간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고 계시고 또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에 굴곡은 있지만, 그러나 고통의 시간은 지나가고 다시 회복의 때가 찾아올 것이다. 하나님의 노여움은 잠깐이고 그의 은총은 평생동안 지속된다는 다윗의 고백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고통을 이겨내게 하시며 그분의 은혜를 다시 한번 넘치게 베풀어 주실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따뜻한 봄과 같은 영원한 기쁨을 주신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를 괴롭히던 세상의 모든 죄는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충만하여 그분의 영광이 가득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의 자녀는 영원한 봄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찬양은, 인생의 수 많은 고난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된다. 혹시라도 지금 겨울과 같은 혹독한 시간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라도, 이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소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를 다시 회복시키시며, 더 나아가 궁극적인 기쁨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담대한 믿음의 걸음을 걸어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2년 12월 26일 월요일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사랑, 그리고 승리 / 요한1서 5장 1-12절 설교

 



요한1 5 1-12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이 성도의 삶 가운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 말씀 한 구절 안에 기독교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라는 묵상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 그분은 "그리스도" 이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라는 단어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라는 뜻입니다. 이 호칭은 구약의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 , 선지자가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구별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에게 "그리스도" 라는 호칭이 붙어야만 하는가?

그것은 예수님께서 완전한 제사장, 완전한 왕, 완전한 선지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성부 하나님을 향하여 죄인을 위하여 중보하시는 가장 완전한 제사장이십니다.

죄인에게 생명을 주시며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가장 완전하게 다스리시고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왕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자신이시며 이 땅 가운데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완벽하게 드러내신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님만이 그리스도라 불림을 받을 자격이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1절 하반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의 신앙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마음에 "믿음"이라는 단어는 어떤 느낌을 받는가? 그것은 지적인 것이고 논리적인 것이고 추상적인 어떤 차가운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 사도는 우리의 믿음에 대해서 말씀하면서,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신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우리는 우리를 낳으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감정에 속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수 밖에 없는가? 그분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참된 믿음이라는 것은 그분을 향한 사랑을 동반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너무나 아름다운 분이시며 그분의 일하심은 너무나 놀랍고 예수 그리스도의 일하심은 우리의 생각과 수준을 뛰어넘는 정말 경탄할 수 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빠져들어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향한 그 사랑은 반드시 형제를 사랑하는 것으로 연결 될 수 밖에 없다고 요한 사도는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1절 하반절입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생각해보면 교회라는 공동체는 정말 흥미롭습니다. 왜냐하면 성별도, 나이도, 출신 지역도, 학력도, 사는 집도, 차도, 입는 옷도 모든 것이 다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함께 모인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우리를 하나되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이 오늘 말씀에 보여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인가? 하나님으로 부터 난 자이다 그리고 이 교회 공동체라는 것은 하나님으로 부터 난 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형제 자매가 될 수 밖에 없고 서로가 서로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3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이 말씀을 읽으면 약간 의아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좀 부담을 느끼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냥 하나님을 사랑해라 라고 말하면 좋겠는데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에 모래시계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혹시 성도님들께서도 기억이 나실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어릴 때 본 드라마이지만 그 중에 명대사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한 남자가 여자에게 청혼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남자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랑은 노력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노력할 준비도 돼 있고요 평생 노력할 겁니다 이런 말로 안되겠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왜 사랑은 노력할 수 밖에 없는가? 성경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그것은 순종하는 것이다 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만, 평범한 인간의 표현으로는 노력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람에게 빠지게 되면 그 사람이 내 마음에 더 깊이 들어오게 되는 것이고 우리는 노력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점점 더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것이 자신의 마음에 깊이 남게 되고 결국 사실상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을 위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한없이 연약한 우리가 감히 어떻게 그의 계명이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이 너무 좋기 때문에 그분의 명령이 그분의 소원과 바램과 갈망이 우리에게 무거운 것이 되지 않고 기쁨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우리의 믿음이 사랑을 만들어내고, 우리의 그 내면 안에서 변화를 만들어 낸다면, 과연 이 믿음이라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가?

4절과 5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이 세상을 이겼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언뜻 생각하면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기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유혹에 넘어갈 때가 종종 있고 세상에 두려움을 느낄 때도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한 사도의 이 단호한 표현들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우리가 분명히 이기고 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확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자칫 오해하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가끔씩 자기 확신이 강하거나 혹은 허세가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남들이 볼 때에는 아닌데 근거 없는 자신감에 사로 잡혀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이 말씀을 그저 근거 없는 자기 확신이나 허세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의미가 아닌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이긴다고 말씀하시는가? 그것은 우리가 믿는 대상이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6 33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라는 이유로 고난을 당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 이후에 그들에게는 큰 어려움이 닥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며 안심시키시는가? 내 안에서 너희가 평안을 누리게 하겠다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제자들이 그리고 우리가 주님 안에서 담대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이 이기셨기 때문에 담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죄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셨습니다. 그분이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의 댓가를 치르기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인간이신 그분이 가장 순결하고 소중한 그분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대신하여 몸을 찢으셨습니다. 그분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은 마귀의 머리를 부수시며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결정적인 승리를 얻으셨습니다. 그분은 지금 우리와 영적으로 연합하셨기 때문에 그분의 모든 의로움을 우리의 것으로 넘겨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지금도 중보하시며 기도하시며 우리의 머리가 되셔서 우리에게 영적으로 능력을 부어주시며 그분의 모든 위로와 사랑을 부어주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의 모든 괴로움과 고난과 어려움과 유혹과 실패와 넘어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미 세상에 이기고 있다고 담대하게 선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담대함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사랑,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승리를 말씀하시면서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 증거가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마지막 부분은, 지금까지의 모든 말씀들이 얼마나 확실하며 얼마나 중요하며 얼마나 흔들릴 수 없는가를 확정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9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현대어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5:9 우리는 법정에 선 증인들의 증언을 신뢰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선언은 더욱 확신을 가지고 믿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가 당신의 아들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1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10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법정에서 증인들을 신뢰하는 사람들입니다. 적어도 그 자리에서만큼은 그 사람들이 진실을 이야기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이 참 흥미롭지 않습니까? 그렇게 오류가 많고 죄가 많은 사람이라도 우리는 어떤 자리에서는 그 사람들이 정말 진실을 말한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그렇게 오류가 많고 흠이 많은 인간도 믿는다면 가장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는데 그것을 믿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아니 오히려 세상의 모든 사람이 거짓말을 한다고 의심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만은 믿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요한 사도는, 그 증거가 우리 안에 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참되다고 이미 믿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마 지금 예배 드리는 모든 성도님들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다른 사람이 나를 비난하고 욕한다 하더라도 이 말씀을 붙들고 믿는 분들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 사도는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더욱 강하게 우리에게 부어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주의 능력과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구원은 너무나 확실하여서 영원한 것임을 우리는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 23-25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1: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기는, 오늘의 말씀이 우리에게 큰 위로와 도전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평생에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깊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분을 더 알아가면서 더 깊어지는 사랑을 주님께 드리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 가운데 그분을 향한 기쁨의 순종이 더욱 넘치기를 원합니다. 때론 우리가 넘어지고 실패하더라도 낙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의지하며 그분 안에서의 영원한 승리를 확신하시기를 원합니다. 세상 모든 것이 사라지더라도 영원히 남을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신뢰하고 믿고 확신하며 성도로서의 복된 삶을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이 시간에 함께 기도하시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주님의 놀라운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을 향한 감사와 기쁨과 경배가 평생동안 더욱 넘치고 깊어지는 저의 삶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둘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주님을 알아가며 사랑이 더욱 깊어지기 원합니다, 주님의 마음이 저의 마음이 되게 하시고 주님의 뜻이 저의 뜻이 되게 하여 주셔서, 아버지가 원하시는 삶을 기쁨으로 살게 하시고 오늘도 주님의 뜻을 추구하며 도전하는 복된 성도 복된 교회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
설교문전체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_4.html
 

*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고, 
커피 한잔 기부를 통해 정진부 목사를 응원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buymeacoffee.com/jungjinbu5

2022년 11월 18일 금요일

진중하게 말씀을 받고, 깨어 기도하는 자가 되라 / 다니엘 8장 15-27절

 



한 주 동안 몸이 계속 좋지 않았지만 무시하고 맡겨진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결국 몸이 고장이 나고 목이 완전 잠겨 버렸습니다.

그래도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이 참 좋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고 묵상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특권입니다. 설교라는 포멧으로 결국 만들어져야 하지만, 저의 개인적인 묵상과 결단이 들어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 역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어려움이 있지만, 그러나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번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또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는 역사 시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전체 그림을 알 수 없는 지루한 세부적인 사항들만 나열하는 것들이 부담스럽고 좋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설교 때에는 필요한 만큼은, 어떤 역사적인 배경은 핵심을 짚어가면서 설명하려고 합니다.

언제나 처럼, When & Where 책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추가로 안티오쿠스 4세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자료들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가 말년에 정신이 미쳐서 죽었다는 것이 정설로 보입니다. 다만 류호성 목사님의 글 쪽에 좀 더 무게를 가지고 설교했습니다.

167 BC Y First Abomination of Desolation Occurs

The first abomination of desolation occurred on December 25, 167 BC. On that date, Antiochus IV Epiphanes, Seleucid king from 175 to 164 BC, ordered that an altar to Zeus be built on top of the altar of burnt offering in the Jerusalem Temple. Antiochus

Sharon Rusten with E. Michael, The Complete Book of When & Where in the Bible and throughout History (Wheaton, IL: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05), 58–60.

8:25 through his policy. Through his cunning. cause craft to prosper. He will cause treachery or fraud to flourish. by peace shall destroy. Rather, by guile he shall destroy. broken without hand. A shameful end. History records Antiochus became irrational and died insane.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216.

그리고 자신의 군대가 유대에 패했다는 소식을 듣자 낙심하여 시름시름 앓다가 병석에 눕게 되었다. 안티오코스 4세는 자기 병은 회복 불가능하며, 이런 변을 당한 것은 유대를 점령했을 때에 성전을 약탈하고 하나님을 모욕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류호성, 간추린 신구약 중간사, ed. 곽진수 and 이경옥, 초판.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8), 62–63.


설교후 후반부의 적용은, 악에 대한 그리스도의 영원한 승리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그분의 속죄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싶지 않습니다.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승리가 확정되어 있고, 성도는 그 안에서 온전한 기쁨과 확신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삶의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Bible Themes 사전을 충분히 살펴보고 말씀을 인용하였습니다.

5598 victory, over spiritual forces

In spiritual warfare victory is assured since Jesus Christ has already won it on the cross and in the resurrection. Christians will eventually share in Christ’s complete victory and through him overcome their spiritual enemies.

Martin H. Manser, Dictionary of Bible Themes: The Accessible and Comprehensive Tool for Topical Studies (London: Martin Manser, 2009).


정신을 차리라 근신하라 라는 넷 바이블의 번역, self-controlled 그리고 sober-minded 가 참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지만, 자신을 철저하게 훈련하고 그리고 깨어 있는 영적인 지성과 마음을 가진 사람은 점점 드물어가는 듯 합니다.

사실 다른 사람을 쳐다볼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는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나의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 다니엘 815-27절 설교

우리가 오늘 읽은 다니엘 8장의 앞 부분에는 숫양과 숫염소의 환상에 대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숫양은 매데 바사 제국을 의미하는 것인데 한 때 매우 강대했던 제국이 될 것이지만 그러나 결국에는 헬라 제국에 의해서 꺾이게 될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어떤 나라도 영원한 나라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15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5 나 다니엘이 이 환상을 보고 그 뜻을 알고자 할 때에 사람 모양 같은 것이 내 앞에 섰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8장 앞 부분에서는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다니엘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에 그 뜻을 알고자 하는 분명한 갈망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 어떤 분들은 이렇게 오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경의 인물에게 하나님의 뜻이 계시가 되었을 때에 믿음의 성도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받기만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수동적으로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을 보여주시는가? 다니엘은 이미 여러번 하나님의 환상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환상을 여러번 탁월하게 해석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말씀이 정말 놀라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환상이 주어졌을 때에 다니엘은 그 말씀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그것을 해석할 수 있다고 해석의 힘이라는 것이 자신의 내면 안에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니엘조차 적극적으로 그 뜻을 알기 위해서 하나님께 간구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6절에 보니 바로 그 때에 하나님께서 가브리엘에게 명령하시기를 다니엘에게 이 환상을 깨닫게 하라 라고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하나님께서 가브리엘을 다니엘에게 보내셨을 때에 다니엘이 두려워했다는 것입니다.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어 그리고 18절에 보니 가브리엘이 말할 때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이 어떤 사람인가? 그는 이미 한 나라의 고관이고 산전 수전을 다 겪은 사람입니다. 그는 인생에 어려움과 고난을 이미 아는 사람이고 어떤 일이 일어나도 놀라지 않을 만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가브리엘이 자신에게 나타났을 때에 그리고 미래에 대한 환상을 보였을 때에 그는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깊이 잠들어 버린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다니엘에게 있어서 역사라는 것은 단순히 미래에 일어날 어떤 일이 아니라 혹은 자신이 자기 마음대로 자기 손 안에 놓고 해석하는 그런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에게 있어서 미래에 펼쳐질 역사라는 것은 두려운 일이고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 묵상할 때에, 인간의 교만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인간은 어떠합니까? 마치 자기 자신의 두 손에 역사가 달린 것처럼 생각합니다. 역사학과 통계학과 미래학이라는 도구들을 가지고 자신의 이런 저런 지식을 가지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이 보여주는 것은 미래라는 것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고 가벼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인간으로써 혹은 공동체로서 아름다운 미래를 이루어내기 위하여 열심히 살아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미래는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두 손에 달린 것이고 신의 영역에 속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을 두렵게하고 또 겸손하게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 14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스스로 존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과 비교할 때에 인간이라는 존재는 안개와 같이 연약하며 점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미래를 생각하며 모든 것을 준비할 때에, 우리를 초월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그리고 역사를 그분의 뜻 대로 이끌어가시는 여호와를 분명하게 인정하고 그분만을 경외해야 한다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 아주 흥미로운 것은, 두가지의 이야기가 한꺼번에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17절과 19절에 두번 반복해서 말씀하시기를 “이  환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임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이 말씀 자체가 마지막 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오늘의 말씀은 다니엘의 시점에서 멀지 않은 미래를 다루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두가지 이야기가 한꺼번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20절에 보면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숫양은 메대와 바사의 왕들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1절에 보니 숫염소는 헬라 왕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왕의 뿔이 꺾이고 네 나라가 일어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지금 이 내용은 다니엘의 시점에서는 역사적으로 성취될 일이며, 지금 우리의 시점에는 이미 성취된 일이다 라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역사에 대해서 설명해 드리면 이렇게 역사가 흘러가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온 것은 바벨론 제국 때였지만 다니엘은 바벨론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에 걸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위대한 페르시아 제국도 끝이 있었습니다.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에게 패하게 되면서 헬라 제국이 전 세계에 그 이름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헬라 제국도 영원하지는 못했습니다. 헬라 제국의 왕인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이후에 그 나라가 네 조각으로 나뉘어졌습니다.

그 중에 유력한 한명이 셀레우코스 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셀레우코스 왕가의 안티오쿠스 4세가 유대를 통치하면서 엄청난 핍박을 하게 되었습니다. 안티오쿠스 4세 안티오쿠스 4세는 자기 이름을 에피파네스 라고 지었는데 그 이름은 "신의 현현" 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자기가 신이라고 교만한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얼마나 심하게 유대인들을 핍박했는지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조금 바꾸어서 에피마네스 라고 불렀습니다. 설교 시간에 말씀드리기 참 죄송스러운 뜻이지만 그 뜻은 "미친놈" 이라는 뜻입니다.

이 미친 왕은 성전 제단 위에 이방인의 제단을 세우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돼지를 잡아서 이방 신에게 제사를 드리도록 하고 모든 도시와 마을에 그것을 강제로 하도록 했습니다. 유대인 남자 아이들에게는 할례를 금지시켰습니다. 반대하는 이들은 심하게 고문하고 십자가 교수형을시켰습니다. 성경을 소지한 자들도 무참하게 살해했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23절에서 25절의 말씀에 대해서 충분히 안티오쿠스 4세를 떠올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형통한 것 처럼 권력을 쟁취한 사람이었어 그리고 놀랍게 파괴를 하고 또 거룩한 백성을 멸하는 자였습니다. 그의 마음은 교만한 자였고 만왕의 왕을 대적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25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가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깨지리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류호성 목사님이 쓰신 간추린 신구약 중간사 라는 책에 보면 이런 내용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안티오쿠스 4세는 자신의 말년에 병석에 눕게 되었습니다.

그가 스스로 고백하기를 자기의 병은 회복 불가능한 것이고, 이런 변을 당한 것은 유대를 점령할 때에 성전을 약탈하고 하나님을 모욕했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렇게 악행을 저지르고 방자했던 그가, 결국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그의 삶이 끝나게 된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지 않고 교만하고 악한 왕이 깨진 것입니다.

다니엘 서가 기록된 것을 대략 BC 540년 경으로 생각한다면 안티오쿠스 4세의 경우에는 BC 175년에서 164년까지 통치를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단순히 다니엘의 시점에서 이정도의 미래 만이 아니라 정한 끝에 관한 것이라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 말씀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일어날 여러 핍박들에 대해서 미리 예언하시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미래를 궁금해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크리스천에게 있어서도 미래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래의 영적인 분위기와 지형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분명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살아갈 미래라는 것은, 그리스도라 사칭하며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이들이 늘어나며,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버리는 사람이 늘고, 하나님의 나라에 반대하는 세력이 강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 23-24절 말씀입니다. 24:23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1 4 3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하나님의 대표적인 대적자인 적그리스도는 나중에 나타날 존재가 아니라, 이미 지금 세상 속에서 악한 영들을 통해서 역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가 다가올 수록 더욱 기승을 부릴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확연한 영적으로 어두운 미래에 대하여서 우리가 전혀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승리하셨고 앞으로 반드시 승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6 33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사단에 대한 결정적인 승리가 바로, 성도의 가장 큰 위로와 평안이 된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7 14절에 말씀하십니다. 17:14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우리가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과의 전쟁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그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그 전쟁에서 승리하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승리는 그 누구도 의심을 품을 수 없는 확정적이고 예정된 변할 수 없는 승리 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의 주인이시며 구원자이시기 때문에, 주님의 자녀들인 우리까지도 그분의 승리를 통해서 악한 대적에 대하여 완전한 승리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말씀을 보면서 무슨 교훈을 얻게 되는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항상 말씀을 볼 때 마다 제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겁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신성한 말씀은, 인간의 말이 아니라 인간의 예측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신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직접 그 환상을 보고 해석했던 다니엘도 미래에 대한 예언의 말씀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받았다면, 그리고 그것을 해석할 수 있기를 간절히 구했다면, 우리도 당연히 마찬가지로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무겁게 진중하게 받아들이고 그 말씀 앞에서 나를 돌아보고 나를 성찰하고 그 말씀을 이해하고 깨닫기를 더 간절히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라고 오늘 말씀을 통해서 묵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얻는 교훈은, 깨어 근신하여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 7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흥미로운 말씀입니다. 사실 성경은 성도가 깨어 있으라고 항상 말씀하시고 강조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특별히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 그러므로” 라고 말씀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워오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더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지적으로는 논리적으로는 알고 있습니다. 분명히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워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언제 다시 재림하실 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고, 더 핍박과 어려움이 심해질 것이 명확하게 보이는 시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가? 이러한 현실을 우리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성도 모두가 정신을 차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자신을 진지하게 살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심각한 오류에 빠져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오늘과 같은 말씀을 보면서도 그저 남의 일처럼 다른 사람의 일처럼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처럼 받아들이면서 나의 삶에 아무런 노력도 변화도 추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넷 바이블 영어 성경은, 정신을 차리라 근신하라 라는 부분을 번역할 때에 self-controlled 그리고 sober-minded 라고 번역했습니다. 무슨 의미인가? 마지막 때가 다가올 수록 우리는, 영적으로 훈련하면서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마땅히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가 다가올 수록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세상의 헛된 이야기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꽉 차서 그 말씀이 우리를 다스리고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기는,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 깨어 있기를 원합니다. 영적인 박해와 어려움들이 우리에게 몰려올 때에 그것을 이상히 여기거나 피하거나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오히려 깨어 기도하며 주님의 뜻을 구하며, 이미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붙들며, 최후 승리를 주실 주님을 의지하고 바라며 살아가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함께 기도 하겠습니다. 이 시간에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첫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고 그것을 읽고 깨닫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시니 감사합니다, 날이 갈 수록 말씀에 대한 더 갈망이 깊어지게 하시고 더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하시고, 또 그 말씀을 진중하게 받아들이는 주님의 자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둘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세상의 마지막 때에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는 사람 되기 원합니다, 세상의 헛된 이야기들과 미래에 대한 예측에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갈수록 영적으로 어두워지는 이 시기에 기도를 통하여 주님과의 관계가 깊어지고 단단해 지며 영적으로 온전히 깨어 있고 자기를 훈련하는 믿음의 성도로 살아가게 하여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어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문" 전체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_4.html

*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고, 
커피 한잔 기부를 통해 정진부 목사를 응원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buymeacoffee.com/jungjinbu5

추천 글

로고스 프로그램으로, 평신도 성경 공부하기 with 스터디 바이블 노트 Study Bible Notes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시 119:103) 누구나 성경을 열심히 읽으라는 말은 듣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꿀보다 달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

리딩 크리스천 독서 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