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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0일 금요일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_ 11강 설교문인가 기억력인가? (Lecture 11: Manuscript or Memory?)

 


설교자에게 있어서 많이 가지는 궁금증은, "설교 원고 자체"에 대한 질문입니다. 종종 설교자들은 혹은 심지어 성도님들도 은연 중에, 원고에 의지하지 않는 설교를 은혜가 충만한 설교 혹은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진짜 설교라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과연 원고를 써야 하는가? 원고를 암기해야 하는가? 아니면 개요만 필요한가? 즉흥적으로 해야하는가? 이런 질문은 설교자라면 모두 가져본 질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강의는 바로 그 부분을 말씀합니다.  

파이퍼 목사님의 대 전제는,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지혜로운 조언입니다

파이퍼 목사님은 원고에 대하여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그것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고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설교자의 목표는 "강해의 희열이라고 부르는 설교"가 잘 이루어지는 것, 그것 자체가 목표임을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리고 파이퍼 목사님이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 원고를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설명합니다. 

* 강의 내용

존파이퍼 목사님은 일단, "철저하게 원고를 full text로 쓰는" 스타일입니다. 40년 동안 목회하면서 거의 원고를 가지고 설교를 했다고 말합니다. 왜 굳이 그렇게 해야 했는가? 무려 여섯가지의 이유를 언급합니다. 

첫째로, 원고를 작성하지 않으면, "설교의 논리적인 선명함"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원고를 쓰지 않으면, 본문의 흐름, 논리적인 구성 등등이 선명하게 설교자 자신에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둘째로, 원고를 작성하면서,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파이퍼 목사님은 단순히 많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글을 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잘 연결되는 단어와 문장 그리고 흐름들을 만들어서 성도들이 따라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설교자 자신도 설교 자체를 잘 볼 수 있고 잘 이해하게 됩니다.

셋째로, 원고를 작성하면,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개요에 들어 있는 단어들만으로는 설교자가 그 내용을 느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주일 설교를 생각하면서, 그것들을 그때에 사용할 원고들로 작성하면서 "그것의 가치"를 실제로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파이퍼 목사님은 그러한 과정 속에서, 정말 자신이 그것을 느끼고 있는지 주님께 기도한다고 하시네요. 

넷째로, 설교 중에 "특별한 몇몇 문장들은 완벽하게 표현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논쟁이 있는 교리적인 부분을 말할 때에는 더욱 신경을 써서 원고를 작성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칭의에 대한 설명, 그리고 믿음과 행함의 관계 등입니다. 

다섯째로, "상투적이고 뻔한 것"들을 피하기 위해서 입니다. 파이퍼 목사님은 이 부분에서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Spontaneous is overrated", 즉흥이라는 것이 과장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즉흥적인 것이 독창적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곧 틀에 박힌 것을 의미합니다. 충분히 고민하지 않은 것을 즉흥적으로 말하면 결국 상투적인 내용에 빠지게 됩니다. 

여섯째로, "기억력의 한계 때문"입니다. 설교자는 설교 시간 동안 해야 하는 모든 말을 기억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원고를 사용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이퍼 목사님이 원고 때문에 자신의 설교가 약해진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원고를 보지 않으면서, 오히려 다 쓴 원고에 여러 표시를 해두고 마치 개요처럼 원고를 자유롭게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억력이라는 맥락에서 원고가 중요한 이유는, 설교자가 설교 중에 "지금 어디쯤 하고 있는지"를 잊어버릴 때에도, 개요가 아닌 전체를 기록한 원고 덕분에 계속 설교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고를 꼭 쓰라고 강조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무리는, 결국 자기 자신을 알고 설교의 목적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설교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나만의 방법들을 찾아야하고 결국 그런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설교의 목적을 잘 이루는 것이 설교자의 목표임을 알려주면서 강의가 마무리가 됩니다. 


* 강의를 통해 배운 것과 적용할 것


제가 이 강의를 통해서 크게 감동받은 두가지는, 첫째로 파이퍼 목사님의 "철저한 준비성"입니다. 평생을 목회하면서 원고를 쓰지 않은적이 거의 없었다라는 고백은 저에게 큰 충격입니다. 왜냐하면 원고를 매번 쓴다는 것은 정말 큰 고통이고 또 동시에 엄청난 시간을 사용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존파이퍼 목사님 정도 지명도를 가지면 삶이 얼마나 바쁠까요? 그러나 적어도 이분에게 있어서 "삶의 우선 순위"가 설교에 있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고백입니다. 


또 하나 크게 배운 것은, "설교의 목적"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 역시 지금까지 고민은, 내가 원고를 쓰느냐 아니냐, 혹은 이걸 더 줄여서 개요로 만드느냐 그렇게 하지 않느냐 이것에 더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설교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다면" 자신만의 방법을 얼마든지 써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그것이 때론 설교의 자유로움을 다소 막는다 하더라도, 원고를 다 써서 그것을 최대한 읽고 연습하는 현재의 저의 설교 형태가 설교의 목적을 이루는 충분히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설교 원고를 써야 "설교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하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설교를 느낀다는 표현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는 설교자인 제 자신이 그렇게 되기를 원하고, 설교를 듣는 성도님들도 함께 저의 설교를 느끼기를 원합니다. 


저는 저의 부족함 때문에, 단순히 원고를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느끼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원고를 소리내어서 읽고 연습하면서 최소 다섯번 정도 이상을 연습하면 그때서야 제 마음에 그 내용의 깊이가 충분히 들어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의 경우에는, 원고를 충실하게 쓰고 연습하여서 그 원고 내용을 완전히 느끼는 것을 설교 완성의 목표로 해야 함을 다시 한번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투적인 것을 피한다"라는 부분도 굉장히 좋았습니다. 저는 세상에 천재가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다만 만나기 어려울 뿐입니다. 당연히 천재는 즉흥적인 이야기도 얼마든지 감동적인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저와 대부분의 설교자는 천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충분히 준비하고 잘 작성된 원고가 있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고, 설교의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설교의 지루함과 식상함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당연히 원고를 잘 작성해야 한다는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깊은 내용이 안 나올 것 같은 강의였지만, 깨닫는 바가 많았던 의미있는 강의였습니다. 앞으로도 목회를 하는 동안 충실하게 원고를 쓰고, 그것을 연습하고 느끼고 그리고 영광스러운 설교의 목적을 탁월하게 달성하고자 하는 결심을 해봅니다. 


* 존 파이퍼 "설교 클리닉" 전체 글 모음 / "설교의 대가"에게 설교를 배우라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3/blog-post_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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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9일 목요일

존 파이퍼 "설교 클리닉" 전체 글 모음 / "설교의 대가"에게 설교를 배우라

 


저는 성도이기 때문에, 배움을 좋아합니다. 우리의 삶의 전체 여정은 배움의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가 주님 안에서 자녀로 살아가는 동안 수 많은 가능성들을 우리 안에 허락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존재들이며,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그분의 성품이 우리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을 삶의 목표로 받았습니다. 가슴 벅차는 삶의 목적입니다.

"대가"란 어떤 사람일까요? 한 영역 안에서 경지를 이룬 사람을 우리는 대가라고 부릅니다. 누구도 범접하지 못한 탁월한 수준에 다다른 그 사람을, 우리는 대가 라고 부릅니다. 배울 수 있다면, 대가에게 배워야 합니다. 인생을 낭비할 이유가 없습니다. 가장 탁월한 사람, 그 분야를 깊게 들어간 사람에게 배우는 것이야 말로 배움의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입니다. 

목회자가 설교를 잘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목회자의 삶의 거의 전부이며 사명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그런 갈망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의 목회의 황금기를 준비하면서 존파이퍼 목사님 같은 분을 만난 것은 하나님의 큰 축복입니다. 자신의 설교에 대한 모든 정수를 담아서 32편의 강의를 공개해 주셨습니다. 

존파이퍼 목사님의 강의를 개인적으로 분석하고 공부하면서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깊게 공부하고 그 내용을 저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실제 설교와 연결하기 위해서 부단히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설교 때 마다 깨닫고 있습니다.

사실, 그저 목사님의 얼굴을 눈을 보는 것만으로도 은혜가 됩니다. 성경적이며 개혁주의적이며 또 너무나 따뜻하고 지혜가 풍성합니다. 연로하시지만 눈에서는 빛이 나옵니다. 하늘의 별을 마치 눈에 담은 것과 같습니다. 진리를 담고 선포하는 자의 얼굴입니다. 그리고 한마디 한마디가 저의 설교에 있어서 결정적인 도움과 양분이 됩니다. 

공부하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계속 진행중입니다. 이 공부는 다른 사람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제 자신을 위한 배움입니다. 어떤 것이 이제 필요하니 내가 공부하겠다라는 것은 하수의 생각입니다. 우리는 기회가 주어질 때에 그 기회를 위한 준비가 이미 마쳐진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목회자에게 설교에 대한 공부는 가장 시급한 것이며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바라기는 저의 짧은 글들과 공부가,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목회자들이 함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이 선포되는 일에, 그분의 전령으로서 주님의 나라의 일에 쓰임 받는 그 충만한 기쁨의 사역에 함께 힘을 모으기를 원합니다.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_설교는 위대한 일입니다
(Lecture Introduction: Preaching Is a Great Thing) / 출애굽기 35장 20-29절 설교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 _1강 설교자 만들기(Lecture 1: The Making of a Preacher)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0/1.html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_ 3강 설교란 무엇인가?
(Lecture 3: What is Preaching?) / 출애굽기 39장 22-43절 설교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_ 4강 강해란 무엇인가?
(Lecture 4: What Is Expository?) / 사사기 2장 11-23절 설교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1/lecture-4-what-is-expository.html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_ 5강 희열이란 무엇인가?
(What is exultation?) / 사사기 6장 1-10절 설교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_ 6강 설교는 예배다
(Lecture 6: Preaching Is Worship) / 사사기 9장 1-6절 설교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1/6-lecture-6-preaching-is-worship-9-1-6.html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릭닉_7강 기적을 행하기
(Acting the Miracle) / 사사기 16장 15-31절 설교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2/7-lecture-7-acting-miracle.html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_8강 본문 선택하기
(Choosing the Text) / 요한복음 6장 41-59절 설교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1/8-choosing-text.html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 _9강 설교를 준비하기
(Sermon Preparation) / 요한복음 8장 21-30절 설교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1/9-sermon-preparation-8-21-30.html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 _ 10강 설교 구성하기
(Lecture Introduction: Preaching Is a Great Thing)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8/10-lecture-introduction-preaching-is.html

* "존 파이퍼 목사님"의 "공식 무료 설교 서비스"가 시작되었습니다
- Sermon of the Day & DesiringGod & Olivetree & Logos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2/sermon-of-day-desiringgod-olivetree.html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_ 11강 설교문인가 기억력인가?
(Lecture 11: Manuscript or Memory?)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3/11-lecture-11-manuscript-or-memor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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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22일 월요일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 _ 10강 설교 구성하기 (Lecture Introduction: Preaching Is a Great Thing)

 

* 이전 글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 _9강 설교를 준비하기
(Sermon Preparation) / 요한복음 8장 21-30절 설교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1/9-sermon-preparation-8-21-30.html

이번 강의는, 실제적인 설교 준비를 위한 파이퍼 목사님의 강의입니다.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열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원어 혹은 문자적인 영어 번역본을 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종이에 적으라고 말씀합니다. 종이에 적어야 하는 이유는, 적으면서 더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다른 방법들도 있겠지만 파이퍼 목사님은 이것이 자신의 방법이라고 소개합니다.

이렇게 생각을 적으면서 본문 전체를 시도한 다음에는, 단어 그리고 구절들에 대한 최종적인 다양한 생각의 결과물을 앞에 놓고 이제는 큰 그림 안에서 그것들을 전체적으로 보면서 서로의 개념들을 연결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적인 그리고 전체적인 관찰과 생각의 정리를 통해서, 설교자가 주장하고 싶은 핵심 요점 혹은 설교에 사용할 구조적인 순서를 볼 수 있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이러한 준비의 “최종적인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단어와 구절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리고 본문의 논리적인 연결을 이해함으로써 "본문의 핵심 포인트"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예를 위해서 야고보서 120절을 놓고 설명합니다.

야보고서 1:20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1:20 for man's anger does not bring about the righteous life that God desires.

먼저 실제 설교 준비는 단어의 의미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먼저 “란 무엇인가에서 시작해 봅니다. 특히 다른 성경에서의 의의 개념이 아니라, 본문의 컨텍스트인 야고보서 안에서 의의 개념을 먼저 생각해보라고 조언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로 하나님의 의라는 문구의 의미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로 본문의 문맥에 따라서 본문 앞에서는 어떻게 말하였는가를 살펴봅니다. 다시 말해서 본문의 논리적인 연결 구조를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연결 구조까지 이해하게 되면, 실제로 설교 때에 단순히 라는 단어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이 말씀의 구조와 논리적인 이유를 성도들에게 말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결과는 결국, 먼저 생각을 정리하고 그것들을 연결하는데서 나온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물어야 할 것은 본문의 핵심 요점이 무엇인가?”라고 설명합니다. 먼저 파이퍼 목사님은, 본문의 핵심 요점이라는 것은, "본문 안에 있는 모든 것들로 인해서 설명되거나 혹은 뒷받침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중요한 질문이 등장합니다. 저 역시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집중해서 강의를 들었습니다. “설교의 핵심 요점이 반드시 본문의 핵심 요점과 같아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 파이퍼 목사님은 아니다라고 답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로마서 115-17절을 예로 듭니다.

로마서 1: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15 That is why I am so eager to preach the gospel also to you who are at Rome.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16 I am not ashamed of the gospel, because it is the power of God for the salvation of everyone who believes: first for the Jew, then for the Gentile.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개역개정) 1:17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NIV)

이 본문에서, 바울 사도가 사용한 네 가지 진술문들은 모두 나는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노라라를 뒷받침 한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사용한 논리 구조이고, 결론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원하는 것이 본문의 구조상 핵심 요점입니다.

그런데 파이퍼 목사님은 여기에서, 아주 흥미로운 주장을 펼칩니다. 그것은, “핵심 요점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들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핵심 요점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핵심 요점을 너무나 중요한 것들이 뒷받침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서 이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난다는 사실, 구조적으로 핵심 내용인 복음에 대한 바울의 열정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모든 설교가 본문의 핵심 요점을 설교해야 한다고 당신이 주장한다면, 오히려 덜 중요한 것을 설교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제 관점에서는 설교의 구성에 있어서 굉장히 혁신적인 이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파이퍼 목사님은, 설교의 핵심 요점이 본문의 핵심 요점과 동일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파이퍼 목사님은 주어진 이 본문에서 설교를 한다면, 구조적으로 핵심 요점을 받쳐주는 여러 내용들 모두가, 사실은 여러 개의 설교의 핵심 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실제 설교 떄에는, 이 본문에서 바울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를 그리고 구조적으로 무엇이 핵심인지를 말해 주어야 한다고 파이퍼 목사님은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서 이 본문에서는 전체 구조를 설명하면서 뒷받침하는 내용이 네가지이기 때문에 네 번의 설교 가운데 그것을 드러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더 놀라운 설명을 덧붙입니다. 파이퍼 목사님은 지금 자신의 청중이 필요한 것을 분명히 설교자가 이해하여야 하고, 청중의 필요에 따라서 핵심 논지 중에서 선택하여 설교의 시간을 더 할애하라고 충고합니다

다시 말해서, 본문의 논리 구조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이야기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자가 처한 각 교회의 청중의 독특성에 따라서 어느 부분을 더 추가로 강조해서 설명할지에 대해서 설교자의 자유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로움에 따라서, 바울이 실제로 성경을 기록하면서 사용한 논리 구조를 정확히 반대로 접근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설교에 대한 일반적인 조언은, 설교 준비를 위한 모든 과정 속에서 “so what?”의 질문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설교를 듣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서, 도대체 이 본문이 어떤 차이를 만들어내는가에 대해서 당신의 청중을 위해서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고민은 어느 정도 수준까지 이르러야 하는가? 거기에 대한 확고한 목표를 제시합니다. “so what 에 대한 깨달음이 너무나 놀랍고 그것을 얼마나 영광스럽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인지를 느끼게 될 때까지” so what 에 대해서 고민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파이퍼 목사님은 설교자들에게 다시 한번 충고합니다. 당신의 설교가 학적이고 현학적일 수는 있겠지만, 이런 절박함은 없을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이 절박함은, 설교자의 태도와 설명과 희열을 통해서 이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청중에게 말하는 어떤 절박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의 과정 속에는 “so what”이라는 질문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 강의는 마무리 됩니다.

이번 강의를 들으면서, 여전히 파이퍼 목사님의 진실함과 탁월함에 감탄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저의 관점에서 정리하지면, 파이퍼 목사님의 설교 구성은 "철저하게 성경적"이지만, 동시에 "철저하게 목회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실용적"입니다

저에게 흥미로웠던 것은, 파이퍼 목사님은 이 강의에서 설교의 초보자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 본문을 앞에 두고 도대체 설교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을 위해서, 종이를 꺼내서 성경을 펴고 생각을 적어나가라고 조언합니다. 이것보다 더 실제적인 이야기가 어디에 있을까요?

파이퍼 목사님의 설교 구성은 매우 성경적입니다. 이분은 성경을 가장 높이고 존중하는 분입니다. 성경의 단어와 어구와 그리고 논리적인 구조를 분석해서 메인 포인트를 이끌어내는 것까지 나아갑니다

그런데 여기서 오히려 지금까지 본문을 붙들고 씨르맿ㅆ던 자신의 노력을 정면을 뒤집는 듯한 주장을 다시 합니다. 그것은 메인 포인트가 아니라 그것을 지지하는 "서브 포인트"들이 너무나 중요한 것이며 "그것들이 중요하다면" 얼마든지 그것을 설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설교자는 청중의 필요에 따라서 그 서브 포인트들 중에서 시간을 더 할애해서 강조할 수도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제가 한가지 크게 깨달은 것은, "설교의 목적"은 "성경 본문의 메인 포인트를 드러내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저도 사실 지금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본문이 말하는 바, 혹은 메인 포인트를 찾고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설교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파이퍼 목사님은 오히려 설교자가 복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설교 본문의 논리적인 메인 포인트가 아니라 더 중요한 것들을 말씀 안에서 찾고 그것을 설교 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물론 성경 논리적인 구조를 설명하면서 전체의 포인트를 짚어 주는 것은 필요하지만, 놀랍게도 파이퍼 목사님은 그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제가 늘 고민하던 강해와 주제 설교의 차이 혹은 긴장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의미에서 파이퍼 목사님의 설교는 철저하게 강해적이지만, 그러나 충분히 그 강해를 바탕으로 주제 혹은 신학적인 강조점을 살릴 수 있는 성경적이면서도 자유로운 탁월한 주제 설교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강의의 흐름상 제가 정말 흥미로웠던 것은, 설교 구성을 강의하시면서 “so what”의 문제를 들고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so what 이라는 것은 철저하게 청중의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포인트는, 만약에 설교자가, “나는 이 설교에서 본문의 의미를 밝히는데 집중하겠다라고만 생각한다면 절대로 그 준비 가운데 so what 이 설 자리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본문을 분석하기만 하는 것은 설교가 아닙니다. 성경 본문의 구조를 순서대로 이야기하는 것도 설교가 아닙니다. 그런 설교는 청중이 설교에서 분리되어 있습니다. so what이 고민되지 않았기 때문에 설교는 우리의 실제적인 삶과 상관이 없어집니다. 

다시 말해서, 그런 설교는 매우 화려하며 학적일 수는 있겠지만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들의 마음에 다가가고 설교자와 청중이 모두 영광스럽게 느끼는 그 어떤 것은 빠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설교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so what을 놓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한 분야의 대가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요? 설교라는 한 분야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탁월하게 안내를 하고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또 누가 있을까요? 감탄하고 혀를 내두르며 빠져서 강의를 들었습니다. 항상 설교 준비는 예술에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파이퍼 목사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더욱 그렇게 느낍니다. 설교는 정말 복잡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복잡하다는 것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앞으로의 저의 설교가 조금이라도 이분의 가르침에 가까워지기를 원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저와 성도님들을 변화시키는 설교가 되기를 원합니다.

* 존 파이퍼 "설교 클리닉" 전체 글 모음 / "설교의 대가"에게 설교를 배우라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3/blog-post_9.html


2022년 1월 29일 토요일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 _9강 설교를 준비하기(Sermon Preparation) / 요한복음 8장 21-30절 설교

 


* 이전 글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_8강 본문 선택하기
(Choosing the Text) / 요한복음 6장 41-59절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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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째 강의는 Sermon Preparation 입니다. 처음에 이 제목을 들었을 때에는, 드디어 뭔가 존파이퍼 목사님의 설교 비법이 등장하는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분만이 가지고 있는 어떤 특별한 설교 준비 방법이 있을까? 그렇게 질문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시더군요. 파이퍼 목사님은 여기서 말하는 설교 준비는, 설교 시작 바로 전에 하는 그런 준비가 아닙니다. 파이퍼 목사님은, 설교에 영향을 주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말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굉장히 진지한 얼굴로, 본인의 한편의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서 40년이 필요했다고 말씀하시네요. 

본인이 청소년 시절 아팠던 바로 그 경험이 설교에 들어가고,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었던 바로 그 경험이 설교에 들어갔다고 말합니다. 결혼 생활의 어려움, 그리고 부모로서의 고민들이 또한 설교에 들어갔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곧,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설교자를 준비시키신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야고보서 4장 17절 부터 인용합니다. 

야고보서 4: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4:13 Now listen, you who say, "Today or tomorrow we will go to this or that city, spend a year there, carry on business and make money."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4:14 Why, you do not even know what will happen tomorrow. What is your life? You are a mist that appears for a little while and then vanishes. 4: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4:15 Instead, you ought to say, "If it is the Lord's will, we will live and do this or that."

말씀을 인용한 이후에, 사람의 존재가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십니다. 우리는 미래를 알지 못합니다. 잠깐 후에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라고 고백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 말씀을 바탕으로, 파이퍼 목사님은 사람의 삶이라는 것은 "연기와 같은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삶의 실재를 깨닫는 것"이야 말로, "설교자가 말하는 그 내용"을 빚어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인간의 삶에 대한 실재의 경험이, 바로 설교를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15절에서 "말하기를" 이라는 부분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면서 파이퍼 목사님의 야고보서 4장 13-15절에서 뽑아낸 원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삶, 그리고 모든 실재에 대한 경험이 설교자가 말하는 설교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의 고통의 경우에, 파이퍼 목사님은 그것을 꺼려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그러면서 마틴 루터가 설교를 준비하는데 있어서 세명의 위대한 스승이 있다고 말한 것을 인용합니다. 그것은 기도, 묵상, 그리고 고난입니다. 모든 설교에 있어서 위대한 신학교가 바로 고난입니다. 그리고 루터가 인용한 시편 119편 71절을 인용합니다. 

시편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119:71 It was good for me to be afflicted so that I might learn your decrees.

고난을 당하였기 때문에, 고난 당한 설교자가 전하는 바로 그 내용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 준비는 고통을 찾아 나서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에서 벗어나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경시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주님께서 그 고난이 당신에게 얼만큼 필요한지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1장 6절을 인용합니다. 

고린도후서 1:6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1:6 If we are distressed, it is for your comfort and salvation; if we are comforted, it is for your comfort, which produces in you patient endurance of the same sufferings we suffer.

이것은, 하나님께서 때로는 그들의 목자에게 고난을 주심으로, 목자가 자신의 양들을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를 알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설교자의 고난이, 성도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우리의 설교 준비에 있어서 매우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이런 맥락에서 존 파이퍼 목사님은 또 한 곳을 인용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8-9절입니다. 

고린도후서 1: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1:8 We do not want you to be uninformed, brothers, about the hardships we suffered in the province of Asia. We were under great pressure, far beyond our ability to endure, so that we despaired even of life. 1: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1:9 Indeed, in our hearts we felt the sentence of death. But this happened that we might not rely on ourselves but on God, who raises the dead.

여기에서 파이퍼 목사님은, 설교자가 부활을 설교 할 때에는 고난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진심어린 마음이 있어야 하며, 그래야만 부활에 대해서 설교할 때 꾸며서 억지로 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설교자를 죽음의 문턱으로 이끌고 가셔서, 그 이후에 설교자는 부활에 대해서 제대로 설교 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실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결국 어떻게 설교를 준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살아내고, 신뢰하고, 고난을 끌어 안으라"라고 파이퍼 목사님은 대답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조언에 조금 더 설명을 덧붙입니다. 

설교 준비라는 것은 설교자가 읽는 모든 것 그리고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책과 영화 등등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삶의 실재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보아야만 합니다. 

당신은 설교자이기 때문에, 그것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휴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소설 속의 가공된 삶을 혹은 길에서 발견하는 또 다른 사람들의 삶을 설교자의 마음 속에 가져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설교자가 삶의 충만한 그 실재 그리고 신적인 실재를 이해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어느 공간으로 들어가든지 간에 사람들에 대하여 무심해서는 안되며, 사람들의 행동, 동기, 그들이 보는 것,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가지는지 등등에 대해서 반드시 보고 공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이 아니라 실제 사람을 만나고 알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설교자가 잘 알아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사람은, "설교자 자신"입니다. 파이퍼 목사님은 자신이 느끼는 많은 감정들에 대하여서 예를 들어, 동기, 기쁨, 환호, 좌절 등의 역동성에 대해서 자기 자신을 살피고 또 공부함으로써 그 누구를 살피는 것보다 인간에 대하여 더 잘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설교자의 자기 인식이야 말로, 절대적으로 설교 준비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만약 자기 자신을 살피지 못하고, 자기 자신에게 다다르지 못한다면, 그런 설교자는 설교를 해서는 안됩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설교자는 자신의 실상을 모르는 사람들을 향해서 설교하는 것이기 땜눙비니다. 설교자 자신의 교만, 두려움 등등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자신을 알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고 조언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단순히 세상과 사람과 자기 자신을 보아야 할 뿐 아니라, 성경을 보아야만 한다고 강조합니다. 설교자는 성경의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성경으로 차고 넘치게 되고 거기에 완전히 빠져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으로 완전히 마음을 적셔야 합니다. 물론 다른 책을 읽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성경이 설교자의 삶을 지배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삶의 모든 것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Kilby Clyde가 C.S. 루이스의 말을 인용해서 책의 제목으로 삼은 것을 알려줍니다. 그것은 "깨어있는 지성 (A Mind Awake)"입니다. 루이스는 모든 것에 있어서 깨어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의 매우 견고하고 또 구체적인 실재들을 엮어서 사람들이 듣기에 너무나 매력적으로 만들어냈다고 설명합니다. 

저도 루이스를 너무 좋아합니다. 단 한줄만 읽어도 마음이 밝아지는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아마 주님 오실 때 까지 가장 영향력 있는 크리스천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루이스의 글이 그렇게 좋았던 이유를, 너무나 명확하게 파이퍼 목사님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루이스는 한마디로 "삶의 모든 실재에 있어서 깨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말씀하는 것은, 설교 예화에 관련된 책을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본인의 세미너리 수업의 일화를 이야기합니다. 모두가 조용한 그 순간에 엠뷸런스 사운드를 듣지 못했던 것을 설명합니다. 누군가가 엠뷸런스 속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을 텐데 그 사람을 태우고 가는 엠뷸런스 소리도 듣지 못했다면 어떻게 설교를 할 수 있겠는가 라고 말했던 교수님의 탁월한 조언을 알려줍니다. 

단순히 예화집만을 가지고서는 사람들의 삶에 다다를 수가 없습니다. 설교자는 이웃의 고통에 대해서 전혀 무관심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자신의 삶의 모든 부분에서 완전히 각성된 상태에서 살아야만 합니다. 삶의 모든 즐거움, 사람들, 자기 자신, 고통, 등등에 있어서 완전히 깨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삶의 모든 것이 설교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며 강의를 마칩니다. 

저는 파이퍼 목사님의 진지한 얼굴을 너무 좋아합니다. 강의를 위한 강의가 아니라, 이분이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 삶의 실재를 꾸밈 없이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강의이며 동시에 진실한 호소라고 생각합니다. 

설교는 참으로 신비한 것이라고 느낍니다. 원래 언어란 것이 신비로운 것입니다. 단어와 단어가 모여서 결국 문장을 만들고 의미를 빚어냅니다. 마치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그런 것처럼 우리의 글 속에는 의미와 힘과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설교는 철저하게 성경적이어야 하지만, 또한 동시에 철저하게 인간적이라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결국 설교의 대상은 성도님들이며 살아있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삶의 실재를 경험하고 있는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설교도 철저하게 인간적이어야 합니다. 

목회자로서 저에게 정말 쉽지 않은 것은, 공감 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공감이 뛰어난 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성도님이 아프고 힘들고 고난 당할 때 함께 울어주시던 어머니의 진실한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회자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읍니다. 여전히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의 마음에는 공감이 부족합니다. 

제 생각에는 고난으로 공감이 생기는 듯 합니다. 석사 과정 중에 허리가 아파서 일주일 동안 누워지낸 적이 있습니다. 그 다음부터 허리가 아프다는 분만 만나면 너무나 공감이 됩니다. 그런 면에서 주님이 설교자에게 주시는 고난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설교의 준비라는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강의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설교 준비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사람에 대한 이해 혹은 삶의 실재에 대한 이해"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심지어 이 강의의 흐름 안에서, 단 한권의 책 성경의 사람이 되는 것 보다 더 먼저 등장한 것이, 사람에 대한 이해입니다. 

사람에 대한 연구가 성경 연구보다 더 앞에 오는 이 강의의 흐름을 놓고, 어느 누가 파이퍼 목사님이 성경을 경시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파이퍼 목사님은 설교를 준비하는데 있어서 사람을 알아가고 사람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그만큼 강조하고 싶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에게는 설교 준비만큼, 때로는 더 중요한 것이 사람과의 만남, 심방입니다. 그리고 독서입니다. 책상 앞에만 앉아서 책만 펴 놓고 있을 때에는 사람을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람에 대한 통찰이 풍부한 책들을 읽을 수 있겠지만, 고난 당하는 누군가를 만나 대화하며 위로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야 말로 사람을 알아가는 가장 중요한 방법입니다. 목회자의 의무이며 특권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이번 강의를 통해 제가 바른 방향으로 목회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요즘 제가 관심있게 보는 책들이 모두 "사람에 대한 책"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북클럽을 학위 논문 주제로 다룰만큼 책을 좋아합니다. 평소에 여러 종류의 책들을 동시 다발적으로 읽어나갑니다. 

하지만 저는 책을 단순히 지식의 확장을 위해서 사용하기 보다는, 사람과 삶의 실재를 이해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번 강의를 통해서 저의 책을 보는 성향과 방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최근에 감동 깊게 읽고 실제로 삶과 설교에 많은 통찰력을 제공해준 책들은 대부분 인간의 삶 자체를 다룬 책들입니다. 삶의 목적, 삶의 의미, 삶의 현실을 다룬 책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책들을 부지런하게 읽는 것은,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 책 어디까지 읽어 봤니? -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 내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서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08/blog-post_6.html

*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 보통 사람들의 전쟁 / 성도에게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의 의미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08/blog-post_30.html

*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 싱크 어게인 / "경청"을 통해서 "다시 생각하도록" 배려하라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2/blog-post_76.html

반복적으로 힘을 써서 심방을 하고 책을 읽고 성경을 묵상하며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 스스로 평가할 때에는 저의 설교에 진실성이 조금은 올라갔구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단순히 성경이 이렇게 이렇게 이야기한다는 논리를 펼치는 것에서 넘어서서, 진실로 우리의 삶의 실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고민이 아무래도 설교에 묻어 나오는 듯 합니다. 

특별히 최근에 했던 새벽 설교에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에 대하여 깊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목회자로서 성도로서 사람들과 대화하며 관찰했던 모든 것이, 삶의 목표와 동기에 대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그 열망이야 말로, 사실상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이해를 가지고 설교를 준비하였습니다. 


파이퍼 목사님의 설교 강의를 저의 삶의 현 시점에서 공부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진실한 눈을 어디에서 볼 수 있겠습니까? 어디에서 이런 강의를 듣겠습니까? 어디에서 이런 진실한 조언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한번 한번의 강의를 영어로 다 듣고 공부하고 확인하고 스스로를 그것에 따라 반추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압니다. 

그러나 오늘 강의를 통해서 강조하신 것 처럼, 우리는 삶의 실재를 살아가야만 합니다. 물러서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고 그 험난한 길을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야만 합니다. 삶의 모든 실재에 있어서 완전히 깨어 있어야 합니다. 제 스스로를 향한 다짐이며 격려입니다. 바라기는 강의를 통해 배우고 익히고 계속적으로 훈련하면서, 성도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그들의 삶의 실재를 보듬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의 설교를 통해서, 누군가가 좀 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존파이퍼 목사님의 설교 클리닉에 대한 분석과 적용은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 _ 10강 설교 구성하기
(Lecture Introduction: Preaching Is a Great Thing)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8/10-lecture-introduction-preaching-is.html

* 존 파이퍼 "설교 클리닉" 전체 글 모음 / "설교의 대가"에게 설교를 배우라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3/blog-post_9.html

2022년 1월 21일 금요일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_8강 본문 선택하기 (Choosing the Text) / 요한복음 6장 41-59절 설교

 


* 이전 글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릭닉_7강 기적을 행하기
(Acting the Miracle) / 사사기 16장 15-31절 설교

한동안 정말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맡겨진 모든 것을 감당하고, 어떤 가치 있는 것을 위해서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스스로에게 늘 질문합니다. 그리고 대답은 항상 한결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계획한 것처럼 매주 하나는 아니지만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여덟번째 강의를 듣고 리뷰해 봅니다. 

누군가 저에게 무엇이 가장 하기 싫은가 라고 물어본다면, 아마도 영어 공부라고 말할 것입니다. 영어로 듣고 쓰고 말하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늦게 공부한 영어는 늘 저에게 큰 부담이며 짐입니다. 

하지만 영어를 하면 할 수록 새로운 장이 열리는 것을 느낍니다. 한글로 굳이 거쳐서 번역하지 않고 느끼고 이해할 때에 찾아오는 어떤 쾌감이 있습니다. 기적적인 감동들을 경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길이지만 매일 포기하지 않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TGC코리아에서 파이퍼 목사님의 강의를 번역해 주신 것은 저에게 큰 감사이며 도움이 됩니다. 영어가 크게 어렵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영어 강의를 먼저 여러번 들으시고 또 그 이후에 번역된 강의를 들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먼저 영어로만 열심히 공부하고 이후에 번역을 통해서 나의 부족한 이해를 채우면 됩니다.

파이퍼 목사님의 오늘 강의의 핵심은, 설교를 위한 설교 본문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의 주제입니다. 다시 한번 본인이 강조하는 설교의 정의를 말씀해 줍니다. 그것은 Expository Exaltation 입니다. Expository는 본문의 실제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근거가 될 성경 본문이 필요합니다. 

파이퍼 목사님은 설교를 위해서 오직 하나의 본문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얼마나 많은 본문을 한 설교에서 인용하는가는 강해의 핵심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다만 청중들이, 본문의 말하는 바라고 그것의 실재를 분명히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파이퍼 목사님은 주제 설교 시리즈도 좋다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주제 설교의 그 메시지가 설교자의 생각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제대로 된 해석으로 채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규칙은 보통의 경우에 하나의 중심적인 본문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기 저기 본문을 짧게 요약하면서 끌어와서 설교하는 것 보다, 하나의 본문 안에서 연결해서 꾸준하게 설명하는 것이 성도들에게 훨씬 든든한 바탕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야 신뢰도 면에서 더 올라가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설명(elucidation)과 확증(confirmation)을 위해서는 부분적으로 여러 성경 말씀을 인용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본문의 길이는 어떠해야 할까요? 여기에 대해서 파이퍼 목사님은 굉장히 자유로운 분으로 보입니다. 짧은 본문에서 의미를 완전히 짜낼 수도 있고, 혹은 긴 본문을 통해서 하나의 챕터나 성경 한권에 대하여서 큰 틀을 보여줄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본인은 로마서에서 단지 두 절로 여섯번의 설교를 한 적도 있고, 혹은 선지서 설교에서는 한 권의 성경을 하나의 설교로 소화한 적도 있다고 말합니다. 다만 거기에서 고민했던 것은 그 성경에서 도대체 무엇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지를 고민했다고 말합니다. 

혹은 욥기 전체를 다섯 번의 설교로 끝낸 적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분량에 대한 결론으로서, 본인은 작은 본문을 아주 세세하게 설교하는 것과 큰 덩어리로 성경 한권 혹은 챕터를 설교 하는 것이 다 의미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설교 본문 자체"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 먼저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성도들을 영적으로 강하게 하고 싶은데 그들을 위한 어떤 본문이 가장 좋은지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해야 합니다. 첫째로, 과연 설교자 마음 안에서 불타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당신의 마음을 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질문해야 합니다. 그리고 둘째로, 청중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질문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전체 구원의 경륜 가운데, 나의 사역 속에서 설교하지 않은 부분이 있는지 살펴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에 파이퍼 목사님은 사도행전 20장 27절을 인용합니다. 

사도행전 20:26-27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개역개정) Therefore I testify to you this day that I am innocent of the blood of all, for I did not shrink from declaring to you the whole counsel of God (ESV)

넷째로, 지금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세상의 어떤 세상의 이슈들을 이야기할 때에 정작 설교에서는 그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고 아쉬워합니다. 설교자는 설교 본문을 정할 때에 세상의 이슈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 질문은 교회의 장로들 지도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 입니다. 파이퍼 목사님은 본인의 경우에 신뢰할 만한 장로님들에게 원하는 설교 주제 등에 대해서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보고 그것을 종합했다고 제안합니다. 

마지막으로 파이퍼 목사님이 제안하는 것은 설교를 성경 전체를 설교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교회에 필요한 주제들에 대해서 설교하라고 제안합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이유는 첫째로는 설교자들의 짐을 덜어주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설교자가 낯설지만 다루어야 하는 어려운 내용들을 다루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셋째로는, 그것을 통해서 성도들이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책임을 알게 해 줍니다. 성경 전체가 유익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는, 설교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본문만 다루는 것을 막아 주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파이퍼 목사님은 "전체의 하나님의 경륜"에 대해서 강조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일하심의 전체를 성도들이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이라는 거대한 틀을 성도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반석처럼 성도들이 그 위에 설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가장 기본적인 것은, 하나의 본문이든 여러 본문이든, 길든 짧든 상관 없이 설교자가 말하는 모든 요점은, 본문에서 그 의미와 실체를 얻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강의를 마칩니다. 

이번 강의를 들으면서 실제로 얻은 것은, 적어도 전형적인 강해 설교이든 주제 설교이든,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의 본문을 기본으로 하여서 설교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여기에 어떤 긴장이 있는 듯 합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설교할 때에 꼭 거기에 맞는 본문을 찾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여기 저기에서 관련이 있는 성경 구절을 가지고 설교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하지만 적어도 파이퍼 목사님은 그렇게 하기 보다는 기본적인 본문을 꼭 정하는 것이 좋다고 제안합니다. 파이퍼 목사님의 주제 설교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데, 추후에 한번 찾아서 연구해 보아야겠습니다.

또 하나 제가 얻은 유익은, 성경 전체를 설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사실 이런 면에서는 너무 작은 본문에 얽매여서 하는 것은 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본인의 설교 기회가 많아서 많은 다양한 본문을 다룰 수 있다면 아주 작은 본문도 좋겠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합니다. 보통의 부사역자의 경우에는 한주에 한번 정도를 설교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한주에 두번 정도의 설교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가급적 아주 작은 본문 보다는, 의미상 나눠지는 적당한 수준의 여덟에서 스무절 정도의 본문을 가지고 설교하는 것이, 파이퍼 목사님이 말씀하는 하나님의 전체 경륜을 다룰 수 있도록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아쉬웠던 것은, 파이퍼 목사님이 제안한 것처럼 설교 본문을 정하고, 그 본문을 중심으로 다른 본문들을 인용하면서 설교를 끌어나갈 때에, "과연 어느 정도로 인용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부분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제가 아직 전체 강의들을 다 들어 보지 않아서 혹시 이후에 언급하실지도 모르겠네요. 

왜냐하면 실제로 설교하는 입장에서기본적인 본문을 설명하면서 "추가로 그것을 설명하고 확증하는 과정"은 매우 실제적인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접근할 때에, 과연 몇구절 정도, 그리고 과연 몇군데 정도가 적절한가는, 실제 설교자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저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퓨전 설교"의 형태에서는, "아주 간략하게" 다른 본문의 구절들을 인용합니다. 최대한 간략하게 배경이 필요하면 넣고 길어야 세 네구절 정도 그리고 많아야 두군데 본문 정도에서 인용합니다. 왜냐하면 설교의 집중력이 결국 제가 "지금" 설교 하고 있는 본문에서 흩어지지 않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아래 설교를 통해서 제가 하나의 본문에 집중하면서 아주 간략하게 다른 성경 구절을 후반부에 인용하는 실제의 예를 보실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파이퍼 목사님은 매우 도전적인 목회를 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 그분도 피하고 싶은 본문도 있고, 본인이 선호하는 본문도 있었겠죠. 하지만 무엇이 옳은가 방향을 잡고 그것을 위해서 도전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강의에서도, 어떤 본문도 피하지 말고 설교함으로, 성도들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을 수 있도록 하게 하라고 강하게 권면할 수 있었겠습니다.

당장 오늘 들은 강의를 모두 적용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앞으로 담임 목회를 생각하면서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탁월한 지혜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또 한번 파이퍼 목사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존파이퍼 목사님의 설교 클리닉에 대한 분석과 적용은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 _9강 설교를 준비하기
(Sermon Preparation) / 요한복음 8장 21-30절 설교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1/9-sermon-preparation-8-21-30.html

* 존 파이퍼 "설교 클리닉" 전체 글 모음 / "설교의 대가"에게 설교를 배우라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3/blog-post_9.html

2021년 12월 3일 금요일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릭닉_7강 기적을 행하기(Acting the Miracle) / 사사기 16장 15-31절 설교

 


* 이전 글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_ 6강 설교는 예배다
(Lecture 6: Preaching Is Worship) / 사사기 9장 1-6절 설교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1/6-lecture-6-preaching-is-worship-9-1-6.html

파이퍼 목사님의 설교 수업은, 내용이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라는 강의가 아니라, 설교에 대한 정의에서부터 시작하여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방식과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아주 탄탄한 유기적인 논리 가운데 강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의 내용을 바탕으로 시작합니다. 설교가 예배라면, 다시 말해서 그것이 영적인 것을 보고, 맛보고, 표현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성령님께서 일하시고 만들어가시는 것이라면, 어떻게 우리가 그것을 이루어야 하는가라고 질문합니다.

이러한 질문은, 설교자의 본질의 한계로 인해서 등장할 수 밖에 없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의 본질이 초월적인 사람들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인데 어떻게 우리가 설교라는 기적을 행할 수 있는가를 질문합니다.

파이퍼 목사님은 첫째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크리스천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 안에 속해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인용합니다.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20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and I no longer live, but Christ lives in me. The life I live in the body,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파이퍼 목사님은, 크리스천의 삶이라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께서 사셔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살아가는 것과, 나의 믿음을 연결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말씀 가운데 그리스도를 신뢰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신앙으로 살아가는 나의 삶 가운데 나타나시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을 우리의 설교 가운데 가지고 들어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의지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하시기 때문에, 설교라는 기적을 행할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우리가 설교라는 기적을 어떻게 행하는가에 대한 두번째 답으로 고린도전서 15장 10절을 제시합니다. 

고린도전서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15:10 But by the grace of God I am what I am, and his grace to me was not without effect. No, I worked harder than all of them--yet not I, but the grace of God that was with me.

파이퍼 목사님은 이 말씀에서, "내가 누구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지만 그것은 내가 아니었고,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였다" 라는 것이 바로 설교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설교자는 내가 하기는 했지만 이 설교는 내가 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이것을 어떻게 행해야 할까요? 여기에서 파이퍼 목사님은 자신이 사용하는 설교 전의 일종의 과정을 상세하게 알려줍니다. 먼저 본인의 교회에서 설교 전 기도 시간에 가장 많이 인용되었던 베드로전서 4장 11절을 인용합니다. 

베드로전서 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4:11 If anyone speaks, he should do it as one speaking the very words of God. If anyone serves, he should do it with the strength God provides, so that in all things God may be praised through Jesus Christ. To him be the glory and the power for ever and ever. Amen.

여기에서 "말하려면"이라는 것을, 파이퍼 목사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설교에 적용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설교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원리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설교에 실행할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해서 파이퍼 목사님은 이미 자신이 다른 곳에서 소개했던 APTAT를 설명합니다. 파이퍼는 이 전략에 대해서 소개할 때에, 사람들이 자신에게 궁금해했던,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께서 파이퍼 목사를 통해서 설교하셨는가에 대한 가장 소중하고 값진 방법이라고 소개합니다. 

먼저 APTAT는 설교 바로 전에 일분 전에 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물론 설교 몇시간 전에 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것은 설교 직전에 행하는 파이퍼 목사님의 정신적이고 영적인 중요한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1. Admit (인정하라) : 하나님 앞에 인정해야 합니다. 인정의 내용은 이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나는 숨을 쉬거나, 사람들을 먹이거나, 느끼거나, 청중을 구원하거나 그들을 성화시키거나,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거나, 병든자를 치료하거나, 탕자를 돌아오게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제가 마음에 원하는 그 어떤 영적인 가치를 가진 것도, 저의 힘으로는 행할 수가 없습니다. 

파이퍼 목사님은 이렇게 인정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요한복음 15장 5절 말씀을 인용합니다. 

요한복음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15:5 "I am the vine; you are the branches. If a man remains in me and I in him, he will bear much fruit; apart from me you can do nothing.

다시 말해서 설교자는, 주님이 없이는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라고 강조합니다. 

2. Pray (기도하라) : 그리고 실제로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가? 이렇게 기도하라고 알려줍니다. 

하나님, 당신이 지금 저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주님이 저를 채워주심으로 담대함과, 겸손함과, 청중에 대한 사랑과, 자의식으로 부터 자유를 주시고, 모든 교만을 물리쳐주시고, 사람들을 회심시킬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치유의 능력과 화해시키는 능력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이 부분에서는, 지금 청중의 구체적인 상황을 놓고, 그리고 설교자 개인의 상황에서 설교에 집중하기 어려운 것들을 놓고, 이 문제들을 뛰어넘어서 하나님께서 설교 가운데 능력 주시기를 기도하라고 조언합니다.

3. Trust (신뢰하라) : 파이퍼 목사님은 이 부분이 굉장히 결정적이라고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파이퍼 목사님이 여기서 말하는 신뢰라는 것은, 선하신 하나님에 대한 희미한 혹은 애매한 신뢰가 아니라, 하나님의 특정한 약속에 대하여 특별히 신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신뢰를 가지기 위해서는 당연히, 설교자는 바로 이 순간에 사용할 자기의 머리 안에 저장해 놓을 약속들을 찾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예로써 이사야 41장 10절을 듭니다. 

이사야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41:10 So do not fear, for I am with you; do not be dismayed, for I am your God. I will strengthen you and help you; I will uphold you with my righteous right hand.

파이퍼 목사님은 이 Trust 파트를 굉장히 강조합니다. 설교 해야 하는 바로 그 순간에 진정한 이슈는, 설교자가 과연 이것을 진실하게 믿는가 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사야 55장 10절과 11절을 또 다른 약속으로 인용합니다. 

이사야 55:10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55:10 As the rain and the snow come down from heaven, and do not return to it without watering the earth and making it bud and flourish, so that it yields seed for the sower and bread for the eater, 55: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55:11 so is my word that goes out from my mouth: It will not return to me empty, but will accomplish what I desire and achieve the purpose for which I sent it.

파이퍼 목사님은, 과연 설교자가 신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때에, 그것이 결코 헛되게 돌아오지 않을 것을 진정으로 믿는가라고 심각하게 질문합니다. 그리고 만약 그것을 믿는다면, 설교자의 자유로움, 담대함, 그리고 기쁨 가운데 어떤 기적적인 것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파이퍼 목사님은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약속이라며 하나를 더 추가합니다. 로마서 8장 32절 말씀입니다. 

로마서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8:32 He who did not spare his own Son, but gave him up for us all--how will he not also, along with him, graciously give us all things?

파이퍼 목사님은 이 약속을 매우 소중하게 여깁니다. 왜 이 약속이 항상 너무나 소중한 것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곧 설교해야 하는 바로 이 상황에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의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혈을 흘리신 그것에 달려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 순간에, 설교자 자신이 그 자리에 서기에 가치 없다고 마귀가 설교자를 공격할 때에, 설교자는 자신의 위대함이 아니라 영원한 가치를 지니신 그리스도의 피가 이루신 그 약속에 의거하여, 그 피로 덮여진 설교단에서 설교 할 수 있음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파이퍼 목사님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설교자의 메시지와, 그의 믿음과, 예배에서 일어날 모든 선한 것을 구속하셨음을 강조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보혈이라는 궁극적인 약속의 성취에 의지하여 설교하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설교단에 올라갑니다. 

4. Act (설교하라)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설교를 하면 됩니다. 그리고 만약 설교 단에서 흔들릴 때에, 혹시라도 자의식에 사로잡히거나 혹은 설교 원고가 기억나지 않을 때에, 작게 아주 짧게라도 순간 순간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기도하면 된다고 조언합니다.

5. Thank (감사하라) : 그리고 설교가 다 끝난 다음에 내려오면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조언합니다. 설교자가 여전히 살아있고 숨쉬고 있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설교를 통해서 어떤 일을 하실 것을 감사하면 된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설교의 기적을 행하는 파이퍼 목사님의 전략이라고 마무리를 합니다. 

요즘에 제가 자주 느끼는 것은, 동일한 말이라도 "누가 말하는가"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들린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파이퍼 목사님이 제시하는 이 방법은 누구라도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파이퍼 목사님의 강의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체험과 진실함이라는 측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이번 강의는 참 쉽지가 않았습니다. 책으로 읽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뉘앙스를 포함한 영어 해석에 대한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여러번 들었지만 완벽하게 이해 못한 부분도 여러 곳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파이퍼 목사님 입장에서는 쉽게 암기하라고 약자로 만들어주셨지만, 영어권이 아니기 때문에 저는 암기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핵심 내용은 마음에 충분히 남았습니다. 설교자가 설교라는 기적을 행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나를 인정해야 하고, 그리고 채우시기를 간구해야하고, 그리고 약속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의 실채를 드러내어 그것을 가지고 설교할 때에, 그것이 헛되게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정말 신뢰하는가? 라는 그 질문 앞에서 마음이 부끄럽고 숙연해졌습니다. 왜냐하면 의도한적은 없었지만 제 마음의 아주 깊은 아주 깊은 어떤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도 그것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다는 것을 이번에 분명하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저도 설교 전에 파이퍼 목사님이 조언하시는대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신뢰하기 시작했습니다. 설교 중간 중간에 흔들릴 때 마다, 작게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설교에 대한 확신, 말씀을 전하는 자로서의 태도가 많이 달라진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기적이라는 설교를 감당하기 위하여, 좀 더 변화된 태도로 임한 저의 사사기 설교입니다. 

설교가 하나님의 기적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기 원합니다. 나의 무가치함을 인정하고, 능력 없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전적인 도우심을 구하며, 말씀의 능력을 믿으며, 감사로 영광을 돌리는 설교자로 살기를 소원합니다. 

존파이퍼 목사님의 설교 클리닉에 대한 분석과 적용은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_8강 본문 선택하기
(Choosing the Text) / 요한복음 6장 41-59절 설교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1/8-choosing-text.html

* 존 파이퍼 "설교 클리닉" 전체 글 모음 / "설교의 대가"에게 설교를 배우라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3/blog-post_9.html

2021년 11월 29일 월요일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_ 6강 설교는 예배다 (Lecture 6: Preaching Is Worship) / 사사기 9장 1-6절 설교

 


* 이전 글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_ 5강 희열이란 무엇인가?
(What is exultation?) / 사사기 6장 1-10절 설교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1/5-lecture-5-what-is-exultation-6-1-10.html

파이퍼 목사님은 "설교가 예배"라고 말합니다. 일단 강의를 듣기 전에 질문이 생겼습니다. 도대체 설교가 예배라는 것이 무슨 뜻이지? 혹시 설교 가운데 오직 하나님만 높아지셔야 한다는 의미인가? 그런 질문 의식을 가지고 강의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파이퍼 목사님은, "무엇이 설교가 아닌가"에서 강의를 열기 시작합니다. 설교는 단순히 기독교의 절기 예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하는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설교"가 바로 "예배"입니다. 

파이퍼 목사님은, 본격적으로 논리를 전개하기 위해서, 본인이 정의했던 설교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갑니다. 그것은 Expository Exultation 입니다. Expository는 성경의 실재를 명백하게 드러내어서 그것을 청중들에게 분명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Exultation은 그 실재가 가지고 있는 그 가치에 대하여서 적절한 감정을 경험하며 구체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러한 정의를 바탕으로, 과연 예배는 무엇이며, 이러한 파이퍼 목사님이 정의한 설교의 정의와 예배가 실제로 어떻게 겹치게 되는지를 설명합니다. 

여기서 제가 깨달은 것은, 파이퍼 목사님이 "설교는 예배이다" 라는 의미는 결국 "예배가 가지고 있는 동일한 요소를 설교가 동일하게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럼 계속 갑니다. 

먼저 파이퍼 목사님은, "예배가 무엇인가"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가지신 그 가치를 "보고", "맛보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파이퍼 목사님은 이 세가지 단어를 통해서, 예배와 설교가 어떤 떨어질 수 없는 긴밀함을 가지고 있음을 설명합니다.

첫째로, 예배 가운데 본다는 것은, 영적으로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성경에 신실하게 근거한 설교를 들을 때에, 거기에는 어떤 "분명하고도 구분되는 스스로 그것이 진정한 것임을 보여주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영적인 통찰력"이 존재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무한한 아름다움과 가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 파이퍼 목사님은 요한복음 1장 14절을 인용합니다.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14 The Word became flesh and made his dwelling among us. We have seen his glory, the glory of the One and Only, who came from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영광이라는 것은, 오직 "은혜와 진리로 가득찬 하나님의 아들"이 가지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직접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 영광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어떤 사람들은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지만 어떤 영광도 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예배는 단순히 "그리스도에 대한 사실"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영적으로 보는 것"에 근거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고린도후서 4장 4절과 6절을 인용합니다. 여기서 파이퍼 목사님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영어로는 "cannot see"에 포커스를 맞춥니다.

고린도후서 4: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4:4 The god of this age has blinded the minds of unbelievers, so that they cannot see the light of the gospel of the glory of Christ, who is the image of God. 4: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4:6 For God, who said, "Let light shine out of darkness," made his light shine in our hearts to give us the light of the knowledge of the glory of God in the face of Christ.

파이퍼 목사님은, 마귀가 한 사람의 마음과 감정을 동요시킬 때에,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을 볼 수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움직이시고 그의 보지 못하는 것을 열어주실 때에, 바로 그 때에 설교 중에 빛이 비취는 것인데, 예수님이 단순한 역사적 인물이나 혹은 신화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스스로를 증명하시는 신적인 영광으로써 그분을 보게 된다고 강조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가치를 보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둘째로 예배 가운데 맛본다 라는 것에 대하여, 마태복음 15장 8절에서 부터 설명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마태복음 15: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15:8 "'These people honor me with their lips, but their hearts are far from me.

이 말씀을 풀어서 설명할 때에, 우리가 주일 예배 시간에 그 자리에 참석하면서도, 찬양하면서도, 그 마음 안에서 그 진리를 맛보고 음미하는 것에서는 얼마든지 멀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씀합니다.

잘못된 예배 가운데 일어나는 이런 일은 청중들이 설교를 들을 때에도 마찬가지인데, 청중은 설교자 자신, 설교의 태도, 설교의 예화, 설교의 논리 등에 매료되거나 좋아할 수 있겠지만, 영적으로는 아무것도 맛보지 않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라는 것은, 단순히 청중이 노래하거나, 기도하거나, 손을 들거나, 무릎 꿇거나 말씀을 읽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영적인 실체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보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세번째로 예배는 표현이다 라는 것은, 우리는 예배로 모여서 찬양하고, 서거나 무릎 꿇음으로써, 그리고 손을 들고, 그리고 성경을 읽음으로써, 죄를 회개함으로써, 혹은 눈물을 흘리면서, 혹은 경외감 속에서 침묵으로 표현을 한다고 설명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방금 이야기한 두가지, 다시 말해서 영적으로 보는 것, 그리고 영적인 것을 맛보는 것이 이루어질 때에, 그제서야 우리가 예배 중에 표현하는 모든 것들이 놀랍고 또 달콤한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예배란 이렇게 세가지로 표현할 수 있다고 파이퍼 목사님은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바로 여기에서, 설교가 어떻게 이러한 예배에 대한 이해에 상응하는지를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설교는 영적으로 보고, 맛보고, 표현하는 것들을 청중들에게 먹이며, 또한 합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설교의 강해의 영역은, 그리스도를 영적으로 알고 보는 것을 영적으로 결합하여서 청중들에게 공급하고 먹이는 것입니다. 설교의 희열의 영역 역시, 그리스도를 영적으로 보는 것 그리고 맛보는 것을을 결합하고 그리고 그것을 더 벅차오르게 만들어서 청중들에게 먹이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사람들은 영적으로 충만한 상태로 예배에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도움을 얻기 위해서 예배에 오는데, 영적인 실재를 보고, 맛보고 그리고 표현하기 위해서 옵니다. 

예를 들어서 예배 중에 찬양은 영적인 각성 그리고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반대로 표현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영적으로 보는 것, 음미하는 것, 그리고 표현하는 것이 바로 찬양을 통해 일어나는 것입니다. 

마치 이런 것 처럼, 설교도 동일하게 영적으로 보는 것, 음미하는 것, 그리고 표현하는 것을 영적으로 깨닫게 하고 일어나게 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설교는 예배 이후에 등장하는 어떤 것이 아니고, 혹은 단순히 예배의 목적도 아니고, 설교 자체가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설교는 놀라운 사건이며, 이것은 초자연적인 것이고 기적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존파이퍼 자신, 그리고 설교자가 어떻게 이런 기적을 행할 수 있는가? 어떻게 설교의 기적을 행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파이퍼 목사님은 이것을 다음 강의 때에 다루겠다고 말합니다.

이번 강의를 들으면서, 다소 복잡한 이야기였다고 느꼈습니다. 특별히 예배의 세번째 요소인 "표현"이라는 측면과, 좋은 설교의 연결성은 거의 드러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매우 선명한 호소였다고 생각했습니다. 파이퍼 목사님이 강조하고 싶은 핵심은, "설교는 결국에는 예배가 가지고 있는 특징과 목적을 동일하게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고, 맛보고, 표현하는 것인데, 설교가 바로 그런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본인은 설교가 바로 예배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강의를 들으면서, 예배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가장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배의 핵심이,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영적으로 보고, 그것을 맛보고, 그것을 표현한다라는 이 정의는 매우 탁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칼빈에서 예배학 수업을 들으면서 예배학에 대한 전문적인 아티클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정말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더군요. 학적인 예배학은 어쩌면 저처럼 평범한 사람들과 많이 멀어져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배의 형태, 예배의 순서, 예배의 중요성 등에 대해서는 많이 이야기하지만, 정작 예배가 정말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가? 예배 가운데 우리의 영혼 속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해서는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선명하게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 파이퍼 목사님의 강의를 통해서, 예배란 무엇인가? 그리고 왜 설교를 예배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하여 정말 탁월한 정의와 그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이번 강의는, 정말 설교는 무엇인가를 보여준 탁월한 강의였습니다. 특별히 예배 속에서 존재하는 설교라는 측면에서, 저는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파이퍼 목사님의 말씀처럼 본문의 실재를 보고, 맛보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설교에서 이것을 잃어버리면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아쉬운 것은, 보통 설교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에, 얼마나 매력적인 예화를 사용했는가? 혹은 얼마나 논리 구조가 탁월한가? 혹은 얼마나 충실하게 본문을 주해했는가? 등이 더 중요한 주제처럼 다뤄질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이번 강의가 설교자로서는 크게 마음에 부담이 되었습니다. 저는 파이퍼 목사님의 강의가 이렇게 이해되었습니다. "설교자가 그리스도의 영광, 말씀의 실재를 보고, 맛보고, 표현할 수 없다면, 당연히 예배는 실패입니다!"

보통 공예배의 시간이 한시간 정도입니다. 그 중에 설교는 삼십분 정도를 차지합니다. 만약 설교자가, 자신의 설교 가운데 그리스도의 영광을 실제로 보고, 영적으로 충분히 맛보고, 그리고 그것을 표현할 수 없다면, 도대체 우리는 예배의 성공을 어디에서 찾아야할까요? 그리고 설교자가 그것을 본 적도 누린 적도 표현한 적도 없는데, 과연 성도들에게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를 향한 비난이 아니라, 제 자신을 향한 무거운 도전이자 질문입니다. 

이 강의를 듣고 설교를 준비하고 실제로 설교하는데 얼마나 마음이 무거웠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정말 할 수 있는 한 혼신의 힘을 다해서 설교하였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며 그것을 담아서, 그리고 제가 영적으로 보고 맛보고 표현하고자 했던 그 내용을 담아서 설교했습니다.


설교 단을 내려오는데 마음이 참 무거웠습니다. 왜냐하면 설교 본문 자체가 너무나 무거운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뉴스에서 이 본문과 유사한 내용이 나왔다면 아마도 저는 채널을 돌렸을 것입니다. 

인간의 야망과 광인과 같은 집단 살인, 그리고 그러한 일이 일어난 세겜이라는 지역의 과거의 영광을 보면서, 인간의 타락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그리고 우리의 영적인 나태함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보여주는 지를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새벽 설교 후에 한 성도님으로 부터 카톡이 왔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는 카톡이었습니다. 영적으로 교만하여져서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제가 설교하는 날이라 설교를 들었다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악한 모습을 깨닫게 하셨다는 카톡이었습니다. 자신이 영적으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신앙 생활 하라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해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마음에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님이 이야기한 바로 그 부분이, 파이퍼 목사님이 설교를 통해서 달성해야만 한다고 말했던 바로 그 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통해서 성도는 영적인 실재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파이퍼 목사님의 진심의 호소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일을 저의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셨음을 알게하셨습니다.

앞으로도 바로 이런 일이 저의 설교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설교자를 포함한 모든 회중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로 그 예배를 드리고, 그 예배의 속성을 그대로 가진 성경적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설교를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존파이퍼 목사님의 설교 클리닉에 대한 분석과 적용은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릭닉_7강 기적을 행하기
(Acting the Miracle) / 사사기 16장 15-31절 설교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2/7-lecture-7-acting-miracle.html

* 존 파이퍼 "설교 클리닉" 전체 글 모음 / "설교의 대가"에게 설교를 배우라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3/blog-post_9.html

2021년 11월 19일 금요일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_ 5강 희열이란 무엇인가? (What is exultation?) / 사사기 6장 1-10절 설교

 


* 이전 글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_ 4강 강해란 무엇인가?
(Lecture 4: What Is Expository?) / 사사기 2장 11-23절 설교

신학을 공부하고 책들을 읽다보면, 수 많은 갈림길을 보게 됩니다.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들이 전부가 아니며, 세상은 정말 넓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곧, 나는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은 매우 유익한 것입니다. 그러나 자칫, 수 많은 선택들 속에서 나를 헤매이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일에 확신을 가지기 보다는 주저하게 만들며, 어떤 것을 끈기 있게 붙들기 보다는 나의 소중한 삶의 궤적을, 수 많은 선택 중에 하나 정도로 폄하하게 될 수 있습니다. 

결국, 목회자는 자신의 길을 하나님 앞에서 선택해야 합니다. 남들이 뭐라고 하더라도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어떤 확신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반드시 평생동안 가야 하는 어떤 길을 발견해야 합니다. 목회는 많이 외로운 것이지만,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내 내면의 외로움 조차 이기게 만들 수 있는 숭고한 목적과 가치를 붙들어야 합니다. 

존파이퍼 목사님의 설교 강의를 들으면서, "차라리 이 강의들을 듣지 않는 것은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그의 강의가,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저를 향한 그분의 호소가, 제가 감당하기 어려울만큼 무게가 있고 또 강력했기 때문입니다.

존파이퍼 목사님을 좋게 보는 사람도 있고 또 그분의 보수적인 신학을 실랄하게 비판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존파이퍼 자신은, 자신이 가야할 길을 확고하게 붙들었고 은퇴하신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소신에 변함이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방향이 성경으로 부터 왔음을 확신하며, 확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진실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의 빛나는 눈이, 저의 마음을 놀라게 하고 또 무겁게 합니다. 그의 실룩거리는 환희, 분노 그리고 갈망의 표정들이 저를 누르는 듯 합니다. 설교자로 가야 할 그 방향을 그의 강의를 통해서 찾았다는 기쁨이 저에게 있지만, 그러나 그 길은 정말 힘들어 보입니다. 특히 오늘 강의가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존파이퍼의 설교 철학은 Expository Exultation 입니다. 우연히 이미 발간된 존파이퍼 목사님의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지금 제가 보고 있는 모든 강의가 바로 이 책을 바탕으로 한 듯 합니다.

* 강해의 희열 (Expository Exultation: Christian Preaching as Worship)
http://duranno.com/books/view/bookdetail.asp?bcod=6761

일부러 책은 아직 보지 않았습니다. 급하게 공부하고 싶은 마음은 없기 때문입니다. MDIV 시절부터 경험했던 쏟아지는 과제와 미처 소화하지도 못했던 수 많은 신학적 내용들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에게 필요한 것은 깊이이지 속도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설교 시리즈를 듣는 처음 순간부터, Exultation을 어떻게 번역하는 것이 좋은가 오래 고민했습니다. 파이퍼 목사님의 번역서에서는 "희열"이라고 번역했네요. 한번 영영사전의 정의를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exult

verb show or feel triumphant elation.

—derivatives exultancy noun exultant adjective exultantly adverb exultation noun exulting adjective exultingly adverb

—origin 16th century (earlier (Middle English) as exultation): from Latin exsultare, frequentative of exsilire ‘leap up’.

Catherine Soanes and Angus Stevenson, eds., Concise Oxford English Dictionary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4).

확실히 평범한 단어는 아닙니다. 저는 사실 지금까지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단어입니다. 영영 사전의 의미는, "승리의 희열감, 기쁨, 의기 양양함" 그런 것이 바로 Exultation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단순히 희열이라는 번역만으로는 파이퍼 목사님의 의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듯 합니다. 

제가 이해할 때에 파이퍼 목사님의 Exultation은 "기쁨, 희열, 감격, 흥분, 두려움, 분노" 등의 "진실한 모든 감정을 포함하는 총체적인 표현"입니다. 그리고 파이퍼 목사님은 이 진실한 감정이, 바로 충실한 말씀 주해로부터 나와야 하는 것임을 오늘 강의를 통해서 강조합니다. 

강의를 시작하면서 파이퍼 목사님은, Exultation은 설교자가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고 자신이 말씀에서 끌어낸 바로 그것이 가지고 있는 그 가치에 대해서, exult over하는 것 혹은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라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서 Exultation은 성경이 가지고 있는 바로 그 가치에 대해서, 그것이 천국이든 지옥이든, 그것이 우는 것이든 혹은 기뻐하는 것이든, 목회자가 바로 그 가치를 감정적으로 구체화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저의 이해로는 쉽게 표현하자면, "성경이 드러내는 바로 그 가치에 대해서, 그것과 동일한 충분한 감정으로 구체화시키는 것"이 바로 Exultation입니다. 

그렇다면 왜 파이퍼 목사님은 설교가 마땅히 이렇게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설교에 희열이 있어야만 하는 이유는 첫째로, 복음을 전하는 전달자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할 때에 희열이 존재해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그리고 성령님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천의 삶과 영원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 지옥과 심판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연결성은, 너무나 큰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모든 성경 본문 그 자체가 너무나 중요한 가치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본질적인 특성에 따라서, 설교가 말씀을 다루기 때문에 그것과 연결된 적절한 감정적인 구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설교에 희열이 있어야만 하는 둘째 이유는, 말씀을 전하는 자(herald)의 특성이 바로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왕이 자신의 너무나 중요한 메시지, 즉 죄를 용서하고자 하는 왕의 갈망과 자비의 메시지를 그의 소식을 전하는 자에게 맡길 때에, 소식을 전하는자가 왕의 마음과 반대되는 태도로 전한다면 그는 신실한 사자가 아닐 것입니다.

만약 신실한 왕의 사자라면, 그의 태도와 그의 감정 가운데, 왕이 말하여서 그가 전하고자 하는 것을 잘 드러내며 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왕의 사자는, 그가 말하는 바에 대해서 지루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파이퍼 목사님은, 지루한 설교자는 거짓말하는 설교자가 틀림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진리를 말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참된 가치를 전하는 것이 전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실재는 가치를 담고 있는데, 그 가치를 말할 때에, 그것에 반대되는 태도로 말한다면 그 사람은 신실한 설교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설교에 희열이 있어야만 하는 셋째 이유는, 설교의 목적 자체가 바로 그 희열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설교의 목적은, 청중들이 영적인 눈으로 본문의 가치를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흡족하게 맛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본 바로 그것을 통해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을 대표하는 사람들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파이퍼 목사님의 이해는 고린도후서 3장 18절에 근거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개역개정) 3:18 And we, who with unveiled faces all reflect the Lord's glory, are being transformed into his likeness with ever-increasing glory, which comes from the Lord, who is the Spirit. (NIV)

만약 이것이 우리의 설교의 목적이라면, 설교자는 당연히 영광을 보고, 맛보고, 영광을 삶으로 드러내는 바로 그 희열을 설교 가운데 경험하고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결론적으로 파이퍼 목사님은, 설교자가 "단순히" 강해적인 메시지를 전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합니다. 그것은 마귀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설교자들을 책망하고 도전합니다. 마귀도 아주 분명하게 성경을 인용하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섬뜩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마귀가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말씀에 희열을 경험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이 부분에서 정말 동의를 하게 됩니다. 절대 마귀는 희열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말씀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설교자가 마귀가 하는 것 처럼 설교하기 원한다면, 분명하게 설명하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면 된다고 심각하게 경고합니다.

하지만 파이퍼 목사님은, 정 반대의 경우도 경고합니다. 그것은 설교 안에 "단순히" 희열만 존재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설교 안에, "강해에 기반하지 않은 희열"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파이퍼가 원하는 것은, 단순히 설교자가 감정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파이퍼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원하는데, "설교자"가 본문의 실제를 보고, 경험하고, 성령으로 변화되어서 "설교자 자신이 바로" 그 본문의 실재 안에서 감정들을(emotions) 경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파이퍼 목사님은, 성경의 실재가 설교자를 각성시키고, 설교자는 그 안에서 영적인 감정들과 애정을 느껴야 하는데, 그것은 진실할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음을 경고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설교자의 설교를 들으면서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금방 눈치챌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리고 파이퍼 목사님은 이 모든 과정이, 전적으로 초자연적인 것임을 우리에게 깨닫게 합니다. 말씀의 실재를 끌어내는 것은, 성령님께서 보여주시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진실한 마음으로 반응하는 것도, 성령님을 떠나서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일이, 설교를 듣는 성도가 앉아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동일하게 일어나는 것도 초자연적인 것임을 말씀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설교 자체가 바로 예배라고 말할 수 있다고 설명하며, 다음 강의를 예고합니다. 

이번 강의를 들으면서, 감격하기도 하고, 간담이 서늘하기도 하고, 울기도 했습니다. 여러번 강의를 듣고 정리한 핵심은, 파이퍼 목사님은 그 누구보다 "설교자 자신이" 본문 안에서 희열을 경험해야만 하는 것을 강조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바로 여기에, 파이퍼 목사님의 진실한 마음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설교자 자신이 본문 안에서 희열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본문의 무한한 무게와 가치를 깨닫고, 그 안에서 감격과 고통과 회개와 눈물과 돌이킴과 반성과 기쁨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사실상 그 사람은 진짜 설교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 역시 차가운 설교에 대한 유혹을 늘 받습니다. 적당히 하고 싶은 유혹입니다. 말씀만 똑바로 논리적으로 전하면 충분하다는 그런 유혹입니다. 말씀을 깊이 묵상해서, 그것이 가진 하나님의 원래의 그 의도를 드러내어 그 안에서 그것을 맛보고 기뻐하고 감격하는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큰 인내와 기도와 희생을 요구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사기 설교를 하면서, 참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파이퍼 목사님의 강의를 듣기 전과는 전혀 다른 태도로 말씀을 대하게 됩니다. 말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찾는 것은 이미 과거에도 익히 알고 있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강의들을 들으면서, 그것이 또 다른 차원으로 깊어졌음을 경험합니다. 계속 저 스스로에게 질문합니다. 나는 정말 본문의 가치가 나의 설교 안에서 드러나고 있는가? 

그리고 강해를 넘어서서, 강해를 통한 희열을 경험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또한 스스로에게 질문합니다. 하나님의 진짜 마음이 나의 설교 안에 들어가 있는가? 나는 정말 하나님의 말하고자 하는 바로 그것을, 하나님의 마음을 충분히 담아서 전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나의 설교를 들으시면서, 정말 제대로 나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고 생각하실 수 있는가? 나는 하나님이 기뻐하실 때에 충분히 함께 기뻐하고, 하나님이 슬퍼하실 때에 충분히 함께 슬퍼하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의 사신으로서 그분의 영광스러운 직분을 감당하고 있는가? 그것을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설교를 준비하고 또 설교하였습니다. 


저는 항상, "주님께서 저에게 보여주신 저의 길을 신실하게 걸어가야겠다" 라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저는 제가 시대에 기억될 만한 탁월한 설교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하나님 앞에서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는가 묻는다면, 부족하지만 그렇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저의 평생의 목표입니다.

파이퍼 목사님의 강의를 통해서 더 성장하고 싶고, 앞으로 저의 모든 설교 가운데 진정한 희열이 존재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제가 먼저 변하고, 함께 말씀의 실재의 가치와 능력을 경험한 성도님들이 변하게 되는 하나님의 기적을, 평생동안 경험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존파이퍼 목사님의 설교 클리닉에 대한 분석과 적용은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_ 6강 설교는 예배다
(Lecture 6: Preaching Is Worship) / 사사기 9장 1-6절 설교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1/6-lecture-6-preaching-is-worship-9-1-6.html

* 존 파이퍼 "설교 클리닉" 전체 글 모음 / "설교의 대가"에게 설교를 배우라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3/blog-post_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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