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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10일 목요일

“멘탈리티”와 함께 한 100일의 기쁨

 



대부분의 사람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느 정도 감을 잡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정보들은 이미 대중화된 시기이기 때문에 인생의 완전한 비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삶이란 충분히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되었고 마음만 먹으면 그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과연 "확신있게 지속할 수 있느냐" 입니다. 인생의 핵심은 실천과 지속입니다. 이 두가지가 가장 결정적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흔들림을 얼마나 최소화시키고 정진할 수 있는가가 삶의 수준을 결정합니다. 

벌써 시간이 꽤 지났지만, 멘탈리티를 처음 보았을 때의 두근거림이 생생합니다. 마치 인생의 비밀을 처음으로 두 눈으로 생생하게 본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가장 탁월한 사람들의 그 마음 가짐, 그 삶에 대한 태도, 그것이 저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 잡았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역설적입니다. 인생이 그렇습니다. 삶의 모든 비밀들은 이미 알려져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전혀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자신의 꿈을 위해서 쉽없이 실천하고 도전하였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삶은 참으로 치열한 것입니다. 그리고 냉정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정말 세상에서 저를 응원하고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을까요? 주저 없이 저는 저의 가족을 포함해서 기껏해야 스무명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남이 잘되는 것을 실상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 혹독한 세상 속에서, 자신의 소신을 가지고 바르게 설정한 삶의 방향을 걸어간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끊임없이 잡아줄 어떤 것이 필요합니다. 저에게는 그것이 "멘탈리티" 입니다.

물론 목회자이기 때문에 매일 성경을 듣고 묵상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 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항상 느낍니다. 마치 동전의 앞면과 뒷면을 경험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지만, 사실상 많은 부분이 성경과 붙어 있다고 느낍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의 역사하심을 끊임없이 저에게 말씀합니다. 그리고 멘탈리티는, 그러한 주님을 의지하여서 확고하게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가장 실제적인 방향을 보여줍니다. 

오늘 CNN 뉴스를 공부해보니, AI가 이미 수백만 일자리를 파괴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사실 많은 분들이 별로 신경쓰고 있지 않지만,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것입니다. 무한 경쟁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무한 경쟁의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분의 자녀로, 그리고 신실한 사회 인으로 이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꾸준함이 더욱 중요합니다. 저처럼 평범한 사람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무기가 바로 꾸준함입니다. 그리고 사실상, 가장 뛰어난 사람을 빛나게 하는 것도 꾸준함입니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처럼 재능이 사람을 만드는 전부가 아니라, 실천과 지속이라는 이 두가지가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멘탈리티의 가치를 알아본 다음, 주저하지 않고 결심했습니다. 가치가 있는 곳에 시간과 열정을 쓰고 싶기 때문입니다. 가능하면 매일 하루 한번 멘탈리티를 읽었습니다. 기껏해야 한두쪽입니다. 그러나 읽을 때 마다 가슴이 벅찹니다. 저는 가슴 뛰는 삶을 매일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멘탈리티가 이것을 이루게 해주는 중요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삶은, 그 하루, 그리고 또 다른 하루가 쌓여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휘황찬 그러나 실천이 없이 허황된 계획이야 말로 삶을 망가뜨리는 주범입니다. 그저 나의 하루를 작은 목표로 살아가는 그 습관과 도전만이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어내는 삶의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100이라는 숫자를 보니, 그리고 100일 동안 모인 글들을 읽어보니 또 마음이 벅찹니다. 감격을 남기고 싶었고 제 자신을 다시 한번 격려하고 싶었습니다. 계속적으로 쌓이는 저의 삶의 노력들이, 저의 탁월함을 만들어내고 또한 하나님을 드러내는 열매를 맺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또 기도합니다. 

2022년 6월 24일 금요일

참된 경건의 길 / 사무엘상 30장 21-25절 설교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평가할 수 있는 여러가지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런 기준이 성경적인 기준일까? 근본적인 질문을 제 자신에게 종종 던져봅니다. 우리는 과연 참된 경건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요?

신앙의 성장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어떤 패러다임의 완전한 전환 없이는, 절대로 신앙 성장이 일어날 수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 자신을 위한 신앙 생활, 나의 유익만을 위한 신앙 생활이라는, 세상의 중심에 나를 놓은 그 형태로는, 사실상 신앙의 성숙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그것을 나누는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가 우리의 삶 가운데 들어오고 움직일 때에, 그제서야 우리의 삶이 변하는 것입니다. 답은 분명한데, 어떤 분들은 답을 인정하지 않고, 또 어떤 분들은 그 답을 내 삶 속에서 풀어내야 하는 엄청난 과정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역시나,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은혜 받은 자임을 기억하기를 원하고, 또 그것이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부터 흘러 가기를 원합니다.

* 사무엘상 30장 21-25절 설교

사무엘상 27장에서 다윗은, 사울의 추적을 견디다 못하고 블레셋 족속의 땅으로 망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 안에 거주하면 어쩔수 없이 자신의 동족과 싸울 위기에 처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오히려 은밀하게 다른 이방 민족들을 치면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블레셋 족속과 이스라엘 민족의 전면전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현재 이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블레셋 편에 서서 참전해야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그 위기 속에서 다윗을 구해주셨습니다. 블레셋의 장군들이 그들의 큰 적인 다윗을 알아본 것입니다. 그들은 주장하기를, 다윗이 블레셋을 배신할 수 있기 때문에, 절대로 다윗은 그들과 함께 전쟁에 함께 나갈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다윗은, 전쟁터에서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사흘길을 걸어서 시글락으로 돌아와보니, 온 성읍이 잿더미로 변해있었습니다. 아말렉 족속이 모든 여자와 아이들을 다 포로로 잡아간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서, 그동안 다윗에게 충성했던 사람들조차 너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반기를 들면서 오히려 그를 돌로 쳐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윗은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위기의 순간에, 여호와를 더욱 의지함으로, 다윗은 하나님께로부터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에봇을 통해서 여호와께 여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답을 주시기를, 약탈자들을 쫓아가면 반드시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고 확실한 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들을 추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은 그 즉시로, 부하 600명을 거느리고 추격을 시작했습니다. 


한번 이 때의 분위기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속도로 추적을 했을 것입니다. 반드시 가족들을 되찾아야 한다라는 일념으로 똘똘 뭉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다윗의 부하들이 용맹 했지만, 그들 모두의 체력이 동일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600명 중에서 200명이 완전히 지쳐 버렸습니다. 그래서, 브솔 시내를 건너갈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에는 400명이 다윗을 따라서 계속 추적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400명을 끌고 추격을 하다가, 다 죽어가는 한 젊은 사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군인들이 그를 발견하고서는, 그 급한 와중에 추격을 잠시 중단하였다는 것입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보면서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먹을 것을 주고 그의 기력을 되살렸습니다. 상황을 알아보니 그 사람은 이집트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원래는 아말렉 사람의 종이었는데, 병이 들어서 종이 더 이상 걷지 못하게 되었을 때에 주인이 그 종을 버리고 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인이 바로 다윗의 성을 약탈해 간 바로 그 사람들 중에 한명이었습니다. 


다윗은 이 종의 안내를 받아서 아말렉 족속을 끝까지 추적했습니다. 그리고 넓은 들에서 약탈한 물건을 가지고 즐기고 있던 아말렉 족속을 드디어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새벽에 동틀 때에 부하들과 함께 그들을 기습하였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8 다윗이 아말렉 사람들이 빼앗아 갔던 모든 것을 도로 찾고 그의 두 아내를 구원하였고 19 그들이 약탈하였던 것 곧 무리의 자녀들이나 빼앗겼던 것은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이 모두 다윗이 도로 찾아왔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성경은 다윗이 아무것도 잃은 것 없이 완벽하게 찾았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지금 분위기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다윗은 돌로 맞을 상황이었지만, 이제는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모든 것을 회복하였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다윗과 군사들이 돌아올 때에 지쳐서 남겨졌던 200명도 기뻐하면서 다윗을 영접하러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에, 환영과 기쁨과 감격의 순간을 망치는 이야기가 병사들 안에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22절에 보니 “다윗과 함께 갔던 자들 가운데 악한 자와 불량배들이 다 이르되 그들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은즉 우리가 도로 찾은 물건은 무엇이든지 그들에게 주지 말고 각자의 처자만 데리고 떠나가게 하라” 라고 주장을 하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세상에 그 어떤 공동체도 완벽할 수 없는 것처럼, 다윗을 따르는 이들 중에도 악한 자와 불량배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앞장서서 수고하고 목숨을 걸었기 때문에, 단 하나의 전리품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심지어 전리품의 일부는 원래는 자신의 동료의 물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말렉으로 부터 다시 빼앗은 것이기 때문에, 기다린 자들에게는 최소한의 가족들만 돌려주자는 것이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생각이 아닌가? 어떻게 보면 이것은 늘 우리가 듣던 주장이 아닌가? 라는 것입니다. 노력한 자가 그 결과를 얻고, 노력한 자에게는 그에게 합당한 상을 주고, 그렇지 못한 자에게는 당연히 나눠줄 것이 없다는 이 주장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듣는 너무나 평범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23절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23 다윗이 이르되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기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라고 부하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다윗은, 진정한 리더의 면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악한 이야기를 하는 자들에게조차 “나의 형제들아” 라고 부르며 그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있습니다. 


지금 다윗의 놀라운 점이 무엇인가? 다윗의 부하들 중에서 악한 자와 불량한 자들의 마음에는, 자신들의 노력으로 얻은 전리품이기 때문에 자신이 가지겠다는 지극히 지극히 세상적인 논리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전혀 다른 관점으로 지금의 상황을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던 다윗은, 지금 이 기적같은 승리와 넘치는 전리품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작품인 것을 알았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보호하셨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신의 손에 넘기셨고, 여호와께서 약속대로 주셨기 때문에, 절대로 세상의 방식으로는 이 일을 처리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24절에 보니, “전장에 내려갔던 이들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동일할 것이다 같이 분배해야 한다” 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무엇인가? 25절에 보니 “25 그 날부터 다윗이 이것으로 이스라엘의 율례와 규례를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다윗의 입장에서는, 공동체의 모든 이들이 함께 전쟁의 결과와 기쁨을 누려야 한다는 결정이, 즉흥적이고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 원리가, 자신이 다스리는 현재의 공동체, 그리고 더 나아가 앞으로 왕으로 다스릴 전체 공동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영적인 삶의 원리가 되기를 바랬습니다. 강한 자도 그리고 약한 자도 함께 기쁨을 누리며, 힘이 있는 자도 그리고 연약한 자도 함께 공동체 속에서 유익을 얻는 바로 그것을 꿈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께서는, 오늘 말씀을 보시면서 어떤 부분이 가장 마음에 와 닿으십니까? 저는 오늘 말씀의 큰 구조 속에서, 세상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의 큰 대조를 보게 되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아말렉 족속을 급하게 추적할 때에 누구를 발견하였습니까? 병들어서 더 이상 쓸모 없어졌다고 버려진 초라한 행색으로 죽어가는 거지와 같은 이집트 사람을 발견한 것입니다. 


우리가 확실하게 알수 있는 것은, 아말렉 족속 안에서 모두가 받아들이는 관습이 있었는데, 종이 병들고 걷지 못하게 되었을 때에 그를 버리는 것이 아말렉 족속 안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효용 가치가 있으면 데리고 있지만, 효용 가치가 없으면 즉시 버리는 것, 그것이 아말렉 족속의 방식이고 세상의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윗은 그것을 거절한 것입니다. 다윗의 무리가 아말렉 족속을 쫓다가 죽어가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에, 그들이 발걸음을 멈추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그 버려진 사람에게 무엇을 먹였는지를 성경은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가장 급박하고 힘든 순간에 조차, 생면부지의 사람이라도 지나치지 않고 힘써 먹인 그들의 따뜻한 마음을, 성경은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윗의 자비와 따뜻함과 사랑의 마음과 태도가, 오늘 말씀 속에서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더 흥미로운 것은, 11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무리가 그를 다윗에게로 데려다가” 라고 말씀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평소에 다윗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만약에 다윗이 평소에 죽어가는 사람을 돌보는 성품이 없었다면, 절대로 부하들이 이 사람을 데려갔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공동체의 리더가 관심도 없는 괜히 병자를 데려갔다가, 괜히 욕만 먹는 상황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하들이 평소 다윗의 성품을 알았기 때문에, 죽어가는 자를 발견했을 때에 주저하지 않고 기꺼이 그를 다윗에게 데려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다윗의 마음이, 오늘 말씀 속에 그대로 흐르고 있습니다. 다윗은 비록 온전한 왕으로 세워지 못한 도망자의 신세였지만, 그러나 그가 섬기는 그 공동체와 그의 무리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깨달아 알기를 다윗은 간절히 원했다는 것입니다. 유력하고 강한자만 대우 받는 것이 아니라, 가장 연약하고 힘이 없는 자 까지 함께 유익을 누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가 되기를 다윗이 간절히 원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로마서 5장 17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아담 안에서 영원히 본성이 타락하여 죄를 짓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망한 우리였지만,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와 하나님의 선물을 넘치게 받았다 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 말씀이 놀라운  것은, 바울 사도는 자신의 수고를 평가 절하하거나, 자신이 고생한적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삶 속에서 너무나 많은 수고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수고 가운데 역사하신 모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였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은혜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공동체가,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이 받은 것들을 연약한 자들에게 나눌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27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7 하나님 아버지 앞에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참된 경건이라는 것은,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알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가장 연약한 사람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통해서 온전히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넘치게 받았음을 깨달으면서 가장 연약한 자들에게 마음과 관심과 사랑을 쏟고 있다면, 바로 그것이 참된 경건을 우리의 삶 속에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저와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께서, 우리가 지금 누리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요 사랑을 결과임을 인정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것으로 인해서 넘치는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며, 그 넘치는 은혜 때문에, 가장 연약한 자에게 우리의 마음이 향하기를 원합니다.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는 참된 사랑과 경건을 실천하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시간에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주님을 대적하며 살아가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오직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로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자녀 삼으시니 감사합니다 바로 이러한 아버지의 사랑을 통하여, 저의 가운데 언제나 은혜를 인정하며, 주님께 감사를 돌리는 복된 성도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둘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주님께서 베푸신 놀라운 은혜를 인정하며 은혜와 넉넉함이 저를 통해서 흘러가기를 원합니다. 제가 속한 공동체 안에 있는 가장 연약한 자들도 저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있게 하시고, 저의 삶의 시선과 방향이, 가진자 유력한 자를 향하지 않고, 가장 연약한 고아와 과부를 향하고 그들을 위해 살아가도록 주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문" 전체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_4.html

2022년 1월 6일 목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시편 4편 / 마음에 기쁨으로 평안히 잠들라

 


시편 4편은 처음부터 마음이 뭉클합니다. " 의의 하나님이여" 라고 다윗은 고백합니다. NET BIBLE은 "O God who vindicates me"라고 번역했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다윗이 정당하다는 것을 인정해주시며 그를 변호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마도 다윗은 너무나 억울하고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듯 합니다.

의로우신 하나님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경건한 다윗의 모습과 대조되는 이들이 2절에 등장합니다.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삶은 명확한 대조를 보입니다. 의롭고 경건함을 놓쳐버린다면 그 누구라도 헛된 일과 거짓에 빠지게 됩니다. 

3절에 경건하다 라는 단어를 원어로 찾아보았습니다. 가장 처음 등장하는 것이 신명기 33장 8절이네요. 레위 사람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우림과 둠임은 하나님의 뜻을 구약 시대에 알려 주었던 도구입니다. 

더 묵상해 보아야겠지만 바로 드는 생각은 이것입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경건한 자에게 주님의 뜻을 알려주시고 인도하신다 라고 이해한다면 너무 과장된 해석일까요? 저를 포함해서 많은 이들이 도대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그렇게 많이 고민하는데, 과연 우리가 그 고민만큼 경건하게 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을까요?

4절은 참된 두려움으로 떠는 것이 죄를 짓지 않게 하는 아주 중요한 감정적인 요소임을 보여줍니다. 아, 하나님 앞에서 떨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방자하게 행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가? 두려움을 잃어버릴 때가 얼마나 많았는가? 제 자신을 크게 회개하며 돌아봅니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하는 것"은 밤에 잠자리에 누워서 나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윗은 경건하지 못하고 헛되고 거짓되게 살아가는 이들이 반드시 해야 할 것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기만 해도 경건한 방향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의의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이들은, "떠는 것" 뿐 아니라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마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다윗은 원수들의 공격과 환난 중에도, 가장 풍성한 추수를 하는 이보다 더 기쁨이 있다고 말합니다. 

여호와를 향한 진정한 두려움과 기쁨이 있기 때문에, 다윗은 평안히 눕고 잘 수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의지하는 이는 하늘의 평안을 맛볼 수 있습니다. 주여, 이러한 평안을 저에게도 주시기를 원합니다.

In Psalm 4, from the beginning, my heart is filled with emotion. David knows that God is the one who vindicates him. Maybe, he is in big trouble including the mock of enemies. However, he totally relies on God who supports him. 

I want to focus on the connection between verse 1 and verse 2. God is righteous and David is pious. However, his enemies love what is worthless and search for what is deceptive. This is the spiritual spectrum. If we pursue God patiently, we resemble his righteousness. However, if we lost his presence in our life, we fall into the trap of the worthless and deceptive. 

David commends the enemies to meditate as they lie in bed and repent. Even Christians should apply this principle to our real life. Think about it. If we repent our daily life every day at our bedtime, we could God repeatedly. This is a tremendous important spiritual principle to make us holy. And when we pursue God, we will have a heavenly peace in our heart. 

2021년 12월 11일 토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마태복음 6장 / 진짜 경건, 그리고 진짜 믿음

 

마태복음 6장은 참된 경건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도라면 늘 하는 생각입니다. 도대체 참된 신앙 생활이란 무엇일까? 정말 내가 제대로 신앙 생활 하고 있는 것일까?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 유대인들이 기본적으로 하고 있던 예배와 기도와 금식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금식에 있어서는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예배와 기도라는 것은 우리에게도 완전히 동일하게 중요한 것입니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조금씩은 차이가 있겠지만, 결국 우리의 신앙 생활의 핵심은 "하늘 아버지"를 의식하며 그분 앞에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5장에서 이어서, 아버지께서 상을 주신다는 내용이 절정을 향해 치달아갑니다.

우리가 구제를 하여도, 사람 앞에서 하지 말고 은밀하게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으실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에도 은밀하게 아버지께서 갚으실 것을 기대하며 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향한 진실한 기도에 바로 주기도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기도문을 이러한 맥락에서 분리할 수가 없습니다. 주기도문은 주문이 아닙니다. 주기도문은 하늘 아버지를 절실하게 의식하는 맥락 속에 들어있다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늘 아버지와의 관계성이 약해진다면, 주기도문의 모든 내용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의 내용 하나하나를 분석하다가 끝나는 것 같아 항상 아쉽습니다. 정말 우리는 기도할 때 마다, 아버지를 절실하게 인식하고 붙들고 있는 것일까요?

금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속 반복되는 부분입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예전에는 보지 못했지만 지금은 분명히 보이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참된 신앙 생활이 어떤 "형태"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많이 논쟁합니다. 하지만 참된 신앙 생활은, 하늘의 아버지를 가장 깊이 "인식"하고 그분만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형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계입니다. 사실상, 관계가 전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재물이 하나님과 자리 다툼을 하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재물 자체는 아무것도 힘이 없는데 실제로 우리 삶 가운데 큰 힘을 가집니다. 하루 종일 주식 차트를 보고 있어도 잘못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직 돈만 벌기 위해서 혈안이 된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데,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부지런하다라고 칭송합니다.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평가할 때에, "돈을 어떻게 모으며 어떻게 쓰는가"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부자라고 베푸는 것 절대로 아닙니다. 가난해도 베풀기를 좋아하는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저도 그렇게 되기를 원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백퍼센트 돈이 우리를 책임진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임지신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이 먹이고 입히신다는 믿음이 충만해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의 삶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시대가 흐를 수록 예배만 드리고 사라지는 성도님들이 교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삶의 우선 순위가 믿음과 전혀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먹고 사는 것이 일순위 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이후에 자신의 여가를 즐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간이 남으면 예배에 나옵니다. 예배 나오는 것만 해도 너무나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인가 이 우선 순위는 크게 잘못되었습니다. 믿음이 무너졌기 때문에, 삶의 우선 순위도 무너졌습니다.

교회의 가장 일선에서 성도님들을 섬기는 목회자로서, 지금 이 시대가 크게 잘못되었다라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마음이 많이 상합니다. 주님이 경고하신 것들이 눈 앞에 펼쳐진 것을 볼 때에 고통스럽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라는 말씀을 붙들고 그것을 조금이라도 실현한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 교회가 될 것입니다. 

In this chapter, I meditate on the importance of the relationship with the heavenly father. People argue what the form of true piety. Interestingly, according to their denomination, the form of piety. We see the main religious rituals in this chapter. However, the main point and the foundation of true religious rituals is the relationship with the heavenly father. We should perceive and admit him and remember that he will reward us for our struggle to keep his will. 

Do you want to know who you are? It is very simple. Examine the order of priority in your life. And see your priority to use your money. God says that above all pursue his kingdom and righteousness. This is our top priority. 

2020년 11월 13일 금요일

금요찬양교실 (9) - 완전하신 나의 주 / 예배합니다 / I Worship You

 

1. 가사 살펴보기

완전하신 나의 의의 길로 인도하소서
행하신 모든 주님의 영광 경배합니다

예배합니다 찬양합니다 주님만 다스리소서
예배합니다 찬양합니다 주님 홀로 높임 받으소서

 

2.  소개

 곡의 원곡은로즈 박이라는 한인 3세가 만든 곡이다찬양 사역자 민호기 목사님이 곡을 우연히 듣게 되었고그분이 번역하고 부르면서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다 곡은성도가 하나님께 예배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 핵심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시편 23:3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23:3 he restores my soul. He guides me in paths of righteousness for his name's sake.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길을 인도하십니다양은 방황하고 길을 잃는 경향이 있습니다그들은 인도가 필요합니다오늘날 많은 자동차에는 이탈할 때에 올바른 도로로 돌아오도록 경고하는 네비게이션 시스템이 있습니다하나님은 그의 말씀과 성령을 통해 우리의 삶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고 어리석게 길을 잃을 우리의 경로를 바꾸십니다

그렇습니까그분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그렇게 하십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다른 사람들이 우리로 부터 ‘하나님께서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613.

히브리서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개역개정9:14 How much more, then, will the blood of Christ, who through the eternal Spirit offered himself unblemished to God, cleanse our consciences from acts that lead to death, so that we may serve the living God! (NV)

구약의 제사들은 우리의 겉을 깨끗하게 있는 반면그리스도의 보혈은 죽은 행실로부터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여 우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길 있습니다그리고 만약 우리의 내면이 깨끗해 진다면이전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얻으려고 행했던 죽은 행실이이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우리의 반응의 결과인 선한 행실로 변화됩니다.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1461.

하나님을 섬기게 : 하나님의 용서의 목표는 하나님 중심입니다 용서를 통해서 단순히 우리가 심판의 두려움에서 자유를 얻는 것이 아니라하나님께 기쁨을 가져다드리는 방식으로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2211.

 

4. 찬양에 대한 묵상

곡은짧은 가사와 단순한 멜로디 속에 신앙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여호와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시다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이름과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며오늘도 우리를 사랑으로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비록 현재의 우리의 삶이 고난이 있을지라도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하나님께서 나를 자리까지 인도하셨음을 고백하게 것이다그런 맥락에서 우리는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앞으로 행하실 일들을 기대하며 우리의 하루를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구원 받은 사람의 특권이자 의무는살아 계신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다이제 우리는 이상 하나님의 사랑을 얻어 내기 위해서 선한 일을 하지 않는다그럼에도 불구하고우리가 죄로부터 얻은 자유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살아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우리를 이미 사랑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얻은 자유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는단순히 겉으로만 드러나는 형식적인 것이 되어서는 된다우리는 예배를 드릴 마다 하나님께서 나를 다스려 주시기를그리고 오직 하나님만 높임 받으시기를 간구하며 그렇게 변화 되기 위하여 힘써야 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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