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신뢰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신뢰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25년 2월 4일 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203) - 주님 손에 맡겨 드리리 (전심으로)

 


1. 가사 살펴보기

주님 손에 맡겨드리리 나의 삶 주님께
주님 손이 나의 삶 붙드네 나 주의 것 영원히
주와 함께 걸어가리라 모든 길을 주 신뢰해
주 뜻 안에 나 살아가리 주의 약속은 영원해 

내가 믿는 분 예수 내가 속한 분 예수
삶의 이유되시네 내 노래되시네
전심으로

경배하리 경배하리라

 

2. 곡 소개

곡은 힐송의 With All I Am 이라는 곡을 번안한 곡이다. 그래서 번안곡의 또 다른 제목은 전심으로이다. 이 곡은 주님을 믿고 주님께 속한 성도가, 오직 주님께 자신을 삶을 맡기고 주님의 뜻에 따라서 살아가겠다는 깊은 신앙의 고백을 담고 있는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16:3 Commit to the Lord whatever you do, and he will establish your plans.

맡기라는 것은 문자적으로 굴리다라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계획과 걱정을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계획은 주님께 복종하며 세우고 실행할 때에 가장 잘 이루어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항상 자신의 뜻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904.

3: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3:5 Trust in the Lord with all your heart and lean not on your own understanding; 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3:6 in all your ways submit to him, and he will make your paths straight. (NIV)

하나님을 인정하라는 것은, 삶 속에서 그분을 의식하고 주목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할 때에,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길을 평탄하게 하신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Pr 3:5–6.

12:2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10: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14: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개역개정)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 이것은 모든 일에서 신자의 목적은 하나님을 섬기고 기쁘시게 하는 것임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 바울은 삶이나 죽음 모두가 신자의 그리스도의 연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John D. Barry, Douglas Mangum, Derek R. Brown,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Ro 14:8.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성도를 붙드시는 주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확신이 가득한 곡이다.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삶 전부를 주님께 맡겨드리겠다고, 그리고 주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겠다라고 결단하며 찬양을 올려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깊은 신앙 고백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에게 속한 성도의 정체성을 찬양하는 후렴 안에서 절정에 다다른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시며 완전한 구원자이시다. 그분을 믿는 자는 결코 버림받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보장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게 된다. 원곡에서 경배하리 라는 부분이 반복되는 것이 바로 그러한 맥락이다.

결론적으로 이 찬양은 참으로 가슴 벅찬 찬양이다. 주님 손에 맡겨드리겠다는 가사가 시작되면서부터 마음이 뭉클해지고, 또한 부르면 부를 수록 그 깊이가 느껴지는 찬양이다. 이 찬양을 통해서, 혼란스럽고 때로는 견디기 어려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이 진정한 평안과 위로와 안정감을 얻기를 바란다. 또한 오직 주님 안에서, 그 누구도 흔들 수 없는 구원에 대한 확신 가운데 담대함으로 살아가시기를 기대한다.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4년 1월 16일 화요일

"언제나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벌써 몇년이 흘렀습니다. 사랑하는 막내 아들이 중증근무력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동분서주 할 때 입니다. 무너지는 마음을 다잡을새도 없이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치료하기 위해서 정말 애를 쓰고 있던 때입니다. 아들의 처진 눈을 보면서 제 마음도 무너지고, 약이 듣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할지 괴로워하면서 기도하던 때입니다. 

이 와중에 목회학 박사 수업을 위해서 학교에 갔을 때에,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 기도 제목을 물어보셨습니다. 울음이 자꾸 나와서 차분하게 이야기하기 어려웠지만, 아들의 상황을 말씀드리고 기도를 부탁드렸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교수님께서 기도해주셨습니다.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해주시던지, 정말 간절하게 아들의 회복을 위해서 기도해주셨습니다. 마치 자신의 가족의 일처럼 기도해주셨습니다. 어제 밤에는 제 아들이 그렇게 춤을 추면서 웃으면서 뛰어 놀았습니다. 아들이 이제 거의 정상의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을 때 마다, 교수님께서 그때 해 주신 기도를 기억합니다.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오랜만에 안부 연락을 드렸습니다. 어쩌면 다른 학교 다른 지도 교수님이었다면 통과 되지 못했을 논문을 끝까지 믿어주시고 신뢰해주시고 지도해주셨기에 저에게는 큰 은사이시기 때문입니다. 저의 사역의 소식들을 업데이트 하였습니다. 교수님께서 사랑으로 격려해주셨지만 오히려 제가 뜻밖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파킨슨 병 진단을 받으셨고 예후가 별로 좋지 않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마음이 먹먹했고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아직도 너무 젊으시고 평생을 주님을 향한 열정으로 그렇게 힘있게 달려오셨는데, 제 마음이 다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담담하게 전해오는 교수님의 문자를 천천히 읽으면서도 저는 그 내용을 다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상에 대한 소중함을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리고 힘들지만 지금까지 쌓아오신 지혜로 더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이야기하시고, 힘을 많이 내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지막 말씀이 제일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언제나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수님의 말씀을 한동안 제 마음에 담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원하는 일들 안에서만 하나님을 신뢰하지만, 교수님의 하나님을 향한 그 전적인 신뢰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선하시고 공의로우시며 또한 교회를 사랑하심을 강의하셨던 모든 내용들이 생각났습니다. 

어쩌면, 인간은 고난 속에서야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는 것 같습니다. 평소에도 교수님은 참으로 귀한 분이라고 항상 생각했지만, 그러나 어려움 속에서 그의 고백 안에서, 진실로 빛나는 분임을 새롭게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빛이기에, 고난과 어두움은 빛을 결코 삼킬 수 없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이제 저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저는 언제나 기적을 믿고, 저는 언제나 하나님의 능력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모든 길, 우리는 다 알 수 없으나 오직 하나님은 아시기에 기도합니다. 교수님의 건강을 주님께서 회복시켜 주시고 삶을 지키시기를, 그리고 또한 저 역시 언제나 담대한 믿음으로 주님을 신뢰함으로 인생의 길을 걸어가기를 기도합니다.

2023년 4월 8일 토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27) - 하루의 은혜

 


1. 가사 살펴보기

살아내기에 힘겨운 하루
감당하기에 버거운 하루
삶에 힘겨워 여전히 힘겨워 내 주님께
온 맘 다해 주만 의지합니다 

살아가기에 두려운 하루
순종하기에 무거운 하루
나의 힘 다해 정성을 다해 내 주님께
온 맘 다해 주만 바라봅니다 

하루의 은혜가 내 삶에 임하여
문제가 기도가 되고 아픔이 자랑되어
하나님의 사랑 드러나게 하소서
나를 구원하신 그 사랑 

하루의 은혜가 이곳에 임하여
고난이 축복이 되고 상처가 간증되어
영원하신 사랑 신뢰하게 하소서
하루를 살아갈 힘 주소서

 

2. 곡 소개

곡은, 오륜교회 찬양팀인 원데이 워십의 싱글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앨범 소개 속에서 시편 25편을 묵상하며 만들어진 곡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곡은, 마치 다윗이 심한 고난 속에서 하루 종일 여호와만을 찾고 갈망한 것처럼, 버겁고 두려운 하루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을 신뢰하는 성도의 간구를 담고 있는 곡이다.

* “하루의 은혜앨범 소개
https://music.bugs.co.kr/album/20303324?wl_ref=S_tr_01_04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시편 25:1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25:1 Of David. To you, O LORD, I lift up my soul; 25:2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25:2 in you I trust, O my God. Do not let me be put to shame, nor let my enemies triumph over me. 25:3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까닭 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리이다 25:3 No one whose hope is in you will ever be put to shame, but they will be put to shame who are treacherous without excuse. 25:4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25:4 Show me your ways, O LORD, teach me your paths; 25:5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25:5 guide me in your truth and teach me, for you are God my Savior, and my hope is in you all day long. 25:16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로우니 내게 돌이키사 나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25:16 Turn to me and be gracious to me, for I am lonely and afflicted.

Psalm 25 Salvation has many facets not only because grace is so beautiful but also because there are so many dangers in the world. In the biblical world, to be put to shame often meant being humiliatingly exposed for trusting in the wrong deity. On occasion an idol could appear to bring rain or provide a crop. But David boasts that “none who wait” for the Lord will ever be put to shame (vv. 1–3, 19–22). 은혜라는 것이 너무나 아름다울 아니라, 또한 세상에는 많은 위험들이 있기 때문에 구원은 여러 측면이 있습니다. 성경의 세계에서 부끄러움을 당한다는 것은 잘못된 신을 신뢰한 것에 대해서 굴욕적인 결과로 드러나는 것을 종종 의미했습니다. 때때로 우상은 비를 내리거나 농작물을 제공하기 위해 나타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주님을 기다리는 누구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랑합니다.

George Robertson and Bruce A. Ware, “Psalms,” in Gospel Transformation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ed. Bryan Chapell and Dane Ortlund (Wheaton, IL: Crossway, 2013), 675.

25:4–5 Navigating trials well does not mean passively trusting God but means actively seeking his guidance. Walking by the Spirit (Gal 5:16) means seeking God’s wisdom in applying his truth to our circumstances, relationships, conflicts, and decisions. God loves to redirect our hearts toward his paths by refining our desires and empowering our will. 시련을 해쳐 나간다는 것은, 수동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그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을 따라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우리의 상황, 관계, 갈등 결정에 적용함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갈망을 새롭게 변화시키시고, 우리의 의지에 힘을 더하심으로, 우리의 마음이 그분의 길로 향하게 하는 것을 사랑하십니다.

David Gundersen, “Psalms,” in The NIV Grace and Truth Study Bible, ed. R. Albert Mohler Jr. (Grand Rapids, MI: Zondervan, 2021), 714.

고후 1: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1:8 We do not want you to be uninformed, brothers, about the hardships we suffered in the province of Asia. We were under great pressure, far beyond our ability to endure, so that we despaired even of life. 1: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개역개정) 1:9 Indeed, in our hearts we felt the sentence of death. But this happened that we might not rely on ourselves but on God, who raises the dead. (NIV)

1:8–11 Deliverance From Affliction. Whatever the nature of Paul’s devastating experience in Asia (possibly an attack of his “thorn,” 12:7), it was equivalent to dying, and God’s gracious rescue was equivalent to being raised from death (1:8–9). Paul is forced to give up his self-reliance and adopt a new guiding principle for his life: “our competence comes from God” (3:5). This shattering encounter with death prompts him to ponder more deeply than before the nature and consequences of the believer’s death (5:1–10). 환난에서 구하심 : 바울이 아시아에서 경험했던 압도적인 어려움은, 바울이 죽는 것과 같았으며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원은 마치 죽음에서 부활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것을 포기하도록 요구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 온다라는 새로운 원칙을 그의 삶에 적용해야 했습니다. 죽음과 같이 산산조각 나는 경험은, 그로 하여금 믿는 자의 죽음의 본질과 결과에 대해 전보다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083.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고난 중에 살아가는 성도가 자신의 어려움 속에서도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겠다는 숭고한 영적인 결단을 담고 있는 곡이다. 오직 주님을 갈망하고 도우심을 구할 때에, 자신의 상황 속에 주님이 역사하실 뿐 아니라, 그 상황을 이해하고 반응하는 자신의 태도 또한 변화될 것이라는 기대를 표현하는 탁월한 곡이다.

이 찬양의 배경이 되는 시편 25편에서 다윗은, “여호와를 종일 기다리겠다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이러한 다윗의 기다림은, 결코 수동적이거나 무책임한 기다림은 아니다. 다윗은 오히려 자신의 고난 속에서 여호와를 신뢰하며, 그분의 진리의 말씀을 배우며, 그것의 교훈을 적극적으로 삶 속에 받아들이겠다고 결단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기다림은, 말씀을 사모하며 삶에 적용하는 적극적인 기다림이다.

바울 사도는, 죽음과 같은 자신의 고난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깊은 뜻을 발견한다. 그것은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이다. 고난을 통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은, 하나님의 자녀가 새로운 영적인 원리로 살아가도록 그를 변화시키시는 것이다. 이 찬양의 고백처럼 영원하신 사랑을 신뢰하게 하는 것이것이 바로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진정한 목적이다.

바라기는 이 찬양을 부를 때 마다, 우리의 고난 속에서 새로운 소망을 발견하기를 원한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태도로, 그리고 주의 말씀을 더욱 갈망하는 모습으로 변화되며, 고난을 통해서 더욱 주님을 의지하게 하시는 그분의 놀라운 능력과 사랑을 경험하시기를 기도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고, 
커피 한잔 기부를 통해 정진부 목사를 응원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buymeacoffee.com/jungjinbu5

2023년 4월 1일 토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26) - 하나님의 부르심

 


1. 가사 살펴보기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네
내가 이 자리에 선 것도 주의 부르심이라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결코 실수가 없네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네 

작은 나를 부르신 뜻을 나는 알 수 없지만
오직 감사와 순종으로 주의 길을 가리라
때론 내가 연약해져도 주님 날 도우시니
주의 놀라운 그 계획을 나는 믿으며 살리 

날 부르신 뜻 내 생각보다 크고
날 향한 계획 나의 지혜로 측량 못하나
가장 좋은 길로 가장 완전한 길로
오늘도 날 이끄심 믿네

 

2. 곡 소개

곡은 피아워십 팀의 하나님의 부르심앨범에 수록된 곡이며, 손경민 목사님이 작사 작곡한 곡이다. 이 곡은 성도로 부르신 하나님의 일하심은 그분의 주권적인 계획에 따른 것임을 고백하는 곡이다. 삶의 어려움과 고난 속을 걸어가면서, 하나님의 부르심과 그분의 탁월한 계획을 믿고 살아가겠다는 성도의 깊은 신앙을 드러낸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민수기 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23:19 God is not a man, that he should lie, nor a son of man, that he should change his mind. Does he speak and then not act? Does he promise and not fulfill?

23:19 lie … change his mind. Contrary to what Balak thinks, the Lord is not like pagan gods, who are comparable to capricious and fickle human beings and who could therefore be asked to break their promises. Does he speak and then not act? The Lord does what he says, which in this case is to bless Israel (v. 20). He is always faithful to his covenant promises (cf. Titus 1:2). 발락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주님은, 변덕스럽고 예측할 없는 인간에 비견될 만큼  그들의 약속을 어기도록 요청 받을 있는 이방 신들과 같지 않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신대로 행하십니다. 이 경우에는, 이스라엘을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언약의 약속에 항상 신실하십니다.

D. A. Carson, ed.,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60.

시편 40:5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40:5 Many, O LORD my God, are the wonders you have done. The things you planned for us no one can recount to you; were I to speak and tell of them, they would be too many to declare.

40:5 David’s psalms arose out of his deep experiences of God, and he desired that others would have rich experiences of him too. We ought to keep track of the wondrous works that God has accomplished in our lives, so that—like David—we are able to testify confidently that they are more than can be told. 다윗의 시편은 하나님에 대한 깊은 체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며, 그는 다른 사람들도 자기처럼 하나님에 대한 풍부한 체험을 갖기를 바랐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기억하여서, 다윗처럼 우리가 표현할 있는 것보다 일이라는 것을 자신 있게 증거할 있어야 합니다.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629.

로마서 11:28 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 11:28 As far as the gospel is concerned, they are enemies on your account; but as far as election is concerned, they are loved on account of the patriarchs, 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개역개정) 11:29 for God's gifts and his call are irrevocable. (NIV)

11:29 the gifts … are irrevocable. The presence of a believing remnant in Paul’s day (including Paul himself) and the promise of God’s ingathering of many more Jews to faith in Jesus the Messiah show that God has not revoked His calling and gifts to His ancient covenant people (9:6; 11:1, 2). 바울 자신을 포함하여서, 바울 당시에 그리스도를 믿는 남은 자들의 존재와, 하나님께서 많은 유대인을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접붙이실 것이라는 약속은, 하나님께서 그의 언약 백성들에게 주셨던 부르심과 선물을 철회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2002.

11:29 God still has His gifts (9:4–5) and His gracious invitation for His people to receive the salvation offered through His Son. God remains faithful to His promises.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분의 선물을 가지고 계시며, 그의 아들을 통해서 주시는 구원을 그의 백성이 받도록 그들을 은혜롭게 초청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에 신실하십니다. 

Edward A. Engelbrecht, The Lutheran Study Bible (St. Louis, MO: Concordia Publishing House, 2009), 1933.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의 핵심은, “여호와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거짓말 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실망하면서, 신실함에 대한 개념을 잃어버렸다. 구약 시대에는 심지어, 우상이라고 불리는 신들조차 얼마든지 변덕을 부리는 존재들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신실하심이라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 기대를 뛰어 넘는 것이며,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보여주실 수 있는 그분의 놀라운 속성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신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내신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생각하시며 우리의 길을 새롭게 여시는 것이다. 설령 우리의 어려움과 고난도, 그분의 실수가 아니라 철저한 계획 속에 이루시는 그분의 주권적인 일하심이다 라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만 한다.

삶의 가장 어려운 순간에도, 하나님의 약속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삶을 전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주의 말씀만이 우리의 등이며 빛이 되신다. 이 찬양을 부를 때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묵상하고, 우리의 온 마음과 생각과 뜻이 여호와 하나님의 변치 않는 진리에 집중하기를 원하고, 그 말씀을 따라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고, 
커피 한잔 기부를 통해 정진부 목사를 응원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buymeacoffee.com/jungjinbu5

2022년 12월 9일 금요일

죽음의 때를 바라보며, 여호와를 위하여 오늘을 살라 / 전도서 7장 1-14절 설교

 



내가 어떤 성경 구절을 들어본 적이 있다는 것과, 그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분들이, 자신이 말씀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설교자는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야만 합니다. 내가 어떤 성경 구절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과, 그것을 설교의 맥락 안에서 풀어내고 상대방을 설득하며 논증해 나가는 것도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물론 설교를 쉽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구절 어떤 단어를 발판 삼아서 풀어나가면 됩니다. 상대적으로 쉽지만 성경적인 설교라고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결국 단어와 문장, 그리고 문단의 연결들을 통하여 하고자 하시는 말씀이 분명하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전도서와 같은 본문의 설교를 준비하다보면, 이렇게 문단 전체를 구성하는 흐름을 이해하고 안에서 설교를 풀어낸다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한절 한절을 설명하고 이어가는 것도 버거울 정도입니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경 본문 전체의 흐름을 조망하면서 안에서 핵심을 드러내는 가장 좋은 스터디 바이블 두권은, NIV Bible Speaks Today 스터디 바이블, 그리고 NIV Grace and Truth 스터디 바이블입니다 (이하 GT). 이번 설교의 구조적인 부분에서는 GT 스터디 바이블이 가장 도움이 되었습니다.

7:1–14 Rather than coast along up at the shallow surface, the wise go deeper. Life does not always present us with only one obviously right path to take. Instead, we must deeply discern which path is “better” than the others. It takes wisdom to see, for example, that hardship can be better than fun (vv. 1–6). We might grow more from the hardships and pain of a funeral than from the ease and fun of a party. But we are certainly not helped along our way by yielding to this world’s corruption (v. 7), impatience (v. 8), touchiness (v. 9), or nostalgia (v. 10). Wisdom helps the way an insurance policy helps; but wisdom is better than money (vv. 11–12). Above all, let’s remember that, in good times and bad, it is the sovereign God we are always dealing with. Enduring the pain we cannot remedy and facing the outcomes we cannot predict, we are wise to stay humble before him (vv. 13–14).

David Gundersen, “Psalms,” in The NIV Grace and Truth Study Bible, ed. R. Albert Mohler Jr. (Grand Rapids, MI: Zondervan, 2021), 889–890.

내용이 너무 깔끔하고 탁월해서 처음으로 저자를 찾아봤습니다. 로고스 각주가 자동으로 처리되는데 오류가 있는 같네요. 위에는 시편에 David Gundersen라고 나왔지만 실제로 스터디 바이블을 찾아보면 Raymond C. Ortlund, Jr. 전도서 부분의 저자입니다. 트리니티 신학교에서 10 도안 구약 교수를 하셨군요. 그리고 보수적인 PCA 교단에 속한 경험도 있습니다. 다른 스터디 바이블을 모두 살펴 보았지만 위에 내용을 보자 마자 저의 설교의 틀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지혜로운 자의 책망을 듣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토니 에반스 목사님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학위가 있어서 지혜를 얻는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은 설교에 거의 직접 인용하였습니다. 토니 에반스 목사님은 완벽한 분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탁월함을 보여주십니다.

7:5–6 Being wise isn’t tied to academic accomplishment: a fool can have a PhD. Wisdom is the ability to make spiritually informed decisions. It’s applying the divine truth of God’s kingdom rule to every area of life. If someone with a divine perspective rebukes you, let him speak into your life so you can become wise. A wise rebuke is far more valuable than a fool singing your praises.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752.

이번 설교에서의 백미는, 14절에 대한 이해입니다. 단순히, "인생은 힘든 것이라고 미래를 예측할 없는 것"이라고 사실 자체를 말하는 것은 설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설교자는 그것이 가진 의미”, 다시 말해서 말씀이 가지고 있는 나의 삶에 대한 의미 말해 있어야 합니다. 동안 정말 많이 고민하고 설교를 준비하면서도 쉽지 않았는데, 의외로 Faithlife 스터디 바이블이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습니다.

7:14 For God made one in place of another People should accept both good and bad situations in life, recognizing that they are dependent on God, not their circumstances (3:11). See note on 9:7–10.

John D. Barry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7:14.

자기 계발서와 경영 서적을 좋아하기 때문에 미래를 탐구하고 예측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평소의 그러한 고민이 설교에 반영되었습니다

미래를 통제하기 위한 시도의 근본으로 들어가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설교를 풀어내고, 결국 여호와를 의지하기를 원하신다 라고 논리를 전개하였습니다. 설교문을 준비하면서 마지막 부분의 내용이 마음에 들어서, 문장들이 춤을 춘다고 느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책들이 잊혀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신기합니다. 어떤 책이 생각이 나고 인용하고 싶어서 펼치면, 그것들이 다시 마음 속에 되살아납니다. 마치 영혼 어딘가에 잠시 숨어 있다가, 부름을 받고 때가 되어 수줍은 얼굴을 내미는 같습니다. 싱크 어게인은 탁월한 책입니다. 사실 루이스의 고통의 문제도 인용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부족하여 그것은 접었습니다.

이번 설교는 평소보다 3 정도를 사용했습니다. 새벽이라 성도님들께 부담을 드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논리적인 전개를 충분히 펼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추가 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평소보다 말을 빨리해야 해서 너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오늘 설교의 내용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처럼, 바로 오늘의 설교가 인생의 마지막 설교일 수도 있기 때문에, 준비한 대로 최선을 다해서 설교했습니다.

오늘 설교 역시, 가장 먼저는 자신을 향한 설교입니다. 언젠가부터 마음 속에,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일 있다라는 생각이 너무 크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성경적인 생각이지만, 때론 마음에 너무 부담이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하루 하루를 의미 있게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도록 인도해주시기를 간구할 뿐입니다. 그것이 저의 가장 중요한 기도입니다.

* 전도서 7 1-14

현대 사회의 중요한 특징 중에 하나를 생각해 본다면 "비교 의식에 빠진 사회"라고 말씀드릴 있겠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비교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입었는지, 다른 사람을 무슨 차를 타고 다니는지, 다른 사람이 어디에 휴가를 다녀 왔는지, 다른 사람이 어떤 집에 살고 있는지를 비교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과거와 지금이 달라진 것은, 과거에는 기껏해야 자기 동네에서 안에서 비교하면서 살아갔다고 말한다면, 이제는 지구상의 인류가 나의 비교의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아침에 눈을 떠서 눈을 감을 때까지 서로를 비교하고, 좌절감이나 혹은 우월감에 사로잡혀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비교라는 것은 우리의 정신을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면 수록, 자신 보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허락하신 것을 만족하지 못하고, 무한한 탐욕의 세계로 우리를 끌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를 병들게 하는 비교가 있는 반면에, 우리가 반드시 비교를 해야 하는 것도 있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말씀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와 같은 보통 사람의 특징은, 비교하지 말아야 것은 그렇게 집착하면서 비교를 하면서, 정작 비교를 해야 하는 것은 별로 신경쓰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오늘 말씀의 1절에서 6절까지는, 철저한 비교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1절에 보니좋은 이름, 다시 말해서 사람의 평판이 좋은 기름보다 낫다, 다시 말해서 많은 재산을 소유하는 것보다 낫다 이렇게 비교를 하고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보통 사람은 구입할 엄두도 못내는 초가의 향수를 뿌린다 하더라도, 자기 자신의 악취가 나는 평판을 향수로 감출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절에 보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초상집이라는 내용이 3절과 4절에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얼굴에 근심하는 것이 마음에 유익하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다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왕이면 잔치집에 가면 좋겠는데 굳이 초상집에 마음을 두어야 한다고 하시는가? 언뜻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말씀 안에는 깊은 지혜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어떻게 살아가는가? 마치 내가 영원히 살아갈 처럼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의 시간이 무한하고 나의 건강이 무한하고 무한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백살 정도까지는 것이라고 은연중에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장례식에 가면 어떻게 되는가? 현실을 가장 실감나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을 바로 앞에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장례식장에서는 물론 웃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곳은 슬픔과 근심을 가지고 마음이 숙연해지는 곳입니다. 그리고 안에서 우리는 무슨 지혜를 얻게 되는가? 나의 역시 언제든지 이렇게 있다는 , 나의 죽음이 실제로는바로 나의 앞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계발서를 읽어보면 배울 점이 많은 같습니다. 예전에 어느 책에서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시간을 역으로 계산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를 계산하라는 조언이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프로젝트가 3개월 후에 있다면, 그때까지 남은 날짜를 가지고 역으로 계산해서 지금 무엇을 해야할지를 계획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어떤 일의 끝을 분명하게 생각하고 기억하고 있어야 현실을 의미있고 효율적으로 살아갈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러한 태도를 계속적으로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끝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관점과 생각을 가지고 우리에게 현재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시편 90 12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90:12 우리에게 우리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무슨 의미인가?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마지막 날에 집중함으로써, 과연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히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바로 부분에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겉보기에는 비슷할 있을 같습니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나의 성공을 위해서 혹은 삶의 효율성을 올리기 위해서 혹은 조금 의미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 그렇게 노력한다면, 우리 성도들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겉모습은 비슷할지 모르겠지만 동기와 목적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하나님 앞에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우리는 주님 앞에서 신실한 자들로 살아야 하는 것이고 하나님 앞에서 상을 받기를 바라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4 7-8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의로우신 재판장이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 사도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분명합니다. 주님을 믿고 붙들고 살았던 자신에게 면류관을 주실 것인데, 바로 그것처럼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우리 모두에게도 주님의 상급을 준비하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기는,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오늘 우리의 삶의 소중함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삶의 유한함을 깨닫고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 하루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며, 그분의 기쁨을 위하여 살아가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어서 5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7:5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많은 학위를 가진 사람을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살아보면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있습니다. 학교를 얼만큼 다녔는가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들을 아는 사람, 사람이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듣기 좋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만약에 듣기 좋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이라면, 사실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의미가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가시나무를 태우면 순간 화려하고 열기가 있지만 금방 열기가 사그라 들고 사라지는 처럼, 어리석은 사람의 좋은 이야기들은 정말 헛되다 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들에 기울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면에,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의 가치를 알고 책망을 달게 듣고 경청하고 거기에 따라서 자기 자신을 바꿀 있는 사람이라면,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지혜자"라고 부를 있는 것입니다. 펜실베니아 대학교의 조직심리학 교수인 애덤 그랜트는, 자신의 "싱크 어게인"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을 평가하면서, 그들이 다양한 환경 속에서 변수 속에서 살았지만, 위대한 대통령들을 구별하는 일관된 요소를 발견하였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대통령을 구별하는 요소는 바로 지적 호기심과 개방성이었다. 그들은 폭넓은 주제로 독서를 했으며, 내치와 외교에 버금갈 정도로 생물학, 철학, 건축학, 그리고 음악 분야의 발전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 했다. 그들은 새로운 견해에 귀를 기울였고 자기가 가지고 있던 낡은 견해를 새롭게 고치는 관심을 쏟았다.” 라고 위대한 대통령의 공통된 특징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마치 이런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허황된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참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에 기울이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의 낡고 편향되고 고집스러운 생각만을 주장하면서, 말씀을 기준으로 전혀 그것을 고치지 않는 어리석음을 평생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가 정말 성경이 요구하는 지혜의 수준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마음을 열고, 말씀에 따라서 기꺼이 나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과정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7절에서 9절까지 말씀은, 우리의 지혜를 무너뜨리는 것들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7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탐욕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하게 하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말씀 속에서, 탐욕과 뇌물로 표현되는 부패함이라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약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지혜들을 가지면서 교만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그래 나는 이정도로 지혜로운 사람이야, 그래 나는 정도로 탁월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야라고 스스로를 종종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지혜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우리가 전혀 문제가 없다거나 넘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의 삶에서 정의로움을 잃어버리고, 탐욕이 우리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누군가로부터 뇌물을 받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혜가 점점 무뎌지게 되는 것이고, 마지막에는 어떤 지혜도 없는 가장 어리석은 사람의 모습으로 완전히 추락하여 망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역사상 가장 완전한 지혜를 가진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그는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추락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가 탐욕을 버리지 못하고 넘치는 타국의 여인들을 아내로 받아들였을 때에, 그는 결국 예루살렘 앞에 위에다가 우상을 산당을 지었습니다. 아내들이 우상들을 마음껏 섬기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결국 그는 가장 어리석은 자로 추락해 버린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말씀은 엄청난 경고라고 말씀드릴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은 8절과 9절에 이어지고 있습니다. 내가 어떤 부분에 있어서 지혜가 있다고 교만할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 앞에서 깨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지금의 겉모습만 가지고 어떤 일을 판단하지 말고, 성급하게 분노하거나 감정적으로 요동칠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인내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에 우리가 우리의 현실의 문제에 제대로 직면하지 않고, 그저 예전이 좋았다라고 신세 한탄만 하고 있는 것으로는, 아무런 삶의 변화도 일으킬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지혜의 가치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11절의 말씀이 표현이 멋진 말씀입니다. “지혜는 유산 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이 되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12절에는지혜의 그늘 아래에 있음은 돈의 그늘 아래에 있음과 같으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먼저 생각할 것은, 돈이 가지고 있는 효용성과 가치입니다. 제가 생각할 어떤 성도님들은 돈에 대한 극단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같습니다. 돈을 터부시하고 마치 그것에 대해서 언급하면 안되고, 돈을 추구하는 자체를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성경적인 시각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문제는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돈을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고, 돈을 사랑하면서 돈에 완전히 빠져서 끊임없는 탐욕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돈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중요한 것이고 우리를 보호해 있는 중요한 수단이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그렇게 중요한 돈보다 중요한 것이 지혜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12 하반절 말씀입니다. “지혜에 관한 지식이 유익함은 지혜가 지혜 있는 자를 살리기 때문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무나 중요한 말씀입니다. 참된 지혜라는 것은 돈의 가치를 완전히 뛰어넘는 것입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가진다고 하더라도 참된 지혜를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죄인이 처한 비참한 현실과,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과 그분이 베푸신 구원에 대하여, 우리의 인생의 진정한 목적과 가치에 대하여 결코 돈은 알려 없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 3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감히 돈이 없는 영원한 생명과 의로움을, 참된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 안에서 죄인이 얻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13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7:13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세번의 명령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13절에보라”, 그리고 14절에기뻐하라, 되돌아 보아라 세번의 동사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와 같은 일반적인 인간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삶에 좋은 일이 일어나는가? 아니면 슬픈 일이 일어나는가? 거기에만 온통 우리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엄청나게 좋은 일이며, 많은 복을 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건강과 물질의 복을 넘치게 주시는 분이시며, 그렇게 하실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의 왜곡된 생각과 죄성이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의 관심이, 나에게 과연 좋은 일이 일어나는가 아닌가? 거기에만 관심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나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 하나님보다 앞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이 병들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무엇이라고 하는가? 나에게 좋은 일이 있는가 아닌가? 그것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위대하신 전능하신 여호와를 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기억할 것을 명령하시면서, 그리고 이어지는 우리 삶의 두가지 명령이 있습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삶은 고난이 일어날 수도 있고 형통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의 삶에 두가지 일이 모두 일어난다는 것을 확고한 진리로 전제로 삼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병행하여서 함께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형통한 날에 진심으로 기뻐할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모든 복을 주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능력이나 운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내가 누리는 모든 형통이 왔다는 것을 우리가 믿음으로 고백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고난을 지나갈 때에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성경은되돌아 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사실 "되돌아보라" 라는 번역보다는, "생각하라, 깨달으라" 라는 번역이 좋은 번역입니다. 무엇을 생각하고 깨달아야 하는가? 14 하반절에 내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너무나 흥미로운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닥쳐오면 자동적으로 우리는 어떤 생각부터 하는가? 혹시 내가 죄를 저질러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인가? 물론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의 고난은 얼마든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개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강조해서 말씀하시는 것은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내가 잘못 살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성경이 지금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인생 그런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하나님의 목적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적을 가지고 계시는데,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시고자 함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포인트는 "장래의 " 다시 말해서 미래입니다. 어떤 영어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사람의 인생에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이렇게 번역을 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그렇게도 미래에 집착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의지할 것을 찾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미래를 조금이라도 확실히 예측할 있다면, 나의 삶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그러한 갈망의 근본 속으로 들어간다면, 세상을 조금이라도 내가 뜻대로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와 미래를 지배함으로써 안정감을 얻고자 하는 갈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와 나의 미래라는 것을 철저하게 독립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막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정도 미래를 예측할 있고 준비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그것을 막으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정말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우리 자신이나 우리 환경이나 예측 가능한 미래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자신을 의지하라고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장 요구입니다. 나를 믿는 불신앙에서 벗어나서, 참된 아버지이신 여호와 나의 삶을 책임지시며 이끌어가시는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시편 115 9절과 1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15:9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115:11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그리고 시편 28 7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8:7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한가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의 순간에,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고 감사하며, 그분께 넘치는 찬양과 합당한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기는,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에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기를 바랍니다. 만약 우리가 형통한 순간을 지나고 있다면, 여호와의 은혜를 인정하고 기뻐하며 그분께 감사를 올려드리기를 원합니다

만약 우리가 고난의 때를 지나고 있다면, 그럴 때일 수록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을 붙들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고난의 시간을 통하여서 우리의 믿음이 새로워지고, 정금처럼 아름다워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들을 기억하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살피며 변화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삶의 마지막 때를 생각하고 주님을 다시 것을 믿고 기대하며, 오늘 하루를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둘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형통한 날에 주님 안에서 기뻐하게 하시고 고난의 때에 더욱 주님 의지하고 붙드는 아름다운 믿음을 가진 성도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문" 전체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_4.html


*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고, 
커피 한잔 기부를 통해 정진부 목사를 응원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buymeacoffee.com/jungjinbu5

추천 글

로고스 프로그램으로, 평신도 성경 공부하기 with 스터디 바이블 노트 Study Bible Notes (2023년 9월 업데이트)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시 119:103) 누구나 성경을 열심히 읽으라는 말은 듣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꿀보다 달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

리딩 크리스천 독서 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