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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2일 토요일

더 깊은 기도를 향해서

 

지금 돌이켜 보면, 어머니의 귀한 사랑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늘 저에게 말씀을 읽고 기도하라고 하셨지만, 어린 저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가 않았습니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성경을 읽기를 시작했으니, 한편으로는 참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참 아쉽기도 합니다. 그나마 그때 정신을 차린 것이 감사하고, 또 한편으로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도 있습니다. 

개인 기도 노트를 만든지 몇년이 되었습니다. 거창하지 않고 아주 간단한 노트입니다. 셀폰 메모장에 성도님들의 기도 제목을 적어 놓고 개인 기도할 때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많은 기도 부탁 속에서 잊는 것이 죄송해서, 또 좀 더 진지하게 기도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입니다. 

이틀정도 마음이 쉽지 않았는데, 더 기도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기도하다가, 갑자기 말씀을 적어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간절해져서 그런 듯 합니다. 어머니께서는 굴곡진 인생을 걸으시면서, 늘 성경을 펴고 읽으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우시면서 기도하는 모습도 참 많이 보았고, 그것이 저의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녹아 있습니다. 

어머니의 진실함과 절박함에 아직 제가 따라갈 수 없지만,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듯 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도 그리고 목회도, 인간의 능력이 역할을 하는 것은 아주 아주 적은 부분인 듯 합니다. 예전에는 너무 막막해서 한숨이 나오던 순간이 거의 대부분이었다면, 이제는 조금은 믿음이 더 생겨서, 기도 제목으로 적고 기도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기도 노트는 점점 길어집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성경 구절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기 전에 읽고 이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라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의 삶 역시 돌이켜보면 녹녹치 않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저를 더 연단시키시는 것이 뜻인 듯 합니다. 어쩌면 이제 시작일 수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두려운 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은 그분의 뜻대로 이루시며 영광 받으시는 분이기에 저는 순종할 따름입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벧전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요일 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수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잠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 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히 12: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이 말씀들을 단숨에 읽고 나니, 그제서야 마음에 평안이 찾아옵니다. 어디로 나가야 할지를 조금은 더 선명하게 발견하게 됩니다. 말씀이 문자로 머무르지 않고, 저의 생각과 마음 그리고 전 존재에 스며들기 원합니다. 그럴 때에 저의 인생에 두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걸음 한걸음이 진정한 천국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소망하며 끊임없이 전진하기 원합니다.

2025년 6월 10일 화요일

로고스 어디까지 써 봤니? - 아직 끝나지 않았다, 로고스 그리고 옵시디언이 만나다

 



"원래 뭔가를 시작하는 사람은 많아도 끝까지 마치는 사람은 적은 법이다. 
대체 왜 그럴까? 그건 자기가 끝까지 해낼 것이라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 멘탈리티 

* 로고스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오랜만에 멘탈리티를 읽었습니다. 너무 많이 읽어서 한동안 접고 있었는데, 리디 북스의 듣기 기능으로 운전하면서 들었습니다. 최근에 리디북스가 AI 음성을 지원하면서 훨씬 음성이 자연스러웠습니다. 듣기도 좋았고 마음도 새로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치는 사람은 적다는 팀 그로버의 말이 마음에 크게 와 닿았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것임을 다시 한번 마음에 떠올렸습니다. 

여전히 로고스를 사용합니다. 계속 사용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나온 AI기능이 포함된 패키지까지는 구입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사용하는 정도로 만족하기 때문이고, 만약에 필요하다면 제가 이미 가진 자료들을 ChatGPT에 넣고 활용하는게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요즘에 로고스를 사용하면서 좋은 것은, 모바일 앱이 정말 많이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한동안은 너무 많은 기능을 집어 넣으면서 앱 자체가 부드럽지 못했습니다. 정보 하나를 확인하려고 해도 손이 너무 많이 가서 차라리 랩탑으로만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모바일 앱이 안정화되고 훨씬 편해 졌습니다. 이제는 과거에 가볍게 사용하던 로고스 느낌대로 다양한 기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원어 검색은 기본이며 많은 통찰을 준다

묵상을 하고 설교를 준비하다보면, 대부분 단어 검색에서 많은 통찰을 얻습니다. 어려운 일도 아니고 부지런하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굳이 로고스의 원어 섹션을 들어가지 않아도, 원어 자체를 본문에서 검색하면 눈으로 훑어보면서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며칠 전에 말씀을 묵상하다가, 히브리서 12장 1절에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라는 부분이 참 마음에 많이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원어로 검색을 해 보았습니다. 


검색을 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개역 개정 성경에서 단어를 길게 누르면 아래에 '단어 정보' 창이 나옵니다. 그럼 그 오른쪽에 점 세개의 메뉴 버튼을 누르면 원어를 검색할 수 있는 옵션이 나옵니다. 


그러면 아래 그림처럼 원어가 사용된 모든 구절을 개역개정 성경 기준으로 보여줍니다. 어떤 단어는 번역이 다양하게 나타날 수도 있고, 어떤 단어는 비교적 비슷하게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 단어는 '인내', '참고' 이런 식으로 번역이 되었네요. 




그런데 쭉 내려가 보니 요한계시록 3장 9절 말씀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것은 '인내의 말씀' 이라는 부분입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사람에게만 인내를 연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인내를 직접 연결했다는 것이 굉장히 독특하고 또 감동적으로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것 자체가 인내가 필요하고, 그리고 그 말씀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또한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다시 요한계시록 3장 10절로 가서 하이라이트를 했습니다. 언제나 이 말씀을 다시 보게 될 때에 묵상 내용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혹시 이 말씀을 로고스에서 카피해서 옵시디언에 붙이면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입니다. 

옵시디언을 쓰면서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습니다. 자료가 누적이 되고 정리가 되면서 저의 세컨 브레인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로고스를 직접 카피해서 옵시디언에 붙여본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 로고스와 옵시디언은 아주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다

그래서 일단 옵시디언을 열고 '말씀의 통찰" 이라는 폴더를 만들어서 노트를 만들었습니다. 노트의 이름은 '주의 말씀은 인내의 말씀이다' 입니다. 그리고 로고스에 개역개정 말씀을 클릭해서 복사하고 옵시디언에 붙이기를 했더니, 로고스의 내용 그대로가 복사가 되었습니다. 

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옵시디언에 붙인 내용에 자동으로 링크가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3:10'을 클릭하면 어떻게 될까요? 저 하이퍼 링크는 어떻게 작동할까요? 놀랍게도 로고스 앱을 그대로 띄워줍니다. 로고스 앱이 닫혀 있더라도, 제 셀폰에서 옵시디언을 열고 저 링크를 누르면 바로 로고스 앱이 뜨고 개역개정 버전에 저 말씀이 띄워집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저는 상당히 혁신적이라고 느꼈습니다. 로고스에서 탁월하 내용을 발견하면 그 자리에서 복사해서 옵시디언에 바로 넣고 노트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시 옵시디언을 클릭하면 로고스를 바로 띄워서 추가적인 연구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에는 모든 것이 시간 싸움이고 효율이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너무나 효율적입니다.

* 랩탑에서도 유사한 기능을 제공한다

갑자기 궁금하더군요, 그럼 랩탑에서 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쉽게도 약간 한계가 있습니다. 셀폰의 경우에는 옵시디언에서 링크를 클릭하면 로고스가 바로 자동으로 실행되면서 개역개정 성경이 나옵니다. 그러나 랩탑의 경우에는, '로고스가 실행되고 있는 경우에만' 셀폰처럼 작동합니다. 로고스가 꺼져 있는 경우에는 시작 화면에서 멈추어 버리네요.


* 포기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한동안 너무나 정체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포기할 이유도 없습니다. 요즘에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대단한 인생이 아니더라도, 딱 한걸음씩 전진하는 인생이 되자' 

하나님께서 새로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또 한걸음 전진했습니다. 로고스를 쓰기 전과, 또 옵시디언을 쓰기 전과 지금의 저는 완전히 다른 사람입니다. 하지만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좋은 것을 배웠으니, 앞으로 말씀을 묵상하면서 필요한 부분들을 계속 모아야 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또 한번 그것이, 저를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하는 중요한 토대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로고스 성경 프로그램' 전체 글 모음

2024년 12월 31일 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99) - 길

 


1. 가사 살펴보기

어느새 지금 여기 서 있네 생각조차 못했던
어떻게 내가 여기까지 왔는지 감사하기만 한 걸
조금씩 보인 그 길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왔었지
인생의 끝에 내 삶을 반겨줄 이 기다리고 있으니 

내게 주어진 길을 걸으리 담담하게 이 길에 나서리
쉬운 길을 찾았던 지난날과 아쉬움은 소망으로 덮고
주어지는 인생의 길 위에 후회 없이 내 삶을 그리리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대도 난 결코 포기 할 수 없네

 

2. 곡 소개

곡은, 찬양 사역자인 함부영님의 나의 노래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찬양은 성도의 인생을 길로 비유하면서, 지금까지 걸음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길 끝에서 기다리고 계신 주님을 생각하며, 후회 없이 그 길을 믿음으로 걸어가겠다는 신앙의 결단을 아름답게 그려낸 탁월한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고전 1: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시편 143:8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 143:8 Let the morning bring me word of your unfailing love, for I have put my trust in you. Show me the way I should go, for to you I entrust my life.

다윗은 단순히 어려움에서 구원받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하나님의 교제와 인도하심을 원한 것입니다.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700.

마태복음 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에베소서 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5:2 and walk in the way of love, just as Christ loved us and gave himself up for us as a fragrant offering and sacrifice to God.

우리의 삶의 방식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일치됨으로써  특징지어져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하여서 사랑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과 같은 종류가 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애정을 넘어 자기 희생의 섬김에 이르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Bruce Barton et al., Life Application New Testament Commentary (Wheaton, IL: Tyndale, 2001), 824.

히브리서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12:1 Therefore, since we are surrounded by such a great cloud of witnesses, let us throw off everything that hinders and the sin that so easily entangles. And let us run with perseverance the race marked out for us,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 (개역개정) 12:2 fixing our eyes on Jesus, the pioneer and perfecter of faith. (NIV)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독교 신앙의 근원이시며 완성자이시기 때문에 저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촉구했습니다.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모든 죄악의 무게를 벗어던지고 그리스도를 향해 달려갈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참으시고 수치를 업신여기시고 아버지의 보좌에 다시 합류하는 기쁨을 얻으셨듯이, 그리스도인들도 인내심을 가지고 경주해야 합니다.

Malcolm B. Yarnell III, “Hebrews,”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960.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성도가 걸어가는 인생의 길을 문학적으로 너무나 탁월하게 그려낸 곡이다. 성도의 길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부르셨기에 시작된 것이며,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인도하셨다는 것을 고백하며 깊은 감사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성도의 길이 시작이 있다면 끝이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길 끝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가 오직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을 바라볼 때에 우리의 모든 죄악의 짐을 벗어 던지며 주님의 신실하심과 은혜를 경험하며 확신 가운데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 라는 것이다.

성경은, 성도의 길이 인내의 길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길을 인내로 걸어가신 것처럼, 우리 역시 믿음으로 인내함으로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롭게 우리에게 시작되는 2025년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길임을 믿고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 앞에 놓여진 수 많은 어려움이 이미 보이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통해서 주님을 더욱 의지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우리 앞에 주어진 인생의 길을 감사와 소망으로, 그리고 결코 포기하지 않는 인내로 걸어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4년 1월 14일 일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65) - 예수를 깊이 생각하자

 


1. 가사 살펴보기

구름 같이 허다한 예수의 증인들 있으니
모든 무거운 짐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
우리 앞에 펼쳐진 삶들은 믿음의 경주니
인내로써 모든 경주들을 힘써 싸워 승리하여라 

믿음의 본 되신 예수 십자가 지신 주님
어려움 닥칠 때 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자

 

2. 곡 소개

곡은, 1997년에 발매된 꿈이 있는 자유 1에 수록 된 곡이다. 이 곡은 히브리서 12장의 말씀을 바탕으로 한 곡인데, 성도는 자신의 앞에 놓여진 믿음의 경주를 달려야 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깊이 생각하며 그 길을 정진해야 함을 깨우쳐주는 깊이 있는 찬양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히브리서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12:1 Therefore, since we are surrounded by such a great cloud of witnesses, let us throw off everything that hinders and the sin that so easily entangles, and let us run with perseverance the race marked out for us.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12:2 Let us fix our eyes on Jesus, the author and perfecter of our faith, who for the joy set before him endured the cross, scorning its shame, and sat down at the right hand of the throne of God. 12: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12:3 Consider him who endured such opposition from sinful men, so that you will not grow weary and lose heart. 12: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2:12 Therefore, strengthen your feeble arms and weak knees. 12: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개역개정) 12:13 "Make level paths for your feet," so that the lame may not be disabled, but rather healed. (NIV)

12:1 여기서 증인은 순교자와 같은 말이며 아마도 의도적인 언어 유희일 것입니다. 죄를 벗어 버리라는 것은, 당시 그리스 경기에서 달리기 주자들은 움직임이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 옷을 입지 않고 달린 것과 연결할 수 있습니다.

Lyman Coleman, ed., Life Connectio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s, 2019), 1961.

12:2 여기서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은 신뢰함으로 시선을 고정한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믿음 안에서 인내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이루셨습니다. 그분은 자신 앞에 놓여 있는 기쁨에 초점을 맞추셨기 때문에 우리의 모범이 되십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Heb 12:2.

12:3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각과 갈망의 대상이 되셔야 합니다. 고난 당하신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에, 자기 연민과 자기 집착에서 벗어나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801.

12:12-13 구약의 언어들을 사용하여서 히브리서 저자는 수신자들이 그들 앞에 놓여진 경주를 인내로 감당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383.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성도의 삶의 깊은 고난과 어려움,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에 대하여 노래한다. 우리의 삶은 분명한 목적과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믿음의 경주이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기 위하여, 그리고 천성을 향하여 나가는 순례자로서 우리는 이 경주를 감당해야하는 운명으로 부름 받은 것이다.

경주를 하는 선수들은 그 경주를 완주하고 또 승리하기 위하여 자신의 삶의 모든 초점을 맞춘다. 또한 모든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벗어버리고 그 경주에 집중하는 것이다. 믿음의 경주에서 우리가 벗어버려야 하는 것은 죄이다. 성화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여 최선을 다하여 죄와 싸우고 그것을 끊임없이 벗어 던져야 한다. 그래야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름처럼 많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과 순교자들이 우리를 위하여 천국에서 응원하고 있다. 그리고 이 어려운 경주를 버티게 하는 영적인 인내를 우리가 가져야 한다. 이것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꺼이 죄인을, 그리고 나를 참으시고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심으로 경주에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고 붙들고 그분과의 영적인 교제를 나눔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간절히 바라기는, 이 찬양을 부를 때 마다 우리의 삶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기를 원한다. 또한 인내로서 오직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며 힘써 이 모든 경주를 감당하는 분들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기도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3년 3월 8일 수요일

듣는 자 (The Listener) / 마태복음 17장 1-13절 주일 설교

 

* 마태복음 17장 1-13절 설교 

저는 모태 신앙으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헤아릴 없을 만큼 많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 저에게 있어서 예배에 대한 태도가 변화되는 결정적 계기가 있었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저의 교회에서 번째로 예배를 드리는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예배는 무엇인가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교회 자체는 2 동안 별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같은 목사님과 같은 성도님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은 특별한 집회가 있는 날도 아니었고 평범한 주일의 11 예배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만큼은 예배가 굉장히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뭔가 저의 영혼을 압도하는 어떤 것이 있었습니다. 뭔가 저의 영혼을 감싸는 어떤 영적인 힘을 느낄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의자에 앉아 있는 저의 무릎이 모아지면서 겸손하게 되는 그런 영적인 경외감이 있었습니다. 그런 특별한 영적인 체험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후로 예배를 대하는 저의 태도가 완전히 변화가 되었습니다. 모든 예배는 너무나 소중한 것이고 특별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라는 확신을 가질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예수님의 명의 제자의 삶에 있어서 가장 특별한 영적인 체험에 대한 기록입니다. 오늘 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7: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열두 제자 중에서도 예수님과 각별한 관계 속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느날 이들에게 어디론가 가자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 말씀에서 "데리시고" 라는 부분은 헬라어 문법으로 현재 형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데 지금 예수님이 그들을 이끌고 가시는 생생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위해서 제자들을 산으로 이끌고 가시는 것일까? 제자들은 너무나 궁금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무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산을 한참을 올라갔어 그리고 그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제 안정을 취하려고 때에 그들의 평생에 한번도 본적이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2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7: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얼굴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익숙하게 알고 있던 예수님의 모습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이 태양과 같았고 그분의 옷이 빛나는 하얀 색으로 변하였습니다. 제자들은 감히 예수님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분의 몸에서 놀라운 광채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3절에 보면 " 때에" 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헬라어 로는 감탄사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보라"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3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해처럼 밝게 빛나시는 바로 자리에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이 나타났습니다. 모세는 거의 BC 1500 경의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낸 민족의 지도자이고 십계명을 포함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은 사람입니다.

엘리야는 누구인가? 그는 BC 860 경의 사람입니다. 그는 북이스라엘 왕국이 하나님을 떠나 극도로 타락했을 때에 우상의 선지자들과 정면으로 대결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는 왕조차도 두려워하지 않고 말씀으로 꾸짖었던 구약의 대표적인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지금 제자들의 앞에서 일어난 일은 시공간을 완전히 초월하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놀라운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놀라운 광경 앞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4 말씀입니다.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무엇인가?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라는 부분입니다.

한번 베드로와 제자들의 입장이 되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그들의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이 느껴졌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신앙의 인물이 나타났다니 바로 자리보다 행복한 자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예수님과 모세 그리고 엘리야가 함께 자리에 계속 있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초막 셋을 짓겠습니다 그리고 저희도 함께 여기에 머무르겠습니다 라는 의미로 이야기를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베드로가 말하던 바로 때에 다른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5 말씀에서 "홀연히" 라는 것도 앞에서와 동일하게 "보라"라는 감탄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5 말씀에 보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구름이라는 것은 구약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상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인도했던 것도 하나님이 보내신 구름 기둥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구름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부 하나님께서 직접 임재하시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5 말씀에 보니이는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이는" 이라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위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위대한 모세와 엘리야가 있고 예수님이 가장 아끼시는 세명의 제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중에서 예수님만 특별히 지칭하시면서 예수님이야 말로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무나 기뻐하는 사람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제 산에서 내려올 시간이 되었습니다. 9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도대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일까

그것은 당시 사람들의 마음에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기적을 일으키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로마 제국을 뒤엎을 정치적인 영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놀랍게 변화되신 예수님의 모습을 사람들이 듣게 된다면, 예수님에 대한 오해가 커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대화를 주고 받을 때에 제자들이 이렇게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10 말씀입니다. “10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라고 여쭤보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산에서 엘리야를 보았기 때문에 말라기 4 5절을 떠올린 같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에 예언된 엘리야와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해서, 세례 요한이 이미 왔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엘리야가 어려운 시대에 담대하게 사역했던 것처럼 세례 요한도 담대하게 사역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멀어진 그분의 백성에게 경고하며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결국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12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땅에 오신 예수님조차 핍박과 고난을 받으실 것을 말씀하시며 오늘 말씀이 마무리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첫번째 적용은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라" 입니다.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오늘 말씀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특별한 영적인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경험 속에서 뭔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간 예수님께서는 원래 자신이 가지신 영광의 일부분을 그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이시지만, 동시에  모든 능력과 권세와 그분의 본질이 성부 하나님과 하나이시며 동등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예수님 역시 절대자이시며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자신의 영광을 조금 드러내시자 그분 자신이 찬란하게 빛을 뿜어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러한 예수님의 영광을 제자들의 반응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은 어디에 감탄했는가?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것에 감탄을 것입니다. 이들은 초막을 셋을 짓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조상이자 신앙의 위대한 영웅들에게 감탄하면서 예수님과 그들을 동급으로 놓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인간의 연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에는 사람의 위대함이 보일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누구는 어떤 위대한 사역을 했다고 하더라 어디에서는 사람을 통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고 하더라 이렇게 말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의 위대한 인물들을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처럼 오늘 말씀과 동일한 음성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십자가의 고난을 앞에 두고 동일한 음성이 들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은 한결 같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주인공은 누구이신가? 그분은 모세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 17절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율법과 선지자라는 것은 구약 성경 전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가 바로 구약 성경 전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의 모든 여정 자체가 구약의 말씀들을 이루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8 6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8:6 그러나 이제 그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약에서 모세는 하나님께 제사 제도를 받았습니다. 구약 시대는 용서를 받기 위해서 인간 제사장과 동물의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사람이 동물에게 자신의 죄를 넘기고 동물을 대신 죽임으로 용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물을 드리는 제사는 완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은 끊임없이 반복해서 동물을 죽여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한 가치를 가지신 자기 자신이 친히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분의 본질은 태양처럼 빛나고 완전하고 아름다우며 감히 인간이 측량할 없는 존귀한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참혹한 십자가에서 자기 자신을 온전한 제물로 성부 하나님께 드리심으로, 죄의 댓가를 요구하시는 의로우신 성부 하나님을 만족시키신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야를 비롯하여 많은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을 뿐이었습니다. 사실 구약의 이스라엘 전체 역사가 보여주는 것은 인간은 하나님 앞에 완전하게 순종할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모든 순종을 홀로 감당하셨습니다.

로마서 5 19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19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같이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 역사상 홀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모든 요구를 완벽하게 순종하신 것입니다예수님께서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완전히 의롭다고 하나님 앞에 인정 받은 유일한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의 전환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8절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떨며 엎드렸다가 다시 그들이 눈을 들어 보았을 때에는 오직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그토록 바라고 갈망하던 유일한 , 구약의 모든 인물들이 바라고 갈망하시던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분만이 그들 앞에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사건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것은, 예수님 이외에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쳐다보고 있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진정으로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지는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누구를 통하여 구원을 얻는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정말로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과연 어떻게 자리에 있을 있는 것인가? 죄인이 감히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되었는가? 그것은 오직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의 댓가를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말씀에 순종하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그분의 의를 입히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있게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가 우리의 마음을 힘들게 하고 나의 모든 잘못들이 마음을 짓누르고 괴롭게 때에 어떻게 감히 우리가 위로를 얻고 새로운 미래를 꿈꿀 있는가?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완전히 용서하시며 우리의 주인과 우리의 삶의 진정한 인도자가 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무엇을 확인하는 것인가? 우리가 바라고 갈망하고 마음에 원하고 사랑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분이시다 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 2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2:2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넷바이블이라는 영어 성경은 2 부분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Keeping our eyes fixed on Jesus” 다른 곳을 쳐다보지 말고 우리의 눈을 오직 예수님께 고정하라는 말씀입니다. 마치 제자들의 눈에 이상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 보이셨던 처럼 이제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의 눈은 오직 예수님만께만 고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경험하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모든 생각 그리고 모든 감각이 오직 예수님께만 집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 그분의 위대하심 그분이 사랑 그분의 은혜, 그것이 우리를 압도하여서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그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기는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독점적인 위대하심과 그분의 영원한 가치를 확인하고 발견하고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자로 변화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이 온전히 새로워져서 가장 존귀하신 예수님만 더욱 사랑하게 되는 복된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적용하면서 두번째 적용은 "오직 그분의 말씀을 들으라" 라는 것입니다. 혹시 성도님들께서는 누군가의 말을 경청하시는 편입니까? 저와 아내는 교회에서 만난 커플입니다. 저는 제가 스물네살 아내가 스무살때 처음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아내는 청년부 새내기였지만 저는 이미 청년부 안에서 최고 리더 중에 한명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차이가 차이도 아닌데 그때에는 저도 모르게 아내가 많이 어리다고 생각하면서 말을 별로 귀담아 듣지 않았던 같습니다.

아내가 피아노를 전공했기 때문에 어느날 좋은 음악회 표를 구해 왔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같이 가자고 말을 했습니다. 아내가 저에게 자세하게 이야기를 주었습니다. 굉장히 좋은 공연이다 그러니 옷은 세미 정장 이상은 입어야 한다 세종 문화 회관에 몇시까지 와라 좋은 자리에 좋은 표니까 준비해 와라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저는 마음이 너무 교만한 상태라서 아내의 이야기가 들리지가 않았습니다. 분명히 세미 정장을 입고 오라고 했지만 답답한 정장 스타일의 옷을 입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유행하던 제가 제일 좋아하던 짙은 파란색 잠바와 청바지를 입었습니다 

그렇게 입고 집에서 출발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한참을 가서 역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문을 열고 세종 문화회관 안으로 들어갔는데 순간 당황을 했습니다. 제가 한눈에 봐도 파란색 계열의 옷을 입은 사람은 한명도 없었습니다. 아내가 말한 처럼 대부분 세미 정장 혹은 정장 차림이었습니다. 애써 당황한 마음을 감추면서 아내 손을 잡고 함께 자리를 찾아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내가 저를 끌고 가는데 넓은 에서 자꾸 앞쪽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까 저의 자리가 앞에서 거의 두번째 중앙 자리였습니다. 아내가 우리 둘을 위해서 특별히 준비한 자리였던 것입니다. 분명히 저에게 좌석에 대한 이야기도 했었겠지만 교만한 저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너무 부끄러운 마음에 어쩔줄 몰라하며 의자에 최대한 몸을 파묻고서는 연주회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세계적인 지휘자인 정명훈씨가 무대 왼쪽에서부터 등장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필 들어오면서 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아마도 파란색 잠바가 눈에 띄었던 같습니다

정명훈 씨가 걸어들어오면서 저와 눈이 마주친 것은 대략 5 정도의 시간이었는데 인생의 가장 길고 민망하고 고통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벌써 20년이 되어서 오래전 일이지만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식은땀이 나는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님들께서는 오늘의 말씀에서 하이라이트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5절의 마지막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실 모든 영어 성경들은 listen to him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원문에 가까운 번역이라고 말할 있겠습니다. 단순히 사람으로 부터 나온 말만 듣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존재 자체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아내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렇게 부끄러운 일을 당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단순히 말을 듣지 않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존재 자체를 충분히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성도로서 목회자로서 교회를 때에 염려하는 것이 있는데,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의 특별함을 우리가 종종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기독교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 단순히 성경에 있는 자체를 지키는 , 다시 말해서 마치 좋은 책을 읽고 책에 쓰여 있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정도로 생각하는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기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예수님과 우리의 특별한 관계를 말씀하시고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에 제가 새롭게 깨달은 것은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라는 것과 9절의 말씀이 중요한 연결이 있다는 것입니다. 9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가? 그것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라는 것을 전체적으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예수님의 일하심을 온전히 이해할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이해할 없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2 2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말씀은 평범한 말씀이 아닙니다. 단순히 물리적인 관점에서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원래 우리 인간 개개인은 분리된 존재입니다. 다른 사람과 나와의 존재는 물리적으로는 하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바울 사도는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의 하나됨에 대해서 영적인 연합에 대해서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렇게 중요한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됨의 특징이 무엇인가? 그것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안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나와 영적으로 연합하여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존재가 나와 떨어질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그저 우리와 손을 잡고 걸어가는 정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그저 우리의 등을 만져주시는 정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며 지금 우리와 하나가 되시며 우리를 품으시며 안으시며 우리는 그분 안에 있으며 세상에 누구도 감히 이루지 못한 가장 내밀한 관계를 지금 우리에게 만들어내셨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파리의 연인"이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너무나 유명해진 대사가 있습니다. “ 안에 있다 속에 너가 있다 라는 대사입니다. 사랑의 극치를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대사의 깊이를 수가 있습니다. 인간의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본성 그분의 형상에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히 인간이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 누군가에게 당신이 안에 있다 라고 말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이야 말로 성경적인 대사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꿈꾸는 가장 아름다운 관계를 우리와 만드시고 그러므로 이제는 관계 안에서 너희는 나의 말을 들으라 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저는 이번에 말씀을 묵상하면서, 성경을 통틀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있는 예레미야 31 33절이 새롭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말씀은 이제 신약의 시대가 열리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렇게 변할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선포하시며 예언하시는 장면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1:33 그러나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백성이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라고 말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 안에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인격으로 땅에 오셨음을 말씀하십니다. 진리이시며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제는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영원히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놀라운 신비이며 감격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참으로 흥미로운 것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오늘 본문 앞에 있는 마태복음 16 24절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서제자라는 호칭이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마태는 계속해서그들이이라는 표현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 다시 제자라는 말이 등장하는가? 오늘 5절에 말씀에이는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그리고 나서 6절에 드디어 다시 제자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누가 예수님의 참된 제자들인가? 누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자들인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안에 계시며 그분과 하나된 사람들, 존귀하신 그분의 말씀을 기울여 듣는 사람들, 예수님으로 인해 마음이 변화되어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 바로 사람들이야 말로 예수님의 참된 제자들이다 라고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한번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님들께서는 자신이 영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무엇을 통해서 확신하고 계십니까? 저는 청년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저의 삶을 돌이켜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무겁게 느껴지는 " 바로 그것이 저에게 있어서 가장 변화인 같습니다.

어렸을 부터 들었던 말씀이지만 말씀이 가지는 무게감이라는 것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말이 아니라 절대자인 신의 음성입니다. 다시 말해서 영원하며 존귀하며 결코 쇠하지 않는 무게와 영광을 지닌 것입니다. 말씀이 너무나 무거워서 너무나 소중해서 너무나 진중해서 그것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고 나의 생활을 사로잡고 나의 마음을 회개시키고 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린 저의 예배의 특별한 경험이라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말씀의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무게를 놀랍게 새롭게 경험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의 모든 초점을 예수님께 맞춘 사람, 예수님을 깊이 사랑하는 자만이 그분의 말씀의 무게와 영광을 경험할 있게 되는 것입니다 

보석과 같이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며 나의 전부가 되시며 나를 품으시며 안으시는 바로 그분의 안의 임재와 역사를 경험하며 갈망할 때에 그제서야 참된 제자인 우리가 이렇게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겠습니다, 우리가 주의 음성을 듣는 자가 되겠습니다, 주의 말씀이 마음에 새겨진 자로 살아가겠습니다 라고 고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친히 이끌고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영광을 보이셨고 제자들이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도록 하셨습니다. 성도의 구원도 그리고 삶의 여정을 걸어가는 모든 힘과 능력과 이유도 우리의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신 놀라운 일들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의 영적인 임재와 능력을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눈이 오직 그분께만 집중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시며 더욱 가까이 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참된 제자로서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의 말씀이 우리에게 너무나 사랑스러워지고 진중하고 무거워지는 영적인 깊이와 경지를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주님의 음성을 내가 기꺼이 듣겠나이다 라고 고백하는 깊은 영적인 고백으로 평생을 걸어가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시간에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기 원합니다나의 구원이시며 나의 의로움이시며 능력이시며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갈망하며 주님을 갈망하며 주님을 의지하는 복된 성도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둘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오직 주의 말씀을 듣기를 원합니다 안에 살아계신 주님의 존귀한 말씀이 저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되기 원합니다, 영원한 주의 말씀이 저에게 있어 가장 무거운 것이 되며 저의 삶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것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주의 자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문전체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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