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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24일 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221) - 사랑한다 말하시네


1. 가사 살펴보기

아무런 자격도 없는 나를 위해
아무런 소망도 없는 나를 위해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말하시네
이 낮은 날 위해 

이제 나는 옛사람 아니요
사망에서 건지신 주의 자녀이니
그 한없는 주의 사랑 안에
기쁨으로 걸어가겠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손을 잡고 함께 가자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말하시네
세상 끝 날까지

 

2. 곡 소개

곡은, 예배사역 단체 기프티드(gifted)의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소망 없는 나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 그리고 새롭게 태어난 주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과 소망을 담고 있는 아름답고 탁월한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를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죽게 하심으로써 우리에 대한 그의 크신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높은 표현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사랑스러워지기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를 그분께 가까이 데려가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Bruce Barton et al., Life Application New Testament Commentary (Wheaton, IL: Tyndale, 2001), 597.

2: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암담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랑과 자비로 행동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비 없이는 인류에게 어떤 희망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바울이 구원을 이해하는데 있어 핵심 주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과정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방관자나, 분노로 가득 차 진정되기를 기다리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구원의 주체이시며, 자신의 사랑으로 그의 진노를 다루시고, 그분의 백성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썩지 않을 씨로 거듭났고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안에 영적인 변화를 일으키셨고, 당신의 정체성은 당신의 새 생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더 이상 예전의 사람이 아닙니다. 옛 사람은 지나갔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이 새로운 정체성에 걸맞게 살아가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1370.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연합한 자 : 신약 성경에서만 여기 나오는 표현은 “연합하여 자라다” 혹은 “연합하여 심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단어는 함께 심었고 함께 자라며 밀접하게 얽혀 있거나 결합되어 있는 두 식물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문맥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와 우리가 연합하였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와의 죽음에의 연합은 마치 그분과 함께 심겨진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이제는 사랑의 연합인데, 그분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그 안에서 우리는 그분과 함께 성장하는 것입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Ro 6:4–5.

2:10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이 깨어나 게으름을 떨쳐버리고 당신과 함께 걷자고 권면하십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945–946.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복음의 정수를 담고 있다. 우리는 사랑 받을 자격이 없고 소망이 없는 죄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를 기꺼이 찾아오시며, 오직 그분의 사랑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다. 이 찬양을 들으면,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 감동을 받는다. ‘사랑한다라는 반복되는 가사가, 이 찬양의 깊이와 풍성함을 한 없이 더해준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구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완전히 다른 존재로 만드셨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하였다. 그분과의 연합은 성령님을 통하여 이루어진 사랑의 연합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고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의 다스림 속에서 그분을 사랑하는 존재로 거듭난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생명, 그리고 그분과의 사랑 가운데 살아가라고 부르심을 받았다. 그런 면에서 이 찬양의 브릿지를 아가서를 연결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다. 성경을 관통하는 핵심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와 동행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어떤 면에서는 한 없이 복잡해 보이고, 또 고민해야 할 부분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찬양은, 복음의 본질과, 성도의 정체성,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 너무나 선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넘치게 받았고 또 받고 있기에,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하면 된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전부이다. 이 찬양을 통해서,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그것을 누리며 감사하며, 믿음의 길을 기쁨으로 걸어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4년 6월 16일 일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80) - 주 사랑 앞에 엎드려

 


1. 가사 살펴보기  

사랑 앞에 엎드려 인자하심 경배해
두렵고 친밀한 주님 영혼 떨며 기뻐해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경배합니다 경배합니다 

공의와 사랑 이곳에 죄인 영광 앞에
죽임 당하신 어린 영원히 계신 하나님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경배합니다 경배합니다

 

2.  소개

곡은어노인팅 12 기름 부으심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곡은, 가장 거룩하신 주님 앞에 완전한 겸손과 복종 가운데 엎드려 경배하는 아름다운 성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또한 우리가 주님 앞에 경배할 있는 유일한 이유는, 바로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고백하는 성경적으로 탁월한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요한계시록 19:4 이십사 장로와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19:4 The twenty-four elders and the four living creatures fell down and worshiped God, who was seated on the throne. And they cried: "Amen, Hallelujah!" 19:5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종들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작은 자나 자나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19:5 Then a voice came from the throne, saying: "Praise our God, all you his servants, you who fear him, both small and great!"

여기서 예배 중에 엎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완전한 겸손과 복종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멘을 외치면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확증하셨습니다.

Bruce Barton et al., Life Application New Testament Commentary (Wheaton, IL: Tyndale, 2001), 1261.

시편 85:9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 땅에 머무르리이다 85:9 Surely his salvation is near those who fear him, that his glory may dwell in our land. 85:10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85:10 Love and faithfulness meet together; righteousness and peace kiss each other. 

인애와 화평은 죄인에 대한 그분의 동정심을 표현하는 하나님의 특성입니다. 그러나 진리와 의라는 것은 죄에 대한 형벌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의 조화로운 은혜는 입맞춤으로 표현됩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가져가시고 덮으심으로 의롭게 처리하십니다 그리하여 스스로 조화를 이루십니다. 궁극적으로 입맞춤은 마지막 어린 양의 피를 통해 갈보리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George Robertson and Bruce A. Ware, “Psalms,” in Gospel Transformation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ed. Bryan Chapell and Dane Ortlund (Wheaton, IL: Crossway, 2013), 733.

고린도후서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개역개정) 5:21 God made him who had no sin to be sin for us, so that in him we might become the righteousness of God. (NIV)

이 구절은 복음의 메시지의 주요한 요약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죄를 그리스도에게 전가하셨는지를 설명합니다.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에 대한 책임을 그리스도에게 넘기셨고, 우리가 그 죄에 대해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을 그리스도께서 받으시는 것을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형벌을 받으신 우리의 대속자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2057.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곡은,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우리에게 심어준다. 대중 문화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근거하여서 신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끊임없이 우리의 무의식 속에 심어주고 있다. 특히 마블 영화 시리즈는 신이란 그저 인간보다 훨씬 우월한 존재 정도로만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대중 문화의 주장은 절대자에 대한 인식을 흐리게 만들며 죄인이 자신의 비참함을 깨닫지 못하게 함으로써, 결국 우리의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여호와 하나님은 절대자이시다. 그분은 거룩하시고 모든 것과 완전히 구별되시며 가장 완벽하시고 만물을 오직 그분의 뜻대로 다스리시고 이끌어 가신다. 타락한 인간은 감히 그분 앞에 자신을 드러낼 수조차 없는 것이다. 처음부터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반역하여 죄를 짓고 영혼이 죽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인을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심으로 자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다.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동시에 사랑이시다. 그런데 어떻게 그분의 공의와 사랑이 하나로 연결되는가?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죄인의 모든 죄의 대가를 예수님께서 홀로 짊어지시고 죽으심으로 오히려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완전히 의로우신 분이심을 증명하셨다. 그분은 기꺼이 자신의 희생을 통하여 죄인을 구원하심으로써,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분의 위대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 받은 이들에게 마땅한 반응은, 그분을 향한 사랑의 고백, 그리고 진정한 경배이다. 엎드린다는 것은 가장 깊은 수준의 겸손과 순복을 뜻한다.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의 구원을 친히 이루시는 그분 앞에서 합당한 경배를 진실한 사랑 가운데 올려 드리는 모든 분들이 되시기를 기대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3년 12월 11일 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61) - 주만 의지해

 


1. 가사 살펴보기

의지했던 모든 것 변해가고 억울한 마음은 커져가네
부끄럼 없이 살고 싶은 맘 주님 아시네
모든 일을 선으로 이겨내고 죄의 유혹을 따르지 않네
나를 구원하신 영원한 그 사랑 크신 그 은혜 날 붙드시네 

주어진 내 삶이 작게만 보여도 선하신 주 나를 이끄심 보네
중심을 보시는 주님만 따르네 날 택하신 주만 의지해
보이는 상황에 무너질지라도 예수 능력이 나를 붙드네
보이지 않아도 주님만 따르네 내 평생 주님을 노래하리라

 

2. 곡 소개

곡은, 마커스워십 2018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보이지 않는 주님이 은혜로 붙드시고 성도를 이끄시기에, 더욱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걸어가겠다는 성도의 아름다운 결단을 담은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로마서 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12:21 Do not be overcome by evil, but overcome evil with good.

성도의 단순한 친절이 때로는 놀라운 일을 일으킵니다. 적대적인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켜서 회개 시키기도 하고, 혹은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Study Bible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08), Ro 12:20–21.

빌립보서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1:6 being confident of this, that he who began a good work in you will carry it on to completion until the day of Christ Jesus.

하나님께서 성도 안에서 착한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성도들의 구원을 이루는 노력을 행할 동기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2108.

시편 37:23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37:23 If the LORD delights in a man's way, he makes his steps firm; 37:24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37:24 though he stumble, he will not fall, for the LORD upholds him with his hand.

어떤 이들은 크리스천이 마치 넘어지지 않는 사람인 것처럼 여깁니다. 그러나 성도의 특권은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성도의 공동체의 특징은 넘어진 사람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격려해 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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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5: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개역개정) 5:7 We live by faith, not by sight. (NIV)

성도가 미래에 부활한다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확신할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로 인하여, 그리고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임재해 계신다는 것으로 인하여 우리는 분명한 증거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Study Bible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08), 2 Co 5:7.

특히 지금 시대는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와 그 힘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이 더 겉모습에 매달릴 수록, 성도는 말씀과 기도를 통해 더 깊은 영적인 세계로 들어가며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지배하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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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찬양에 대한 묵상

성도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미래는 분명히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그 미래를 확신하며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모든 유혹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비록 우리의 미래가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역사 가운데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확고한 증거들을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은, 우리가 미래를 확신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증거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고난 속에서도 여전히 넘치는 은혜를 붓고 계시며, 부인할 수 없는 하늘의 기쁨과 감격을 주시면서 우리를 책임지시고 이끌어가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찬양의 고백처럼, 우리는 보이는 상황에 억눌리지 않고 그리고 당장 나의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도 마땅히 전진해야 한다. 비록 성도라도 당연히 넘어질 수 있겠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승리를 확신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 찬양을 부를 때마다, 절대적인 사랑으로 붙드시는 주님만 더욱 의지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서로 격려하며 서로를 일으켜 세우며 함께 주님을 따르는 은혜가 넘치시기를 기대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2년 8월 9일 화요일

가장 높은 수준의 거룩을 추구하라 / 레위기 22장 17-33절 설교

 

설교가 쉽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입니다. 설교는 너무나 어려운 것입니다. 설교는 성경 안에 목회자 자신의 삶과 성도의 삶을 녹여내는 것입니다. 복잡한 것이고 실제적인 것이고 또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설교는 결국 목회자 본인이 고민하는 만큼, 그리고 본인이 가고자 하는 그 목적을 향하여 부단히 가는 그만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설교를 준비할 때 마다 기대감이 있습니다. 기대감이 없다면 기대감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살아계시며, 설교를 준비하는 저에게 그리고 설교를 함께 듣는 성도들에게 반드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설교는 창의성이 필요했습니다. 말씀의 문맥을 고려하면서 충분한 목회적인 상상력이 필요했습니다. 복음의 내용이 손상되지 않으면서도, 마땅히 추구해야 하는 거룩의 길을 설득적으로 제시해야 하는 어려운 미션을 해내야했습니다. 


성화의 측면을 여러가지로 제시할 수 있겠지만, 성도의 마음 안에 있는 어떤 갈망을 운동 선수의 최고가 되고자 하는 갈망과 연결해 보았습니다. 완벽한 비유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원대한 꿈, 가장 높은 수준의 거룩에 대한 갈망이 설교하는 저의 마음 가운데에 그리고 함께 듣는 성도님들의 마음 가운데 불처럼 일어나기를 기대하면서 설교를 준비하고 설교했습니다. 한번의 설교와 설교문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고 또 제가 한 설교 그 자체가 저의 삶 가운데 실현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 레위기 22장 17-33절 설교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어떤 것을 드려야 하는가 그것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8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2:18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드려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문제는, 단순히 제사장만이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반드시 함께 알고 있어야 하는 매우 중요한 말씀이라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18절에 보니 이렇게 시작하십니다. 서원제물이나 자원 제물로 바칠 경우에 다시 말해서 여호와께 이미 드리겠다고 약속한 것을 드리거나 혹은 즐거운 마음으로 여호와께 추가로 어떤 것을 바칠 때에는 19절에 보니 “22:19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소나 양이나 염소의 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하나님께서 드리는 동물의 종류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동물이 흠이 없는 것에 강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 주목할 것은 죄를 속하기 위해서 반드시 드려야하는 번제나 속죄제도 없는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리고 거기에 더하여서 자기가 스스로 하나님께 약속으로 제물을 바치는 사람도 그리고 하나님께 자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추가로 바치는 사람도 마땅히 없는 것을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20 부터는, 방금 말씀하신 내용이 구체적으로 풀어서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22절을 눈여겨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굉장히 구체적으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22:22 너희는 것이나 상한 것이나 지체에 베임을 당한 것이나 종기 있는 것이나 습진 있는 것이나 비루먹은 것을 여호와께 드리지 말며 이런 것들은 제단 위에 화제물로 여호와께 드리지 말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만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기준이 얼마나 엄격한지를 수가 있습니다. 눈과 같은 중요한 장기에서 시작하여서 몸의 일부분이 상한 것도 용납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순히 신체의 일부분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체가 흠이 없어야 하는 것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피부에 어떤 병이 있거나 부스럼이 있는 것도 바치지 말아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더욱 주목해서 볼만한 것은 24 하반절입니다. “너희의 땅에서는 이런 일을 행하지도 말지며?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5절에서는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22:25 너희는 외국인에게서도 이런 것을 받아 너희의 하나님의 음식으로 드리지 말라 이는 결점이 있고 흠이 있는 것인즉 너희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지 못할 것임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을 염두에 두고 계신 것을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갈 땅은 어떤 곳인가?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나라들에 둘러쌓여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우상을 섬기며 그리고 사실은 그들 자신을 섬기는 철저한 이방인들의 나라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가는 땅에서는 만큼은 반드시 구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살아갈 곳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곳이며 그들은 분명히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5절에서 말씀하시기를외국인에게서도 이런 것을 받아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도 한번 충분히 상상해 있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어떤 사람이 슬쩍 말을 던지는 것이지선생님, 제가 이번에 제가 괜찮은 동물을 선생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조금 흠은 있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상급 양입니다 생각에는 이정도 양이면 당신의 하나님께 바치는 용도로도 괜찮을 합니다이렇게 슬쩍 말을 던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다른 외국인이 무슨 말로 짐승을 넘겨주던지 간에 하나님의 기준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어떤 것도 드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정도 쯤에서 한번 생각해 내용이 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께서 본문의 말씀을 주신 것일까? 라는 근본적인 이유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말씀은 죄를 사하는 제사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언급되는 자원하는 제와 서원에 대한 제사는, 하나님이 굳이 시키시지 않았지만 본인이 더욱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위해서, 본인이 더욱 하나님께 다가가기 위해서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인 교제를 위하여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라고 말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관계로 비유하자면 어떤 것인가?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어떤 사람이 있는데 사람과 깊은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 사람과 식사를 하고 선물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런 자리에서 볼품없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전혀 정성이 들어 있지 않은 볼품 없는 선물을 준다면 그것보다 이상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는 오늘 말씀이 마치 그런 맥락에서 이해가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이 인간의 어떤 근원적인 모순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순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때로는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싶다고 말하면서 하나님께 자신을 모두 드리고 싶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정작 우리의 삶의 내면을 깊숙히 들여다 보면 그저 그런 그런 태도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가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말로는 나의 삶을 드리겠습니다 라고 화려하게 말하지만, 정작 하나님께 나의 지극히 작은 일부분만 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말과 서원과 전혀 상관 없는 이상한 모습으로 살아가면서 그것을 정상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두가지 역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서 거룩을 추구해야 하며 또한 동시에 완전한 거룩을 이룰 없는 존재입니다. 군대에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정말 모처럼만에 소대원 20명이 돼지고기 회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준비는 가장 계급이 낮은 저와 다른 동기 두명이 하게 되었습니다. 일이 많았는데 중에 아주 중요한 것이 상추를 씻는 것이었습니다. 태어나서 그렇게 열심히 상추를 씻어본 적이 없는 같습니다. 군대 들어가기 전에 어머니께서 시키실 때에는 대충 대충 씻었는데 군대에서 하도 욕을 많이 얻어 먹어서 제가 많이 변한 것입니다

한장 한장 정성으로 200 정도를 씼었습니다. 회식 장소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고참들 앞에 당당하게 내어 놓았는데 눈을 의심하게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씻었는데 상추 장에 달팽이 한마리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가지고 나간거라도 어떻게 수도 없었습니다. 식은 땀이 흐르고 어찌할바를 모르는데 고참 중에 한명이 상추를 고기로 쌌어 그리고 입으로 넣었습니다. 다행히 고기와 달팽이가 같이 씹혔는지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상추 달팽이 사건은 영원히 마음에 묻어 두었습니다.

보통 열심이 넘치는 성도님들의 오해는,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을 만족시킬 있다 라는 착각입니다. 내가 열심히 신앙 생활하고 봉사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기준에 흡족하게 도달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정말 가능한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레위기 말씀을 통해서 반복적으로 보여주시는 것이 하나님께서는 없는 것을 받으신다 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그분의 완벽한 기준을 요구하시는 분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있겠습니다. “이야 놀랍습니다 당신 정도면 신앙 생활 열심히 합니다그런데 우리를 말씀 앞에 비추어 본다면 우리는 어떤 존재입니까?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가장 아름다운 선을 행하는 순간에도 우리의 선과 우리의 의로움은 여전히 더럽혀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장 탁월한 선행에 조차 우리의 욕심과 이기심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궁극적인 의로움은 어디에서 와야만 하는 것인가?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오는 것입니다. 로마서 3 20절과 24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되었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린도후서5 21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은 결코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결코 완전에 다다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께서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의 댓가를 친히 해결하시고 그분의 완전한 의를 우리에게 입히신 것입니다. 우리가 평생동안 한순간도 완벽을 이룬 적이 없지만 오직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의로움을 이루심으로 우리는 그분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에 우리의 마음이 어떠합니까? 우리를 위하여 이루신 놀라운 사랑과 은혜에 감격하며, 그분의 한량 없는 은혜 안에서 무한한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서 한가지 우리에게 주어지는 말씀은, 우리는 반드시 거룩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32절과 33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2:32 너희는 성호를 속되게 하지 말라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거룩하게 함을 받을 것이니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요 22:33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자니 나는 여호와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자신을 우리에게 설명하시는가?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는 어떤 분이신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며 우리의 거룩을 유지하게 하시는 분이시며 거룩함을 위하여 일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되시고 나아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기 위해서 우리를 기꺼이 구원하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거룩함 이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고 훨씬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함이라는 것을, 어떤 선택 사항 중에 하나로 받아들이는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레위기는 무엇을 말씀하는가? 거룩함은 하나님의 백성의 핵심적인 정체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오늘 본문의 말씀은 거룩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인간의 심각한 모순을 일깨우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싶다라는 그런 말을 하면서도 자원하는 제사와 서원하는 제사를 드리면서까지도 오히려 없는 것을 하나님 앞에 은근슬쩍 내어 놓으면서 하나님을 속이고 적당한 것을 드리고자 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제가 요즘에 흥미롭게 보고 있는 엘리트 마인드라는 책은, 체육 선수들의 심리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저자가 사람을 최고의 선수로 만들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정리한 책입니다. 저자는 스포츠 선수들을 탁월하게 만드는 방법들이 단순히 선수들 뿐만 아니라 기업과 리더쉽에서도 중요한 원리가 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당연히 이쪽 분야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선수들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태도로 훈련에 임하는 가의 그런 모든 내용이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중에 한가지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저자가 바버라라는 육상 선수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바버라는 이미 세계 선수권 대회에 예선을 통과 했습니다. 그리고 올림픽 대표로 통과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저자와의 깊은 대화에서 바버라가 알게 것은 자신의 깊은 마음 속에서는 자신의 한계를 밀어붙이고 끌어올려서 경기에서 순위권에 생각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1등을 하겠다는 생각도 사실은 전혀 없었다는 것을 완전히 새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저자가 이야기해 것은 이것입니다. 실제로 금메달을 따리라고 기대하고 있는 선수는 다른 선수들보다 이미 훨씬 유리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금메달을 기대하는 선수는 매일 훈련 마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목표로 하는 것을 마음에 두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훈련과 태도와 모든 것이 다를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바라가 1등을 기대하지 않는 자체가 이미 경기를 포기한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저는 내용을 보면서 우리의 신앙과 거룩함에 대한 추구가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는 마치 오늘 말씀에서 나오는 처럼 하나님께 자원하고 서원하는 것을 얼마나 많이 말로 고백하고 결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어떤 사람들인가? 거룩함에 대한 가장 깊은 열망 갈망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있습니다. 자신을 아주 냉정하게 살펴보자면 거룩하고 싶다라고 말을 많이 하고 기도도 하지만 정작 탁월한 거룩함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있는가에 대해서 심각한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한번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혹시라도 성도님들께서는 이런 거룩에 대한 열망이 있으십니까? 내가 우리 헤브론 교회에서 가장 거룩한 사람이 되겠다 혹은 나아가서, 내가 일리노이에서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겠다 혹은 나아가서, 내가 당대에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동행하는 사람이 되겠다 라고 마음 깊은 곳에서 진실하게 결심해 보신적이 있으십니까? 현재의 나를 초월하는 어떤 거룩한 탁월한 목표를 세우고 영적인 목표가 자신의 삶의 가장 숭고한 것임을 인정하면서 목표를 향해서 전력을 다해서 매일 매일 끊이지 않고 달려간적이 있으십니까? 그리고 기대감과 소망을 가지고 하루를 가장 치열하게 노력하면서 살아본적이 있는가? 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는 것입니다.

아니면 옆을 돌아보니 승리와 우승과 면류관에 대한 기대감이 없는 사람들로 가득하기 때문에, 그저 세상 사람들 이정도 수준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저 천국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만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아무런 기대감 없이 살아가고 계신 것은 아닌가? 혹은 이런 위대한 거룩의 결단을 하는 사람을 쳐다보면서 저렇게 별나게 신앙 생활 하는가 라고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지는 않은가 라는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해보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세상과 분명히 구분되시는 분이시며 가장 순결하시고 가장 진실하시고 가장 아름다운 분이십니다. 그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주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행위나 우리의 의로움에 근거하지 않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주권적인 은혜로 구원하신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거룩을 요구하시며 우리가 마땅히 걸어가야 길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로마서 12 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시지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전서 1 15절과 16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의 모든 행실에 거룩을 갈망하고 추구하라고 그리고 우리의 생각 만이 아니라 우리의 몸과 존재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라고 우리의 가장 숭고한 거룩의 목표를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여러 결심들을 아뢰며 서원을 하며 하나님 앞에서 자원하는 결심들을 아뢰지만, 자신의 결심과 서원에 미치지 못하는 턱없이 초라한 삶을 드릴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어쩌면 우리의 마음 가운데 정말 거룩에 대한 열망이 있는지를 하나님 앞에서 진지하게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구원에 감사하며 그분의 놀라운 은혜를 높이고 찬양 드리며, 그분이 요구하시는 거룩의 수준에 있어서 세상 어떤 사람도 넘보지 못할 목표와 기대감을 가지고 오늘 하루와 평생을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문" 전체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_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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