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성육신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성육신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26년 2월 17일 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253) - 하나님의 사랑 주님의 눈물



1. 가사 살펴보기

하나님의 사랑 주님의 눈물 온세상 임하여
잃어버린 영혼 찾아 오신주님
지금도 우리를 사랑해 

이천년전 하늘 보좌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주
하나님 어린 양되사 생명주며
이를 증거하라 하시네 

나는 믿네 거저 받은 귀한 사랑 그 누가 대신하리요
나의 생명 다 할때까지 그 사랑을 전하리라


2. 곡 소개

이 곡은 CCM 듀오인 다윗과 요나단의 곡이다. 이 찬양은 기독교 복음의 핵심을 담고 있는 곡이다., 이 땅에 죄인을 위해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그리고 그 받은 사랑을 평생동안 증거하겠다는 믿음의 결단을 담은 아름다운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누가복음 19: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 사역의 목적을 요약하고 있는데,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신 주님의 사명을 재확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원할 능력이 있으실 뿐만 아니라, 능력이 충만하고 자비로우신 구세주로서 구원이 필요한 자들을 직접 찾아 나서시는 주도권을 가지신 분입니다.

D. A. Carson, “The Gospels and Acts,”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1867.

마가복음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 사역의 동기뿐만 아니라, 우리 구원의 근거가 무엇인지를 밝혀줍니다. '대속물'이란 노예를 해방시키기 위해 지불하는 몸값을 의미합니다. 우리 스스로는 그 값을 치를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속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주님의 죽음은 우리 모두를 '죄의 종노릇'에서 해방시킨 것입니다.

Tyndale, Chronological Life Application Study Bible, ed. Susan Perlman, Second Edition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2023), 1447.

빌립보서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도행전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탁월하게 드러낸 찬양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은 죄인을 긍휼히 여기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며, 잃어버린 영혼을 찾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다른 모든 종교는 우리가 선을 행하고 의를 만들어서 신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직 기독교만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직접 찾아오셨다고 말씀하신다. 성자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실제로 오셨으며, 수 많은 기적들로 그리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셨다. 예수님은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모든 죄 값을 치르셨다. 그리고 그분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전부가 되시며 그분이 우리의 주인이시며 그분을 대신할 존재는 이 땅에 그 누구도 없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셨고 그것을 우리에게 맡기셨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슴 깊이 담고 있는 사람은, 그분이 우리를 찾아오신 것처럼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찬양을 부르면서, 우리를 위해 눈물 흘리시며 사랑을 베푸신 아버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다시 한번 기억하기를 원한다. 또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분을 잃어버린 수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6년 1월 28일 수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206) - 십자가를 참으신


1. 가사 살펴보기

십자가를 참으신 어린양 예수
내 죄 씻어 주시고 구속하셨네

어둠을 물리치신 세상의 빛 예수
영광의 빛 비추사 자유케 하시네

예수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
예수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

예수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
아름다운 그 이름 예수

주 같은 분 없네 주께 영광 돌리세


2. 곡 소개

이 곡은, 어노인팅 찬양팀의 예배인도자 컨퍼런스 2008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십자가를 통하여 죄인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그분의 진정한 가치를 아름다운 멜로디 속에서 탁월하게 드러낸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히브리서 12: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여기서 바라보자 라는 것은, ‘신뢰함으로 시선을 고정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환경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지속적으로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온전하게 하시는 이 :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믿음 안에서 인내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분 앞에 놓여 있는 기쁨에 초점을 맞추셨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의 모범이자 모델이 되십니다. 그분의 관심은 십자가의 고뇌가 아니라, 승리의 면류관이었으며, 고통이 아니라 보상이었습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Heb 12:2.

요한복음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에베소서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시편 29:2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고린도전서 1: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복음의 정수를 잘 드러낸 찬양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본질 상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시지만, 그분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기꺼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 주셨다. 빛이신 주님께서 기꺼이 어둠 속으로 들어오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활짝 열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드러내신다. 우리는 우리의 노력과 자격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사랑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상식과 기대와 상상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이시다. 그분은 참으로 아름다운 분이시며,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고 동시에 우리의 주인이 되시며, 우리에게 끝없는 감동과 감격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이 찬양을 부를 때 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 가운데 깊이 들어가기를 원한다. 또한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오직 그분께 한 없는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리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대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5년 12월 3일 수요일

나의 부모님은 항상 어디에든 계신다

 

저의 아버지는 선장으로 일하셨습니다. 일년에 거의 9개월은 해외에 계셨기 때문에 저는 거의 어머니 손에 자랐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 아버지께서 서울 본사에서 일하시게 되면서, 그제서야 온 가족이 모여 살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이 가장 많은 시간이 있습니다 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할 시간입니다. 저는 그 시기를 놓쳤습니다. 그리고 이미 훌쩍 커버린 저로서는 부모님과 보낼 시간이 넉넉하지가 않았습니다.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저의 세상 속에 들어가 버렸기 때문에, 부모님이 그렇게 소중한 줄 몰랐습니다. 

결혼하고 조금 철이 들었습니다. 이제서야 부모님과 함께 하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았는데, 결혼을 하고 유학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거의 15년이 지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저는 유학을 생각해 본적도 없었고 한인 교회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이 한편으로는 섭리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부모님을 가까이 뵐 수 없다는 것이 마음 한편에 너무 큰 아쉬움으로 다가옵니다. 그래도 건강하신 편이지만 과연 얼굴을 마주하고 지낼 수 있는 시간은, 아마 평생에 몇달이 전부일 것입니다. 

어제는 늦은 시간 양로원으로 심방을 갔습니다. 미국에서는 양로원을 널싱홈이라고 부릅니다.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비용을 받기 때문에 정부의 보조가 없이는 현실적으로 들어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시설도 천차만별입니다. 참기 어려울 정도로 냄새가 나는 곳도 가봤고, 또 호텔처럼 좋은 시설을 갖춘 곳도 방문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시설과 상관없이 그곳은 외롭습니다. 많은 어르신들이 여러 상황 속에서 들어오시지만,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어 하십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그곳에 들어가는 것 조차 쉽지 않지만, 그러나 정작 그곳에 계신 분들은 정서적인 어려움으로 더 힘들어합니다. 

제가 널싱홈을 방문한 목적은 두분을 뵙기 위해서입니다. 그 중에 한분은 아주 예전에 볼티모어교회에 출석하셨던 집사님이십니다. 거기 계신다는 소식을 우연히 들었습니다. 외롭게 앉아 계시는데 많이 마르셨고 식사도 제대로 하시지 않고 계셨습니다. 

한참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집사님의 외로운 마음이 조금이라도 달래지기를 바랬기 때문입니다. 손을 꼭 잡고 기도해드렸습니다. 인생은 너무나 연약하기에 결국 하나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젊은 사람이든 노년의 시기를 보내시는 분들이든 모두가 동일합니다. 그래서 기도가 더 간절하고 진실해 집니다. 

어르신들을 뵈면 항상 부모님 생각이 납니다. 그래서 어르신들을 심방하면 꼭 부모님을 뵙는 것 같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나의 부모님도 이렇게 연세가 드시겠구나, 그때에는 내가 이분을 방문하고 위로한 것처럼 누군가가 꼭 그렇게 해주면 좋겠다, 이것이 저의 솔직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다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저의 심방들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심방을 끝나고 나오는데 박종호 장로님의 '나그네의 집'이 생각이 났습니다. 너무 좋아하는 찬양이고 또 따뜻한 찬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잃어버린 자들을 위해서 우시고 찾으신 것처럼, 저의 작은 인생 역시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2023년 4월 15일 토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28) - 섬김

 


1. 가사 살펴보기

하늘에 영광을 다 버리고
낮은 이 곳에 내려오신 주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 얼마나 큰지 

우리가 높아지면 그가 낮추시리
우리가 낮아지면 그가 높이시리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으로
나 자신을 낮추는
섬김으로 

내 발을 닦아주사 먼저 섬기시고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시었네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으로
나 자신을 드리는
섬김의 모습이 되기를

 

2. 곡 소개

곡은 찬양 사역자 강찬 3집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복음의 본질을 매우 핵심적으로 종합하여서 찬양으로 승화시킨 매우 탁월한 곡이다. 죄인을 위하여 낮아지심으로 생명을 주신 예수님, 그리고 그분을 따라서 기꺼이 나 자신을 낮추고 주님을 위하여 드리겠다는 결단이 잘 드러난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빌립보서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2:5 Your attitude should be the same as that of Christ Jesus: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6 Who, being in very nature God, did not consider equality with God something to be grasped,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2:7 but made himself nothing, taking the very nature of a servant, being made in human likeness.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2:8 And being found in appearance as a man, he humbled himself and became obedient to death--even death on a cross!

2:6 equality with God. The Gr. word for “equality” defines things that are exactly the same in size, quantity, quality, character, and number. In every sense, Jesus is equal to God and constantly claimed to be so during His earthly ministry (cf. Jn 5:18; 10:33, 38; 14:9; 20:28; Heb 1:1–3). 하나님과 동등됨. : 동등됨 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크기, 수량, 품질, 특성 그리고 숫자가 정확하게 동일하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면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시며, 그분의 지상 사역 기간 동안 끊임없이 그렇게 주장하셨습니다.

grasped. The Gr. word originally meant “a thing seized by robbery.” It eventually came to mean anything clutched, embraced, or prized, and thus is sometimes translated “held onto.” Though Christ had all the rights, privileges, and honors of deity—which He was worthy of and could never be disqualified from—His attitude was not to cling to those things or His position but to be willing to give them up for a season.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 헬라어의 원래의 의미는 도둑에게 빼앗긴 의미했습니다. 그것은 결국 움켜쥐거나, 껴안거나 혹은 소중하게 여기는 모든 것을 의미하게 되었고 그래서 때때로 취하다 번역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받기 합당하며 자격을 상실할 없었던 신성의 모든 권리와 특권과 영예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태도는 그것들 혹은 그분의 지위에 집착하지 않고, 잠시 동안 그것을 기꺼이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John F. MacArthur Jr., The MacArthur Study Bible: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hville, TN: Thomas Nelson Publishers, 2006), 2:6.

2:5 Let this mind be in you. Paul points to Christ as the greatest example of selflessness. Verse 5 introduces a beautiful and rich Christological hymn, showing that deep theology is deeply practical. Believers are to have the same mind, or attitude, as Christ in dealing with others. This verse reminds us that the exhortations in vv. 1–4 can be summarized by the phrase “be like Christ.” 너희 안에 마음을 품으라 : 바울은 그리스도를 이타심의 가장 위대한 본으로써 제시합니다. 5절은 깊은 신학은 바로 심오한 실천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아름답고 풍성한 기독론적인 찬송을 소개합니다. 신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대할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 혹은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이 말씀은, 1-4절의 권면이 “그리스도와 같이 되라”라는 구절로 요약될 수 있음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719.

요한복음 13: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3:13 "You call me 'Teacher' and 'Lord,' and rightly so, for that is what I am. 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3:14 Now that I, your Lord and Teacher, have washed your feet, you also should wash one another's feet. 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13:15 I have set you an example that you should do as I have done for you. 13: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13:16 I tell you the truth, no servant is greater than his master, nor is a messenger greater than the one who sent him. 13: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개역개정) 13:17 Now that you know these things, you will be blessed if you do them. (NIV)

13:16 A SERVANT IS NOT GREATER THAN HIS MASTER. If the master serves, how much more should the servants do so? A MESSENGER. This is the same word as “apostle,” which only occurs here in this Gospel. An apostle was a person sent with the authority to represent the one who sent him. Jesus’s followers are to represent his servanthood to others.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 만약 주인이 섬기는 사람이라면, 하인들을 얼마나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보냄을 받은 : 단어는 요한 복음에서 여기에서만 나오는 단어인데 사도 같은 단어입니다. 사도는 그를 보내신 분을 대표할 권위를 가지고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분의 종 되심을 나타내야 합니다. 

Lyman Coleman, ed., Life Connectio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s, 2019), 1732.

13:17 blessed. Gk makarios, occurring only twice in Jn (cf 20:29). Not merely happy but truly receiving God’s gracious favor. 복이 있으리라 : 헬라어로 마카리오스 요한 복음에서 오직 두번 사용됩니다. 이것은 단순한 행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로운 호의를 받는 것입니다.  

Edward A. Engelbrecht, The Lutheran Study Bible (St. Louis, MO: Concordia Publishing House, 2009), 1808.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수 많은 사역을 하셨지만, 결국에는 낮아지시며 죄인을 구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그분의 낮아지심이야 말로,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심이야 말로 복음의 핵심이며 바로 그것을 통하여 감히 죄인이 영광스러운 주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우주의 주인이시며 가장 존귀하신 분이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님과 동일한 태도로 살아갈 것을 부탁하셨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는데, 그들이 바로 예수님의 모습을 드러내는 자들이 되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스스로를 높이며 섬김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것이 죄인의 특징이다. 반면에 성도의 특징은 섬김이다.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한 사람은, 그분의 겸손과 그분의 섬김을 따라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제자의 참된 섬김이 있는 곳에, 진정한 영적인 기쁨이 찾아온다. 그리고 주님의 향기가 전해지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 찬양을 부를 때마다, 나를 위하여 기꺼이 낮아지시고 죽으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섬김의 삶으로 다시 한번 하나님께 나를 드리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도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고, 
커피 한잔 기부를 통해 정진부 목사를 응원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buymeacoffee.com/jungjinbu5

2022년 12월 17일 토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11) - 참 빛

 

1. 가사 살펴보기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
그 안에 생명이 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어두운 세상에 참 빛이 오셨네
하늘이 열리고 천사들 노래하네
어두워 헤매는 모든 사람에게
참 생명 주시려 예수 나셨다

사랑을 찾는 사람 진리를 찾는 사람
외로운 자 아픈 자도 빛으로 오시오
어둠을 이기시고 생명을 주시려고
참 빛으로 예수 나셨다 


2. 곡 소개

곡은 CCM 그룹인 히즈윌의 5집 앨범 믿음이 필요해에 수록된 곡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을, 빛으로 묘사하고 있는 성경적인 가사와 아름다운 멜로디를 가진 탁월한 곡이다. 삶의 모든 어려움을 가진 자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빛이신 예수님을 향하여 초대하는 아름다운 성탄 찬양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요한11: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1:5 This is the message we have heard from him and declare to you: God is light; in him there is no darkness at all.

1:5 When John describes God as light, he calls to mind Jesus’s words as recorded in his Gospel: “The light has come into the world, and people loved darkness rather than the light because their deeds were evil” (John 3:19). The function of light is to reveal things as they truly are, to expose. If you shine a light down a city alley at night, you’ll see cockroaches scatter because they want to do their dirty work in secret. If you want God’s personal presence and activity in your life, you must be willing to allow his light to expose your sinful thoughts, attitudes, speech, and actions that are inconsistent with his character. 요한은 하나님을 빛으로 묘사할 때에, 그의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 3:19 정죄는 이것이니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사랑한 것이니라빛의 기능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밤에 도시 골목에 빛을 비춘다면, 바퀴벌레가 숨어서 더러운 일을 몰래 하고 싶어서 흩어지는 것을 있습니다.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인격적인 임재와 활동을 원한다면, 하나님의 성품과 일치되지 않는 당신의 죄악 생각, 태도, , 그리고 행동을 그의 빛이 드러내도록 기꺼이 허용해야 합니다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1494. 

에베소서 5: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5:14 for it is light that makes everything visible. This is why it is said: "Wake up, O sleeper, rise from the dead, and Christ will shine on you."

5:14 it is said. Probably means that what follows is an early Christian hymn, possibly based on Isa 26:19 and 60:1–2. sleeper … dead. Images of the sinner (cf. 2:1). The hymn calls unbelievers to come to Christ and receive his life-giving light. 아마도 구절은, 이사야 26 19절과 60 1-2절에 근거한 초기 기독교 찬송일 것입니다. 잠자는 자들과 죽은 자들은 죄인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찬송은 불신자들에게, 그리스도께 나아와 그의 생명을 주는 빛을 받으라고 촉구합니다.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124.

요한복음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9 The true light that gives light to every man was coming into the world.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0 He was in the world, and though the world was made through him, the world did not recognize him.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11 He came to that which was his own, but his own did not receive him.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12 Yet to all who received him, to those who believed in his name, he gave the right to become children of God--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개역개정) 1:13 children born not of natural descent, nor of human decision or a husband's will, but born of God. (NIV)

1:9 The true light. In this gospel, “truth” and “true” are often employed to signify what is everlasting or heavenly, as opposed to the merely temporal or earthly. : 복음서에서 진리 이란 표현은, 단지 일시적이거나 땅에 속한 것과는 상반되는 의미에서, 영원한 또는 하늘에 속한 것을 가리키기 위해 종종 사용됩니다.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1851.

1:12–13 Reference to children of God builds on the OT characterization of Israel as God’s children (Dt 14:1; cp. Ex 4:22). Born, not of natural descentbut of God makes clear that true children of God come into being through faith in Messiah, not physical birth or ethnic descent (8:41–47; cp. 3:16). This opens the way for Gentiles to become God’s children (11:51–52; cp. 10:16).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는 구약의 특징에 기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된 자녀는 육체적 출생이나 민족적인 혈통이 아니라, 메시야를 믿음으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열어 줍니다.

Andreas J. Köstenberger, “John,”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664.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에는, 복음의 정수가 성경적으로 충만하게 들어가 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빛이신 분이시다. 그분은 영원히 거룩하시고 완전하시며 의로우신 분이시다. 인간이 스스로를 높여 창조주를 배반하고, 죄를 지어서 영원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삼위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버리거나 포기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다.

약속하신 때가 되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2천년 전에 이 땅에 오셨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빛이시다라고 말씀하신다. 모든 인간은 죄를 지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지만,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빛이신 예수님께서 어두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아기 예수님은 두렵고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누구나 그분을 만나고 다가가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가장 친근한 존재로 오셨다. 본질상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어 이 땅에 가장 작고 연약한 모습으로 오신 것이다.

성경은 참 빛이 오신 것을 선포하시며, 죄인들은 그 빛으로 나아오라고 촉구하고 계신다. 구원의 길은 열려 있으며, 누구든지 그분께 나올 수 있다. 세상의 그 어떤 조건과 상관 없이, 신분이나 재산이나 학벌이나 혹은 혈통과도 상관 없이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죄인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셨고, 죄인을 대신하여 모든 죄의 댓가를 치르시며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기뻐하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아직 주님을 믿지 못한 분들이 계시다면 예수님께 나아가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분이 주시는 참된 기쁨과 회복과 생명을 누리시는 모든 분들 되시기를 바란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고, 
커피 한잔 기부를 통해 정진부 목사를 응원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buymeacoffee.com/jungjinbu5

2022년 9월 23일 금요일

하나님만 바라보는 진실한 리더 / 사무엘하 3장 27-29절 설교

 


한 성도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설교에 대한 이런 저런 아쉬움들을 이야기하셨습니다 저에게도 말씀하시더군요. “목사님, 목사님은 강해설교 안하면 안됩니까?” 무슨 이야기인가 하는 마음에 제 눈이 저도 모르게 동그라졌습니다. 아마도 설교중에 목회자가 한절 한절 설명하는데 치중하는 것을 의미하시는 듯 했습니다.

한마디 더 덧붙이시더군요. “예전에는 목사님들이 앞에서 설교하시면, 왜 목사님이 내 이야기를 하지? 라고 마음이 찔리면서 집에 갔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렇게가 잘 안되는 것 같아요. 정말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그냥 설명만 하는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데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저에 대한 혹은 설교자들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셨지만 그래도 저는 이해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저 역시 설교자로서 또 성도로서 그런 아쉬움을 경험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집사님, 집사님께서 하신 부분은 설교의 가장 수준 높은 차원입니다. 제가 부족하지만 그렇게 되도록 많이 힘을 쓰겠습니다.” 저의 솔직한 마음이었습니다.

요즘에 팀켈러 목사님 설교를 듣는 것이 큰 유익이 있습니다. 논리적인 흐름을 배우는 것도, 그리고 어느 정도 확신을 표현하는 것이 좋은지도 배우고 있습니다. 마치 탁월한 교수님이 저의 설교의 바운더리를 그려주는 것 같은 그런 기분입니다. 참 행복합니다.

팀켈러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설교의 내용이 자유롭다 라는 것입니다. 조금 더 좋은 표현이 있을 것도 같은데, 현재로서는 자유롭다 라는 표현이 저의 한계입니다. 이것이 좋았던 이유는, 저 같은 경우는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내용을 마음으로 먼저 그릴 때에는 굉장히 자유로운데, 막상 원고로 그것을 옮길 때에 그 자유로움을 많이 절제하는 느낌을 스스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정말 마음에 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까지는 설교로 하지 못하고 뭔가 가로막는 듯한 느낌을 스스로 가졌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아마도 조심스러움 때문인 듯 합니다. 제 마음 깊은 곳에서는 정말 설교의 내용으로 확신있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분명하게 있지만 있지만, 뭔가 성도님들을 대할 때에 제 마음에 조심스러움이 있는 듯 합니다. 여전히 이 부분은 고민중이고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기도해 봐야 할 부분입니다. 어쩌면 이 부분이 제 설교가 더 발전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실마리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이번 설교는 의미가 컸습니다. 이번 설교는, 제가 처음에 묵상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발견했던 중요한 부분과 테마들 그리고 목회적으로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을 충실하게 담아 냈습니다. 설교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그 부분이 제일 스스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단순히 누군가를 향해서 타겟을 삼는 설교가 아니라, 제 자신이 말씀 앞에 서고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라는 것을 확신 있게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번 설교는 스토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앞 부분은 압축적으로 배경을 제시했습니다. 사실 아브넬이라는 인물을 완벽한 의인으로 이해하기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T 스터디 바이블의 내용에 따라서 평화를 위하여 온 사자로 좀 더 정형화해서 설교 가운데 묘사하였습니다.

3:22–27 On three separate occasions the narrator highlights that David sends Abner away “in peace” (vv. 21, 22, 23). David carries no hostility toward Abner and desires a peaceful settlement between his house and Saul’s. Again, David shows commitment to achieving kingship without insurrection. Joab, however, does not share David’s commitment and is hoping for vengeance for the death of his brother Asahel. Joab has Abner brought back and then stabs him in the stomach, just as Abner stabbed Asahel in the stomach (2:23). The author highlights that David is innocent with regard to Abner’s death.

3:28–39 David rebukes Joab seriously but ineffectively. This is not the last time Joab will cause problems for David. His actions were extraordinarily unwise and harmful to David’s cause. Abner had offered David the kingship on peaceful terms, but Joab ruined that opportunity. David once again shows his loyalty to Saul’s house by leading his people to mourn for Abner. David proves his innocence with regard to Abner’s death before all Israel.

Samuel C. Emadi, “2 Samuel,” in The NIV Grace and Truth Study Bible, ed. R. Albert Mohler Jr. (Grand Rapids, MI: Zondervan, 2021), 385.

저는 어떤 말씀을 인용할 때에, 거의 반드시 그 말씀에 대한 간단한 의미를 덧붙입니다. 그저 인용만하고 그 핵심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사실상 인용의 효과가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빌립보서 2장 말씀을 인용하면서, “종의 형체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짧게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넷 바이블의 각주를 인용한 것입니다. 진정한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묵상이 좋았습니다.

Tn Traditionally, “servants” or “bondservants.” Though δοῦλος (doulos) is normally translated “servant,” the word does not bear the connotation of a free individual serving another. BDAG notes that “ ‘servant’ for ‘slave’ is largely confined to Biblical transl. and early American times … in normal usage at the present time the two words are carefully distinguished” (BDAG 260 s.v.). The most accurate translation is “bondservant” (sometimes found in the ASV for δοῦλος), in that it often indicates one who sells himself into slavery to another. But as this is archaic, few today understand its force.

Biblical Studies Press, The NET Bible, Second Edition. (Denmark: Thomas Nelson, 2019).

저는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때에, 복음에 대한 이해와 이어지는 설명들이 억지스럽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논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설교자의 깊은 마음 안에 남아 있다는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이번 설교는 새벽 설교이기 때문에 시간이 짧아서 더 풀어낼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그 진실한 행동 사랑에 대해서 강조했습니다. 

설교는 참으로 큰 특권입니다. 하나님께서 목회자에게 주신 큰 영광입니다. 쉽지 않은 한주와 스케쥴이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성실하게 준비했고 성도님들과 함께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한걸음씩 더 배워가면서 발전하는 목회자가 되고 싶은 마음입니다.

* 사무엘하 327-29절 설교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전혀 다른 동기와 이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두 남자의 이야기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계속 이어지는 스토리는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1장에서 사울과 요나단이 전쟁에서 전사하였습니다. 다윗의 그들의 죽음을 매우 슬퍼하였고 조가를 지어서 불렀습니다. 생전에 사울과 다윗의 관계가 참 쉽지 않았지만 끝까지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 모두를 진심으로 아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무엘하 2장에서는 다윗이 드디어 유다 족속의 왕이 되었습니다. 반면에 사울의 왕가는 매우 어려워졌지만 사울의 또 다른 아들이었던 이스보셋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보셋 왕의 옆에서는 사울의 군대 장관이었던 아브넬이 실권자로서 정치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보셋이 사울 왕가의 왕이 된지 2년 쯤 이후에 다윗의 장군인 요압 장군과 이스보셋의 아브넬 장군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그 전쟁에는 요압 장군의 형제들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그 전쟁 중에 한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브넬 장군이 전쟁에 물러나고자 도망을 하는데 요압의 동생 아사헬이 그를 집요하게 추격했습니다. 아브넬은 그를 죽이고 싶지 않아서 계속 만류했지만 아사헬이 계속 고집을 부렸습니다. 결국에는 아브넬의 손에 아사헬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부터 요압은 동생의 복수를 다짐했던 것입니다. 

아브넬이라는 사람은 매우 복합적인 사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장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전쟁의 형세를 제대로 파악했다는 것입니다. 아브넬이 생각하기로는 이제는 다윗이 대세라는 것을 파악한 것입니다

아브넬은 사울왕 쪽에 속했던 장로들과 사울의 지파였던 베냐민 지파 지도자들까지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호의적인 태도를 잘 모아서 다윗을 찾아와서 자신과 언약을 맺기를 요청했습니다. 다윗을 향하여서 충성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거기에 필요한 일들을 추진한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찾아온 아브넬과 부하들을 환대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아브넬이 다윗에게 말하기를 이제 자신이 모든 지파를 모아서 다윗의 통치와 리더쉽 안에 들어오게 하겠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의 마음에 얼마나 큰 기대가 있었을까요? 다윗은 오랫동안 사울을 피해서 도망을 다녔습니다. 그는 수 많은 전쟁을 치뤄야만 했던 사람입니다. 여전히 정치적인 대결 구도 속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토록 꿈꾸던 평화가 그리고 자신이 왕으로서 모든 지파를 다스리는 날이 바로 목전에 있는 것입니다. 그가 그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는 언제나 억울하게 당하는 입장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복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늘 생각했던 사람이고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기 위해서 노력했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진정한 평화의 시대를 눈 앞에 두고서도, 도저히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요압 장군이었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는 다윗의 가장 중요한 장군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다윗의 측근으로서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의 비참함과 온 나라의 어려움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아주 놀라운 것은, 요압은 다윗에게 말할 때에 마치 자신의 마음이 다윗을 너무나 위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한다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25절에 보면 순수하게 평화를 위해서 찾아 온 아브넬을 마치 첩자의 목적으로 왕을 감시하기 위해서 온 것처럼 몰아세웠습니다. 그리고 아브넬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을 덥쳐서 다시 헤브론으로 그를 끌고 돌아왔습니다

요압은 사람을 속이는 것에 매우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27절에 말씀하십니다. “요압이 더불어 조용히 말하려는 듯이 그를 데리고 성문 안으로 들어가 거기서 배를 찔러 죽이니 이는 자기의 동생 아사헬의 피로 말미암음이더라라고 말씀하십니ㅏ.

결국 요압이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는 평화를 위해 찾아온 사람을 죽였어 무슨 의미인가? 지금 요압이라는 사람의 마음 가운데 복수로 가득차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지금 어떤 자리에 있는지, 그가 지금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지,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요압은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것은 오로지 "복수" 하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거짓 간계를 통해서 그 복수를 결국 이룬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일을 과연 다윗은 알았는가? 다윗은 이 일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는 어떻게든 평화를 위해서 노력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평생을 자신을 힘들게한 사울 조차도 품었던 다윗이었는데 그러한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인 상황입니다. 그때 다윗이 어떻게 반응하는가? 28절에 이렇게 다윗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넬의 아들 아브넬의 피에 대하여 나와 내 나라는 여호와 앞에 영원히 무죄하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번 요압과 다윗을 비교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요압을 계속적으로 움직이고 그에게 힘을 불어 넣었던 것은 그가 가지고 있던 말도 안되는 복수심입니다. 그의 동생이 죽은 것은 순전히 동생의 책임입니다. 거기다가 전쟁 중에 죽은 것이기 때문에 그 상황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마음을 복수심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요압이 무엇을 하든지 간에 그의 마음에 가득차고 그를 움직인 것이 "복수"라면, 과연 다윗의 마음에는 무엇이 가득차 있는가? 그의 말 속에 답이 들어 있어 "여호와 앞에 영원히 무죄하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가장 중요한 분이 누구셨는가? 여호와 였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가 처한 모든 현실 속에서 여호와를 의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살아계시다라는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이 결코 이 잔인한 범죄에 가담한 적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리고 29절 말씀에 보니 모든 죄의 결과는 반드시 요압에게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지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다윗은 여전히 자신의 진실함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행동으로 그것을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다윗이 지금 무엇인가 행동하는데 있어서 편안한 환경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31절에 말씀하시기를다윗이 요압과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의 마음이 얼마나 괴롭겠는가? 다윗이 얼마나 배신감을 느꼈겠는가? 다윗은 자신의 모든 평화에 대한 노력을 망치고 자신을 눈 앞에서 망하게 한 요압을 지금 눈 앞에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압이 너무나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현재 상황에 낙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다윗의 행동 다윗이 슬퍼하면서 했던 행동들이 어떻게 나오고 있는가? 31절에 말씀하시기를 다윗 왕이 상여를 따라갔다 그리고 32절에 보니 왕이 소리를 높여 울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다윗은 자신의 처한 상황에서 자신의 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한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왕이라는 체면에 얽매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슬픔을 표현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오히려 아브넬의 억울한 죽음을 슬퍼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보여주는 진실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35절에 보니 다윗은 심지어 그날 하루를 하나님 앞에서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그렇게 결심까지 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진실한 그의 행동을 보고 나서야 36절에 보니온 백성이 보고 기뻐하며 왕이 무슨 일을 하든지 무리가 다 기뻐하였다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37절에 보니이 날에야 온 백성과 온 이스라엘이 넬의 아들 아브넬을 죽인 것이 왕이 한 것이 아닌 줄을 아니라라고 말씀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다윗이 자신의 진실한 행동으로 보여주기 전에는, 백성들은 다윗에 대해서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가 아브넬을 죽인 것 같다는 소문이 돌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가 사울을 여전히 미워하고 전쟁을 좋아한다라는 온갖 소문이 돌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십 거리를 만들어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윗에게 의심을 품고 그를 뒤에서 비난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다윗이 무엇을 하였는가? 그는 자신의 결백을 밝히면서 자신의 상황에서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진실한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가 보여준 모습은 꾸며낸 모습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진심으로 아브넬의 억울한 죽음을 고통스러워했고 그의 아픔에 대해서 깊은 슬픔을 가지고 울었습니다. 마치 사울과 요나단을 위해서 그러했던 것 처럼 아브넬을 위해서도 조가를 지었던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말씀은 아주 선명한 대조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압이라는 악한 장군은 끝까지 자신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자신의 의도를 숨긴 사람입니다. 마치 왕을 위하는 것 처럼 자신을 포장하는 거짓으로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오직 거짓된 복수를 위하여 움직인 것입니다

반면에 다윗은 어떠한가? 그는 자신의 마음 속에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누구에게 호소하기 이전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의도를 숨기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 앞에 진실하며 또 아브넬을 아꼈다는 것을 자신의 진실한 행동들을 통해서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오늘 말씀을 보면서 "과연 나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는가?" 에 대해서 매우 진중하게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어떤 의미에서 참으로 간교하다 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얼마든지 우리의 내면에 있는 진짜 동기를 감추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마치 신앙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 처럼, 혹은 겉으로는 그 사람을 위하는 것 처럼 이야기하지만, 얼마든지 속으로는 다른 생각과 다른 동기를 가지고 상대방을 속이는 대화를 끌어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요압은 매우 철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왕인 다윗조차 대범하게 속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평화를 위하여 찾아온 아브넬조차 속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무엇인가? 성경은 그의 동기를 가장 정확하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심중에 무엇이 있는지를 정확하게 아셨습니다. 27절 하반절에이는 자기의 동생 아사헬의 피로 말미암음이더라그리고 반복이 되고 있어 30절에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가 아브넬을 죽인 것은 그가 기브온 전쟁에서 자기 동생 아사헬을 죽인 까닭이었더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요압을 움직이는 것은 철저한 이기심이었고 분노와 복수심이었다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야 말로, 한 사람의 그 중심이 아니라 결과에 대해서 집착하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통해서 어떤 결과를 이끌어내야만 그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라고 평가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무엇인가? 사실상 다윗은 아주 오랫동안 아무런 결과 없이 방황하는 것 처럼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광야에서 도망치는 사람이었어 그리고 그는 여전히 지금 이 시점에서도 유다 지파의 왕일 뿐인 것입니다.

심지어 그는 그토록 바라던 평화의 조약을 바로 눈 앞에서 완전히 놓쳐버린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자면 참으로 지지리도 복도 없고 고생만 하고 아무런 소득도 없는 불쌍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을 주목하시는가?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당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과 그 동기를 모두 아시는 하나님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비록 정치적으로는 세력이 약해서 자신의 장군 조차 어떻게 하지 못하는 형국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앞에서 무죄하다라고 선포함으로써 그 누구도 감히 범접하거나 다다를 수 없는 가장 완전한 평화와 안정감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시편 139편에 다윗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139: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139: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마음의 가장 깊은 곳까지 다 아시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편의 24절 마지막절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은 그의 마음 안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진실함을 고백하면서, 어떻게든 자신의 길을 하나님의 길로 인도해 달라고 그분의 영원한 길로 이끌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기는, 우리 역시 우리 자신을 살펴보며 돌이키기를 원합니다. 우리 안에 감추어진 이기심과 복수심과 악한 마음들을 하나님께 내어 놓고 진심으로 회개하며, 오직 여호와의 길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기를 간구하며, 그 길을 걸어가시는 사랑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또 하나 저는 오늘 말씀을 보면서 "진정한 리더쉽은 어떻게 세워지는가" 에 대해서 깊이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꼭 아브넬의 상여를 따라가야만 했을까? 혹은 꼭 다윗이 그렇게까지 소리 높여서 울어야했을까? 혹은 꼭 다윗이 그렇게까지 금식까지 하면서 자신을 절제해야 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상하게도 성경은, 그러한 다윗의 모든 행동을 일일이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진실한 마음으로 리더로서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 진실한 행동의 결과입니다 그저 겉치레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정말 자신의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아브넬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것을 애통해 할 때에 그때서야 백성들의 오해가 풀렸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때서야 모든 백성이 왕을 좋게 여겼다는 것은 그의 진실한 모든 행동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어떤 규모이든 어떤 공동체이든 그것이 가정이든 직장이든 혹은 교회 공동체이든 리더의 모습은 그 사람의 행동이 진실하여야 하는 것이고 반드시 그 진실함이 동반되어야만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 5절에서 8절까지 이렇게 말씀하힙니다.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사람들의 가장 큰 오해는, 마치 기독교를 지적인 종교로 오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저 논리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만히 앉아 계시고 그분이 그저 말씀으로만 내가 너희를 용서한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 내가 너희를 돌본다 이렇게 하신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행동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진실하게 행동하시는 분이십니다. 성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동등 되시지만 도저히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이 낮아지셔서 직접 인간이 되셔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자신이 누리시던 모든 영광과 기쁨을 다 포기하시고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 되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것에 대하여서 말씀하시기를, “종의 형체를 가지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종이라는 것은 내가 그냥 자유롭게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된다 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상대방에게 종으로 판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낮아진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철저하게 상대방을 섬기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저 논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실제로 역사 가운데 사랑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기꺼이 종이 되셨고 그럴 필요가 없으셨지만 기꺼이 자신을 낮추심으로써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내시는 진정한 구원자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높은 사람이 높은 자리에 있을 때에 아무런 감동도 느끼지 않습니다. 높은 사람이 그 모든 권세를 포기할 때에 큰 감동을 느끼는 것입니다중요한 것은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진심으로 자신을 낮추는지 혹은 그저 위선적으로 행동하는지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진실하시며 그분의 모든 사랑은 거짓된 것이 아니라 진실한 것이며 진정으로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삶과 공동체를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양한 자리에서 리더의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진실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있는가?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신 것처럼 기꺼이 나를 낮추고 참된 리더쉽을 가지고 그것을 통해서 사람들을 섬기고 있는가에 대해서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우리의 삶이 어디에서든 진실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기뻐하시는 리더쉽으로 섬김의 모습으로 진실한 공동체를 이뤄가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기도하겠습니다. 첫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저의 내면에 있는 악한 것들을 버리기 원합니다, 중심을 보시는 여호와 앞에 부끄러운 것들을 모두 남김없이 버리게 하시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과 주님을 가까이하고 주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거룩한 열망을 부어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둘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진실한 마음과 진실한 행동을 저에게 주시옵소서, 거짓과 가식이 아닌 진실한 모습을 주시고, 주님께서 그렇게 섬기신 것처럼 다른 이들을 진실하게 섬기며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리더로서 교회와 세상을 섬기는 제가 되도록 주님께서 오늘도 저를 붙들고 인도하여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문" 전체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_4.html

추천 글

로고스 프로그램으로, 평신도 성경 공부하기 with 스터디 바이블 노트 Study Bible Notes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시 119:103) 누구나 성경을 열심히 읽으라는 말은 듣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꿀보다 달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

리딩 크리스천 독서 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