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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어를 하면 할 수록 새로운 장이 열리는 것을 느낍니다. 한글로 굳이 거쳐서 번역하지 않고 느끼고 이해할 때에 찾아오는 어떤 쾌감이 있습니다. 기적적인 감동들을 경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길이지만 매일 포기하지 않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TGC코리아에서 파이퍼 목사님의 강의를 번역해 주신 것은 저에게 큰 감사이며 도움이 됩니다. 영어가 크게 어렵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영어 강의를 먼저 여러번 들으시고 또 그 이후에 번역된 강의를 들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먼저 영어로만 열심히 공부하고 이후에 번역을 통해서 나의 부족한 이해를 채우면 됩니다.
파이퍼 목사님의 오늘 강의의 핵심은, 설교를 위한 설교 본문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의 주제입니다. 다시 한번 본인이 강조하는 설교의 정의를 말씀해 줍니다. 그것은 Expository Exaltation 입니다. Expository는 본문의 실제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근거가 될 성경 본문이 필요합니다.
파이퍼 목사님은 설교를 위해서 오직 하나의 본문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얼마나 많은 본문을 한 설교에서 인용하는가는 강해의 핵심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다만 청중들이, 본문의 말하는 바라고 그것의 실재를 분명히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파이퍼 목사님은 주제 설교 시리즈도 좋다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주제 설교의 그 메시지가 설교자의 생각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제대로 된 해석으로 채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규칙은 보통의 경우에 하나의 중심적인 본문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기 저기 본문을 짧게 요약하면서 끌어와서 설교하는 것 보다, 하나의 본문 안에서 연결해서 꾸준하게 설명하는 것이 성도들에게 훨씬 든든한 바탕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야 신뢰도 면에서 더 올라가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설명(elucidation)과 확증(confirmation)을 위해서는 부분적으로 여러 성경 말씀을 인용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본문의 길이는 어떠해야 할까요? 여기에 대해서 파이퍼 목사님은 굉장히 자유로운 분으로 보입니다. 짧은 본문에서 의미를 완전히 짜낼 수도 있고, 혹은 긴 본문을 통해서 하나의 챕터나 성경 한권에 대하여서 큰 틀을 보여줄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본인은 로마서에서 단지 두 절로 여섯번의 설교를 한 적도 있고, 혹은 선지서 설교에서는 한 권의 성경을 하나의 설교로 소화한 적도 있다고 말합니다. 다만 거기에서 고민했던 것은 그 성경에서 도대체 무엇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지를 고민했다고 말합니다.
혹은 욥기 전체를 다섯 번의 설교로 끝낸 적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분량에 대한 결론으로서, 본인은 작은 본문을 아주 세세하게 설교하는 것과 큰 덩어리로 성경 한권 혹은 챕터를 설교 하는 것이 다 의미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설교 본문 자체"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 먼저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성도들을 영적으로 강하게 하고 싶은데 그들을 위한 어떤 본문이 가장 좋은지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해야 합니다. 첫째로, 과연 설교자 마음 안에서 불타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당신의 마음을 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질문해야 합니다. 그리고 둘째로, 청중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질문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전체 구원의 경륜 가운데, 나의 사역 속에서 설교하지 않은 부분이 있는지 살펴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에 파이퍼 목사님은 사도행전 20장 27절을 인용합니다.
사도행전 20:26-27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개역개정) Therefore I testify to you this day that I am innocent of the blood of all, for I did not shrink from declaring to you the whole counsel of God (ESV)
넷째로, 지금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세상의 어떤 세상의 이슈들을 이야기할 때에 정작 설교에서는 그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고 아쉬워합니다. 설교자는 설교 본문을 정할 때에 세상의 이슈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 질문은 교회의 장로들 지도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 입니다. 파이퍼 목사님은 본인의 경우에 신뢰할 만한 장로님들에게 원하는 설교 주제 등에 대해서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보고 그것을 종합했다고 제안합니다.
마지막으로 파이퍼 목사님이 제안하는 것은 설교를 성경 전체를 설교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교회에 필요한 주제들에 대해서 설교하라고 제안합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이유는 첫째로는 설교자들의 짐을 덜어주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설교자가 낯설지만 다루어야 하는 어려운 내용들을 다루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셋째로는, 그것을 통해서 성도들이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책임을 알게 해 줍니다. 성경 전체가 유익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는, 설교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본문만 다루는 것을 막아 주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파이퍼 목사님은 "전체의 하나님의 경륜"에 대해서 강조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일하심의 전체를 성도들이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이라는 거대한 틀을 성도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반석처럼 성도들이 그 위에 설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가장 기본적인 것은, 하나의 본문이든 여러 본문이든, 길든 짧든 상관 없이 설교자가 말하는 모든 요점은, 본문에서 그 의미와 실체를 얻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강의를 마칩니다.
이번 강의를 들으면서 실제로 얻은 것은, 적어도 전형적인 강해 설교이든 주제 설교이든,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의 본문을 기본으로 하여서 설교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여기에 어떤 긴장이 있는 듯 합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설교할 때에 꼭 거기에 맞는 본문을 찾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여기 저기에서 관련이 있는 성경 구절을 가지고 설교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하지만 적어도 파이퍼 목사님은 그렇게 하기 보다는 기본적인 본문을 꼭 정하는 것이 좋다고 제안합니다. 파이퍼 목사님의 주제 설교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데, 추후에 한번 찾아서 연구해 보아야겠습니다.
또 하나 제가 얻은 유익은, 성경 전체를 설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사실 이런 면에서는 너무 작은 본문에 얽매여서 하는 것은 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본인의 설교 기회가 많아서 많은 다양한 본문을 다룰 수 있다면 아주 작은 본문도 좋겠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합니다. 보통의 부사역자의 경우에는 한주에 한번 정도를 설교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한주에 두번 정도의 설교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가급적 아주 작은 본문 보다는, 의미상 나눠지는 적당한 수준의 여덟에서 스무절 정도의 본문을 가지고 설교하는 것이, 파이퍼 목사님이 말씀하는 하나님의 전체 경륜을 다룰 수 있도록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아쉬웠던 것은, 파이퍼 목사님이 제안한 것처럼 설교 본문을 정하고, 그 본문을 중심으로 다른 본문들을 인용하면서 설교를 끌어나갈 때에, "과연 어느 정도로 인용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부분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제가 아직 전체 강의들을 다 들어 보지 않아서 혹시 이후에 언급하실지도 모르겠네요.
왜냐하면 실제로 설교하는 입장에서기본적인 본문을 설명하면서 "추가로 그것을 설명하고 확증하는 과정"은 매우 실제적인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접근할 때에, 과연 몇구절 정도, 그리고 과연 몇군데 정도가 적절한가는, 실제 설교자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저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퓨전 설교"의 형태에서는, "아주 간략하게" 다른 본문의 구절들을 인용합니다. 최대한 간략하게 배경이 필요하면 넣고 길어야 세 네구절 정도 그리고 많아야 두군데 본문 정도에서 인용합니다. 왜냐하면 설교의 집중력이 결국 제가 "지금" 설교 하고 있는 본문에서 흩어지지 않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아래 설교를 통해서 제가 하나의 본문에 집중하면서 아주 간략하게 다른 성경 구절을 후반부에 인용하는 실제의 예를 보실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파이퍼 목사님은 매우 도전적인 목회를 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 그분도 피하고 싶은 본문도 있고, 본인이 선호하는 본문도 있었겠죠. 하지만 무엇이 옳은가 방향을 잡고 그것을 위해서 도전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강의에서도, 어떤 본문도 피하지 말고 설교함으로, 성도들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을 수 있도록 하게 하라고 강하게 권면할 수 있었겠습니다.
당장 오늘 들은 강의를 모두 적용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앞으로 담임 목회를 생각하면서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탁월한 지혜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또 한번 파이퍼 목사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존파이퍼 목사님의 설교 클리닉에 대한 분석과 적용은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 _9강 설교를 준비하기
(Sermon Preparation) / 요한복음 8장 21-30절 설교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1/9-sermon-preparation-8-21-30.html
* 존 파이퍼 "설교 클리닉" 전체 글 모음 / "설교의 대가"에게 설교를 배우라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3/blog-post_9.html
그런데 나이가 들 수록, 물론 책은 느끼고 공감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분석해야만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독서를 통해서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히 그 책이 좋았다 감동적이었다라는 것을 뛰어 넘어서, 분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책의 구조를 알고, 문단을 나누고, 그 문단 안에서 핵심 내용들을 뽑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성경도, 두리 뭉실 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 물론 설교 준비는 아주 분석적으로 성경을 주해하고 그리고 그 안에서 의미를 뽑아 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저의 평소의 성경 읽기는 분석보다는 느낌과 감동 쪽에 훨씬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설교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그리고 성경을 잘 알아간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면서 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일반 책 뿐 아니라 성경 역시, 충분히 분석하고 분해하여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러한 분석적인 성경 읽기는 너무나 당연한 접근입니다. 의미라는 것은 단어에서 시작해서 문맥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어에서부터 문장 그리고 문장의 덩어리를 이루는 문단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문단의 결합인 장까지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
이러한 분석적인 성경 읽기는, 설교자가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도 중요하고, 또한 성도님들이 설교를 들을 때에도 무의식적으로 질서 정연한 논리 속에서 설교를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특별히 저의 설교의 형태를 일반적인 형태가 아닌 "퓨전 설교" 형태로 바꾸면서 이 부분에 대해서 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퓨전 설교는, 그 설교의 앞 부분에 멋진 예화나 혹은 한 구절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아주 간단한 전체 구조부터 설명합니다. 혹시라도 "퓨전 설교"의 형태가 궁금하시다면 아래 글을 통해 읽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 '강해'와 '주제'사이 - '설교의 퓨전'을 꿈꾸다
https://jungjinbu.blogspot.com/2019/12/blog-post.html
보통 설교의 경우에는 15-20절 정도의 설교 분량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세개 혹은 네개 정도의 문단을 나누게 됩니다. 물론 우리가 가진 번역 성경은 기본적으로 문단이 나누어져 있습니다. 다만 그 크기가 아주 커서 10절 정도까지 가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추가적인 문단 나누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성경 본문을 의미상 나누어서 문단 나누기를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많은 시간이 들어갑니다.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새롭게 로고스와 스터디 바이블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목표는 하나입니다. "성경의 의미와 문맥을 확실하게 구분하면서 핵심을 짚어주는 자료"를 찾는 것입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저의 이 목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쉬운 목표였을까요? 아니면 어려운 목표였을까요? 결론적으로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흔히 생각할 때에는, 성경의 문맥을 따라서 의미상 문단 구조를 나누어서 분류한 자료가 많을 것 같지만 거의 없습니다. 물론 많은 주석들은 기본적으로 이런 문단 구조를 다루고 있지만, 성경 한권에 대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의미상으로 문단을 나누어준 가볍게 볼 수 있는 책은 정말 찾기 어려웠습니다.
예상하시는 것 처럼, 어떤 스터디 바이블들은 문단 나누기의 형식을 취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어떤 곳에서는 충분히 문단을 나누기도 하지만, 어떤 곳에서는 문단을 무시하고 내용을 기술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혹시 로고스 자체에는 그런 기능은 없을까요? 로고스 안에 아주 흥미로운 기능이 있습니다. 그것은 Bible Outline Brower 입니다. 그 이름 그대로 본인이 가진 자료들이 성경을 어떻게 구조적으로 이해하는가를 한번에 보여주는 탁월한 기능입니다. 아래처럼 그 결과가 나오는데, 대표적으로 많이 보는 ESV Study Bible 이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 로고스 어디까지 써 봤니?
- 진정한 본문 이해를 위한 새로운 스터디 바이블을 기대하다!
NIV The Grace and Truth Study Bible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07/niv-grace-and-truth-study-bible.html
그리고 오랫동안 헤맨 끝에, 드디어 제가 평생 함께 할 책을 찾았습니다. 제가 원하는 목적에완전히 부합하는 책입니다. 그것은 Hannah's Bible Outlines 입니다.
* Hannah's Bible Outlines
https://www.logos.com/product/199892/hannahs-bible-outlines
담임 목사님의 출타로, 주일 설교를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예상치 못하게 준비하게 되어서 두주간 정도의 시간이 주어졌고, 평소에 성경 통독을 하다가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본문인 요한복음 9장 1-12절을 설교 본문으로 정하였습니다.
이번 설교도 동일하게, 충분한 개인 묵상과 스터디 바이블들, 그리고 필요한 주석들을 충분히 참고하였습니다. 하지만 평소때 보다 훨씬 더 개인 묵상의 결과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계속적으로 퓨전 설교를 연습하고 적용하면서, 목회적으로 굉장히 좋은 설교의 틀이다 라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첫째로, 퓨전 설교는 성도님들에게 본문의 개요를 먼저 설명하여서 이해를 돕습니다. 개요를 먼저 설명하기 때문에, 전체 본문의 구조를 머리 속에 담고 적용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이번 설교의 경우 본문 자체가 9장 전체를 다루어야했기 때문에, 굉장히 압축적인 논리 전개가 필요했습니다. 감사한 것은, 퓨전 설교의 틀 안에서 개요를 먼저 다루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내용을 압축적으로 다룰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일반적인 주해 설교였다면, 설교의 처음부터 쉬지 않고 9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다루다가 저도 성도님들도 지쳐버렸을 것입니다. 아마 퓨전 설교의 틀을 충분히 숙지하지 않았다면, 9장 전체를 이런 식으로 설교를 할 생각 조차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둘째로, 퓨전 설교는 목회적인 강조점을 충분히 다룰 수 있습니다. 물론 본문을 충분히 주해하고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 설교의 기본인 것은 틀림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는, 특정한 청중을 대상으로 하게 됩니다. 그것은, 그 청중에게 필요할 만한 혹은 목회자의 입장에서 본인이 섬기는 지역 교회의 성도님들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라고 판단할 경우에, 단순히 주해를 일렬로 늘어 놓는 설교 구조를 넘어서서, 특별한 강조점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면에서, 퓨전 설교의 구조는 "주해적이면서 동시에 주제적"입니다.
이번 설교의 첫번째 적용 파트는 저에게 매우 의미가 있었습니다. 첫번째 적용은, "논쟁할 것인가? 아니면 자비를 베풀 것인가"라는 적용이었습니다.
물론 주해적으로만 보면, 사실 이 부분은 그렇게 큰 강조점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성도님들을 공격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순히 논쟁만 하는 것에 치우친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을 보면서, 그 부분이 공동체 가운데 분명한 적용점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감하게 첫번째 적용으로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적용에서는 Exegetical Summary와 칼빈 주석, 그리고 카슨의 주석이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특히 틴데일 요한복음 주석이 얇은 주석임에도 불구하고 설명이 명쾌하고 매우 탁월하다고 느꼈습니다. 고신 총회 설립 60주년 기념 성경 주석 사도행전편은, 생각보다 논점들을 피해간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자에게는 죄송하지만, 많이 아쉬웠습니다.
칼빈의 설명을 보니, 성경 전체에서 죄와 고통의 관계를 완전히 부정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어떻게 한 사람을 정죄하는 방향으로 사용하지 않을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칼빈은 이 부분에 있어서 너무나 목회적이면서 또 냉철하면서도 따뜻하게 풀어내는 것을 보고 다시 한번 깊은 존경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QUESTION—Did
this man and his parents ever sin?
Be careful that the
translation does not indicate that either of these never sinned. Jesus was
talking specifically about what sin caused this man’s blindness. It could be
made clear by translating something like, ‘His sin did not cause him to be
blind nor did his parents’ sin cause him to be blind’ [TH, TRT].
Ronald Trail, An Exegetical Summary of John 1–9, Exegetical Summaries (Dallas, TX: SIL International, 2013), 480.
3. Neither did this man sin, nor his parents. Christ does not absolutely say that the blind man, and his parents, were free from all blame; but he declares that we ought not to seek the cause of the blindness in sin. And this is what I have already said, that God has sometimes another object in view than to punish the sins of men, when he sends afflictions to them. Consequently, when the causes of afflictions are concealed, we ought to restrain curiosity, that we may neither dishonour God nor be malicious towards our brethren. Wherefore, Christ assigns another reason. This man, he says, was born blind,—
John Calvin and William Pringle, Commentary o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vol. 1 (Bellingham, WA: Logos Bible Software, 2010), 367.
그리고 결론을 맺으면서 인용했던 브라이언 스턴버그의 예화는 Jon Courson의 커멘터리에서 보고 인용하였습니다.
Maybe
you’ve heard his story: During the ’68—’69 season, Brian Sternberg was at the
West Coast Relays in Fresno, California, pumped, primed, and poised to break
the world record in the pole-vault. The day before the meet, he was doing what
pole-vaulters often do—working out on the trampoline. But following one
particular double flip, he hit the metal railing and broke his neck. It was a
tragedy and a shock to the track and field world when Sternberg was told not
only that he would never vault again, but that he would be a quadriplegic for
the rest of his life.
Jon Courson, Jon Courson’s Application Commentary (Nashville, TN: Thomas Nelson, 2003), 514.
세번의 연속되는 주일 설교를 감당하면서, 많은 부분을 배우고 또 감사했습니다. 자랑이 되기 때문에 다른 분들에게 말하지는 않지만, 너무 열심히 준비한 설교였고, 또 너무 소중한 설교였습니다. 내용적으로도 그리고 구조적으로 만족스러웠고, 또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 가운데 설교하였습니다. 지금까지 공부하고 읽은 모든 책들의 정수가, 이 설교 한편 안에 모두 녹아 들어갔습니다.
너무 설교에 집중해서, 마치 제 자신의 자아가 사라지는 것과 같은 느낌도 강하게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스피커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어렴 풋이 깨달아 아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음 속에 준비하던 만큼 충분히 강조할 부분들을 강조하였습니다. 체력적으로 너무 지쳐서 실수가 있었지만, 끝까지 원고를 놓치지 않고 설교했고, 마지막 설교에서 조차 다섯번 정도 밖에 발음에서 실수가 없었습니다.
설교 원고를 준비하면서 여러번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용이 너무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설교를 실제로 하면서 울지 않기 위해서 많이 노력했습니다. 영상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예수 이름 높이세" 찬양을 2절까지 설교 후에 찬양하였습니다. 사실 목이 다 상해버렸습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찬양이 바로 성도이자 목회자인 저의 신앙 고백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설교는 결국, 성도님들에게 하기 전에 설교자 본인에게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설교를 준비하게 하시고 마무리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죄인을 구원하시며 설교하는 자리에 세워주시는 측량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겪는 모든 고난과 어려움을 통해서, 저의 안에 예수님께서 살아 역사하시게 하시는 주님의 신비 앞에 겸손히 엎드려 주님을 경배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행복. :)
매일 성경을 따라가는 것이 유익한 것은, 다양한 성경 본문을 접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한 목회자는 본인이 좋아하는 본문 혹은 스타일이 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 그런데, 매일 성경 스케쥴을 따라가다 보면 반강제적(?)으로라도 다양한 본문을 묵상하고 설교를 하게 된다는 점에서, 균형 잡힌 신학과 성경에 대한 관점을 기를 수 있습니다.
물론, 긍정적으로 말하자면 그렇지만, 실상은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 특히 잠언은, 평소에 읽는 것은 좋아하지만, 그것을 설교로 풀어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
다른 목회자분들의 설교를 들어보니, 각자의 스타일 안에서 잘 설교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본문 중에 한 구절만 잡고 그것을 집중해서 설교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어떤 분은 한구절 한구절을 다 의미를 설명한 이후에, 적용점을 몇가지 짚어내는 분도 계십니다.
저는 어떻게 잠언을 설교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저의 퓨전 설교의 기본틀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결심하고 계속 적용중입니다. 서론에는 큰 문단의 구조들을 분석해서 나누고, 간략하게 내용을 살핀 다음에 그 안에서 적용점들을 두가지를 찾는 형태입니다.
물론 여기에도 어려움은 있습니다. 잠언이라는 말씀의 특성상, 일단 문단 나누기 자체가 어렵습니다. :) 그래서 보통 스터디 바이블이나 주석들을 보면 그렇게 엄격하게 문단을 나누기 보다는, 다양한 격언들의 모음 정도로 볼 때가 많이 있습니다.
물론 저도 이런 부분을 인정하지만, 설교를 들으시는 성도님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어느 정도 주제를 정해서 문단을 나누는 것이 훨씬 듣기가 편한 듯 합니다. :) 그리고 제 나름대로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 본다는 점에서 계속 시도해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에 잠언을 설교하면서, 성경 구절 하나하나를 다 해설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 성경 구절들이 전체적으로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가에 더 초점을 맞추어 보았습니다. 한구절 한구절 보다는, 그 내용들을 큰 덩어리로 보고, 좀더 주제 중심으로 큰 그림을 그려나가는 방식입니다.
아무래도 주제 중심으로 설교를 이끌어가다보니, 좋은 자료가 필요합니다. 기본적으로 스터디 바이블과 주석을 보지만, 그러나 내가 전체 그림 속에서 보는 주제를 설명하는 부분은 아무래도 부족합니다. 그래서 최근에 리뷰하였고 사용을 시작한 Dictionary of Bible Themes를 이번 설교에는 적극적으로 사용해 보았습니다. Dictionary of Bible Themes에 대한 기본적인 리뉴는 아래 글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이번 설교에서 핵심 테마는, "선택" 그리고 "마음의 변화" 였습니다. :) 굉장히 실제적인 성경적인 주제이지만, 동시에 굉장히 난해하기도 합니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선택을 잘 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의 변화가 중요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만 설교 때에 말하자면 전하는 사람도 그리고 듣는 사람도 흥미가 많이 떨어지겠죠. :)
일전에 설명드린 것 처럼, Dictionary of Bible Themes는 단순히 주제별 사전이 아닙니다. 평범하고 일반적인 큰 항목에서 시작하지만, 그 항목이 다시 세부 항목으로 정리되면서 일종의 해석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 쉽게 이야기하자면, 성경을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는가에 있어서 아주 좋은 가이드 역할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사전 안에는 식상하지 않은 탁월한 논리의 전개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선택이라는 주제를 보기 위해서 "choice"라는 항목을 찾아 보았습니다.
6622 choice
A
deliberate act of will or decision, in which God chooses individuals or peoples
to be his or calls them to perform certain tasks or responsibilities. Human
beings are also required to make choices, particularly between good and evil.
Martin H. Manser, Dictionary of Bible Themes: The Accessible and
Comprehensive Tool for Topical Studies (London: Martin Manser,
2009).
이 부분을 읽고 묵상하면서 설교를 풀어나갈 방향을 잡았습니다. :) 하나님의 선택을 묵상하고 그것을 바탕으로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에 이 선택이라는 부분을 굉장히 의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주어진 하루 가운데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 그래서 더 Dictionary of Bible Themes이 좋게 느껴졌습니다. 이 사전을 읽고 묵상하면서 묵상의 깊이가 깊어졌습니다.
단순히 인간의 자기계발 혹은 성공을 위한 선택의 맥락을 뛰어 넘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택,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의 선택,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인간의 선택이라는 아주 심오한 주제까지 펼쳐나갈 수 있는 기본적인 논리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오늘 본문 안에서 "마땅히 행할 길"이라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마음의 변화"라는 부분은 더 난해한 부분입니다. 과연 이것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사실 적당히 풀어내고 접을까 생각도 했습니다. :) 하지만 마음을 돌이키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영상에서 보시는 것 처럼 25분 설교를 했으니 평소보다 5분이나 더 했네요. 저는 사실 새벽에 길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물론 제 설교도 중요하지만 성도님들의 상황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변화" 특별히 잠언에서 마음의 어리석음을 풀어낸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테마이기 때문에 시간을 할애해서 더 살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먼저 Dictionary of Bible Themes에서 성경 인덱스에서 잠언 22장 15절 섹션을 살펴보니, 마음에 대한 부분은 언급이 없습니다.
당황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성경 인덱스가 없으면 주제별 인덱스에서 찾으면 됩니다. :) 마음을 뭐라고 영어로 검색해야 될까요? 검색창에 heart를 찾아들어갑니다. 다행히 heart라는 항목이 있군요. :) 이제 heart 안에서 다양한 주제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heart, divine => Aspect of the heart of God 이런 식으로 등장하기도 하네요.
제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5017 heart, results of renewal in 입니다. 이쪽이 중요한 것은, 마음의 변화 라는 점에서 변화된 마음, 혹은 결과라는 쪽이 제가 설교 때에 이야기할 주제와 가장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5017 heart, results of renewal in
An
individual, if renewed and led by the Holy Spirit, will be aware of new
spiritual experiences and desires, and also of the Holy Spirit’s work of
restoring character. These things provide evidence of the grace of God at work
in the life of a believer.
Martin H. Manser, Dictionary of Bible
Themes: The Accessible and Comprehensive Tool for Topical Studies
(London: Martin Manser, 2009).
사실 이번 설교를 준비하는데에는 시간이 정말 촉박했습니다. 의도적으로 거의 한주 전부터 본문을 묵상하지만,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도 제 마음에 드는 생각은 언제나 "딱 한걸음만 더 나가보자"입니다. :) 설교에 완성이라는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그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딱 한걸음더 묵상하면서 도전해 보는 것이 목회자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Dictionary of Bible Themes는 마치 보물창고와 같습니다. 보물 창고를 옆에 두었더니, 마음이 이렇게 풍요로울 수가 없네요. :) 창고를 열었더니 눈이 부십니다. 진정한 보물인 하나님의 말씀들이 찬란한 빛을 내면서 차곡차곡 주제별로 다 분류가 되어 있습니다. :)
책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읽지 않으면 크게 도움은 안됩니다. :) Dictionary of Bible Themes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처음에 결심한 것 처럼, 앞으로도 이 책을 적극적으로 평생 사용할 예정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본인에게 맞는 다양한 방식으로 Dictionary of Bible Themes를 계속 사용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 "로고스 성경 프로그램" 전체 글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html
요즘에 그런 경험을 많이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말씀을 더 사모하게 하시고, 그 말씀 안에서 저를 성찰하게 하시는 그런 경험입니다.
특별히 퓨전 설교를 추구하면서 "적용점을 더 정확하게 만들어내기 위해서" 고민하다보니, 그러한 경험들을 더 하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말씀이 추상적인 맥락에 머물지 않고, 정확하게 무엇을 목적으로하는가에 더욱 마음을 쏟는 것은 비단 성도님들 뿐 아니라 설교자 자신에게도 참으로 유익한 일입니다.
잠언 7장에서 마치 무엇엔가 홀린 것 처럼, 음란한 여인을 찾아가는 이 청년의 모습이 낯설게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우리의 죄로 망가진 본능 속에서 친밀함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채워지지 않는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그런 나의 공허함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환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런 헛된 시도들을 통해서, 더 지독한 죽음과 같은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All things are lawful for me, but all things are not
helpful. All things are lawful for me, but I will not be brought under the
power of any.
1 Corinthians 6:12 NKJV
God gave people all
things to enjoy, but Satan works tirelessly to take God’s blessings and twist
them into evil. Believers are allowed to enjoy many things, as long as
Scripture does not forbid them. But they must never allow themselves to be
controlled or “brought under the power of any.”
Therefore put to death your members which are on the
earth: fornication, uncleanness, passion, evil desire, and covetousness, which
is idolatry. Because of these things the wrath of God is coming upon the sons
of disobedience.
Colossians 3:5–6 NKJV
These verses describe
some of those sinful desires that believers should “put to death.” Sexual sins,
evil desires, and covetousness (a form of idolatry) should have no place in a
believer’s heart. It takes a conscious daily decision to say no to these sinful
temptations and rely on the Holy Spirit’s power to overcome them.
Tim Clinton and Mark Laaser, The Quick-Reference Guide to Sexuality and Relationship Counseling (Grand Rapids, MI: Baker Books, 2010), 155.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여러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읽으면서 느낀 것은, 현재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 그저 지식적인 내용들을 머리 속에 넣는 것에 치중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 세계관 운동을 통해서 얻게 되는 지식이, 실제 삶에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슬프게도, 한국의 기독교 세계관 영역에서 각광 받던 한 분이 크게 부끄러운 죄를 저지른 것이 만천하에 밝혀짐으로, 기독교 세계관 운동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되면서 이러한 비판이 더욱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의 공부의 종합적인 결과는, 결국 "지식을 실천으로 바꾸는 선순환" 속에 들어가는 사람만이, 힘 있는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거대하고 좋은 화려한 진리도, 그 사람 안에서 실천되지 않은 진리는 매우 연약한 형태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아주 작고 볼품없는 작은 진리라도, 그 사람 안에서 "실천"되며 그것을 가지고 "살아가는 시도"들이 "쌓일 때"에, 그 진리는 원래 그것이 가지고 있던 엄청난 가치를 드러내며 위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런 맥락에서, 설교자의 역할은, 단순히 "주해"를 잘 해주는 차원에서 끝나서는 안되며, "주해"를 "적용"적인 맥락에서 풀어내며 성도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과감하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설교의 꽃은 "주해"가 아니라 "적용" 입니다. 그리고 설교를 통해서, 삶 속에서 아주 작은 것이라도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저의 설교에 대한 이해이며 결론입니다.
설교의 형태를 "퓨전 설교"로 바꾸면서, 적용에 대한 깊은 갈망이 생겼습니다. 언제나 그런 것 처럼 다양한 자료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부끄럽지만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저처럼 로고스 홈페이지의 자료들을 구석구석 뒤져본 분은 잘 없을 것입니다. :)
Courson's Application Commentary는 약 2년 정도 전에 구입했습니다. 누가 추천해 준 것이 아니라 검색해서 살펴보다가 스스로 판단해서 구입했습니다.
* Courson's Application Commentary
https://www.logos.com/product/54016/coursons-application-commentary
제가 이 책을 구입하고 계속 참고했지만 지금까지 블로그 자료에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 책의 약점들이 많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지내면서 제가 이해한 분위기는, 미국은 어떤 신학자나 목회자가 어디서 공부했는지를 굉장히 중요시하고 또 그것을 존중해 줍니다. 아마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꼭 공부를 많이 하고 좋은 학교를 나온 사람만 존경 받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사역의 영역에서 깊은 경지를 이룬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학벌과 상관 없이 또한 존경을 받습니다. 이것이 아마도, 한국과 미국의 큰 차이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보통 책을 구입하기 전에, 이분이 어디서 공부했는지를 꼭 살펴봅니다. 그분이 공부한 그 배경이 결국 책의 성격의 많은 부분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인 Jon Courson 목사님은, 본인의 홈페이지를 포함해서 어디를 찾아봐도 어디에서 교육 받았는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약간 주저하게 되었습니다.
* Jon Courson 목사님의 개인 홈페이지
https://www.joncourson.com/
다만 한가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 분이 25년 이상 성경을 가르쳤고, Applegate Christian Fellowship 교회를 세운 이후에 거의 만명 정도 되는 규모로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양한 책들을 썼고 목회자들을 위한 훈련을 계속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이분이 어떤 학위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지만, 실제 사역의 현장에서 베테랑으로써 엄청난 활약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Jon Courson 목사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
https://hopefm.net/joncourson/
2년 정도 동안 설교를 준비하면서 계속적으로 이분의 주석을 참조했습니다. 이 책의 구성은, 성경 구절에 대한 "설교적인 통찰력"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복잡한 주해나 설명 등은 생략되어 있고, 본문 자체에 대한 Jon Courson 목사님의 깨달은 점들과 그것에 대한 적용들이 혼합되어 들어가 있습니다.
그동안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주저했던 이유는, (저자에게는 매우 죄송하지만) 제 관점에서는 좀 심하게 황당한 이야기들도 적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 도대체 출처를 알 수 없는 뭔가 신비적인 이야기도 몇번 보았습니다. 그대로 인용했다가는, 괜히 이상한 목회자로 몰리겠다 생각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꼭 참조했던 이유는, 보통의 평범한 일반적인 전형적인 교육을 받은 학자들에게서 발견할 수 없는 생각들을, 가끔씩이라고 찾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대부분의 신학교의 교육은 정형화 되어 있습니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어느 정도의 통일성과 일치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수준의 비슷한 학교에서 공부한 교수님들 밑에서, 비슷한 내용을 공부합니다.
그러므로 대부분 참고하는 자료들이 비슷하고, 그렇기 때문에 비슷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비슷한 묵상과 설교의 결과물들을 내 놓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맥락에서는 Jon Courson 목사님은, 완전히 다른 이방인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 저는 이분의 묵상을 한마디로 "자유로움"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느 정도 성경의 테두리 안에는 들어 있지만, 그러나 이분의 목회 현장과 고민 속에서 녹아나는 묵상은 일반적인 신학 교육을 받은 사람들과는 분명히 다른 그 어떤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년 정도 전에, 교회에서 자체적으로 설교 세미나를 하면서 한가지 아이디어를 가졌습니다. 그것은 "퓨전 설교"에 대한 개념입니다. :)
강해 설교와 주제 설교의 장점을 취하고 싶었습니다. 성경에 대한 주해의 깊이를 가지면서도, 동시에 강한 적용을 얻기 위한 전혀 새로운 도전을 시도해 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처음 개념을 잡을 때에 썼던 글을 읽어보시면, 그 개략적인 방향을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강해'와 '주제'사이 - '설교의 퓨전'을 꿈꾸다
https://jungjinbu.blogspot.com/2019/12/blog-post.html
대략 계산해 보니, 일년 정도 퓨전 설교를 연습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어느 정도 연습이 되었고 또 몸에 익었기 때문에 스스로 평가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블로그를 방문하시는 분들 중에는 목회자들도 있으시기 때문에, 저의 작은 경험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
사실 설교를 평가한다는 것은 굉장히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각 목회자들이 처한 개 교회의 상황이 일단 너무나 다양합니다. 다양한 환경, 다양한 분위기, 다양한 청중을 생각할 때에, 모든 교회에서 적절한 설교의 형태를 찾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각 지역 교회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목회자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면 좋았다 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조심스럽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평가하는 것도 조심스럽습니다. :) "목회가 뭘까?" "난 정말 제대로 하고 있는걸까?"라는 생각을 매일 한번 이상씩 하는 것 같습니다. 설교 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고 속상하고, "좀더 잘할 수 있었는데 왜 그랬을까" 라는 후회도 참 많이 듭니다. 뭔가 잘했다고 생각이 들어도, 정말 이게 잘한 것일까 라는 생각을 심각하게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퓨전 설교"에 대한 평가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입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이 설교의 방향이 앞으로 남은 목회 동안에 중요한 방향이 되고, 또 이것을 더욱 갈고 닦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읽으시는 분께는 작은 참조가 되시면 좋겠습니다. 위에 링크 걸어드린 새벽 설교가 퓨전 설교의 가장 기본적인 틀을 충실히 반영했습니다. 시간이 되시면 한번 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 :)
1. 퓨전 설교의 시작 - 간단한 배경 & 단락의 구분
저는 설교의 목표 속에, "성도님들이 성경을 잘 이해하고 잘 해석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보통의 성도님들은 예배를 드리고 듣는 설교 그 한번이 그분에게 있어서 유일한 성경을 배우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
쉽게 말해서, 멋있게 하는 설교, 변칙적인 설교 혹은 감동을 강하게 주는 설교 보다는, 성경 본문 자체를 잘 보고 익히고 배우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본문의 특정 구절이나 예화로 시작하는 것이, 순간의 집중력은 끌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본문 자체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혹은 그것을 바탕으로 한 관찰을 자칫 약하게 만들까 염려가 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앞으로도 제 설교의 시작은 말씀의 구조 분해부터 간단하게 말씀드릴 예정입니다.
2. 퓨전 설교의 본론 (1) 단락 이해 - 단락의 구분에 따른 간단한 설명 & 주해적 or 신학적인 힌트
그리고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본론은 서론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론에서 말씀드린 각 단락을 언급하면서 "간단한 설명"을 합니다. 본문에 대한 실제 관찰 내용이 "아주 간략하게" 설명이 됩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좀더 적극적으로 해석한 내용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핵심은, 절대로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필요한 추가적인 심도있는 관찰이나 주해의 내용은 적용 파트로 넘깁니다. 각 단락의 핵심만 짚어주면서 그 단락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짚어줍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설교의 속도감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예를 들어서 한절 한절 강해로 설교하게 되면, 듣는 이들이 집중력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인 포스트모더니즘은 순간의 느낌에 의지하고 논리력이 많이 약해진 시대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한절 한절 길게 설명을 해버리면, 대다수의 성도님들은 금방 집중력을 놓치게 됩니다. :)
물론 이 설명들은 숨겨진 포인트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본론의 첫 단계에서는 앞으로 적용점으로 이끌어낼 부분에 대한 약간의 힌트들을 넣어야 합니다. :) 물론 설교를 듣는 분들은 눈치채지 못하겠고, 나중에야 "아 그 이야기를 그래서 했구나" 라고 알게 되겠지만, 마치 추리 소설처럼 설교를 구성함으로써 무의식의 수준에서 집중력을 올리게 됩니다.
3. 퓨전 설교의 본론 (2) 적용의 시작 - A인가? 아니면 B인가?
그리고 나서 이제 적용 파트로 들어갑니다. 퓨전 설교는 개략적인 단락의 설명 이후에 바로 적용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매우 속도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노골적으로 적용에 포커스를 맞추게 됩니다.
저도 늘 말씀의 적용이 중요하다고 말을 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못했던 것 같습니다. 성도님들에게 말씀의 적용이 중요하다고 말로 하는 것보다, 실제 설교자가 고민하면서 설교의 구성을 그렇게 만들어서, 말씀을 듣는 최종적인 목표갖 적용이며 그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
적용의 형태는 "A인가? 아니면 B인가?" 입니다. 이것에 대한 힌트는 여호수아가 우상을 섬길 것인가, 여호와를 섬길 것인가를 도전하던 장면에서 힌트를 얻은 것입니다. :)
적용의 형태를 다양하게 변형해 보았는데, 이 형태가 제일 마음에 들고 강력하다고 판단이 됩니다. 왜냐하면 단순히 "이렇게 하십시요"라는 형태보다는, 저렇게 할 것인가? 아니면 이렇게 할 것인가? 의 형태는 대조가 분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
다시 말해서, 내가 말씀대로 적용하지 않으면 어떤 비참한 삶으로 빠져드는가에 대한 반대적인 형태가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둠이 짙어야 빛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처럼, 적용의 형태를 A인가? 아니면 B인가?로 만들때 강력한 힘을 가집니다.
이렇게 적용을 정하는 것은, 내가 설교의 후반부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해서 "강력한 방향타"를 만들어 줍니다. 일단 이 구조를 위해서 본문을 보면서 고민하는 것 자체가, 설교자 자신에게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서 일반적인 주해 설교 스타일로 내용을 쭉 끌어가다보면, 도대체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말을 하지 말아야 할지 감을 잡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그냥 주해 했던 것을 다 이야기할까? 아니면 다른 예화를 넣어야 하나? 마치 방향이 없이 흘러가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저의 경우에는 적용점을 잡고 나서 설교문을 쓰면, 그 내용이 매우 분명해 지는 것을 느낍니다. 신학적인 내용이든 주해적인 내용이든 본문에서 관찰한 부분을 붙들고 적용을 염두에 두고 그 안에서 내용을 풀어나가야 하기 때문에, 결국 설교 내용이 선명해 집니다.
이미 앞 부분에서 개괄적인 이야기는 마무리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마치 송곳으로 깊이 찌르는 것 처럼 적용점으로 설교자 자신과 성도님들의 마음을 찔러 들어가야 합니다.
4. 퓨전 설교의 본론 (3) 적용의 본론 - 관찰된 신학적 and or 주해적 내용의 심화
적용의 파트는 크게 두 파트로 나뉩니다. 하나는 본문에서 관찰된 신학적인 혹은 주해적인 내용의 심화이며, 또 다른 파트는 다른 본문과 연결하여서 강조하면서 적용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첫 파트는 관찰의 내용을 심도 있게 풀어나가면 됩니다. 관찰된 내용 혹은 주해적인 내용을 풀어가면서, 적용의 원리를 이끌어내면 됩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주해를 다 하고 적용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적용점을 먼저 이야기하고 주해를 풀어나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일반적인 강해 설교와 퓨전 설교의 차이점은, "모든 절에 대해서 강해를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TMI(too much information)를 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적용하는 부분에서 필요한 만큼 주해하면서 그 주해의 내용을 날카롭게 만들면 됩니다. 그런 면에서 이러한 형태는 주제 설교 혹은 원포인트 설교에 가깝습니다.
물론 이 부분이 성도님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심도 있는 관찰과 주해의 실력이 설교자에게 필요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을 위해서 가장 신경을 많이 씁니다.
5. 퓨전 설교의 본론 (4) 적용의 결론 - 다른 본문과 연결, 강조, 그리고 적용의 확증
그리고 이러한 적용의 내용이 설득력 있게 설명이 되고 원리적으로 정립이 되었다면, 그 다음 부분에서는 "반드시" 다른 성경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연결 구절들을 넣고 그 내용을 "강화"를 시켜야 합니다. 이 부분은 "설교를 견고하게 하는" 매우 강한 장치입니다.
저는 설교 자체가 사변적으로 흐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설교 본문 안에서 그 내용만 가지고 점점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너무 깊게 만들어나가는 것 보다는, 오히려 적당한 수준에서 다른 말씀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왜냐하면, 설교는 신학 논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도님들이 신학적인 사고를 전개하면서 따라오는 것이 한계가 있습니다. 만약에 논문이나 혹은 학회 발표라면 신학적인 사고를 한계까지 밀어붙여서 아주 깊게 만드는 것이 유익하지만, 실제 현장 설교에서는, 성도님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까지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 더 좋아보입니다.
오히려 적당한 수준에서 적용의 원리를 설명하고, 그 적용을 염두에 두고 다른 본문을 연결하는 것은, 성경 전체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해석학적인 관점을 실제로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통로입니다. 설교자가 이런 방식으로 본문을 이렇게 연결하는 것을 모델로 삼아서, 성도님들도 확신을 가지고 성경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설교자 자신에게 이 과정이 굉장히 고되기는 합니다. 적용 포인트를 찾고 좀 더 신학적인 설명을 덧 붙이는 것으로 마무리 하고 싶은 충동을 항상 느낍니다.
왜냐하면 내가 현재 본문으로 부터 주장하는 적용의 포인트와 연결된 성경 구절을 찾는 것이 녹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로고스 자체 관주, 스터디 바이블, 주석 등을 필요한대로 잘 찾아보고 꼭 연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절대로 많은 구절을 인용하지 않습니다. 적용의 한 파트에서 많아야 두군데, 혹은 다섯 구절 정도입니다. 샘플로 제시한 이번 설교에서도 평소때 보다 더 많이 성경 구절을 인용했습니다. 절대로 성경 구절을 많이 인용하지 않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그리고 성도님들이 기억에 남으실 수준에서만 인용합니다.
설교 본문과 적용적 관점에서 다른 본문을 연결하는 이 부분의 독특한 점은, "본문 자체와 청중 사이에 목회자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상적인 설교가, 말씀을 그대로 주해하여서 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 있는 청중을 책임지고 있는 목회자는, 그 청중들의 상황과 영적인 상태를 감안해서 말씀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아주 약간은 말씀 자체의 주해에서 벗어난다 하더라도, 만약에 그러한 적용점과 다른 성경 구절의 인용이 청중들에게 꼭 필요하다면 저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설교자에게 허락하신 재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면에서 퓨전 설교는, 주제 설교의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퓨전 설교의 적용의 시작은, 철저한 관찰과 주해에 근거해서 적용점을 끌어내지만, 결국 그것을 풀어내고 마무리하는 것은 매우 청중 지향적이며, 청중을 염두에 두고 어떤 주제를 강조하게 됩니다.
6. 퓨전 설교의 본론 (5) 적용 단락 하나 더 추가하기
처음에 퓨전 설교를 시작하면서, 왠지 적용 파트가 하나인 것이 아쉬워서 동일한 적용 파트를 더 추가하였습니다. 그런데 점점 강하게 느끼는 것은, 두가지 정도가 시간 상으로도 유리할 뿐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적용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저는 크게 두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복음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율법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적용한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새롭게 깨닫고 그 안에서 위로와 용기, 그리고 회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을 적용한다는 것은, 그렇게 은혜를 입은 이들이 마땅히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적용입니다.
저는 적용 파트에서, "용기와 위로를 얻기 원한다" 라고 말하는 것을 너무 좋아합니다. 용기와 위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오직 말씀 안에서 진정한 용기와 위로를 얻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복음을 적용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물론 복음만 적용하면 방종에 빠지기 쉽고, 율법만 적용하면 율법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복음과 율법 이라는 순서대로 두가지 포인트를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고, 이렇게 할 때에 훨씬 균형이 잡히는 것을 느낍니다.
순서 상으로는, 복음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하나의 설교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면서 동시에 성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선명하게 제시하는 것입니다.
7. 퓨전 설교의 결론 - 요약 or 기도 제목으로 정리
마지막은 언제나 요약입니다. 다른 말을 넣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위의 설교 동영상 샘플의 경우 새벽 설교이기 때문에 마지막 통성 기도의 제목이 설교의 결론이 된 형태입니다.
저는 설교 후 기도도 즉흥적으로 말하지 않고, 반드시 원고로 정리해서 준비합니다. 그렇게하는 이유는, 설교 이후에 기도의 시간 조차도 영적인 초점이 흐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고, 성도님들이 말씀을 아주 분명하게 다시 한번 기억하면서 함께 기도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8. 퓨전 설교의 최종적인 평가
현재 제가 섬기는 교회는 새벽에 성도님들이 열명에서 스무명 정도 오십니다.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서 현장 예배가 제한적으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예배 분위기는 정말 진지합니다. 새벽 예배에 오시는 성도님들은 다 믿음이 좋으신 귀한 분들이십니다.
설교자는 강단에 서면, 성도님들의 반응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얼만큼 집중하시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설교에 집중하는 분들의 표정, 반응, 그리고 그분들의 눈빛은 설교에 대한 반응을 나타냅니다.
제가 퓨전 설교의 틀을 적용하면서 1년 동안 느낀 것은, 그 이전의 저의 설교 때 보다 훨씬 더 반응이 좋아졌다는 것입니다. 이건 아마 설교자인 저 만이 느낄 수 있는 부분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성도님들이 고개를 들고 저를 굉장히 진지하게 쳐다보십니다. 특히 설교 서두 부분에서 구조 분석을 할 때에, 성경을 함께 보시면 따라옵니다. 그리고 적용의 포인트에서 그 적용을 이끌어내게 된 관찰의 내용들을 설명드릴 때 또 성경을 보면서 따라옵니다. 저는 이것이 굉장히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성도님들의 표현은 제한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 많이 받았다"라는 그 한마디 말 속에 참으로 많은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아주 제한적인 몇분이 퓨전 설교를 사용한 이후에 은혜 받았다고 개인적으로 진지하게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그리고 설교의 구조적인 부분에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9. 마치며
새로운 틀을 만들고 익히는데,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한번의 주일 설교, 그리고 대부분 새벽과 청년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에 굉장히 긍정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셨습니다. 그저 감사하는 마음 뿐입니다.
설교를 잘하시는 귀한 목회자들이 참 많습니다. 만약 설교자의 기술과 능력과 설교의 퀄리티로 비교한다면, 저는 참으로 부족할 뿐입니다.
다만 저는 저의 앞으로 평생 동안에 사용할 수 있는 설교의 틀을 발견했다는데 하나님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이 작은 글이, 오늘도 설교로 고민하고 기도하시는 분들께 작은 도움이라도 되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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