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혜"를 받고 싶은 마음
지난 번 설교 이후에, 여러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공통적인 의견은, "책을 인용하고 설교가 깊었지만 내용이 많아서 따라가기가 힘들었고, 영어 발음이 너무 많이 나와서 힘들었다" 라는 정도였습니다. 이야기 해주신 분들 모두가, 주일 예배를 사모하고 은혜를 받고 싶어하는 분들이었습니다. 함께 공동체 안에 속한 분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저에게 주시는 말씀들을 경청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설교에는 꼭 반영해야겠다" 라고 결심을 했습니다.
* "전통적인 설교"를 한다는 것
저는, "보수적인 장로 교회"에서 어린 시절부터 신앙 생활을 했습니다. 저는 합신 원로이신 박병식 목사님을 정말 존경합니다. 저의 신앙의 근간을 만들어 주신 분이십니다. 송파제일교회에서 전도사로 섬기시는 어머니를 따라서 중학교 시절부터 모든 공예배는 다 참석하였습니다.
송파제일교회의 공예배 설교는 대략 40분 정도였고, 성경 말씀을 많이 인용하는 성경 중심의 설교였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설교는, 저에게 있어 마치 뼈와 살처럼 저의 근본에 녹아들어가 있습니다.
이번 설교는, "전통적인 설교"를 해야겠다 라고 결심했습니다. 저에게 전통적인 설교란, "말씀의 의미를 차분하게 풀어가면서 성경들을 인용하면서 논리를 강화하고, 결론적으로 적용점들을 찾아내는 설교"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지난 두번의 설교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 "설교의 속도"를 조절하라!
전통적인 설교 스타일 자체는 이미 저에게 익숙하기 때문에, 사실 이번 설교에서 가장 신경을 쓴 것은 "속도" 였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속도감 있는 설교"를 좋아합니다. 일단 속도를 높여야, "제가 의도하는 부분"을 모두 담을 수 있습니다. 뭔가 "논증적인 내용"을 집어 넣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구조가 복잡해 질 수 밖에 없고 내용이 많아 집니다. 그러니 속도를 올려야 합니다.
그런데 저의 설교를 듣는 분들 다수가, "속도를 늦춰달라" 라고 부탁을 하시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작정하고" 속도를 많이 줄였습니다. 특별히 아내가 저에게 한 조언이 굉장히 영향을 주었습니다. "당신은 혼자서 신난 것 처럼 설교를 하는 것 같아" 라고 이야기하더군요. 그 의미는 "저는 설교의 뒷 부분을 다 알고 있어서 열심히 이야기하지만, 정작 듣는 사람은 그 속도를 따라가기가 힘들다"라는 의미라고 풀어서 알려주었습니다.
자, 설교의 속도를 줄이기로 결심을 했는데 이제부터가 진짜 문제입니다. 관건은, "어디에서" 속도를 줄일 것인가? 입니다. "전반적인 논리적 흐름"의 단계를 줄일 수도 있겠고, 혹은 "가장 작은 문장 단위"에서 손을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일단, "문장 단위"에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아래 부분은 마인드맵으로 작성한 저의 설교 원고의 일부분입니다.
그런데 "제가 원고를 읽는 습관"을 정직하게 파악해 보니 이런 식입니다. 예를 들어서 위의 원고에서 "사람들은 흔히 공감이라는 것을 & 단순히 정서적인 것..." 이라고 읽습니다. 실제로 문장의 흐름상으로 논리적으로는 "&" 부분이 분리가 되지만, 거의 늦추지 않고 한번에 바로 읽어버리는 습관이 있습니다. 심지어 그 연결 부분을 "더 빨리 읽어 버리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설교의 속도감을 줄이기 위해서, 몇가지 전략을 동원했습니다. 첫째로, 제가 적은 원고의 "논리적인 흐름의 단위"를 잘 지키는 것으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미 원고의 문장들이 적절하게 분해가 되어 있기 때문에, 한번에 다 연결해서 문장을 읽지 않고, "실제로 제 원고의 끊어진 곳"에서는 "중간에 포즈"를 의도적으로 넣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문장 하나가 끝이 나면, 다음 문장을 바로 연결하지 않고" 좀 더 여유를 가지는 것입니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대략 2-3초 정도는 쉰 듯 합니다. 일단 한 문장이 논리적으로 끝이 나면, "그 논리를 음미하면서 성도님들이 들으면서 쉴 수 있는 여지"를 드리는 것입니다. 빨리 다음 문장을 이야기하고 싶은데, 그런 마음을 꾹 참느라 참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노력한 것은, "성경 구절을 읽는 것에 최대한의 감정을 담고, 강조점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아마 지금까지 제가 한 설교 중에서 가장 많이 감정을 넣고, 완급을 조절했다고 생각합니다. 감정을 담기 위해서는, "천천히" 읽어야 하고 "고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성경 구절을 읽을 때에 설교의 속도감을 많이 늦출 수 있었습니다.
* "설교의 구조"를 조절하라!
내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단순히 문장 단위만이 아니라, "전체의 구조"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을 해야했습니다. 설교의 구조야 말로, "설교의 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똑같은 내용도 "어떤 배치"를 하는데 있어서 전혀 다른 결과와 느낌을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 저는 "원포인트 설교"로 설교를 배웠습니다. 탁월한 박완철 교수님께 배웠기 때문에 가장 모범이 되는 원포인트 설교를 배웠습니다. 아쉬운 점은 "제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원포인트 설교로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여전히 저의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렇다고 대지 설교만 하면 아쉬움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대지 설교는 본문과 약간 떨어지는 느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모든 고민을 담아서 만들어 본 것이 "퓨전 설교" 입니다. "설교의 앞 부분"은 마치 원포인트 설교처럼 진행하면서 "중요한 힌트 혹은 복선들"을 앞에서 사용하고, "설교 뒷 부분"은 대지 설교처럼 적용 포인트를 살려서 요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적용을 잡고 논리를 풀어내면, 아무래도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고 초점이 집중 되면서 설교 원고의 분량이 줄어드는 장점이 있습니다.
* "퓨전 설교" 를 갈고 닦아 몸에 익히고, 이제 평가해 봅니다
이번 설교에서도, "의도적"으로 뒷 부분에 적용 두가지를 넣었습니다. 제가 퓨전 설교의 구조 안에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좀 더 뒤쪽에 등장했지만, 일반적인 설교보다는 조금 더 빨리 적용을 등장시켰습니다.
적용은 "아직 늦지 않았다" 라는 것과 "세우는 자인가?" 두 가지입니다. "아직 늦지 않았다"라는 적용을 위해서 앞 부분에서는 바리새인의 무례함과 그들의 무정함을 강조했고, 후반부로 가서는 그 내용을 확장시켜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포기하지 않고 대화를 나누었다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세우는 자인가?"라는 적용을 위해서는, 앞 부분에서는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모욕하는 자들이며 그들은 사탄의 편에 속한 자들이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적용점을 끌어내면서 그것을 더욱 심화시켜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드리는 성도 쪽으로 논리를 이끌어 갔습니다.
* 설교자 자신이 느끼는 "장점"
"속도와 구조"라는 점에서 신경을 많이 썼고, 이번 설교에서는 그 부분을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일단 그 두가지 기준으로 놓고 보면, 먼저 "설교자인 제 자신"에게 참 좋았습니다. 설교를 하는 제 자신이 말을 급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천천히 논리를 음미하면서" 설교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돌이켜보니, 이미 제가 다 쓴 원고를 연습까지 많이 하고 설교했지만, 충분히 논리를 음미하면서 흐름을 누리면서 설교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워낙 소화해야 하는 양"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는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포즈와 속도를 조절"하면서 설교를 했기 때문에, 제 자신에게 먼저 은혜가 되었습니다.
속도를 줄인다는 것은, "내용이 줄어든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최대한 간결하게 원고를 작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간결하게 적기 위해서, 최대한 "실제로 말을 하는 것 처럼" 생각하면서 원고를 작성했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평소에 저의 주일 설교에서 1/5 정도의 분량을 줄여야했습니다. 더 넣고 싶은 내용이 많았는데 줄여야 하니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그런데 분량이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제 자신에게도 훨씬 좋았습니다. 일단 "절대 분량"이 줄어들어서 "체력적으로" 부담이 훨씬 덜했습니다. 그리고 세번의 설교였기 때문에, 세번을 다 합쳐서 전체적으로 보면 분량이 더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세번의 설교 후에 많이 지치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 분량이라면, 매주 세번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세번의 설교 모두를 "동일한 속도"로 한 것은 아닙니다. "의식적"으로 속도를 "모두 다르게" 조절했습니다. 1부는 장로님들과 목회자들이 주로 많았고, 가장 느렸습니다. 1부 이후에 동료 목회자들의 피드백을 받고 2부 예배 때에는 약간 속도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3부 예배 때에는, 젊은 분들이 가장 많기 때문에 2부 기준으로 조금 더 속도를 올렸습니다. 3부 설교의 중간 정도까지는 2부 정도로 느리게 했고, 후반부는 속도감을 조금 더 넣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여유있게 하면서 포즈들을 충분히 사용하였습니다.
* 성도님들의 "피드백"
생각해보면, 성도님들 중에 목회자에게 피드백을 하시는 분들은 잘했다고 하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관심이 있기 때문에 피드백을 주고, 또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은혜 받았다고 하신 분들이 여러분 있었습니다.
사실 한 사람의 "느낌"이라는 것은 매우 주관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느낀 것은, 확실히 성도님들이 더 집중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고개를 숙인 분들이 거의 없었고, 모두 집중하셔서 설교자인 저를 바라보시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주 기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가장 좋았던 점은, "제 설교가 너무 어렵고 따라가기가 힘들다고 했던 권사님"께서 많이 좋아하셨다는 것입니다. 성도님들의 행복이야 말로, 목회자의 가장 큰 기쁨입니다. 부탁하신 부분들을 제가 충분히 반영할 수 있어서 좋았고, 또 만족해 하셔서 저도 좋았습니다.
물론 "아마도" 별로 좋지 않았던 분들도 계셨습니다. 제 아내는 2부 예배를 드렸는데, 아내 앞자리에 계신 분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들으셨지만, 바로 뒷 자리에 계신 분은 하품을 계속 하셨다고 하시더군요. 역시나 설교는 정말 쉽지 않은 듯 합니다.
* "더 좋은 설교"를 갈망하며
설교는 하면 할수록 쉽지가 않고, 또 하면 할수록 그만큼 기쁨이 큰 듯 합니다. 설교는 영적인 일이기 때문에, 단순히 "글쓰기와 논리 그리고 전달에 관한 고민"만으로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민들은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설교야 말로 "영원의 무게와 영광"을 담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설교자의 가족"과 같은 성도님들의 행복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더 좋은 설교"를 갈망하며, 한걸음 씩 더 전진하고 싶습니다. 그것이야 말로, 목회자의 "가장 큰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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