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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23일 일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81) - 어둔 밤 다 물리쳐내고



1. 가사 살펴보기

우리 함께 어둔 밤 다 물리쳐내고
우리 주님 오실 아침을 같이 맞이합시다
길이 참고 견딘 삶 주가 기억하시리
그가 보이실 영광 중에 우리 나타나리라 

주께 영광 영광
모든 찬양받기 합당하신 이
주께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리
그의 부르심 따라 우리 함께
주를 노래합시다 

어둔 밤 지나고 동튼다
환한 빛 보아라 저 빛
주 예수의 나라 이 땅에
곧 오겠네 오겠네

 

2. 곡 소개

이 곡은위러브 찬양팀의 주요 멤버들이 만든 찬양 단체인 위클레시아의 곡이다이 곡은세상이 마치 어두운 밤 같지만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믿음으로 견디겠다는 신앙의 결단을 담은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요한계시록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2 I saw the Holy City, the new Jerusalem, coming down out of heaven from God, prepared as a bride beautifully dressed for her husband.

새 예루살렘은 이미 하늘에 존재합니다그것은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모든 신실한 백성이 기다려온 하나님의 도시로 곧 이 땅에 올 것입니다이 도시는 하나님께서 설계하셨고 만드신 도시입니다하나님은 그의 백성과 영원히 함께 하실 것입니다

J. Wesley Adams/Donald C. Stamps, Fire Bible (Springfield, MO: Life Publishers International, 2011),  21:2.

요한계시록 22: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22:5 There will be no more night. They will not need the light of a lamp or the light of the sun, for the Lord God will give them light. And they will reign for ever and ever.

밤은 사라졌기 때문에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의 빛을 누릴 것입니다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인하여 신자들은 제사장으로써 예배를 하고그리고 왕들로써 새 땅에서 영원토록 다스릴 것입니다

J. I. Packer, Wayne Grudem/Ajith Fernando, 편집자ESV Global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2012), 1854.

어떤 등불이라도 예수님께서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선포하신 것을 이루지 못합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22:5.

야고보서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1:12 Blessed is the one who perseveres under trial because, having stood the test, that person will receive the crown of life that the Lord has promised to those who love him.

진정한 행복한 삶즉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삶은 고통 없는 삶이 아니라 시련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신실함과 인내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여기 망가진 세상의 어두운 골짜기를 통과하는 우리를 격려하시기 위하여 그의 백성들에게 큰 약속을 주셨습니다그러한 약속 중 하나는 생명의 면류관 (또는 승리자의 면류관으로써 생명입니다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그분 앞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우리에게 면류관을 씌우실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Robert L. Plummer, “James”, in The NIV Grace and Truth Study Bible, ed. R. Albert Mohler Jr. (Grand Rapids, MI: Zondervan, 2021), 1725.

베드로전서 4: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4:13 But rejoice inasmuch as you participate in the sufferings of Christ, so that you may be overjoyed when his glory is revealed.

고난은 성도에게 당연한 것이며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기뻐하도록 부르시는 거시며그러한 기쁨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경험하게 될 기쁨의 전주곡입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412.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이 땅에서 성도의 삶과 그 감격을 탁월하게 드러낸 찬양이다우리는 어두운 세상 속을 살아가면서수 많은 고난을 당할 수 밖에 없다참되게 신앙 생활을 하려는 성도일 수록 더 큰 어려움에 부딪힐 것이다그러나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주님께서 우리의 신실함을 기억하시고 넘치게 갚아 주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성도는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며 마지막 날에 넘치는 기쁨과 감격 가운데 주님을 뵙게 될 것이다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주님 품 안에서 영광을 누릴 것이다

그러므로 이 찬양을 부르면서 크게 감격하게 된다왜냐하면 우리 앞에 놓여진 영원한 그리고 압도적인 기쁨을 미리 맛보게 하기 때문이다특별히 이 찬양이 마지막에 연결한 찬송가 516장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의 가사가 깊은 감동을 준다영원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전진하는그리고 곧 온전히 임할 그 하나님의 나라로 힘차게 나아가는 우리임을 깨닫게 하고 새로운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간절히 바라기는 이 아름다운 찬양 가운데이 시대의 어둠을 이겨낼 힘과 용기그리고 영원한 소망을 충만하게 누리시기를 기도한다.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3년 8월 7일 월요일

제자 훈련, 기독교의 생존 방식 3장, 느낀 점

 

* 느낀 점

김형국 목사님의 학문적인 수준은 이미 세계적인 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3장에서 구약의 처음부터 신약까지 연결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개념은, 매우 섬세하면서도 탁월하다. 

그분의 설명처럼 "천국"이라는 번역은 매우 아쉬운 부분이며 나 역시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 사실상 예수님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나라"에 다 들어 있다. 나라라는 개념 자체가 다스림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라는 단어만 집중해도 사실상 기독교의 중요한 진리를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천국"이라는 표현은 너무나 많은 것을 상실하게 만든다. 막연한 혹은 멀리 떨어져 있는, 나와 상관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전혀 상관이 없는 그런 희미하고 추상적인 것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변질시켰다. 

김형국 목사님의 글을 처음 접할 때에는, 마치 하나님 나라 복음과 십자가 복음을 대립적으로 설명하는 것처럼 이해하였다. 그러나 이번 3장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나라 라는 주제 "위에" 십자가의 복음이 있다 라는 설명이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목적이고, 그것을 이루시고자 하는 가장 결정적인 방법이 십자가이다. 이 두가지 중 어떤 것도 희생하지 않고 녹여낸 탁월한 설명이다. 

신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설명도 좋았지만, 사실 창세기로 부터 등장하는 왕이신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더 좋았다. 나 역시 설교 가운데 창세기를 자주 인용한다. 보통의 접근처럼 아무런 배경 설명도 없이 막연하게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라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오직 왕이신 하나님의 창조와 그것과 선명하게 대조되는 인간의 패역과 반역을 설명하는 것을 통해서, 결국 예수님께서 회복시키시는 분명한 목적,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그분의 나라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어떤 대가라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설명이 좋았다. 그리고 이것은 상식이며 헌신이 아니라는 표현이 좋았다. 혹시라도 가능하다면, "이것이야 말로 가장 탁월한 지혜"라고 덧붙이고 싶다.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들어가는 것, 그분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야 말로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다. 요즘의 표현으로 치면 "가치 투자"이다. 

사실 기독교 세계관이 추구하는 목표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추구하는 목표는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것이며, 그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 바로 기독교 세계관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에게 하나님의 나라 복음은 전혀 낯설지 않다.

결국 김형국 목사님이 추구하는 것은, "성경적인 복음" 이다. 본인의 설명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리면 그저 개인주의 영성에 치우칠 뿐이다.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없는 사회 참여만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번 3장에서는, 성경이 진정으로 강조하는 핵심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리고 복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풍성한 것이며 우리의 삶 전체를 아우르는 것임을 생각하였다. 목회적으로는 모든 설교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분에 대한 사랑의 강조", 또한 "그것과 더불어 그분의 다스림을 받는" 이 두가지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예를 들어서 박영선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책임이 아주 공교하게 엮어들어가 있는 것을 발견한다. 어쩌면 마치 모순되어 보이는 두가지가 함께 있는 것처럼 보여서 한동안 곤란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그리스도의 한 없는 은혜와 그 은혜 가운데 그분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그 책임은 반드시 동시에 존재해야 하며, 평생의 우리의 삶의 목표로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을 이번 챕터를 통해서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 "내가 생각하는 하나복", 그리고 미래 목회 - 하나복 관련 글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8/blog-post.html

제자 훈련,기독교의 생존 방식 1장, 느낀 점

 

* 느낀 점

김형국 목사님의 강의와 책을 읽어보면, 한가지 논지로 계속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이 매우 탁월하다. 그분의 주장은 이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에", 한국 교회는 현재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1장은, 예수 생명의 밥이라는 제목처럼, 진정한 생명의 근원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잃어버린 한국 교회의 현실에 대하여 탄식한다. 그리고 생명의 밥인 예수님을 회복하기 위해서, 살리는 밥, 살아가게 하는 밥, 살아 있는 밥이라는 세가지 개념을 제시한다. 

첫째 살리는 밥이라는 개념은, 예수님은 매일 그분을 의지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둘째, 살아가게 하는 밥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에 중심이 있었으므로, 복음을 받아들여서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게 되면,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가 살아가게 하는 밥이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살아 있는 밥이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지금도 당신의 백성과 함께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다 라는 것이다.  

보통의 기독교는 살리는 밥이라는 개념 정도만을 다루지만, 김형국 목사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예수님의 진정한 뜻임을 성경적으로 탁월하게 설득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성도와 함께 하심을 강조하면서 그분의 뜻을 힘써 따라 갈 것을 권면한다. 

현재의 한국 교회의 문제점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축소한 것에서 찾고, 그것을 다시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이라는 맥락에서 대안으로 찾아낸 것은 참으로 탁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형국 목사님의 접근은 매우 지적인 접근이다. 현재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구원의 역사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잘 모르는 것"에 달려 있다고 설명한다. 

과연 그러한가? 하나님을 주인으로 제대로 모시지 못하고 그저 여전히 자기 중심적으로 세속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복음의 총체성을 "알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에 불과한 것인가? 여전히 이 부분은 좀 더 심도 있는 고민과 성찰을 필요로 한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 인간이 끊임없이 그 사실을 거절하기 때문은 아닌가? 그렇다면, 자신의 지식으로 그치고 있는 신앙인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1장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은 부분은, 기독교는 위대한 설교자나 사상가, 혹은 교단이나 신학교 때문에 오늘까지 건재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 부분이다. 이 부분을 참으로 공감했다. 특히 한국의 신앙 엘리트주의는, 마치 기독교 전체가 많이 공부한 교수나 박사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당신은 가르치고 일하는 사람이고, 나는 그저 듣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는 성도님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김형국 목사님의 설명대로 실제로 기독교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삶을 보여주고, 그 삶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전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고 오직 그분이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신다. 그런 면에서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생명의 밥이 되신다라는 제목이 참으로 적절하고, 그 강조가 매우 마음에 와 닿았다. 예수 그리스도가 전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신앙이 모든 성도에게 주어진 그들 자신의 본질임을 깨우쳐 준다. 

* "내가 생각하는 하나복", 그리고 미래 목회 - 하나복 관련 글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8/blog-post.html

2023년 3월 11일 토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23) - 샬롬

 


1. 가사 살펴보기

샬롬 샬롬 샬롬 샬롬 샬롬 샬롬
내니 두려워말아라
나의 아들 나의 딸아 안심하라

샬롬 샬롬 샬롬 샬롬 샬롬 샬롬
나의 평안을 주노라 세상과는 다른 평안
두려워 마라 샬롬

샬롬 샬롬 샬롬 샬롬 샬롬 샬롬
내니 두려워말아라
나의 사랑 나의 이스라엘
안심하라

샬롬 샬롬 샬롬 샬롬 샬롬 샬롬
평강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날 보냄 같이
나도 널 보내노라 샬롬

 

2. 곡 소개

곡은, 찬양 사역자 김도현님의 “Shalom”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평화이시며 평화를 우리에게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보여주는 찬양이다. 예수님은 근심과 걱정 그리고 염려 가운데 살고 있는 주님의 자녀들에게 지금 찾아오시며, 그분의 평안으로 위로하시고, 채우시며, 세상으로 보내시는 분이심을 묘사하는 아름다운 찬양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평화(平和, peace) 성경에서평화 단순히 근심이나 고통이 없는 평온하고 화목한 상태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이라는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와 더불어 존재의 운명과 결부된 종말론적인 문제까지도 포함하는 포괄적이고 매우 적극적인 의미의 단어다. 평화는 하나님과의 화해를 근거로 하고 화해는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자적 사역에 의해서 이뤄진다( 2:15–16). ‘평안’, ‘평강’, ‘화평등으로도 표기된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솰롬’(שָׁלוֹם)이며, 헬라어는에이레네’(εἰρήνη)인데, 단어 모두 평온한 상태, 안전함(안녕), 조화와 일치, 교제, 만족한 상태 등의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

가스펠서브, 라이프 성경사전 (서울시 종로구 경희궁1 5-9(03176): 생명의말씀사, 2006), 1005.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14:27 Peace I leave with you; my peace I give you. I do not give to you as the world gives. Do not let your hearts be troubled and do not be afraid.

14:27 Peace: The customary good-bye among the Jews  was to say shalom, meaning “peace.” The Lord was about to depart, so He added to this farewell by saying, My peace. The word My is emphatic. This is no conventional wish; this is Jesus’ personal, special grant of peace. The peace that Christ gives banishes fear and dread from the heart, for Jesus is in control of all circumstances. 유대인들의 관습에서 헤어지는 인사는 평화 의미하는 샬롬 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떠나시려 하셨기 때문에 작별 인사를 말씀하시면서 나의 평화라고 덧붙이셨습니다. 여기서 나의라는 것은 강조입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바램이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개인적으로 특별히 허락하신 평화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화는 마음에서 두려움과 공포를 몰아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14:27.

요한복음 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19 On the evening of that first day of the week, when the disciples were together, with the doors locked for fear of the Jews, Jesus came and stood among them and said, "Peace be with you!" 20: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0:20 After he said this, he showed them his hands and side. The disciples were overjoyed when they saw the Lord. 20: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0:21 Again Jesus said, "Peace be with you! As the Father has sent me, I am sending you."

20:19 FEARED THE JEWS. In spite of Jesus’s words in 14:27, the disciples were afraid that the authorities, who had been successful in having Jesus killed, might now turn on them. JESUS CAME. Nothing is said about how Jesus came to be among them, but the implication of the locked doors appears to be that Jesus simply appeared with them (v. 26; Lk 24:31). PEACE BE WITH YOU. This is repeated in v. 21 and in the appearance a week later in v. 26. The promise of peace was given in 14:27 and 16:33. It sums up the blessings and fullness of the new covenant that Jesus has made between the Father and his people (14:27). 요한복음 14 27절에서, 나의 평안을 준다는 예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는데 성공한 권력자들이 이제 그들을 핍박할까 두려워했습니다.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 이것은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에 맺으신 언약의 축복과 충만함을 요약하는 것입니다.

Lyman Coleman, ed., Life Connectio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s, 2019), 1746.

로마서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개역개정) 5:1 Therefore, since we have been justified through faith, we have peace with God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NIV)

5:1 PEACE. What is in view is not some sort of inner experience of harmony but rather the objective fact of a new relationship with God. The root image is of war. Those who were in rebellion against God, their rightful King, are now reconciled to him through Christ; the enmity is over. This is the basis for the Christian’s access to God’s grace and hope for the future. Peace in the Bible is a comprehensive term describing the total blessing of salvation.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화평이라는 것은, 일종의 내면의 조화와 같은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이미지는 전쟁에 있습니다. 정당한 왕이신 하나님께 반역을 저질렀던 사람들은, 이제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그분과의 평화를 회복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은혜와 미래에 대한 희망에 다가갈 있는 기초가 됩니다. 성경 안에서 평화라는 것은, 구원의 완전한 축복을 묘사하는 포괄적인 용어입니다.

Lyman Coleman, ed., Life Connectio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s, 2019), 1813.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샬롬이라는 반복되는 가사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평안을 우리에게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다가올 죽음과, 그분의 죽음 이후에 권세자들의 핍박 앞에서 두려워 떨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나의 평강을 준다라고 약속하신다.

모든 죄인은 하나님을 대적함으로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고, 그분의 진노를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통하여, 그분을 믿는 주님의 자녀로서 가장 완전한 평강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주시는 평강이라는 것은, 단순히 내면의 위로 정도가 아니며, 그것은 가장 완전하고 충만한 것이다. 우리를 정서적으로 위로하는 것일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 우리의 존재 자체를 보장하고 지켜주는 평강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평강을 자신의 자녀들에게 주시며, 내가 너희를 지킬 것이라 약속하신다. 하나님과의 완전한 평강을 누리는 자들은, 그분의 돌보심과 인도하심을 믿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우리가, 그 평강을 가지고 세상 속으로 주님을 전하러 나가는 것이다. 이 찬양을 부를 때 마다 완전한 주님의 평강을 누리고, 또 그것을 세상 가운데 풍성하게 전하는 모든 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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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8일 수요일

듣는 자 (The Listener) / 마태복음 17장 1-13절 주일 설교

 

* 마태복음 17장 1-13절 설교 

저는 모태 신앙으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헤아릴 없을 만큼 많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 저에게 있어서 예배에 대한 태도가 변화되는 결정적 계기가 있었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저의 교회에서 번째로 예배를 드리는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예배는 무엇인가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교회 자체는 2 동안 별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같은 목사님과 같은 성도님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은 특별한 집회가 있는 날도 아니었고 평범한 주일의 11 예배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만큼은 예배가 굉장히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뭔가 저의 영혼을 압도하는 어떤 것이 있었습니다. 뭔가 저의 영혼을 감싸는 어떤 영적인 힘을 느낄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의자에 앉아 있는 저의 무릎이 모아지면서 겸손하게 되는 그런 영적인 경외감이 있었습니다. 그런 특별한 영적인 체험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후로 예배를 대하는 저의 태도가 완전히 변화가 되었습니다. 모든 예배는 너무나 소중한 것이고 특별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라는 확신을 가질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예수님의 명의 제자의 삶에 있어서 가장 특별한 영적인 체험에 대한 기록입니다. 오늘 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7: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열두 제자 중에서도 예수님과 각별한 관계 속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느날 이들에게 어디론가 가자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 말씀에서 "데리시고" 라는 부분은 헬라어 문법으로 현재 형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데 지금 예수님이 그들을 이끌고 가시는 생생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위해서 제자들을 산으로 이끌고 가시는 것일까? 제자들은 너무나 궁금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무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산을 한참을 올라갔어 그리고 그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제 안정을 취하려고 때에 그들의 평생에 한번도 본적이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2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7: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얼굴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익숙하게 알고 있던 예수님의 모습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이 태양과 같았고 그분의 옷이 빛나는 하얀 색으로 변하였습니다. 제자들은 감히 예수님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분의 몸에서 놀라운 광채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3절에 보면 " 때에" 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헬라어 로는 감탄사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보라"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3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해처럼 밝게 빛나시는 바로 자리에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이 나타났습니다. 모세는 거의 BC 1500 경의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낸 민족의 지도자이고 십계명을 포함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은 사람입니다.

엘리야는 누구인가? 그는 BC 860 경의 사람입니다. 그는 북이스라엘 왕국이 하나님을 떠나 극도로 타락했을 때에 우상의 선지자들과 정면으로 대결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는 왕조차도 두려워하지 않고 말씀으로 꾸짖었던 구약의 대표적인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지금 제자들의 앞에서 일어난 일은 시공간을 완전히 초월하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놀라운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놀라운 광경 앞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4 말씀입니다.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무엇인가?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라는 부분입니다.

한번 베드로와 제자들의 입장이 되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그들의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이 느껴졌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신앙의 인물이 나타났다니 바로 자리보다 행복한 자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예수님과 모세 그리고 엘리야가 함께 자리에 계속 있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초막 셋을 짓겠습니다 그리고 저희도 함께 여기에 머무르겠습니다 라는 의미로 이야기를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베드로가 말하던 바로 때에 다른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5 말씀에서 "홀연히" 라는 것도 앞에서와 동일하게 "보라"라는 감탄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5 말씀에 보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구름이라는 것은 구약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상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인도했던 것도 하나님이 보내신 구름 기둥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구름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부 하나님께서 직접 임재하시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5 말씀에 보니이는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이는" 이라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위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위대한 모세와 엘리야가 있고 예수님이 가장 아끼시는 세명의 제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중에서 예수님만 특별히 지칭하시면서 예수님이야 말로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무나 기뻐하는 사람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제 산에서 내려올 시간이 되었습니다. 9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도대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일까

그것은 당시 사람들의 마음에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기적을 일으키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로마 제국을 뒤엎을 정치적인 영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놀랍게 변화되신 예수님의 모습을 사람들이 듣게 된다면, 예수님에 대한 오해가 커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대화를 주고 받을 때에 제자들이 이렇게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10 말씀입니다. “10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라고 여쭤보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산에서 엘리야를 보았기 때문에 말라기 4 5절을 떠올린 같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에 예언된 엘리야와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해서, 세례 요한이 이미 왔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엘리야가 어려운 시대에 담대하게 사역했던 것처럼 세례 요한도 담대하게 사역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멀어진 그분의 백성에게 경고하며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결국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12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땅에 오신 예수님조차 핍박과 고난을 받으실 것을 말씀하시며 오늘 말씀이 마무리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첫번째 적용은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라" 입니다.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오늘 말씀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특별한 영적인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경험 속에서 뭔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간 예수님께서는 원래 자신이 가지신 영광의 일부분을 그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이시지만, 동시에  모든 능력과 권세와 그분의 본질이 성부 하나님과 하나이시며 동등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예수님 역시 절대자이시며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자신의 영광을 조금 드러내시자 그분 자신이 찬란하게 빛을 뿜어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러한 예수님의 영광을 제자들의 반응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은 어디에 감탄했는가?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것에 감탄을 것입니다. 이들은 초막을 셋을 짓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조상이자 신앙의 위대한 영웅들에게 감탄하면서 예수님과 그들을 동급으로 놓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인간의 연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에는 사람의 위대함이 보일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누구는 어떤 위대한 사역을 했다고 하더라 어디에서는 사람을 통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고 하더라 이렇게 말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의 위대한 인물들을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처럼 오늘 말씀과 동일한 음성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십자가의 고난을 앞에 두고 동일한 음성이 들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은 한결 같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주인공은 누구이신가? 그분은 모세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 17절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율법과 선지자라는 것은 구약 성경 전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가 바로 구약 성경 전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의 모든 여정 자체가 구약의 말씀들을 이루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8 6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8:6 그러나 이제 그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약에서 모세는 하나님께 제사 제도를 받았습니다. 구약 시대는 용서를 받기 위해서 인간 제사장과 동물의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사람이 동물에게 자신의 죄를 넘기고 동물을 대신 죽임으로 용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물을 드리는 제사는 완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은 끊임없이 반복해서 동물을 죽여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한 가치를 가지신 자기 자신이 친히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분의 본질은 태양처럼 빛나고 완전하고 아름다우며 감히 인간이 측량할 없는 존귀한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참혹한 십자가에서 자기 자신을 온전한 제물로 성부 하나님께 드리심으로, 죄의 댓가를 요구하시는 의로우신 성부 하나님을 만족시키신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야를 비롯하여 많은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을 뿐이었습니다. 사실 구약의 이스라엘 전체 역사가 보여주는 것은 인간은 하나님 앞에 완전하게 순종할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모든 순종을 홀로 감당하셨습니다.

로마서 5 19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19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같이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 역사상 홀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모든 요구를 완벽하게 순종하신 것입니다예수님께서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완전히 의롭다고 하나님 앞에 인정 받은 유일한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의 전환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8절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떨며 엎드렸다가 다시 그들이 눈을 들어 보았을 때에는 오직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그토록 바라고 갈망하던 유일한 , 구약의 모든 인물들이 바라고 갈망하시던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분만이 그들 앞에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사건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것은, 예수님 이외에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쳐다보고 있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진정으로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지는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누구를 통하여 구원을 얻는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정말로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과연 어떻게 자리에 있을 있는 것인가? 죄인이 감히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되었는가? 그것은 오직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의 댓가를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말씀에 순종하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그분의 의를 입히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있게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가 우리의 마음을 힘들게 하고 나의 모든 잘못들이 마음을 짓누르고 괴롭게 때에 어떻게 감히 우리가 위로를 얻고 새로운 미래를 꿈꿀 있는가?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완전히 용서하시며 우리의 주인과 우리의 삶의 진정한 인도자가 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무엇을 확인하는 것인가? 우리가 바라고 갈망하고 마음에 원하고 사랑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분이시다 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 2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2:2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넷바이블이라는 영어 성경은 2 부분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Keeping our eyes fixed on Jesus” 다른 곳을 쳐다보지 말고 우리의 눈을 오직 예수님께 고정하라는 말씀입니다. 마치 제자들의 눈에 이상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 보이셨던 처럼 이제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의 눈은 오직 예수님만께만 고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경험하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모든 생각 그리고 모든 감각이 오직 예수님께만 집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 그분의 위대하심 그분이 사랑 그분의 은혜, 그것이 우리를 압도하여서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그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기는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독점적인 위대하심과 그분의 영원한 가치를 확인하고 발견하고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자로 변화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이 온전히 새로워져서 가장 존귀하신 예수님만 더욱 사랑하게 되는 복된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적용하면서 두번째 적용은 "오직 그분의 말씀을 들으라" 라는 것입니다. 혹시 성도님들께서는 누군가의 말을 경청하시는 편입니까? 저와 아내는 교회에서 만난 커플입니다. 저는 제가 스물네살 아내가 스무살때 처음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아내는 청년부 새내기였지만 저는 이미 청년부 안에서 최고 리더 중에 한명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차이가 차이도 아닌데 그때에는 저도 모르게 아내가 많이 어리다고 생각하면서 말을 별로 귀담아 듣지 않았던 같습니다.

아내가 피아노를 전공했기 때문에 어느날 좋은 음악회 표를 구해 왔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같이 가자고 말을 했습니다. 아내가 저에게 자세하게 이야기를 주었습니다. 굉장히 좋은 공연이다 그러니 옷은 세미 정장 이상은 입어야 한다 세종 문화 회관에 몇시까지 와라 좋은 자리에 좋은 표니까 준비해 와라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저는 마음이 너무 교만한 상태라서 아내의 이야기가 들리지가 않았습니다. 분명히 세미 정장을 입고 오라고 했지만 답답한 정장 스타일의 옷을 입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유행하던 제가 제일 좋아하던 짙은 파란색 잠바와 청바지를 입었습니다 

그렇게 입고 집에서 출발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한참을 가서 역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문을 열고 세종 문화회관 안으로 들어갔는데 순간 당황을 했습니다. 제가 한눈에 봐도 파란색 계열의 옷을 입은 사람은 한명도 없었습니다. 아내가 말한 처럼 대부분 세미 정장 혹은 정장 차림이었습니다. 애써 당황한 마음을 감추면서 아내 손을 잡고 함께 자리를 찾아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내가 저를 끌고 가는데 넓은 에서 자꾸 앞쪽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까 저의 자리가 앞에서 거의 두번째 중앙 자리였습니다. 아내가 우리 둘을 위해서 특별히 준비한 자리였던 것입니다. 분명히 저에게 좌석에 대한 이야기도 했었겠지만 교만한 저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너무 부끄러운 마음에 어쩔줄 몰라하며 의자에 최대한 몸을 파묻고서는 연주회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세계적인 지휘자인 정명훈씨가 무대 왼쪽에서부터 등장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필 들어오면서 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아마도 파란색 잠바가 눈에 띄었던 같습니다

정명훈 씨가 걸어들어오면서 저와 눈이 마주친 것은 대략 5 정도의 시간이었는데 인생의 가장 길고 민망하고 고통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벌써 20년이 되어서 오래전 일이지만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식은땀이 나는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님들께서는 오늘의 말씀에서 하이라이트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5절의 마지막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실 모든 영어 성경들은 listen to him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원문에 가까운 번역이라고 말할 있겠습니다. 단순히 사람으로 부터 나온 말만 듣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존재 자체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아내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렇게 부끄러운 일을 당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단순히 말을 듣지 않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존재 자체를 충분히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성도로서 목회자로서 교회를 때에 염려하는 것이 있는데,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의 특별함을 우리가 종종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기독교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 단순히 성경에 있는 자체를 지키는 , 다시 말해서 마치 좋은 책을 읽고 책에 쓰여 있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정도로 생각하는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기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예수님과 우리의 특별한 관계를 말씀하시고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에 제가 새롭게 깨달은 것은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라는 것과 9절의 말씀이 중요한 연결이 있다는 것입니다. 9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가? 그것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라는 것을 전체적으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예수님의 일하심을 온전히 이해할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이해할 없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2 2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말씀은 평범한 말씀이 아닙니다. 단순히 물리적인 관점에서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원래 우리 인간 개개인은 분리된 존재입니다. 다른 사람과 나와의 존재는 물리적으로는 하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바울 사도는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의 하나됨에 대해서 영적인 연합에 대해서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렇게 중요한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됨의 특징이 무엇인가? 그것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안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나와 영적으로 연합하여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존재가 나와 떨어질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그저 우리와 손을 잡고 걸어가는 정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그저 우리의 등을 만져주시는 정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며 지금 우리와 하나가 되시며 우리를 품으시며 안으시며 우리는 그분 안에 있으며 세상에 누구도 감히 이루지 못한 가장 내밀한 관계를 지금 우리에게 만들어내셨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파리의 연인"이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너무나 유명해진 대사가 있습니다. “ 안에 있다 속에 너가 있다 라는 대사입니다. 사랑의 극치를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대사의 깊이를 수가 있습니다. 인간의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본성 그분의 형상에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히 인간이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 누군가에게 당신이 안에 있다 라고 말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이야 말로 성경적인 대사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꿈꾸는 가장 아름다운 관계를 우리와 만드시고 그러므로 이제는 관계 안에서 너희는 나의 말을 들으라 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저는 이번에 말씀을 묵상하면서, 성경을 통틀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있는 예레미야 31 33절이 새롭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말씀은 이제 신약의 시대가 열리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렇게 변할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선포하시며 예언하시는 장면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1:33 그러나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백성이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라고 말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 안에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인격으로 땅에 오셨음을 말씀하십니다. 진리이시며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제는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영원히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놀라운 신비이며 감격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참으로 흥미로운 것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오늘 본문 앞에 있는 마태복음 16 24절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서제자라는 호칭이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마태는 계속해서그들이이라는 표현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 다시 제자라는 말이 등장하는가? 오늘 5절에 말씀에이는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그리고 나서 6절에 드디어 다시 제자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누가 예수님의 참된 제자들인가? 누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자들인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안에 계시며 그분과 하나된 사람들, 존귀하신 그분의 말씀을 기울여 듣는 사람들, 예수님으로 인해 마음이 변화되어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 바로 사람들이야 말로 예수님의 참된 제자들이다 라고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한번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님들께서는 자신이 영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무엇을 통해서 확신하고 계십니까? 저는 청년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저의 삶을 돌이켜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무겁게 느껴지는 " 바로 그것이 저에게 있어서 가장 변화인 같습니다.

어렸을 부터 들었던 말씀이지만 말씀이 가지는 무게감이라는 것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말이 아니라 절대자인 신의 음성입니다. 다시 말해서 영원하며 존귀하며 결코 쇠하지 않는 무게와 영광을 지닌 것입니다. 말씀이 너무나 무거워서 너무나 소중해서 너무나 진중해서 그것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고 나의 생활을 사로잡고 나의 마음을 회개시키고 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린 저의 예배의 특별한 경험이라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말씀의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무게를 놀랍게 새롭게 경험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의 모든 초점을 예수님께 맞춘 사람, 예수님을 깊이 사랑하는 자만이 그분의 말씀의 무게와 영광을 경험할 있게 되는 것입니다 

보석과 같이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며 나의 전부가 되시며 나를 품으시며 안으시는 바로 그분의 안의 임재와 역사를 경험하며 갈망할 때에 그제서야 참된 제자인 우리가 이렇게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겠습니다, 우리가 주의 음성을 듣는 자가 되겠습니다, 주의 말씀이 마음에 새겨진 자로 살아가겠습니다 라고 고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친히 이끌고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영광을 보이셨고 제자들이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도록 하셨습니다. 성도의 구원도 그리고 삶의 여정을 걸어가는 모든 힘과 능력과 이유도 우리의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신 놀라운 일들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의 영적인 임재와 능력을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눈이 오직 그분께만 집중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시며 더욱 가까이 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참된 제자로서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의 말씀이 우리에게 너무나 사랑스러워지고 진중하고 무거워지는 영적인 깊이와 경지를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주님의 음성을 내가 기꺼이 듣겠나이다 라고 고백하는 깊은 영적인 고백으로 평생을 걸어가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시간에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기 원합니다나의 구원이시며 나의 의로움이시며 능력이시며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갈망하며 주님을 갈망하며 주님을 의지하는 복된 성도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둘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오직 주의 말씀을 듣기를 원합니다 안에 살아계신 주님의 존귀한 말씀이 저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되기 원합니다, 영원한 주의 말씀이 저에게 있어 가장 무거운 것이 되며 저의 삶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것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주의 자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문전체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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