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함께 어둔 밤 다 물리쳐내고 우리 주님 오실 아침을 같이 맞이합시다 길이 참고 견딘 삶 주가 기억하시리 그가 보이실 영광 중에 우리 나타나리라
주께 영광 영광 모든 찬양받기 합당하신 이 주께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리 그의 부르심 따라 우리 함께 주를 노래합시다
어둔 밤 지나고 동튼다 환한 빛 보아라 저 빛 주 예수의 나라 이 땅에 곧 오겠네 오겠네
2. 곡 소개
이 곡은, 위러브 찬양팀의 주요 멤버들이 만든 찬양 단체인 위클레시아의 곡이다. 이 곡은, 세상이 마치 어두운 밤 같지만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믿음으로 견디겠다는 신앙의 결단을 담은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요한계시록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2 I saw the Holy City, the new Jerusalem, coming down out of heaven from God, prepared as a bride beautifully dressed for her husband.
새 예루살렘은 이미 하늘에 존재합니다. 그것은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모든 신실한 백성이 기다려온 하나님의 도시로 곧 이 땅에 올 것입니다. 이 도시는 하나님께서 설계하셨고 만드신 도시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과 영원히 함께 하실 것입니다.
J. Wesley Adams와/과Donald C. Stamps, Fire Bible (Springfield, MO: Life Publishers International, 2011), 계 21:2.
요한계시록 22: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22:5 There will be no more night. They will not need the light of a lamp or the light of the sun, for the Lord God will give them light. And they will reign for ever and ever.
밤은 사라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의 빛을 누릴 것입니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인하여 신자들은 제사장으로써 예배를 하고, 그리고 왕들로써 새 땅에서 영원토록 다스릴 것입니다.
J. I. Packer, Wayne Grudem와/과Ajith Fernando, 편집자, ESV Global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2012), 1854.
야고보서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1:12 Blessed is the one who perseveres under trial because, having stood the test, that person will receive the crown of life that the Lord has promised to those who love him.
진정한 행복한 삶, 즉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삶은 고통 없는 삶이 아니라 시련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신실함과 인내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 망가진 세상의 어두운 골짜기를 통과하는 우리를 격려하시기 위하여 그의 백성들에게 큰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러한 약속 중 하나는 생명의 면류관 (또는 승리자의 면류관으로써 생명) 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그분 앞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우리에게 면류관을 씌우실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Robert L. Plummer, “James”, in The NIV Grace and Truth Study Bible, ed. R. Albert Mohler Jr. (Grand Rapids, MI: Zondervan, 2021), 1725.
베드로전서 4: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4:13 But rejoice inasmuch as you participate in the sufferings of Christ, so that you may be overjoyed when his glory is revealed.
고난은 성도에게 당연한 것이며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기뻐하도록 부르시는 거시며, 그러한 기쁨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경험하게 될 기쁨의 전주곡입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412.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이 땅에서 성도의 삶과 그 감격을 탁월하게 드러낸 찬양이다. 우리는 어두운 세상 속을 살아가면서, 수 많은 고난을 당할 수 밖에 없다. 참되게 신앙 생활을 하려는 성도일 수록 더 큰 어려움에 부딪힐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의 신실함을 기억하시고 넘치게 갚아 주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성도는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며 마지막 날에 넘치는 기쁨과 감격 가운데 주님을 뵙게 될 것이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주님 품 안에서 영광을 누릴 것이다.
그러므로 이 찬양을 부르면서 크게 감격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 앞에 놓여진 영원한 그리고 압도적인 기쁨을 미리 맛보게 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이 찬양이 마지막에 연결한 찬송가 516장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의 가사가 깊은 감동을 준다. 영원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전진하는, 그리고 곧 온전히 임할 그 하나님의 나라로 힘차게 나아가는 우리임을 깨닫게 하고 새로운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간절히 바라기는 이 아름다운 찬양 가운데, 이 시대의 어둠을 이겨낼 힘과 용기, 그리고 영원한 소망을 충만하게 누리시기를 기도한다.
김형국 목사님의 학문적인 수준은 이미 세계적인 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3장에서 구약의 처음부터 신약까지 연결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개념은, 매우 섬세하면서도 탁월하다.
그분의 설명처럼 "천국"이라는 번역은 매우 아쉬운 부분이며 나 역시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 사실상 예수님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나라"에 다 들어 있다. 나라라는 개념 자체가 다스림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라는 단어만 집중해도 사실상 기독교의 중요한 진리를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천국"이라는 표현은 너무나 많은 것을 상실하게 만든다. 막연한 혹은 멀리 떨어져 있는, 나와 상관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전혀 상관이 없는 그런 희미하고 추상적인 것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변질시켰다.
김형국 목사님의 글을 처음 접할 때에는, 마치 하나님 나라 복음과 십자가 복음을 대립적으로 설명하는 것처럼 이해하였다. 그러나 이번 3장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나라 라는 주제 "위에" 십자가의 복음이 있다 라는 설명이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목적이고, 그것을 이루시고자 하는 가장 결정적인 방법이 십자가이다. 이 두가지 중 어떤 것도 희생하지 않고 녹여낸 탁월한 설명이다.
신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설명도 좋았지만, 사실 창세기로 부터 등장하는 왕이신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더 좋았다. 나 역시 설교 가운데 창세기를 자주 인용한다. 보통의 접근처럼 아무런 배경 설명도 없이 막연하게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라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오직 왕이신 하나님의 창조와 그것과 선명하게 대조되는 인간의 패역과 반역을 설명하는 것을 통해서, 결국 예수님께서 회복시키시는 분명한 목적,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그분의 나라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어떤 대가라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설명이 좋았다. 그리고 이것은 상식이며 헌신이 아니라는 표현이 좋았다. 혹시라도 가능하다면, "이것이야 말로 가장 탁월한 지혜"라고 덧붙이고 싶다.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들어가는 것, 그분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야 말로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다. 요즘의 표현으로 치면 "가치 투자"이다.
사실 기독교 세계관이 추구하는 목표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추구하는 목표는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것이며, 그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 바로 기독교 세계관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에게 하나님의 나라 복음은 전혀 낯설지 않다.
결국 김형국 목사님이 추구하는 것은, "성경적인 복음" 이다. 본인의 설명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리면 그저 개인주의 영성에 치우칠 뿐이다.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없는 사회 참여만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번 3장에서는, 성경이 진정으로 강조하는 핵심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리고 복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풍성한 것이며 우리의 삶 전체를 아우르는 것임을 생각하였다. 목회적으로는 모든 설교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분에 대한 사랑의 강조", 또한 "그것과 더불어 그분의 다스림을 받는" 이 두가지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예를 들어서 박영선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책임이 아주 공교하게 엮어들어가 있는 것을 발견한다. 어쩌면 마치 모순되어 보이는 두가지가 함께 있는 것처럼 보여서 한동안 곤란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그리스도의 한 없는 은혜와 그 은혜 가운데 그분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그 책임은 반드시 동시에 존재해야 하며, 평생의 우리의 삶의 목표로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을 이번 챕터를 통해서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김형국 목사님의 강의와 책을 읽어보면, 한가지 논지로 계속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이 매우 탁월하다. 그분의 주장은 이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에", 한국 교회는 현재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1장은, 예수 생명의 밥이라는 제목처럼, 진정한 생명의 근원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잃어버린 한국 교회의 현실에 대하여 탄식한다. 그리고 생명의 밥인 예수님을 회복하기 위해서, 살리는 밥, 살아가게 하는 밥, 살아 있는 밥이라는 세가지 개념을 제시한다.
첫째 살리는 밥이라는 개념은, 예수님은 매일 그분을 의지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둘째, 살아가게 하는 밥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에 중심이 있었으므로, 복음을 받아들여서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게 되면,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가 살아가게 하는 밥이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살아 있는 밥이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지금도 당신의 백성과 함께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다 라는 것이다.
보통의 기독교는 살리는 밥이라는 개념 정도만을 다루지만, 김형국 목사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예수님의 진정한 뜻임을 성경적으로 탁월하게 설득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성도와 함께 하심을 강조하면서 그분의 뜻을 힘써 따라 갈 것을 권면한다.
현재의 한국 교회의 문제점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축소한 것에서 찾고, 그것을 다시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이라는 맥락에서 대안으로 찾아낸 것은 참으로 탁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형국 목사님의 접근은 매우 지적인 접근이다. 현재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구원의 역사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잘 모르는 것"에 달려 있다고 설명한다.
과연 그러한가? 하나님을 주인으로 제대로 모시지 못하고 그저 여전히 자기 중심적으로 세속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복음의 총체성을 "알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에 불과한 것인가? 여전히 이 부분은 좀 더 심도 있는 고민과 성찰을 필요로 한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 인간이 끊임없이 그 사실을 거절하기 때문은 아닌가? 그렇다면, 자신의 지식으로 그치고 있는 신앙인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1장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은 부분은, 기독교는 위대한 설교자나 사상가, 혹은 교단이나 신학교 때문에 오늘까지 건재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 부분이다. 이 부분을 참으로 공감했다. 특히 한국의 신앙 엘리트주의는, 마치 기독교 전체가 많이 공부한 교수나 박사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당신은 가르치고 일하는 사람이고, 나는 그저 듣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는 성도님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김형국 목사님의 설명대로 실제로 기독교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삶을 보여주고, 그 삶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전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고 오직 그분이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신다. 그런 면에서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생명의 밥이 되신다라는 제목이 참으로 적절하고, 그 강조가 매우 마음에 와 닿았다. 예수 그리스도가 전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신앙이 모든 성도에게 주어진 그들 자신의 본질임을 깨우쳐 준다.
샬롬 샬롬 샬롬
샬롬 샬롬 샬롬 평강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날 보냄
같이 나도 널 보내노라
샬롬
2. 곡 소개
이 곡은, 찬양 사역자 김도현님의 “Shalom”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평화이시며 평화를 우리에게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보여주는 찬양이다. 예수님은 근심과 걱정 그리고 염려 가운데 살고 있는 주님의 자녀들에게 지금 찾아오시며, 그분의 평안으로 위로하시고, 채우시며, 세상으로 보내시는 분이심을 묘사하는 아름다운 찬양이다.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14:27 Peace I leave with you;
my peace I give you. I do not give to you as the world gives. Do not let your
hearts be troubled and do not be afraid.
14:27 Peace: The
customary good-bye among the Jews was to
say shalom, meaning “peace.” The Lord
was about to depart, so He added to this farewell by saying, My peace. The word My is emphatic. This is no conventional wish; this is Jesus’ personal,
special grant of peace. The peace that Christ gives banishes fear and dread
from the heart, for Jesus is in control of all circumstances. 유대인들의관습에서헤어지는인사는“평화”를의미하는샬롬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곧떠나시려하셨기때문에이작별인사를말씀하시면서“나의평화” 라고덧붙이셨습니다. 여기서“나의”라는것은강조입니다. 이것은일반적인바램이아닙니다. 이것은예수님께서개인적으로특별히허락하신평화입니다. 그리스도께서주시는평화는마음에서두려움과공포를몰아냅니다. 왜냐하면예수님께서모든상황을통제하고계시기때문입니다.
요한복음 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19 On the evening of that
first day of the week, when the disciples were together, with the doors locked
for fear of the Jews, Jesus came and stood among them and said, "Peace be
with you!" 20: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0:20 After he said this, he showed them his hands and side. The
disciples were overjoyed when they saw the Lord. 20: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0:21 Again Jesus said, "Peace be with you! As the Father
has sent me, I am sending you."
20:19 FEARED THE JEWS. In spite of
Jesus’s words in 14:27, the disciples were afraid that the authorities, who had
been successful in having Jesus killed, might now turn on them. JESUS CAME. Nothing is said about how
Jesus came to be among them, but the implication of the locked doors appears to
be that Jesus simply appeared with them (v. 26; Lk 24:31). PEACE BE WITH YOU. This is repeated in v. 21 and in the appearance
a week later in v. 26. The promise of peace was given in 14:27 and 16:33. It
sums up the blessings and fullness of the new covenant that Jesus has made
between the Father and his people (14:27). 요한복음14장27절에서, 나의평안을준다는예수님의말씀에도불구하고제자들은, 예수님을죽이는데성공한권력자들이이제그들을핍박할까두려워했습니다. 나의평안을너희에게주노라: 이것은예수님께서성부하나님과그분의백성사이에맺으신새언약의축복과충만함을요약하는것입니다.
로마서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개역개정) 5:1 Therefore, since we have been justified through faith, we
have peace with God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NIV)
5:1 PEACE. What is in
view is not some sort of inner experience of harmony but rather the objective
fact of a new relationship with God. The root image is of war. Those who were
in rebellion against God, their rightful King, are now reconciled to him
through Christ; the enmity is over. This is the basis for the Christian’s
access to God’s grace and hope for the future. Peace in the Bible is a
comprehensive term describing the total blessing of salvation. 여기에서말씀하시는화평이라는것은, 일종의내면의조화와같은경험이아니라, 하나님과의새로운관계에대한객관적인사실을의미하는것입니다. 근본적인이미지는전쟁에있습니다. 정당한왕이신하나님께반역을저질렀던사람들은, 이제그리스도를통하여서그분과의평화를회복하였습니다. 바로이것이, 그리스도인이하나님의은혜와미래에대한희망에다가갈수있는기초가됩니다. 성경안에서평화라는것은, 구원의완전한축복을묘사하는포괄적인용어입니다.
이 찬양은, “샬롬”이라는 반복되는 가사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평안을 우리에게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다가올 죽음과, 그분의
죽음 이후에 권세자들의 핍박 앞에서 두려워 떨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나의 평강을 준다” 라고 약속하신다.
모든 죄인은 하나님을 대적함으로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고, 그분의 진노를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통하여, 그분을 믿는 주님의 자녀로서 가장 완전한 평강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주시는 평강이라는 것은, 단순히 내면의 위로 정도가
아니며, 그것은 가장 완전하고 충만한 것이다. 우리를 정서적으로
위로하는 것일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 우리의 존재 자체를 보장하고 지켜주는 평강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평강을 자신의 자녀들에게 주시며, 내가 너희를 지킬 것이라 약속하신다.
하나님과의 완전한 평강을 누리는 자들은, 그분의 돌보심과 인도하심을 믿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우리가, 그 평강을 가지고 세상 속으로
주님을 전하러 나가는 것이다. 이 찬양을 부를 때 마다 완전한 주님의 평강을 누리고, 또 그것을 세상 가운데 풍성하게 전하는 모든 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한다.
예수님이해처럼밝게빛나시는바로그자리에서이스라엘역사상가장중요한두인물이나타났습니다. 모세는거의 BC 1500년경의사람입니다. 그는하나님의백성을이집트에서이끌어낸민족의지도자이고십계명을포함해서하나님의말씀을직접받은사람입니다.
엘리야는누구인가? 그는 BC 860년경의사람입니다. 그는북이스라엘왕국이하나님을떠나극도로타락했을때에우상의선지자들과정면으로대결하였던사람입니다. 그는왕조차도두려워하지않고말씀으로꾸짖었던구약의대표적인선지자였습니다. 그러므로우리가주목할것은지금제자들의눈앞에서일어난이일은시공간을완전히초월하는일이었다는것입니다.
이것보다더놀라운일이어디에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