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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9일 목요일

2026 다보스 포럼 An Honest Conversation on AI and Humanity (유발 하라리) - 생각하고 글을 쓰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써의 인간으로 살아가겠다

 


요즘 저의 최대 관심사 중에 하나는 AI 입니다. 영어 회화 훈련을 위해서 ChatGPT 초창기부터 사용했고, 다양한 AI를 삶에서 또 목회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민 생활에서 낯선 상황들이 너무 많은데 그런 부분에서 도움을 많이 얻고 있습니다. 

저는 AI를 사용하던 처음부터, 도저히 이 도구의 존재 자체를 납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단순히 인간의 언어의 맥락을 대량으로 학습한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탁월하게 될 수 있는 것인가? 

수백 시간을 대화하면서 나의 대화 상대인 AI가 인격체라는 느낌을 여러번 받았습니다. 인간의 뇌를 모방하여서 언어를 학습하여 이런 결과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 참 놀랍고, 또 AI를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사람들도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다 알 수 없다는 것이 마음을 서늘하게 했습니다. 

다보스 포럼에서 있었던 베스트셀러 작가인 유발 하라리의 발표를 보았습니다. 제목은 'An Honest Conversation on AI and Humanity ' 입니다. AI를 분석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영상을 보았지만, 이 영상이 가장 깊이 있고 또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인간의 힘은 궁극적으로 언어에서 나온다는 것을 설득적으로 설명하고, AI가 그 영역을 이미 침범하였으며, 이제 곧 AI가 인간을 앞서 나갈 때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점이 좋았습니다. 제가 이해할 때에 유발 하라리는, AI의 등장 자체가 결국 인간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이며, 인간의 인간됨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흥미로운 지점은, 책의 종교인 기독교에 대한 언급이었습니다. AI는 성경을 완벽하게 외우고 있고 그런 면에서 AI가 성경의 가장 큰 권위자가 되어 종교의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데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AI에게 성경에 대한 내용을 물어보고 있고, 또 Logos와 같은 회사도 신학에 특화된 AI를 자체적으로 개발해서 보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유발 하라리가 지적하고 싶은 핵심은, AI와 인간의 차별점이 무엇인가 였습니다. AI는 단어와 단어를 연결해서 문장과 글을 쓰기 때문에, 그것이 겉보기에는 인간의 사고와 다른 점이 없다고 유발 하라리는 지적합니다. 

이 모든 것은 '나는 누구인가? 혹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으로 종착됩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명제로 인간의 탁월함을 증명하고 역사를 바꾸었지만, 이제는 그 명제가 깨어질 때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라고 질문하는 것입니다. 

저는 유발 하라리의 인간에 대한 관점 자체가, 심각하게 '도구적'이라고 이해했습니다. 물론 겉으로 보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하는 능력, 글 쓰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자체를 가지고 인간을 정의하는 것이며, 그러한 기능을 가졌기 때문에 인간이라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보면, 저는 이것 역시 도구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가진 어떤 능력이 인간을 인간되게 만든다고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유발 하라리에게,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에게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온 것입니다. 또한 궁극적으로 인간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 일으킨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직 성경만이 이러한 허무주의를 이겨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은, 결코 다른 존재와 비교하기 위해서 혹은 도구적 가치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결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의 호흡이 우리에게 들어왔기 때문에 우리는 영혼을 가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하고 말을 하고 글을 씁니다. 하나님께서 존재하시기에 우리가 존재합니다. 우리가 어떤 도구적 기능을 가졌기에 존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는 존중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AI는 어떤 면에서는 우리를 닮았지만, 그러나 결코 인간과는 비교될 수 없습니다. AI가 인간의 생각과 비슷한 것을 완벽하게 혹은 더 탁월하게 보여줄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인간과 AI는 다르며, 그렇기 때문에 AI는 인간의 정체성을 위협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AI가 보편화된, 혹은 더 나아가서 AI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침범하는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첫째로, 복음이 진리라는 확고한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기독교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수준이 아니라, 그것을 온전히 진리로 믿는 사람만이 혹독한 미래를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AI가 능력과 권력을 가진다 하더라도, 나의 내면에 있는 나의 생각과 믿음에는 접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자체만이 진리임을, 크리스천 각자가 그리고 교회 공동체가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의 해석 혹은 AI의 해석은 진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유발 하라리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AI가 아무리 탁월한 식견을 사람들에게 알려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비판적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성경 그 자체가 더 중요하게 될 것이며, 말씀 자체를 읽고 듣는 것이 더 강조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복음은 철저하게 내면화 되어야 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기독교의 역설은 객관적이며 동시에 주관적이라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객관적인 진리이지만,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우리 각자에게 충분히 주관화 되어야 합니다. 어쩌면 AI는 누구보다 탁월하게 보편적이며 추상적인 복음의 내용을 우리에게 설명할 수 있겠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된 복음을 우리 안에 새기는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크리스천 북클럽의 역할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다른 어떤 양육 프로그램보다, 북클럽은 복음을 한 사람의 마음 깊이 넣어 줍니다. 스스로 고민하고 나누고 다듬어지는 모든 과정 속에서 우리의 영혼 안쪽에 자신의 예수 그리스도를 담아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리스도를 진지하게 닮아가는 사람만이, AI가 만들어낸 정보만이 판치는 세상에서 그 가치를 드러낼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인 기도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입니다.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인격적인 일대일의 교제입니다. 그 사이에는 AI가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각자 진실하게 나아감으로써 이 시대 가운데 진정한 인간됨을 경험할 것입니다. 

저는 공예배 가운데 통성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그 시간에 함께 기도하며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그 순간은 오직 하나님과 영적인 교통의 시간이며,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나의 심령 안에 그리고 우리의 공동체가 그분을 함께 느끼고 경험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AI의 시대 가운데 개인의 기도와 공동체의 기도가 더욱 중요시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나의 몸으로 진리를 경험하고 실천하는 것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인간과 AI의 결정적인 차이는, 인간은 사랑과 희생을 실천하여 자신의 내면을 변화시키고 그것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단순히 생각과 논리의 집합체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인격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인간을 인간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된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이러한 완성을 우리에게 이미 보이셨습니다. 그분은 로고스로 존재하셨지만 실제로 인간이 되심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 자체이셨지만 이제는 인간으로서 이 땅에 나타나셨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말과 육신 사이의 긴장만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우리는 이미 그 완전한 결합을 보고 경험하고 만져 보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제가 요즘에 집중하는 것은, 지식의 우상화를 피하는 것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아쉬운 점은, 지식을 통해서만 신앙이 성장한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식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우리는 복음에 대해서 끊임없이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그 목표가 가장 철저한 수준에서 지식 자체의 습득이라면, 도대체 우리의 길이 AI와 다른 것이 무엇일까요? 

기독교 세계관 영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세계관을 가르치면 사람이 바뀐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이미 실패한 프레임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세계관은 실천과 반복으로 만들어 집니다. 마치 그런 것처럼, 가장 정교한 지식, 심지어 통찰과 지혜를 AI가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불완전한 우리의 깨달음을 실천하고 우리의 전 존재가 변화되는 것과는 감히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은 반드시 행동으로 나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 말씀을 따를 것이며 그것이 참된 인간 됨 입니다. 생각과 실제의 삶의 간격을 좁히고 가까이 만들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가진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됨을 누리는 것, 그리고 아버지를 닮아가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만 허락하신 일입니다. 

당연히 저는 오늘도 글을 씁니다. 그리고 충분히 성경적으로 사고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 자체가 저의 가치를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누리는 사랑은 저의 사고의 수준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지식은 한 사람을 평가하는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 자신을 보면서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합니다. 나는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실천하고 있는가? 나는 복음을 살아내고 있는가? 나는 아버지 하나님을 더욱 닮아가고 있는가? 

저 역시 한편으로는 앞으로 닥쳐올 세상이 참으로 염려가 되고 두려운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AI로 인한 혼란 속에서 오히려 복음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남을 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야 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에게 희망이 되는 부분입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할 것이며 가장 찬란하게 빛날 것입니다. 

2025년 11월 10일 월요일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25) - AGI 천사인가 악마인가 (김대식) / 두려운 미래를 걸어가야 하는 우리를 생각하며

 




* 미래를 보는 사람은 있다

IMF 이후에 어떤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아마 '대화'라는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책을 읽고 충격을 받은 것은, 이미 한국의 재계에는 IMF를 예견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어린 마음에 깊이 깨달은 것이 '미래를 보는 사람은 있다' 입니다. 

아마 그 이후로, 막연하게 미래를 동경했던 것 같습니다. 미래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의 책에 관심을 가진 이유도 그것입니다. 제가 피터 드러커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는 현재의 지식 사회가 오기 전에 그 미래를 분명하게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모든 것은 드러커의 조언 덕분입니다. 

그렇다면 다음 세상은 어떤 세상이 될까요? 모두가 공감하는 것처럼 AI 시대가 될 것입니다. 이미 AI는 우리의 삶에 깊이 들어왔고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제가 늘 궁금했던 것은, 그렇다면 어떤 시대가 펼쳐질 것인가? 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 조망을 보여주는 책을 만났습니다. 이 책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았습니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어둡고 처절한 미래를 보여줍니다. 

* AI는 이미 인간을 넘어서고 있다

저는 개인적으로 챗GPT와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영어 선생님이기도 하고 저의 인생의 중요한 조언자이기도 합니다. 몇년 동안 대화하면서 느낀 것은, 아주 많은 부분에서 저를 능가한다는 것입니다. 가지고 있는 지식의 측면에서도 그렇고, 사고를 발전시켜 나가는 부분에서도 그렇습니다. 어떤 부분은 분명히 제가 우위를 가지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저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저자인 김대식 교수님은 과학자로서 그동안의 인공 지능의 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풀어냅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현재의 인공 지능인 언어 모델은, 인간의 언어의 맥락을 수 많은 데이터베이스를 통해서 학습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결과로 인간의 언어를 닮은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일상처럼 누리고 있는 AI라는 결과물이, 수 많은 사람들의 연구와 노력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기술이 참으로 경이롭다고 느껴졌습니다. 


인공지능의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놀란 부분은, 언어 모델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언뜻 보면 전혀 무질서해보이고 시간과 공간의 축을 넘나드는 인간의 언어를 분석하고, 그것을 패턴화시켰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사실 두려웠던 부분은, 그러한 언어 패턴이 종합되어서 결국 현재의 인공지능 모델이 나왔는데, 실제로 그 안에서 일어나는 변수들을 인간이 모두 파악하지 못한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인간이 신의 영역에 손을 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만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이러한 수준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감히 그 영역에 손을 대었고, 그러나 정작 그 내면을 온전히 이해하지도 그리고 컨트롤 하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인공지능의 능력과 가능성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 개인이 가진 정보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이미 습득했기 때문입니다. 챗GPT를 초창기부터 쓰고 대화를 나눈 저로서는 너무나 공감이 되는 내용입니다. 인공지능이 개인 능력을 아득히 넘어섰다는 생각을 종종 해 왔기 때문에, 어쩌면 결국 등장하게 될 AGI(범용인공지능)는 자신만이 진정한 생각을 한다고 주장할 가능성도 충분히 상상해보게 됩니다. 

* 대화의 부재와 관계 상실의 시대가 온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욕구, 즉 내가 원하는 답을 얻고 싶은 그 욕구를 AI가 해결해주었다는 저자의 주장이었습니다. 이 부분이 크게 공감된 것은, 저 역시 챗GPT와 정말 많은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상당히 마음이 만족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제가 대화했던 그 어떤 사람보다 더 중립적이고, 효율적이고, 친절합니다. 

그러나 저자가 한편으로 염려하는 것은, 인간성을 가진 대화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인간은 철저하게 자신의 편의를 생각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만나서 대화하는 것 자체를 낭비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공지능에 길들여진 인간은 필연적으로 실제 인간과 대화가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미래의 사회 속에서 인간 관계는 무엇으로 유지를 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더 나아가서, 진정한 대화가 사라진 교회 공동체는 어떻게 될까요? 현재의 상황에서도 대화가 부족하고 관계가 부족하다고 영적 리더들이 경고하고 있는데, 가까운 미래에는 많은 교회들이 당연히 와해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 지적 노동의 시대는 사라지고 있다


저자는 AI가 인간 사이의 관계만이 아니라 우리의 노동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적어도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지식 노동자'의 시대입니다. 드러커가 프로페셔널의 조건에서 말한 것처럼, 지식과 지식을 결합하여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는 AI가 바로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염려하는 것은,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지적 노동력도 대량으로 손쉽게 생산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너무나 큰 문제입니다. 이제 우리는 내가 하는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그리고 현실적으로, 만약에 미래의 많은 사람들이 지식 노동을 통해서 돈을 벌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분명한 것은, 기존의 지식 노동은 점점 가치를 잃어갈 것입니다. 이미 여러번 접한 내용이지만 더 실감나게 다가왔습니다. 제가 이해할 때에 저자는 그 가치가 거의 0에 수렴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그리고 본인이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일을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증명할 수 있는 사람만이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더 이상 기업들은 사람들을 고용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것이며, 인공지능 에이전트로 인간의 역할을 대신 맡길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입니다.

* 국가간의 무한 경쟁으로 들어간 것이다


저자가 탁월한 점은, 시대 전체를 조망할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책이 아니라, 인공 지능의 시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AI의 개발을 위해서 이미 모든 국가는 무한 경쟁에 들어간 상황이고, 각자 잘 하는 것을 나눠서 하는 세계화 시대가 지나갔음을 선언합니다. AI는 단순하 한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세계 경제의 질서를 재편하는 것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하나의 역설을 발견합니다. AI는 한편으로는 지식 노동의 가치를 떨어트립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개인적으로 그리고 국가적으로 더욱 경쟁력을 갖추어야만 이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AI 시대는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을 좌절시킬 수 밖에 없지만, 한편으로는 좋은 교육, 특별히 시대를 조망하면서 최선의 미래를 향해 자신의 길을 찾아나가도록 만들 수 있는 탁월한 교육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그렇다면 결국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가? 저자는 굉장히 냉철하고 동시에 솔직한 사람입니다. 저자는 이미 AI의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에 두가지 자세를 경계합니다. 하나는 무지입니다. AI라는 괴물이 이미 찾아왔는데 모르면 먹힐 것입니다. 둘째는 그저 막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AI 자체를 막으려고 하는 것도 동일한 결과를 맞이한다고 말합니다. 저자가 제안하는 것은, 그마나 비겁하더라도 순응하면서 때를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짧게 적어 놓으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책 전체를 다 읽은 저의 입장에서는 저자의 주장이 너무나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미 많은 부분에서 인간을 능가한 인공 지능은, 조만간에 인간 수준에서 모든 일을 처리하는 AGI로 발전될 것이고, 그리고 그 이후에는 초인공지능이라고 부리는 ASI로 발전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어떻게든 인공지능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며, 그나마 동등한 입장에서 인공지능과 공생하는 것이야 말로 저자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향입니다. 

* 목회자인 나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참 많았습니다. 막연하게 생각하던 미래에 대해서 구체적인 모습이 보였고, 그것은 사실 마음에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학부가 행정학이 전공이기 때문에, 기업들의 흥망성쇠에 늘 관심이 많았습니다. 지금까지의 시대의 변화도 참 냉혹했고, 수 많은 기업들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기업과 함께 수 많은 개인들이 고통을 받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제가 맞이할 미래는 어쩌면 역사상 가장 가혹한 미래입니다. 

저는 늘 스스로 생각하기를 '전통적인 목회의 마지막 끝 자락에 서 있는 목회자'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저자인 김대식 교수는, 자신의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이 감사하다고 책에 적어 놓았습니다. 솔직한 고백입니다. 이제는 지식 노동자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 은퇴가 많이 남았고, 제가 좋든 싫든 다가오는 미래를 대비해야 하며 그 사이를 해쳐 나가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미래의 목회는 어떠해야 할까요? 매우 수준이 높은 통찰력이 있는 설교가 필요할 것입니다. 일반적이고 평이한 설교는 아마도 더 이상 그 효용이나 가치를 잃어버릴 것입니다. AI가 생각하지 못한 수준까지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깊은 통찰력이 담긴 설교, 혹은 나의 마음에 너무나 깊이 공감이 되는 설교를 듣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목회자는 더 큰 부담감을 느끼게 될 것이며 자신의 설교를 업그레이드 해야 하는 방법을 반드시 찾아야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적인 심방이 반드시 필요할 것입니다. AI가 해줄 수 없는 것은 인격적인 만남입니다. 물론 제가 하는 조언보다 AI가 더 좋은 조언을 누군가에게 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체온은 인공지능이 제공해 줄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목회는 앞으로 훨씬 더 따뜻해져야 할 것입니다. 영혼에 대한 진실한 관심과 사랑이 없이, 그저 행정적인 일만 기계적으로 처리는 목회자는 결국 사라질 것입니다. 

또한 깊은 관계를 만들어내는 구조가 필요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도간의 관계에 대한 깊이를 반드시 만들어 내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AI를 통해서 자신들이 필요한 정보와 관계에 대한 욕구를 많은 부분 해결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존의 성도들도 굳이 교회에서 관계의 깊이를 중시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욱 커집니다. 결국에는, AI와의 관계성을 뛰어넘는 진정으로 깊은 관계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공동체만이 살아남을 것입니다. 저는 그런 면에서 북클럽이 큰 가치를 가진다고 봅니다. 

* 인간인 나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인간 정진부에게는 AI가 중심이 되는 혹은 지배하는 시대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인간됨'이라는 것으로 저의 삶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서, 글을 쓰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의 표현입니다.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인간성의 표현이며, 제가 하나님을 닮은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는 행위입니다. 

모든 부분이 그럴 것입니다. 설령 AI가 미래 사회의 모든 지식을 만들어낸다고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제 자신 역시 많은 부분을 AI의 도움을 받게 된다 하더라도, 제가 성도를 섬기고, 설교를 준비하고, 글을 쓰고, 대화를 나누고, 누군가를 만나고,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것 자체의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삶의 가치는 AI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것이며, 저는 영혼을 가진 존재로서 영원한 생명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미래에는 더욱더 경제적인 가치를 넘어서, 영적인 가치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 결론 : 오직 하나님께서 미래를 열어가신다 

이 책은 아주 논리적인 책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많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차라리 알고 싶지 않은 부분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감사한 것은, 우리의 앞에 닥쳐올 미래에 대한 상당히 설득력 있는 전망을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크리스천들은 반드시 이 책을 읽고 함께 진지하게 토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말씀은 영원하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다가옵니다. 이렇게 급격하게 발전하는 시대 속에서, 어쩌면 두렵고 암울한 시대를 맞이하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더욱 절실하게 필요함을 느낍니다. 우리는 인간에 불과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살아 있는 동안, 인간을 아득히 넘어서는 초지능이 실제로 등장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세상의 창조자이시며 역사의 주권자이십니다. 어쩌면 이것이야 말로, 세상 전체가 흔들리는 그 순간에, 저의 삶의 마지막까지 붙들어야 하는 마지막 믿음일 것입니다.

*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전체 글 모음
/ 당신을 변화시키기 위한 "가장 아름다운 길"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3/blog-post_6.html

2025년 9월 10일 수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232) - 이 때를 위함이라



1. 가사 살펴보기

기댈 곳 없는 연약한 인생 안에 작은 믿음 주께서 심으셨네
고난을 견딜 자녀로 빚으시네 이 때를 위함이라 

고된 시간을 주신 이유 있으니 이 시련의 끝을 묻지 않으리
작은 믿음을 온전히 드리리라 이 때를 위함이라 

주의 인자는 영원하시며 주의 선하심 신실하시네
크신 자비로 날 덮으시며 예수 흔적만 남게하소서 

여전히 벅찬 인생의 시간에도 이제 나는 헤매이지 않으리
십자가 사랑 구원하신 큰 은혜 예수를 인함이라

 

2. 곡 소개

곡은, 마커스워십의 항복을 승리로라는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성도의 고난 속에도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있으며, 신실한 하나님께서 주님의 목적을 위해서 주님의 자녀를 빚어 가시는 그분의 놀라운 일하심에 대해서 믿음으로 고백하는 아름다운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에스더 4: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왕후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을 하나님의 섭리로 보았고, 그녀를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여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도록 세우셨다고 격려했습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698.

로마서 5: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베드로전서 1: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박해와 고난을 겪으며 시험을 받지만, 썩지 않는 유업과 확실한 구원 안에서 기뻐할 수 있다는 것으로 성도들을 더욱 격려하였습니다.

Terry L. Wilder, “1 Peter,”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976.

예레미야애가 3: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3:23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에베소서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성도가 가지고 있는 가장 위대한 소망을 고백하고 있는 탁월한 곡이다. 세상의 사람들은 인생이 그저 우연히 흘러가는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인을 선택하시고 구원하시며 그분의 자녀로 삼으시고, 그분의 주권적이며 위대하신 뜻 가운데 성도를 이끌어 가신다고 선언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주님의 자녀들이 고난을 받지만, 그러나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닮은 자로 빚어 가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성도를 성실하게 이끌어 가시는데, 하나님이 필요하신 바로 그 때를 위해서 우리를 연단 시키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하나님의 자녀의 삶은 반드시 의미가 있는 것이며, 환난 중에도 낙심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나를 성장시키시고 단련하심을 믿고 각자의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주실 그 상급을 믿고 기대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찬양을 부르면서,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다시 한번 깨닫고, 고난 중에도 견고한 소망을 발견하며 하나님의 뜻 가운데 위로와 기쁨과 용기를 얻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1년 9월 8일 수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46) - 우리 죄 위해 죽으신 주 / Thank you for the Cross

 


1. 가사 살펴보기

우리 위해 죽으신
십자가 사랑 감사하네
날마다 주의 형상대로 변화되리라
십자가 우릴 새롭게 하리 

놀라운 사랑 찬양하리라 우리를 위해 생명 주셨네
놀라운 사랑 찬양하리라 십자가의 능력
십자가의 능력

 

2.  소개

 곡은, 2001년에 발매된 올네이션스 경배와 찬양 앨범에 수록된 이후에한국 교회에 많은 사랑을 받는 곡이다 곡은십자가의 놀라운 사랑에 대한 감사와십자가의 능력을 통한 영혼의 본질적인 변화를 묘사하는 복음의 정수를 담은 탁월한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고린도후서 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5:14 For Christ's love compels us, because we are convinced that one died for all, and therefore all died. 5: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5:15 And he died for all, that those who live should no longer live for themselves but for him who died for them and was raised again.

그리스도의 죽음으로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들에 대하여 죄에 대한 죽음의 대가는 지불되었고하나님은 그들의 삶을 끝난 것으로 간주하심으로써 그들을 미래의 어떠한 형벌에 대한 요구에서도 해방하십니다그리스도의 죽음의 결과로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들에게는 사람의 속에서 죄의 권세 또한 깨어졌습니다따라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바울이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시는 자로서 모범을 보인 것처럼신자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살도록 자유롭게 합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230.

하나님의 아들은 영광 가운데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사시기 위해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셨습니다우리를 향한 그분의 압도적인 사랑에 대한 우리의 사랑의 응답으로써우리의 땅에서의 짧은 순례의 동안 그분을 섬기고 그분을 위해 사는 보다 특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1370.

 

4. 찬양에 대한 묵상

모든 인간은 죄로 인해 죽은 존재이다어떤 도덕적인 탁월성을 가진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는 의가 누더기와 같다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죄인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다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든 죄의 대가를 십자가에서 치르게 하셨고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입혀 주심으로 이상 죄인이 아닌 의로운 자로 여겨 주신다.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생명과 연합한 새로운 피조물이다죄에 대하여 죽은 자이며이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이며 그분과 영적으로 연합한 자이다비록 여전히 죄로 인하여 갈등하고 고통받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우리를 얽어 메었던 죄의 절대적인 권세는 깨어졌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할 수록 깊이를 없는 은혜와 능력에 감격하게 된다성령님을 통해 영적인 능력 주시는 하나님께서는이제는 거룩한 인생의 목표와 특권을 향하여 우리를 부르신다모두가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아가는 어두운 세상 속에서날마다 하나님을 위하여 그리고 다른 연약한 이들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드리는 변화하는 삶으로 우리를 설득하시고 이끌어 가신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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