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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14일 화요일

예찬 찬양 집회 2부 분석 (대 곡을 소화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 "대 곡"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의 기쁨

찬양팀의 수준을 끌어 올린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모든 팀들이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성도님들이 좋아하시는 대중적인 찬양곡을 잘 소화하며, 그것을 실제로 집회 가운데 은혜롭게 승화시킬 수 있는 팀을 누구나 꿈꿉니다. 그러나, 그것을 위하여 전략을 짜고, 그것을 실제로 수행하여서 팀을 세워간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며 마치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어떻게 제가 이런 중요한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한주 한주 계속 고민하면서 감당할 뿐입니다.

* "자신의 팀"을 충분히 파악해야, 대 곡을 시도할 수 있다

찬양 인도자는, 자신의 팀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각 멤버들의 성격, 성향, 신앙 수준, 노래와 연주 수준 등등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 한 사람의 그 한번의 호흡을 통한 노래와 연주가 합쳐져서 팀의 찬양이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저의 팀의 건반은 네박 중에서 세박과 네박 사이가 좀 빨라서 수정을 오랫동안 부탁드렸습니다. 드럼은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림샷에서 스내어로 넘어가는 시점이 좀 늦어서 그 부분도 오랫동안 수정했습니다. 싱어분들도 스타일이 다 다릅니다. 성악 스타일부터 발성이 좀 약한 분들 등등 다 개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도자는 그 모든 분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자신이 목표로 하는 팀의 색깔에 최대한 가깝게 끌고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너무 지나치게 자세하게 분석한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씀드려서, 찬양팀 개인 개인의 음악성은 0.2-3초 정도에서 결정이 됩니다. 그 어간에서 아름다움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러한 개인의 순간의 판단과 음악성이 모여서 팀을 이룹니다. 그 찰나의 순간을 인지하고 찬양을 소화하는 능력이 결국 팀의 수준을 결정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찬양 인도자는 거의 편집증에 가까운 디테일한 완벽을 추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설령 그것이 당장 완성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현실을 철저하게 분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 대 곡은 "디테일과 지속성"이 중요하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팀원들이 가진 디테일과 완성도를 어느 정도까지 유지할 수 있는가가 관건입니다. 예를 들어서, 5분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도, 10분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10분을 음악적인 디테일을 유지하는 것보다 20분은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현재 저의 팀은 최상의 컨디션으로 20분 정도를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1시간은 어떨까요? 1시간을 내가 하는 찬양의 음악적인 디테일을 유지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의 능력을 완전히 초월하는 일입니다. 

* 찬양팀의 팔할은 "음향"이 결정한다

찬양팀은 음악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음향적인 부분이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제가 직접 레코딩하고, 믹싱 마스터링까지 좀 더 탁월하게 할 수 있기 위해서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만큼 들리기 때문이고, 아는 만큼 팀을 살피고, 아는 만큼 엔지니어에게 부탁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경우에 간과하는 것이 엔지니어의 중요성입니다. 그런데, 엔지니어의 역할은 "결정적"입니다. 물론 음악성이 떨어지는 것을 음향으로 보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로, 음악성이 아무리 좋아도 엔지니어가 서포트하지 못하면 그 집회는 실패할 가능성이 거의 백퍼센트입니다. 사실상 집회의 수준과 감동은 엔지니어의 손에서 팔할이결정됩니다. 다행히 저희 교회의 엔지니어로 섬기시는 분은 최고의 실력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은 언제나 존재할 수 있습니다. 

* 집회에는 언제나 "변수"가 존재한다

저는 평소에 젠하이저 무선 마이크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노후가 되어서인지 이번에 거의 마지막 리허설 중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운드가 들어가기는 하는데 거의 80 퍼센트가 사라지면서 로우 패스 하이 패스 필터가 엄청 걸린 것 같은 아주 이상한 사운드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굉장히 당황했습니다.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모릅니다. 저는 사운드 자체에 아주 예민하기 때문에 모니터를 조율하는데 시간을 많이 썼습니다. 그렇게 오래 연습하고 조율한 익숙한 마이크로 해도 집회가 힘든데, 집회 준비 마지막에 마이크가 문제라니 앞이 캄캄했습니다. 

급한대로 엔지니어께서 유선으로 교체해주셨습니다. 아마도 마이크 입력 채널이 바뀌었으니 당연히 셋팅도 다시 했습니다. 그런데 집회가 끝나고 알았습니다. 놀랍게도 싱어분들 모니터에 제 목소리가 안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다 여쭤보진 않았지만 아마 싱어용 모니터 전체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상했는지 모릅니다. 평소에는 제 목소리가 싱어분들 모니터에 들어가기 때문에 가이드가 당연히 됩니다. 당연히 제가 의도하는 대로 더 수월하게 부르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이렉트로 모니터로 나오는 제 목소리 없이 이 큰 집회를 마쳤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참 자랑스러웠습니다. 싱어분들의 수준이 놀랍고 감사했습니다. 영상에서 들으시는 것 처럼 전체 집회를 꽤 근사하게 정말 잘 하셨기 때문입니다. 많이 연습했고 연습한 만큼 좋은 모습으로 끝까지 임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팀 싱어들도 음악에 맞춰서 자신의 노래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싱어분들과 함께 연습한 것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 드디어 시작된 2부

자 이제 1부가 끝이 나고 2부로 넘어갑니다. 사실상 2부는 곡의 선곡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앞에서 이미 좋은 곡들을 많이 했기 때문에, 2부에서는 뭔가 새로우면서도 뭔가 더 음악적으로 영적으로 뛰어난 곡들이 배치되어야 합니다. 소위 말해서 "대 곡"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 "팀 뿐 아니라 교회를 이해해야" 대 곡을 할 수 있다

아마 저를 포함해서 모든 찬양 인도자들은 "대 곡"을 하고 싶은 갈망이 있을 것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대곡이라 하면, 곡 구성이 드라마틱하고 어느 정도 높은 음들이 존재하고 리듬이 화려하거나 어려운 그런 곡들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찬양팀의 음악성을 잘 드러낼 수 있는 곡을 말합니다. 그런데, 대 곡에 대한 담대한 시도는 실질적으로 두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찬양팀 자체의 실력"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서 아무리 찬양 인도자나 팀 전체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거나 해서는 안되는 곡이 존재합니다. 문제는 음악성입니다. 음악성이 받쳐주지 않는데 무리해서 곡을 부르게 되면, 그 곡에 대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기 때문에 당연히 은혜를 끼치기 어렵습니다.

둘째로는, "회중의 반응"입니다. 예를 들어서 감사하게도 찬양팀이 충분히 준비가 되어서 어떤 곡을 부른다고 해도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회중이 그 곡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진다면 사실상 은혜를 받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 부분이 더 어렵습니다. 찬양 인도자는 섬기는 교회의 회중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회중을 고려할 때에 상대적으로 너무 어려운 리듬, 너무 어려운 코드, 너무 화려한 연주는 그런 의미에서 은혜를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 PPT의 형태는 매우 중요하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은 PPT의 문제입니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젊은 분들은 가사만 있어도 몇번 듣고 잘 따라서 부르십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연세가 드신 분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평소에 신곡은 악보가 있는 PPT를 사용합니다. 

문제는 실제 이렇게 큰 집회 때에는 악보를 띄우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악보가 좋기는 하지만, 그 악보를 눈으로 확인하고 따라 부르면서 그 악보 자체에 얽매인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악보를 따라가는데 급급하기 때문에 어떤 영적인 충만함을 경험하고 누리는 것이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집회는 모두 "글자로만" PPT 를 준비하였습니다.

8) 2부의 시작 / 내 마음을 가득 채운

저는 2부 첫 곡을 "내 마음을 가득 채운"으로 선택했습니다. 원래 자신이 없었는데 악기팀 디렉터께서 추천하셔서 고민하다가 선택했습니다. 주저했던 이유는, 제가 늘 하고 싶었고 또 어렵다고 생각했던 곡이 바로 "내 마음을 가득 채운" 이기 때문입니다. 거의 15년 정도를 찬양 인도를 했지만, 제대로 성공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일단 일렉이 없는 것은 둘째 문제입니다. 가장 어려운 점은, 리듬이 너무 어려워서 부르기가 어렵습니다. 혹시 싱어가 탁월해서 이런 고급스러운 리듬을 소화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교회의 컨택스트 안에서 회중이 받아들이기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감사하게도 오랫동안 한 교회를 섬기면서, 이제는 이 두가지가 이번에 어느 정도 충족이 되었다고 생각이 되어서 찬양 인도자로 처음으로 이 곡을 제대로 시도하였습니다. 

저는, 집회의 모든 곡을 유명한 찬양팀의 카피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찬양팀의 수준도 다르고 회중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만 가이드가 필요할 때는 확실하게 레퍼런스 곡을 카피해서 나가야 합니다. 이번에는 "나비 워십"의 곡 버전으로 준비했습니다. 정말 탁월한 팀입니다. 한국 교회에 이렇게 좋은 팀들이 많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다양한 버전을 많이 시도해 보았는데, 그중에 그나마 가장 쉬우면서도 은혜롭게 나눌 수 있는 버전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악기팀 디렉터께서 악기팀용 악보를 따로 준비해오셨고 철저하게 악기팀을 지도해 주셨습니다. 일단 일렉 기타가 워낙 연주력이 뛰어나서 많은 부분이 커버 되었습니다. 이런 리듬의 곡은 드럼 베이스 건반이 정말 중요합니다. 이미 탁월한 분들이라 잘 하셨습니다. 그래서 연주 자체는 수월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이번에 저의 팀의 싱어분들을 가장 칭찬하고 싶은 부분이 바로 이 곡입니다. 처음에 인트로가 끝나고 싱어가 시작되는 부분을 들어보시면, "팀원들이 얼마나 많이 연습했는지" 정말 확 드러납니다. 거의 얼굴에서 빛이 나는 수준입니다. 노래에 두려움이나 주저함이 없습니다. 저도 당연히 이 곡을 소화하기 위해서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기타 리듬을 따로 일렉 기타분에게 배웠습니다. 중간에 계속 등장하는 디미니쉬 코드까지 다 소화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리듬 자체는 지키기 위해서 많이 노력했습니다. 

이 버전이 너무 빠르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불러보면 약간 어색한 느낌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수적인 교회에서도 이 정도 빠르기라면 충분히 성도님들이 함께 부를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에, 정말 좋은 빠르기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생각하는 것은, 찬양팀은 그 교회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회중을 배려하지 않는 찬양팀은, 그 교회 찬양팀이 아니라 그저 객원 찬양팀에 불과합니다. 

이 곡은 미디엄 테포이지만 손을 들고 찬양할 수 있는 아주 독특한 곡입니다. 이미 금요일에 총 다섯 번 정도 회중들과불러 보았기 때문에, 실제 집회 때에도 후렴을 하면서 손을 들고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에 매우 최적화된 그런 찬양 인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세가 드신 성도님들도 정말 좋아하시면서 함께 불렀습니다. 

9) 은혜 아니면

미디엄 템포의 곡이 끝나고 "은혜 아니면"을 이어서 불렀습니다. 이 곡은, 마커스 곡 중에서도 특히 깊은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곡은 약간 쉬어가는 느낌의 곡으로 넣었습니다. 앞 부분 까지는 굉장히 열정적으로 힘있게 불렀다면, 집회의 어떤 부분에서는 매우 묵상적으로, 매우 편안하게 또 매우 깊이 부를 수 있는 그런 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금요일마다 자주 불렀고 그런 저의 목적에 딱 맞는 곡이 이 곡이라고 느꼈습니다. 

실제로 찬양 인도를 하면, 내가 생각하고 의도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얼마든지 진행될 수 있습니다. 찬양 집회는 성령의 역사이고 살아 움직이는 것입니다. 저는 원래 좀 더 부드럽고 약하게 진행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성도님들이 여기까지는 힘이 넘치셔서 악기팀도 제 의도보다는 좀 더 힘있게 나갔고 결론적으로 그것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계획한 것 처럼, 통성 기도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후렴 한번 더 바로 이으면서 곡을 마무리하였습니다.

10) 주 예수 나의 산 소망

드디어, 두 곡이 남았습니다. 이 정도까지 왔을 때에 정말 마음이 평안하고 좋았습니다. 팀원들이 너무 잘 해주셨고 집회가 은혜로웠기 때문입니다. 사실 집회가 있는 주간에 특히 사역이 많았습니다. 목회자가 찬양 인도를 한다고 해서 거기에만 매달릴 수 없습니다. 거기다가 긴장했는지 집회 삼일전 부터 배탈이 나서 몸이 탈진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님께서 힘을 주셔서 큰 실수 없이 여기까지 했다는 것이 너무 기뻤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집회의 대망의 절정을 여는 "주 예수 나의 산 소망"입니다. 생각해 보니, 저는 이 곡의 원곡을 거의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다만 레위지파의 번안 곡을 듣고 너무 좋다고 생각해서, 몇달 동안 연습했습니다. 레위 지파의 버전은 제가 생각할 때에 CCM 음반 중에 탑 20 정도에 들어가는 탁월한 곡입니다.  

이런 곡을 실제로 찬양 집회 안에서 소화하는 것은 정말 쉽지가 않습니다. 듣고 좋다고 느끼는 것과, 우리 팀이 곡을 불러서 다른 사람들이 좋게 듣게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그러나 제가 판단하기로는, 제가 섬기는 찬양팀이 이제는 이 정도 대 곡을 하 수 있을 수준으로 올라갔다고 느꼈습니다. 싱어팀과 악기팀이 이제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연습 중에는 참 죄송스럽게도 팀원 분들에게 이런 저런 마음 아픈 이야기들도 많이 하였습니다. 그래도 잘 인내해주시고 또 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제 곡이 시작됩니다. 메인 건반이 연습을 많이 해주셔서 처음에 들어가는 것이 어색함이 없습니다. 원래는 처음부터 아주 강하게 들어가셨지만, 제가 "점점 크게의 느낌"으로 인트로 첫 마디를 시작해 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정말 완벽하게 소화해 주셨습니다. 

계속 말씀드린 것 처럼, 곡의 시작의 다이나믹이 정말 중요합니다. 다행히 싱어분들도 처음의 시작 부분을 정말 약하고 부드럽게 잘 불러주셨습니다. 곡의 느낌을 잘 살려주셨습니다. 곡의 분위기와 느낌과 감동은, 후렴을 세게 불러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1절부터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처음에 악기가 많이 빠져 있을 때에 이 정도 부르기가 정말 어려운데 싱어팀이 잘해주셨습니다. 저의 어쿠스틱 기타가 좀 아쉬운데 기타를 배울 시간이 없네요. 장기적으로 보자면 좀 레슨을 받아야 할 듯 합니다.

이 곡은, 2절까지의 하고 첫 후렴이 등장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처음에 후렴으로 들어갔을 때에, 좀 더 다이나믹을 강하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그 당시에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이미 악기팀 전체가 큰 흐름을 다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은 뒷쪽에서 채우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특별히 화음이나 멘트로 드라이브를 걸지 않고 계속 찬양을 이어나갔습니다. 

약간 아쉬운 것은, 아무래도 싱어분들이 후반부로 들어가면서 악기의 리듬을 타는 것이 완벽하지는 못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고려할 것은, 이미 직장 일로 피곤한 금요일 밤, 그리고 이미 아홉 곡이나 부른 상태라는 것입니다. 거의 50분을 서서 찬양을 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정말 대단한 분들입니다. 그런 면에서 한분 한분이 정말 엄청나게 수고하시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곡의 백미는, "언약된 아침"이라는 부분부터 시작되는 3절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깊이와 능력을 드러내는 엄청난 부분입니다. 다른 찬양에서 들을 수 없는 굉장히 유니크하고 가슴이 벅차는 멋진 부분입니다. 이것으로 인해서 대곡이 더욱 위대한 곡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감동적인 부분을 찬양팀이 충분히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엔지니어께서 믹싱을 너무 잘하셔서 탐 소리가 정말 예술입니다.

이런 폭발적인 사운드 속에서, 리더가 화음이나 어떤 즉흥적인 라인을 넣는 것은 위험이 큽니다. 자칫 자신의 소리를 모니터링 하지 못하고 어긋나게 부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풀밴드의 큰 사운드 속에서는 모니터를 충분히 듣고 있는 리더 역시 자신의 노래를 감당하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하필 이 타이밍에, 즉흥적인 라인을 꼭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제 마음에 강하게 들었습니다. 마지막 후렴으로 넘어가는 부분에서, "주 예수 승리하셨네" 끝 부분에서 "할렐루야~"라고 제가 넣은 것은 레위 지파의 원곡을 따라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평소 리허설 때에는 한번도 하지 않았다가, 이 날만 시도한 것입니다. 막상 집회 가운데에서는 이 부분을 꼭 해야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다만 아쉽게도, 아주 약간 긴 느낌이 있습니다. 발성을 조절하면서 마지막 부분에서 소리를 끊을 때에 아주 찰나의 주저함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기팀이 워낙 계속 합을 맞추는 연습을 했기 때문에, 마지막 포즈 이후에 후렴으로 합을 맞춰서 탁월하게 후렴으로 잘 넘어갔습니다. 

"아~ 아~"라고 라인을 넣는 것은, 남자 싱어께서 잘 해 주셨습니다. 연습 때도 잘해주셨는데 실제로도 너무 잘해주셔서 하모니를 아주 잘 이루었습니다. 마스터링 버전에서는 좀 튀게 들리지만, 실제 집회 때에는 매우 잘하셨던 부분입니다. 저도 마음 같아서는 더 하모니를 넣고 싶었지만 최소한도로 그쳤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마지막 곡 까지 목이 상하지 않은 상태로 불러야했기 때문입니다. 

아마 제 기억으로는, 이 곡에서는 "손을 들고 찬양합시다" 등의 멘트는 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영상에서 보시는 것 처럼 거의 모든 성도님들이 손을 들고 찬양하시고 계시네요. 누군가가 멘트를 하거나 시키지 않아도, 함께 하시는 모든 성도님들 가운데 은혜가 있고 또 찬양 가운데 깊이 들어가신 것 같아서 그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이 곡을 실제로 부를 때, "그 현장의 분위기"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찬양팀 전체가 거의 몸을 던져서 부른 곡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몸을 던져서 부르고 연주해도 실제로 이런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것은 정말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포인트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열정은 과욕"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저와 팀이 하나가 되어서 결국 해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또 많은 연습의 결과로 이 곡을 아름답게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곡을 마치면서는, 의도적으로 보통이었으면 했을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는 돌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다음 곡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집회였다면, 그냥 이 곡으로 끝내도 충분히 훌륭했겠지만, 이제는 마지막 대곡, "선한 능력으로"가 등장할 차례입니다. 

11) 선한 능력으로

드디어, 마지막 곡에 다다랐습니다. 사실 이 때즈음에, 제 마음에 좀 긴장이 되었습니다. 앞의 곡으로 집회를 마무리 해도 되지만, 마지막 정점을 이 곡을 통해서 찍고 싶었습니다. 제 스스로 원대한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이 곡에 담고 이 곡을 통해서 표현하기 원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곡에 정말 팀의 전부를 걸고 싶었고 그렇게 부탁드리고 그렇게 연습했습니다. 과연 연습한 것을 보여드릴 수 있을까 살짝 긴장이 되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을 믿고 곡을 시작하였습니다.

원래 선한 능력은, 제가 별로 좋아하던 곡이 아닙니다. 멜로디가 너무 단순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사의 깊이는 그 어떤 곡보다 탁월합니다. 본회퍼 목사님이 보낸 마지막 편지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인 깊이는 다른 곡을 초월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박자"입니다. 저는 왠만해서는 절대로 3박자 곡을 하지 않습니다. 밑져야 본전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3박자 곡은 자칫하면, 평범한 왈츠곡 느낌으로 변하면서 가사의 깊이를 경험하는 것이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위러브 팀의 버전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너무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빠르기 보다 훨씬 느리게 시작하고, 중간이 넘어서서 곡의 빠르기를 완전하 바꾸어서 약간 하드롹 발라드 같은 그런 느낌으로 바꾸었는데, 제 개인적으로는 한국 교회 모든 찬양 중에 탑 3 안에 들어간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가급적 이 곡을 한번 그런 비슷한 느낌으로 만들어서 불러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 곡을 주제곡으로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의미있는 곡으로 정한 것은, 제 마음 속에 있는 깊은 갈망 때문입니다. 사실, 제 마음을 글로 적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제 마음 안에는 깊은 눈물이 있습니다. 목회자는 속으로 우는 사람입니다. 다만 저는 공동체야 말로, 미래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신앙 생활을 그저 개인적인 성숙, 개인적인 영적인 훈련 등으로 치환하면서, 공동체의 소중함을 잊어 버렸습니다. 

놀라운 것은, 마커스의 경우 선한 능력으로의 찬양을, "개인 경건의 찬양"으로 바꾸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제가 이해하기로는 그렇습니다. 저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번 집회에 사용된 곡과 가사를 비교해 보시면, 마커스의 곡은 전혀 다른 가사입니다. 아쉬운 일입니다. 

예전에 어느 블로그에서 독일어 원어를 번역한 것을 보았는데, 원래 본회퍼 목사님의 편지는, 교회 공동체를 염두에 둔 간절한 편지였습니다. 자신의 죽음의 위기 속에서 본회퍼 목사님은 공동체의 사랑과 지지와 하나됨을 경험하며 기대하며 이 가사를 쓴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펜데믹을 경험하고 있는 어려운 성도님들의 마음 속에, 정말 공동체의 소중함과 하나됨이 각인되기를 바랬습니다. 그런면에서 저는 이 곡을 이끌어갈 때에 처음에는아주 잔잔하게 시작해서, 극도로 폭발적인 분위기까지 이끌어내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이 곡은,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획된 곡입니다. 관건은 모두가 춤을 추는 듯한 "쿵짝짝 쿵짝짝" 분위기를 만들면 안됩니다. 뭔가 숙연한 분위기 그러나 진중하면서도 깊이 있는 분위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왈츠 분위기가 나지 않기 위해서, 인트로부터 최대한 건반이나 기타 스트록의 리듬을 줄였습니다. 바이올린에게도 부탁드리기를, 최대한 리듬을 길게 빼서, 두 마디가 마치 한 마디처럼 느껴지게 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정확하게 저의 뜻을 이해해서 소화해 주셨습니다.

위러브의 경우에는 제 기억으로는, 중간에 조 옮김을 하면서 후반부에는 급격하게 빠르게 연주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 집회에서는, "처음의 빠르기로 그 깊이를 마지막 까지 유지하면서" 함께 찬양하기를 바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빠르기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곡의 빠르기는 정말 찬양의 분위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예를 들어서, 예전에 한참 들었던 어노인팅의 "거룩한 성전에 거하시며" 라이브 곡은 처음에는 좋은 빠르기였다가 드럼이 빨라지면서 아쉬움이 컸습니다. 약간 곡의 흐름이 마지막에 무너졌습니다. 라이브 앨범이라 고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들을 때 마다 아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이 곡을 준비하면서, "마지막 곡의 성패"는 처음의 시작의 빠르기를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라고 악기팀에게 여러번 부탁드렸습니다. 

처음에 바이올린이, 탁월하게 정말 제가 딱 원하던 빠르기로 인트로를 시작하셨습니다. 의도적으로 바이올린만 들어가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1절이 등장하면서 모든 악기팀이 그리고 싱어팀이 연습한 대로 해 주셨습니다. 

3절에서 "주께서 밝히신 작은 촛불이" 부터 악기팀이 드라이브를 걸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그리고 4절 "이 고요함이 깊이 번져갈 때" 부터 정말 강하게 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이 부분도 저의 판단이었는데 매우 좋았습니다. 음악은 매우 드라마틱해지는데, "고요함이 깊이 번져간다"라고 싱어들이 고백할 때에 어떤 영적인 힘과 깊은 감격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성도님들의 평생에 마음에 남을 만한 폭발적인 느낌으로 4절을 해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정말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연습 때의 베스트를 백퍼센트로 잡는다면, 실제 집회 때에는 구십 퍼센트 정도를 해냈습니다. 정말 너무 행복했습니다

약간의 아쉬움은, 드럼의 심벌 계열을 좀 더 화려하게 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혹은 약간 더 느리게 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정말 좋았습니다. 제가 처음에 의도하고 기도한대로, 아마 성도님들의 마음 가운데 이 곡이 그리고 가사가, "선한 능력이 우리를 감싸신다"는 그 찬양의 메시지가 강하게 남았을 것입니다. 

강한 다이나믹이 끝나고, 마지막에 제가 솔로로 아주 조용하게 부른 부분은 의도적입니다. 인도자의 목소리를 평소에도 너무 많이 듣기 때문에 회중에게 지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원래 솔로를 좋아하진 않지만 의도적으로 넣었습니다. 아주 강한 다이나믹 이후에, 아주 약한 느낌으로 더 찬양의 내용을 마음에 깊이 남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잔잔하게 통성 기도로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을 담임 목사님의 통성 기도로 마쳤습니다. 

사실 후반부의 콘티에서 10분 정도를 더 끌 수 있었습니다. 끈다는 표현 보다는, 더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여지가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정면에 있는 시계를 보니 벌써 9시 20분이 되었더군요. 집회가 8시에 시작했으니 이미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9시 반은 상당히 늦은 시간입니다. 그리고 연세 드신 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마스크를 쓰시고 찬양하면서 탈진하는 상황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정말 아쉬웠지만 공동체 전체를 위해서, 약간의 아쉬움을 마음에 품고 반복을 약간씩 줄이는 형식으로 집회 시간을 최종적으로 조절했습니다.

* 찬양 집회를 마치며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라고 말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사운드는 사라집니다. 저는 이것이 너무 아쉽고 속상하고 허전합니다. 영원한 천국 속에서는, 영원한 사운드 속에서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그 순간의 감동과 감격, 그 순간의 눈물과 애틋함은 지금은 동일하게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기록으로 그것을 남기면, 훨씬 오래 가리라 생각합니다. 

찬양 인도를 준비하면서, 그리고 실제로 찬양을 하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합니다. 오랫동안 찬양 인도를 했지만, 아쉽게도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상세하게 해준 분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CFNI에서 Worship and Technical Arts 과정을 공부할 때에도, 이렇게 디테일하게 배우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지금 이 순간에도 동 시대에 함께 찬양 인도를 하는 많은 찬양 인도자들과 저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찬양팀 멤버로서 이 글을 읽는다면, 찬양 인도자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마음의 계획과 하나님과 팀원들을 향한 깊은 갈망들을 약간이나마 엿보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정도 수준으로 다시 섬길 수 있을까요? 아니, 다시 이런 기회가 저에게 올까요? 하나님께서는 펜데믹을 통해서 우리의 계획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면에서 오히려 우리의 계획과 노력은 더 빛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언제 기회가 찾아올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저에게 혹은 당신에게 찬양 인도와 찬양팀을 부탁한다면, 그때에는 망설임 없이 나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든 순간의 소중함을 알고, 끊임없이 전문적으로 준비하며, 섬길 그날을 위해서 바로 오늘 헌신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규모의 집회는 저의 능력을 넘어가는 것입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저는 가려주시고 오직 하나님께서 드러나시기를" 기도하면서 집회에 임했습니다. 이번 집회를 계획하게 하시고 완성하게 하시며 찬양을 부르게 하시고, 또 그것을 기뻐 받으신 하나님께만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 예찬 찬양 집회 1부 분석 (찬양 집회는 "연주력과 흐름"에 집중해야 합니다)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html

예찬 찬양 집회 1부 분석 (찬양 집회는 "연주력과 흐름"에 집중해야 합니다)

 

* 찬양 인도는 "기적"과 같은 것이다

저는 매주 설교를 하는 목회자입니다. 그러나, 설교보다 찬양 인도가 훨씬 어렵다고 느낍니다. 일단 설교는 팀 사역이 아니라 혼자 하는 것입니다. 물론 설교도 회중과의 교감이 중요하지만, 결국 설교자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몫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찬양팀은 팀 사역입니다. 내가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팀원 전체가 적절한 수준을 유지하면서 한 마음이 되어야만 성공적인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찬양 인도는 예배의 시작을 열기 때문에 부담이 됩니다. 사실 너무 어려운 자리입니다. 대부분의 집회에서 찬양팀은 집회의 시작을 여는 역할을 합니다. 설교자는 영적인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에 나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찬양 인도자와 찬양팀은 가장 어려운 시간에 가장 어려운 역할을 맡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몇 배의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찬양 인도는 누군가 알아주는 자리가 아닙니다. 잘해야 본전인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수 많은 요구 사항을 듣게 됩니다. 곡이 너무 최신이다, 곡이 너무 옛날 곡이다, 너무 느리다, 너무 빠르다, 더 열정적이면 좋겠다, 너무 열정적이다 등등 도저히 한번에 소화할 수 없는 부탁들을 동시에 받는 것이 찬양 인도자의 자리입니다. 

이런 수 많은 부담감을 안고 1시간 이상의 집회를 기획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솔직하게 그건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찬양 인도를 해보지 않은 분들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본인이 찬양 인도자의 자리에서 단 10분이라도 인도해 본 분이라면, 제 말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요즘에 유투브가 보편화 되면서 사람들의 착각은, "우리 교회도 이 정도는 찬양 해야 한다"라는 착각입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프로 가수들도 완성도 있는 곡을 한곡 라이브로 부르는 것이 쉽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경연 프로그램에 나와서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하는 가수들을 보면서도 우리는 그것을 애써 무시하고 삽니다. 한국 교회의 몇몇 팀들이 라이브 실황을 업로드 하면서, 이제는 우리 교회도 저정도는 해야 하지 않는가 라는 일종의 지나친 기대가 교회를 사로 잡고 있는 듯 합니다. 

음악의 어려운 점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단 시간 내에 업그레이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일 어려운 점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숙련되게 노래하고 악기를 다루기 위해서는, 최소 5년 이상은 꾸준하게 관심을 가지고 연습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실상 남들이 듣기에 그래도 괜찮은 정도로 들립니다. 감동적인 것도 아니고 그저 들을 정도의 수준이 목표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일주일 조차 끈기를 가지고 하지 못하는 현대인에게 있어서 찬양팀에 그렇게 헌신하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정말 가능할까요?

그런 면에서 항상 마음이 무겁습니다. 누군가를 설득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입니다. 찬양은 장기적인 사역이고, 너무나 어려운 것이며, 큰 헌신이 따른다라고 말하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별로 말을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짐을 얹는 것 보다는, 차라리 위로를 바라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 "로컬 처치"의 어려움

찬양 인도와 찬양팀 사역이라는 것이 원래 이렇게 어려운 것인데, 하물며 로컬 처치는 어떠할까요? 제가 공부했던 CFNI 는 전 세계에서 찬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악보도 못 보는데 너무나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기계처럼 드럼을 치는 청년도 보았습니다. 세상에는 천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곳은, 특별히 애를 쓰지 않아도 그저 찬양 한곡을 부르기만 해도 은혜가 됩니다. 화음이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그런 곳은 세상에 몇 군데 존재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로컬 처치입니다. 음정과 박자에 맞춰서 피아노를 쳐 줄 수 있는 분이 한명만 있어도 사실상 하나님의 은혜가 크게 임한 곳입니다. 반주자가 없어서 반주기를 틀고 찬양하는 곳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 많이 틀리는 반주 보다는 그저 반주기가 더 효율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듣기 좋은 코드를 연주할 수 있고, 그것을 음악적으로 살릴 수 있는 그런 반주자가 있다면, 목회자는 매주 감사 표현을 해도 모자르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함께 하는 반주자 분들에게 늘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런 저의 마음의 표현입니다. 

* "주제와 곡"을 정하면서

이번 찬양 집회를 위해서 저에게 주어진 1시간 20분 정도의 시간 속에서, 실제 찬양은 1시간 5분에서 10분 정도였습니다.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기도하면서 전체 11곡을 정했습니다. 최근의 찬양과 과거의 찬양을 적절하게 조화시키고, 주제 곡으로는 맨 마지막 곡인 "선한 능력으로"를 정했습니다. 

찬양 인도자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찬양 인도자는 찬양 인도 뿐 아니라 "전체 찬양팀의 방향"을 디렉팅 해야 합니다. 물론 악기 팀 디렉터가 따로 있다면 가장 좋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전체적인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찬양팀 리더입니다. 반주자에게 곡을 주면서 나는 이것을 하고 싶은데 분위기를 좀 정해달라라는 것은 사실 상당한 무리가 따르는 요구입니다. 왜냐하면 전체적인 방향을 정하고 끌고 나가는 것은 결국 인도자 본인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찬양 집회를 준비하면서 새로운 곡은 "입례", "예수 예수", "내 마음을 가득 채운", "주 예수 나의 산 소망", 그리고 "선한 능력으로" 입니다. 이 곡들은 5개월 전에는 제가 섬기는 교회에서는 단 한번도 불러본 적이 없는 곡들입니다. 전체 찬양 곡 중에서 거의 절반이 새로운 곡이라는 의미입니다. 너무 모험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적으로, 찬양 집회 때에 내가 너무 잘 아는 곡만 나오면 식상해 하고 또 새로움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어느 정도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5개월 정도 전부터 금요일 마다 있는 집회 가운데 곡을 연습하기 시작했습니다. 회중이 곡을 익힐 시간이 필요했고, 동시에 싱어분들도 함께 익힐 수 있도록 돌아가면서 곡을 넣은 것입니다. 큰 집회이기 때문에 몇주 전에 집중적으로 연습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오히려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기존의 금요 집회를 포함해서 연습을 하도록 스케쥴을 정했습니다. 저만의 노하우는, 예를 들어서 20분 찬양 인도라고 한다면 네곡 중에 세곡은 정말 너무나 익숙한 곡으로 넣고, 나머지 한 곡을 새로운 곡으로 넣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곡을 배치하면 큰 장점이 있습니다. 성도님들이 자신이 너무 익숙한 곡들로 부르다가 새로운 곡을 만나기 때문에, 그렇게 낯설어하지 않습니다. 찬양 인도자가 자신들을 무시한다고 거의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전 곡인데 내가 몰랐다 라고 생각합니다. 최대한 마음에 저항감을 낮추기 위해서는, 새로운 곡을 아주 오래된 곡 사이에 넣어서 저항감을 줄여야 합니다. 물론, 아주 오래된 곡을 식상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 한 곡에 코드 하나 정도는 변환을 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 찬양 집회의 "목표"

이런 과정을 거쳐서 최종적으로 집회가 시작되기 한 두주 전에는, 적어도 금요일에 꾸준하게 오시는 분들은 집회의 곡을 다 익힌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오해는, "찬양 집회 한번으로 온 교회를 뒤집겠다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됩니다. 기적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그러나 현실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예를 들어서, 평생 한번 찬양 집회에 온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찬양 집회에 오셨다면, 그분은 집회 곡의 대부분을 단 한번도 불러본 적이 없을 가능성이 거의 백퍼센트입니다. 현실적으로 어안이 벙벙하다가 집에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목표는, 제가 이끄는 찬양팀 멤버들이 먼저 은혜를 받는 것, 그것이 가장 우선 순위이고, 그 다음이 금요일에 자주 오시는 분들이 좀 더 새롭게 준비된 모습으로 깊이 찬양을 경험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습니다. 

* "실질적인 곡 흐름"을 구성하기

그렇다면 곡의 구성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메뉴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보통 예배로 나아감 => 죄를 회개함 =>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 => 주님의 은혜에 대한 고백 => 결단 정도의 흐름이면 좋습니다. 순서는 약간 바뀔 수 있지만, 대부분 저는 이 정도 흐름을 염두에 둡니다. 

다만 혹시 인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리고 싶은 것은, "곡의 주제보다 곡의 코드 흐름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단지 네곡으로 찬양 인도하는데, 네 곡이 전부다 코드가 다 달라서 끊어져야 한다면, 혹은 코드를 연결해도 너무 어색해서 이질감이 크다면, 사실상 그 찬양 인도는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음악은 끊어져서는 안됩니다. 세컨이 있다면 세컨이 패드를 계속 눌러줘야 합니다. 메인 건반은 끊임없이 연결되는 코드를 짚고 있어야 합니다. 

찬양 인도는 흐름이 너무나 중요하며, 흐름은 때론 주제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찬양 인도에서 "인도"를 앞세우지 말고 "음악"을 더 앞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찬양 집회는 설교의 시간이 아니라는 것이 저의 철학입니다. 그래서 가급적 멘트는 줄여서 합니다. 찬양의 메시지가 중요하지만, 메시지로 설교를 해서는 안됩니다. 음악에 메시지를 입혀야 합니다. 그러므로 "음악적인 흐름"이 먼저입니다. 이번 집회는 한시간이 넘기 때문에 부득이 완벽하게 다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실제로 콘티를 다 연주해 보고 제가 직접 정해서 적절한 곳에서 끊고 멘트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저의 목표는 모든 콘티들이 음악적으로 최대한 이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 "전체 곡 진행"에 대한 이해와 구성 / 1) 입례

최근에 한국 교회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팀은 위러브입니다. 너무 한국적이지도 너무 미국적이지도 않은 정말 세련된 팀 색깔과 음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입례는 처음 듣고 완전히 반했던 곡입니다. 처음에 집회를 열어 가기에 좋은 곡입니다. 

보통 저는 긴 집회에서는 통성 기도로 시작합니다. 통성 기도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반주를 하는 악기팀의 정보량을 많이 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시작할 곡의 인트로를 여러번 반복하면 성도님들이 들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멜로디 라인을 따라가느라 기도가 어렵습니다. 

사실 이번 집회 때에는 통성 기도 때에 일렉 기타가 라인을 들어가면서 약간 정보량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제 마음에 일렉이 자유도를 어느 정도 갖기를 원했기 때문에 이 부분은 제가 추가로 컨트롤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전략적으로 최대한 음의 정보량을 줄여서 다순하게 G => Gsus4를 반복해서 연주하면서 통성 기도를 이끌었습니다. 

통성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보통의 집회에서는 리더가 마이크를 적당히 사용해서 같이 기도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훨씬 자연스럽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제 목이 상하지 않는 정도로 함께 기도하면서 은혜의 분위기를 준비해갑니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곡이 시작됩니다. 이미 연습한 대로 저의 사인에 맞춰서 바이올린 연주가 인트로로 들어갑니다. 악기팀 디렉터가 계셨기 때문에 논의를 많이 했습니다. 사실 제가 섬기는 찬양팀의 세션들은 다 프로급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축복입니다. 찬양의 첫 시작은 저도 굉장히 긴장이 됩니다. 그리고 입례가 특히 어려운 곡입니다. 시작음인 "우리"에서 같은 음을 높이를 맞춰서 내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많이 연습했는데 시작 점을 싱어분들이 한번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아쉽습니다. 그래도 이정도면 훌륭합니다. 

* 찬양팀 음악의 아름다움은 어디서 오는가? by 싱어의 역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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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에서 주장한 것 처럼, 저는 찬양팀의 생명은 "싱어"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악기들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만약 싱어들이 완벽하다면, 피아노 한대와 기타 한대만으로도 최고로 훌륭한 찬양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는 30분 까지도 은혜롭게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약강을 조절할 수 있고, 멜로디 틀리지 않으면서 감성을 자신의 발성에 담을 수 있다면 최고의 싱어입니다. 

이번 전체 집회를 평가한다면, 제가 싱어 분들에게 부탁드린 80퍼센트 이상을 해 주셨습니다. 음악에 매일 매진할 수 없는 일반인의 기준으로 보자면 정말 대단한 수준입니다. 찬양팀 싱어로 서는 것은, 노래방에서 내가 마이크 잡고 한곡 부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입니다. 

라이브 음악은 살아 있어서 변화무쌍합니다. 막상 무대에 올라가서 라이브로 풀 밴드로 반주가 나오는데 내가 내 노래를 붙잡고 부른다는 것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정말 기적과 같은 수준입니다. 물론 저의 팀의 싱어분들도 흔들린 부분들이 많았지만, 당장 하루 이틀에 해결될 부분은 아닙니다. 만약 이분들이 앞으로 5년에서 10년을 더 노력한다면, 그 때에는 더 놀라운 모습을 보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입례의 경우, 원곡에서는 "우릴 채우시리라" 마지막 부분에서 끝음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처음이 시작됩니다. 저는 사실 그것이 굉장히 어색하다고 느껴졌습니다. 레코딩 상황에서는 끝음과 첫 음이 겹치면서 멋이 있지만, 실제로 라이브 상황은 어색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충분히 뒤를 더 끌고 다시 앞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미 건반, 드럼과 오래 함께 했기 때문에 리더인 저도 박자를 세면서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저 몸이 가는대로 함께 들어가도 다른 악기들과 거의 완벽하게 맞습니다. 지금 계산해 보니, 마지막 마디 포함해서 8박을 세고 다시 앞으로 돌아갑니다. 

자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과연 얼만큼 찬양곡을 반복할 것인가" 입니다. 저는 바로 이 부분이, 찬양 인도자의 "역량의 꽃"이라고 생각합니다. 찬양을 반복하는데 있어서 고려해야 하는 수 많은 변수가 있습니다. 실제로 인도하다보면 성령님께서 뜨겁게 감동을 주실 때가 있고, 청중들의 목소리가 더 커지면서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찬양팀 자체가 은혜를 받아서 곡이 뜨거워지는 때가 있습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계획과 사전 연습에서는 충분히 반복이 좋고 혹은 더 반복하고 싶었는데, 실제로 집회로 들어가니 그 곡을 부르는 청중들이 힘이 없거나, 혹은 부르는 찬양팀이 그 곡을 더 지탱하기가 어렵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결국 찬양 리더는, "이 모든 것을" 아주 세밀하게 듣고 느끼고 살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찬양 인도자의 머리 속에 수십가지 생각이 동시에 스쳐 지나갑니다. 이번에 한번 더 반복할까? 아니면 다음 곡으로 갈까? 두번 더 반복하면 다음 곡이 규모가 더 있는데 혹시 다음 곡이 더 약해지는 것 아닐까? 악기 팀에게 싸인을 지금 드릴까? 악기팀은 여전히 다이나믹을 살리고 싶어하는데 싱어팀이 무리가 되더라도 좀 더 반복하는 것이 좋을까? 이 모든 것을 귀로 듣고 판단하면서 인도해야 합니다.

거기다가 곡이 반복된다면, 반복을 위한 일종의 전략이 필요합니다. 만약에 악기팀이 연주력이 좋아서, 두번째 반복을 리듬과 화음적인 측면에서 변화를 줄 수 있다면 가장 좋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리더는 자신의 멘트를 통해서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이번에 예찬 집회 중에 저의 멘트를 보시면 "동일한 멘트"가 거의 없습니다. 악보를 최대한 키워서 출력하기 때문에 공간이 없어서 악보에 적어 놓지는 않았지만, 저 혼자서 연습하면서 이미 플랜을 짜서 어떤 멘트를 할 지 충분히 숙지한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그 타이밍에 나온 것입니다. 이번 집회는 멘트가 어색하지 않고 평소보다 좋았다고 자평하고 싶습니다. 멘트는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음악의 박자에 잘 맞아요 합니다. 아주 어울리는 박자에 어울리는 짧은 그 신선한 멘트로 인해서 집회의 분위기가 바뀝니다. 

이번 집회는 한 시간 정도의 집회였기 때문에, 한 곡이 은혜가 된다고 해서 너무 지나치게 반복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어떤 절정을 맛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큰 그림을 가지고 리더는 접근해야 합니다. 제가 세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입례는 네번 정도 반복한 듯 합니다. 만약 저에게 어디까지 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열번 정도까지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번은 네번으로 족합니다. 

2) 그 사랑

다음 곡인 마커스의 그 사랑은, 거의 실패가 없는 곡입니다. 물론 난이도는 높습니다. 여성 분들에게 높은 키입니다. 그러나 워낙 멜로디가 아름답고 가사가 탄탄해서 모든 성도님들이 좋아하십니다. 앞에 곡과 이어서 하기 좋게 G키 곡으로 연결했습니다. 찬양 콘티를 짜다 보면 G, A, D 키 곡들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래서 찬양 인도자는 이 세가지 키 가운데, 자신에게 가장 자신 있는 필살기와 같은 곡들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찬양팀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것이, 큰 사운드로 앞의 곡이 끝나고, 바로 뒤에 곡을 잔잔하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찬양 집회에서 다이나믹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것은 곡 안에서의 다이나믹과, 곡과 곡이 이어지는 다이나믹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살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사실상 거의 5년을 이것을 위해서 연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제서야 만족할 정도의 다이나믹을 특히 싱어들이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입례가 매우 강렬했지만, 그 사랑이라는 다음 곡으로 너무 부드럽게 잘 넘어 갔습니다.

함께 섬기는 드럼이 워낙 밸런스 조절이 좋습니다. 일단 이번 집회에서는 전체적으로 두번 반복 그리고 필요하다면 후렴 한번 더 정도로 플랜을 짰기 때문에 큰 무리 없이 곡이 진행이 됩니다. 제가 한 것 처럼, 중간 중간에 가사를 불러 드리는 것은 정말 감각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보통 1절에서는 하지 않고 그대로 곡을 따라 부릅니다. 그리고 두번째 정도에 그 가사를 리마인드 하는 것이 좋겠다 싶을 때 사용합니다. 이것도 오랜 동안 찬양 인도를 하면서 익힌 부분입니다.

원래 저는 그 사랑을 부를 때에 화음을 많이 넣곤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집회의 풀 밴드의 상황에서는 제 역할을 조절을 하는 것이 훨씬 좋겠다고 느꼈습니다. 이미 화음은 악기들이 충분히 채워 넣었습니다. 그래서 화음은 최대한 자제하고 멜로디에 집중하면서 집회 전체를 이끌어가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었습니다. 

실제로 집회로 들어가면 정말 중요한 부분은 "반복의 싸인"을 어떻게 할 것인가? 입니다. 수신호를 할 수도 있고, 입모양으로 무언으로 사인을 줄 수도 있습니다. 여러가지로 시도해 보았지만 저 같은 경우는 "마지막으로" 라는 싸인을 사용합니다. 그럼 찬양팀 전체가 이제 마지막 반복이라는 것으로 인지하고 가급적 최고의 다이나믹을 가지고 후렴을 반복하게 됩니다. 훈련이 잘 된 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물론 이렇게 한번 한 다음에 리더 입장에서 조금 부족하다 싶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당황할 필요 없이 "마지막으로" 라고 한번 더 싸인을 드리면 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끝날 때 즈음에는 영상처럼, 리더는 반드시 드럼 쪽 혹은 건반 쪽으로 보면서 시선을 맞춰서 곡이 마무리 된다는 싸인을 드려야 합니다. 

3) 임재 

그리고 이제 임재로 이어집니다. 첫 곡이었던 "입례" 성향 상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역사하여 주시기를 바란다"라는 맥락에서는 아주 좋은 선곡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앞에 곡에서 G => E => A 로 이어지는 흐름이 아주 좋았습니다. 

예를 들어서 20분의 찬양 인도를 하게 되면, 어느 시점에서는 은혜를 끼쳐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1시간의 집회이기 때문에 너무 급하게 이 곡을 달려갈 필요는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차분하게 가사를 음미하면서 부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물론 이러한 차분한 찬양은 전적으로 싱어들의 역량이 받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강하게 부르는 것은 쉽지만, 약하게 부드럽게 부르는 것이 어렵습니다. 특히 임재와 같은 곡에서 "이곳에 오셔서~"와 같은 끝음을 애매하게 빼는 부분은 부르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곡 자체만 놓고 아주 냉정하게 표현하자면, 약간 맥이 빠지는 형태입니다. 그런 면에서 싱어들이 그곳을 잘 처리하고 악기가 받쳐주어야 하는 곡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싱어팀에서 감사하게 잘 소화해 주셨습니다.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에 이 곡을 인도하면서 "주님의 이름이"라는 부분이 굉장히 크게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영상에서 보시는 것 처럼 그 부분에 대한 맨트를 여러번 반복하면서 강조했습니다. 일종의 메시지의 강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드러나는 것은 성경을 관통하는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이것에 대한 인식은 평소의 저의 성경 통독과 묵상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이 찬양 인도 가운데 발현된 것입니다. 

음악적으로는, 후렴을 많이 신경썼습니다. 특별히 세컨 건반으로 참여하신 객원 세션이 후렴의 코드를 마지막에 바꾸신 부분이 참 좋았습니다. 제가 추가로 제안해서 더 드라마틱하게 바뀌었습니다. 굉장히 듣기 좋게 들립니다. 그러면서 두번을 후렴을 하면서 다음 곡으로 넘어갑니다. 

4) 나의 백성이 (후렴으로)

느린 곡을 연속해서 부르는 것은 굉장히 좋기도 하지만, 굉장히 위험성이 큽니다. 자칫하면 분위기가 지루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몇가지 방법이 있겠습니다. 가장 무난하게는 한 곡을 마무리하고 다음 곡을 연결하는 경우입니다. 그리고 한 곡을 마무리하고 키를 올려서 다음 곡을 하는 경우입니다 (다음 곡의 원키가 더 높은 경우). 이런 경우 훨씬 지루함이 없어지고 신선한 느낌이 듭니다. 혹은 한 곡을 후렴에서 다이나믹을 그대로 살려서 다음 곡 후렴으로 연결하는 경우입니다. 가장 드라마틱한 연결이 가능한 경우입니다. 이번 집회는 마지막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임재"에서 "나의 백성이"로 연결하면서는 후렴으로 바로 넘어 갔습니다.

"집회에서 멘트의 사용"은 양날의 검입니다. 찬양 집회는 설교의 시간이 되어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멘트가 없으면 집회가 살아나지가 않습니다. 영상에서 보시는 것 처럼, 이번에 나의 백성이로 들어가는 약 두마디 정도 안에 "아주 짧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넣었습니다. 

물론 집회 전에 어느 정도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저도 이렇게 까지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임재와 나의 백성이는 전혀 연결이 될 수 없는 곡 처럼 느껴질 수 있는데, "우리를 주님 앞에 정결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라는 이 멘트를 통해서 다음 곡의 성격이 정해진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굉장히 자연스럽게 연결되었습니다. 

제가 중간에 하는 멘트 혹은 즉흥적인 찬양 라인을 넣는 것은 따로 롤 모델은 없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찬양 인도자는 Ron Kenoly입니다. 다만 저 같은 경우는, 가사를 일반적인 어조로 강하게 불러주는 것, 그리고 찬양 라인을 즉석에서 만들어서 넣는 것을 번갈아가면서 사용하는 편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Ron Kenoly를 조금은 따라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곡을 평소에 많이 부르고 또 연습을 종종하지만, 의도적으로 이때 노래로 만들어서 즉석에서 넣어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하지는 않습니다. 많은 부분이 즉흥적이고 또 이런 부분은 충분히 성령님의 역사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나의 백성이 후렴을 연결하고 "딱 한번만" 후렴을 하고, 그 이후로 벌스로 돌아가서 불렀습니다. 물론 두번 정도 후렴을 할 수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다이나믹을 줄여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훨씬 좋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이런 다이나믹 조절에서 드럼의 역할이 정말 큽니다. 

그리고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찬양팀과 회중에 대한 배려이기도 합니다. 나의 백성이의 경우에는 굉장히 대곡입니다. 은혜 가운데 불러도 거의 백퍼센트 지칩니다. 그래서 분위기를 극도로 끌어 올리기 보다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오히려 이득이 되었습니다. 지금 내가 부르는 부분도 중요하지만, 뒤에 이어질 부분도 중요하기 때문에 항상 찬양 인도자는 전체를 머리 속에 넣고 있어야 합니다.

영상에서 보시면, 약간 무난하게 1절을 부르고 2절을 넘어갑니다. 그래도 충분히 좋았습니다. 너무 모든 곳에 액센트를 넣으면 정작 강하게 해야 할 곳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집회 때에 제 느낌은, 1절 후렴으로 가면서 오히려 성도님들이 더 강하게 부르고 싶어 하셨는데, 그런 분위기에 흔들리지 않고 찬양팀 전체가 자신들의 페이스를 유지해서 참 좋았습니다. 

2절로 넘어갈 때에 보통 "2절로 합시다" 라는 표현은 잘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곡은 연습 때에는 사실 1절만 놓고 거의 연습했기 때문에 악기 팀에게 확실히 싸인을 드리는 것이 필요해서 이렇게 한 것입니다. 2절의 가사의 경우에는 정말 깊은 가사이기 때문에, 영적인 겸비함에 대한 강조를 위해서 가사를 많이 언급하면서 멘트를 했습니다. 

그리고 통성 기도를 합니다. 통성 기도의 경우, 보통은 "이때에 통성 기도를 하겠다" 라고 찬양팀과 약속을 합니다. 전형적인 경우에는, "후렴을 건반이 메인이 되어서 연주"하거나 혹은 "근음이 되는 키로 코드 연주"를 단순하게 합니다. 

이번의 경우에는 원래 계획은, 통성 기도 멘트가 시작되면 후렴을 연주하기로 했지만, 분위기가 맞지 않아서 메인 건반이 빠르게 잔잔한 후렴으로 전환하였습니다. 메인 건반의 집회에 대한 집중도가 엄청나고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이 보이는 부분입니다. 이런 분이 함께 한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가 통성 기도 멘트를 마무리하면서 메인 건반에 맞춰서 저의 어쿠스틱 기타로 타고 들어갔습니다. 그러면서 드럼이 잘 들어오셨고 또 일렉이 잘 맞춰 주셨습니다. 

이번에 일렉으로 함께 하신 분은 정말 탁월한 연주자입니다. 보통은 일렉이 없어도 좋았지만, 확실히 일렉이 있으면 통성 기도 타이밍에 힘이 있습니다. 저는 통성 기도를 짧게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성도님들도 기도할 시간이 충분히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곡의 경우에는 후렴이 길었지만 일부러 끊지 않고 충분히 기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드렸습니다. 당연히 기도 이후에 후렴으로 타고 들어오기 위해서는, 리더가 그 타이밍을 잘 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후렴 전체를 무려 두번 반복할 때까지 기다리고 마지막으로 후렴으로 한번 더 불렀습니다. 

아마 리더로 섬기시는 분들은 늘 느끼겠지만, 어떤 곡이든지 마지막에 끝날 때가 참 어렵습니다. 좋은 방법은 "충분히 점점 느리게"로 끝나는 것입니다. 연습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냥 비슷한 빠르기로 끝나면 어색합니다. 좀 과장되게 충분히 느려지면서, 건반도 코드를 잡은 손을 때지 말라고 부탁드리면서, 어쿠스틱 기타도 부드럽게 스트록으로 끝나면 자연스럽게 끝낼 수 있습니다. 

5) 생명 주께 있네 + 6) 기뻐하며

아마 한국 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가장 좋아하고 친숙한 빠른 곡 두곡입니다. 인트로는 제가 코드만 만들고 나머지는 세션 분들이 알아서 채워 주셨습니다. 만들어오신 일렉 라인이 정말 환상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찬양팀의 큰 오해가 "멋진 인트로"에 대한 오해인 듯 합니다. 인트로가 최대한 화려하고 멋져야만 빠르 곡을 신나게 혹은 느린 곡을 멋지게 할 수 있다는 오해입니다. 물론 멋진 인트로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꼭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만든 인트로는 C D Em X 3 => Dsus4 D 입니다. 굉장히 단순합니다. 물론 일렉이 있어서 이번에 더 멋졌지만, 평소에도 딱 이 코드로 진행했을 때에 크게 부족하다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만약에 보통의 경우처럼 그 곡의 후렴으로만 인트로를 들어가는 것은 많이 밋밋하겠지만, 심플한 코드로 인트로로 들어가도 충분히 좋습니다. 

가창의 경우에는, 저 같은 경우는 빠른 곡은 싱어분들이 오히려 스타카토 처럼 불러 달라고 부탁드립니다. 빠른 곡을 발라드 처럼 부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머라이어 케리는 제외입니다. 머라이어 케리 곡을 최근에 들으면서, 아주 섬세하게 부드럽게 이어지는 호흡 속에서 맞추는 리듬감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저 역시 머라이어 케리가 아니기 때문에, 무조건 끊어서 부릅니다.

"기뻐하며 왕께"로 이어지는 인트로는, 악기팀 디렉터로 섬기신 베이스께서 제안하신 것입니다. 기뻐하며 왕께의 첫째 줄을 가지고 인트로 라인을 만든 것입니다. 특히 이 두 곡의 빠른 곡은 세컨 건반으로 섬기신 객원 세션께서 정말 잘해주셨습니다. 음악을 전공하시고 이미 연주 경험이 풍부한 분이라 엄청나게 큰 서포트가 되었습니다. 

이번 전체 집회에서 세컨 건반에게 부탁드린 것은, 가급적 모든 화음에서 패드 계열로 부탁드린 것입니다. 집회 전체 가운데 소리가 풍성하게 차 있기를 원했습니다. 물론 이걸 위해서는 엔지니어와 모니터가 받쳐 줘야 합니다. 감사하게도 잘 소화해주셨습니다.

코드에서 살짝 변환이 있었는데 "능력 주께 있네" 그리고 "소망 주께 있네" 는 A/G, Cm6/G로 제가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귀한 나의 예수님 찬양합니다"는 B/Eb, E로 제가 바꾸었습니다. 특별히 화성악을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리를 말하기는 어렵지만, 제 마음 속에 있는 코드로 이렇게 바꾸는 것이 더 곡이 새롭게 들리겠다 싶어서 바꾸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참 좋았습니다. 

7) 예수 예수 

빠른 곡 두곡이 끝나고 1부를 마무리하는 느린 곡인 "예수 예수"가 이어집니다. 이번 전체 집회를 통해서 가장 큰 곡 중에 하나였습니다. 빠른 곡이 마무리되면서 원래 어노인팅의 인트로를 그대로 따라 들어갔습니다. 처음 시작이 당김음으로 건반이 연주 되어야 하기 때문에, 메인 건반이 참 쉽지 않은 곡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무난하게 지나갔습니다. 

제가 섬기는 팀의 가장 큰 장점은, "바이올린"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팀마다 상황이 다를 것입니다. 전공을 하셨고 오랫동안 함께 하신 권사님이시기 때문에 정말 저의 손발처럼 맞춰 주십니다. 연주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듣기만 해도 은혜가 됩니다. 제 바로 옆에서 사운드와 연주가 정말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보통 이런 멜로디 라인을 준비할 때에 일렉과 바이올린이 겹칠 수 있는데, 사전에 조율해서 바이올린이 할 부분 또 일렉이 할 부분을 철저하게 나누어서 준비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섬기는 팀은 서로가 서로를 세워주는 귀한 분들입니다. 일렉이 솔로로 들어갈 경우에는, 가급적 바이올린은 솔로 라인은 피하고 해당 마디의 코드 안에서 길게 연주해 달라고 미리 부탁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이번 집회에서 지금까지 불렀던 곡들은, 반복을 할 여지가 여기저기에서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예수" 이 곡은 거의 짜여진 순서대로 가는 것이 가장 좋게 느껴졌습니다. 딱 완벽하게 좋게 이미 짜여진 곡입니다. 그래서 곡의 순서를 어노인팅의 원곡대로 거의 동일하게 갔습니다. 

세션의 부분에서는 특별히, "브릿지 넘어가는 부분에서 합"을 맞추는 것을 여러번 연습했습니다. 풀 밴드의 셋팅에서는 결국 연주의 합이 맞아야 어떤 음악적인 완성도가 높아지는데 그런 부분에서 이번 집회는 굉장히 다양한 부분에서 합을 맞추고 연습을 했습니다. 악기팀 디렉터로 섬기신 베이스 주자가 워낙 경험이 많으셔서 좋은 제안을 많이 해주셨고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 집회 전체를 2부로 나눈다면 언제 1부가 끝나야 할까?

"예수 예수"로 1부가 끝이 났습니다. 이번에 정말 고민했던 부분이 과연 어느 정도 곡을 부르고 1부를 마무리해야 하는가 였습니다. 담임 목사님의 설교를 10분 정도로 예상 했는데, 체감상 전체 콘티의 약 2/3를 마치면서 1부를 마무리를 했습니다. 

예전에는 1부를 조금 짧게 하고, 설교 이후에 본격적으로 2부로 찬양하는 것으로 흐름을 짰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해보니, 그것보다는 1부에서 찬양을 정말 충분히 하고 그 이후에 설교를 듣는 것이 훨씬 좋다는 것입니다. 이미 일곱 곡을 불렀기 때문에 찬양팀도 휴식이 절실히 필요하고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몸은 휴식하면서 또 영혼을 채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미 모든 주제와 흐름에 대해서 담임 목사님께 상의 드렸기 때문에, 선한 능력으로 주제에 맞춰서 설교를 해 주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찬양 인도자는 항상 담임 목사님과 좋은 커뮤니케이션을 가져야 합니다. 결국 교회는 하나의 영적인 흐름으로 가야하는 것이며, 찬양팀의 모든 사역은 담임 목사님의 목회를 돕는 방향으로 진행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2부 분석으로 이어집니다.

* 예찬 집회 2부 분석 (대 곡을 소화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2.html

2022년 6월 4일 토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83) - 옷자락에서 전해지는 사랑

 

1. 가사 살펴보기

오래 전부터 날 누르는 내 안의 깊은 절망
아무 희망도 어떤 기대도 내겐 없는데
사람들의 외면과 날 거절하는 눈빛
아픈 상처로 짙은 어둠으로
깊이 빠져만 가는데 

어디선가 내게 들리는
하나님 아들 주님 이야기
그 분이라면 그의 옷자락이라도
내 마지막 소망이니 

주님을 만났네 옷자락에서 전해지는 사랑
내게 임한 주님의 능력
날 누르는 아픔의 근원을 고치셨네
날 바라보시네

나의 연약함 주님은 아시네
깊은 절망에서
날 자유케 하신 사랑 나 찬양해 


2. 곡 소개

이 곡은열두해를 혈루증을 앓은 여인의 믿음과 치유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찬양이다동일한 주제를 다루는 주의 옷자락 만지며라는 찬양도 귀한 찬양이지만성경의 메시지를 더 선명하게 드러낸 곡은 옷자락에서 전해지는 사랑” 이라고 말할 수 있다이 곡은인간의 눈으로는 어떤 희망도 없는 곳에서오직 예수님 안에서 소망을 두고 오직 그분을 믿고 치유함을 받은 기적의 사건을너무나 아름답게 노래하는 탁월한 찬양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누가복음 8:43 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8:43 And a woman was there who had been subject to bleeding for twelve years, but no one could heal her. 8:44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8:44 She came up behind him and touched the edge of his cloak, and immediately her bleeding stopped. 8:4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 다 아니라 할 때에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무리가 밀려들어 미나이다 8:45 "Who touched me?" Jesus asked. When they all denied it, Peter said, "Master, the people are crowding and pressing against you." 8: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 8:46 But Jesus said, "Someone touched me; I know that power has gone out from me." 8:47 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리어 그 손 댄 이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말하니 8:47 Then the woman, seeing that she could not go unnoticed, came trembling and fell at his feet. In the presence of all the people, she told why she had touched him and how she had been instantly healed. 8: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개역개정8:48 Then he said to her, "Daughter, your faith has healed you. Go in peace." (NIV)

혈루증(血漏症bleeding 개의 헬라어가 사용되는데, ‘뤼시스 하이마토스 ‘피의 유출이란 뜻으로 만성 자궁 출혈병을 가리킨다 하나는 ‘하이모르로에오인데, ‘하이마’() ‘레오’(흐르다) 합성어로 한번 하혈하면 멈추지 않고 출혈이 지속되는 부인병을 말한다레위기 정결 규례에 의하면혈루증은 월경하는 여인의 부정함과동일하게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어 사람들과의 접촉이 금지되었다( 15:25–30). 성경에서는 12 동안 혈루병을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짐으로 나음을 얻었다는 기록이 있다( 9:20–22;  5:25–34;  8:43–48).

가스펠서브라이프 성경사전 (서울시 종로구 경희궁1 5-9(03176): 생명의말씀사, 2006), 1060.

8:43 a discharge of blood. Lit. “a flow of blood.” The woman’s condition makes her ceremonially unclean (Lev. 15:25, where the same phrase, “a flow blood,” occurs), cutting her off from many social relationships and excluding her from religious gatherings in synagogues and the temple혈루증은 문자적으로 피가 흐르는  의미합니다 여인의 상태는 그녀를 의식적으로 부정하게 만들었고 그녀를 많은 사회적 관계에서 차단하고회당과 성전의 종교적인 모임에서부터 배제하게 하였습니다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1802.

8:44 touched the edge of his cloak. Even contact between an unclean person and another’s clothes rendered ritually impure the person whose clothes were thus contaminated (Lev 15:26–27). Here the effect is the opposite: she is cleansed. See note on Mk 5:27. 그의 옷가에 손을 대니 심지어 어떤 사람의 옷이 부정한 사람과 접촉하는 것으로도 의복이 더렵혀진 사람을 의식적으로 부정하게 만듭니다여기서  효과는  반대로 일어납니다오히려 그녀가 깨끗해졌습니다

Craig S. Keener and John H. Walton, eds., NIV Cultural Backgrounds Study Bible: Bringing to Life the Ancient World of Scriptur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6), 1763.

As a doctor, Luke was especially sensitive to the fact that this woman had spent all her resources on doctors and yet could not be healed. Even with the crowd pressing against Jesus from all sides, he was immediately aware of the touch of the woman who was instantly healed of her bleeding. No explanation is given for how he knew that healing power had gone out from him. 누가는 의사였기 때문에 여인이 자신의 모든것을 의사에게 주었지만 고칠  없었다는 사실에 특히 민감했습니다군중이 사방에서 예수님을 밀고 있는 가운데에서도예수님은 혈루증에서 고침을 받은 여인의 손길을 즉시 알아차렸습니다.

Craig A. Evans, “Messianic Expectations,”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622–1623.

As Jesus travels to the leader’s house, a woman ill with uncontrolled bleeding touches the edge of his cloak. The description of the woman highlights her predicament and helplessness—for the past 12 years no one has been able to heal her. Once she touches Jesus, however, her hopelessness comes to an end. In front of the crowd the woman testifies at the feet of Jesus why she touched him and how she was immediately healed. Jesus’ statement explains what has taken place and identifies faith as the means by which his saving power is received (v. 48; cf. 7:50).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으로 가실 때에혈루증을 앓는  여인이 그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습니다 여성에 대한 묘사는 그녀의 곤경과 무력감을 강조합니다지난 12 동안 아무도 그녀를 고칠  없었습니다그러나 그녀가 예수님을 만지면서 절망은 끝이 납니다사람들 앞에서 여인은 예수님의  앞에서  예수님을 만졌는지 그리고 어떻게 즉시 치유되었는지를 증언합니다예수님의 말씀은 일어난  일을 설명하시고구원의 능력을 받는 수단으로서의 믿음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Alan J. Thompson, “Luke,” in The NIV Grace and Truth Study Bible, ed. R. Albert Mohler Jr. (Grand Rapids, MI: Zondervan, 2021), 1404–1405.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이 정말 탁월한 이유는성경의 메시지의 핵심을 매우 잘 드러냈기 때문이다여인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었다그 어떤 의사도 능히 여인을 고칠 수 없었다.여인은 자신의 병으로 인해서무려 12년 동안 사람들과 제대로 접촉할 수도제대로 예배를 드릴 수도 없는 너무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살고 있었다아마도 그녀의 삶은 너무나 고독하고 고통스러운마치 죽은 것과 방불한 삶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인이감히 예수님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다이것은 매우 충격적인 행동인데구약의 말씀에 따르면 부정한 사람이 누군가의 옷이라도 만지면 오히려 그 상대방이 부정하게 되기 때문이다그런데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놀랍게도부정한 여인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분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을 때에오히려 여인의 병이 기적적으로 온전히 치유되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치유된 여인은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행동의 이유와 회복을 떨며 말하였다예수님은 이 여인이 치유된 것은단순히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은 그 믿음으로 인하여 치유 받았고 구원 받았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해 주셨다.  

그러므로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또 이 찬양을 통해서 믿고 누릴 수 있는 진리는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유일하고도 진정한 구원자이시며 치유자라는 사실이다우리의 삶이 어떤 절망의 상황이라 할지라도믿음으로 예수님 앞에 나아갈 때에 주님의 때에 그분이 반드시 치유하실 것이며 그분이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마땅히 우리는 가장 힘든 상황 속에서도 오직 믿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며치유하셨고 또 앞으로 치유하실 주님을 마음을 다해서 사랑하고 또 그분을 찬양해야 할 것이다

삶으로 드리는 찬양 프로그램 전체 곡의 묵상을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2년 3월 20일 일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74) - 주의 옷자락 만지며

 

1. 가사 살펴보기

주 발 앞에 무릎 꿇고 그 사랑에 나 안기네
어떤 말도 그 어떤 소리도 그 발 앞에서 잠잠해지네
주 나의 사랑 그 발 앞에 앉아
내 모든 기도는 사랑의 노래가 되네 

주의 옷자락 만지며 주의 두 발을 씻기며
주님 그 발에 입 맞추며 나의 왕관을 놓으라 


2. 곡 소개

이 곡은 어노인팅 찬양팀을 통해서 널리 알려졌지만원곡은 남미 워십 3언약의 하나님에 수록된 곡이다이 곡은열두해를 혈루증을 앓은 여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그 누구도 고치지 못했던 병이지만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나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고그 믿음으로 기적의 치유함을 받은 여인의 이야기를 너무나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는 찬양이다 

“남미워십의 매력에 푹 빠져보실래요?
http://www.goodnews1.com/news/articleView.html?idxno=45390 


3. 말씀으로 바라보기

마가복음 5: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5:25 And a woman was there who had been subject to bleeding for twelve years. 5: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5:26 She had suffered a great deal under the care of many doctors and had spent all she had, yet instead of getting better she grew worse. 5: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5:27 When she heard about Jesus, she came up behind him in the crowd and touched his cloak, 5: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5:28 because she thought, "If I just touch his clothes, I will be healed." 5: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5:29 Immediately her bleeding stopped and she felt in her body that she was freed from her suffering. 5: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5:33 Then the woman, knowing what had happened to her, came and fell at his feet and, trembling with fear, told him the whole truth. 5: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개역개정5:34 He said to her, "Daughter, your faith has healed you. Go in peace and be freed from your suffering." (NIV)

5:25–26 This woman had a severe medical problem. She had suffered from bleeding for twelve years(5:25). But she also had a severe financial problem. She had spent everything she had on doctors who were unable to help (5:26). Though Mark doesn’t mention it, she also had a severe religious problem. Leviticus 15:25–27 indicates that the woman would have been ceremonially unclean during the course of her illness. Therefore, she was defiled, destitute, and desperate.  여인은 심각한 의학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그녀는12 동안 혈루증을 앓았습니다그러나 그녀에게는 심각한 재정적 문제도 있었습니다그녀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그녀를도와줄  없었던 의사들에게 사용했습니다마가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녀에게는 심각한 종교적인 문제도 있었습니다레위기 15 25-27절은  여인이 병이  동안 의식상의 부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합니다그러므로 그녀는 더럽혀진 상태였고궁핍하였고  절망적이었습니다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1152.

5:27–29 The climax that has been building since v. 25 is finally reached with touched. The woman fulfilled her intent to reach out and touch Jesus. His clothing is clarified in Mt 9:20 as “the end of his robe.” Many Jews wore tassels on the corners of their outer garments (Nm 15:38–39; Dt 22:12). On instantly, see note at 1:9–11. 25 이후로 쌓아온 절정이 마침내 감동적으로 다가옵니다 여인은 손을 뻗어서 예수님을 만지고자 했던 그녀의 의도를 이루었습니다그의 옷은 마태복음 9 20절에서는  겉옷가 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많은 유대인들은 겉옷 모서리에 술을 달았습니다

5:34 Only here did Jesus address someone as daughter. It reassured the trembling woman. Your faith has saved you recalls the healing of the paralytic in 2:5 and anticipates 10:52. Go in peace was the usual Hebrew blessing at dismissal (Ex 4:18; Jdg 18:6; 1Sm 1:17; 25:35; 2Sm 15:9; 2Kg 5:19; Lk 7:50; Ac 16:36; Jms 2:16). Jesus used the word affliction (v. 29) to assure the woman that her cure was permanent. 예수님은 여기에서만 누군가를 이라고 부르셨습니다그렇게 부르시면서 떨고 있는 여인을 안심시키셨습니다

Ross H. McLaren, “Mark,”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567.

5:34 Jesus used a tender word, daughter, to address this woman, and He noted that her faith made the difference, for it was correctly placed in Him. Faith itself does not heal; rather, it is the proper object of that faith, Jesus, who heals. 예수님께서는 딸이라는 부드러운 말을 사용하여  여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녀의 믿음이 예수님을 향해 있었기 때문에 차이를 만들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믿음 자체가 치유하는 것이 아닙니다오히려  믿음의 합당한 대상이 치유하시는 것인데  합당한 대상은 병을 고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5:34.

5:34 faith has made you well. To be clear, this woman’s faith was not the main cause of her healing. Rather, her faith was the means whereby healing was received from the outpouring of Jesus’ power and grace. See note, Lk 7:50. 분명히 말해서  여인의 믿음이 그녀의 치유의 주된 원인은 아니었습니다오히려 그녀의 믿음은예수님의능력과 은혜가 부어짐으로써 치유 받는 수단이었습니다

Edward A. Engelbrecht, The Lutheran Study Bible (St. Louis, MO: Concordia Publishing House, 2009), 1665.

5:34 your faith has made you well. Jesus’ public statement concerning the woman’s faith (expressed in vv. 28, 33) and its results. The form of the Gr. verb translated “has made you well,” which can also be rendered “has made you whole,” indicates that her healing was complete. It is the same Gr. word often translated “to save” (see note on Mt 9:22) and is the normal NT word for saving from sin, which strongly suggests that the woman’s faith also led to spiritual salvation.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라는 말씀은 여자의 믿음과  결과에 대한예수님의 공개적인 선언입니다. “내가 너를 구원하였으니” 라고 번역된 헬라어 동사는 내가 너를 온전하게 만들었다” 라고도번역될  있습니다그리고 이것은 그녀의 치유가 온전하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단어는 종종 구원하다 번역되며(이미 개역성경은 그렇게 번역), 죄로부터 구원한다는 일반적인 신약 성경의 단어입니다 사실은 여인의 믿음이 또한 영적 구원으로 이어졌음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것입니다.

John F. MacArthur Jr., The MacArthur Study Bible: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hville, TN: Thomas Nelson Publishers, 2006),  5:34.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수 많은 군중들 속에서 오직 예수님의 겉옷만 만져도 회복되겠다는 놀라운 믿음을 가진 여인의 이야기이다이 찬양은재정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도 완전히 파산한 여인이예수님을 만나서 회복되는 감격을 묘사한 너무나 아름다운 찬양이다

예수님이 여인을 향해서 베푸신 기적과 회복은단순히 위대한 일을 행하셨다라는 차원에서 머무르지 않는다여인은 혹시라도 예수님께서 자신을 책망하실까 두려워하였다예수님께서는 그 누구에게도 딸이라는 표현으로 부르신 적이 없다그런데 오직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그 불쌍한 여인을 딸아라고 부르시면서그녀를 긍휼히 여기시며 가장 친근하게 대하신다.

여인이 치유함을 받은 것은단순히 옷자락에 마술적인 효험이 있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치유함을 받은 것이다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신다여인은 그 누구도 치유할 수 없었던 병에서 자유함을 얻었다그리고 더 나아가서가장 근본적인 죄의 문제를 해결 받았다예수님 안에서 여인은 전인격적인 회복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이 찬양의 마지막 부분에서 나의 왕관을 놓으리라고 고백한다이것은 죄인의 최종적인 회복이란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높이고예수님을 자신의 왕으로 모시는 것임을 강력하게 묘사하는 고백이다

우리는 삶의 고통과 어려움 중에 반드시 예수님을 찾아야 한다예수님은 죄인을 사랑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그분을 믿을 때에 예수님은 우리를 고쳐 주실 수 있다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왕으로 따를 때에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삶의 회복임을 기억하며나의 가장 중심의 자리를 예수님께 내어 드리며 이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드리기를 원한다

삶으로 드리는 찬양 프로그램 전체 곡의 묵상을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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