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14일 화요일

예찬 찬양 집회 2부 분석 (대 곡을 소화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 "대 곡"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의 기쁨

찬양팀의 수준을 끌어 올린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모든 팀들이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성도님들이 좋아하시는 대중적인 찬양곡을 잘 소화하며, 그것을 실제로 집회 가운데 은혜롭게 승화시킬 수 있는 팀을 누구나 꿈꿉니다. 그러나, 그것을 위하여 전략을 짜고, 그것을 실제로 수행하여서 팀을 세워간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며 마치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어떻게 제가 이런 중요한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한주 한주 계속 고민하면서 감당할 뿐입니다.

* "자신의 팀"을 충분히 파악해야, 대 곡을 시도할 수 있다

찬양 인도자는, 자신의 팀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각 멤버들의 성격, 성향, 신앙 수준, 노래와 연주 수준 등등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 한 사람의 그 한번의 호흡을 통한 노래와 연주가 합쳐져서 팀의 찬양이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저의 팀의 건반은 네박 중에서 세박과 네박 사이가 좀 빨라서 수정을 오랫동안 부탁드렸습니다. 드럼은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림샷에서 스내어로 넘어가는 시점이 좀 늦어서 그 부분도 오랫동안 수정했습니다. 싱어분들도 스타일이 다 다릅니다. 성악 스타일부터 발성이 좀 약한 분들 등등 다 개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도자는 그 모든 분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자신이 목표로 하는 팀의 색깔에 최대한 가깝게 끌고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너무 지나치게 자세하게 분석한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씀드려서, 찬양팀 개인 개인의 음악성은 0.2-3초 정도에서 결정이 됩니다. 그 어간에서 아름다움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러한 개인의 순간의 판단과 음악성이 모여서 팀을 이룹니다. 그 찰나의 순간을 인지하고 찬양을 소화하는 능력이 결국 팀의 수준을 결정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찬양 인도자는 거의 편집증에 가까운 디테일한 완벽을 추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설령 그것이 당장 완성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현실을 철저하게 분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 대 곡은 "디테일과 지속성"이 중요하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팀원들이 가진 디테일과 완성도를 어느 정도까지 유지할 수 있는가가 관건입니다. 예를 들어서, 5분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도, 10분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10분을 음악적인 디테일을 유지하는 것보다 20분은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현재 저의 팀은 최상의 컨디션으로 20분 정도를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1시간은 어떨까요? 1시간을 내가 하는 찬양의 음악적인 디테일을 유지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의 능력을 완전히 초월하는 일입니다. 

* 찬양팀의 팔할은 "음향"이 결정한다

찬양팀은 음악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음향적인 부분이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제가 직접 레코딩하고, 믹싱 마스터링까지 좀 더 탁월하게 할 수 있기 위해서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만큼 들리기 때문이고, 아는 만큼 팀을 살피고, 아는 만큼 엔지니어에게 부탁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경우에 간과하는 것이 엔지니어의 중요성입니다. 그런데, 엔지니어의 역할은 "결정적"입니다. 물론 음악성이 떨어지는 것을 음향으로 보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로, 음악성이 아무리 좋아도 엔지니어가 서포트하지 못하면 그 집회는 실패할 가능성이 거의 백퍼센트입니다. 사실상 집회의 수준과 감동은 엔지니어의 손에서 팔할이결정됩니다. 다행히 저희 교회의 엔지니어로 섬기시는 분은 최고의 실력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은 언제나 존재할 수 있습니다. 

* 집회에는 언제나 "변수"가 존재한다

저는 평소에 젠하이저 무선 마이크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노후가 되어서인지 이번에 거의 마지막 리허설 중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운드가 들어가기는 하는데 거의 80 퍼센트가 사라지면서 로우 패스 하이 패스 필터가 엄청 걸린 것 같은 아주 이상한 사운드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굉장히 당황했습니다.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모릅니다. 저는 사운드 자체에 아주 예민하기 때문에 모니터를 조율하는데 시간을 많이 썼습니다. 그렇게 오래 연습하고 조율한 익숙한 마이크로 해도 집회가 힘든데, 집회 준비 마지막에 마이크가 문제라니 앞이 캄캄했습니다. 

급한대로 엔지니어께서 유선으로 교체해주셨습니다. 아마도 마이크 입력 채널이 바뀌었으니 당연히 셋팅도 다시 했습니다. 그런데 집회가 끝나고 알았습니다. 놀랍게도 싱어분들 모니터에 제 목소리가 안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다 여쭤보진 않았지만 아마 싱어용 모니터 전체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상했는지 모릅니다. 평소에는 제 목소리가 싱어분들 모니터에 들어가기 때문에 가이드가 당연히 됩니다. 당연히 제가 의도하는 대로 더 수월하게 부르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이렉트로 모니터로 나오는 제 목소리 없이 이 큰 집회를 마쳤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참 자랑스러웠습니다. 싱어분들의 수준이 놀랍고 감사했습니다. 영상에서 들으시는 것 처럼 전체 집회를 꽤 근사하게 정말 잘 하셨기 때문입니다. 많이 연습했고 연습한 만큼 좋은 모습으로 끝까지 임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팀 싱어들도 음악에 맞춰서 자신의 노래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싱어분들과 함께 연습한 것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 드디어 시작된 2부

자 이제 1부가 끝이 나고 2부로 넘어갑니다. 사실상 2부는 곡의 선곡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앞에서 이미 좋은 곡들을 많이 했기 때문에, 2부에서는 뭔가 새로우면서도 뭔가 더 음악적으로 영적으로 뛰어난 곡들이 배치되어야 합니다. 소위 말해서 "대 곡"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 "팀 뿐 아니라 교회를 이해해야" 대 곡을 할 수 있다

아마 저를 포함해서 모든 찬양 인도자들은 "대 곡"을 하고 싶은 갈망이 있을 것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대곡이라 하면, 곡 구성이 드라마틱하고 어느 정도 높은 음들이 존재하고 리듬이 화려하거나 어려운 그런 곡들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찬양팀의 음악성을 잘 드러낼 수 있는 곡을 말합니다. 그런데, 대 곡에 대한 담대한 시도는 실질적으로 두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찬양팀 자체의 실력"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서 아무리 찬양 인도자나 팀 전체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거나 해서는 안되는 곡이 존재합니다. 문제는 음악성입니다. 음악성이 받쳐주지 않는데 무리해서 곡을 부르게 되면, 그 곡에 대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기 때문에 당연히 은혜를 끼치기 어렵습니다.

둘째로는, "회중의 반응"입니다. 예를 들어서 감사하게도 찬양팀이 충분히 준비가 되어서 어떤 곡을 부른다고 해도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회중이 그 곡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진다면 사실상 은혜를 받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 부분이 더 어렵습니다. 찬양 인도자는 섬기는 교회의 회중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회중을 고려할 때에 상대적으로 너무 어려운 리듬, 너무 어려운 코드, 너무 화려한 연주는 그런 의미에서 은혜를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 PPT의 형태는 매우 중요하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은 PPT의 문제입니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젊은 분들은 가사만 있어도 몇번 듣고 잘 따라서 부르십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연세가 드신 분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평소에 신곡은 악보가 있는 PPT를 사용합니다. 

문제는 실제 이렇게 큰 집회 때에는 악보를 띄우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악보가 좋기는 하지만, 그 악보를 눈으로 확인하고 따라 부르면서 그 악보 자체에 얽매인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악보를 따라가는데 급급하기 때문에 어떤 영적인 충만함을 경험하고 누리는 것이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집회는 모두 "글자로만" PPT 를 준비하였습니다.

8) 2부의 시작 / 내 마음을 가득 채운

저는 2부 첫 곡을 "내 마음을 가득 채운"으로 선택했습니다. 원래 자신이 없었는데 악기팀 디렉터께서 추천하셔서 고민하다가 선택했습니다. 주저했던 이유는, 제가 늘 하고 싶었고 또 어렵다고 생각했던 곡이 바로 "내 마음을 가득 채운" 이기 때문입니다. 거의 15년 정도를 찬양 인도를 했지만, 제대로 성공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일단 일렉이 없는 것은 둘째 문제입니다. 가장 어려운 점은, 리듬이 너무 어려워서 부르기가 어렵습니다. 혹시 싱어가 탁월해서 이런 고급스러운 리듬을 소화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교회의 컨택스트 안에서 회중이 받아들이기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감사하게도 오랫동안 한 교회를 섬기면서, 이제는 이 두가지가 이번에 어느 정도 충족이 되었다고 생각이 되어서 찬양 인도자로 처음으로 이 곡을 제대로 시도하였습니다. 

저는, 집회의 모든 곡을 유명한 찬양팀의 카피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찬양팀의 수준도 다르고 회중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만 가이드가 필요할 때는 확실하게 레퍼런스 곡을 카피해서 나가야 합니다. 이번에는 "나비 워십"의 곡 버전으로 준비했습니다. 정말 탁월한 팀입니다. 한국 교회에 이렇게 좋은 팀들이 많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다양한 버전을 많이 시도해 보았는데, 그중에 그나마 가장 쉬우면서도 은혜롭게 나눌 수 있는 버전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악기팀 디렉터께서 악기팀용 악보를 따로 준비해오셨고 철저하게 악기팀을 지도해 주셨습니다. 일단 일렉 기타가 워낙 연주력이 뛰어나서 많은 부분이 커버 되었습니다. 이런 리듬의 곡은 드럼 베이스 건반이 정말 중요합니다. 이미 탁월한 분들이라 잘 하셨습니다. 그래서 연주 자체는 수월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이번에 저의 팀의 싱어분들을 가장 칭찬하고 싶은 부분이 바로 이 곡입니다. 처음에 인트로가 끝나고 싱어가 시작되는 부분을 들어보시면, "팀원들이 얼마나 많이 연습했는지" 정말 확 드러납니다. 거의 얼굴에서 빛이 나는 수준입니다. 노래에 두려움이나 주저함이 없습니다. 저도 당연히 이 곡을 소화하기 위해서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기타 리듬을 따로 일렉 기타분에게 배웠습니다. 중간에 계속 등장하는 디미니쉬 코드까지 다 소화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리듬 자체는 지키기 위해서 많이 노력했습니다. 

이 버전이 너무 빠르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불러보면 약간 어색한 느낌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수적인 교회에서도 이 정도 빠르기라면 충분히 성도님들이 함께 부를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에, 정말 좋은 빠르기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생각하는 것은, 찬양팀은 그 교회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회중을 배려하지 않는 찬양팀은, 그 교회 찬양팀이 아니라 그저 객원 찬양팀에 불과합니다. 

이 곡은 미디엄 테포이지만 손을 들고 찬양할 수 있는 아주 독특한 곡입니다. 이미 금요일에 총 다섯 번 정도 회중들과불러 보았기 때문에, 실제 집회 때에도 후렴을 하면서 손을 들고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에 매우 최적화된 그런 찬양 인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세가 드신 성도님들도 정말 좋아하시면서 함께 불렀습니다. 

9) 은혜 아니면

미디엄 템포의 곡이 끝나고 "은혜 아니면"을 이어서 불렀습니다. 이 곡은, 마커스 곡 중에서도 특히 깊은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곡은 약간 쉬어가는 느낌의 곡으로 넣었습니다. 앞 부분 까지는 굉장히 열정적으로 힘있게 불렀다면, 집회의 어떤 부분에서는 매우 묵상적으로, 매우 편안하게 또 매우 깊이 부를 수 있는 그런 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금요일마다 자주 불렀고 그런 저의 목적에 딱 맞는 곡이 이 곡이라고 느꼈습니다. 

실제로 찬양 인도를 하면, 내가 생각하고 의도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얼마든지 진행될 수 있습니다. 찬양 집회는 성령의 역사이고 살아 움직이는 것입니다. 저는 원래 좀 더 부드럽고 약하게 진행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성도님들이 여기까지는 힘이 넘치셔서 악기팀도 제 의도보다는 좀 더 힘있게 나갔고 결론적으로 그것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계획한 것 처럼, 통성 기도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후렴 한번 더 바로 이으면서 곡을 마무리하였습니다.

10) 주 예수 나의 산 소망

드디어, 두 곡이 남았습니다. 이 정도까지 왔을 때에 정말 마음이 평안하고 좋았습니다. 팀원들이 너무 잘 해주셨고 집회가 은혜로웠기 때문입니다. 사실 집회가 있는 주간에 특히 사역이 많았습니다. 목회자가 찬양 인도를 한다고 해서 거기에만 매달릴 수 없습니다. 거기다가 긴장했는지 집회 삼일전 부터 배탈이 나서 몸이 탈진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님께서 힘을 주셔서 큰 실수 없이 여기까지 했다는 것이 너무 기뻤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집회의 대망의 절정을 여는 "주 예수 나의 산 소망"입니다. 생각해 보니, 저는 이 곡의 원곡을 거의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다만 레위지파의 번안 곡을 듣고 너무 좋다고 생각해서, 몇달 동안 연습했습니다. 레위 지파의 버전은 제가 생각할 때에 CCM 음반 중에 탑 20 정도에 들어가는 탁월한 곡입니다.  

이런 곡을 실제로 찬양 집회 안에서 소화하는 것은 정말 쉽지가 않습니다. 듣고 좋다고 느끼는 것과, 우리 팀이 곡을 불러서 다른 사람들이 좋게 듣게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그러나 제가 판단하기로는, 제가 섬기는 찬양팀이 이제는 이 정도 대 곡을 하 수 있을 수준으로 올라갔다고 느꼈습니다. 싱어팀과 악기팀이 이제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연습 중에는 참 죄송스럽게도 팀원 분들에게 이런 저런 마음 아픈 이야기들도 많이 하였습니다. 그래도 잘 인내해주시고 또 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제 곡이 시작됩니다. 메인 건반이 연습을 많이 해주셔서 처음에 들어가는 것이 어색함이 없습니다. 원래는 처음부터 아주 강하게 들어가셨지만, 제가 "점점 크게의 느낌"으로 인트로 첫 마디를 시작해 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정말 완벽하게 소화해 주셨습니다. 

계속 말씀드린 것 처럼, 곡의 시작의 다이나믹이 정말 중요합니다. 다행히 싱어분들도 처음의 시작 부분을 정말 약하고 부드럽게 잘 불러주셨습니다. 곡의 느낌을 잘 살려주셨습니다. 곡의 분위기와 느낌과 감동은, 후렴을 세게 불러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1절부터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처음에 악기가 많이 빠져 있을 때에 이 정도 부르기가 정말 어려운데 싱어팀이 잘해주셨습니다. 저의 어쿠스틱 기타가 좀 아쉬운데 기타를 배울 시간이 없네요. 장기적으로 보자면 좀 레슨을 받아야 할 듯 합니다.

이 곡은, 2절까지의 하고 첫 후렴이 등장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처음에 후렴으로 들어갔을 때에, 좀 더 다이나믹을 강하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그 당시에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이미 악기팀 전체가 큰 흐름을 다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은 뒷쪽에서 채우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특별히 화음이나 멘트로 드라이브를 걸지 않고 계속 찬양을 이어나갔습니다. 

약간 아쉬운 것은, 아무래도 싱어분들이 후반부로 들어가면서 악기의 리듬을 타는 것이 완벽하지는 못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고려할 것은, 이미 직장 일로 피곤한 금요일 밤, 그리고 이미 아홉 곡이나 부른 상태라는 것입니다. 거의 50분을 서서 찬양을 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정말 대단한 분들입니다. 그런 면에서 한분 한분이 정말 엄청나게 수고하시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곡의 백미는, "언약된 아침"이라는 부분부터 시작되는 3절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깊이와 능력을 드러내는 엄청난 부분입니다. 다른 찬양에서 들을 수 없는 굉장히 유니크하고 가슴이 벅차는 멋진 부분입니다. 이것으로 인해서 대곡이 더욱 위대한 곡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감동적인 부분을 찬양팀이 충분히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엔지니어께서 믹싱을 너무 잘하셔서 탐 소리가 정말 예술입니다.

이런 폭발적인 사운드 속에서, 리더가 화음이나 어떤 즉흥적인 라인을 넣는 것은 위험이 큽니다. 자칫 자신의 소리를 모니터링 하지 못하고 어긋나게 부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풀밴드의 큰 사운드 속에서는 모니터를 충분히 듣고 있는 리더 역시 자신의 노래를 감당하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하필 이 타이밍에, 즉흥적인 라인을 꼭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제 마음에 강하게 들었습니다. 마지막 후렴으로 넘어가는 부분에서, "주 예수 승리하셨네" 끝 부분에서 "할렐루야~"라고 제가 넣은 것은 레위 지파의 원곡을 따라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평소 리허설 때에는 한번도 하지 않았다가, 이 날만 시도한 것입니다. 막상 집회 가운데에서는 이 부분을 꼭 해야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다만 아쉽게도, 아주 약간 긴 느낌이 있습니다. 발성을 조절하면서 마지막 부분에서 소리를 끊을 때에 아주 찰나의 주저함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기팀이 워낙 계속 합을 맞추는 연습을 했기 때문에, 마지막 포즈 이후에 후렴으로 합을 맞춰서 탁월하게 후렴으로 잘 넘어갔습니다. 

"아~ 아~"라고 라인을 넣는 것은, 남자 싱어께서 잘 해 주셨습니다. 연습 때도 잘해주셨는데 실제로도 너무 잘해주셔서 하모니를 아주 잘 이루었습니다. 마스터링 버전에서는 좀 튀게 들리지만, 실제 집회 때에는 매우 잘하셨던 부분입니다. 저도 마음 같아서는 더 하모니를 넣고 싶었지만 최소한도로 그쳤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마지막 곡 까지 목이 상하지 않은 상태로 불러야했기 때문입니다. 

아마 제 기억으로는, 이 곡에서는 "손을 들고 찬양합시다" 등의 멘트는 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영상에서 보시는 것 처럼 거의 모든 성도님들이 손을 들고 찬양하시고 계시네요. 누군가가 멘트를 하거나 시키지 않아도, 함께 하시는 모든 성도님들 가운데 은혜가 있고 또 찬양 가운데 깊이 들어가신 것 같아서 그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이 곡을 실제로 부를 때, "그 현장의 분위기"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찬양팀 전체가 거의 몸을 던져서 부른 곡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몸을 던져서 부르고 연주해도 실제로 이런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것은 정말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포인트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열정은 과욕"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저와 팀이 하나가 되어서 결국 해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또 많은 연습의 결과로 이 곡을 아름답게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곡을 마치면서는, 의도적으로 보통이었으면 했을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는 돌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다음 곡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집회였다면, 그냥 이 곡으로 끝내도 충분히 훌륭했겠지만, 이제는 마지막 대곡, "선한 능력으로"가 등장할 차례입니다. 

11) 선한 능력으로

드디어, 마지막 곡에 다다랐습니다. 사실 이 때즈음에, 제 마음에 좀 긴장이 되었습니다. 앞의 곡으로 집회를 마무리 해도 되지만, 마지막 정점을 이 곡을 통해서 찍고 싶었습니다. 제 스스로 원대한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이 곡에 담고 이 곡을 통해서 표현하기 원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곡에 정말 팀의 전부를 걸고 싶었고 그렇게 부탁드리고 그렇게 연습했습니다. 과연 연습한 것을 보여드릴 수 있을까 살짝 긴장이 되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을 믿고 곡을 시작하였습니다.

원래 선한 능력은, 제가 별로 좋아하던 곡이 아닙니다. 멜로디가 너무 단순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사의 깊이는 그 어떤 곡보다 탁월합니다. 본회퍼 목사님이 보낸 마지막 편지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인 깊이는 다른 곡을 초월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박자"입니다. 저는 왠만해서는 절대로 3박자 곡을 하지 않습니다. 밑져야 본전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3박자 곡은 자칫하면, 평범한 왈츠곡 느낌으로 변하면서 가사의 깊이를 경험하는 것이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위러브 팀의 버전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너무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빠르기 보다 훨씬 느리게 시작하고, 중간이 넘어서서 곡의 빠르기를 완전하 바꾸어서 약간 하드롹 발라드 같은 그런 느낌으로 바꾸었는데, 제 개인적으로는 한국 교회 모든 찬양 중에 탑 3 안에 들어간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가급적 이 곡을 한번 그런 비슷한 느낌으로 만들어서 불러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 곡을 주제곡으로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의미있는 곡으로 정한 것은, 제 마음 속에 있는 깊은 갈망 때문입니다. 사실, 제 마음을 글로 적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제 마음 안에는 깊은 눈물이 있습니다. 목회자는 속으로 우는 사람입니다. 다만 저는 공동체야 말로, 미래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신앙 생활을 그저 개인적인 성숙, 개인적인 영적인 훈련 등으로 치환하면서, 공동체의 소중함을 잊어 버렸습니다. 

놀라운 것은, 마커스의 경우 선한 능력으로의 찬양을, "개인 경건의 찬양"으로 바꾸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제가 이해하기로는 그렇습니다. 저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번 집회에 사용된 곡과 가사를 비교해 보시면, 마커스의 곡은 전혀 다른 가사입니다. 아쉬운 일입니다. 

예전에 어느 블로그에서 독일어 원어를 번역한 것을 보았는데, 원래 본회퍼 목사님의 편지는, 교회 공동체를 염두에 둔 간절한 편지였습니다. 자신의 죽음의 위기 속에서 본회퍼 목사님은 공동체의 사랑과 지지와 하나됨을 경험하며 기대하며 이 가사를 쓴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펜데믹을 경험하고 있는 어려운 성도님들의 마음 속에, 정말 공동체의 소중함과 하나됨이 각인되기를 바랬습니다. 그런면에서 저는 이 곡을 이끌어갈 때에 처음에는아주 잔잔하게 시작해서, 극도로 폭발적인 분위기까지 이끌어내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이 곡은,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획된 곡입니다. 관건은 모두가 춤을 추는 듯한 "쿵짝짝 쿵짝짝" 분위기를 만들면 안됩니다. 뭔가 숙연한 분위기 그러나 진중하면서도 깊이 있는 분위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왈츠 분위기가 나지 않기 위해서, 인트로부터 최대한 건반이나 기타 스트록의 리듬을 줄였습니다. 바이올린에게도 부탁드리기를, 최대한 리듬을 길게 빼서, 두 마디가 마치 한 마디처럼 느껴지게 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정확하게 저의 뜻을 이해해서 소화해 주셨습니다.

위러브의 경우에는 제 기억으로는, 중간에 조 옮김을 하면서 후반부에는 급격하게 빠르게 연주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 집회에서는, "처음의 빠르기로 그 깊이를 마지막 까지 유지하면서" 함께 찬양하기를 바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빠르기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곡의 빠르기는 정말 찬양의 분위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예를 들어서, 예전에 한참 들었던 어노인팅의 "거룩한 성전에 거하시며" 라이브 곡은 처음에는 좋은 빠르기였다가 드럼이 빨라지면서 아쉬움이 컸습니다. 약간 곡의 흐름이 마지막에 무너졌습니다. 라이브 앨범이라 고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들을 때 마다 아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이 곡을 준비하면서, "마지막 곡의 성패"는 처음의 시작의 빠르기를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라고 악기팀에게 여러번 부탁드렸습니다. 

처음에 바이올린이, 탁월하게 정말 제가 딱 원하던 빠르기로 인트로를 시작하셨습니다. 의도적으로 바이올린만 들어가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1절이 등장하면서 모든 악기팀이 그리고 싱어팀이 연습한 대로 해 주셨습니다. 

3절에서 "주께서 밝히신 작은 촛불이" 부터 악기팀이 드라이브를 걸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그리고 4절 "이 고요함이 깊이 번져갈 때" 부터 정말 강하게 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이 부분도 저의 판단이었는데 매우 좋았습니다. 음악은 매우 드라마틱해지는데, "고요함이 깊이 번져간다"라고 싱어들이 고백할 때에 어떤 영적인 힘과 깊은 감격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성도님들의 평생에 마음에 남을 만한 폭발적인 느낌으로 4절을 해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정말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연습 때의 베스트를 백퍼센트로 잡는다면, 실제 집회 때에는 구십 퍼센트 정도를 해냈습니다. 정말 너무 행복했습니다

약간의 아쉬움은, 드럼의 심벌 계열을 좀 더 화려하게 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혹은 약간 더 느리게 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정말 좋았습니다. 제가 처음에 의도하고 기도한대로, 아마 성도님들의 마음 가운데 이 곡이 그리고 가사가, "선한 능력이 우리를 감싸신다"는 그 찬양의 메시지가 강하게 남았을 것입니다. 

강한 다이나믹이 끝나고, 마지막에 제가 솔로로 아주 조용하게 부른 부분은 의도적입니다. 인도자의 목소리를 평소에도 너무 많이 듣기 때문에 회중에게 지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원래 솔로를 좋아하진 않지만 의도적으로 넣었습니다. 아주 강한 다이나믹 이후에, 아주 약한 느낌으로 더 찬양의 내용을 마음에 깊이 남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잔잔하게 통성 기도로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을 담임 목사님의 통성 기도로 마쳤습니다. 

사실 후반부의 콘티에서 10분 정도를 더 끌 수 있었습니다. 끈다는 표현 보다는, 더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여지가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정면에 있는 시계를 보니 벌써 9시 20분이 되었더군요. 집회가 8시에 시작했으니 이미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9시 반은 상당히 늦은 시간입니다. 그리고 연세 드신 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마스크를 쓰시고 찬양하면서 탈진하는 상황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정말 아쉬웠지만 공동체 전체를 위해서, 약간의 아쉬움을 마음에 품고 반복을 약간씩 줄이는 형식으로 집회 시간을 최종적으로 조절했습니다.

* 찬양 집회를 마치며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라고 말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사운드는 사라집니다. 저는 이것이 너무 아쉽고 속상하고 허전합니다. 영원한 천국 속에서는, 영원한 사운드 속에서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그 순간의 감동과 감격, 그 순간의 눈물과 애틋함은 지금은 동일하게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기록으로 그것을 남기면, 훨씬 오래 가리라 생각합니다. 

찬양 인도를 준비하면서, 그리고 실제로 찬양을 하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합니다. 오랫동안 찬양 인도를 했지만, 아쉽게도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상세하게 해준 분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CFNI에서 Worship and Technical Arts 과정을 공부할 때에도, 이렇게 디테일하게 배우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지금 이 순간에도 동 시대에 함께 찬양 인도를 하는 많은 찬양 인도자들과 저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찬양팀 멤버로서 이 글을 읽는다면, 찬양 인도자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마음의 계획과 하나님과 팀원들을 향한 깊은 갈망들을 약간이나마 엿보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정도 수준으로 다시 섬길 수 있을까요? 아니, 다시 이런 기회가 저에게 올까요? 하나님께서는 펜데믹을 통해서 우리의 계획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면에서 오히려 우리의 계획과 노력은 더 빛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언제 기회가 찾아올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저에게 혹은 당신에게 찬양 인도와 찬양팀을 부탁한다면, 그때에는 망설임 없이 나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든 순간의 소중함을 알고, 끊임없이 전문적으로 준비하며, 섬길 그날을 위해서 바로 오늘 헌신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규모의 집회는 저의 능력을 넘어가는 것입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저는 가려주시고 오직 하나님께서 드러나시기를" 기도하면서 집회에 임했습니다. 이번 집회를 계획하게 하시고 완성하게 하시며 찬양을 부르게 하시고, 또 그것을 기뻐 받으신 하나님께만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 예찬 찬양 집회 1부 분석 (찬양 집회는 "연주력과 흐름"에 집중해야 합니다)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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