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사랑이 내 생명보다
귀하고 주 사랑이 파도보다
더 강해요 세월이 가고 꽃이
시들어도 주사랑 영원해 주님 사랑 신실해요
2. 곡 소개
이 곡은, 다윗의 장막의 “주님께 영광”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성도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너무나
확고하고, 성도를 붙드시는 그분의 신실함은 그 어떤 것 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견고한 것임을 고백하는
깊고 아름다운 찬양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신 7:9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천 대 까지” 라는 말은 측량할 수 없는 미래를 가리키는
말이며 특정한 기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점은, 하나님의 인애는 무한하며 또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비록 이스라엘 그리고 인류가
주님께 신실하지 못하다는 것이 드러날지라도, 그 나라에 대한 실패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Eugene H. Merrill, “Deuteronomy,”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277.
시 63:2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63:3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하나님의 사랑은 이 땅에서 소중합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Edward A. Engelbrecht, The Lutheran Study
Bible (St. Louis, MO: Concordia Publishing House, 2009), 907.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하나님의 사랑의 신실함에
대해서 고백하는 찬양이다. 왜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이 그렇게도 우리에게 중요한가? 그것은, 우리가 세상에서 경험하는 사랑이 너무나 연약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인간의 사랑은 어쩔 수 없이 무너지고 변질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에도, 마치 인간의 사랑처럼
변질되는 것처럼 종종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시는가?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주시며 그것을 강조하신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천대까지 미래를
향하여 인자를 베푸시는 것이며, 그분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진정으로 영원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고백하기를,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 세상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고, 또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순간적인 축복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에 대한 약속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영원한 인자하심과 그분의 약속은,
주님의 사랑의 극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용서를 받고, 그분과 영적으로 연합하였기 때문에 오직 그분 안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찬양을 부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지는 영원한
구원에 대한 깊은 확신과, 넘치는 하늘의 기쁨 가운데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불변의 법칙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시대를 관통하는 영원히 변치 않는 법칙'을 찾아가는 역작입니다. 혼돈의 시대이기에 모든 사람이 변화에 초점을 맞출 때에, 역으로 접근하는 저자의 도전이 놀라웠습니다. 마음에 드는 챕터부터 읽어도 된다는 저자의 조언에 따라 '복잡함과 단순함' 챕터를 읽었습니다.
저자는 '진실은 단순한 것'이라고 확언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사람들은 복잡한 것이 더 가치 있고 훌륭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역설입니다. 세상은 갈수록 복잡해 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현혹됩니다. 뭔가 대단한 복잡한 것을 통해서만이 자신이 성숙해진다고 믿습니다.
저는 언젠가부터 모든 것이 북클럽과 연관해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목사님 또 북클럽 이야기하려고 하시는거죠?' 그런데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갈수록 더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모든 문제들이 북클럽과 연결이 됩니다. 크리스천 북클럽이야 말로, 우리가 경험하는 사실상 거의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성도 개인이 그리고 교회가 경험하는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가요? 냉정하게 우리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상대방을 존중하며 그의 이야기를 경청할 줄 모릅니다. 다른 이들과 신앙적인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누어볼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자기의 의견을 조리있게 말하는 것을 힘들어 합니다.
교회는 오래 다녔지만 다른 사람이 나를 공감해 준 경험이 거의 없습니다. 깊은 상호간의 사랑의 관계를 누려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상대방을 사랑할 줄 모릅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기는 하지만 그 뜻을 모릅니다. 성경을 문자적인 차원이 아니라 이해의 차원으로 받아들여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성경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가 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성경과 삶을 연결해서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지혜가 부족합니다.
이 모든 것이 원인이 되어서 결국 교회는 끊임없이 다양한 문제에 시달립니다. 그리고 사실상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그리고 유일한 길은, 크리스천 북클럽입니다.
크리스천 북클럽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단순합니다. 그래서 저는 북클럽을 좋아합니다. 복잡한 것에 취해버린 사람들은 그 단순함을 눈여겨 보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렇게 단순한 것으로 사람이 바뀌는가에 대해서 의심합니다. 그러나 그 단순함 속에, 성도의 성숙을 위한 확고한 방향과 무한히 솟아나오는 성숙의 원동력이 존재합니다.
좋은 글을 적극적으로 읽고 자신의 지성과 성경 이해를 발전시키는 것, 자신을 돌아보고 글을 쓰면서 자신을 성찰하는 것, 서로를 존중하면서 나누고 경청하면서 감성적인 만족을 누리며 깊은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 그리고 삶을 결단하면서 현재의 자신보다 한단계 더 발전한 성숙으로 나아가는 것, 크리스천 북클럽의 이 모든 과정 안에 교회의 문제에 대한 모든 해답이 들어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루이스가 생각이 났습니다. 교회의 목적에 대한 그의 확신에 찬 선언이 좋았습니다. '교회는 오직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이끌어 작은 그리스도로 만들기 위해 존재합니다' 궁극적으로 크리스천 북클럽은 그리스도를 닮게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북클럽에 함께 할 때에야 그리스도를 닮은 이들로 변화됩니다. 함께하는 이들을 향하여 따뜻하고 지혜로운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진정한 관계성을 회복하고 진실한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을 소유하게 됩니다.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용기를 얻게 됩니다.
불변의 법칙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제가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고 또 앞으로 걸어갈 길을 가늠해 봅니다. 목회의 자리에서 그리고 크리스천 북클럽에 매진하면서 가장 단순한 길로 걸어가기 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야 말로 성도를 섬기는 가장 확실한 길임을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저의 걸음을 선하게 인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병이어 드려도
향유 옥합 깨뜨려도 독생자 아들 주신
그 사랑 갚으리까 모든 생명 드려도
내 뜻 다해 드려도 십자가 피 흘리신
그 사랑 갚으리까
다 감사할 수 없는
끝없는 사랑 다 찬양할 수 없는
높으신 이름 주님을 내 성전에
모셔 날마다 예배합니다
땅끝까지 전해도
해지는데 이르러도 성령의 생기주신
그 사랑 갚으리까 모든 정성 드려도
온 맘 다해 드려도 영원한 생명주신
그 사랑 갚으리까
다 경험할 수 없는
깊으신 사랑 다 표현할 수 없는
귀하신 이름 날마다 지성소로
나가 엎드려 경배합니다
2. 곡 소개
이 곡은, 한국의 대표적인 CCM 사역자 박종호 씨의 11집 ‘바닥에 새긴 사랑’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감히 다 갚을 수 없는 십자가
사랑에 빚진 자의 감격을 아름답게 그려낸 찬양이다. 그리고 그 사랑과 은혜에 대한 감격 때문에, 주님 앞에 날마다 예배하는 자로 결단하고 기쁨을 누리는 성도의 고백을 담은 탁월한 찬양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시편 103: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103:1 Of David. Praise the LORD, O my soul; all my inmost being,
praise his holy name. 103: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103:2 Praise
the LORD, O my soul, and forget not all his benefits--
시편 기자는 예배하는 성도에게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촉구하는데, 그것은 그분의 풍성한 관대하심에 대해서
칭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모든 은택을 잊지 않는 것은 주님을 송축하는 중요한 단계입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067.
디도서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3:5 he saved us, not because
of righteous things we had done, but because of his mercy. He saved us through
the washing of rebirth and renewal by the Holy Spirit, 3:6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3:6 whom he poured out on us generously through Jesus Christ our
Savior, 3:7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3:7 so that, having been
justified by his grace, we might become heirs having the hope of eternal life.
바울은 디도에게 선한 일에 대한 강조를 부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선행은 한 사람을 구원하는데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죄의 형벌에서 구원 받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자비에 근거한 것입니다. 중생의 씻음이라는 것은 사람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가리키는 것이며, 새로운 본성이야 말로 선한 일을 행하기 위한 기반입니다.
디모데후서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개역개정) 1:9 who has saved us and
called us to a holy life--not because of anything we have done but because of
his own purpose and grace. This grace was given us in Christ Jesus before the
beginning of time, (NIV)
사람이 노력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구원은 하나님 자신의 목적 그리고 주권적인 계획에 따른 것입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호의입니다. 주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우리를 부르셨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셨습니다.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에 대하여 강조한다. 그리고 십자가의 그 사랑이 너무 크기에, 그것을
받은 우리는 영원히 빚진 자임을 고백하고 있다. 현대인 혹은 어떤 크리스천들의 큰 착각은, 그들이 은혜를 입을 만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은혜를 말하고 고백하고 나누지만, 실상
그들은 성경적인 은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성경은, 우리의 가장 갚진 것을 다
하나님께 드려도 그분이 베푸신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며 스스로 구원
받을 수 없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전적인, 혹은 가장 순수한
그 은혜로 인하여 우리는 구원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이성을 아득히 뛰어넘어 우리를
온전히 압도하시는 말씀이다. 인간은 이러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앞에서,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사랑과 압도적인 은혜 앞에서 감격하고 겸손해지고 경외감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다.
이러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늘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이 성도이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이러한 태도로 하나님을 높이며 예배하는 것이다. 이
찬양을 부를 떄 마다, 영원히 하나님께 빚진자로서 행복과 기쁨과 경외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원한다. 마땅히 우리의 온 존재로 그분을 예배함으로,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도한다.
시편 90: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개역개정)
Teach us to number our days, that we may gain a heart of wisdom. (NIV)
65세에 은퇴할 경우, 오늘로서 저에게 8204일이 남았습니다. 아, 시간의 흐름이란... 시간은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이자 친구이며, 또한 동시에 가장 큰 적입니다. 사라지는 듯한 이 시간이 너무나 아쉬워 저는 몸부림칩니다.
어렸을 때에는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피식 웃었습니다. 굳이 그렇게 오래 사는데 집착할 필요가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직 젊었기 때문에 시간의 소중함을 몰랐고,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잔인한 것인가를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멘탈리티를 하루에 한번 꼭 봅니다. 그리고 신학책을 포함해서 다양한 책들을 봅니다. 멘탈리티가 이미 자기 계발서이지만 또 다른 자기 계발서 한권 정도는 더 추가해서 보는 편입니다. 제 자신을 끊임없이 새롭게 자극하기 위해서입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삶의 좀 더 의미있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시간을 가치 있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자기 계발서들이 모두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어떤 부분에서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저자가 다르기 때문에, 그들이 걸어온 삶의 궤적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자기 계발서에는 "독특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독특함이 저에게는 큰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저보다 앞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혜를 배우는 것이 너무 즐겁습니다.
평소에 저의 모토는 "딱 한걸음만 더" 입니다. 이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책을 읽고 있고 감동을 받고 있기 때문에, 심지어 실천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제 자신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록하지 않은 것은 희미해지며, 희미해지는 것은 영향력을 잃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영혼의 안쪽으로 깊이 집어 넣기 위해서는, 충분히 생각해야하며 그것을 글로 선명하게 새겨야 합니다.
이 책은 제목이 너무 좋아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막상 책장을 펼치니 별로 재미는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아마존 베스트 1위에 등극하는 책들은 다 좋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에 책이 별로이면, 다시 목차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목차에서 마음에 드는 장으로 바로 넘어갑니다. 이렇게 하면 생각보다 얻는 것이 꽤 있습니다. 굳이 모든 책을 처음부터 정독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자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첫 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마음에 드는 곳으로 부담없이 넘어갔고, 기대하지 않았던 큰 교훈을 발견하였습니다.
저자인 에드 마일렛은 "하루를 삼일처럼" 산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당신도 그렇게 해보라고 권면합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단순하고 말장난 같기도 합니다. 하루가 삼일이라니? 그냥 하루 세등분을 해서 사는 것과 무슨 차이인가? 처음에 든 생각입니다.
그런데 저자의 논리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 시대는, 과거와 완전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편지 하나를 보내는데에도 며칠을 써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몇초만에도 가능합니다. 다시 말해서, 과거와 지금은 전혀 다른 세상이며, "시간이 가진 가능성의 크기"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와 현재의 하루는 절대로 같을 수 없습니다.
과거에 하루에 하던 일을, 지금은 오전이면 가능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것을 저자는 "시간을 압축한다"라고 말합니다. 표현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압축적으로 사용할 때에, 하루는 세번으로 늘어나며 삼일의 크기 혹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니, 저자의 말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과거에 한달 동안 붙들고 있던 일도 오전에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로고스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십권의 책을 한번에 읽어나가고, 그것이 디지털로 연결되고 하나의 네트워크로 완성되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시너지를 만들어냅니다. 동일한 시간 안에, 차원이 다른 깊이의 학습과 묵상을 가능하게 합니다. 사실상 다른 이들과 전혀 다른 시간의 가치를 누리는 것입니다.
마치 그런 것처럼, 지금 시대에 맞춰서 하루를 생각하라는 것이 저자의 조언입니다. 일단 저는, 옳다고 생각되고 마음에 확신이 들면 바로 그 순간부터 실천합니다. "하루를 삼일처럼 살아라"라는 조언도 마찬가입니다. 며칠 동안 적용해 보고 저는 너무 좋았습니다. 사실, 일종의 매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스스로 착각할 정도로 저에게 변화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참 흥미롭습니다. 시간을 압축한다니, 그리고 하루를 삼일처럼 산다니, 그리고 그것일 실제로 나의 삶에 이루어지고 있다니, 저는 이것을 개관적으로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흥미롭습니다.
이런 일들이 저에게 일어났습니다. 첫째로, 마음이 편합니다. 하루가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 너무 아쉽고 한스러워서 분통이 터졌었는데, 하루가 삼일이라고 생각하니 어느 정도 마음의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새벽 혹은 아침에 눈을 떠서 하루를 계획할 때에, 그 하루를 여유 있게 세등분하고, 세등분하여서 그것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오후를 지나면서 "아, 이제 나의 새로운 하루가 남았구나, 조금 더 잘 살아봐야겠다, 계획한 것을 조금 더 충실하게 해봐야겠다"라는 마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둘째로, 짜투리 시간을 더 잘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라는 시간은, 단 한번의 결심과 의지로는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루에 한 두번 효율을 극한으로 올렸다가도, 나머지 시간들은 좀 더 여유롭게 지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하루에 한 두번 정도 잘 했다라는 스스로를 향한 자부심의 한편에는, 나머지 하루는 적당히 살아도 된다라는 어리석은 여유로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짜투리 시간을 별로 소중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를 삼일로 살면서는 모든 것이 새로워졌습니다. 제가 오전에 한번 효율적으로 어떤 일을 한다고 해도, 아직 저에게는 며칠이 더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순간 순간이 굉장히 의식이 되고 진실해짐을 느꼈습니다. 작은 순간도 더 소중하게 여겨져서, 그것이 암송이든, 영어 공부이든, 아니면 책을 읽는 것이든 무엇이든 추가로 더 하게 되었습니다.
셋째로, 패배감에서 많이 벗어났습니다. 열심히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의 깊은 잠재 의식 속에는 짙은 패배감이 있었습니다. 하루를 잘 보내다가도 밤이 되면 지치기 때문에, 밤 시간을 잘 못 보낸 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루를 삼일로 계산하면, 저는 대부분 이틀은 잘 보내고 나머지 삼일째를 놓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제가 잘 보낸 것들을 좀 더 명확하게 구체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다시 한번 회복하고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둘째 날인 오후를 충실하게 보내지 못했다 하더라도, 밤이라는 저의 남은 하루는 여전히 있기 때문에 다시 마음을 돌이켜서 세번째 날에 충실하게 살수 있다는 것입니다. 약해진 마음에서 용기 있는 마음으로의 전환이 쉽게 이루어집니다.
넷째로, 충분한 휴식의 개념이 바뀌었습니다. 저 역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 종종 있습니다. 혹시라도 여유가 되면 그날 만큼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충분히 쉬었지만 거기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쓸데 없이 더 시간을 쓴다는 것입니다. 늦잠을 잤으면 거기에서 이제 일어나면 되는데, 굳이 내 마음속에 "하루는 잘 쉬어야지"라는 그 모호한 생각 때문에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루의 삼분의 일 정도만 쉬면, 충분히 회복이 된다는 것을 느낍니다. 오전만 쉬어도, 저는 하루를 쉰 것입니다. 하루를 압축적으로 쉬었기 때문에, 여전히 저에게는 이틀이 남아 있고, 그 이틀을 다시 활동함으로써 삶의 리듬을 잃어버리지 않는 엄청난 유익을 얻었습니다.
지금 저는 두번째 날인 오후를 보내고 있습니다. 첫째 날인 오전도 굉장히 의미있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을 크게 기대하게 됩니다. 저는 지금 보내는 두번째 하루가 너무 마음에 듭니다. 며칠 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글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삼일째 하루도 기대를 합니다. 가족과 함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그리고 부족한 설교 준비에 더 매진할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의 남은 날을 계수할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이것보다 더 지혜로운 기도가 어디에 있을까요? 하나님 없는 사람들도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기 위해서 자신의 남은 날을 계산합니다. 하물며, 여호와의 백성이 그분께서 선물로 주신 시간을 잘 사용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에 있을까요?
하루라는 긴 시간을 고군분투하던 제가, 이제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삼일의 시간을 압축적으로, 이전보다 약 30퍼센트 이상의 높은 효율과 의지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제 평생을 하루를 삼일로 살겠습니다. 더 부지런하게, 더 능동적으로, 더 의미있는 삶을, 하나님 앞에서 오직 그분을 위하여 살아가겠습니다.
7:18 The
words sat before the Lordindicate that David was in the
tent which served to house the ark. Who
am I, O Lord God: David’s
rhetorical question reflected his sense of unworthiness to have been extended
such a gracious promise (vv. 12–16).
7:16for all time … forever:
God’s promises do not negate human responsibility and accountability (7:14).
Wrongdoing requires a just response from God. However, no wayward son of David
could move God to withdraw his promise to preserve David’s dynasty. Although
the dynasty disappeared for hundreds of years, David’s house and kingdom
were renewed in Jesus Christ, the sinless descendant of David who reigns
forever. • before me: As in Greek version and some Hebrew
manuscripts; Masoretic Text reads before you.
7:19 God’s
plan to give David a lasting dynasty stretched well beyond his lifetime. The
promise is fulfilled forever in the eternal reign of Christ (Rev 11:15). • Do
you deal with everyone this way, O Sovereign Lord?
Or This is your instruction for all
humanity, O Sovereign L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