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 Simple Guide to Christian Book Clu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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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생각하는 것은, 저의 마음을 다 말씀드리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 몸에 배여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설교도 최대한 시간을 맞춥니다. 드리고 싶은 말씀이 더 많이 있지만 듣는 성도님들이 집중해서 들으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설교가 중요한 이유는, 저의 크리스천 북클럽의 목회 철학을 설교 안에 담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반드시 설교는 full-text 원고를 작성합니다. 그 말은, 저의 사용하는 단어 문장 그리고 논리적 구조는 아주 섬세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 정제된 언어로 정확한 목적을 가지고 작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요나서를 묵상하고 설교를 준비하면서, 성경의 논리적인 흐름이 북클럽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북클럽을 추구한다고 말하면 저를 잘 모르는 분들은, 그저 시간이 남아서 한가해서 책을 읽고 나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확신하는 것은, 크리스천 북클럽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교'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선교는 결국 누군가와 소통하면서 복음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여러 능력이 필요합니다. 절대로 그저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특정 주제에 대한 성경적 이해, 논리력, 경청, 공감, 이해, 설득 등의 아주 복합적인 성도의 자질이 필요합니다. 특별히, 성도의 자발성을 바탕으로 스스로 그 마음의 깊은 곳까지 변해야 합니다. 물론 반론이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확신하는 것은 오직 북클럽 셋팅만이 이러한 목적을 거의 완벽하게 이룹니다.
사실 교회 안에서 부터 이러한 훈련이 되지 않았는데, 교회의 담을 넘어서 세상으로 나가 복음을 전하고 사명을 따라서 살아가라는 것은 논리적인 모순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부터 폭넓게 다양한 주제들을 구역 모임 안에서 다루면서 쉬운 북클럽 셋팅에서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더 본격적인 북클럽 셋팅 안에서 더 심도 있는 책을 다루고 그것을 나누고 훈련하면서 선교적인 삶을 살기 위한 훈련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양육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한 성도님으로 부터 이렇게 카톡을 받았습니다. 참 기뻤던 것은, 저의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짧은 카톡 안에, 본인의 전체 삶의 방향을 담고 더 깊은 성장의 세계로 한걸음을 내 딛으신 것이 너무나 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일 예배를 위한 설교가 준비 되면 최소 세번 이상 실제로 리허설처럼 훈련합니다. 설교가 단순히 논리가 아니라, 제 안에 내면에 완전히 저의 것으로 되도록 만드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볼티모어 교회 성도님들이라면 위의 설교를 반드시 여러번 들어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성경적인 논리적 흐름을 보면서, 나 자신이 더 성장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깊이 이해하시고 또 공감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What I always think about is that it is difficult to fully express everything in my heart. Perhaps it is because being considerate of others has become second nature to me. Even in my sermons, I always try to keep the time as planned. There is much more I would like to say, but I believe that it is more important for the congregation to stay engaged and focused while listening.
The reason this sermon is important is that it contains the pastoral philosophy of my Christian Book Club. I always prepare a full-text manuscript for my sermons. This means that the words, sentences, and logical structure I use are meticulously crafted. Every word is carefully refined and written with a precise purpose. While meditating on the Book of Jonah and preparing this sermon, I realized that the logical flow of Scripture ultimately leads to the Book Club.
When I talk about pursuing a Book Club, those who don’t know me well might assume that I am simply reading and discussing books because I have free time. However, what I am convinced of is that God’s mission takes place through the Christian Book Club.
Mission work, at its core, involves communicating with others and delivering the gospel, which requires various skills. It is never something that just happens on its own. A deep biblical understanding of specific topics, logical reasoning, active listening, empathy, comprehension, and persuasion—all of these are essential qualities for believers. More importantly, transformation must happen from within, based on the voluntary commitment of each believer. Of course, there may be differing opinions, but I am convinced that the Book Club setting is the most effective way to achieve this purpose.
It is illogical to expect believers to go beyond the church and share the gospel with the world when they have not first been trained within the church. That is why we intentionally address various topics in small group meetings, using an easy Book Club format for training. Taking it a step further, we engage in deeper discussions with more advanced books in a structured Book Club setting, equipping ourselves for a missional life.
As we launched the discipleship program, I received a message from a church member. What made me truly joyful was that this person accurately understood my intention. In this short message, I saw a profound step forward—an individual embracing a new direction for their entire life and stepping into a deeper realm of growth. That was incredibly precious.
Opening multiple Book Club classes amid my busy pastoral schedule is not an easy task. However, the reason I do not back down is that there are things in life and ministry that truly matter. We must pursue the most biblical and excellent path with a clear purpose. Above all else, the education of believers takes priority, and at the same time, it is a process of growth for me as a pastor. The reason I love the Book Club is that I also learn from my dear church members during these times.
When preparing a Sunday sermon, I rehearse it at least three times as if I were practicing for a performance. A sermon is not merely a logical presentation—it must become fully internalized and a part of me. Therefore, I sincerely ask the members of Baltimore Church to listen to the sermon multiple times. As you observe the logical and biblical flow, I hope you will deeply reflect on what you need to do for your own spiritual growth and engage with it meaningfully.
* 볼티모어 교회 칼럼, 목회의 은혜를 나누며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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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가장 큰 기쁨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도님들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부르심을 교회 가운데 이루는 것, 그것이 저의 가장 큰 행복입니다.
선교위원장이신 신승철 장로님은 처음부터 북클럽에 굉장히 적극적이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먼저 저에게 위원회 안에서 모임을 이끌어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볼티모어 교회 선교 위원회는 참 열심있는 분들입니다. 어떻게하면 주님의 복음이 전파되고 복음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는 분들입니다. 저는 교회에 부임하면서 '복음이 울다'로 첫 북클럽을 시작하려고 결심했고, 이 책이야 말로 선교 위원회에 너무나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첫 모임을 시작하였습니다.
한시간 넘게 진행된 모임은 참 좋았습니다. 이제 시작이기 때문에 책의 '프롤로그'를 읽고 나누었을 뿐이지만 저자인 데이빗 플랫 목사님의 복음에 대한 간절함이 참여하신 분들의 마음에 깊이 들어간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복음을 억지로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억지로 전하라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감동을 받고 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아야 선교가 가능합니다. 그런 면에서 북클럽이야 말로 선교의 마음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형태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면서 준비한대로, 하나님께서 모든 분들에게 은혜의 마음을 주셨고 좋은 나눔이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신앙 생활을 같이 하신 분들이시기 때문에 서로를 더 잘 격려하시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상황 속에서 제가 기대하던 것보다 더 잘 하셨고, 또 그 짧은 시간 동안 성숙해져가는 모습이 보여서 감사했습니다. 서로의 깊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삶의 여정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목회자로서 또 믿음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성도로서 신앙의 선배님들께 배울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어떤 일이든, '한 걸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목회는 방대하고 어찌보면 끝이 없는 일이지만, 단 한번의 진실한 시간, 단 한번의 깊이 있는 나눔이 성도의 마음과 삶에 영향을 줍니다. 그리고 그 여정을 통해서 교회 공동체가 자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모임이 저에게는 큰 의미가 있었고 교회를 이끌어가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볼티모어 교회는 3월부터 본격적으로 북클럽을 시작합니다. 2월에는 성도님들께 홍보하고 팀을 만들 예정입니다. 오늘 그 시작을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열어주셨습니다. 볼티모어 교회 선교 위원회 가운데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미 교회를 사랑으로 최선을 다해 섬기고 계신 이분들을 축복합니다. 또한 귀한 이분들의 삶이 더욱 복음 중심으로 변하고, 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인생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What is the greatest joy for a pastor? It is seeing the congregation grow. It is fulfilling the Lord’s calling in the church for His people to mature into the full measure of Jesus Christ—and that is my greatest happiness.
Elder Shin Seung-cheol, the head of the mission committee, was very enthusiastic about the book club from the very beginning. He was the first to ask me to lead a meeting within the committee.
The Baltimore Church Mission Committee is filled with passionate individuals. They possess a strong desire to see how the gospel of the Lord can be spread and lived out. When I assumed my role at the church, I decided to start the first book club with Something Needs to Change, believing that this book was perfectly suited for the mission committee. And today, we held that very first meeting.
The meeting, which lasted over an hour, was truly enjoyable. Since it was only the beginning, we read and discussed just the prologue, but I was delighted to see how Pastor David Flat’s earnest passion for the gospel deeply touched everyone’s heart.
We cannot force the gospel upon anyone, nor can we compel someone to preach it. Only when our hearts are moved and we receive the grace that God offers can true mission take place. In this sense, the book club is one of the best ways to cultivate a missionary spirit. As we had prayed and prepared, God granted a spirit of grace to everyone, and we experienced a beautiful sharing.
It was wonderful to see those who have long shared their faith encouraging one another. I was grateful to observe that, in their individual circumstances, they exceeded my expectations and showed growth even in such a short time. Hearing each person share the journey of their life was a true blessing. It was also a precious opportunity for me, both as a pastor and as a fellow believer, to learn from these spiritual elders.
I believe that in any endeavor, a single step is important. Ministry may be vast and seemingly endless, but even one sincere moment or one deep conversation can touch a believer’s heart and life. Through this journey, the church community grows. Today’s meeting held great significance for me, and I thank God for guiding the church.
Baltimore Church will officially launch the book club in March. In February, we plan to promote it among the congregation and form teams. Today, God graciously opened the door for us to begin. I pray that God will bestow even greater grace upon the Baltimore Church Mission Committee. I bless those who are already serving the church with all their love, and I sincerely pray that these precious individuals’ lives will become even more centered on the gospel, leading to beautiful lives that please God.
* 볼티모어 교회 칼럼, 목회의 은혜를 나누며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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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회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함'이다
누군가 목회의 핵심이 무엇이냐고 저에게 물어본다면, 저는 '진실함'이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목회는 가식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섬기고 돌본다는 것은 억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 그리고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여서 섬기는 것이 목회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그룹은 목회자 그룹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자는 공동체의 리더이며 동시에 가장 앞장서서 섬겨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리더 그룹이 행복하지 않고 성장하지 않고 서로를 아껴주지 않는다면, 그 공동체의 미래는 매우 어두울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부터 마음을 많이 쓴 것이 목회자 팀입니다. 볼티모어 교회에는 저 외에 두분의 목사님과 한분의 간사님이 목회를 함께 섬기고 있습니다. 저의 분신처럼 KM에서 섬기시는 박동민 목사님, EM에서 장년부터 유스까지 담당하시는 나현수 목사님, 그리고 어린 아이들을 섬기시는 김미아 간사님까지 최고의 팀원들이고 참으로 귀한 분들입니다. 물론 세분 다 능력이 출중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진실하신 분들이기 때문에 저는 이분들을 정말 좋아합니다.
* 북클럽을 통해서 하나됨과 복음의 본질을 추구하다
목회를 하면서 지금까지 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목회는 팀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해야하는 일 이상을 하고, 자신의 삶 전체를 교회를 위하여 사용하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자신이 가진 능력보다 맡겨진 일이 훨씬 많기 때문에 쉽게 탈진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 그룹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돕고 섬기고 돌보고 격려하는 것은 교회를 세우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부임하자 마자 목회자 그룹 안에서 북클럽을 시작했습니다. 데이비드 플랫 목사님의 복음이 울다를 함께 읽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북클럽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필요한 부분들을 살피고 함께 책을 읽고 나누고 있습니다. 물론 매주 모임 속에서 교회의 행정적인 것들과 실제적인 것들을 살피고 회의를 합니다. 그러나 목회자 그룹 안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내면의 성장과 복음으로 우리 자신이 먼저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복음을 깊이 알아가는 진지한 나눔과 서로를 향한 도전과 격려 속에서, 저는 너무나 밝은 교회의 미래를 봅니다.
* 성숙하고 아름다운 목회를 향하여
오늘도 모임이 참 행복했던 것은, 목회의 본질에 대해서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성도님들을 살피는 것, 위해서 기도하는 것, 방문하는 것, 그리고 마음을 열고 성도님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목회의 본질에 대해서 서로가 공감하고 나누는 귀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같은 공동체를 섬기는 세 분과 이런 시간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인생의 가장 큰 기쁨입니다.
목회자들을 위해서 많이 기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것은 단순히 목회자에게 잘해주시면 좋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목회자 팀이 더 힘을 내어서 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응원을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홈페이지에 올라갈 목회자 각자의 소개는 준비중입니다. 조금 더 기다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더 성숙해지고 더 아름답게 섬기는 저희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The Importance of Sincerity in Ministry
If someone were to ask me what the core of ministry is, I would answer, "sincerity." Ministry cannot be done with pretense. Serving and caring for others cannot be forced. True ministry flows from a sincere heart, with a willingness to sacrifice oneself in order to serve others.
In this sense, I believe that the most important group in the church is the pastoral team. Pastors are the leaders of the community and, at the same time, the ones who must take the lead in serving. If the leadership team is unhappy, stagnant, or lacks mutual care, the future of that community will be bleak.
That’s why, from the beginning, I’ve invested my heart heavily into the pastoral team. At Baltimore Church, there are two pastors and one ministry staff member serving alongside me. Pastor Dongmin Park, who serves in the KM ministry as my right hand; Pastor Hyunsoo Na, who oversees the EM, from adults to youth; and Ministry Leader Mia Kim, who serves the children. They are the best team members and truly precious individuals. Of course, they are all highly capable, but what I love most about them is their sincerity.
Pursuing Unity and the Essence of the Gospel Through the Book Club
One thing I have painfully realized in ministry is that ministry is team-centered work. Most pastors do more than they are required to do, pouring their entire lives into the church. Because the responsibilities given to them often far exceed their abilities, they are prone to burnout. That’s why it is crucial for the pastoral team to understand, support, serve, care for, and encourage one another. This is the most important aspect of building the church.
With this in mind, I started a book club within the pastoral team shortly after arriving. We are currently reading Radical by Pastor David Platt. I personally conducted the orientation for the book club, prepared the necessary materials, and have been reading and discussing the book with the team. Of course, we also take time in our weekly meetings to address administrative and practical matters of the church. However, what I emphasize most within the pastoral team is inner growth and personal renewal through the Gospel.
In the midst of deep Gospel-centered discussions, challenges, and mutual encouragement, I can clearly see the bright future of our church. As we strive to know the Gospel more deeply and allow it to renew us, I have great hope for what lies ahead.
Toward a Mature and Beautiful Ministry
Today's meeting was especially joyful because we shared about the essence of ministry. We spent precious time agreeing and reflecting on what ministry truly is: caring for struggling members, praying for them, visiting them, and opening our hearts to listen to their stories. Sharing these moments with three others who serve the same community fills me with immense joy.
I kindly ask for your prayers for the pastoral team. This is not simply a request for you to treat the pastors well, but rather, a plea for your support so that the pastoral team can be strengthened to serve the church even more effectively.
We are currently preparing individual introductions for the pastors to be posted on the church website. I ask for your patience as we complete this. We will continue to strive toward maturity and a ministry that serves the church with beauty and sincerity.
* 볼티모어 교회 칼럼, 목회의 은혜를 나누며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5/02/blog-post.html
*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02)
- 복음이 울다 (데이비드 플랫) / 목회의 참된 비전을 발견하다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07/blog-post_24.html
* "복음이 울다" 북 리뷰 - 더 높은 참된 사랑으로의 부르심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8/blog-post_90.html
* 복음이 울다 (1)
- Day 1 : 모험의 시작_지구 반 바퀴를 돌아 낯선 도시에 떨어지다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3/04/1-day-1.html
* 복음이 울다 (2)
- Day 2 : 무기력한 복음?_경이로운 절경 속에 ‘상처투성이 세상’이 있었다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3/04/2.html
* 복음이 울다 (3)
- Day 3 : 가장 절박한 필요_영적 고통의 민낯을 마주하다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3/04/3-day-3.html
* 복음의 울다 (4)
- Day 4 : 세상을 바꾸는 복음 공동체_어둠 속에서 산을 오르는 작은 빛들을 보았다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3/04/4-day-4.html
* 복음이 울다 (5)
- Day 5 : 모두의 사명_내가 가진 것으로 누군가의 길을 비춰 주는 사람들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3/04/5-day-5.html
* 복음이 울다 (6)
- Day 6 : 헌신에 따르는 대가_복음은 낭만이 아니다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3/05/6-day-6.html
* 복음이 울다 (7)
- Day 7 : 복음의 참의미_통계 속 숫자가 아닌 '이름을 가진 한 사람'에게로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3/05/7-day-7.html
* 복음이 울다 (8)
- Day 8 : 삶을 내건 결단_'다른 누군가 하겠지' 하면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인가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3/05/8-day-8.html
어머니께 전화 드리는 것은 저의 큰 기쁨입니다. 혈육의 관계를 넘어, 진실한 목회자의 감격과 조언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허리가 많이 아프시다고 해서 걱정을 했습니다. 그렇게도 많이 다른 분들을 먹이고 심방 다니시느라 고생한 덕분입니다. 그나마 조금 나아지셨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서 마음이 들떠 계셨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줄 떡을 준비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가장 연약하고 돌봄을 받지 못하는 분들에게도 나눠줄 것이 있어서 기뻐하셨습니다. 오늘 설교의 내용이 어머니의 삶 속에 그대로 살아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를 통해서, 이 땅에 기꺼이 오신 예수님의 뒷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새벽은 영하 28도까지 떨어졌습니다. 최근에 하이웨이에서 타이어가 문제가 생겨서 멈춘적이 있었습니다. 업 친데 덮친 격으로, 갑자기 시동까지 걸리지 않아서 많이 당황을 했습니다. 급격하게 떨어지는 온도 속에서 자칫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언뜻 했습니다. 그 경험 때문인지, 오늘 교회까지 가는 길이 적잖이 부담이 되었습니다.
사실 차 시동이 문제였습니다. 예전 차가 동일한 환경에서 시동을 걸었다가 엔진이 망가졌기 때문입니다. 다시 차를 구입할 형편은 안되기에 시동을 거는데 마음이 조마조마했습니다. 저의 삶에 대한 고민의 무게와, 설교자의 설교의 무게를 잠시 비교해 보았습니다. 가는 길에 대한 두려움을 억누르고, 설교에 대한 기대와 뜨거움을 가지고 어두운 밤으로 달려 나왔습니다.
짧은 본문이지만, 본문 자체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가지고 있는 요한 1서에 대한 주석을 아마 거의 다 살펴 본 듯 합니다. 복잡하게 연결되는 문장들의 구성 속에서, 문법적인 부분에서 논쟁들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Exegetical Summary 조차 그 문제들을 다 다루지 못한다는 점에서 놀랐습니다. 보이스 목사님의 설교집에서도 문법적인 설명을 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것을 보면서 그 방향이 저의 방향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가지 해석에 대한 방향이 있을 때에, 설교자가 가지는 이해와 성경 읽기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특별히 19절이 많이 복잡했습니다. 다만 평소에 요한 1서를 읽으면서 제가 이해했던 방향으로 핵심을 짚어가며 설교했습니다. 그나마 Lutheran 주석이 핵심을 정리해주어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19. Hereby shall we know
that we are of the truth. Hereby, that is, if we love in “deed and truth,” this is
evidence that we are born of the truth, and of God. And
shall assure (persuade) our heart before him. This
evidence of brotherly love which establishes the fact that we
are born of the truth and of God, gives us also the assurance that we are
children of God. The heart is here conceived of as the seat of the whole
spiritual life as in James 5:8; 1 Pet. 3:4, and as the seat of consciousness of
the truth as in James 1:26. John here uses the word heart as
including the conscience, for it is the conscience which excites
and disquiets the heart, and which needs to be guided and pacified.
Revere F. Weidner, Annotations
on the General Epistles of James, Peter, John, and Jude, ed. Henry
Eyster Jacobs, vol. XI, The Lutheran Commentary (New York: The Christian
Literature Co., 1897), 311.
그리고 주석들은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아신다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굉장히 강조점을 두었고 칼빈의 경우에는 이것을 경고의 의미로 이해했다고 어느 주석에서 읽었습니다. 다만 저는, 또 다른 주석가들의 이해를 따라서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방향으로 암시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형제에 대한 이해는 루터의 설명이 너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스터디 바이블이 루터 원전과 연결되어 있어서 너무 편리했습니다. 로고스 프로그램을, 그리고 루터란 스터디 바이블을 이용하는 큰 유익입니다.
3:18 Love is prompted and
proceeds from the truth and is carried out in actual deeds done for the benefit
and blessing of another. Whatever tends to our brother’s salvation is done “in truth.” Luth: “To love a brother who is kind
and pleasant in return—this
is a trivial matter. This is the way the world also loves. ‘The crowd judges friendships by
their usefulness.’ Accordingly,
John does not say: ‘Let
us love those who are saintly, agreeable, and rich.’ No, he says: ‘Let us love the brethren,’ in such a way that then
nothing but the brotherhood is loved and regarded; for a brother is loved out
of a sense of duty, not because of usefulness and not because of praise. All
the gifts we have should serve those who do not have them. For example, he who
is learned should serve him who is not learned; he who is rich should serve him
who is poor; he who is sensible should serve him who is foolish, etc.” (AE 30:278–79).
Edward A. Engelbrecht, The
Lutheran Study Bible (St. Louis, MO: Concordia Publishing House,
2009), 2177.
추가로 약간 무리를 해서 오래 전에 읽었던 루이스의 “네 가지 사랑”을 다시 펼쳐 보았습니다. 문장들이 너무 황홀 했습니다. 과연 제가 절반이라도 이해하고 읽고 있는 것일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이 예전보다는 조금 더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데이비드 플랫의 “복음이 울다”는 다시 한번 탁월하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연약한 자를 향한 그 마음의 공감이야 말로, 성도의 본질이며 성도가 가져야할 궁극적인 방향입니다.
사랑을 베푸는 방향에서 재물을 쓰는 것이야 말로 너무나 탁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은 최근에 들은 팀캘러 목사님의 어느 설교에서 큰 영감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요한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자신의 말씀 속에 두 번 언급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역과, 연약한 성도를 위한 마음과 그들의 기도를 동일 선상에 놓습니다. 이 부분이 너무 충격이었고 너무 좋았습니다.
너무 어렵게 준비한 설교였고, 교회까지 가는 길이 쉽지 않아서 많이 피곤했습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설교는 설교자의 놀라운 특권이고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제 마음이 뜨거운 것처럼, 성도님들도 그렇게 들어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무엇보다 설교하는 제 자신이 말씀에 깊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 요한1서 3장 13-24절
성도님들께서는 혹시 누군가의 미움을 받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만약에 내가 잘못을 해서 누군가 나를 미워한다면, 그 원인이 나에게 있기 때문에 그나마 마음이 덜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내가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 억울하게 미움을 받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마도 그 사람의 마음은 크게 낙심할 것이고 너무나 슬퍼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오늘 말씀 13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3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서는 두 그룹이라는 분명한 구분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형제들"이라는 것은 주의 몸 된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고 "세상" 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편지를 받는 성도들의 마음 가운데, 그들이 받는 미움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니 내가 이렇게 사랑을 많이 베푸는데 왜 미움을 받는 것인가? 왜 나는 내가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미움을 받는 것인가? 내가 다른 이들을 구제하고 돕는데 왜 오히려 사람들은 나를 비난하는 것인가? 이러한 마음에 의문과 또 어려운 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미워하여도" 라는 것은 매우 강하게 싫어하고 적대감을 가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받는 그 미움이라는 것이 매우 비상식적인 것이고 불합리한 것이고 고통스러운 것임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도가 받는 미움에 대하여 요한 사도는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이상히 여기지 말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어 번역들은 대부분 "놀라지 마라" 라고 번역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 말씀이 명령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 사도는 우리의 놀라고 상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시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놀라지 말아라 그리고 이상하게 여기지 말아라 라고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왜 놀라지 말아야 하는가? 그 이유에 대해서 14절에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요한 사도께서는 두가지 점에서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첫째로 세상이 그렇게 우리를 미워하는 것은 그들 안에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랑이 없기 때문에 확실한 것은 그들은 생명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생명은 영적인 생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생명이라는 것은 단순히 살아있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생명이라는 것은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신 여호와를 아는 것이고, 하나님을 떠나서 죽어있던 영혼에게 하나님께서 은혜의 선물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생명을 얻으면서 이제서야 드디어 여호와를 섬기게 되는 것이고,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고 진정한 사랑을 우리 마음에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인가? 우리는 영적인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여호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며, 그분을 우리의 삶에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생명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고 마귀의 손아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며 자신의 이기심과 유익을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성도를 미워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우리를 위로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맥을 가만히 보면, 약간의 내용의 변화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처음에 사도 요한이 말씀하실 때에는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이 너를 미워해도 놀라지 마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생명을 말씀하시면서 교회 공동체 안으로 그 말씀의 초점이 옮겨가고 있습니다. 14절에 보니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라고 말씀하십니다. 15절에서는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형제는 교회 안에 형제 자매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15절에 말씀은 굉장히 충격적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교회 안에서 다시 말해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형제 자매를 미워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여기서 "미워한다"라는 그 동사가, 13절에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라는 동사와 동일한 동사이다 라는 것입니다.
무슨 의미인가? 교회 공동체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겉보기에는 성도와 동일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교회 공동체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내면은 전혀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세상 사람들이 그런 것 처럼 동일하게 생명이 있는자를 미워하며 핍박한다는 입니다. 하나님과 다른 형제들을 사랑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되려 그것을 비난하며 힐난하며 그 사람과 선행을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언뜻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입니다. 아니 굳이 왜 사랑을 베푸는 성도를 미워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황당한 미움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 미워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이다 라고 요한 사도는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성도와 아닌 성도를 판단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무엇인가?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그것은 자신의 형제를 사랑하는자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14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에 적잖이 놀랐던 것은 사랑이 가지고 있는 그 위치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랑이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실상 그것을 신앙의 그렇게 결정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사랑할 수 있으면 좋기는 한데, 그것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더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예배에 빠지지 않고 잘 참석하는 것이, 그리고 꾸준하게 성경 공부를 하는 것이, 그리고 좋은 책들을 읽는 것이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 아니다 그 사람이 정말 하나님의 자녀인가를 알 수 있는 것은 사랑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먼저 중요한 것은 "사랑" 이라는 것이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라는 점입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것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랑이 아니라 상대방을 사랑하는 사랑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과연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바로 그 사람 하나님의 자녀라고 확신할 수 있는 바로 그 사람은, 누구를 사랑하는 사람인가?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계속적으로 반복해서 형제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루터는 이 부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대중들은 그 사람이 유용하다면 쓸만하다면 그 사람과 우정을 가지고자 합니다, 따라서 사도 요한은 말할 때에 신앙이 좋고 유쾌하고 부유한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형제를 사랑합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라고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무슨 의미인가? 진정한 성도의 사랑의 대상은, 모든 사람들을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도도 자신의 가족과 자신에게 힘이 되는 사람과 따뜻하고 친절하고 신앙이 좋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의 대상이 그런 사람들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라는 것입니다. 참된 성도에게 사랑의 대상이 제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형제라는 것은 나에게 유익을 주는 존재만이 아니라 사실상 우리의 도움을 필요하는 가장 연약한 자들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심각하게 질문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목사님 저는 지금 목사님께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분명히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힘이 되고 아름답고 예쁘고 돈이 많고 저의 뒷배경을 될 만한 사람들만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 그렇게 크게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까?
저는 충분히 그들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왜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이렇게 심각하게 질문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 그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사랑이라는 것은 그런 사랑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본질이신 그 사랑이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주장하는 사랑과는 사실상 완전히 반대의 지점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C.S. 루이스는 그의 책 네가지 사랑에서 하나님의 본성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는 채움을 필요로 하는 어떤 욕망이 없으며 다만 주고자 하는 풍부함이 있을 뿐입니다”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슨 의미인가? 하나님의 본질인 사랑이라는 것은, 철저하게 다른 이에게 주고자 하는 것임을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16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참된 사랑을 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관점에서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라는 존재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예수님께서는, 사랑스럽고 가까이 하고 싶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분을 미워하고 온통 자기 밖에 모르는 죄인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버리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받은 사랑이라는 것이, 가장 연약하고 볼품 없고 가치 없는 자에게 주어진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고 고백하고,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였고, 그분이 우리의 머리가 되시는 참된 자녀가 되었다면 가장 연약한 자에게 베푸는 사랑을 가져야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라는 의미입니다.
요한 사도는 우리의 사랑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16절부터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 누군가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목숨을 버리는 것이 어떤 것입니까? 참으로 흥미로운 것은 17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16절과 17절이 연속된 말씀이라는 것이 너무 흥미롭다고 느껴졌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가 어떤 시대입니까? 재물을 위하여 사람을 속이고 사람을 해치는 시대입니다. 돈 때문에 가족이 깨어지고 돈 때문에 친구가 원수가 되는 시대입니다.
지구 전체 인구는 70억명을 돌파했습니다. 그러나 2008년 1월에 발행된 한 의학 전문지에서는, 전세계 5살 이하 어린이 사망 원인의 35퍼센트가 굶주림에 따른 것이라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상 돈이야 말로 우리의 목숨과 같은 것이다 그렇게 충분히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항상 흥미로운 것이, 사람들이 사랑을 베푸는 것에 대하여 굉장히 어렵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것을 매우 추상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재물로 어려운 형제를 도와준다면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베푸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작은 물질이 사랑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물일 수도 있고 음식일 수도 있고 따뜻한 밥 한끼일 수도 있고 차 한잔 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리스도의 그 베푸신 사랑의 본질이라는 것이, 가장 연약한 자를 향한 신의 그 사랑이라는 것이, 우리의 두 손과 우리의 물질과 우리의 베푸는 것을 통하여 어둡고 소망 없는 이 세상 속에 흘러 들어간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말씀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 앞부분의 말씀도 참으로 놀랍지만, 뒷 부분의 말씀은 더 놀랍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은 자가 마땅히 형제를 도와야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리고 그렇게 도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것이 우리 자신에게도 큰 유익이 된다는 것을 19절과 20절 그리고 22절에 말씀하십니다.
먼저 19절과 20절입니다. “3: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3:20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마도 모든 성도님들의 마음 가운데 구원에 대한 확신을 어떻게 얻는가? 거기에 대해서 모두가 관심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과연 무엇을 통해 확신할 수 있는가?
로마서 10장 9절에 말씀하십니다.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는다면, 그분을 나의 구원자로 주인으로 고백한다면, 우리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확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의 내면이 감정이 많이 흔들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 받은 이후에도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죄들과 실패와 연약한 부분들이 끊임 없이 우리를 연약하게 만들고 구원을 의심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때에 우리가 삶 속에서 행했던 그 진실한 순수한 그 사랑이, 우리가 정말 구원 받은 사람이라는 그 확신을 우리 마음에 심어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말로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복받치는 감격입니다. 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 부터 솟아오르는 기쁨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어떤 즐거움입니다.
우리가 정말 연약한 자들에게 우리의 손을 내밀 때에, 내가 나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상대방을 위하여 수고를 할 때에, 부족한 나의 물질을 쪼개고 또 쪼개어서 누군가에게 아낌 없이 베풀 때에, 바로 그 사실을 통해서 우리 마음에 확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 그렇구나 내가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구나, 하나님의 그 진실한 마음을 품은 사람이구나, 하나님의 생명이 내 안에 있는 것이구나, 예수님께서 바로 나를 이렇게 사랑하신 것이구나” 그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진실한 사랑을 행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 속에 구원에 대한 확신 뿐 아니라 우리의 기도 생활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3: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3: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기도하는 성도의 참된 마음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마음 속에 무엇이 가득한 것인가? 형제를 향한 사랑으로 가득한 것입니다.
물론 성도도 여전히 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가 완벽하다 하나도 흠이 없다 그런 뜻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도 이기심도 있고 자신에 대한 연민과 분노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훨씬 넘어서는 형제를 향한 진실한 사랑으로 가득해져 있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의 마음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것, 그의 삶의 전체의 방향성을 주장하는 그것이 바로 형제를 향한 그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성도가 어떤 기도를 하겠습니까? 연약한 자를 위하여 기도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스스로 힘으로는 도저히 일어설 수 없는 사람들, 영적으로 연약해져서 지쳐버린 사람들, 금전적인 어려움으로 눈물 흘리는 사람들, 아무도 돌아보지 않아서 외로움에 사무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위하여 실제로 행동하고 움직일 뿐만 아니라 당연히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을 기대하며 갈망하며 바로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어떻게 들으시겠는가? 너무나 기뻐하실 것이 틀림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22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기뻐한다” 라는 단어는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 가운데 행하셨던 바로 그 모든 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요한복음 8장 29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8: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정말 놀라운 말씀이지 않은가?
진실한 사랑으로 행하는 연약한 형제를 위한 그 기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온전히 이루신 이 땅에서의 그 구원의 일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그 기도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진실한 중보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영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를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근 몇년 동안 읽었던 책 중에 가장 제 마음을 움직였던 책은 "복음이 울다" 라는 책입니다. 그 책에서 저자인 데이빗 플랫 목사님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서 책의 서문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지난 수많은 예배들을 돌아보면 나와 우리 교인들이 식수나 식량이 절대적으로 모자란 사람들, 소중한 가족과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해 함께 눈물을 흘렸던 순간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왜 그토록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보며 가슴 아파 우는 일에 인색한 것일까?”
저와 성도님들의 삶과 내면은 과연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내면을 다시 한번 살펴 볼 수 있는 귀한 믿음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살펴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나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이 힘차게 움직이고 있는지 확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나의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사용하는 그 대상이 과연 연약한 형제 자매들인지를 점검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의 마음을 꽉 채우고 있는 대상이 힘 있고 능력이 있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가장 연약한 자들인지를 다시 한번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방향이 다시 한번 새로워지고, 그리스도의 그 사랑이 다시 한번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하고, 우리의 기도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워지는 모든 귀한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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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시 119:103) 누구나 성경을 열심히 읽으라는 말은 듣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꿀보다 달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