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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18일 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241) - 주의 아름다움은 말로 다


1. 가사 살펴보기

주의 아름다움은 말로다 형언할 수 없고
주님의 그 놀라우심은 다 표현할 수가 없네 

누가 그 지혜를 깨닫고 누가 깊은 사랑 측량할까
보좌에 앉으신 주의 위엄 아름다우신 주님 

내가 주를 경외함으로 주님 앞에 홀로 섭니다
찬양 받으시기 합당한 거룩하신 주님

 

2. 곡 소개

곡은, 여호와 하나님의 탁월한 위대하심에 대하여 진심을 담아 고백하는 곡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오직 그분만을 경외하며 평생 동안 찬양하겠다라는 신앙의 결단을 담고 있는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시편 145:3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위대하심을 측량하지 못하리로다

시편 8: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아름다운지요: 영어 번역으로는 장엄함이, 여호와의 이름은 당연하게도 이렇게 묘사됩니다. 오직 여호와만이 홀로 존재하시며, 항상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분이며, 더 나아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인류를 대신하여 항상 현존하며 행동하시는 분입니다. 영광: 하나님의 장엄함은 창조 세계의 경이로운 세부 사항과 디자인(특히 그리스도의 인성과 그분의 사역)의 측면에서 이땅에서 실체적으로 드러나며 우리가 볼 수 있는 안목을 넘어 천국까지 확장됩니다.

Edward A. Engelbrecht, The Lutheran Study Bible (St. Louis, MO: Concordia Publishing House, 2009), 851.

히브리서 12: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12: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은 그분 자신이 받으신 나라를 함께 상속하게 됩니. 은혜를 받자라는 것, 은혜로 말미암아 감사하는 마음을 얻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자 라는 뜻입니다. 그분의 음성을 듣는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내신 계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예배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약의 성도들이 하나님을 가볍게 대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면, 그분께서는 여전히 소멸하는 불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803.

로마서 11:33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제시한 은혜의 놀라움에 대한 유일한 적절한 반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의 경륜, 홀로 계획하시는 능력, 그리고 자비를 베푸시는 가운데 행하시는 절대적인 주권에 대하여 그분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6341635.

요한계시록 4:2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요한계시록 4:11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적인 위대하심과 그분의 높으심에 대하여 탁월하게 고백하는 찬양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 시대에 많은 사람들은 ''이라는 개념 자체를 인간보다 조금 뛰어난 존재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유일한 참된 신이시며, 인간을 완전히 초월하신 절대자이시며, 그분의 장엄함은 감히 인간의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오직 그분이 영원히 홀로 존재하신다. 그리고 그분은 넘치는 은혜로 인간을 구원하시며 그 일을 위하여 능력으로 다스리시며 일하시는 것이다.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는, 감히 인간의 지혜로 측량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은혜를 이미 받고 깨달은 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분에게 합당한 예배, 다시 말해서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온전한 예배를 그분께 올려드리는 것이다.

모든 죄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 여호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이, 그분의 백성이 하나님을 마음대로 대해도 된다라는 의미는 결코 아닌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여전히 절대적으로 거룩하신 분이시며, 소멸하는 불 그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면서, 언제나 온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높이고 경외하기를 원한다. 영원히 찬양 받기 합당하신 주님만을 높여 드리며 진실하게 예배하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3년 5월 23일 화요일

팀 켈러에게 배우다 (9) - Isaiah and the Alter / 하나님을 진짜 만난다는 것

 


* Isaiah and the Alter

넓은 바다와 그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해변에 서면, 뭔가 주저하게 됩니다. 압도적인 아름다움 앞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어린아이가 됩니다.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 앞에서 저는 그렇습니다. 모든 것을 듣고 싶은데, 또 한편으로는 단 하나의 설교 안에 머물러 있고 싶습니다. 

사실 정말 오래 들은 설교 한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는 이제는 다른 설교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또 들어 다른 설교를 들었습니다. 원래 더 많이 듣고 글을 적어보지만, 이번에는 세번 정도를 듣고 스크립트를 보고 공부했습니다. 

영어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 팀켈러 목사님의 깊이를 모두 따라가지 못해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삶의 깊은 내면을 만지는 그 논리를 아직 저는 충분히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래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을 더 고민하면서 듣는 것이 행복합니다. 


이번 설교는 이사야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이사야는 수도 없이 성전을 방문하고 거기에서 예배를 드렸지만, 유독 바로 한 날에 하나님을 "보게"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를 변화시킵니다. 이 설교의 주된 골자는 이사야갸 그렇게 경험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나, 그리고 진짜 성도의 경험과 가짜 종교적인 경험의 비교가 주된골자를 이룹니다.

팀켈러 목사님은 하나의 본문으로 설교하면서 동시에 다른 말씀에서 예화들을 자주 가져옵니다. 저 같은 경우는 혹시라도 성도님들의 집중력이 떨어질까 주저하곤 하는데, 팀켈러 목사님은 거침이 없습니다. 마리아와 마리다가 예수님을 만난 장면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을 위한 여러 열심은 있었지만 마르다는 결국 예수님과의 진정한 만남을 놓쳐 버렸음을 지적합니다.  

하나님과의 진정한 만남이, 로이드 존스 목사님에게도 일어났음을 인용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가져도 사실상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개인적으로 경험하고,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새롭게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진정한 기도교인이 됩니다. 교회 역사상 정말 큰 영향을 준 한분의 회심의 이야기가 좋았습니다.


이사야가 높으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난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조나단 에드워즈를 인용해서 논증합니다. 은혜의 하나님, 지혜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을 사람들은 사랑하지만, 사실상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것을 "얻기" 위한 것임을 지적합니다. 

이 부분이 굉장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저 역시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처절하게 깨닫게 회개하였습니다. 은혜의 하나님을 강조하고 설교하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얻기 위한 도구가 되었던 부분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서 어느 정도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가끔씩 기도 응답에 포커스를 맞춰서 신앙 생활을 하는 분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런 분들도 팀켈러 목사님이 설교 중에 염려하는 부류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도 응답을 해 주는 것", 그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열심히 기도하지만, 그것이 결국 자기 자신의 소원을 이루는 도구로 전락하며, 자신의 영혼의 변화와 삶의 변화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미신적인 신앙으로 변질되는 것입니다.

결국 설교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묵상하고 그분을 만나는 사람이 진정한 크리스천이라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는 분입니다. 오직 경배를 받으실 분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런 하나님을 묵상하는 것이 그분을 사랑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거룩하신 하나님을 묵상할 때에,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그분을 만나며, 그분의 은혜가 얼마나 큰 지를 우리에게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 

높은 보좌에 앉으신 거룩하신 가장 존귀하신 그분을 바라보고 붙들 떄에, 우리는 그분을 사랑하며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직 그분만이 우리의 주인이시며 우리의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을 그분께 맡길 수 있습니다. 

어렴풋이, 그러나 점점 더 선명하게 설교를 배워가는 것이 큰 행복을 줍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 저의 마음과 삶을 집중하고, 그 안에서 더욱 주님을 새롭게 진정으로 만나는 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팀켈러에게 배우다" 모음
- 성경과 신학, 그리고 목회를 배우기 위하여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1/blog-pos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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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1일 화요일

팀켈러에게 배우다 (3) - God Only Wise / 주님, 저는 지혜가 너무나 필요합니다

 

* God Only Wise
https://podcast.gospelinlife.com/e/god-only-wise/

심리학 용어 중에 "더닝 크루거 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능력이 없는 사람이 능력 부족으로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무엇이 자기의 실수인 것 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 용어를 공부한 이후에, 제 자신이 더닝 크루거 효과에 계속 빠져 있다는 생각을 종종합니다. 능력과 이해가 없기 때문에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상태인 듯 하다라는 느낌입니다.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는 듯 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이 알고 확신하는 것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비추어서 그리고 탁월한 사람들에 비추어서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이번 설교를 들으면서, 현재의 제 마음은 많이 좁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마음에 담기에는 저의 마음도 그리고 지적인 능력도 너무 부족합니다. 단순히 언어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 뉘앙스와 그 맥락과 그 풍성함을 마음에 담기에는 여전히 저는 너무나 좁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던 것은, 늘 고민하던 "지혜"라는 주제를 매우 진지하게 설교하셨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지혜의 첫번째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라고 강조한 부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설교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하나님의 때"를 이해해야 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저는 설교자로서, complexity 혹은 balance 와 같은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가뜩이나 세상사는 것이 복잡하고 힘든데, 삶은 복잡한 것이라고 혹은 밸런스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 무책임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설교 시간 만큼은, "이것은 이렇게 해야 합니다" 라고 확고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좋다고 지금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설교는, 삶의 Complexity를 처음부터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복잡성에 대한 언급과 이것에 대한 고민이 팀켈러 목사님의 장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팀켈러 목사님의 말씀처럼, 만약에 단순히 도덕적으로 옳은 것을 행하는 것만으로 삶이 잘 풀려나간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삶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상대주의자들은 그저 살고 싶은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팀켈러 목사님은 여기에 그렇게 많은 설명을 할애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염려하는 것이 도덕주의자들입니다. 도덕주의자들은 그저 옳은 것만 행하는 것이 지혜라고 말헙나더, 참된 지혜는 삶의 시기를 분간하는 것이며, 그리고 궁극적으로 참된 지혜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저는 성도로 그리고 목회자로, 이상주의자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이번 설교를 듣고보니, 도덕주의자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순수한 도덕주의자라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그분의 신성한 법을 지키는 것을 중요시하는 이상주의자에 가깝습니다. 특별히, 자신의 감정만 내세우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저의 저항입니다. 

그런데 이번 설교를 들으면서, 이것이 저의 가장 약한 부분임을 직시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항상 놓치는, 그리고 사실상 저의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 은근히 반항하는 것은,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시기" 입니다. 어떤 옳은 것도, 그것이 적절한 시기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매우 stupid 하다고 팀켈러 목사님은 냉정하게 이야기하더군요, 처음에는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설교를 두번 정도 다시 들으면서 충분히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왜 중요할까요? 그것은,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내가 아무리 어떤 것을 원해도, 그것이 궁극적인 지혜가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만드셨고 모든 것을 아십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만이 어떤 개인에게 어떤 공동체에게 어떤 일이 이루어질 가장 적절한 때를 아십니다. 

그래서 설교에서 결론적으로는 "주를 경외함"이 지혜라고 설명합니다. "경외"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풀어서 설명하는 부분이 좋았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잠잠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때를 기다리고 그분에게 순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바로 그렇게 하셨음을 이야기하면서 감동적으로 설교를 마무리합니다. 

현재 저의 삶을 관찰해 보면, 하나님의 때 라는 맥락에서 두가지 정도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가능하면 더 이상 들추지 않고 덮어두고, 그것을 하나님 앞에 순복하려고 하지만, 마음 안쪽에서부터는 반발심이 강하게 일어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반발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아주 엄밀한 의미에서 이것은 반발심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저의 근원적인 교만입니다. 설교를 통해서 제 자신을 살피면서, 지금까지 저의 삶의 의지가 그러했던 것 처럼, 저의 의지로 어떤 것을 행하려고 하고, 그리고 그 하나님의 때 조차도 제 마음대로 결정하고 싶은 교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 참된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미래를 바라보면서, 현재의 제 자신을 바라보면서, 제 자신을 돌이키고, 삶의 복잡성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때를 충분히 순복하면서 오직 그분을 경외하기를 원합니다. 지금은 당장 보이지 않아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여호와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 "팀켈러에게 배우다" 모음 - 성경과 신학, 그리고 목회를 배우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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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22일 화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출애굽기 1장 / 여호와의 백성이, 악한 왕 바로의 핍박을 받다


출애굽기의 시작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요약하며 시작합니다. 야곱은 자신의 가족들을 데리고 애굽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시에 하나님이 지어주신 이름 "이스라엘"로 불립니다. 

시간이 흘러 요셉과 그 시대 사람들은 다 죽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과 그분의 능력은 멈추지 않습니다. 위대한 야곱과 요셉의 죽음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너무나 큰 일이었지만 하나님께서 해결하지 못할 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자손은 번성합니다. 매우 강하게 되고, 온 땅을 채웁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입니다. 

이집트를 다스리는 새로운 왕은 이스라엘 백성을 두려워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 땅 안에 살고 있지만 그러나 그들의 정체성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습니다. 9절에 보니 성경은 의도적으로 바로가 "그(의) 백성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출애굽기 전체를 흐르는 중요한 테마입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그리고 바로와 그의 백성의 대결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억압은 11절에 다시 드러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단순히 노역을 한 것이 아니라 "바로를 위하여" 성을 건축하게 됩니다. 처절한 굴욕감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고, 세상의 악한 왕을 섬겨야 하는 비극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학대에도 불구하고,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갑니다. 감히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능력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바로는 새로운 전략을 가지고 접근합니다. 아예 이스라엘 민족의 근원을 없애 버리겠다는 전략입니다. 히브리 산파를 불러 아들이면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신과 같은 존재였던 바로의 명령을 받았지만 산파들은 그를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남자 아이들을 살립니다. 

산파는 지혜로운 대답으로 모숨을 부지하고 하나님은 오히려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산파들이 여호와를 경외하였다는 것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참되게 살아계신 능력의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만이 인간이 가져야 하는 바른 반응입니다. 

바로는 자신의 잔인함을 은밀하게 사용하려고 했지만, 이제는 노골적으로 온 나라에 드러냅니다. 22절에 보니 그는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합니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오직 하나님의 것이며 바로의 것이 아님을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악한 왕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모든 태어나는 아들을 죽이라는 끔찍한 명령을 내립니다. 여호와의 백성과 바로의 백성 사이의 갈등은 크게 고조되며 출애굽기 1장이 마무리가 됩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이 오직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고백하며 살아가는 것이 성도입니다. 우리의 삶은 오직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나의 삶을 붙들고 계심을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 속에 동화 되어서 아무런 긴장감 없이 살아가는 것은 평화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병든 것입니다. 저와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어떤 믿음과 그리고 어떤 긴장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In Exodus 1, we see the severe tension between the new Pharaoh and the Israelites. As God promised, the Israelites were flourished and the Egyptians were afraid for that. the Pharaoh insist that the Israelites were his people. He made the people of God build his castle and facilities. I think that this big burden gives humiliation to the people of God. 

The Pharaoh conspired that he will kill every boy to diminish the Israelites. But the Hebrew midwife was wide and disobey to him. They were afraid of the Pharaoh but Jehova. 

In Exodus 1, we see the sovereignty of God for his people. He reigns his people and leads to his purpose. Because we are the people of God, inevitably, we should have the pressure from the secular world. What pressure do we have? What faith do we have? Do we live according to God's will as his sacred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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