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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8일 토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77) - 밤이나 낮이나

 

1. 가사 살펴보기

나의 소망 되신 주 주를 바라봅니다
다시 오실 나의 왕 예수
주를 기다립니다 

밤이나 낮이나 어제나 오늘도
영원히 주만 찬양해
괴롭고 슬플 때 낙망하여 넘어져도
언제나 주만 찬양하겠네

 

2. 곡 소개

곡은, 더데이 미니스트리 예베인도자인 레베카 황의 곡이다. 2015년도에 발매된 '밤이나 낮이나' 싱글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모든 순간에 오직 주님만 기다리고 모든 상황에서 오직 주님만 찬양하겠다는, 성도의 깊은 갈망을 아름답고 매력적인 멜로디에 담아낸 탁월한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시편 39: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39:4 "Show me, O LORD, my life's end and the number of my days; let me know how fleeting is my life. 39:7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39:7 "But now, Lord, what do I look for? My hope is in you.

시편 기자는 자신의 삶이 짧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이 요청은 그가 자신의 내면을 성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업적이 아무리 위대해 보여도, 역사 속에서 사라집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은, 삶이라는 지상의 성취에 얽매이지 않아도 그 의미와 중요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Kevin R. Warstler, “Psalms,”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853. 

요한계시록 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2:20 He who testifies to these things says, "Yes, I am coming soon." Amen. Come, Lord Jesus. 

내가 속히 오리라는 것은 요한계시록에 세번째 등장하는 확언입니다. 세번이라는 이 형식은, 그리스도의 주장의 진실성과 확실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헬라어 문구는 아람어 표현인 마라나타와 동일합니다. 이것은 초대 교회에서 특히 로마 제국 하에서 박해를 받을 때에 간절한 호소였습니다.

John D. Barry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Re 22:20.

시편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1:2 But his delight is in the law of the LORD, and on his law he meditates day and night. 

주야라는 것은, 걷거나 서 있거나 앉아 있거나 자고 있는 모든 시간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Study Bible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08), Ps 1:2.

시편 63:6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63:6 On my bed I remember you; I think of you through the watches of the night. 

다윗은 침상에서 하나님께 그의 생각의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밤을 세 등분으로 나눕니다. 분명히 다윗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으며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그의 생각을 집중합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Ps 63:6.

시편 119:55 여호와여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 119:55 In the night I remember your name, O LORD, and I will keep your law.

여기서 언급한 밤은 밤새도록 울 수 밖에 역경의 때를 암시할 수 있습니다. 고난의 밤 동안 그가 혼란스러울 때에도 그의 영적인 시력은 여전히 맑습니다. 그는 주님이 누구신지 알고 있으며,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Daniel J. Estes, Psalms 73–150, ed. E. Ray. Clendenen, vol. 13,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TN: B&H Publishing Group, 2019), 414.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성도의 중심에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탁월한 찬양이다. 신앙이 깊어질 수록 우리가 깨닫는 것은, 인간의 생명 그리고 인간이 의지하는 모든 것들은 유한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을 두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찬양의 가사처럼, 나의 소망은 오직 주님 뿐이라고 고백하며 주님만을 바라보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시고 죽임 당하신 분이시다. 그러나 그분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으며 온 세상의 통치자로, 그리고 우리의 왕으로서 우리를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그분께서 반드시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신 그분을 진심으로 오늘도 기다리고 있는가?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를 칭찬하시며 모든 아픔을 갚으실 그 날을 소망하고 있는가? 이 찬양을 부를 때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되며, 재림을 고대하는 성도의 그 아름다운 마음으로 다시 회복하게 된다.

밤과 낮이라는 것은 성경에서 종종 나온다. 놀랍게도 다윗은 주의 말씀을 낮과 밤으로 묵상하겠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고난 속에서 긴 밤을 잠 못이룰 때에도 주님을 생각하며 말씀을 묵상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낮에만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평생동안 주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심지어 고통과 낙망 속에서도 주님만을 찬양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찬양은 성도에게 깊은 위로가 된다. 깊은 밤과 같은 고통 속에 있더라도, 이 찬양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이 회복되기를 원한다. 이 찬양을 부를 때 마다 새롭게 주님을 소망하며 평생동안 주님을 바라보고 기다리며 찬양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란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2년 2월 5일 토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마태복음 21장 / 종교의 중심지 예루살렘에서 맞서 싸우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드디어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십니다. 이미 여러번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가신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마지막으로 들어가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아시고 결정하신 자신의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들어가시는 가장 중요한 장면입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이 이야기가 벌어진 곳이 예루살렘이며 성전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원리상으로는 하나님이 임재하셔야 하는 곳이지만 현실은 그분의 다스리심을 잃어버린 곳입니다. 말씀이 선포되는 곳이었지만 실상은 말씀을 대적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과 성전은 단순히 종교적인 모습만 갖춘 곳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능력으로 심지어 자신이 타고 갈 나귀조차 결정하십니다. 스가랴 9장 9절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겸손한 분이십니다. 다른 성경 구절에서는 "온유"라고도 번역이 되었습니다. 온 우주의 영광을 다 합쳐도 예수님의 영광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장 높은 자로서 가장 낮은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고, 성 안에 들어오실 때 조차 그렇게 겸손한 모습으로 오십니다. 

예수님이 들어오시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환영합니다. 다양한 기대와 성격이 무리들 속에 섞여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정치적으로 구원해줄 지도자로 이해하고 그분을 환영합니다. 

예수님은 성전으로 바로 들어가십니다. 이미 성전은 제대로 된 성전의 기능을 잃어버린 상황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먼 곳에서 오는 사람들이 제물을 가지고 올 수 없다는 것을 이용하여서 폭리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모든 이득은 종교 지도자들과 연결이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 엎어 버리십니다. 

GT 스터디바이블은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들은 부정하게 여겨졌기 때문에 성전에 온전히 들어갈 수 없었다고 설명합니다. 아마도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는데 있어서 많은 제한 사항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에서 활개를 치며 장사를 하는 자들은 다 엎어버리시고, 성전에 들어오지 못하던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이 들어올 수 있게 하십니다. 

어린 아이들 조차 예수님을 향하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라고 외칩니다. 예수님은 이것이 시편 8편 2절의 성취라고 말씀하십니다. GT 스터디 바이블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이 말씀의 성취로 인식하지 못하였다 라고 설명합니다. 이미 구약을 읽고 공부하고 전문가로 불리는 이들이었지만, 예수님이 없다면 구약을 온전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다음날 무화과 나무가 열매를 없음을 보시고 저주를 하십니다. 단순히 화를 내신 것이 아니라 비유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열매 없음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제자들은, 이 의미보다는 "어떻게" 이렇게 빨리 무화과 나무가 말라 버렸는가에 집중합니다. 이 문맥에서는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이라는 것은, 지금 내가 간구하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라는 믿음이라고 풀어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성도의 믿음은, 내가 원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때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은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중요한 것은, 그 기도가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가에 대한 확신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그분의 능력으로 이루실 것을 기도하는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사역에 분노하며,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권위 혹은 권능로 다른 곳에서는 모두 번역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권위가 어디로 부터 온 것인지를 역으로 물으십니다.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고 있는데, 세례 요한은 분명히 예수님을 메시야로 선언했기 때문에 세례 요한을 인정하면 예수님까지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매우 위선적인 사람들이며, 당연한 증거까지 받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대답을 회피합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두 아들의 비유를 말씀하시며, 이들은 뉘우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십니다. NET BIBLE은 change your minds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사실 그 사람의 마음이 뉘우치는 것을 포함합니다. 종종 뉘우침도 없는데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요? 

GT 스터디 바이블은,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통해서 자신의 책망을 강화시키고 있다라고 설명합니다. 이 비유에서는 누가 보아도 포도원의 종들이 심각한 악을 행하고 있음을 부각시킵니다. 배은 망덕이라는 말로는 부족합니다. 이들은 매우 악한 자들이며, 주인을 매우 적극적으로 대적하여 결국 아들까지 죽이는 이들입니다. 명백하게 여기 아들은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시편 118편 22절과 23절을 인용하십니다. 여기서 가장 주목하게 되는 것은 "기이하도다"입니다. NET BIBLE은 marvelous로 번역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정말 기이하고 놀랍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낮고 낮은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무시하고 적대시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은 하나님이 얼마나 놀라운 일을 행하셨는지를 깨닫고 예수님의 가치를 알아봅니다. 예수님은 한 없이 온유하시며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을 대적하는 자는, 결국 산산히 부서질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에 대한 말씀"인 줄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히려 예수님을 잡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책망에 대하여 두가지 태도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말씀 앞에서 자신을 뉘우치고 돌이키는 자는 하나님의 틀림없는 자녀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말씀에 대적하는 자는, 산산히 부서질 것입니다.

In Matthew 21, we see that Jesus went to Jerusalem. It was the center of the religion because there was the temple of God. But, we know that the function of the temple was almost have failed. The religious leader of the Israelites did not concern about the reign of God. They are just concerned about their financial profit. Jesus turned over the tables of the money changers and the chairs of those selling doves. 

Jesus blames the religious leaders with two parables. The one is the parable of the two sons. And the other one is the parable of the tenants. Surprisingly, they understood the point of the two parables. They could find out the right and wrong in the parable context. However, they did not repent and accept Jesus as their true savior. Rather, they wanted to arrest him. That was the only desire in their mind and soul. 

Jesus is unassuming. His glory could not be compared to the glory of the whole universe. However, he humbles himself to ride the colt. He is so humble that the people who have faith in him will meet him certainly. However, the people who reject him to the end will be broken to pieces and crushed. This is a marvelous thing that God does now in this world. Heavenly Father wants every person to come to him repenting their sin. However, his patience is not forever. When his son will come again to this world, we see the final judgment.

2021년 12월 3일 금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시편 1편 / 생명의 삶 or 죽음의 삶

 

시편 1편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악인과 의인의 대조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시대는 악인과 의인의 경계를 점점 허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의인에게도 악한 면이 있고, 악한 사람도 의로운 부분이 있다고 사람을 이해합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완전한 기준 앞에서는 모두 악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의를 입은 자만이 의인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무리에 동참하지 않습니다. GT 스터디 바이블은 악인들은 걷고, 서고, 앉음으로서 그들의 악행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의인을 설명할 수 있는 수 많은 비유들이 있겠지만,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것, 그것 하나로 모든 것을 담아 냅니다. 의인의 모습은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기쁨 그리고 주야로 라는 말을 통해서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매우 인격적이며 자발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는다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직업을 가지는지, 그 사람이 어떤 취미를 가지는지, 혹은 그 사람이 어떤 인종인지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외로 묵상이라는 문자적인 의미를 모르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GT 스터디 바이블은 "낮은 톤으로 중얼거리는 것"이라고 아주 명확하게 정의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진리로 인해서 완전히 그 마음에 풍성해진 그런 마음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고 설명합니다. 제가 영어를 잘 못하지만, David Gundersen의 묵상은 정말 따뜻하고 멋집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자는, 풍성한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광야 지역에는 제대로 된 나무가 자라기 힘듭니다. 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물만 옆에 있으면 나무는 풍성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말씀이야 말로 우리가 풍성해 지기 위한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형통이라는 말에서 잠시 멈추게 됩니다. 예수님 잘 믿는데 고생하는 분들은 어디가서 자기 이야기도 잘 못하십니다. 우리의 본능이 그렇습니다. 하나님 믿으면 무조건 잘 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미 창세기에서 요셉의 형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은, 세상 만사 자기 뜻대로 풀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심" 입니다. 성도 안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말씀을 묵상할 때에 그 하나님을 확신하며 의지하며 바라보는 수준은 감히 비교할 수 없을만큼 올라갑니다. 그것이 형통입니다. 

악인은 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현대인들은 더 이상 심판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심판을 이야기합니다. 악인의 운명은 천국과 지옥 사이에 걸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운명은 지옥입니다. 

그러나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알고 인정하시는 걸입니다. 말씀으로 인해서 풍성하고 심지어 고난 가운데에서도 행복을 누리는 의인은 생명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악인은 그 최종적인 길은 심판과 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삶의 여정 속에서, 말씀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시편 1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생명과 죽음을 가르는 바로 그 척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완전히 압도된 그 삶이 바로 생명의 삶인 것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평생을 추구해 나가기를 원합니다. 

In Psalm 1, we see the big contrast between the blessed one and the wicked. The wicked are walking their evil way and they make their path hard more and more. However, the blessed man meditates God's word all the time with delight. 

The blessed man is described by a tree planted by flowing streams. This shows the flourish of the spiritual blessing. The psalm says that he succeeds in everything. I want to define the succeeds according to Joseph's story. He was in prison but he was successful because God was there with him. The people of God could have the hardship. But, they could overcome with God's word. 

I saw God's judgment in this chapter. Psalm 1 shows evidently there will be the final judgment in our last time. I think that people of the present society do not believe this. However, the Bible shows clearly judgment. Only the people of God who in Jesus Christ and love the word of God will go enter God's eternal king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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