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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5일 목요일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 God Will Make A Way - ACAPELLA PRAISE


시 37:3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6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9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10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11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요즘에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마음의 중심'입니다. 제가 섬기는 목회 가운데, 그리고 저의 삶 가운데 과연 무엇을 목적으로 그리고 무엇을 중심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는가를 깊이 고민합니다. 

결국 목회는 많은 것을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소한 것부터 더 크고 중요한 것까지 끊임없이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택이라는 것은 어떤 기준을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특히 요즘에, 제 자신의 기준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합니다. 

교회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결정 가운데 저의 책임이 묻어난다는 것이 마음에 깊은 부담이 됩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수 많은 이해의 충돌 속에서, 때로는 사람들의 자기 중심성으로 물든 수 많은 역학 관계를 지켜보고 분석하고 이해하면서, 이 모든 것이 참으로 쉽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요즘에 수요일에는 구약을 설교합니다. 광야를 지나가는 이스라엘 백성을 묵상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 인생이 광야이구나' 예전에는 상당히 비유적인 것으로 이해를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것이 비유가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자 그대로였습니다. 저의 인생은 말 그대로 광야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래 전 성지 순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광야 그 자체였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그 황량한 땅, 끝도 없이 펼쳐진 모래와 숨막히는 더위, 잠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그 절박함이 이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제 마음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 광야가 제 눈앞에 언뜻 홀로그램처럼 펼쳐졌습니다. 그리고 제가 바로 거기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스라엘처럼 악한 불평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설교했고, 항상 제 마음에도 경계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제 마음 한켠에서는 깊은 공감이 있습니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그 광야 길을 잠시라도 걸어본 저는 그들이 경험한 고통이 너무나 이해가 됩니다. '오 주님, 도대체 물은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왜 주님은 저를 여기로 이끌어내셨습니까?' 저의 마음은 죄와 한탄과 고민 사이에 그 어딘가에 놓여 있습니다. 

시편을 읽으며 마음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미 주님의 품에 안긴 다윗의 시편이 그렇게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고난의 길을 믿음으로 걸었던 그의 삶이 부러웠고, 이미 그는 주님의 품에 안겨 있다는 것이 그렇게 부러웠습니다. 

다윗의 고백이 마치 저의 영혼에 직접 말하는 듯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는 말씀이 선명해서 참 좋았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 그리고 악인들의 형통에 분노하지 말고 끝까지 여호와를 소망하라는 말씀이 제 마음에 너무나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저는 목회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목회가 가진 그 독특함, 그리고 그 쉽지 않음은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며, 오직 하나님께서 아시는 부분이며, 저의 책임입니다. 

지금까지 목회하면서 어려운 일들은 항상 있었습니다. 다만 과거를 돌아보며 하나 감사한 것은, 적어도 저의 욕심으로 저의 이득을 위하는 길보다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교회에 덕을 세우는 방향으로 애를 많이 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시는 부분이며, 그래서 감사한 부분입니다. 종종 가슴을 쓸어 내립니다. 그때 나 자신만 위해서 선택했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구름 기둥이 보입니다. 그분이 이미 광야 가운데 제 앞에 계십니다. 그런데 구름 기둥 뒤가 잘 보이지가 않습니다.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가 모래 바람으로 많이 가리워져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어차피 광야는 정해진 길 자체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다는 것, 그것 하나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으로 다시 한 번 위로 받으며 그 결심을 굳혔습니다. 저는 완벽한 사람도 아니고 대단한 목회자도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책임에 대해서는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언제나 그런 것처럼, 저의 개인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세우는 것에 저의 중심을 놓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10년 후에 지금의 저를 돌아보았을 때에, 그리고 이 글을 다시 읽었을 때에, 오직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는 것, 여호와를 소망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더 깊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될 날을 반드시 경험하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그것이 오직 주님 안에서 가지는 저의 흔들리지 않는 소망입니다. 

2026년 6월 22일 월요일

AI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 흔들리지 않는 미래를 바라보라 in 프레션 연합기도회

 


* 설교는 언제나 어렵다

제 개인적인 성향을 보면, 굉장히 수줍음이 많은 편입니다. 그렇게 제 주장을 강하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오랫동안 북클럽을 섬겨서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주로 경청하고 주로 질문하는 편입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가장 많이 하는 말 중에 하나는 "예, 그러시군요" 입니다.

그런 저에게 외부로 나가서 설교까지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설교에 대한 부담을 늘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설교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제가 담임으로 섬기고 있기 때문에 저희 교회 성도님들께는 최선을 다하고 그 영향에 대해서는 제가 감수하겠지만, 굳이 제가 어디론가 가서 설교를 더 한다는 것은 항상 주저하게 됩니다. 


* 프레션 연합기도회

며칠 전에 김대영 목사님이 연락을 주셨습니다. 프레션연합기도회에 와서 설교를 해 주면 좋겠다는 부탁의 말씀이었습니다. 두 주 동안 사역에 너무 진을 빼고 집중했기 때문에 적어도 Father's Day 저녁만큼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김대영 목사님께서 저희 교회 부흥회를 오실 때 얼마나 바쁜 스케쥴을 빼서 오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이번에 기도회는 청년들도 함께 한다는 부분이 상당한 부담이었습니다. 저는 청년 사역의 경험이 있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저의 여러 부분들이 청년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청년은 저의 아픈 손가락입니다. 그래도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저는 제 개인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을 섬기는 종이기 때문에 제가 편한 자리만 찾아갈 수는 없습니다. 결국 기꺼이 가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 설교와 언어는 신비롭다

저는 설교라는 것 자체가 '신비'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분의 뜻을 전달하십니다. 그것 자체가 너무 큰 부담입니다. 차라리 그 자리에 서지 않고 스스로 입을 닫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도 종종합니다. 그래서 설교는 한편으로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영적인 면에서도 부담이지만 인간적인 면에서도 부담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적어도 삼십 분의 시간을 말을 하는데, 그 말이 흐름이 있어야 하고 논리적으로 설득이 되고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것도 거의 불가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언어라는 것도 '신비'입니다. 저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가장 강력한 증거가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단어와 단어가 만나고, 문장이 만들어지고, 단락이 만들어집니다. 그러한 흐름 속에서 생각이 전달이 되고 사실은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전달됩니다. 그래서 설교 원고를 쓰는 것은 너무 큰 부담이고, 동시에 큰 희열이며 감사이고 넘치는 은혜이며 영광입니다. 


* 고민과 고민이 설교를 만들어내다

사실 이번에 준비한 설교는 저의 몇 년 동안의 고민을 완전히 담고 있는 설교였습니다. AI시대를 들어오면서, 제가 여러 책을 읽으면서 고민했던 부분들을 담고 있습니다. 과연 성도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성경적인 혹은 제 나름대로의 해답을 제시하면서, 흔들리지 않는 미래를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라고 결론을 맺는 일종의 신학적인 논증입니다. 

들으신 분들은 어떻게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시간이 지날수록, 평소에는 저의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습니다. 필요한 자리에서 필요한 만큼을 말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점점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제 블로그에 들어오시는 열정까지 가지고 계신 분들이라면, 깊이 있게 이 설교를 들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래의 두 글도 참조하시면 좋겠습니다. 

* 독서 묵상 (54) 퓨처 셀프
-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전진하라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5/12/54.html

*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25)
- AGI 천사인가 악마인가 (김대식) / 두려운 미래를 걸어가야 하는 우리를 생각하며

https://jungjinbu.blogspot.com/2025/11/25-agi.html


* 나는, 흔들리지 않는 미래를 바라보는 성도이다

우리가 앞으로 걸어갈 시대는, 구원받은 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온전히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세상적인 성공이 아니라 자신에게 맡겨주신 사명에 더 초점을 맞추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가 그렇게 살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이유는, 우리의 미래 속에서 완전한 승리를 주시고 상급을 주실 주님을 믿고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설교가 그러한 것처럼, 이 설교 역시 제 자신을 첫 번째 청중으로 삼은 설교입니다. 요즘에는 삶이라는 것이 점점 더 심플해 보입니다. 저의 하루가 주님 보시기에 의미 있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세상적인 성공에 휘둘리지 않고, 제가 섬기는 모든 부분들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작품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주님의 품에 안길 때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을 받을 수 있다면, 저는 다만 그것으로 온전히 족할 것입니다. 

2026년 6월 15일 월요일

내 마음은 가볍고 또 가볍구나 / Friends Forever - Dan Siegel

 


목회는 항상 긴장이 있습니다. 사는 것 자체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어디론가 한없이 내려앉는 것 같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깊은 탄식으로 계속 기도한 제목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참 마음이 쉽지 않은 시간들이 한동안 있었습니다. 

그래도 요 며칠은 마음이 참 가볍다고 느꼈습니다. 모든 부분에서 최대한 절제하는 것이 많이 도움이 된 듯합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저의 책 《세변북》을 잘 마무리했다는 것이 저에게 큰 위로를 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때론 너무 분주하게 시간이 지나가기 때문에, 충분히 마음에 느끼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것을 마음에 조금 늦게 경험하곤 합니다. 마치 조금씩 밀물이 해변으로 점점 더 밀려오는 것처럼, 이제서야 책을 낸 것에 대한 감사와 기쁨의 마음이 제 안으로 더 많이 밀려 들어옵니다. 

유학으로 공부를 하면서 마음에 부담이 항상 있었습니다. 요즘도 아주 가끔은, '도대체 내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미국에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이 부분에서 공부에 대한 소명을 주셨다고 생각했고, 제가 경험한 것들을 나누어야 한다는 스스로의 압박이 있었습니다. 누구도 저에게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렇게 십 년 넘게 제 마음을 누르던 압박이 사라졌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해냈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로 행복할 줄은 몰랐는데, 참 행복합니다. 이 홀가분함을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미국에 산다는 것은 많은 것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가족과의 친밀함, 친구들과의 우정, 내 나라 고국 안에서 누리는 평안함,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자면, 만약 제가 한국에서 저 혼자만의 행복을 추구하고 살았다면, 제 책은 아마 절대로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제 책을 손에 들었을 때에, 저의 모든 수고와 눈물이 충분히 보상 받았음을 깨달았습니다. 저의 삶이 누군가에게 유익이 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일일이 제가 설명하지 않아도, 제 책을 읽으시는 분들이 얼마든지 스스로 길을 찾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궁금한 것들을 읽어 보시고 공부하면서 자신의 상황에 맞추어 선한 길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청년 시절에 처음으로 순장을 했던 시간이 기억이 납니다. 막상 리더가 되었는데 뭘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아쉽게도, 친절하게 그리고 자세하게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방향도 없고 가이드도 없이 그저 교재 하나만 주어진 그 막막함은 여전히 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제 책을 읽으신 분들은, 그런 막막함을 많이 극복하실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제 책은 북클럽에 적용할 수도 있고, 스몰 그룹 리더로서 적용할 수도 있고, 진지하게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한 방법으로도 적용할 수도 있습니다. 저의 공부, 철학, 고민 그리고 삶의 방향을 모두 담았습니다. 과거의 힘들었던 제 자신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미래의 조금 더 성장한 제가 해 줄 수 있는 작은 선물을 해 준 것 같아 그것이 또한 기쁨입니다. 

목회자는 수도 없이 병원에 심방을 갑니다. 아픈 분들을 보면서, 그저 내가 건강한 몸으로 걸어서 심방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기적임을 느낍니다. 주어진 하루가 축복이고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중요한 소명을 일단락한 것이 그렇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의 삶은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저는 그저 저의 역할을 할 뿐입니다. 그래도 사실 조금 부담이 되는 것은, 혹시 하나님께서 비슷한 혹은 더 어려운 소명을 저에게 더 주실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두려움과 기대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저의 주인이시기에 저의 선택권은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저에게 소원들을 주신다면, 또 그것들을 이루기 위해서 최대한 신실히 노력해야겠습니다. 그것이 저에게 주어진 인생의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그저 신실하게 걸어가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고, 주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시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2025년 7월 22일 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225) - 주께서 주신 동산에


1. 가사 살펴보기

주께서 주신 동산에 땀 흘리며 씨를 뿌리며
내 모든 삶을 드리리 날 사랑하시는 내 주님께 

비바람 앞을 가리고 내 육체는 쇠잔해져도
내 모든 삶을 드리리 내 사모하는 내 주님께 

땅끝에서 주님을 맞으리 주께 드릴 열매 가득 안고
땅끝에서 주님을 뵈오리 주께 드릴 노래 가득 안고
땅의 모든 끝 찬양하라 주님 오실 길 예비하라
땅의 모든 끝에서 주님을 찬양하라
영광의 주님 곧 오시리라

 

2. 곡 소개

찬양은 고형원씨의 곡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삶에 충실하며 헌신하겠다라는 고백과, 그러한 신실한 섬김 가운데 주님 오실 날을 기다리겠다는 재림 신앙을 아름답게 표현한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창세기 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이 말씀은 창세기 1 28절에 나오는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명령의 의미를 명확하게 해줍니다. 인간은 마치 하나님께서 직접 하시듯이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그분의 창조 세계를 돌봅니다. 인간은 다스릴 권능을 가졌고 그렇게 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합당한 방식으로 다스리도록 지시 받은 것입니다.

John D. Barry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Ge 2:15.

 

시편 73:26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시편 96:11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바다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외치고 96:12 밭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즐거워할지로다 그 때 숲의 모든 나무들이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노래하리니 96:13 그가 임하시되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라 그가 의로 세계를 심판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

이 말씀은 영광의 왕께서 오심에 대해 온 피조물이 응답하기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심판하신다라는 것은 시편 98 9절에서 비슷한 표현을 찾아볼 수 있으며, 요한계시록 19장과 20장에서 그 성취를 볼 수 있습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Ps 96:11–13.

고전 3: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3: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3: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고대 세계에서도 큰 건물은 반드시 시험과 승인을 받아야 했다는 사실을 언급합니다. 건축 계약서에는 검사일이 언제인지 명시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그 검사일을 가리킬 때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정확한 표현, 그 날이 밝히리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바울이 말한 것은 종말론적인 검사일, 즉 건축자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복음의 기초 위에 어떻게 건축했는지를 조사하실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F. Alan Tomlinson, “1 Corinthians,”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815.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성도에게 주어진 사명과 그 열매를 주님 앞에 드릴 날을 고대하는 소망을 담고 있는 아름다운 찬양이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에게 이 땅을 맡기셨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살아간다. 이것이 성도에게 주어진 아름다운 사명이다. 성경은 성도의 삶을 결코 꽃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시편은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다 라고 말하면서 성도의 삶이 결코 녹녹치 않음을 분명히 말씀하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생의 결산을 주님 앞에 드릴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것이다. 그것이 개인적인 죽음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중에 어느 것이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복음 위에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서 주님께서 평가하실 날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은 오늘 하루가 주님 앞에서 진실하고 아름다워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를 바라보면서 주님께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하실 그날을 기대해야 한다. 모든 피조물이 함께 기다리는 그 영광스러운 마지막 날은, 우리가 상상하던 그 이상으로 충격적이고 또한 감격적일 것이다. 우리에게 확정된 그 미래를 바라 볼 때에 우리가 오늘을 살아갈 영적인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찬양을 부르면서, 또한 주님께서 크게 칭찬하실 그 날을 기대하며, 주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3년 10월 16일 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53) -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1. 가사 살펴보기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나의 맘 나의 몸 주께 드리오니, 주 받으옵소서.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써주소서.
가진 것 모두다 주께 드리오니, 주 받으옵소서.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나를 받으옵소서

 

2. 곡 소개

곡은 최덕신 목사님의 곡이며, 박종호 2나를 받으옵소서에 수록된 곡이다. 박종호 2집은 크리스천 뮤직 100대 명반에도 선정되었다. 이 곡은,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는 이사야 6장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찬양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쁨으로 응답하며 자기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아름다운 성도의 모습을 그려낸 탁월한 찬양이다.

* [크리스천 뮤직 100대 명반] (14) 박종호 2 <나를 받으옵소서> (1990)
http://nym.kukminusa.com/news/view.php?gisa_id=0924178558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이사야 6: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6:8 Then I heard the voice of the Lord saying, "Whom shall I send? And who will go for us?" And I said, "Here am I. Send me!"

6:8 Send me: In ancient Middle Eastern religions only divine beings are sent as messengers of the gods. Yet the God of Scripture uses human beings as a matter of course. Only at certain times does He use angels in a direct way to reveal His will to humankind. Isaiah’s willingness proceeded from a grateful heart; he wanted to serve the God who had forgiven him (v. 7). 나를 보내소서 : 고대 중동의 중교에서는 신성한 존재만이 신들의 사자로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당연하게도 인간을 사용하십니다. 그분은 특정한 때에만 천사를 사용하여 자신의 뜻을 인류에게 직접 계시하십니다이사야의 자원함은 감사하는 마음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자신을 용서하신 하나님을 섬기기 원했습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Is 6:8.

고린도전서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6:19 Do you not know that your bodies are temples of the Holy Spirit, who is in you, whom you have received from God? You are not your own; 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6:20 you were bought at a price. Therefore honor God with your bodies.

6:19 do you not know Paul asks a question to explain his association of the physical body with holiness (vv. 13–17). The nature of this question suggests that the Corinthian believers should already know about this truth. 알지 못하느냐? : 바울은 육체와 거룩함과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질문을 합니다. 질문의 본질은 고린도 신자들이 이미 진리를 알고 있어야 함을 암시합니다.

your body Refers to the body of each believer. Paul’s use of the singular form of “body” may emphasize that each believer is a temple of God. Paul also described the entire church community as the temple of God in 3:16. the temple In this context, Paul focuses on individual believers instead of the entire church community. See note on 3:16; compare 2 Cor 6:16 and note. 너희 : 신자의 몸을 가리킵니다. 바울이 이라는 단수형을 사용한 것은 아마도 신자가 하나님의 성전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바울은 또한 고린도전서 3 16절에서는 교회 공동체 전체를 하나님의 성전으로 묘사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바울은 교회 공동체 전체가 아닌 신자 개개인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6:20 For you were bought at a price In Paul’s time, masters purchased slaves from other masters, thereby issuing a change in ownership for a slave. Paul reminds the Corinthians that God purchased them from slavery to sin and death through the sacrificial death of Christ. Therefore, they belong to God, not to themselves (1 Cor 6:13; compare Gal 2:19–20). 값으로 것이 되었으니 : 바울 시대에 주인들은 다른 주인에게서 노예를 사서 노예의 소유권을 변경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죽음을 통하여 죄와 사망의 노예됨으로부터 그들을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그러므로 그들은 자기 자신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John D. Barry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1 Co 6:19–20.

골로새서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개역개정) 3:17 And whatever you do, whether in word or deed, do it all in the name of the Lord Jesus, giving thanks to God the Father through him (NIV).

3:17 do all in the name of the Lord Jesus. Paul highlights one of the primary motivations of the Christian life. Believers are not to live for the praise or affirmation of man, but all their deeds and words are to be for Christ, with a heart of gratitude to God.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 바울은 그리스도의 삶의 중요한 동기들 중에 하나를 강조합니다신자는 사람의 칭찬이나 인정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말과 행동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731.

3:17 as a representative of the Lord Jesus (literally in the name of the Lord Jesus): In the Bible, a person’s name represents that person. To do something in the name of the Lord Jesus is therefore to act in a way that is in harmony with his identity and under his authority. 성경에서 사람의 이름은 사람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이름으로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은그분의 정체성과 그분의 권위에 일치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Study Bible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08), Col 3:17.

할렐루야(Hallelujah) 히브리어로는할렐루야흐’(הַלְלוּיָהּ), 헬라어로는할렐루이아’(Ἁλληλουϊά), ‘(너희들은) 여호와를 찬양하라 뜻이다. 라틴어 읽기에 따라서는알렐루야’(Alleluia) 발음되기도 한다. 예배시에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함께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북돋우어 내어지르는 소리이다. ,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경배의 외침으로 사용된 일종의 감탄사이다. 말은 시편 104–106,111–118,120–136,146–150 등에서( 시편 시작 부분 또는 마지막 부분에) 사용되었는데이들 시편을 ‘할렐시’라고 부른다. 이스라엘 3대 절기, 곧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에는 할렐시가 정기적으로 사용되었다. 

가스펠서브, 성경 문화배경 사전 (서울시 종로구 경희궁1 5-9(03176): 생명의말씀사, 2018), 880.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께 소명을 받는 말씀에 근거하여 만들어졌다. 누가 하나님을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갈 것인가를 말씀하실 때에 이사야는 자기 자신이 여기 있다고 하나님 앞에 대답을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의 모든 죄를 씻으신 분이시기에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꺼이 그분을 섬기고자 결단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오늘 이 순간에도 여전히 그분을 모르고 대적하는 이 어두운 세상을 구원하기 원하신다. 그리고 동일하게 모든 성도들에게 물으신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묵상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 성도는 하나님의 소유이다 라는 것이다. 마치 내가 마음에 들면 하나님께 반응하고,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산 자가 되었으며,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것임을 성경적으로 깨닫고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이 찬양은 알렐루야라고 반복하여 고백한다. 그것은, “여호와를 찬양하라라는 뜻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자신의 소유된 백성으로 그리고 그분의 자녀로 만드신 하나님을 우리는 찬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마땅히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의 소유로써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어두운 이 시대에 빛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예수님의 권위에 따라 그분 앞에 온전히 순종하며, 그분이 원하시는대로, 그분의 기쁨이 되기 위하여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찬양을 부를 때마다, 우리 삶 전부를 오직 주님을 위하여 드리기를 결단하 담대히 그렇게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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