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중반이 되니,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마음에 후회가 밀려옵니다. 젊은 시절에 그렇게 많은 시간이 있었는데 헛되게 쓴 것이 참 아쉽고, 또 많은 기회가 있었는데 더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도 마음에 남습니다.
그래서 더 시간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이제부터라도 시간을 소중히 써야겠다는 절박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할 때에 목회는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이미 해야 하는 일 자체가 많고, 거기다가 항상 추가적인 일이 생깁니다. 모든 직업이 그렇겠지만 목회야 말로 한정된 시간을 효율적이고 탁월하게 써야 하는 직업입니다.
* 뽀모도로?
아마도 '뽀모도로 기법'에 대해서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탈리아의 한 경영 컨설턴트가 제안한 시간 관리 방법론입니다. 뽀모도로는 이탈리아어로 '토마토'를 뜻합니다.
뽀모도로 기법은, 처음에 이 방법을 만든 사람이 토마토 모양의 주방 타이머를 쓴 것에서 이름이 유래하였습니다. 25분을 집중하고 짧게 휴식을 취한 이후에, 이러한 셋트를 4번 정도 반복하고 30분 정도 긴 휴식을 취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미 이 기법에 대해서 들어보았지만 사실 거의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25분이라는 기본 시간이 너무 짧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보통 설교나 일을 하기 위해서는 기본 텀을 2시간 정도로 잡아야 하는 현실과도 좀 맞지 않다고 생각햇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제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특히 '뽀모캣'앱을 사용하면서 뽀모도로 기법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 앱 소개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뽀모도로 방법은 너무나 단순합니다. 그래서 뽀모도로 앱에 특별히 기대할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저 25분 타이머와 5분 타이머만 들어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뽀모캣은 다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앱이 너무 예쁘고 귀엽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정말 큰 장점입니다. 피곤해서 혹은 귀찮아서 하고 싶지 않을 때에도, 앱 자체가 너무 귀여워서 한번이라도 더 사용하게 됩니다.
아래가 타이머를 시작한 화면입니다. 타이머 밑에 동그라미는, 뽀모도로 셋트를 몇 세트를 할 것인가에 대한 표시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하루 다섯 번 하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동그라미가 다섯개 입니다.
이제 타이머를 시작하면 귀여운 고양이가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애니메이션이 나옵니다. 아주 심플한 에니메이션이지만, 화면을 보고 있으면 오피스에서 혼자 일할 때에도 왠지 외롭지 않은 느낌을 줍니다.
아래는 25분이 지나고 휴식 시간이 되면 나오는 이미지입니다. 자동으로 이 이미지가 뜨고, 아래에 재생 버튼을 누리면 5분의 휴식이 시작됩니다. 고양이 애니메이션이 너무 귀여워서, 25분 동안 집중했던 몸도 마음도 리프레쉬가 됩니다.
뽀모캣은 기본적으로 무료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필요한 기본적인 타이머 기능은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료 플랜에 가입하면, 애니메이션을 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제어판에 들어가면 기본적인 에니메이션이 있고, 추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료 회원은 사용할 수 없다는 의미로 자물쇠로 잠궈져 있습니다.
저는 무료 회원으로 사용중이기 때문에, 제어판에서 특별히 더 보여드릴 것은 없습니다. 백색 소음도 같이 나오는 기능도 있는 듯 하지만 사용해 본 적은 없습니다.
* 결론 : 뽀모캣으로 집중력을 최대한 유지하자
한동안 사용해 보니, 저에게도 뽀모도로 기법은 효과가 크다고 느꼈습니다. 언뜻 보면 25분이 짧아서 오히려 방해가 될 것 같은데, 그정도 시간이면 꽤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장 질 높은 집중력을 유지하는데에는 25분이 적당하다고 느꼈습니다.
추가로 저의 개인 건강을 위해서도 이 기법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워낙 오래 오피스에서 일하다보니, 그저 한 자리에 앉거나 서서 계속 일만 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25분 후에 5분 휴식 기간 동안에 잠깐 걷고 나면 컨디션 유지에 훨씬 도움이 됩니다.
이상적으로는 하루에 열번이라도 하고 싶지만, 아직 다섯번 정도가 저의 한계입니다. 그래도 이정도면 꽤 성공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훨씬 더 집중력을 발휘해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혹시라도 저처럼 뽀모도로 기법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뽀모캣을 한번 써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연간 계획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계획을 세우고 나면 한해가 다 진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머리 속에 모든 계획을 담고 살아가다보니 일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갑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요즘에는 순간 순간을 조금 더 마음에 담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비록 한해는 너무나 빠르지만, 적어도 행복한 순간들을 잠시나마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는 목회가 언제나 모든 분들을 품고 아우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와 잘 맞고 통하는 사람, 그리고 나를 더 지지해주는 사람과 어울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넉넉히 품고 사랑하시는 것처럼, 목회는 함께하는 모든 분들을 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전도회의 어르신들과 함께 주일 오후에 함께 걸었습니다. 함께 교제하며 걷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저의 아버지 연세에 해당하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더 마음이 갑니다. 오랫동안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신 분들이시고 지금도 수고를 참 많이 하시는 귀한 분들이십니다.
작년 가을에 사역을 시작할 때에는 단풍이 어떤지도 모르고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잠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걸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왕복 4마일이 목표였지만 중간에 포기를 했습니다. 토요일 늦게까지 주일을 준비하고 주일 설교까지 하고 나니 이미 체력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어르신들이 너무 무리해서 걸으시는 것이 아닌가 염려했지만 생각보다 더 잘 걸으셔서 놀랐습니다.
걷는 길이 참 좋았습니다. 슬쩍 찍은 사진 두장이 썩 마음에 듭니다. 바쁘게 목회와 일상이 지나가지만, 순간을 누리는데 더 마음을 써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들을 마음에 조금더 부지런히 마음에 담아야겠습니다.
교회에 귀한 믿음의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시간이 참 빠르다는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저 역시 벌써 40대 중반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아마 저도 곧, 그분들의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나누게 될 것입니다. 목사님,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가지요?
아무리 탁월한 사람도 쉼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을 기계처럼 해낼 수는 없습니다. 엄청난 다작으로 유명한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책을 읽는데 그렇게 고백해 놓았더군요, 자신이 일중독이었고 사실은 쉼을 제대로 가질 수 없었다구요, 그래서 참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에 완벽을 살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이 인생의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저에게 인생을 설명하던 많은 사람들은, 그저 학창 시절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알려주었습니다. 그때 하는 공부와 그때 하는 성숙이 인생의 전부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이를 조금 더 들어보니, 그것은 거짓말 혹은 적어도 삶의 참된 의미를 모르는 분의 속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전에 어떤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요즘에는 자료가 참 많아서 좋다, 그래서 설교 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일견 맞는 이야기입니다. 과거에 목회하시던 분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은 자료들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훨씬 좋은 세상에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료를 읽어내고 종합하고,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개척하는데 있어서는, 여전히 다른 이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치열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처음에 설교 매니저를 사용하기로 결심했던 글을 찾아 보았습니다. 무려 거의 4년 전의 글이네요.
그 이후에 한동안 설교 매니저를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바쁜 목회 일정 때문입니다. 사실 설교를 제 시간에 쓸 수 있다는 것만해도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문제는, 설교를 다 쓰고 나면 이렇게 작은 정보를 집어 넣는 설교 매니저를 사용할 작은 기력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년 정도 전부터 다시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마음에 가진 생각은 "딱 하나만 넣어보자" 입니다. 사실 사람의 마음에 설교 하나에 대한 정보를 넣는 것 정도는 별로 대단하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막상 그 일을 소홀히 하게 됩니다. 현재 여력도 부족하니 그냥 넘어갑니다. 그러나 제 자신을 부단히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초인적인 인내력을 발휘해서 정보를 넣기 시작했습니다.
몇개월 정도 지나자 아주 조금 익숙해 졌습니다. 고통이 10에서 8 정도로 줄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10에서 4 정도로 줄어들었습니다. 지금도 마음 한편에서는 설교를 쓰고 매니저를 띄울까 말까라고 고민합니다. 그래도 최근에 작성하는 거의 모든 설교는 다시 설교 매니저 안에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성경 66권의 폴더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폴더 안에, 날짜, 성경 본문, 그리고 가능하다면 제목까지 넣어서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만 해 놓아도 큰 유익입니다. 적어도 과거에 그 본문을 설교를 했는지를 찾아볼 수가 있고 다시 내용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역시, 설교 매니저를 사용하는 것만이 목회의 효율성을 더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됩니다. 물론, 제 설교는 기본적으로 폴더에 계속 저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설교 매니저 안에서는 시리즈, 제목, 본문, 간단한 코멘트 그리고 주제에 따라서 계속 정리하고 있습니다. 일단 한눈에 모든 설교를 다 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다양한 필터를 통해서 정렬하면서 사용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은 점입니다.
특별히 오랜 시간 설교 자료를 축적하면서 좋았던 것은, 설교를 테마별로 정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스스로 설교를 준비할 때에, 꼭 이 내용은 기억하고 싶다, 이것은 이 주제와 딱 맞는 것이다 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쉽게 잊어버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주제별로 태그를 넣고 정렬을 해보니, 활용 가치가 굉장히 높아지고 뻗어간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기존에 하던 주일과 수요일 그리고 새벽 설교 이외에 또 다른 설교 요청이 있을 경우 이러한 주제별 분류를 따라서 필요한 설교를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혹은 어떤 주제별로 두가지 설교를 연결하여서 하나의 큰 설교를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동안 꾸준히 정리만 하였는데 이렇게 주제별로 설교를 분류해 보니, 앞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들이 더 잘 보이는 듯 합니다.
하루 하루 사역을 감당하면서 겨우 버텼지만, 그 작은 한걸음들이 의미있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 같아 기쁨이 있습니다. 정보를 모으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긴 안목으로 도전하고 또 그것을 이루기 위한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마 이러한 설교 매니저의 사용이 폭발적인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앞으로 5년 정도는 더 사용해야 할 듯 합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어짜피 시간이 걸릴 것을 알고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방향입니다. 느려도 방향이 맞다면 열매가 있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이런 부분에서 목회적인 필요를 느끼신다면, 포기하지 마시고 꼭 한번 설교 매니저를 사용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이와 같은 때엔
나 노래하네 사랑을 노래하네
주님께 이와 같은 때엔
손 높이 드네 손 높이 드네 주님께
주님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주님 사랑해요
2. 곡 소개
이 곡의
원 제목은 In Moments Like These 이다. 이
곡은, 자신의 삶의 중요한 때에 그리고 모든 순간에, 오직
하나님을 높이고 그분께 사랑을 고백하겠다는 아름다운 성도의 고백을 담은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하박국 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3:17 Though the fig tree does
not bud and there are no grapes on the vines, though the olive crop fails and
the fields produce no food, though there are no sheep in the pen and no cattle
in the stalls, 3: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3:18 yet I will rejoice in
the LORD, I will be joyful in God my Savior.
농사가 실패하고 동물이 죽으면 유다 땅은 황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박국은 굶주림과 상실의 때에도 여전히 주님 안에서 기뻐할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하박국의 감정은 주변의 사건에 의해서
휘둘리지 않고, 그에게 힘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에 의해 통제 되었습니다.
시편 34:1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34:1 Of David. When he pretended to be insane before Abimelech,
who drove him away, and he left. I will extol the LORD at all times; his praise
will always be on my lips.
다윗이 하나님을 항상 송축하라고 말하는 것은,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에서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한 것과 유사합니다. 다윗은 회중을 향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동참하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시편 103: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103:1 Of David. Praise the LORD, O my soul; all my inmost being,
praise his holy name. 103: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개역개정) 103:2 Praise the LORD, O my
soul, and forget not all his benefits— (NIV)
J.
I. Packer, Wayne Grudem, and Ajith Fernando, eds., ESV Global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2012), 809.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들을
떠올리게 하는 찬양이다. 이 찬양은 마치 열린 결말을 가진 영화와 같다. 특별히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모든 때를 떠올리게 하면서, 그 시간들의
의미를 묵상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찬양이다 라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가장 어려운
고난의 때에도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우리가 항상 여호와를 송축해야 하며, 그분이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를 잊지 말 것을 권면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고난 가운데에도 주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은, 성도는 환경에 흔들리거나 절망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우리에게 힘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삶의 모든 순간에 주님을 사랑한다고 기꺼이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미 그분께서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절대적이며, 지금
내가 숨쉬는 모든 순간을 그분의 자비와 긍휼로 넉넉히 채우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찬양을 통해서 삶의 모든 순간을 하나님께 찬양으로 올려드리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미 베푸신 그리고 지금도 베푸시는 은혜 속에서 감사하며,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시고 그 사랑 안에 거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소원한다.
11년만에 한국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7년만에 부모님을 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래도 정정하신데 어머니께서 많이 늙으셨습니다. 굽은 허리에 펑퍼짐한 바지를 입으시니, 어렸을 적 기억하던 외할머니와 똑같은 모습입니다. 흰 머리가 너무 많이 늘어서 자꾸 눈물이 나는데 티를 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속상하면, 어머니도 속상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개척하신 교회에 처음으로 가보았습니다. 의자들이 제법 많이 놓여있습니다. 함께 섬기시던 분들이 도시로 떠나고 소천하였지만 어머니의 의지는 아직 꺾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식사를 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해주신 오이 볶음이 그렇게 싫었는데, 알고보니 세상에서 제일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콩자반도 육계장도, 모든 것이 꿈만 같습니다.
세상 누가 뭐래도, 어머니에겐 제가 최고입니다. 십년 넘게 유학하고 미국에서 지내는 아들을 위해 그렇게 애를 많이 쓰셨습니다. 원하는 공부를 마치고 다시 돌아와 어머니와 마주 앉은 이 시간 앞에서 과거를 돌이켜 보니, 잠시 꿈을 꾸었던 것 같습니다.
신앙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머니의 수고 결단, 그리고 영적 전쟁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무속 신앙에 사로잡힌 가문에 시집을 와서 그렇게도 고생하셨습니다. 지금 제가 누리는 모든 것은, 어머니의 기도와 헌신 덕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들어드리고 또 위로해 드리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인생이 너무 고단하고 힘들어서 여전한 아픔이 마음에 있지만, 그래도 제가 들어드리면 조금은 편안해 하십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지만 어머니 곁에 잠시라도 있을 수 있어서 그것이 행복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부모님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습니다. 이 잠시의 시간을 주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를 올려 드립니다.
시편 90: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개역개정)
Teach us to number our days, that we may gain a heart of wisdom. (NIV)
65세에 은퇴할 경우, 오늘로서 저에게 8204일이 남았습니다. 아, 시간의 흐름이란... 시간은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이자 친구이며, 또한 동시에 가장 큰 적입니다. 사라지는 듯한 이 시간이 너무나 아쉬워 저는 몸부림칩니다.
어렸을 때에는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피식 웃었습니다. 굳이 그렇게 오래 사는데 집착할 필요가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직 젊었기 때문에 시간의 소중함을 몰랐고,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잔인한 것인가를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멘탈리티를 하루에 한번 꼭 봅니다. 그리고 신학책을 포함해서 다양한 책들을 봅니다. 멘탈리티가 이미 자기 계발서이지만 또 다른 자기 계발서 한권 정도는 더 추가해서 보는 편입니다. 제 자신을 끊임없이 새롭게 자극하기 위해서입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삶의 좀 더 의미있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시간을 가치 있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자기 계발서들이 모두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어떤 부분에서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저자가 다르기 때문에, 그들이 걸어온 삶의 궤적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자기 계발서에는 "독특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독특함이 저에게는 큰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저보다 앞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혜를 배우는 것이 너무 즐겁습니다.
평소에 저의 모토는 "딱 한걸음만 더" 입니다. 이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책을 읽고 있고 감동을 받고 있기 때문에, 심지어 실천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제 자신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록하지 않은 것은 희미해지며, 희미해지는 것은 영향력을 잃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영혼의 안쪽으로 깊이 집어 넣기 위해서는, 충분히 생각해야하며 그것을 글로 선명하게 새겨야 합니다.
이 책은 제목이 너무 좋아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막상 책장을 펼치니 별로 재미는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아마존 베스트 1위에 등극하는 책들은 다 좋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에 책이 별로이면, 다시 목차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목차에서 마음에 드는 장으로 바로 넘어갑니다. 이렇게 하면 생각보다 얻는 것이 꽤 있습니다. 굳이 모든 책을 처음부터 정독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자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첫 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마음에 드는 곳으로 부담없이 넘어갔고, 기대하지 않았던 큰 교훈을 발견하였습니다.
저자인 에드 마일렛은 "하루를 삼일처럼" 산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당신도 그렇게 해보라고 권면합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단순하고 말장난 같기도 합니다. 하루가 삼일이라니? 그냥 하루 세등분을 해서 사는 것과 무슨 차이인가? 처음에 든 생각입니다.
그런데 저자의 논리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 시대는, 과거와 완전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편지 하나를 보내는데에도 며칠을 써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몇초만에도 가능합니다. 다시 말해서, 과거와 지금은 전혀 다른 세상이며, "시간이 가진 가능성의 크기"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와 현재의 하루는 절대로 같을 수 없습니다.
과거에 하루에 하던 일을, 지금은 오전이면 가능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것을 저자는 "시간을 압축한다"라고 말합니다. 표현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압축적으로 사용할 때에, 하루는 세번으로 늘어나며 삼일의 크기 혹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니, 저자의 말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과거에 한달 동안 붙들고 있던 일도 오전에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로고스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십권의 책을 한번에 읽어나가고, 그것이 디지털로 연결되고 하나의 네트워크로 완성되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시너지를 만들어냅니다. 동일한 시간 안에, 차원이 다른 깊이의 학습과 묵상을 가능하게 합니다. 사실상 다른 이들과 전혀 다른 시간의 가치를 누리는 것입니다.
마치 그런 것처럼, 지금 시대에 맞춰서 하루를 생각하라는 것이 저자의 조언입니다. 일단 저는, 옳다고 생각되고 마음에 확신이 들면 바로 그 순간부터 실천합니다. "하루를 삼일처럼 살아라"라는 조언도 마찬가입니다. 며칠 동안 적용해 보고 저는 너무 좋았습니다. 사실, 일종의 매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스스로 착각할 정도로 저에게 변화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참 흥미롭습니다. 시간을 압축한다니, 그리고 하루를 삼일처럼 산다니, 그리고 그것일 실제로 나의 삶에 이루어지고 있다니, 저는 이것을 개관적으로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흥미롭습니다.
이런 일들이 저에게 일어났습니다. 첫째로, 마음이 편합니다. 하루가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 너무 아쉽고 한스러워서 분통이 터졌었는데, 하루가 삼일이라고 생각하니 어느 정도 마음의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새벽 혹은 아침에 눈을 떠서 하루를 계획할 때에, 그 하루를 여유 있게 세등분하고, 세등분하여서 그것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오후를 지나면서 "아, 이제 나의 새로운 하루가 남았구나, 조금 더 잘 살아봐야겠다, 계획한 것을 조금 더 충실하게 해봐야겠다"라는 마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둘째로, 짜투리 시간을 더 잘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라는 시간은, 단 한번의 결심과 의지로는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루에 한 두번 효율을 극한으로 올렸다가도, 나머지 시간들은 좀 더 여유롭게 지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하루에 한 두번 정도 잘 했다라는 스스로를 향한 자부심의 한편에는, 나머지 하루는 적당히 살아도 된다라는 어리석은 여유로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짜투리 시간을 별로 소중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를 삼일로 살면서는 모든 것이 새로워졌습니다. 제가 오전에 한번 효율적으로 어떤 일을 한다고 해도, 아직 저에게는 며칠이 더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순간 순간이 굉장히 의식이 되고 진실해짐을 느꼈습니다. 작은 순간도 더 소중하게 여겨져서, 그것이 암송이든, 영어 공부이든, 아니면 책을 읽는 것이든 무엇이든 추가로 더 하게 되었습니다.
셋째로, 패배감에서 많이 벗어났습니다. 열심히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의 깊은 잠재 의식 속에는 짙은 패배감이 있었습니다. 하루를 잘 보내다가도 밤이 되면 지치기 때문에, 밤 시간을 잘 못 보낸 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루를 삼일로 계산하면, 저는 대부분 이틀은 잘 보내고 나머지 삼일째를 놓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제가 잘 보낸 것들을 좀 더 명확하게 구체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다시 한번 회복하고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둘째 날인 오후를 충실하게 보내지 못했다 하더라도, 밤이라는 저의 남은 하루는 여전히 있기 때문에 다시 마음을 돌이켜서 세번째 날에 충실하게 살수 있다는 것입니다. 약해진 마음에서 용기 있는 마음으로의 전환이 쉽게 이루어집니다.
넷째로, 충분한 휴식의 개념이 바뀌었습니다. 저 역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 종종 있습니다. 혹시라도 여유가 되면 그날 만큼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충분히 쉬었지만 거기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쓸데 없이 더 시간을 쓴다는 것입니다. 늦잠을 잤으면 거기에서 이제 일어나면 되는데, 굳이 내 마음속에 "하루는 잘 쉬어야지"라는 그 모호한 생각 때문에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루의 삼분의 일 정도만 쉬면, 충분히 회복이 된다는 것을 느낍니다. 오전만 쉬어도, 저는 하루를 쉰 것입니다. 하루를 압축적으로 쉬었기 때문에, 여전히 저에게는 이틀이 남아 있고, 그 이틀을 다시 활동함으로써 삶의 리듬을 잃어버리지 않는 엄청난 유익을 얻었습니다.
지금 저는 두번째 날인 오후를 보내고 있습니다. 첫째 날인 오전도 굉장히 의미있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을 크게 기대하게 됩니다. 저는 지금 보내는 두번째 하루가 너무 마음에 듭니다. 며칠 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글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삼일째 하루도 기대를 합니다. 가족과 함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그리고 부족한 설교 준비에 더 매진할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의 남은 날을 계수할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이것보다 더 지혜로운 기도가 어디에 있을까요? 하나님 없는 사람들도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기 위해서 자신의 남은 날을 계산합니다. 하물며, 여호와의 백성이 그분께서 선물로 주신 시간을 잘 사용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에 있을까요?
하루라는 긴 시간을 고군분투하던 제가, 이제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삼일의 시간을 압축적으로, 이전보다 약 30퍼센트 이상의 높은 효율과 의지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제 평생을 하루를 삼일로 살겠습니다. 더 부지런하게, 더 능동적으로, 더 의미있는 삶을, 하나님 앞에서 오직 그분을 위하여 살아가겠습니다.
흘러간 어제 일과
마주한 오늘의 삶 속에 내 주님 계시네 위태로운 내 삶을
신실한 주의 사랑으로 완성해 가시네
창조의 사랑이 나를
빚으시고 따스한 숨결 날
온전케 하네 태초부터 영원토록 그 사랑 내 영혼
붙드시네
내 모든 삶 속에
참 길이 되시고 이 길 끝에서 날
안아 주시네 내 평생의 모든
순간 그 사랑 내 삶을
인도하시네
내 삶의 주인이라 깊어진 하루의 끝에서
나 고백하리라
2. 곡 소개
이 곡은, 2021년에 발매된 마커스 워십 스튜디오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매일의 나의 삶 속에 함께 하시며 모든 상황 속에서 동행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고백하는 곡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 때부터 이미 성도를 사랑하셨고 성도의 진정한 주인이시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분의 자녀를 인도하심을 고백하는 아름다운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골로새서 1: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16 For by him all things were created: things in heaven and on
earth, visible and invisible, whether thrones or powers or rulers or
authorities; all things were created by him and for him. 1: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17 He is before all things, and in him all things hold
together.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권세의 주인이십니다. 그분은 만물보다 먼저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가장 앞서신다 라는 것은, 그분이 만물 위에 계신 주님이심을 의미합니다.
이 초기 기독교의 찬송은 모든 피조물에 대한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강조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물질적이든 비물질적이든,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이 사상은 나중에 골로새 교회에서 퍼진 영지주의로 알려지게 된 거짓 가르침과 직접적으로 모순됩니다. 일반적으로 영지주의자들은 다양한 천상의 존재들이 지구의 창조자들이며 그리스도는 이러한 천사들 중 하나라고 믿었습니다.
시편 118: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118:6 The LORD is with me; I will not be afraid. What can man do
to me? 118:7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118:7 The LORD is with me; he
is my helper. I will look in triumph on my enemies.
여호와는 내편이시라 : 문자적으로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신다”라는 것은 그 어떤 것도 나를 유효하게 해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와/과Gerald M. Bilkes, 편집자,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857.
여호와의 임재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히브리서 13장 6절은 이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백성들, 특히 믿음 때문에 경제적인 압박을 받는 믿는 자들을 격려하였습니다.
이사야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41:10 So do not
fear, for I am with you; do not be dismayed, for I am your God. I will
strengthen you and help you; I will uphold you with my righteous right hand.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 세상에서 그의 백성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는 두려움에 대한 궁극적인 해독제입니다. 의로운 오른손 : 하나님은 잘못을 행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백성을 포로로 보낼 때 의롭게 행동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다시 이끌어내시는 것도 하나님 자신을 위한 의로운 행위가 될 것입니다.
시편 40:17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 (개역개정) 40:17 Yet I am poor and
needy; may the Lord think of me. You are my help and my deliverer; O my God, do
not delay. (NIV)
주를 찾는 모든 사람은 여호와께 충성된 사람과 같습니다. 가난하고 궁핍한 자라는 말은 겸손하고 주님을 그들의 유일한 도움으로 의지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Kevin
R. Warstler, “Psalms”,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와/과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854.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곡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분이
함께하시는 것이 성도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보여주는 아름다운 곡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창세
전부터 계셨고 창조주이시다. 그분의 위대하심과 전능하심을 넘어설 수 있는 존재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나를 이미 사랑하셨고 때가 되어 나의 믿음을 통하여 나의 구원자이시며 주인이 되신 것이다.
성경은 끊임없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야 말로 모든 삶의 두려움을 몰아내는
진정한 위로라고 말씀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는 영원히 주님과 함께 하시는 것이다. 어떠한 고난과 괴로움과 외로움도 성도를 영원히 넘어뜨릴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찬양을 통해서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도움이시고 건지시는 분이시며 진정한 주인이심을 매일마다 새롭게 고백하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시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나이다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
여호와여 주의 행사가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심히
깊으시나이다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시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나이다
2. 곡 소개
이 곡은, CCM 남성 듀오의 선구자인
좋은 씨앗의 이유정 목사님께서 쓰신 곡이다. 그리고 좋은 씨앗 1집인
COMFORT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안식일의 찬송시”라고 제목이 붙은 시편 92편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특별히 1-3절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곡이다. 여호와께서는 주님의 백성을 향하여
언제나 은혜를 베푸시며, 그들을 깊이 생각하시고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탁월하게 묘사한 아름다운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시편 92:1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92:1 A psalm. A song. For the
Sabbath day. It is good to praise the LORD and make music to your name, O Most
High, 92:2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주의 손이 행하신 일로 말미암아 내가 높이 외치리이다 92:2 to proclaim your love in
the morning and your faithfulness at night, 92:3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매우 깊으시니이다 92:3 to the music of the ten-stringed lyre and the melody of the
harp.
92:title–15
Psalm 92 is a thanksgiving psalm. It focuses on a contrast between the
righteous and the wicked, sometimes called the “two ways” motif (see 1:1–6).
After opening with a general proclamation of worship (vv. 1–5), the psalmist
describes the wicked and characterizes them as enemies of God (vv. 5–9). He
then describes the victory of the righteous (vv. 10–11) and elaborates on the
benefits they receive from their loyalty to Yahweh (vv. 12–15). 시편92편은감사의시편입니다. 때로는“두길” 이라는주제로부르는의인과악인의대조에초점을맞추고있습니다. 일반적인예배의선포로시작한후, 시편기자는악인을묘사하고그들을하나님의적으로규정합니다. 그런다음그는의인의승리에대해서설명하고, 여호와에대한그들의충성으로부터그들이얻는유익에대해자세히설명합니다.
John
D. Barry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시 92:소제목–15.
92
title The Sabbath was a day of rest celebrated on the seventh
day of the week; it was instituted at creation (Gen 2:3) and codified at Sinai
(Exod 20:8–11). The rest that God’s people enjoyed on the Sabbath was more than
simply the cessation of labor; it also signified a spiritual and final rest
that was to come (95:11; Deut 12:8–11; Heb 3:7–4:11). As the title indicates,
God’s people used this psalm for the weekly Sabbath worship, so it also
expressed a longing for ultimate rest. Thus, it fits well with the emphasis on
eternal life in Pss 90–91. 소제목-
안식일의찬송시:
안식일은그주의일곱번째날에지키는쉼의날이었습니다. 그것은창조때에만들어졌고, 시내산에서성문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의백성이안식일에누린쉼이라는것은, 단순히노동을중단하는것이상이었습니다. 그것은또한장차올영적이고최종적인안식을의미하는것이었습니다. 제목에서알려주는것처럼, 하나님의백성은이시편을매주안식일예배사용했기때문에, 궁극적인안식을갈망하는것을표현하기도했습니다.
92:titleon
the Sabbath Day: Jewish tradition assigned one psalm to each day of the
week: Sunday (Ps 24), Monday (Ps 48), Tuesday (Ps 82), Wednesday (Ps 94),
Thursday (Ps 81), Friday (Ps 93), and the Sabbath (Ps 92). This is the only
psalm that indicates this use in its title. 유대인의전통은한주의매일에시편하나씩을연결지었습니다. 일요일(시편24편), 월요일(시편48편), 화요일(시편82편), 수요일(시편94편), 목요일(시편81편), 금요일(시편93편), 그리고안식일(시편92편) 입니다. 그리고시편92편이그제목에서이러한사용을보여주는유일한시편입니다.
92:5 The
term profound underscores the
unfathomable and mysterious nature of God’s thoughts (40:5; 139:17; Is
55:9–10). 주의생각이매우깊으시니이다: 깊으시다라는용어는하나님의생각의측량할수없고신비한본성을강조합니다.
Kevin
R. Warstler, “Psalms,”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900.
92:5deep! Profound, mysterious, at times
beyond human understanding. Aug: “Verily, my brethren, there is no sea so deep
as these thoughts of God, who makes the wicked flourish, and the good suffer:
nothing so profound, nothing so deep: therein every unbelieving soul is
wrecked, in that depth, in that profundity. Do you wish to cross this depth?
Remove not from the wood of Christ’s cross: you shall not sink: hold yourself
fast to Christ” (NPNF 1 8:454). 깊으시니이다: 때로는인간의이해를초월하는심오하고깊은것을의미합니다. 어거스틴은이렇게말했습니다. “참으로나의형제들이여, 악인을번성하게하시고선한이들을고통받게하시는하나님의생각만큼깊은바다는없습니다. 이것보다더깊고심원한것은없습니다. 그깊이와그심오함안에서모든믿지않는자들의영혼은파선할것입니다. 당신은이깊이를건너가고싶습니까? 그리스도의십자가를제거하지마세요. 그러면당신은가라앉지않을것입니다. 당신자신이그리스도를굳게붙드세요.
Edward
A. Engelbrecht, The Lutheran Study Bible (St. Louis, MO: Concordia
Publishing House, 2009), 937.
Psalm 92 In
celebrating a Sabbath, we acknowledge that God can provide by his grace more
than we can accomplish with non-stop striving. 안식일을지킴으로써, 우리는하나님께서그분의은혜로우리가쉬지않고노력하여성취할수있는것보다더많은것을은혜로공급하실수있음을인정합니다.
Every
morning, a believer can “declare [the] steadfast love” of the Lord for
safekeeping through the night (v. 2). Such gratitude should remind him of his
dependence on the Lord for the whole day ahead (James 4:13–17). The very
existence of the morning convinces him that God’s “work” of redemption is
ongoing (Ps. 92:4; Jer. 31:35; Rev. 6:12–13). On the Lord’s Day in particular,
Christians should give praise for the work of Christ’s resurrection, which
guarantees their own resurrection in the future (John 20:1; 1 Cor. 15:12),
since they are united to Christ (Eph. 2:6; Col. 3:1). The spirit of all these
morning reflections must be one of joy in God’s grace, especially on the Lord’s
Day (Ps. 92:3–4; Luke 24:1, 13, 41, 52). 매일아침마다성도는, 주님께서밤새도록지키심에대하여그분의한결같은사랑을선포할수있습니다. 그러한감사는앞으로놓여진하루전체를주님께의지하는그의의존에대해서그사람에게일깨워줍니다. 아침의존재그자체가, 하나님의구속의사역이진행중이라는것을성도에게확신시켜줍니다. 특별히주일에, 그리스도인들은그리스도의부활의사역을찬양해야만하는데, 왜냐하면그들이그리스도와연합되어있으므로미래에그들자신의부활을보증하는것이기때문입니다. 이모든아침묵상의정신은, 특히주님의날에하나님의은혜안에서기뻐하는것이어야합니다.
As
the day dies, the believer should remember his protection from enemies but
should also confess his need to die to his own sin (Ps. 92:9–12; Luke 1:74; 1
Pet. 2:24). By living according to this rhythm of morning and evening worship,
God’s children will be fruitful and will fulfill his purposes for their lives (Ps.
92:13–14; Eph. 5:7–14). 날이저물어갈때에, 성도는적으로부터자신을보호하는것을기억해야하지만, 또한자신의죄에대해서죽어야만한다는것을고백해야합니다. 아침과저녁예배의이리듬에따라생활함으로써, 하나님의자녀들은열매를맺을것이며그들의삶에대한하나님의목적을성취할것입니다.
George Robertson and Bruce A. Ware, “Psalms,” in Gospel Transformation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ed. Bryan
Chapell and Dane Ortlund (Wheaton, IL: Crossway, 2013), 739–740.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의 근간이 되는 시편 92편은,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매 주의 안식일에 하나님 앞에 드려진 시편이다. 이
찬양이 고백하는 것처럼, 시편 기자는 아침과 저녁에, 다시 말해서 평생 동안 끊어지지 않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찬양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전적인 은혜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며, 그들의 아버지가 되시며, 그의 백성을 한 순간도 떠나지 않으시고
인도하셨다.
이 찬양에서 “주의 생각이 깊다”라는 것은, 단순히 우리를 많이 생각하신다 라는 차원을 넘어서는 표현이다. 특별히 시편 92편의 문맥에서 주의 생각이 매우 깊다라는 부분은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이 시편 자체가, 악인의 흥황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것은, 악인은
여전히 번성하는데 의인은 고통 받는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자녀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며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이루어 가신다. 우리의 삶은 때로는 인간의 눈으로 모순되어 보이지만, 하나님의 깊으신 뜻 가운데 우리는 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침과저녁에,그리고특별히완전한안식을이루시는그리스도안에서예배드리는것은너무나아름답고합당한일이다. 바로 그 일을 통해서 우리의마음과믿음을새롭게하는거룩하고귀한일이다. 이찬양을통해서하나님을향한감사와기쁨이새로워 지기를원한다. 고난가운데에서도낙심하지않고그분의사랑을의지하여용기와소망가운데살아가기를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