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8일 월요일
깊은 감동을 주는 사람
2024년 4월 3일 수요일
그래도, 아주 조금은 너가 좋아졌다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것은, 미국은 훨씬 더 개인의 선호를 존중해 준다는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에는 조금이라도 별난 모습을 보이면 너는 왜 그렇게 사느냐고 타박을 받곤 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저의 아이들은 그 취향을 존중해 주면서 키우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길을 달리다 보니 광고가 붙어 있습니다. 앵무새 체험관 ‘앵무야앵무야’ 눈이 번쩍 뜨입니다. 첫째 아들이 새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전화를 해보니 심지어 앵무새를 직접 만지고 체험할 수 있다고 합니다. 바로 길을 돌려서 들리기로 했습니다.
아들은 좋아서 어쩔 줄 모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가족 중에 유일하게 첫째만이 새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보호자가 필요해서 어쩔 수 없이 따라들어가기는 했지만 멀찌감치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손님을 너무나 반가워하는 체험장 주인께서, 빨리 저도 해보라고 재촉하십니다. 손사래를 쳤습니다. ‘아휴 저는 새를 정말 싫어합니다’ 결국 억지로 제 손에 올려 주셨습니다.
생각보다 새가 정말 무거웠습니다. 너무 당황했습니다. 전혀 낯선 존재가 바로 눈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사실 웃는 것이 아닙니다. 저의 손가락 바로 위에 올라가 있는 낯선 감각에 기분이 정말 이상했습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살아 있는 큰 새가 손 위에 있다는 것이 조금은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싫은 것도 노력하면 약간은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아마 어떤 것이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앞으로도 저의 경험과 지경이, 좋은 의미에서 조금이라도 더 넓어지기를 원합니다.
제주도 바다는 적막했지만 따뜻했다
애시당초 전력 질주를 했기 때문에 막상 쉬는 것도 익숙하지가 않습니다. 제주도에 도착하고 나서야 허겁지겁 계획을 세웁니다. 그래도 마음은 평안합니다. 급할 것이 없이 무엇인가 한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지 몰랐습니다.
우연히 들린 바닷가가 좋았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도 아이들의 기쁨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성수기가 아니어서 적막했지만 그래도 바다는 바다입니다. 태어나서 처음 본 제주도 바닷가는 놀랍게도 깨끗했습니다. 잠시나마 가족이 온전히 함께 한다는 것이 참 행복하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024년 4월 2일 화요일
난 더이상, 절대로 속지 않겠다
한국의 마트에 11년 만에 들어가보니, 새롭게 깨닫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물건이 너무 화려하고 풍성하다는 것입니다. 컵라면을 사러 라면 섹션을 돌아보았습니다. 아니 세상에, 이렇게 라면 종류가 많았었나? 물론 제가 사는 곳도 대형 한국 마트가 있습니다. 그러나 차원이 다릅니다. 같은 라면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절대로 한국 본토 마트에 비할 바가 못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본토에 들어와보니 이제서야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그동안 속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은 억울했습니다. 왜냐하며 저의 내면에서, 한국 라면의 풍성함이 너무나 흐려졌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럴듯하게 갖춰진 미국 한인 마트의 라면 섹션에서, 마치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좋아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참으로 어리석었다는 것을, 내 나라에 들어와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복음에까지 저의 생각이 미쳤습니다. 모든 사람이 복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 깊은 풍성함을 직접 경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굳이 라면에 비교하자면 그렇습니다. 어떤 이에게 복음은, 먼 타지에서 아주 작은 아시안 마켓 한 섹션 구석진 곳에 먼지 쌓인 컵라면 하나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 복음은, 나의 고국에 가장 화려하게 놓여진 그 종류를 헤아릴 수 없는 대단한 라면 섹션 하나와 같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저 자기 기준에서 복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복음, 그 깊은 복음의 놀라움이 아니라, 아주 얕은 수준에서 그것이 마치 복음의 전부인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런 말들에 사람들이 휩쓸린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독점적인 아름다움과 그분의 절대적인 가치가 너무나 흐려졌습니다.
그래서 설교자인 제 자신에게 항상 경고하는 것이 있습니다. ‘절대로 복음이 별것 아닌것처럼 이야기하지 말아야 한다’ 저의 모든 태도와 표정과 뉘앙스에서 예수님이 가장 높아지셔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설교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청중의 입장에서 그렇지 못한 경우를 보게 될 때에,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마트를 몇바퀴 도는데 세상의 행복은 다 가진 것 같았습니다. 제일 좋아하는 왕뚜껑 라면 하나를 들고 나오는데 가슴이 벅찹니다. 진짜를 만난 듯한 기분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예수님이 그러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평생동안 그 풍성함이 넘치고 또 넘치는 것이 되기 원합니다. 그 끝을 알 수 없어 볼 때 마다 깊어지고 감격하고 또 벅차는 은혜가, 저에게 그리고 저와 함께하시는 분들에게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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