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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3일 월요일

목회자의 품위, 성도의 품위 / In a sunny spot - Amane



인생이 너무 짧아서 소스라칠 정도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또 흘러서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 가끔은 꿈처럼 느껴집니다. 

어떤 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설교를 참 잘했다는 이야기, 그런데 그분은 성품은 좋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그 설교를 그리워한다는 뉘앙스를 받았습니다. 

요즘에 생각하는 것은 양심의 문제입니다. 짧은 인생을 다른 사람 앞에서 인정받는 것이 참 중요하겠지만, 목회자라면 설교를 잘하는 것이 참 중요하겠지만, 그것이 목회자의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목회자는 기능인이 아닙니다. 만약에 누군가로부터 당신은 설교는 참 잘하는데 성품이 문제가 있다는 평을 듣게 되었다면, 사실 그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더 큰 문제일 것입니다. 

제가 살아가는 삶 그리고 컨텍스트를 곰곰이 들여다보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아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장 큰 유혹은, 거짓에 빠지는 것입니다. 위선적으로 행동하는 것이고,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가면서 동화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생이 짧아서 참 행복합니다. 크리스마스로 계산하면 참 편리합니다. 그저 주님이 허락해 주신다고 해도 그저 수십 번 정도입니다. 솔직히 빨리 왔으면 좋겠고, 아마 그날이 바로 앞에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들의 인정도, 그 안에서 누리는 기쁨과 환희도, 무엇인가 많이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성취감도 다 잊혀질 것들입니다. 

지난 시간이 너무 힘들어서 눈물을 많이 흘렸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저를 위로하신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감사했습니다. 지금 경험하는 모든 것들도, 아마 십년 후 쯤에는 아무 기억도 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에 많이 생각하는 것은, '품위' 입니다. 속이지 않는 것, 다른 사람을 착취하지 않는 것, 내가 가진 최소한의 양심과 신앙을 지키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않는 것,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것 그런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한마디로 모으자면, 품위입니다. 

과정이 부끄럽지 않은 성도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아주 어두운 세상에서 혹은 교회에서, 품위를 지킬 수 있는 목회자 성도만 많이 있어도 한결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문제입니다. 우리는 모두 홀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고, 그분 앞에서 평가받게 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큰 수치를 당할 것이고, 어떤 이들은 그 모든 괴로움을 다 잊게 할 위로와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비관론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많이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래도 솔직한 마음에 많은 부분들이 비관적입니다. 한걸음 물러서도 답답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품위를 지키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 목회자로서 저의 자존심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예와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판단하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조금이라도 좋게 보신다면, 저는 그것으로 족합니다. 

2023년 9월 4일 월요일

목회하기 가장 어려운 사람은 누구일까? 양심에 화인 맞은 자?



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아내입니다. 그래서 대화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저 이상으로 교육과 미래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아내는 저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알려줍니다.

얼마 전에 아내가 알려준 영상이 참 좋았습니다. 한양대 대학원에서 교수로 일하시는 박상미 교수님의 영상입니다. 저는 누군가를 처음 알게 되면 그분이 어떤 공부를 하셨는지 꼭 살펴봅니다. 박상미 교수님의 공부하신 이력이 좋았습니다. 저에게 삶의 큰 의미를 준 빅터 프랭클의 로고테라피를 공부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이 분야를 공부하고 실제로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분은 처음 보았습니다. 

이분은 오랫동안 교도소 재소자들을 위해서 심리 치료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분의 경험에서 나온 통찰이 저의 관심을 사로 잡았습니다. 절대로 교화가 되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다름 아니가 "사기꾼"이라는 겁니다. 

이들은 거짓이 몸에 밴 사람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의 특징은 "여전히 자기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사기를 치면서도 자신을 깨닫지 못하고 착각에 빠져 살며, 그런 사람들끼리 서로 속이면서 어울리기를 즐긴다는 것입니다. 

영상을 보고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째로, 목회에서 동일한 것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사람을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적인 경험의 결과입니다. 자신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자신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놀랍게도 어떤 성도님들은 자신이 문제가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 정도면 잘하고 있고 충분히 선하고 충분히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자인 저의 관점에서는 여전히 너무나 어리고 부족한데, 자신은 충분히 성숙했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이런 분들에게는 어떤 목회적인 조언을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 항상 생각하게 됩니다. 교회 생활을 오래하였고 그래서 신앙의 여러 언어들을 구사하지만 그러나 여전히 자신의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다른 사람을 쉽게 비난합니다. 자신은 의롭고 다른 이들은 악하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기에 힘을 씁니다. 남들을 비난하는 바로 그 모습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거의 깨닫지 못합니다.

또 한 부류의 사람은, 자신이 무엇인가 잘못된 상태라고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여전히 성격과 도덕적인 수준에서 문제가 있으며 그것에 대한 깊은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신앙 생활의 기간과는 큰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신앙 생활을 오래한 분들 중에도 혹은 신앙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분들 중에도 존재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내면 안에 깊이 존재하는 죄성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기 보다는 자신을 돌아보고 바꾸는데 마음을 쓰는 사람입니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마음은 겸손해져 있기 때문에 인격적으로 가까이 대할 때에 따뜻함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목회적으로는 바로 이런 사람에게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기 때문에 말씀이 들어갈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목회자의 조언이 그 가치를 발현합니다. 변화의 소망이 존재합니다. 사실상 이런 분들은 영적으로 탁월하게 성장하며 무한히 뻗어나가게 됩니다. 박상미 교수님의 주장을 신학적으로 바꾸자면, 성령님께서 활발히 역사하심으로 양심이 살아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더욱 힘있게 일하십니다.

이 짧은 영상을 보는데, 양심에 화인 맞은 자에 대한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물론 자신의 잘못된 상태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을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이라고 일대일로 동일 선상에 놓을 수는 없습니다. 양심에 화인 맞았다라는 것은, 가장 최악의 상태로 들어간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을 잊어버리고 착각 속에 빠져 살아가는 것은, 아주 위험한 상태 속으로 실제로 진입하고 있는 것임은 분명합니다. 디모데전서 4장 2절의 말씀입니다. 

디모데전서  4:2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2 Such teachings come through hypocritical liars, whose consciences have been seared as with a hot iron. (NIV)

4:2 The consciences of the false teachers have been seared (that is, desensitized and rendered ineffective) by their rebellion against the gospel. 거짓 교사들의 양심은 복음에 대한 그들의 반역으로 인해서 화인을 맞았습니다. 그것은 양심이 무감각해지고 무력해진 것입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331.

4:2 The consciences of those peddling demonic doctrines have either been “branded” by Satan to show his ownership of them or “cauterized,” leaving them unfeeling and unable to distinguish between right and wrong. 악마적인 교리를 선전하는 사람들의 양심은 사탄이 그들에 대한 자신의 소유권을 보여주기 위해 낙인을 찍혔거나 혹은 화인을 맞아서 옳고 그름에 무감각해지고 그것을 구분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Edward A. Engelbrecht, The Lutheran Study Bible (St. Louis, MO: Concordia Publishing House, 2009), 2074.

이 말씀이 무서운 이유는, "인간의 그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이 바로 그 사람이 어떠한 상태인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겉으로 어떤 말을 하는 것은 사실 결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지적인 능력이 부족하여 자신의 신앙을 언어적으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분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사람의 내면의 문제가 바로 진짜 문제이며, 그것은 그 사람의 양심이 제대로 작동하는가 아닌가를 통해서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저는 다른 분들을 비난하고 평가하기 보다는, 제 자신을 돌이켜봅니다. 죄는 나 자신을 죽이는 것입니다. 제 자신에게 다시 한번 다짐하는 것은, 위선적인 거짓말과 위선적인 행동을 어떻게 해서 든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에게 익숙한 상황이 된다면 결국 나는 양심에 화인 맞은 자가 될 것입니다. 도저히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나의 죄성이 나를 완전히 뒤덮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목회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말씀으로 양심을 깨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제 자신과 성도님들에게 끊임없이 경각심을 가지게 해야 합니다. 복음으로 그 사람의 양심을 깨워야 합니다. 지금 당신에게 무엇인가 잘못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목회의 중요한 본질임을 다시 한번 강하게 붙들게 되었습니다.

2022년 6월 9일 목요일

왕되신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나아간다는 것 / 사무엘상 19장 1-24절 설교

 


사울이 영적으로 정서적으로 무너지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 하나님을 멀리 할 때에 어떻게 그 사람이 그럴 수 있는가 라고 탄식을 일으키는 일이 자주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과 참된 것의 구별을 잃어버리고, 잔인함과 위선으로 가득 채운 것이 바로 하나님을 잃어버린 악인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설교 가운데 마땅히 이야기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다 하셨고 앞으로도 다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것이다 라는 것은 좋은 설교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매우 구체적으로 우리 삶 가우데 역사하시며, 또한 우리가 아주 예민하게 깨어 있어서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행동하기를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에게 이번 설교가 굉장히 의미가 있었습니다. 사울의 무너진 모습이 새롭게 보이고, 다윗의 신실함이 새롭게 보이고, 또 하나님을 떠난 자를 철저하게 낮추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일하심이 새롭게 보였습니다. 신앙의 길은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이고, 위선을 버리는 것이고, 하나님의 편에 서기를 히쓰는 것입니다. 그 길을 정말 진지하게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고 싶습니다.

* 사무엘상 19 1-24절 설교문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이후에 그의 명성이 높아졌습니다. 사람들은 다윗이 죽인 자가 만만이라면서 그를 칭찬했습니다. 사울은 자신보다 높아진 다윗을 심히 질투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유 때문에 사울은 다윗을 두려워 하였고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자신의 사위로 삼겠다는 것을 미끼로 그를 전쟁터에서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하나님께서 다윗을 도우셨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다윗이 사울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모든 신하보다 지혜로웠기 때문에, 사울이 다윗을 더욱 두려워하면서 평생의 대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전체적으로 부분으로 나눌 있겠습니다. 1절에서 7절까지는 “요나단의 변호”, 그리고 8절에서 17절까지는 “미갈의 변호” 그리고 18절에서 24절까지는 “사울의 옷을 벗기시는 하나님” 이라고 소제목을 잡을 있겠습니다. 내용으로 함께 말씀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19 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 사울이 아들 요나단과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 말하였더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심히 기뻐하므로”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을 향한 사울의 적대감은 누가 봐도 분명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사울은 인격적으로 인격적으로 망가진 상태였습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사울의 모습은 사울로 부터 하나님의 영이 떠났을 때에 그의 인격과 그의 삶이 얼마나 비참하게 추락하는지를 보여주십니다. 그는 아주 노골적으로 자신의 아들과 신하들에게 다윗을 죽이라고 명령을 하였습니다. 그는 이상 옳고 그름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는 괴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명령을 듣고서 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에게 숨어 있으라고 말하고 자신의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담대하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4절에 하반절이 핵심입니다.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하지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요나단은 매우 정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옳고 그름을 분별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이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사울 명령과 행동은 분명한 범죄라는 것을 요나단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이 행하는 일은 분명한 범죄이지만 다윗은 사울에게 범죄한 일이 없고 오히려 다윗은 사울에 대하여 심히 선하게 대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사울에게 말하면서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어떻게 반응하는가? 6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그가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반응이고 그리고 뜻밖의 반응입니다. 장면에만 집중해서 보자면 사울은 하나님께 맹세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같고, 자신의 삶의 방향을 바꾼 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말씀이 이어지는 맥락에서 사울의 상태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사울의 상태라는 것은 사울로부터 하나님께서 떠나신 상태입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순종할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가 무엇을 있는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도,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드리지 않는 사람이라도, 얼마든지 거짓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할 있다는 것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로 살아갈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부로 사람의 말을 믿을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는그 사람의 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보여주는 삶의 모습을 통해서 있다는 것을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수가 있습니다.

 

역시나 사울이 하나님을 걸고 뻔뻔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성경은 바로 이어서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오늘 말씀 속에서 다윗의 신실함과 사울의 거짓이 계속 대조되어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다윗은 미련해 보일 만큼 사울을 믿고 있습니다. 그는 사울의 위협 속에서도 그를 떠나지 않고 그의 옆에서 전쟁을 수행하고 블레셋으로 부터 승리를 거둡니다

 

그런데 9절에 보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9 사울이 손에 단창을 가지고 그의 집에 앉았을 때에”라고 말씀하십니다. 혹시 성도님들 중에 집에 계실 때에손에 칼을 계속 들고 계신 분들은 없으실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말씀은 사울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울이 얼마나 광기와 살기가 넘치는 지를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와중에 사울을 엄습한 악령으로 부터 그를 돕기 위해서 다윗은 수금을 타고 있습니다. 결국 사울은 자신의 단창을 자신을 돕고 있는 다윗을 향해 던졌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급하게 자리를 피해서 도망을 쳤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너무나 안타까운 것은, 사울은 사람을 능숙하게 속이는 자였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자신의 말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걸었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한다 라고 말했지만, 정작 그는 여호와의 뜻을 대적하는 자로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그는 끊임없이 여호와의 다스림을 거절하는 자였기 때문에, 그의 말과 행동이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는 것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신앙의 고백과 이야기를 하는가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있는가? 우리가 기꺼이 하나님의 기준으로 나의 삶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그분의 다스림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가를 우리에게 진지하게 질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잠언 26 24절에서 26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4 원수는 입술로는 꾸미고 속으로는 속임을 품나니 25 말이 좋을지라도 믿지 것은그 마음에 일곱 가지 가증한 것이 있음이니라 26 속임으로 미움을 감출지라도 그의 악이 회중 앞에 드러나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악인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진짜 무섭고 철저한 악인이 어떤 악인인가? 그럴 듯한 신앙의 말을 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감추는 겉으로만 그럴 하게 자신을 꾸미는 악인이 진짜 악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악인을 가증하다고 말씀하시며, 그의 악을 회중 앞에 드러내겠다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히브리서 10 22절에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살아가는 모습에 대하여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예수 그리스를 믿고 그분의 보혈을 믿는다는 것은, 믿음을 가진 사람 가운데 진실하고 참된 마음을 하나님께서 만들어내셨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상다른 이를 속이고 위선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분 앞에 진실한 마음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죄성으로 남아 있는 위선과 거짓을 날마다 회개하고 돌이키는 참된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주님의 자녀다운 진실하고 순수한 마음과 참된 믿음으로 살아가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이야기의 핵심은, 사울은 다윗을 해치지 않겠다는 거짓말을 하고, 실제로는 하나님을 향한 맹세를 뒤집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1절에 보니, 사울이 끝까지 다윗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형편이 얼마나 위급하고 긴박했던지, 다윗이 도피했다 도망했다 라는 표현들이 계속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울은 극도로 다윗을 미워하고 질투했지만, 오히려 사울의 아들과 그의 딸은 다윗을 너무나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가정의 리더인 아버지가 영적으로 완전히 무너졌지만, 그래도 가정에 영적으로 바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미갈은 다윗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상을 침대에 뉘여 놓고 다윗처럼 꾸며서 다윗이 도망갈 시간을 벌어서 다윗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사울은 분노하며 딸에게 책임을 추궁했지만, 미갈은 어쩔 없이 자신이 다윗을 도망하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한번 다윗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끊임없이 생명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가 충성심을 최대한 발휘해서 장인의 옆을 지키려했지만, 사울의 죽음의 위협을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18절에 보니 “다윗이 도피하여 라마로 가서 사무엘에게로 갔다, 그리고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전하였다, 그리고 다윗과 사무엘이 나욧으로 가서 살았더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욧이라는 곳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에 8마일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자신의 위협을 피해서 도망을 갔지만 그런데도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윗의 행방을 알리자, 바로 나욧으로 전령들을 보냈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에서 아주 흥미로운 것은 사울의 전령들이 계속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사울을 대신하여서 그의 뜻을 수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지엄한 왕의 명령을 받아서 수행하는 자들입니다. 왕의 전령이기 때문에 사실상 왕이 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계속 다윗을 찾아서 죽이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울이 전령들을 보냈는데 그들이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선지자 무리가 예언을 하는 것과 사무엘이 그들의 리더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때에하나님의 영이 사울의 전령들에게도 임하였습니다. 감히 누구도 막을 없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때에 사울의 명령을 받고 다윗을 죽이려 하던 전령들이 모두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완전히 하나님의 능력에 사로잡혀서, 그분의 뜻대로 움직이게 것입니다

 

사울이 분노하여서 두번이나 전령들을 보냈지만, 모두가 동일한 현상에 사로잡혔습니다. 보다 못한 사울이 직접 다윗을 찾아나섰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흥미로운 것은 22절에 보니, 마치 사울은 길을 잃어버린 어린아이처럼 사람들에게 다윗의 행방을 물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사울이 라마 나욧에 도착했을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사울조차도 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셨습니다. 그는 심지어 걸어가면서 예언을 하였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4절에는, 아주 충격적인 말씀이 등장합니다. 24 그가 그의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하루 밤낮을 벗은 몸으로 누웠더라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주 놀라운 말씀입니다. 지금 사울이 어떤 사람인가? 그는 살아있는 이스라엘의 실세였습니다. 그는 질투에 눈이 멀고 살기가 등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멀리하고 그분을 대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살인조차 서슴치 않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부하들을 마음대로 부릴 있는 권세자였고, 아무도 그의 뜻을 막을 없는 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무엘 앞에 서자, 사실은 사울이 자기 자신도 스스로를 컨트롤 없는 연약한 인간이라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성경은 그가 하루 밤낮을 벗은 몸으로 누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처음에 라마 나욧으로 때에 무슨 옷을 입고 갔겠습니까? 당연히 왕의 옷을 입고 당당한 모습으로 갔을 것입니다. 왕복이라는 것은 왕의 신분을 나타내는 아주 중요한 표시입니다. 그는 자신이 왕이라는 것을 언제나 자랑스러워했고, 그것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으로 여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무엘 앞에 다다랐을 때에하나님의 말씀으로 그에게 부으시고서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옷을 벗겨 버리셨습니다. 무슨 의미인가? 위에 진짜 왕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땅에 왕을 세우고 다시 폐하는 모든 권세는 사울왕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진정한 왕이신 여호와께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명백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울이 아무리 살기 등등하여 다윗을 죽이려 한다 할지라도, 다윗의 생명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분은오직 여호와 하나님 분이시라는 것을, 사울 자신과 모든 이들에게 명백하게 보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이 마무리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시는가? 그것은"감히 여호와를 대적할 자가 없도다"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오늘의 이야기가 얼마나 급박하게 돌아가는지 모릅니다. 여호와를 버린 사울은 끊임없이 살기를 품고 다윗을 죽이려합니다. 겉보기에 다윗의 처지는 너무나 처량한 것입니다. 그는 도망치고 도망치고 도망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과연 죽음이 그의 바로 앞에 있다고 말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그를 추적하고 있지만, 감히 사울 조차 여호와를 이길 수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강권적으로 그가 예언하게 하시며 그의 옷을 벗겨버리심으로서, 감히 여호와를 대적할자가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무엘 상을 열어가는 중요한 기도인 사무엘상 2 10절에서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기도가 성취되고 있는 것입니다. 10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경외하는 자를 왕으로 삼으시며, 그를 대적하는 이를 철저하게 낮추신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오늘 말씀을 통해 사울의 추락을 보이시면서 그것을 실제로 역사 가운데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1 7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7 영원하신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씀인가?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은, 죄인인 나를 용서하시며 이제는 자유롭게 하시는 그것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들의 값으로 우리를 사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온전히 하나님의 것입니다. 왕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반역한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셨기 때문에, 이제 백성은 진정한 자신의 왕을 마땅히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세상의 진정한 주인이시며, 그분의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소유하셨기 때문에, 오직 그분만이 세상이 진정한 왕이심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이 무엇인가? 그것은, 아무리 악인들이 횡횡하며 자신들이 왕인 처럼 행동하며 그들이 의인들을 핍박하고 무너뜨리려 할지라도, 모든 위에 계시며 온전한 왕이 되시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그분을 기대하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하겠습니까? 그것은, 살아계신 왕이신 여호와 앞에서의 겸손한 삶입니다. 그리고 그분 안에서 담대함을 가지는 삶입니다. 오직 여호와께서 우리의 주인으로서 사람을 높이시고 낮추시며,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어떤 재력과 어떤 위치에 있다 하더라도 여호와 앞에 없이 겸손하여지고 그분을 높이고 그분 앞에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에 우리가, 다윗처럼 여호와를 따르고 여호와의 편에 선다면, 우리의 삶의 고난 속에서도 무한한 용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편에 우리가 당당하게 있다면, 우리의 삶에 어떤 것도 두려워할 필요 없는 것이며, 여호와께서 우리를 친히 돌보시고 지키신다는 확신 가운데 담대하게 우리의 삶을 살아갈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기는, 오늘도 주님의 편에 서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한없는 겸손한 마음으로 담대한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하시는 모든 사랑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시간에 통성으로 기도하실 때에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아버지 하나님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저의 모든  속에서진실하고 정직한 모습으로 주님께 나아가기 원합니다삶의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모습을 벗어 던지고하나님의 자녀다운 진실한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매일 저의 삶을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둘째로 기도하실 때에아버지 하나님  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어떤 인간도 감히 여호와의 뜻을 거스를  없음을 고백합니다 되신 주님의 신하로 종으로 살아가게 하시고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는자 되게 하시고주님 앞에 겸손함으로 그리고 주님의 편에  자로 담대한 믿음으로 살아갈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문" 전체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_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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