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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26일 목요일

CGN 하루 20분 공동체성경읽기 장별 요약 - (구09)사무엘상

 

* 사무엘상 배경 

1) 사무엘서는 앞선 사사 시대에서 왕정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2) 사사기의 혼란스러운 배경 속에서 새로운 시대적 변화가 시작됨을 예고합니다.

* 인물 사무엘의 특징 

1) 주인공인 사무엘은 단순히 한 명의 인물이 아니라, 제사장, 선지자, 사사라는 세 가지 독특한 기능을 모두 수행했던 성경의 아주 중요한 인물입니다.

2) 사무엘서는 이 시대에 꼭 필요했던 인물인 사무엘의 출생 과정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 문제 해결의 방법 제시

1) 사무엘의 탄생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날의 성도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 대조적인 두 가문과 하나님의 원칙 

1) 모든 것을 갖춘 듯 보였던 엘리 가문은 멸망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과 원칙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2) 핵심 구절 (사무엘상 2:30):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 3월 27일 

* 사무엘상 1장: 사무엘의 탄생과 한나의 서원

1) 고통과 기도: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의 아내 한나는 자식이 없어 괴로워하며 실로의 성막에서 통곡하며 기도합니다. 그녀는 아들을 주시면 여호와께 바치겠다고 서원을 합니다.

2) 응답과 출생: 제사장 엘리의 축복을 받은 후 한나는 아들을 낳고 이름을 사무엘("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이라 짓습니다.

3) 봉헌: 사무엘이 젖을 뗀 후, 한나는 서원한 대로 아이를 엘리 제사장에게 데려가 여호와의 집에 머물게 합니다.

* 사무엘상 2장:  한나의 노래와 엘리 가문의 타락

1) 한나의 기도: 한나는 자신을 높이시고 역전시키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지식의 하나님이 행동을 달아보신다고 고백합니다.

2) 엘리 아들들의 죄악: 엘리의 아들들(홉니와 비느하스)은 제사를 멸시하고 제물을 가로채며 행음하는 등 악행을 저지릅니다.

3) 심판의 예고: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나타나, 하나님을 멸시한 엘리의 집안을 심판하여 두 아들이 한날에 죽고 가문이 몰락할 것을 예고합니다.

* 사무엘상 3장: 사무엘을 부르시는 하나님

1) 희귀한 말씀: 당시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잘 보이지 않던 시대였습니다.

2) 사무엘의 응답: 밤중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세 번 부르시지만, 그는 처음에 엘리가 부르는 줄로 압니다. 엘리의 조언에 따라 사무엘은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응답합니다.

3) 심판의 확증: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엘리 가문에 내릴 심판을 다시 확인해 주십니다.

4) 선지자로 세워짐: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고, 온 이스라엘이 그를 여호와의 선지자로 인정하게 됩니다.


* 3월 28일 

* 사무엘상 4장: 언약궤를 빼앗긴 이스라엘과 엘리 가문의 몰락

1) 주요 사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자 이스라엘은 실로에서 언약궤를 가져옵니다. 그러나 결과는 대패였고, 궤를 지키던 홉니와 비느하스는 전사하며 언약궤마저 빼앗깁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 제사장도 죽음을 맞이합니다.

2) 수단으로 전락한 신앙과 멸시의 대가: 이스라엘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언약궤를 이용하려 했으나, 그 의도가 결코 순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가문이나 배경보다 '하나님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보시며, 하나님을 멸시한 엘리 가문의 몰락은 그 결과임을 강조하셨습니다.

* 사무엘상 5장: 블레셋 땅에 내린 다곤의 굴복과 재앙

1) 주요 사건: 블레셋이 언약궤를 다곤 신전에 두자 다곤 신상이 파괴됩니다. 또한 궤가 머무는 아스돗, 가드, 에그론 등 성읍마다 독한 종기의 재앙이 내려 블레셋 전역이 죽음의 공포에 휩싸입니다.

2) 스스로 영광을 나타내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자신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이방 땅에서 능욕당하도록 두지 않으시고, 자신의 거룩함과 영광을 스스로 드러내셨습니다.

* 사무엘상 6장: 언약궤의 귀환과 벧세메스의 비극

1) 주요 사건: 재앙을 견디지 못한 블레셋은 속건제물을 실은 수레에 궤를 실어 보냅니다. 궤는 벧세메스로 돌아오지만, 그곳 사람들이 호기심에 궤를 들여다보다가 큰 살륙을 당합니다. 결국 궤는 기럇여아림으로 옮겨집니다.

2) 하나님의 거룩함과 경외의 양면성: 하나님의 임재는 축복이지만 동시에 두려움입니다.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고 합당치 않게 대할 때, 그 임재는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벧세메스 사건을 통해 경고하셨습니다.


* 3월 29일 

* 사무엘상 7장: 미스바 성회와 에벤에셀의 하나님

1) 회개와 리더십: 엘리 가문의 몰락 이후 사무엘이 본격적인 리더십을 발휘합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을 미스바에 모으고 이방 신을 제거하며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촉구합니다.

2) 에벤에셀의 은혜: 이스라엘이 하나님만 섬기기로 다짐했을 때, 하나님은 블레셋을 무찌르게 하셨습니다. 사무엘은 이를 기념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돌을 세우고, '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의미로 '에벤에셀'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3) 교훈: 에벤에셀의 축복은 우상을 버리고 오직 여호와만 섬기는 자가 경험할 수 있는 특권임을 강조하셨습니다. 

* 사무엘상 8장: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

1) 사사 시대의 끝: 사무엘이 늙자 그의 아들들을 사사로 세웠으나, 그들은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는 부패를 저지릅니다. 

2) 왕정의 요구: 이에 실망한 백성들이 다른 나라들처럼 '왕'을 세워달라고 요청합니다. 하나님은 이를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3) 왕의 제도와 경고: 사무엘은 왕의 제도가 가져올 폐해(군역, 조세, 고된 섬김과 고통 등)를 상세히 설명하며 경고하지만, 백성들은 끝까지 왕을 요구합니다. 

* 사무엘상 9장: 사울과의 만남과 선택

1) 사울의 등장: 베냐민 지파의 준수한 청년 사울이 잃어버린 암나귀들을 찾으러 다니다가 사무엘을 찾아가게 됩니다. 

2)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은 사울이 오기 전날 사무엘에게 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울 것을 미리 알리셨습니다. 

3) 초대 왕의 준비: 사무엘은 사울을 영접하여 함께 식사하며, 그가 이스라엘의 모든 사모하는 자의 중심이 될 것임을 암시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준비를 합니다.


* 3월 30일

* 사무엘상 10장: 사울의 선택과 왕으로 세워짐

1) 하나님의 선택: 사무엘은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웁니다.

2) 사울의 겸손: 왕으로 부름받을 때 사울은 자신을 '가장 작은 지파의 가장 약한 가족'이라 말하며 겸손한 태도를 보입니다.

3) 성령의 임재: 사울은 하나님의 영에 크게 감동되어 예언하며 ‘새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 사무엘상 11장: 암몬과의 전쟁과 왕권의 확립

1) 전쟁의 승리: 암몬 사람 나하스가 길르앗 야베스를 침공하자, 사울은 이스라엘을 모아 큰 승리를 거둡니다.

2) 왕권의 확립: 이 승리를 계기로 사울은 백성들에게 왕으로 인정받고, 길갈에서 나라를 새롭게 하며 왕정 시대를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 사무엘상 12장: 사무엘의 고별 설교와 권면

1) 사무엘의 고별: 사무엘은 자신의 청렴함을 증명하며 지도자로서의 사역을 정리합니다.

2) 왕을 구한 죄 지적: 이스라엘이 인간 왕을 구한 것은 하나님을 버린 죄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3) 기도의 사명: 그는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끝까지 영적 책임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 3월 31일 

* 사무엘상 13장: 사울의 불순종과 교만

1) 변질된 마음: 초기 왕으로 세워질 때의 겸손함과 달리, 왕권이 어느 정도 자리 잡자 그의 내면에 있던 불안과 자기 의지가 점차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2) 제사 침범 사건: 블레셋과의 전투를 앞두고 제사장 사무엘이 정한 기한 내에 오지 않자, 사울은 마음이 급해져 자신이 직접 제사를 집례하는 망령된 행실을 보였습니다. 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보다 눈앞의 상황에 따라 움직인 행동이었습니다.

3) 인간적인 대처: 사울은 백성들이 흩어지는 위급한 상황을 핑계 삼아 하나님의 방법보다 자신의 판단을 우선시했습니다.

4) 결과: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 사울의 왕권이 지속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시며, 이스라엘의 참된 왕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드러내셨습니다.

* 사무엘상 14장: 요나단의 신앙과 승리

1) 요나단의 신뢰: 사울의 불순종과 대조적으로, 그의 아들 요나단은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다'는 믿음을 가지고 적진으로 나아갔습니다.

2) 신실한 자를 통한 역사: 이스라엘이 거둔 승리는 인간적인 계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나아간 요나단을 통해 이루신 역사였습니다.


* 4월 1일

* 사무엘상 15장: 불순종의 결과와 사무엘의 책망

1) 부분적인 순종은 불순종: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모든 생명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으나, 사울은 자신의 눈에 좋은 것들을 남겨두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실수 이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명백한 불순종이었습니다.

2)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좋은 제물을 드리려 했다는 사울의 변명에 대해, 사무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는 유명한 말씀으로 그를 책망합니다.

3) 버림받은 사울의 태도: 사울은 겉으로는 회개하는 듯 보였으나, 실제로는 하나님보다 백성들 앞에서의 자신의 체면과 왕으로서의 권위를 더 신경 썼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사울을 왕의 자리에서 폐하시기로 결정하십니다.

* 사무엘상 16장: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과 다윗의 등장

1) 외모가 아닌 중심: 하나님은 사울을 대신할 새 왕을 세우기 위해 사무엘을 이새의 집으로 보내십니다. 사무엘은 장남 엘리압의 외모와 키를 보고 감탄했으나, 하나님은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며 막내 다윗을 택하십니다.

2) 대조적인 영적 상태: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을 때 여호와의 영에 크게 감동된 반면, 사울에게서는 여호와의 영이 떠나고 악한 영에 시달리게 됩니다.

3) 하나님의 손에 달린 인생: 사울과 다윗 모두 연약한 인간일 뿐이지만,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느냐 떠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받을 수도 있고 연약한 존재로 무너질 수도 있음을 보여 줍니다.


* 4월 2일 

* 사무엘상 17장: 다윗과 골리앗, 하나님의 방식

1) 전쟁의 배경: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전투가 벌어집니다. 블레셋의 거구 골리앗 앞에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심히 두려워하며 도망치는 상황이었습니다.

2) 인간적인 방식 (사울 왕): 사울 왕은 골리앗을 죽이는 자에게 재물과 딸을 주고 세금을 면제해주겠다는 등 세상적이고 보상 위주의 제안을 합니다. 

3) 하나님의 방식 (다윗): 반면, 어린 소년 다윗은 인간적인 계산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나아갑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는 고백과 함께 하나님의 이름으로 승리하며 이스라엘을 구원합니다.

* 사무엘상 18장: 승리 후의 환란과 하나님의 보호

1) 사울의 열등감과 적대감: 다윗의 승리를 찬양하는 여인들의 노래(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가 화근이 되어 사울 왕의 질투와 적대감이 폭발합니다. 

2) 계속되는 위협: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여러 차례 시도하고 음모를 꾸미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끝까지 보호하시고 그의 생명을 지키십니다. 

3) 고난의 의미: '하나님이 함께하시는데 왜 이런 환란이 닥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모든 상황이 결국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 4월 3일 

* 사무엘상 19장: 시기와 질투에 내어준 마음

1) 사울의 변덕과 악행: 여인들의 노래로 시작된 질투심이 사울을 사로잡아, 사위이자 충신인 다윗을 죽이려는 종잡을 수 없는 행태를 보입니다.

2) 악령에게 내어준 상태: 성경은 사울이 악한 것에 마음을 내어주어 악령이 그에게 접하였다고 거듭 기록합니다.

3) 요나단의 첫 번째 중재: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에게 다윗의 무죄함과 선함을 호소하며 다윗을 죽이지 말라고 설득합니다.

* 사무엘상 20장: 생명보다 귀한 언약의 사랑

1) 자기 생명같이 사랑함: 요나단은 자신의 왕위 계승권보다 다윗과의 언약을 소중히 여기며 그를 지극히 선대합니다.

2) 진심 어린 우정: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지만, 요나단은 아버지의 잘못된 뜻을 따르지 않고 의로운 다윗의 편에 서는 진심을 보여줍니다.

3) 살리는 선택: 사울이 죽이는 행동을 선택할 때, 요나단은 다윗을 살리는 행동을 선택하며 마음을 지킵니다.

* 사무엘상 21장: 도피의 시작과 위기 속의 인도

1) 광야로 나선 다윗: 사울의 살의가 확정되자 다윗은 본격적인 도피의 길에 오르게 됩니다.

2)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다윗이 놉의 제사장에게서 거룩한 떡을 얻고 가드 왕 앞에서 위기를 모면하는 과정 속에서도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과 중심을 살피십니다.


* 4월 4일 

* 사무엘상 22장: 사람을 죽이는 사울 vs 사람을 살리는 다윗

1) 사울의 광기: 다윗을 향한 집착이 극에 달해 무고한 제사장들을 살해하기에 이릅니다. 

2) 놉 땅의 비극: 다윗에게 떡과 골리앗의 칼을 내어준 제사장 아히멜렉을 문제 삼아, 에돔 사람 도엑을 통해 85명의 제사장을 죽입니다. 

3) 다윗의 공동체: 반면 도망자 신세인 다윗은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들을 거두어 함께 공동체를 이룹니다. 

* 사무엘상 23장: 위기 속에서도 이웃을 구원하는 다윗

1) 그일라 구원: 자신도 쫓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블레셋의 공격을 받는 그일라 주민들의 소식을 듣고 그들을 구해냅니다. 

2) 하나님의 보호: 사울이 매일 다윗을 찾았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울의 손에 넘기지 않으시고 보호하십니다. 

3) 요나단과의 만남: 십 광야에서 요나단을 만나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라'는 격려를 받으며 우정을 재확인합니다. 

* 사무엘상 24장: 엔게디 동굴에서의 시험과 다윗의 신앙

1) 절호의 기회: 엔게디 요새의 동굴에 사울이 혼자 들어왔을 때,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완벽한 기회를 맞이합니다.

2) 기름 부음 받은 자에 대한 존중: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신다"며 옷자락만 베고 목숨을 살려줍니다.

3) 살려준 이유: 다윗이 고달픈 도망 생활을 끝낼 수 있음에도 사울을 죽이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공의로운 재판장이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4) 사울의 고백: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다윗의 의로움 앞에 사울은 '너는 나보다 의롭다'고 하며, 다윗이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인정합니다. 


* 4월 5일 

* 사무엘상 25장: 나발의 완고함과 하나님의 직접적인 심판

1) 다윗을 모욕한 나발: 다윗이 광야에서 나발의 소유를 보호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발은 다윗을 근본 없는 자로 취급하며 악의적으로 적대합니다.

2) 다윗의 인내와 하나님의 처리: 다윗은 처음에는 보복하려 했으나, 아비가일의 중재로 멈추고 하나님께 맡깁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공의로운 재판장이 되셔서 나발을 친히 심판하심을 보여줍니다.

3) 영적 교훈: 우리가 억울함을 직접 해결하려 하기보다 하나님의 손에 맡길 때, 하나님이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대신 해결해 주십니다.

* 사무엘상 26장: 두 번째 살려준 사울과 다윗의 신실함

1) 하길라 산에서의 기회: 엔게디 광야에 이어 하길라 산에서 다시 한번 사울을 죽일 기회를 맞이하지만, 다윗은 사울을 선대합니다.

2) 기름 부음 받은 자에 대한 존중: 다윗은 사울이 자신을 쫓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질서를 존중하며 그를 살려주는 선택을 합니다.

3) 반복되는 자비: 24장과 26장 사이에 나발 사건(25장)을 배치함으로써,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공의를 행하신다는 확신이 다윗으로 하여금 사울을 거듭 용서하게 했음을 보여줍니다.

* 사무엘상 27장: 블레셋으로의 피신과 사울의 추격 중단

1)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사울의 끈질긴 추격을 피하기 위해 다윗은 블레셋 땅으로 들어가 아기스 왕에게 몸을 의탁합니다.

2) 추격의 종결: 다윗이 이스라엘 영토를 벗어나 블레셋으로 망명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사울은 비로소 수색을 단념하게 됩니다.


* 4월 6일 

* 사무엘상 28장: 영적 단절과 사울의 비극적 선택

1) 하나님의 침묵과 엔돌 방문: 블레셋의 침공으로 두려움에 떨던 사울이 하나님께 물어도 대답이 없자, 결국 금지된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 사무엘을 불러올리는 무리수를 둡니다.

2) 죽음의 예언: 사무엘이 나타난 것처럼 보이는 장면에서 사울 자신과 아들들이 내일 죽게 될 것이라는 절망적인 심판의 메시지를 듣게 됩니다.

* 사무엘상 29장: 다윗의 영적 암흑기와 기적적인 참전 취소

1) 블레셋 망명과 영적 침체: 사울을 피해 블레셋 아기스 왕에게 망명한 1년 4개월은 다윗에게 영적 암흑기였습니다. 이 기간 기록된 시편이 한 편도 없다는 사실은 그의 기도가 메말랐음을 보여줍니다.

2) 동족 상잔의 위기 모면: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블레셋 군으로 참전해야 하는 모순된 상황에 놓이지만, 다윗을 불신한 블레셋 방백들의 반대로 극적으로 전쟁터에서 빠져나오게 됩니다.

* 사무엘상 30장: 시글락의 위기와 하나님을 힘입은 회복

1) 아말렉의 습격과 절망: 다윗이 돌아왔을 때 거처인 시글락은 아말렉에 의해 불타고 가족들은 모두 잡혀가 백성들이 다윗을 돌로 치려 할 만큼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2) 신앙의 용기로 이룬 승리: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어 용기를 얻고 아말렉을 추격하여, 잃어버렸던 모든 가족과 전리품을 도로 찾아오는 큰 승리를 거둡니다.

* 사무엘상 31장: 길보아 산의 패배와 사울 왕조의 종말

1) 이스라엘의 패전과 전사: 길보아 산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대패하고, 사울의 아들들인 요나단, 아비나답, 말기수아가 전사하며 사울 왕조의 비극이 시작됩니다.

2) 사울의 자결과 마무리: 중상을 입은 사울은 이방인의 손에 수치를 당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사무엘상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막을 내립니다.

* CGN 하루 20분 공동체성경읽기 장별 요약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6/01/cgn-20.html

2022년 6월 24일 금요일

참된 경건의 길 / 사무엘상 30장 21-25절 설교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평가할 수 있는 여러가지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런 기준이 성경적인 기준일까? 근본적인 질문을 제 자신에게 종종 던져봅니다. 우리는 과연 참된 경건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요?

신앙의 성장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어떤 패러다임의 완전한 전환 없이는, 절대로 신앙 성장이 일어날 수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 자신을 위한 신앙 생활, 나의 유익만을 위한 신앙 생활이라는, 세상의 중심에 나를 놓은 그 형태로는, 사실상 신앙의 성숙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그것을 나누는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가 우리의 삶 가운데 들어오고 움직일 때에, 그제서야 우리의 삶이 변하는 것입니다. 답은 분명한데, 어떤 분들은 답을 인정하지 않고, 또 어떤 분들은 그 답을 내 삶 속에서 풀어내야 하는 엄청난 과정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역시나,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은혜 받은 자임을 기억하기를 원하고, 또 그것이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부터 흘러 가기를 원합니다.

* 사무엘상 30장 21-25절 설교

사무엘상 27장에서 다윗은, 사울의 추적을 견디다 못하고 블레셋 족속의 땅으로 망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 안에 거주하면 어쩔수 없이 자신의 동족과 싸울 위기에 처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오히려 은밀하게 다른 이방 민족들을 치면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블레셋 족속과 이스라엘 민족의 전면전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현재 이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블레셋 편에 서서 참전해야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그 위기 속에서 다윗을 구해주셨습니다. 블레셋의 장군들이 그들의 큰 적인 다윗을 알아본 것입니다. 그들은 주장하기를, 다윗이 블레셋을 배신할 수 있기 때문에, 절대로 다윗은 그들과 함께 전쟁에 함께 나갈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다윗은, 전쟁터에서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사흘길을 걸어서 시글락으로 돌아와보니, 온 성읍이 잿더미로 변해있었습니다. 아말렉 족속이 모든 여자와 아이들을 다 포로로 잡아간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서, 그동안 다윗에게 충성했던 사람들조차 너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반기를 들면서 오히려 그를 돌로 쳐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윗은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위기의 순간에, 여호와를 더욱 의지함으로, 다윗은 하나님께로부터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에봇을 통해서 여호와께 여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답을 주시기를, 약탈자들을 쫓아가면 반드시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고 확실한 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들을 추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은 그 즉시로, 부하 600명을 거느리고 추격을 시작했습니다. 


한번 이 때의 분위기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속도로 추적을 했을 것입니다. 반드시 가족들을 되찾아야 한다라는 일념으로 똘똘 뭉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다윗의 부하들이 용맹 했지만, 그들 모두의 체력이 동일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600명 중에서 200명이 완전히 지쳐 버렸습니다. 그래서, 브솔 시내를 건너갈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에는 400명이 다윗을 따라서 계속 추적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400명을 끌고 추격을 하다가, 다 죽어가는 한 젊은 사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군인들이 그를 발견하고서는, 그 급한 와중에 추격을 잠시 중단하였다는 것입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보면서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먹을 것을 주고 그의 기력을 되살렸습니다. 상황을 알아보니 그 사람은 이집트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원래는 아말렉 사람의 종이었는데, 병이 들어서 종이 더 이상 걷지 못하게 되었을 때에 주인이 그 종을 버리고 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인이 바로 다윗의 성을 약탈해 간 바로 그 사람들 중에 한명이었습니다. 


다윗은 이 종의 안내를 받아서 아말렉 족속을 끝까지 추적했습니다. 그리고 넓은 들에서 약탈한 물건을 가지고 즐기고 있던 아말렉 족속을 드디어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새벽에 동틀 때에 부하들과 함께 그들을 기습하였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8 다윗이 아말렉 사람들이 빼앗아 갔던 모든 것을 도로 찾고 그의 두 아내를 구원하였고 19 그들이 약탈하였던 것 곧 무리의 자녀들이나 빼앗겼던 것은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이 모두 다윗이 도로 찾아왔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성경은 다윗이 아무것도 잃은 것 없이 완벽하게 찾았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지금 분위기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다윗은 돌로 맞을 상황이었지만, 이제는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모든 것을 회복하였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다윗과 군사들이 돌아올 때에 지쳐서 남겨졌던 200명도 기뻐하면서 다윗을 영접하러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에, 환영과 기쁨과 감격의 순간을 망치는 이야기가 병사들 안에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22절에 보니 “다윗과 함께 갔던 자들 가운데 악한 자와 불량배들이 다 이르되 그들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은즉 우리가 도로 찾은 물건은 무엇이든지 그들에게 주지 말고 각자의 처자만 데리고 떠나가게 하라” 라고 주장을 하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세상에 그 어떤 공동체도 완벽할 수 없는 것처럼, 다윗을 따르는 이들 중에도 악한 자와 불량배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앞장서서 수고하고 목숨을 걸었기 때문에, 단 하나의 전리품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심지어 전리품의 일부는 원래는 자신의 동료의 물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말렉으로 부터 다시 빼앗은 것이기 때문에, 기다린 자들에게는 최소한의 가족들만 돌려주자는 것이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생각이 아닌가? 어떻게 보면 이것은 늘 우리가 듣던 주장이 아닌가? 라는 것입니다. 노력한 자가 그 결과를 얻고, 노력한 자에게는 그에게 합당한 상을 주고, 그렇지 못한 자에게는 당연히 나눠줄 것이 없다는 이 주장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듣는 너무나 평범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23절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23 다윗이 이르되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기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라고 부하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다윗은, 진정한 리더의 면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악한 이야기를 하는 자들에게조차 “나의 형제들아” 라고 부르며 그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있습니다. 


지금 다윗의 놀라운 점이 무엇인가? 다윗의 부하들 중에서 악한 자와 불량한 자들의 마음에는, 자신들의 노력으로 얻은 전리품이기 때문에 자신이 가지겠다는 지극히 지극히 세상적인 논리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전혀 다른 관점으로 지금의 상황을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던 다윗은, 지금 이 기적같은 승리와 넘치는 전리품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작품인 것을 알았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보호하셨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신의 손에 넘기셨고, 여호와께서 약속대로 주셨기 때문에, 절대로 세상의 방식으로는 이 일을 처리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24절에 보니, “전장에 내려갔던 이들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동일할 것이다 같이 분배해야 한다” 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무엇인가? 25절에 보니 “25 그 날부터 다윗이 이것으로 이스라엘의 율례와 규례를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다윗의 입장에서는, 공동체의 모든 이들이 함께 전쟁의 결과와 기쁨을 누려야 한다는 결정이, 즉흥적이고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 원리가, 자신이 다스리는 현재의 공동체, 그리고 더 나아가 앞으로 왕으로 다스릴 전체 공동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영적인 삶의 원리가 되기를 바랬습니다. 강한 자도 그리고 약한 자도 함께 기쁨을 누리며, 힘이 있는 자도 그리고 연약한 자도 함께 공동체 속에서 유익을 얻는 바로 그것을 꿈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께서는, 오늘 말씀을 보시면서 어떤 부분이 가장 마음에 와 닿으십니까? 저는 오늘 말씀의 큰 구조 속에서, 세상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의 큰 대조를 보게 되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아말렉 족속을 급하게 추적할 때에 누구를 발견하였습니까? 병들어서 더 이상 쓸모 없어졌다고 버려진 초라한 행색으로 죽어가는 거지와 같은 이집트 사람을 발견한 것입니다. 


우리가 확실하게 알수 있는 것은, 아말렉 족속 안에서 모두가 받아들이는 관습이 있었는데, 종이 병들고 걷지 못하게 되었을 때에 그를 버리는 것이 아말렉 족속 안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효용 가치가 있으면 데리고 있지만, 효용 가치가 없으면 즉시 버리는 것, 그것이 아말렉 족속의 방식이고 세상의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윗은 그것을 거절한 것입니다. 다윗의 무리가 아말렉 족속을 쫓다가 죽어가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에, 그들이 발걸음을 멈추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그 버려진 사람에게 무엇을 먹였는지를 성경은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가장 급박하고 힘든 순간에 조차, 생면부지의 사람이라도 지나치지 않고 힘써 먹인 그들의 따뜻한 마음을, 성경은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윗의 자비와 따뜻함과 사랑의 마음과 태도가, 오늘 말씀 속에서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더 흥미로운 것은, 11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무리가 그를 다윗에게로 데려다가” 라고 말씀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평소에 다윗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만약에 다윗이 평소에 죽어가는 사람을 돌보는 성품이 없었다면, 절대로 부하들이 이 사람을 데려갔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공동체의 리더가 관심도 없는 괜히 병자를 데려갔다가, 괜히 욕만 먹는 상황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하들이 평소 다윗의 성품을 알았기 때문에, 죽어가는 자를 발견했을 때에 주저하지 않고 기꺼이 그를 다윗에게 데려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다윗의 마음이, 오늘 말씀 속에 그대로 흐르고 있습니다. 다윗은 비록 온전한 왕으로 세워지 못한 도망자의 신세였지만, 그러나 그가 섬기는 그 공동체와 그의 무리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깨달아 알기를 다윗은 간절히 원했다는 것입니다. 유력하고 강한자만 대우 받는 것이 아니라, 가장 연약하고 힘이 없는 자 까지 함께 유익을 누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가 되기를 다윗이 간절히 원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로마서 5장 17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아담 안에서 영원히 본성이 타락하여 죄를 짓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망한 우리였지만,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와 하나님의 선물을 넘치게 받았다 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 말씀이 놀라운  것은, 바울 사도는 자신의 수고를 평가 절하하거나, 자신이 고생한적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삶 속에서 너무나 많은 수고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수고 가운데 역사하신 모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였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은혜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공동체가,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이 받은 것들을 연약한 자들에게 나눌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27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7 하나님 아버지 앞에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참된 경건이라는 것은,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알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가장 연약한 사람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통해서 온전히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넘치게 받았음을 깨달으면서 가장 연약한 자들에게 마음과 관심과 사랑을 쏟고 있다면, 바로 그것이 참된 경건을 우리의 삶 속에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저와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께서, 우리가 지금 누리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요 사랑을 결과임을 인정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것으로 인해서 넘치는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며, 그 넘치는 은혜 때문에, 가장 연약한 자에게 우리의 마음이 향하기를 원합니다.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는 참된 사랑과 경건을 실천하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시간에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주님을 대적하며 살아가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오직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로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자녀 삼으시니 감사합니다 바로 이러한 아버지의 사랑을 통하여, 저의 가운데 언제나 은혜를 인정하며, 주님께 감사를 돌리는 복된 성도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둘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주님께서 베푸신 놀라운 은혜를 인정하며 은혜와 넉넉함이 저를 통해서 흘러가기를 원합니다. 제가 속한 공동체 안에 있는 가장 연약한 자들도 저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있게 하시고, 저의 삶의 시선과 방향이, 가진자 유력한 자를 향하지 않고, 가장 연약한 고아와 과부를 향하고 그들을 위해 살아가도록 주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문" 전체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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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18일 토요일

성도는 끊임 없이 격려 되어야 한다 / 사무엘상 25장 23-44절 설교

 


저는 학부 전공이 행정학입니다. 행정학은 조직을 다루는 학문입니다. 학부 시절에 가장 좋았던 것은, "흥황하는 조직"과 "망하는 조직"의 특징을 공부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흥황하는 조직은 반드시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잘한 것과 못한 것에 대한 피드백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집니다. 특히 조직 구성원의 탁월하게 이룬 부분에 있어서 강력한 칭찬과 격려를 끊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환경에 예민하게 반응하여서 조직 자체와 구성원 자신을 끊임없이 변화시킵니다. 

반면에 망하는 조직은, 그 안에서 커뮤니케이션이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행동에 관심이 없고, 조직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조직원이 따르던지 말던지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놀라운 것은 평소에는 아무런 평가도 없다가, 단지 그 사람이 어떤 나쁜 결과를 만들어내면, 그제서야 그 사람을 비난하기 바쁩니다. 물론 외부의 환경에 전혀 예민하지 않고 그저 행동하던 과거의 방식을 고수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 조직은 망하고 사라집니다. 섬뜩한 결과입니다.

저는 교회를 볼 때에, 늘 이러한 조직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는 세상의 조직과는 다른 차원의 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로 연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직의 특징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고, 그 말씀을 따르는 이들이 평가를 받고 격려 받고 칭찬 받고 교정되어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많은 부분에서 그렇지 못합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성도가 얼마나 격려가 필요한지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신앙적으로 잘하고 못하는 것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무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내가 살아가는 삶에 바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가족으로 우리를 만드셨지만, 우리는 여전히 "일로 만난 사람처럼", "일"을 이야기할 뿐입니다. 

그런 면에서, 제가 하는 찬양 사역도, 서로를 향한 사랑과 격려가 없다면 그것은 그저 "일"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가장 완벽한 천상의 찬양의 주인이십니다. 그런 면에서 이 땅에서의 찬양은 보잘것 없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관점에서 아름다운 찬양을 드려도,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면 도대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너무나 고통스러운 현상입니다.  

무관심은 결국,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를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더 이상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지 않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세상은 절대로 교회를 격려하거나 칭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칭찬은 결국 우리 스스로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은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것을 굉장히 낯설고 이상한 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도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결단하고 선택하고 도전하였을 때에, 그것은 마땅히 그리고 충분히 격려 받고 칭찬 받아야 합니다. 마치 아비가일의 탁월한 영적인 안목과 선택을 다윗이 칭찬한 것 처럼 말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에서 그 부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과연 우리는 그런 아름다운 교회를 세워갈 수 있을까요? 

* 사무엘상 25장 23-44절 설교 

사무엘상 25장의 앞 부분에서는, 다윗이 바란 광야에 있을 때의 이야기를 말씀하십니다. 나발이라는 한 사람이 등장하였습니다. 그는 매우 부유한 사람이었지만, 매우 인색하고 교만하고 무례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과 그의 부하들의 그의 많은 양떼를 지켜주었고 다윗은 그에 합당한 호의를 정중하게 부탁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발은 오히려 다윗을 심하게 모욕하였습니다. 다윗을 취급하기를, 주인으로 부터 도망한 근본 없는 종으로 취급하였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모욕적인 상황입니까? 다윗은 이미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이고, 그는 골리앗을 쳐서 넘어 뜨린 사람입니다. 그는 이미 수 많은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모욕을 하는 사람 앞에서는 다윗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다윗이 모욕을 참지 못하고 부하들과 함께 칼을 차고 나발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소식을 들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 많은 음식을 싣고서 다윗을 찾아가서 그들이 서로 만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23절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비가일이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려다윗 앞에 엎드려 그의 얼굴을 땅에 대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너무나 겸손한으로 모습으로, 마치 하나님을 대하듯이 다윗을 응대하고 있습니다. 아비가일은 무례한 나발의 아내였지만, 놀랍게도 나발과는 전혀 다른 성품과 전혀 다른 안목을 가진 아주 지혜롭고 현명한 여인이었습니다. 

25절에 보니 아비가일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그는 미련한 자니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나발에게로 달려오는 다윗의 마음 가운데에는, 나발의 모욕이 아주 깊숙히 들어와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는 나발이 자신에게 준 상처로 분노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더 이상 마음에 두지 말라고 아비가일이 부탁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나발은 미련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미련한 사람의 특징이 무엇인가? 나발과 같은 사람은 누구에게라도 그렇게 모욕을 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의 언행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 다윗에게 오히려 손해라는 것입니다. 아주 흥미로운 것은, 지금 아비가일의 말을 들어보면, 다윗을 매우 높이면서 그에게 합당한 표현을 쓰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다윗을 부를 때에 "내 주여, 내 주여"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다윗을 높이고 충분히 인정하면서, 그의 진노를 누그러뜨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비가일 자신은 이 상황을 알지 못했었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허물을 용서하여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 말씀에서 아주 놀라운 것은, 아비가일이 바라보는 다윗의 미래의 모습입니다. 28절 부터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라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아비가일이 하고 있는 이 모든 행동과 말이, 단순히 자신의 남편이 잘못했기 때문에 그 일을 무마하기 위해서 음식을 준비해서 달려가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지금 아비가일은, 이스라엘 나라의 중요한 영적인 흐름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사울이 이 땅의 왕으로 군림하고 있지만,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오히려 다윗의 편에 계시다는 그 영적인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단순히 인간의 왕이 아니라,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는 여호와께서 세우신 왕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29절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의미인가? 지금은 비록 다윗이 사울로부터 끊임없이 쫓기는 위기의 상황 속에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를 완전히 생명으로 싸고 계시기 때문에 감히 그 누구도 다윗을 해칠 수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도우시고 그의 편에 서셨고 그를 지지하시고 도우신다는 확신을 말하면서, 바로 그것 때문에 다윗의 미래는 든든할 것이라고 연약한 여인이 너무나 담대하게 그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30절 중간에,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실 때에” 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지도자” 라는 것은, 처음에 하나님께서 사울을 세우실 때에도 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이 말씀은 단순히 다윗이 리더 중에 한명이 된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가 이스라엘의 최고 통치자가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을 만나자 마자, 다윗의 현재의 위치와 그의 놀라운 가치와 엄청난 미래에 대해서, 너무나 정확하고 탁월하게 그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비가일이 이야기했을 때에, 드디어 다윗의 마음이 완전히 누그러지고 풀어졌습니다. 다윗이 분노하여 살인하려던 것을 그녀가 지혜롭게 막은 것입니다. 32절에서 다윗은 그녀를 보내서 자신을 영접하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합니다. 그리고 33절에서는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지혜"라는 것은 "판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라고 다윗이 그녀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것은, 여호와를 찬송하는 것, 또 아비가일의 지혜를 칭찬하는 것, 그리고 아비가일에게 복이 있을 지로다 라는 말씀에서 “찬송, 칭찬, 복이 있을 지로다” 라는 모든 동사가 같은 단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다윗이 아비가일을 칭찬하는 것이, 단순히 그녀가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고 좋은 말을 해 주어서 아비가일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다윗은, 아비가일의 영적인 분별력과 지혜를 칭찬하는 것입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이 누구인지를, 그리고 그의 참된 가치를, 그리고 하나님이 다윗을 통해서 어떻게 자신의 나라를 세울 것인지를 미리 바라보는 영적인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바로 그것을 다윗이 기뻐하며 그녀를 인정하며 크게 칭찬하는 것입니다. 아비가일이 여호와의 나라와 그가 세우신 자를 분별하고 그것을 택한 것에 대하여, 너무나 크게 칭찬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비가일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랬더니 나발이 어떻게 하고 있었는가? 그는 왕과 같은 잔치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크게 취하였습니다. 마음이 너무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는 마땅히 베풀어야 하는 것 조차 너무나 아까워했지만, 자신의 행복과 즐거움을 위해서는 흥청망청 돈을 쓰는데 있어서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음날 정신이 들고나서, 아비가일이 다윗과 자신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였습니다. 나발은, 자신이 죽은 목숨이었는데 아내의 지혜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는 것과, 자신이 저지른 일이 얼마나 큰 잘못이었는가를 깨닫고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열흘 후에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거두셨습니다. 

다윗은 나발의 죽음의 소식을 듣고, 자신의 모욕을 갚기 위해 살인을 하지 않도록 자신을 보호하신 여호와를 찬양하였습니다. 다윗은 비록 자신이 도망자의 신세였지만,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이하고 싶었습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다윗을 처음 만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요나단이 자신을 잘 알고 사랑한 것 처럼 다윗을 이해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다윗을 잘 아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인이었고, 분명한 영적인 판단력을 가진 탁월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 그녀에게 청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42절에 보니 “아비가일이 급히 일어나서”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의 부름에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다윗의 현재의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그의 편에 서 계시다는 것을 알았고, 그의 미래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비가일이 드디어 다윗의 아내가 되면서 그리고 사울의 딸인 다윗의 첫째 아내 미갈은 아마도 사울에 의해서 다른 사람에게 억지로 다시 결혼을 하면서 오늘 말씀이 마무리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과연 참된 영적인 지혜와 분별력이 무엇인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성경은 결단코 재산 그 자체를 부정적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나발은 굉장히 부유한 사람이었지만, 부유한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나발 자신이 어리석고 지혜가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아주 흥미로운 것은, 25장 11절에 보면넷 바이블 영어 성경은 이렇게 번역하고 입니다. 다윗이 종들을 보내어서 자신에게 합당한 호의를 부탁 하였을 때에, 나발은 이렇게 주장하였습니다. “나의 떡과 나의 물과 나의 고기를 줄 수 없다”라고 나발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나발이 왜 어리석은 사람인가? 그에게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발은 자신이 누리는 모든 것,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자신의 능력으로 부터 나온 것이며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너무나 이상한 것은, 왜 아비가일이 이런 사람과 결혼했는가입니다. 우리는 그 뒷 이야기는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비가일은 분명한 지혜와 분별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발은 “나”라는 자기 중심의 인물이지만, 아비가일은 “하나님” 중심적인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과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쩌면 소문으로 다윗에 대해서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편에 있기 때문에 그에게 극도로 공손한 모습을 보이면서 그를 대접하고 있습니다. 그는 다윗의 현재의 모습을 본 것이 아니라, 그가 장차 하나님을 섬기는 왕으로 온전히 세워질 것임을 믿음의 눈으로 분명히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아비가일이야 말로 너무나 지혜로운 자라는 것입니다. 

시편 111편 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근본이라는 것은, “가장 근원적인 원리”라는 의미입니다. 아무리 재산이 많고 세상적으로 부유하다 하더라도, 여호와가 그 사람에게 없다면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다면, 그는 의미있고 가치 있는 구원 받은 자로서의 삶을 절대로 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참된 지혜는,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며, 여호와를 경외하는데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선택만이, 지혜로운 선택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님들께서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어떤 부분이 가장 마음에 깊이 혹은 흥미롭게 다가오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에서 사실 가장 놀랍고도 흥미로웠던 부분이, 아비가일이 다윗의 아내가 되는 장면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아비가일이 나발과 억지로 결혼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아마 나발이 처음부터 이런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남편이 죽었다면 그 아내가 슬퍼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오늘 말씀은 자칫하면 자신의 남편의 죽음에 대하여 슬픔 조차 느끼지 못하는 그런 이상한 아내에 대한 이야기로 오해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관통하는 그 핵심을 붙들고 있다면, 이러한 아비가일의 행동이 이해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관통하는 핵심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편에 서는 것,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알아보는 것”, 그것이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보면서, 예수님이 마태복음 13장 44절에서 말씀하신 천국 비유가 생각이 났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무나 신비한 것인데, 보물이지만 밭에 감추어진 보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그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떤 선택을 내렸는가?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이 보물이라는 것을 인지한 이후에,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즉시 자신이 가진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샀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선택은 너무나 즉각적이었고 너무나 큰 결단이었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에게는 분명히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인정한 사람은, 영적인 분별력을 통해서 기꺼이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들에게, 빌립보서 3장 19절과 2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치 아비가일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다윗의 미래를 확신하고 그에게 자신을 드리고 함께 하기로 결단한 것 처럼, 우리는 장차 오실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오늘을 믿음으로 살아가기로 결단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엄청난 영적인 깨달음과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와 사랑하는 성도님들은 과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 하나님께 함께 하시는 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어떤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영적인 안목과 지혜가 있는가를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비가일이 다윗의 부름을 받고 달려간 것 처럼, 우리의 왕이신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나라의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서 기꺼이 나의 모든 것을 걸고 달려갈 수 있는지를 물으며 강력하게 우리에게 변화를 촉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하나님의 역사와 그분의 일하심과 그분의 마음을 깨달아 아는, 그분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영적인 지혜와 분별력이 넘치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의 모든 선택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를 위하여서 기꺼이 우리의 모든 것을 걸고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시간에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함께 기도하기 원합니다. 첫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영적인 안목과 지혜를 부어 주시옵소서, 세상적인 기준으로 사람과 상황을 판단하지 않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어떻게 판단하시는 가를 주목하게 하시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따라가는 영적인 판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둘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그분이 주실 칭찬과 기쁨을 기대하며, 주님의 뜻을 지금 저의 속에서 기꺼이 이루어 나가는 복된 성도 복된 교회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2022년 6월 10일 금요일

예배를 통해 변화되는 삶을 꿈꾸며 / 사무엘상 20장 24-42절 설교

 


수 많은 예배를 통해서 무엇을 경험해야 할까요?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추구해야 할까요? 언젠가 부터 예배가 우리를 위로해주는 어떤 위로의 수단으로만 전락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저 한주일에 한번 예배당에 나와서 마음을 위로 받는 것, 한번 마음에 찡하게 감동을 느끼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가는 것, 그런 것이 예배가 된 것이 아닌가 라는 염려의 마음이 있습니다. 

초하루라는 중요한 예배의 날에, 사울은 여전히 자신의 탐욕과 살의로 가득차 있습니다. 어쩌면 사울은, 죄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이스라엘 왕으로 예배의 자리에 참여하지만, 그러나 그는 어떤 변화도 경험하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자로 남아 있습니다. 

단순히 설교자로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자로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싶습니다. 다른 이에게 들으라고 하는 설교가 아니라, 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가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제는 진정한 예배자로 살아가라고 부르시는 꾸중과 자비의 우렁찬 음성으로 이번 설교가 들렸습니다. 

* 사무엘상 20장 24-42절 설교

다윗이 도망하였던 라마나욧까지 사울이 찾아왔기 때문에, 다윗은 다시 도망을 하여서 요나단을 은밀히 찾아갔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죽음의 위기를 토로하였습니다. 다윗은 다시 한번 사울의 마음을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서 요나단에게 자신을 도와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만약에 왕실의 잔치에 다윗이 나가지 않았을 때에, 요나단이 허락해서 다윗이 가족에게 잠시 방문했다 라고 말했을 때에 사울이 이에 대해서 분노한다면, 다윗을 죽이려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0장 14절과 15절에 이렇게 요나단이 말합니다. “14 너는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내게 베풀어서 나를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15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함을 내 집에서 영원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의미인가? 요나단은 다윗을 사랑할 뿐 아니라, 정확하게 상황을 판단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왕권을 이을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다윗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위로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집을 보호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자 이제 오늘의 스토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윗은 계속 숨어 있었고 특별한 잔치가 시작되었습니다. 24절은 오늘의 스토리의 배경을 아주 간략하게, 하지만 무게감 있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들에 숨으니라 초하루가 되매”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24절에서 말하는 초하루라는 것은 유대인들의 절기를 의미하는데 매 달의 첫 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때는 무엇을 하는 날인가? 이 날은 안식일과 비슷하게 휴식을 취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특별한 희생 제사를 드리는 날이었습니다. 


민수기 28장에 그 내용이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수송아지와 양과 숫양으로 번제를 드리고, 그것과 함께 곡식도 함께 제사로 드리는 날입니다. 그리고 포도주를 제물 위에 부어드리는 전제도 드리는 날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추가하여서 속죄제를 여호와께 바치는 날입니다. 마치 우리에게 매달 첫 날이 굉장히 새롭게 다가오는 것 처럼, 초하루는 매달의 첫째 날이기 때문에 그 달 전체를 대표하는 날로서 중요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나간 달을 지켜주신 것을 감사하면서, 또 새로운 한 달을 주님께 맡긴다 라는 의미로 나팔을 불어서 그 날을 선포하고 거룩한 날로 지켰습니다. 한마디로 초하루라는 것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 새롭게 헌신하며,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날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초하루가 기쁨과 감사의 날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25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시지 “25 왕은 평시와 같이 벽 곁 자기 자리에 앉아 있고”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 작은 단서가 사울의 현재 심리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등 뒤에 벽을 두고 앉으면 어떻습니까? 자신의 뒤에서 누구도 자신을 공격할 수 없고, 모든 사람을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은 여호와를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앞으로 한달을 또 다시 지키실 주님을 기대하는 날이지만, 정작 지금 사울의 상태는 굉장히 불안하고 또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미 예상한 것처럼, 왕궁에 신하들이 모두 함께 해야 하는 중요한 잔치에 다윗이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첫날에 다윗이 안 보였을 때에는 혹시 개인적인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둘째 날에도 보이지 않자 요나단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때 요나단이 대답하기를, 다윗이 그에게 직접 부탁을 하셨는데 가족이 제사가 있어서 형의 명을 받고 가야된다 라고 했기 때문에 자신이 다윗을 보내었다 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어떻게 반응하였는가? 30절에 이렇게 소리치며 이야기했습니다. “30 사울이 요나단에게 화를 내며 그에게 이르되 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 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충격적인 장면입니다. 지금 이 자리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자리여야 했지만, 공포와 폭력과 저주가 휘몰아치는 자리가 되었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울이 극도로 분노하면서 자신의 아들 요나단에게 욕을 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요나단의 속 마음을 꽤뚫어보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다윗을 선택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너무나 끔찍한 일이었고 너무나 수치스럽고 치욕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사실상 사울에게는 옳고 그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의 친 아들이 자신이 원수처럼 여기는 다윗의 편에 섰다는 것 그것으로 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31절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31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제 사람을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 오라 그는 죽어야 할 자이니라”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울의 이야기가 정말 놀라운 것이 무엇인가? 사울은 지금 심각하게 요나단에게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죽지 않는다면, 요나단과 요나단의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할 것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사울의 머리에 꽉 차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나라를 물려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나라이며 마땅히 자신의 아들이 물려 받아야하며, 그 누구도 감히 그 나라를 가져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하는 다윗은 죽여야 한다는 것이, 사울의 변함 없는 논리입니다. 사울은 요나단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보내서 끌어 오라 다윗은 죽어야 한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단은 이렇게 심한 이야기를 듣고서도, 자신의 아버지에게 항변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다윗이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라고 다윗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다윗을 변호한다기 보다는,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잘못한 적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사울은 답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답변을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답을 회피하는 대신에 자신의 아들에게 창을 던졌습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지금 요나단을 향한 창을 던진 그 행위 자체가 그냥 위협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정말 말 그대로 자신의 아들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사울이 요나단을 향해서 소리칠 때에는, 마치 언뜻 들으면 그가 요나단을 위하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이 어리석은 요나단아 아직 알지 못하느냐? 너와 너의 나라가 위태로운 것 아니냐? 라고 말하면서 마치 자신의 아들을 걱정하는 것 처럼 그렇게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아들조차도 죽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의미인가? 사실 사울은 요나단과 그의 왕위를 걱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울의 머리 속에는 자기 자신 밖에 없다는 것이지. 다윗으로 인해서 자신의 나라가 빼앗길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요나단은 심히 노하였고 식탁에서 떠났습니다. 그리고 34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4 그 달의 둘째 날에는 먹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아버지가 다윗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다윗을 위하여 슬퍼함이었더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놀랍게도 요나단은 자신의 아버지가 창을 던진 것 보다 의로운 다윗이 모욕 당한 것을 더욱 큰 일로 여겼습니다. 선하고 잘못이 없는 다윗이 모욕당하는 것을 매우 슬퍼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장면이 바뀌고 있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만나기 위해서 들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화살을 멀리 쏘았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한다는 신호입니다. 시종은 무기를 가지고 성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윗은 요나단과 만나서 요나단에게 세번 절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입맞추고 심하게 울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려는 것이 확실했기 때문에, 요나단은 더 이상 다윗을 붙잡아 둘 수 없었습니다. 평안히 가라 라고 그에게 말하며 다시 한번 다윗에게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42절 말씀입니다.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라고 서로가 고백하였다는 것입니다. 둘 사이에 있는 그 약속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확인하면서, 두 사람은 헤어지면서 오늘 말씀이 마무리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참으로 안타깝게 여겨지는 것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초하루의 절기에 오늘의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사울의 영적인 태도입니다. 여호와의 절기에 참여하고 그 절기의 음식을 먹고 모두 함께 모여서 그 절기를 지키고 있는 것 처럼 보였지만, 실상 사울은 단 한걸음도 그 예배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예배를 드리긴 했으나 그 예배를 드리는 동안 자신을 변화시키고 자신이 하나님께 엎드리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이키는 역사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왕으로서 절기의 음식을 먹고 절기의 자리를 베풀었지만, 그의 마음에는 여전히 분노와 질투와살인에 대한 마음이 가득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울의 탐욕의 그 깊은 중심에는, 나의 나라 나의 왕국이라는 것이 들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겉으로는 아들을 염려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실상 영원히 자신이 왕이 되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의 아들조차도 자신의 나라에 방해가 된다면, 얼마든지 창으로 죽이려는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머리 속에서 그리고 그의 마음 안에서는, 무슨 짓을 해서든지 자신의 나라를 유지해야겠다라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 가득했다는 것입니다. 예배 가운데 들어가 있었지만, 자신의 욕망과 탐욕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는 악한 죄인의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셔야 하는 예배인데, 자신의 탐욕이 중심이 되어서 그것을 놓지 못하는 너무나 죄악으로 가득찬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울과 대조되는 것이 요나단의 모습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실상 다윗은 요나단에게 있어서 더 큰 대적입니다. 그런데 정작 사울보다 더 라이벌 위치에 있던 요나단의 관심은, 자신의 나라 자체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 20장 42절에 말씀하십니다.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놀라운 고백입니다. 사울의 관심은 온통 자기 자신과 자신의 나라를 유지하는 것, 그리고 방해가 되는 어떤 것이라도 없애는 것, 바로 거기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과 요나단은 어떠한가? 지금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이 참 아름다우니그 우정을 본 받자 라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들의 우정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의 모든 관심과 삶의 목적이 여호와의 이름이 그들과 함께하시는 것, 어떤 상황에서든지 여호와께서 그들 사이에 계시고, 그들의 삶을 다스리시고 여호와가 주인 되시는 참된 신앙과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진정한 우정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가장 중요한 날조차도 전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악한 사울과, 죽음과 위기의 순간에서도 하나님 중심으로 마음을 모으며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두 청년의 모습을, 엄청난 대조의 모습을 통해서 보여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참된 예배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진지하게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예배라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빌립보서 2장 9절에서 1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배를 통해서 어떤 결과를 보아야하는가?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인 되심에 대한 깊은 인식입니다. 모든 무릎은 오직 예수의 이름에 꿇는 것이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주인이다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 참된 예배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2장 1절에서,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아주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마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이 세대는 "사울의 세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머리 속에, 나의 성공 나의 행복 나의 목적 나의 왕국, 내가 이루고 싶은 일만 가득한 것이 바로 이 세대입니다. 그런데, 예배를 통해서 어떻게 마음이 새롭게 되어야하는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도대체 은혜 받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우리가 예배 가운데 경험하는, 어떤 짠한 감동적인 마음만이 우리의 궁극적인 예배의 목적은 아닐 것입니다. 진정한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이 없는 나 중심적인 죄인의 삶에서 벗어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원하신 그분의 은혜에 응답하며,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중심을 가득 차지하시는, 바로 그 마음으로 새롭게 변화되는 것이 바로 예배라는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바로 이런 예배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예배 가운데 온전히 하나님께 나아가며,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모든 악한 것들을 돌이키며, 나 중심적이고 탐욕적인 삶에서 돌이켜서, 여호와께서 우리의 주인으로 온전히 역사하시는, 참된 예배와 복된 믿음의 삶을 누리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 하겠습니다. 


시간에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모든 것을 주님 앞에서 정직하게 발견하기 원합니다. 세상의 목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삶을 돌이키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복된 성도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둘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참된 예배자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모든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이 더욱 나의 중심이 되시고, 하나님의 뜻이 나의 뜻이 되는 성령의 역사가 있게 하시고, 그리스도 앞에서 무릎을 꿇게 되는 참된 예배자로 성숙해가는 성도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문" 전체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_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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