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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목요일

기도하는 것의 기쁨, 온 가족이 함께 기도를 배우다 - Piercing Heaven: Prayers of the Puritans

 


* 매달 받는 로고스의 선물

새로운 한 달이 시작되면 항상 마음이 두근거립니다. 로고스에서 그 달의 무료 책을 배포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요즘에는 한 달에 두 권을 무료로  줍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마케팅이 가능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는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오랫동안 로고스를 사용했기 때문에 무료 책에 대한 기대가 상당히 많이 줄어들긴 했습니다. 가장 놀랐던 것은 아마도 CSB Study Bible Notes를 무료로 주었다는 것입니다. 학문적으로 탁월한 책이고 그 책 한 권만 있어도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 《Piercing Heaven: Prayers of the Puritans》 를 만나다

그런데 이번 달 무료책은 단번에 저의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제목이 너무 좋았습니다. 《Piercing Heaven: Prayers of the Puritans》, '하늘을 꿰뚫는 혹은 하늘에 닿는 청교도들의 기도'라는 제목입니다. 

* Piercing Heaven: Prayers of the Puritans

저는 기본적으로 청교도의 책들을 거의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큰 기대가 있었던 것은 기도를 배우는 것의 중요성을 요즘에 특히 절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더 좋은 것인가, 어떤 태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가라는 것은 신앙생활의 핵심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 기대를 가지고 책을 열어보았습니다. 


* 청교도의 기도

일단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읽기가 쉽다는 점입니다. 청교도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도 이러한 장점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저처럼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분명히 이해가 되는 설명입니다. 17-18세기에 영국 국교회를 정화하고자 했다는 것, 그리고 성경에 기초한 예배의 순전함, 교리의 순전함, 그리고 기도의 순전함을 추구했다는 것은 너무나 선명하고 이해하기 좋은 설명입니다. 


* 그들은 쉬운 언어로 기도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어지는 이 책의 장점은, 어렵고 고풍스러운 영어가 아니라 현대 영어를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리뷰를 찾아보니 이런 부분에서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처럼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에게는 너무나 큰 장점입니다. 

그리고 저자가 설명하기를, 청교도의 글 자체가 그 당시 독자들에게 고풍스럽거나 과장되게 들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대 영어로 바꾼 그들의 기도는, 청교도들이 원래 들려주기 원했던 바로 그 뉘앙스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 첫 기도를 읽다 

다 읽어 보지는 못했지만, 기도문들 자체가 길지가 않습니다. 조금 집중해서 읽으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분량입니다. 전자책 포맷이라 정확하지 않지만 기도 한 편이 겨우 레터지 두장 정도에 불과해 보입니다. 첫 기도는 주기도문을 풀어서 기도한 기도문입니다. 


* 기도를 읽으며 진정한 겸손을 만나다

이 기도문을 읽는데 마음이 참 따뜻해지고 좋았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탁월하게 경건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책을 통해서, 깊은 신앙을 가진 믿음의 사람의 기도를 읽는 것이 저의 마음을 새롭게 만드는 것을 느낍니다. 특별히 이 기도는, 자비로우신 하나님 앞에 그분의 은혜를 구하는 성도의 간절한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마땅히 구해야 하는 겸손의 태도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는 기도

요즘에 많이 생각하는 것은, 진정한 겸손은 흉내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겉모습은 꾸밀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겸손은 정말로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진정한 겸손은 글로 꾸며낼 수가 없습니다. 글은 사람의 내면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충만하신 하나님, 그분을 신뢰하며 찬양을 영원히 돌린다는 기도의 마지막은 저의 깊은 마음을 터치하고 또 위로를 줍니다. 


* 청교도의 탁월함을 엿보다

책의 뒷편에 보면, 각 기도를 쓴 사람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기도를 쓴 필립 도드리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성공회 사제가 되는 공부를 포기하고 비국교도 아카데미에 진학했다는 부분이 특별히 눈에 들어옵니다. 추가로 살펴보니 그 당시에 국교회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같은 영국의 명문대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청교도 석학들이 직접 사립 기관을 세운 것이고 그것이 '비국교도 아카데미'입니다. 그리고 필립 도드리지는 이러한 비국교도 아카데미 중 하나에서 공부를 하고 이후에 설교자가 된 것입니다. 이 짧은 내용 안에서 많은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믿는 성경적 신앙을 제대로 가질 수 없는 시대적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간절히 구하며 신앙의 삶을 살았던 한 사람의 궤적이 그려집니다. 


* 온 가족이 함께 기도문으로 북클럽을 하다

제가 먼저 책을 읽고 바로 든 생각은, 온 가족이 함께 이 기도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아홉 살 막내도 어려운 단어들을 옆에서 설명해 준다면, 이 정도 영어는 같이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쉬웠기 때문입니다. 

저는 북클럽이 어렵지 않아야 한다고 항상 생각합니다. 물론 이미 제 책 《세계관을 변화시키는 크리스천 북클럽》(세변북)에서 적은 것처럼, 철저한 사전 준비를 통해서 모이는 것도 귀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족끼리 하는 짧은 묵상의 시간 역시 가볍지만 진지한 북클럽으로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려운 책보다는 읽기가 쉬운 책을 선택해서 북클럽을 하는 것을 항상 추천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개인 묵상을 위해서도 유익하지만 북클럽 교제로서도 손색이 없습니다.  

기도문을 한 문단씩 돌아가면서 읽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부분이 제일 마음에 와 닿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첫째와 둘째가 다 좋아했습니다. 각자 기도에 대해서 마음에 나름 와 닿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저도 저의 마음에 가장 와 닿았던 부분,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경외심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 가치 있는 책에 대한 기쁨

이 책은 정말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수준 높은 신앙의 내용을 쉬운 언어로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기도라는 것은 성도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영어가 가능한 분들이라면, 온 가족이 함께 기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탁월한 목회자, 신학자, 혹은 성도의 기도를 읽고 배울 수 있는 것은 큰 특권입니다. 며칠 동안 무료였지만 이제 곧 다시 원래 가격으로 돌아갑니다. 그래도 여전히 가치 있는 책입니다. 기도에 대한 갈급함이 있으시다면, 꼭 한번 번 읽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2024년 7월 14일 일요일

내 영혼에, 상쾌한 빛이 들어오다 - 순전한 기독교의 짧은 부분들에 대한 작은 생각들

 


저는 어렸을 때 부터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도대체 훌륭한 사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물론 훌륭한 사람을 보면서 그에게 찬사를 보내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훌륭한 사람이 만들어지는 그 방법을 알 수 있다면, 저도 꼭 그렇게 되고 싶었습니다 

신학을 공부하고 철이 들면서 그리고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결국 훌륭함은 모방에서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즉, 탁월함을 모방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온전히 소화하는 것이, 훌륭함에 대한 첩경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팀캘러 목사님도 좋아합니다. 팀캘러 목사님은 '21세기의 C. S. 루이스'라고 불리웠습니다. 루이스를 읽고 팀캘러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제가 깜짝 놀란 것은, 그분의 설교 곳곳에 결정적인 부분에서 루이스의 논리와 그의 생각과 글들이 묻어나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팀캘러 목사님의 훌륭함은, 루이스로 부터 만들어진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아마도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 저에게 왜 루이스를 좋아하느냐고 물어보신다면, '단 두문장만 읽어도 저의 영혼에 상쾌한 빛이 비추이기 때문이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책이 많이 있습니다. 저 역시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아쉽게도 그 중에 대부분은 지루했습니다. 무엇인가 힘주어 이야기하는 것 같았지만, 정작 마치 미로를 헤매이는 것처럼 저를 제대로 인도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저에게 루이스는, 아주 짧은 몇 구절만 읽어도 저의 마음을 새롭게 만드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의 책을 읽으면, 심지어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루이스는 다정한 사람입니다. 그의 글과 그의 신앙은 마치 저에게 상쾌한 가을 바람과 같아서, 저의 영혼을 전혀 다른 그 어떤 곳으로 이끌어 갑니다. 그와 함께 거닐다 보니, 하나님의 아름다우심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루이스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고전학과 영문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중세와 르네상스 문학 교수로 섬겼습니다. 그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15세 때에 무신론자가 됩니다. 그러나 신앙 서적과 친구의 영향으로 다시 서서히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31세가 되어, 지적으로 정직한 자세를 가진다면 하나님을 믿을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얻고 진정으로 회심하게 됩니다. 

순전한 기독교는, 제2차 세계대전 시절 평신도와 무신론자들을 위한 라디오 방송에서 그가 발표했던 것을 책으로 엮어낸 것입니다. 루이스 평신도로서 교파를 초월해서 기독교인들이 공통적으로 믿고 있는 것을 다루고, 그러한 믿음의 내용들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충실하게 설명하였습니다.

저는 이십대 초반에 순전한 기독교를 처음 읽었습니다. 물론 그때도 참 좋았지만 역시나 루이스의 글을 충분히 이해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루이스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내면 안에 새로운 깊이를 만들어 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담임 목사님의 안식년 동안 잠시 주일 강단을 섬기면서, 저의 부족한 부분을 절감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앞으로 저의 삶을 다져나갈 방법을 고민하던 중에, 루이스를 아주 천천히 읽기로 결심했습니다. 아쉽게도 이 시대는 속도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저는 반대로 접근하고 싶었습니다. 아주 천천히 다시 새롭게, 기독교 신앙의 탁월한 내용을 저의 영혼 안에 새겨 넣고 싶었습니다.  

순전한 기독교는 전체적으로 네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째로는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옳고 그름이라는 선과 악이라는 개념을 반드시 전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그렇게 발견한 절대 선 앞에서 자신에 대해서 절망하게 될 때에야 결국 하나님을 발견하고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그렇게 하나님을 믿게 된 이들이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하는가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삼위 일체 하나님의 개념을 바탕으로 참된 성도됨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면서, 새로운 생명을 얻은 새 사람으로 적극적으로 살아갈 것을 권면합니다. 

저의 짧은 글 쓰기로는 이 책의 깊이와 감동을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다만 가장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는 것이야 말로 신앙 생활의 원동력을 가져다 준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모태신앙으로 자라서 수도 없이 복음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복음은 어떤 의미에서 매우 단순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단순한 진리를 아는 것과, 이것의 깊이와 충격을 온전히 이해하고 내 삶에 근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런면에서, 루이스 그리고 순전한 기독교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루이스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사실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가치를 온전히 드러내며 동시에 너무나 신선하고 감동적으로 전해주기 때문에 그가 탁월한 신앙인으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루이스가 순전한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자연법에 대한 것은, 기독교를 이해하고 변증하는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겉으로는 절대적인 진리 혹은 법칙을 부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사람들이 행동해야 한다는 본능을 내면에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증명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명확하게 그것을 어기고 있임을 지적하며 인류 전체를 몰아갑니다. 

물론 위의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평범하게는 이렇게 접근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며, 죄인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정도로 논리를 풀어가도 괜찮을 것입니다. 그러나 루이스는, 인간에 대한 철저한 관찰에 기반하여 우주적인 관점으로 인간의 합리성을 존중하면서도,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중요한 이유들에 대해서 설득적으로 논증하고 있고, 바로 이런 부분이 루이스의 탁월함입니다.

최근에 순전한 기독교 천천히 읽기를 반년 만에 끝냈습니다. 다시 책을 열어보니, 책의 거의 대부분이 줄과 메모들로 가득합니다. 이 모든 것을 한편의 글로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만 제가 설교에 인용했던 몇가지 구절 정도, 그리고 저에게 영감을 주었던 몇 부분들을 인용하고 저의 짧은 생각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루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독교는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용서를 약속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회개할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 자신에게 용서가 필요하다고 생각지 않는 사람에게는 기독교가 아무 의미도 가질 수 없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야 말로, 기독교 신앙의 근본을 잘 짚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를 포함한 우리는, 나의 죄성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없이 살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주 거칠게 말하자면, 내가 얼마나 죄인인가를 깨닫는 것이 바로 신앙의 성숙의 척도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사람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가치와 소중함은, 그저 내가 처음에 기독교의 문 안에 발을 들여 놓을 때만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의 평생을 살아가면서 그것의 깊이를 더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첫 순간에 회개를 하고, 그리고 평생 회개를 합니다. 우리는 회개할 수록 용서를 받고, 회개하면서 그리스도를 알아갑니다. 그래서 저는 회개와 기독교를 완전히 결합하여 성경적으로 드러내는 루이스가 참 좋았습니다. 

또 루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탄이 우리 옛 조상들의 머리속에 불어넣어 준 생각은 그들도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 마치 스스로 자신을 창조하기라도 한 양 자존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스스로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있다, 하나님 밖에서 하나님과 상관 없이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죄의 근본이 무엇인가를 잘 드러낸 부분입니다. 죄의 본질은 내가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내가 어떤 도덕적인 잘못을 하는 것을 넘어서서, 혹은 내가 나 중심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넘어서서, 나 자신이 '신'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목적, 방향, 내용 등을 철저하게 내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저는 성도로 또 목회자로서, 이렇게 무섭고 또 무거운 죄에 대한 개념을 항상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왜 이것이 그렇게 중요할까요? 왜냐하면 이러한 루이스의 죄에 대한 설명 혹은 논리는 우리의 성화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성화는 단순히 예배를 열심히 드리거나, 혹은 성경을 열심히 읽는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대적하는 맥락에서의 나는 없고 오직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그것은 나의 삶의 전 존재를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맞추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창조주이시며 왕이신 그 지위를 온전히 회복하시고, 나는 호흡 한번 조차 오직 그분께 모든 것을 맞추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상 우리의 구원에 '나'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존재하시며, 우리는 그분의 극진한 사랑을 받은 자들로 그리고 오직 그분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생의 목적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때문에, 저는 루이스를 좋아합니다.

루이스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적들의 점령 지역, 이것이 현재 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기독교는 합법적인 왕이 이를테면 변장을 한 채 어떻게 이 지역에 상륙했는가에 관한 이야기로서, 우리 또한 이 거대한 파괴 작전에 참여할 것을 촉구합니다. 교회에 가면 동지들의 비밀 무전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들이 우리를 교회에 못 나가게 하려고 그토록 노심초사하는 것입니다. 적은 이 일을 위해 우리의 자만과 게으름과 지적 허영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에 교회의 정체성에 대해서 많은 혼란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마치 교회가 사교 모임인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도 종종 계셨습니다. 현대화 되어 버린 교회에 출석하다 보면, 교회의 정체성이 매우 희미해 지는 듯 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매일 교회에 나오는 목회자인데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루이스의 글을 통해서, 교회의 본질에 대한 상상력이 가득한 그리고 가슴 벅찬 묘사를 만납니다. 우리는 일종의 비밀 결사대와 같습니다. 우리는 변장한 왕을 모시고 있고 그분은 반드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비밀 무전을 통해서 우리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우리의 미래를 가늠하면서 그것을 가슴에 품고 살아갑니다. 

저는 교회에 대한 평범한 설명을 싫어합니다. 그저 무감각하게 교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마음이 많이 상합니다. 그러나 루이스의 설명 속에서 새로운 기쁨을 발견합니다. 성도에게 주어진 교회 생활 이라는 것이 이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는 진실한 신앙의 동료이며 저의 친구입니다. 그를 통해 교회에 대한 참된 영적인 감각과 기쁨이 제 안에 살아나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루이스를 좋아합니다.

루이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사람이 기도하고 있는 대상-그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입니다. 또한 그가 기도하도록 밀어주고 있는 주체-원동력-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이 사람이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길 내지는 다리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한 평범한 사람이 기도하고 있는 평범한 작은 침실 안에서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삼중적인 생명 전체가 실제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사람은 좀더 높은 종류의 생명-제 표현대로라면 조에, 또는 영적인 생명-속으로 들어 올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 안에 이끌려 들어가고 있는 동시에, 여전히 자기 자신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기도에 대한 루이스의 이 설명을 읽을 때 마다, 마음에 전율합니다. 물론 기도 열심히 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신다 라는 아주 단순한 표현도 진리입니다. 그러나, 루이스는 다릅니다. 저는 다른 그 어떤 기도에 대한 설명보다 루이스의 설명을 제일 좋아합니다. 루이스는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기도의 목표, 기도의 원동력, 그리고 기도의 길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안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이보다 더 탁월하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기도는 너무나 아름다운 것입니다. 어쩌면 세상이 거들떠 보지도 않는 연약한 우리들이, 우리의 거칠고 아픈 손을 모아 주님 앞에 기도할 때에, 그것이 영적으로 얼마나 충격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고 또 얼마나 아름답게 영원에 맞닿아 있는 것인지를 그는 보여줍니다. 마치 보이지 않는 하늘을 활짝 열어 젖히고 그 비밀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저는 루이스를 읽을 때 마다 이런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루이스를 좋아합니다.

루이스는 그의 책의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을 포기하십시오. 그러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것입니다. 자기 새명을 버리십시오. 그러면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찾으면 결국 미움과 외로움과 절망과 분노와 파멸과 쇠퇴만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찾으면 그를 만날 것이며, 그와 함께 모든 것을 얻을 것입니다."

루이스는 불신자들에게, 그리고 어쩌면 신앙의 생명력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저 신앙의 논리나 멋들어진 말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 자체가 지금 그리고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하는 우리의 실재적인 운명입니다. 그래서 저는 루이스의 책을 그저 논리로 읽지 않습니다. 이 모든 내용이 저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저는 한없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루이스가 이야기한 것처럼 단 하나도 남기지 않고 저의 모든 것을 포기하기를,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찾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저의 모든 것이 되는 그 궁극적인 상태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렇게 저를 결단하게 만들고 바로 잡아 주기 때문에 저는 루이스를 참 좋아합니다. 

글을 맺어야겠습니다. 지금 저의 기분은, 마치 보석이 가득 담긴 보물 상자를 품에 안고서는, 작은 손에 그 보물 중에 몇개를 잡고서 꺼내 자랑하고 있는 어린아이 같습니다. 너무 반짝이고 행복한데, 이 보물을 다 설명할 재주가 저에게 없어서 한 없이 아쉬울 뿐입니다. 

루이스를 읽은 저의 벅찬 마음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어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짧은 글을 통해서 루이스를 잠시 접하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만족합니다. 

언젠가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이 글을 읽으신 누군가와, 선선하고 아름다운 날에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루이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마음이 하나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 저의 인생에 가장 큰 기쁨일 것입니다.

2022년 10월 4일 화요일

*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20) - 어른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존 헤네시) / 나의 한계, 그리고 나의 가능성

 



저는 가급적 저에 대한 평가를 냉정하게 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정확한 평가가 없이는 발전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항상 제 마음에는 제 자신을 발전시켜야 하는 압박이 있는 듯 합니다. 리더로서의 책임감을 항상 느끼고 있고, 그것이 얼마나 크고 무겁고 또 중요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남들보다 사리사욕이 별로 없는 편이라고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나서 교회 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고 교회를 섬기면서 제 자신의 욕심을 추구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교만한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아시는 부분입니다. 제가 손해 보고 제가 더 헌신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것을 저의 마땅한 삶의 목표로 삼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최근의 어려운 일들을 겪으면서, 저의 리더십과 목회자로서의 태도, 그리고 저의 내면을 다시 한번 새롭게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내면을 다시 한번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무의식에 관한 책을 계속 읽고 있는 것이 도움이 되는 듯 합니다. 예전에는 더 들어가지 못했던, 정확하게 말하면 더 발견하지 못했던 저의 내면으로 더 깊이 들어가서, 저의 문제와 저의 생각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 있습니다. 

1년 정도 전에 존 헤네시의 "어른은 어떻게 성장하는가"를 읽고 참 좋았습니다. 사실 제목은 너무 불만입니다. 아니 어떻게 LEADING MATTERS를 이렇게 바꾸었나 싶습니다. :) 혹 다른 분들이 제목 때문에 이 책의 가치를 놓칠까봐 염려가 될 정도입니다. 
 
다양한 리더십에 대한 책들을 읽었지만 그 중에서 이 책이 가장 탁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저는 피터 드러커를 제일 좋아하지만, 피터 드러커는 마치 저의 앞에서 먼 목표를 향해 손가락으로 리더십의 방향을 보여주는 사람이라면, 존 헤네시는 저와 함께 길을 걸어가는 동반자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치 아버지를 대하는 느낌입니다. 글이 따뜻해서 좋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두번째 정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교수로 또 총장으로 사업가로 다양한 방향에서 리더십을 경험하고 실천한 사람입니다. 매우 독특하고 또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대학 총장이라는 위치는 교회의 담임 목사의 위치와 매우 유사하다고 느꼈습니다. 저자는 본인이 리더십이 부족하다고 항상 느꼈던 사람이고, 다른 이들로 부터 배우며 겸손하게 그 길을 걸어가기를 힘썼고 그리고 결과적으로 탁월한 열매를 맺은 아름다운 리더입니다. 

제가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절실하게 깨달은 것은, "리더의 책임감"의 중요성입니다. 그런데 그 책임감과 봉사의 정신은, "평범한 것을 뛰어 넘는 어떤 것"입니다. 평범함을 넘어서는 "가장 숭고한 수준의 책임감"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것은 성경적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리더가 갖추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는 것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결국 하나님께서 저를 "가장 숭고한 리더십"으로 밀어 붙이신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요즘에 하나님께서 저를 밀어 붙이신다는 느낌을 굉장히 강하게 받습니다. 자꾸 어떤 메시지를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주십니다. 마음에 많이 부담이 되는데, 부인할 수 없을만큼 확신있게 말씀하십니다. 거절할 수 없는 부르심입니다. 

제가 평가할 때에 저는 "그럴 듯 한 목사"입니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목사로서 크게 흠이 있거나 큰 문제 없이 지금까지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저에게 주어진 사명의 궁극적인 모습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럴 듯 한 목사로 사는 것이 지금까지 저의 한계였다면, 이제는 저의 새로운 가능성이 눈 앞에 놓여져 있습니다. 

마치, 피라미드를 뒤집어서 정점이자 맨 아래에 있는 것을 리더십의 궁극적인 모습으로 저자가 제시하는 것 처럼, 저의 목회자로서의 리더십이 바로 그 모습이어야 하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처럼 그 자리에서 죽는 것입니다. 한 알의 썩는 밀이 되는 것입니다. 그저 그런 목사에서, 가장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는 자로 완전히 변모되어서 그것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리더로서 잘 섬기기 위해서 고민하는 저자는, 자신에게 맡겨진 자리와 임무에 대하여 책임감을 느낍니다. 많은 내용들이 책임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한 인간이 책임감을 느낀다는 것 자체를 매우 높게 평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드신 세상이 오히려 자신을 반역할 때에도, 그분 자신이 도리어 책임감을 가지시고 모든 것을 그분의 능력으로 회복시키십니다. 그런 면에서 세상의 모든 사람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과 주어진 일에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 그리고 그렇지 못한 사람입니다. 책임감을 가진다는 것은 한나님을 닮은 인간으로서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진정한 리더십은 가장 낮은 위치로 내려가 자기 자신 혹은 자신이 받아야 하는 그 어떤 환대 조차 잊어버리고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리더십은,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심리의 상태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진정한 리더십은, 결국 공동체성을 깨닫는 것과 공동체의 온전한 하나됨이라는 모습으로 발현됩니다. 이러한 분명한 깨달음과 방향이 저의 마음에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한계를 보여주시고, 또 저의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셨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매우 마음이 기쁩니다. 그러면서 마음이 또 매우 무겁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길이 매우 어려운 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혼자 기도할 때에, "아버지 하나님, 제가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을 보여주세요" 라고 자주 기도합니다. 단순히 미래적인 방향 뿐 아니라, 제가 인간으로 또 목회자로 걸어가야 하는 길을 더 확실히 알고 걸어가고 싶었기 때문입니. 그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리더의 길입니다. 저는 저의 앞 길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은 이미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모든 길을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선하게 주님의 능력으로 이끌어주시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 "어른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크리스천 북클럽 인도자용 자료모음
https://readingchristianbookclub.blogspot.com/2023/10/blog-post.html

*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전체 글 모음 / 당신을 변화시키기 위한 "가장 아름다운 길"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3/blog-post_6.html

2022년 8월 3일 수요일

"기본을 꾸준하게 지키는 크리스천"이 되기 위하여 by 어떻게 일할 것인가

 







목회에 대한 여러가지 책들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목회에 답이 없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물론, 충분한 방향은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목회를 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각론으로 들어가게 되면 수 많은 방향성이 존재합니다.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는 항상 고민입니다. 

마흔이 넘어가니 "진짜"를 찾게 됩니다. 삶은 너무나 짧기 때문입니다. 항상 긴장감을 느낍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셔도 겨우 몇십년 정도를 더 교회를 섬길 뿐인데, 진심을 잃어버린 내용을 마음에 품을 수는 없습니다.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 그리고 그것을 붙들고 살아내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진짜이며 그들의 책이 진짜입니다.

저는 어떻게 일할 것인가의 저자인 아툴 가완디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이분의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분은 진짜구나. 마치 이국종 교수의 골든 아워를 읽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습니다. 두분다 탁월한 의사이고,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도전합니다. 

의사들의 고민은 목회자의 고민과 맞닿아 있습니다. 비록 영혼의 생명이 아니다 하더라도, 오히려 이들이 하는 일이 목회의 본질과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국종 교수의 책도, 또 아툴 가완디의 책도, 목회자로서 배울점은 너무나 많습니다. 

제가 위에 인용한 것은 그 중의 일부분입니다. 저자는 첨단으로 무장한 병원에서 실제로 노력했던 것이 "아주 기본적인 손 씻기"라고 설명합니다. 과거에 산모들의 치명적인 사망을 일으킨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아주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 있어서 두가지 큰 장벽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그 원인을 진짜 문제의 원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감염을 일으킨다고 또 다른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원인들이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원인을 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더 어렵습니다. 원인을 안다고 다 극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훈련된 의료진들이라 하더라도 그들을 계몽하고 변화시키기 위한 계속적인 노력이 있었다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저는 이 내용을 보면서, 이건 마치 성도의 신앙 생활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신앙이 언젠가 부터 거창해 졌습니다. 위대한 신학자의 책을 몇권 이상은 기본적으로 읽고, 예배를 일주일에 몇번 이상 드리고, 기도를 몇시간 해야만 하는 어떤 것이 신앙이 되었습니다. 남들 앞에 그래도 내가 하는 일이 내세울만한 것이 되어야 신앙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여러가지 훈련 등을 받아야만, 그제서야 당당하게 성도라는 이름을 부여쥘 수 있는 그런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 저는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신앙은, 병원에서의 손 씻기와 비슷합니다. 거창한 것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것"에 힘을 쓰는 것입니다. 기본적인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환경 속에서, 기본적인 것을 포기하지 않고 해내는 것이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단기간에 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평생에 걸쳐해 인내심을 가지고 해내는 것이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진실한 기도, 진실한 성경 읽기, 하루를 돌아보며 말씀 앞에 나를 비춰보는 것, 나의 삶 속에서 작은 친절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도 힘쓰는 것, 열린 마음으로 신앙의 선배들의 조언과 삶을 읽어내고 그것을 따라해 보는 것, 그런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요즘에 저의 꿈은, 굉장히 작아지고 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초라해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꿈들이 굉장히 단단해지고 있습니다. 더 이상 흔드릴 수 없는 어떤 확신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제 자신부터 손 씻기와 같은 신앙 생활을 포기하지 않고 매일 매일 꾸준하게 해내기를 원합니다. 

2022년 7월 25일 월요일

"창의적인 크리스천"이 되기 위하여 by 1등의 습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인간은 비록 질적으로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우리의 영혼 가운데 소유하고 있습니다. 정직하게 이것을 바라본다면, 기적 그 자체입니다.

학위를 위해서 공부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새로운 어떤 것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부담이었습니다. 논문을 써서 졸업하는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 결국 원하는 공부까지 마무리했지만, 제 마음 한켠에는, 저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습니다. 물론 교수님들은 만족하셔서 학위를 취득했지만, 궁극적으로 어떤 것이 가장 탁월한 공부인가에 대한 궁금함은 언제나 마음 속에 있었습니다. 

"1등의 습관"이라는 책은 자기 계발의 백과 사전과 같은 책입니다. 딱 어떤 한마디로 종합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모든 내용이 의미가 있고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것들로 충만합니다. 그 중에서 저는 "창의성"에 대한 부분에서 큰 통찰력을 얻었습니다.

저자는 창의성이라는 것을 설명할 때에, "아주 독창적인 어떤 것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려진 것들, 혹은 이질적인 영역에 있는 것을 결합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좋았습니다. 

저의 박사 학위 논문은 크리스천 북클럽에 대한 기본적인 이론을 세가지 영역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기독교 세계관, 북클럽, 그리고 기독교 성인 교육입니다. 언뜻 보면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 이 세가지 영역에서 저는 끊을 수 없는 연관성을 발견했고 이것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북클럽에 대한 메뉴얼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제 마음에 있었던 것은, 이러한 방식으로 접근한 사람이 북클럽의 연구 분야에서 한명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저의 논문이 오래 걸렸던 이유입니다. 완전히 새롭게 틀을 준비하고, 누구도 시도한적 없었던 부분의 연결을 하여서 결국 논문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런데 1등의 습관을 보니 마음에 조금은 안심이 됩니다. 왜냐하면 결국 제가 사용했던 방법론 자체가, 창의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핵심적인 방법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가장 의미있는 공부의 과정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창의성이라는 저자의 설명을 통하여 제가 더 깊이 생각하게 된 것은, "바람직한 크리스천의 신앙 생활"의 의미입니다. 저자에게 배운 것을 바로 적용한 것입니다. 어쩌면 저자는 단지 자기 계발서의 맥락에서 자신의 지혜를 저에게 나눈 것이지만, 저는 저자의 제안에 따라서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일반적인 창의성의 개념을, 좋은 신앙 생활과 연결해 본 것 입니다.

보통 목회자들과 성도님들의 마음 가운데, 좋은 크리스천에 대하여 정의할 때에 "남이 발견하지 못한 말씀의 특별한 의미를 발견한 사람"이라는 기준이 있는 듯 합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설교자가 "내가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어떤 탁월한 통찰력"을 제시하면 그 사람은 훌륭한 설교자입니다. 혹은 어떤 성도님이 "성경 해석에 어떤 특별한 능력을 가지면" 그 사람은 훌륭한 성도라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지적인 영역이며, 또한 성경이라는 영역에 상당히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목회를 하면서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그 원래 뜻을 잘 이해하고 설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청중이 지루하지 않게 탁월한 통찰력, 시대를 꽤 뚫는 지혜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좋은 설교는 매우 새롭게 들려야 마땅하며, 굉장한 통찰과 새로운 생각을 불러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 자체가 기독교 신앙의 목표는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해 아래 새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말입니다. 사실상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성경에 대한 해석이 충분히 발전되어서 출판되었습니다. 그런데 때론 우리가 너무 어떤 통찰력과 천재적인 번뜩임에만 매달리는 것은 아닌가 염려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 생활의 많은 에너지를 거기에 쏟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재쳐 놓고 공부만 하는 것을 마치 신앙 생활의 궁극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에 "1등의 습관"을 보면서, 오히려 성도의 삶이라는 것은, "창의적인 도전"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성경을 통해서 완전한 진리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충분한 성경에 대한 해석도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그것을 실현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느낍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의 삶이라는 것은, 우리가 느끼는 성경과 삶의 괴리를 최대한 줄여가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우리의 삶의 다양한 영역들을 신앙적으로 하나로 연결해가는 노력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교회와 학교, 교회와 직장, 교회와 가정, 신앙과 행동, 신앙과 정치, 신앙과 사고 등등을 꾸준하게 공부해나가면서 연결하는 것, 그리고 내가 배운 것들은 영역을 넘어서서 계속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성장의 길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충분히 공부해가면서, 오히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적용의 부분입니다. 적용이라는 것은 결국, 다양한 영역의 연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던 곳들이 하나님의 지혜를 통하여서 연결이 되고. 풍성해진 우리의 삶을 통해서 오직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는 것"이 크리스천의 진정한 창의력입니다.  

그런 면에서 크리스천 북클럽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북클럽은 성경 공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북클럽은 다양한 영역을 매우 밀도있게 연결하는 자리입니다. 자신의 삶을 성경의 진리와 책의 내용과 비춰보면서, 다양한 영역들을 연결해서 생각하고 고민하게 되는 장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어떤 내용 혹은 주제를 다른 이들과 심도 있게 나누면서, 나라는 한계를 뛰어 넘어서 창의성이 풍성하게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만약 신앙 생활의 어떤 정체기를 겪고 계시다면,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전환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삶의 다양한 영역들, 혹은 성경과 관계 없다고 생각하던 영역들을 신앙과 연결해서 고민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할수만 있다면, 주변의 크리스천들과 만남 속에서 북클럽을 함께 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2022년 1월 15일 토요일

리딩 크리스천의 "책 속의 한 문장" 시리즈를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도전을 좋아합니다. 어떤 것이라도 도전하는 것은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고, 하나님께서 너무나 창조적으로 세상을 만드시며 지금도 섭리하고 계신 것 처럼, 저 역시 그렇게 창조적으로 살아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는 독서를 너무 좋아합니다. 물론 저보다 많은 책들을 읽고 좋아하는 분들이 있지만, 저 역시 청년 시절부터 독서와 북클럽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목회의 현실에서, 성도님들을 어떻게 양육하는 것이 좋을까 늘 고민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양서들을 읽고 함께 나누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삶을 놓고 고민하며 서로 격려하며 서로가 서로를 도와야 합니다. 

하지만 아주 극 소수의 성도님들만이 책을 가까이 하십니다. 그리고 혼자서 책을 읽는 수준에 그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책이든지 성경적인 관점에서 평가하고 적용점을 이끌어낸다는 위대한 도전은, 마치 도저히 이룰 수 없는 목표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도전합니다. 저의 좋은 경험들을 함께 나누고 싶기 때문입니다. 매일 아침 독서를 하면서, 생각이 깨어나는 기쁨을 누립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들을 누립니다. 바로 이것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래서 가장 쉬운 형태로, 모두가 접할 수 있는 수준의 내용으로 도전해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매일 제가 다양하게 읽는 책들 속에서, 그 책을 읽으면서 제가 고민하고 생각했던 것들을 영상으로 제작하는 것입니다. 

책 한권을 요약하거나 압축해서 영상을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그것은 제 능력을 벗어나는 일입니다. 다만, 짧은 내용이라도 성도님들이 실제적으로 생각해 볼만한, 혹은 임팩트를 줄 만한 내용들을 선별해서 만들 생각입니다. 한 권에 하나의 영상이 될 수도 있고, 한 권에 여러 영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타이틀은 "책 속의 한 문장"으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좀 더 효율적으로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제 자신을 완전히 빼고 AI 기술을 사용하여서 가상 앵커를 사용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 당신을 대신하여 AI가 보여주게 하라! 온에어 스튜디오 베타 테스터 사용기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1/ai.html

어떤 식으로 전체 구조를 잡을까 고민했습니다. 먼저 인트로는 실질적인 고민들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도움이 될만한 책의 한 부분을 등장시킵니다. 철저히 문제 중심 혹은 적용 중심적인 접근입니다. 책의 저자의 지혜를 빌려서 실생활의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저자가 제시하는 중요한 논점을 기독교적인 관점으로 평가하고 결단해 보는 것입니다. 

기독교적인 평가가 너무나 중요해서, 성경구절을 바로 인용해서 넣을까도 고민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인용하면서 성경 공부처럼 보여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저의 글들에는 충분히 성경들을 많이 인용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책 속의 한 문장"은 책 자체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춘 포멧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당분간은 성경 자체를 인용하기 보다는, 전반적인 성경적인 관점을 적용하는 방향으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제 개인 블로그와 리딩 크리스천 네이버 까페는 분리해서 운영할 예정입니다. 책 속의 한 문장 시리즈는 네이버 까페에 간단한 글과 함께 계속적으로 업로드 됩니다. 

* 삶의 고난이 몰려올 때 (리딩 크리스천, 책 속의 한 문장 / 천로역정 (1)
https://cafe.naver.com/christianbookclub/8

* 확신에 찬 겸손함으로 살아가라 (리딩 크리스천, 책 속의 한 문장 / 싱크어게인 (1)
https://cafe.naver.com/christianbookclub/9

* 안정 속에서 끊임없이 도전하라 (리딩 크리스천, 책 속의 한 문장 / 룬샷 (1)
https://cafe.naver.com/christianbookclub/10

제가 읽은 탁월한 저자들의 공통적인 조언은, 끊임없이 자기를 발전시킬 수 있는 틀을 만들어 내라는 것입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바로 이 "책 속의 한 문장"이, 제 자신을 발전시키며 성도님들을 돕는 도구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이 여정 속에서, 의미있는 어떤 것에 지속적으로 제 삶의 모든 것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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