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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1일 화요일

나의 모든 것을 빚어내신 부모님께 감사드리며

 

아주 오랜만에 부모님께서 미국에 방문하셨습니다. 짧은 두주의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목회 일정을 다 소화하면서 부모님과 함께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순간 순간이 참 좋았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져서 전화를 마음껏 할 수 있어도, 저의 귀에 직접 들리는 부모님의 목소리와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함께 걷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하나님께서 저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좋았던 것은 두분의 한결같은 신앙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그것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는데, 이제 저도 나이가 들고 많은 분들을 대하면서, 세월을 이겨내며 순수한 신앙을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깨달았습니다. 

부모님의 따뜻한 마음과 신실한 마음이 저에게 너무나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언제나 그렇게 생각하지만, 부모님처럼 신실하게 살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제 인생에 가장 큰 성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그 나이대에 충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있는 듯 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 크고, 그것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고 기억하지만 저는 지금까지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이제서야 저의 부모님을 보니 부모님의 영향력이 더욱 그렇게 크게 느껴집니다. 

저의 말투, 성정, 사고 방식, 신앙의 색깔, 목회의 열심 등등 제가 가진 그 어떤 것도 부모님을 벗어난 것이 없습니다. 저의 부모님이 훌륭하신 만큼 그나마 제가 이정도라도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아직 저는 멀었고, 여전히 부모님을 잘 따라가야 합니다. 

젊은 시절 저의 아버지를 기억하면, 항상 크고 넓은 어깨가 좋았습니다. 아버지께 기대면 모든 걱정이 다 사라진다고 느꼈습니다. 이번에도 걱정 되는 것들을 많이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막상 두 주가 지나고 나니 한편으로는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아버지의 어려운 점들을 더 많이 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젊은 시절 저의 어머니는 여전도사님으로 그리고 목사로 수 많은 가정들을 누비고 다니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허리가 안 좋으셔서 느린 걸음으로 겨우 삼십분을 걸으십니다. 지나치게 잠을 줄이고 사역을 하시다 보니 옆에서 제가 봐도 기억력이 많이 약해지셨습니다. 아들로서는 마음이 너무 아프지만, 오직 하나님께서 어머니의 삶을 기뻐하시고 모든 것을 선하게 갚으실 것을 믿고 기대합니다. 

나이가 더 들면서, 세상이 많이 새롭게 보입니다. 그 어떤 것보다 관계가 중요하고 가족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이제서야 더 절실하게 합니다. 기도할 때 마다 기도하지만, 부모님의 여생을 위해서 더 열심히 기도해야겠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저를 섬겨주신 두분의 귀한 사랑에 감사하고 조금이라도 더 효도를 해야겠습니다.

2026년 8월 3일 월요일

목회자의 품위, 성도의 품위 / In a sunny spot - Amane



인생이 너무 짧아서 소스라칠 정도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또 흘러서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 가끔은 꿈처럼 느껴집니다. 

어떤 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설교를 참 잘했다는 이야기, 그런데 그분은 성품은 좋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그 설교를 그리워한다는 뉘앙스를 받았습니다. 

요즘에 생각하는 것은 양심의 문제입니다. 짧은 인생을 다른 사람 앞에서 인정받는 것이 참 중요하겠지만, 목회자라면 설교를 잘하는 것이 참 중요하겠지만, 그것이 목회자의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목회자는 기능인이 아닙니다. 만약에 누군가로부터 당신은 설교는 참 잘하는데 성품이 문제가 있다는 평을 듣게 되었다면, 사실 그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더 큰 문제일 것입니다. 

제가 살아가는 삶 그리고 컨텍스트를 곰곰이 들여다보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아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장 큰 유혹은, 거짓에 빠지는 것입니다. 위선적으로 행동하는 것이고,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가면서 동화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생이 짧아서 참 행복합니다. 크리스마스로 계산하면 참 편리합니다. 그저 주님이 허락해 주신다고 해도 그저 수십 번 정도입니다. 솔직히 빨리 왔으면 좋겠고, 아마 그날이 바로 앞에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들의 인정도, 그 안에서 누리는 기쁨과 환희도, 무엇인가 많이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성취감도 다 잊혀질 것들입니다. 

지난 시간이 너무 힘들어서 눈물을 많이 흘렸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저를 위로하신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감사했습니다. 지금 경험하는 모든 것들도, 아마 십년 후 쯤에는 아무 기억도 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에 많이 생각하는 것은, '품위' 입니다. 속이지 않는 것, 다른 사람을 착취하지 않는 것, 내가 가진 최소한의 양심과 신앙을 지키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않는 것,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것 그런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한마디로 모으자면, 품위입니다. 

과정이 부끄럽지 않은 성도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아주 어두운 세상에서 혹은 교회에서, 품위를 지킬 수 있는 목회자 성도만 많이 있어도 한결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문제입니다. 우리는 모두 홀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고, 그분 앞에서 평가받게 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큰 수치를 당할 것이고, 어떤 이들은 그 모든 괴로움을 다 잊게 할 위로와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비관론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많이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래도 솔직한 마음에 많은 부분들이 비관적입니다. 한걸음 물러서도 답답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품위를 지키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 목회자로서 저의 자존심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예와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판단하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조금이라도 좋게 보신다면, 저는 그것으로 족합니다. 

2026년 6월 29일 월요일

온건한 칼빈주의자의 현실적인 영어 훈련법 (feat. 릭 워렌부터 존 파이퍼까지)

 


* '교만'은 누구에게나 숨어 있다

교만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버드 자존감 수업'을 읽으면서 그 부분을 잘 짚어낸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하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굉장히 탁월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지나친 자신감을 가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제가 노력하는 것 중에 하나는, 스스로 착각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나 정도면 괜찮지'라는 생각 자체를 떨쳐내기 위해서 참 많이 노력합니다. 특히 목회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목회는 어떤 작은 부분을 잘 알고 익히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넓은 것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어렵습니다. 그런 면에서 공부는 끝이 없고 틈나는 대로 끊임없이 제 자신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 목회는 '큰 그림'이 중요하다

요즘에 많이 생각하는 것은 '큰 그림'입니다. 인생과 신학에서 어떤 한 부분을 잘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큰 그림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참 중요해 보입니다. 특히 설교를 하면서 그것을 많이 느낍니다. 성경에 대한 주해는 단어, 구절, 문장을 이해하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나 사실 주해의 완성은 성경과 인생 전체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설교가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결심하고 실천하는 것 중에 하나는, 큰 그림을 보여주는 책과 아티클을 영어로 공부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목회를 하기 때문에, 두 가지가 함께 필요합니다. 제 개인적인 목표는 3년 정도 안에 영어로 성경 공부 클래스 혹은 북클럽을 완전히 인도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도 있지만,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확고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반드시 그때가 올 것인데, 저는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 어떻게 큰 그림을 효율적으로 갖출 것인가? 

중요한 것은, 저는 시간과 에너지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담임목사, 아빠, 남편, 이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실적인 목표를 세웠습니다. 

첫째로, 목회의 혹은 신앙의 큰 그림을 보여줄 수 있는 책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장 고급스러운 책이 아니라, 실제로 목회에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의 내용과 영어를 쓰는 책을 고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저는 루이스의 책은 참 좋아하지만, 영어로 읽지는 않습니다. 현재 저의 수준에서는 너무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냉철하게 보면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저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신학적인 내용을 평신도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가르치고 모임을 인도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수준에 맞춰서 공부해야 합니다. 

둘째로, 일단 무조건 영어로 소리 내어 읽는 것입니다. 듣기 공부를 따로 할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Reading과 Listening을 동시에 훈련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소리 내어 읽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마지막으로, 정한 책을 소리 내어 읽고 공부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다양한 신학책을 영어로 읽는 것보다는, 저에게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을 반복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내가 생각하는 나에게 적합한 세 가지 자료

그래서 고른 것이 세 가지 자료입니다. 하나는 릭 워렌 목사님의 목적이 이끄는 삶, 그리고 Glorifying and Enjoying God: 52 Devotions through the Westminster Shorter Catechism, 마지막으로 존 파이퍼 목사님의 Daily Devotional인 SolidJoys입니다. 


* 목적이 이끄는 삶

저는 모든 목회와 신학은 어떤 스펙트럼 안에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스스로를 온건한 칼빈주의자라고 평가합니다. 성경과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고, 칼빈주의 5대 교리를 완벽하게 지지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저와 다른 입장에 있는 분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고,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야 한다는 입장에 서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릭워렌 목사님의 책은, 비록 완벽한 칼빈주의 입장은 아니지만 복음주의 관점에서 쉽게 쓰인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사용한 영어 자체가 이해하기 쉽고 또 매력적입니다. 또한 기독교 신앙과 삶이 무엇인가를 균형 있게 쓰기 위해서 애를 썼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쉬운 점은, 대부분의 성경 인용이 현대적 번역이라는 것이고, 심지어 약간 억지로 인용한 부분들도 종종 보인다는 것입니다. 다만 저의 입장에서는, 실제로 제가 성경 공부 인도 때에 사용할 수 있는 쉬운 문장과 표현들을 익히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직관적인 신앙의 언어를 배워야 하기 때문에, 이 책이 큰 유익이 됩니다.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묵상

이 책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에 대한 묵상집입니다. 이 책의 강점은 개혁주의 신학의 정수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약점은 상당히 지루하다는 것입니다. 책 내용 자체는 탁월하지만, 묵상집임에도 불구하고 딱딱한 언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목적이 이끄는 삶과는 반대의 위치에 서 있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개혁주의의 신학을 계속 익히고 확인하는 좋은 자료이고, 또 그나마 쉬운 언어로 개혁주의 신학을 설명한 책이라는 점에서는 계속 읽고 훈련할 수 있는 좋은 교재가 됩니다. 제 마음을 개혁주의 신학으로 계속 새롭게 하면서, 동시에 좀 더 일반 성도님들에게 친화적인 언어를 익힐 수 있는 교재입니다. 

* Glorifying and Enjoying God:
52 Devotions through the Westminster Shorter Catechism

https://www.logos.com/product/370324/glorifying-and-enjoying-god-52-devotions-through-the-westminster-shorter-catechism



* 존파이퍼의 매일 묵상 

마지막으로 존파이퍼 목사님의 Daily Devotional입니다. 어쩌면 이 자료는 , 위의 두 책의 딱 중간 입장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신학적 입장은 개혁주의이지만, 최대한 쉬운 언어로 그리고 삶에 직접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제가 영어로 강의하고 가르칠 때에, 이 정도 수준에서 설명하고 가르치고 그 시간을 채울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성공일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존 파이퍼 목사님의 글은 제가 평생 가까이 하고 읽어야 하는 자료입니다. 이제는 가급적 매일 읽는 것으로 결정했고, 그분의 신학적 언어적인 논리와 뉘앙스를 온전히 저의 것으로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 목회와 영어 가운데 열매가 있는 미래를 기대하며 

오늘도 세 가지 자료를 한 챕터 정도씩 소리 내어서 읽고 필요한 부분들을 추가로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이 참 좋았습니다. 현재 저의 수준에서 한 챕터 정도씩 읽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부지런히 하면 한 시간 정도면 충분합니다. 

각 자료가 강점과 약점이 존재하지만, 세 가지가 하나로 시너지를 이루고 목회적인 면에서 또 영어 훈련이라는 점에서 큰 유익을 주었습니다. 바라기는 저의 훈련이 헛되지 않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는데, 그리고 실제적인 저의 미래 목회를 열어 가는 부분에서도 열매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2026년 6월 18일 목요일

내가 떠난 당신의 자리 / The Only One - Lionel Richie

 


목회로 교회를 섬긴 지 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카톡방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거의 10년 만에, 더 이상 쓰지 않는 카톡방들을 정리했습니다. 

현재에 집중하기도 벅차기 때문에, 과거를 종종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만났던 모든 분들을 다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나마 좋았던 인연들과 추억들을 마음에 품고 살아갑니다. 

수많은 카톡방을 정리하면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그저 몇 글자에 불과한 카톡의 메시지들이지만, 단지 그 메시지를 읽는 것만으로도 많은 분들에 대한 감정이 되살아났습니다. 

목회는 다양한 분들을 만나는 것이고, 또 그분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따뜻한 분도 계시고, 차가운 분도 계시고, 목회자의 연락 자체를 거북하게 여기는 분도 계셨습니다. 친절한 언어로 대해 주시는 분도 계셨고, 냉랭한 언어로 대하는 분도 계셨고, 갑자기 연락을 끊어 진 분도 계셨습니다. 참 많은 분들을 만나고 섬겼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목회자로서의 중요한 훈련 중에 하나는, 감정을 지나치게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정보다 앞서는 것이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깊은 한켠에 아쉬운 마음은 종종 있습니다. 당연히 본인의 상황이 여의치 않기 때문에 그렇게 반응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이 때로는 쓸쓸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더 소중합니다.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났지만, 따뜻하게 대해 준 분들의 글을 읽으니 제 마음도 다시 행복해졌습니다. 저에게 보여주셨던 배려가 참 좋았습니다. 그때에도 좋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더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저를 떠난 많은 분들의 남겨진 자리를 지켜보면서, 제가 떠난 그 자리를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끼실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제가 세상의 모든 친절을 다 가지지는 못했지만, 저를 대하는 분들의 마음에 아주 작은 배려라도 느껴지면 좋겠습니다. 고되고 힘든 인생의 길에 잠시 스쳐 지나가는 만남이라도, 저의 따뜻한 한마디가 그분의 마음에 남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아마 그것이, 주님께서 저에게 원하시는 참된 목회일 것입니다.

2026년 6월 1일 월요일

비우고 또 채우다 / Mientras Duermes · The Velvet Label

 


주말이 지나고 주일의 사역까지 마무리하고 나면, 어쩔 수 없이 몸의 한 공간이 빈 것처럼 느껴집니다. 끊임없이 말을 하고 목회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살피고 나면 고갈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월요일 오전 시간을 좋아합니다. 잠시 여유를 가지고 저의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새로운 Panera에 들렸습니다. 집에서 조금 떨어져 있지만 훨씬 아늑한 분위기입니다. 커피를 마시면서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글을 씁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참 행복한 시간이고, 오롯이 저를 채우는 시간입니다.

기도 노트를 꺼내어서 기도를 하고 다시 한 번 저를 돌아봅니다. 한편으로 삶은 단조롭지만, 그러나 기도 안에 그리고 새로운 도전 안에 삶은 언제나 새로워집니다. 성도님들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생각나는데로 카톡으로 안부 연락을 드렸습니다.  

항상 여유로울 수는 없지만, 밸런스가 중요한 듯 합니다. 분히 쏟아내었다면 또 충분히 채워야 합니다. 그것이 저의 삶을 유지하고 또 목회를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호흡을 놓치지 않기를 원합니다. 꾸준하게 이어지는 그리고 좋은 목회로 감당할 수 있기를 하나님께 다시 한 번 기도합니다. 

2026년 1월 18일 일요일

나의 설교가, 나의 것이 되기까지 / How Could I Ask for More - Cindy Morgan

 


예전에 한 성도님께서, 제가 아닌 다른 목회자의 설교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하신 것을 들었습니다. "정목사님, 이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 정말 제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참 부러웠습니다. "아니 얼마나 그분의 설교가 감동이 되면 나한테까지 이렇게 이야기하시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성도가 이런 마음이 들 수 있도록 설교 할 수 있을까?"라는 진지한 질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좋은 설교란 무엇일까요? 혹은 설교를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어떤 설교가 성도님들에게 감동이 될까요? 아주 어려운 질문이기도하고, 한편으로는 너무나 중요한 질문입니다. 

한때는 주해적으로 정확한 설교가 좋은 설교라고 생각했습니다. 단어와 문맥과 신학적인 논리가 완전히 맞아 떨어지는 것이 설교의 목표인 것입니다. 그래서 권위있는 주석들을 많이 구입했습니다. 

물론 설교는 당연히 주해적으로 가능하면 정확해야 합니다. 많은 주석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살펴야 합니다. 때로는 아주 난해한 본문 해석을 붙들고 씨름해야 합니다. 그래서 설교에는 성경 본문 그 자체와 목회자 자신의 분명한 신학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 드러나야 합니다.  

또 한때는, 성도님들의 호기심을 끌어내는 것이 좋은 설교라고 생각했습니다. 뻔한 이야기를 뻔한 스타일로 말한다면,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당연히 지루해할 것이고 청중의 관심과 설교의 뜨거움은 식어 버릴 것이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더 매력적인 구조를 만들어낼 것인가에 많은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가능하면 연역적으로 내용을 끌어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고 강해와 주제의 두가지 스타일을 함께 섞어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좀 더 효율적이고 다양한 구조를 만들어내는 마인드맵을 쓰는 것은 저에게 있어서 필수입니다. 

그런데 요즘에 드는 생각은, '온전히 나의 것으로 체화된 설교'가 정말 좋은 설교이구나 라는 생각입니다. 만약에 주해적으로 바른 설교가 목표라면, 그냥 주석을 읽어드리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호기심을 끌어내는 것 자체가 목표라면, 더 극적인 이야기 구조를 사용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저는, 아무리 바른 말을 하더라도, 아무리 좋은 구조를 쓴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목회자 자신의 진실한 고백, 확신, 뜨거움이 아니라면 그것이 성도님들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결국 문제는, 지역 교회 목회자는 동일한 성도를 대하기 때문입니다. 매주 만나는 동일한 회중이, 담임 목사의 설교에 은혜를 받을 수 있다면 저는 그것이 기적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자칫하면 이런 생각이 들게 됩니다. '목사님, 목사님도 그렇게 못하면서 왜 그렇게 설교하세요?'

그래서 저의 결론은, 설교는 정말 진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자신이 직접, 설교 본문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말씀을 묵상하면서도, 또 설교 원고 자체를 작성하면서도, '도대체 이 본문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 말씀이 나에게 무엇을 보여주시는가?' 바로 거기에 온 마음을 쏟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고민의 내용을 설교로 풀어냅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나의 것이 된 그 말씀'을 설교로 풀어내는 것입니다. 물론 주해를 충분히 살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더 중요한 것은, 저의 내면에 다가오고 그래서 품게 된 본문의 의미와 그 능력입니다.  

또한 '말씀이 나의 것이 되는 그 과정'이 설교의 구조를 만듭니다. 단순히 한절 한절 논리적인 순서에 따라서 구조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저의 마음에 감동이 되고 또 마음에 크게 와 닿은 부분을 중심으로 구조를 짭니다. 그래서 어떤 부분에서는 강해 설교이지만, 또 어떤 부분에서는 주제 설교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접근이, 본문 자체가 가지고 있는 구조와 어느 정도의 긴장을 만들어내지만, 그러나 설교가 결국 목회자라는 인격체를 통해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말씀을 받은 저라는 존재가 설교의 구조에 반영이 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고, 설교를 설교 답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즘에 특히, 설교 원고를 고치고 또 고치면서 계속 고민합니다. 이제는 이 설교가 좋은 설교인가라고 묻지 않습니다. 주해적이고 신학적인 정확성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오히려 '정말 이 설교가 나의 진실한 고백인가? 나는 정말 이렇게 살교 있는가? 그리고 이 설교를 내 마음에 거짓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할 수 있는가?' 입니다. 

그러한 질문을 품고 고치고 또 고친 이후에 최종 원고가 완성이 되면, 그제서야 마음이 놓입니다. 왜냐하면, 부끄러움 없이 설교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해나가는 저의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기를 항상 원합니다. 진실한 설교만이, 우렁찬 목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결국 설교는, 나 자신을 향하는 것입니다. 성도님들의 마음에 넣는 것이 아니라, 저의 마음에 가장 먼저 넣고 저의 마음 안에 닿아야 합니다. 단순한 성경 교사가 아니라 설교자이기 때문에, 그 말씀 앞에서 먼저 엎드리고, 그 안에서 내가 먼저 변해야 하며, 그것이 부담이고 또 영광입니다. 

결국 가장 어려운 것이, '나의 설교가 온전히 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좋은 설교를 위한 어떤 의미에서 유일한 방법도 '나의 설교가 온전히 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평생 동안 저의 설교가 그러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설교는, 언제나 온전히 저의 것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한 사역이 쌓여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목회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2026년 1월 15일 목요일

최강록 쉐프, 모두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한 사람


삶에 여러 기쁨이 있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TV를 보는 것이 큰 기쁨입니다. 감사하게도 아이들이 한글을 꽤 잘하고 이해하기 때문에, 온 가족이 모여 앉아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TV를 볼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함께 즐겁게 볼 수 있다면 좋겠다 싶어 흑백 요리사 시즌2를 무리해서 함께 보았습니다. 

우승한 최강록 쉐프의 마지막 요리가 참 좋았습니다. 마치, 그가 하루의 고된 모든 일을 마치고 늦은 식사를 하는 순간에, 저도 그 자리에 함께 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삶이 녹녹하지 않기 때문에 고민해야 하는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고, 그 모습 안에서 저를 투영할 수 있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의 마지막 서사가 정말 좋았습니다. 특히 마지막까지 모든 사람들을 배려하는 그 마음이 좋았습니다. 요리 서바이벌이라는 혹독한 포멧이지만, 자신은 그저 음식을 하는 수 많은 분들 중 한명이라고 말하며 '내 얘기 말고 음식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 했으면 좋겠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순간 제 마음에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정말로 어둠에 빛이 비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참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왜냐하면, 경쟁적이고 남을 누르고 승리하라는 방송을, 모두가 이기고 승리하고 행복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으로 완전히 바꾸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기적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전혀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만, 최강록 쉐프가 가지고 있는 철학이 목회와 많이 맞닿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때로는 한국 교회에 유명한 몇몇 목회자들만 주목을 받지만, 사실 자신에게 맡겨진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수 많은 목회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삶은 보이지 않지만, 각자의 장점을 가지고 열심으로 사명을 감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경쟁으로는 이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를 위한 목회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세워주고 누군가의 가치를 알아주고, 그렇게 해서 모두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진정한 목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저를 바라볼 때에, '아, 저 목회자는 자기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두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사람이구나' 라는 그런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목회의 크기가 아니라, 정말 좋은 목회를 위해서 살아가고 싶고, 또 하나님께서 그 길로 저를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2026년 1월 5일 월요일

사랑과 은혜를 받고 나눈 시간은 영원하다 / Because of Who You Are - Uriel Vega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참 부지런히 살았습니다. 물론 그것이 항상 순수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삶의 압박과 실적을 내야 한다라는 부담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당연히 저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며 수 많은 흠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능하면 성경적으로 목회하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목회자의 아쉬운 점은, 받은 만큼 사랑을 돌려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물 하나만 해도, 드리고 싶은 분들은 참 많은데 능력에 한계가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수를 제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감사하다는 표현과 잠깐의 전화일 때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돌이켜보면 죄송한 마음입니다. 성도님들께 저의 절박한 상황을 다 말씀 드릴 수도 없었고, 더 살갑게 대하고 더 친근하게 대하고 더 경청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적도 참 많았습니다. 받은 만큼 돌려드리는 것은 애시당초 불과했고, 원하시는 만큼 시간을 더 보내지도 못했습니다. 정말 애를 많이 썼지만, 여전히 부족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여서, 헤브론 교회에서 귀한 시간을 나누었던 분들에게 새해 안부 인사도 드렸습니다. 사실 대부분 거의 2년 만에 연락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헤브론 교회를 넘어 함께 교재했던 여러 목사님과 성도님들에게도 연락을 드렸습니다.

물론 제가 연락을 드린다고 해서, 모두가 저와 동일한 마음을 보여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대면대면하고 또 어떤 분들은 왜 굳이 연락했느냐는 뉘앙스를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번에 한껏 팔을 펼치며 느낀 것은, 제가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았구나 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저는 너무 바쁘게 살아와서 또 사역에 집중하다보니, 제가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고 넘어갈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 있을 때에는 버거운 환경 때문에 제 자신을 객관적으로 살피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여러분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그분들과 함께 했던 좋은 시간들이 기억이 많이 났습니다. 연락을 받으시는 분들의 반응과는 상관 없이, 하나님께서 그분들을 통해서 저에게 너무 많은 사랑을 베풀어주셨다는 것이 참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그 행복이 참 좋았고, 하나님께서 저를 위로하셨습니다. 

저는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관계를 맺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누군가를 섬기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성도님과 일대일로 앉아서 힘든 이야기를 듣는 것은, 목회자에게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저의 마음에 차오르는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때가 대부분이고, 조언이나 충고보다는 그저 들어드리는 것이 훨씬 유익한 것이 목회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인내하며 섬겨왔던 모든 시간들이, '꽃'이 되어 저에게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의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많은 분들을 격려하고 돌보고 애썼던 모든 시간들이 아름답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항상 행복하고 여유롭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고단했던 모든 시간들이 활짝 꽃 피어 있었습니다. 

최선을 다한 그 순간과 그 시간과 추억은, 그 어떤 것으로도 바꾸지 못합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도 그 시간을 그대로 보전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참 감사했습니다. 혹시 지금은 멀리 있어도, 지금은 관계가 소원해져도, 지금은 그렇지 못해도, 소중하고 빛나던 과거는 그 시절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 견뎌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합리적이지 않은 여러 모습들 속에서, 견뎌만 낼 수 있어도 감사하다고 생각했고 그 이상의 어떤 것은 기대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꽃을 저의 내면에 심어주시고 보여주시니, 그것이 저의 마음에 큰 힘이 되고 또 앞으로 섬길 원동력이 됩니다. 

여전히 말 못할 어려움은 있습니다. 목회라는 것 자체가 그런 것입니다. 아마 은퇴의 시간까지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한결 마음이 가벼운 것은, 지금 경험하는 모든 것들도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피우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이 감사하고, 또 앞으로가 기대가 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견디고 노력하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아름답게 전혀 다른 어떤 것으로 만들어가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25년 12월 18일 목요일

고 이병욱 장로님을 기억하며

 


목회는 '관계'입니다. 목사와 성도와의 관계라는 딱딱한 표현 보다는, 그저 나의 가족의 폭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성도님들은 저의 아버지이시고 저의 삼촌과 형님들이시며, 또 저의 어머니와 누이들이십니다. 

고 이병욱 장로님은 참 귀한 분입니다. 항상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또 성도님들에게 먼저 다가와서 인사하시던 따뜻한 분이십니다. 얼마나 노방 전도를 열심히 하셨는지 온 성도들의 존경을 받고 또 사시던 아파트에서도 모르는 분들이 없었습니다. 

장로님이 소천하시기 한주 전에 장로님 댁에 방문해서 심방을 했습니다. 그때에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 밖에 없다라는 말씀을 나누셨고 참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소천하시기 하루 전에는 주일에 같이 식사를 했습니다. 어느 분 옆에서 식사를 하면 좋을까 두리번거리다가, 마침 장로님 옆 자리가 비어 있어 앉았습니다. 장로님의 젊은 시절에는 먹을 것이 귀했지만, 그래서 본인은 무엇이든지 맛있었고 하나님께 감사했다고 마음을 나눠주셨습니다. 

몇개월 전에는 장로님과 함께 기도회를 참석했습니다. 교회 연합 기도회인데 다른 성도님들은 스케쥴이 여의치 않으셔서 아무도 못 오셨지만, 장로님께서 함께 해 주셨습니다. 오고가는 길에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장로님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 사별한 부인의 이야기, 그리고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소천하시는 날은 평소처럼 운동하시다가 갑자기 쓰러지셨습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주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모든 성도님들이 참 마음 아파했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토요일이 장례를 치뤘지만 그래도 주일에 왠지 장로님이 교회로 나오실 것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교회 전도지가 준비되면 꼭 노방 전도 같이 나가자고 장로님과 약속했는데 그 약속은 지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저에게 장로님과의 좋은 추억을 쌓도록 해주셨습니다. 저의 셀폰에서 함께 기도회 가던 길에 찍은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유가족께서 보내주신 장로님께서 소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도 함께 저장해 놓습니다. 아름다운 길과 트리가 십자가 처럼 보입니다. 오직 예수님만 전하기를 위해 애를 쓰신 장로님의 귀한 인생에 어울리는 사진입니다. 

추모 예배의 설교 제목은 '모범적인 믿음을 본 받으라' 였습니다. 고심하며 지었는데, 고인의 지나온 삶을 생각하면 참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설교 원고를 준비하면서 또 실제로 설교하면서 장로님의 믿음, 감사, 헌신, 복음에 대한 열정, 그 모든 것을 제 마음에 담았습니다. 

마지막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언젠가 주님 나라에서 다시 뵐 때에, 사실 그때 필요는 없겠지만 준비한 전도지를 자랑스럽게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못 다 들은 장로님의 이야기들을 이어 들으며 영원히 행복한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습니다. 

2025년 12월 3일 수요일

나의 부모님은 항상 어디에든 계신다

 

저의 아버지는 선장으로 일하셨습니다. 일년에 거의 9개월은 해외에 계셨기 때문에 저는 거의 어머니 손에 자랐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 아버지께서 서울 본사에서 일하시게 되면서, 그제서야 온 가족이 모여 살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이 가장 많은 시간이 있습니다 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할 시간입니다. 저는 그 시기를 놓쳤습니다. 그리고 이미 훌쩍 커버린 저로서는 부모님과 보낼 시간이 넉넉하지가 않았습니다.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저의 세상 속에 들어가 버렸기 때문에, 부모님이 그렇게 소중한 줄 몰랐습니다. 

결혼하고 조금 철이 들었습니다. 이제서야 부모님과 함께 하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았는데, 결혼을 하고 유학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거의 15년이 지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저는 유학을 생각해 본적도 없었고 한인 교회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이 한편으로는 섭리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부모님을 가까이 뵐 수 없다는 것이 마음 한편에 너무 큰 아쉬움으로 다가옵니다. 그래도 건강하신 편이지만 과연 얼굴을 마주하고 지낼 수 있는 시간은, 아마 평생에 몇달이 전부일 것입니다. 

어제는 늦은 시간 양로원으로 심방을 갔습니다. 미국에서는 양로원을 널싱홈이라고 부릅니다.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비용을 받기 때문에 정부의 보조가 없이는 현실적으로 들어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시설도 천차만별입니다. 참기 어려울 정도로 냄새가 나는 곳도 가봤고, 또 호텔처럼 좋은 시설을 갖춘 곳도 방문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시설과 상관없이 그곳은 외롭습니다. 많은 어르신들이 여러 상황 속에서 들어오시지만,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어 하십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그곳에 들어가는 것 조차 쉽지 않지만, 그러나 정작 그곳에 계신 분들은 정서적인 어려움으로 더 힘들어합니다. 

제가 널싱홈을 방문한 목적은 두분을 뵙기 위해서입니다. 그 중에 한분은 아주 예전에 볼티모어교회에 출석하셨던 집사님이십니다. 거기 계신다는 소식을 우연히 들었습니다. 외롭게 앉아 계시는데 많이 마르셨고 식사도 제대로 하시지 않고 계셨습니다. 

한참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집사님의 외로운 마음이 조금이라도 달래지기를 바랬기 때문입니다. 손을 꼭 잡고 기도해드렸습니다. 인생은 너무나 연약하기에 결국 하나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젊은 사람이든 노년의 시기를 보내시는 분들이든 모두가 동일합니다. 그래서 기도가 더 간절하고 진실해 집니다. 

어르신들을 뵈면 항상 부모님 생각이 납니다. 그래서 어르신들을 심방하면 꼭 부모님을 뵙는 것 같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나의 부모님도 이렇게 연세가 드시겠구나, 그때에는 내가 이분을 방문하고 위로한 것처럼 누군가가 꼭 그렇게 해주면 좋겠다, 이것이 저의 솔직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다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저의 심방들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심방을 끝나고 나오는데 박종호 장로님의 '나그네의 집'이 생각이 났습니다. 너무 좋아하는 찬양이고 또 따뜻한 찬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잃어버린 자들을 위해서 우시고 찾으신 것처럼, 저의 작은 인생 역시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2025년 10월 28일 화요일

진리를 붙잡고, 그 길로 묵묵히 걷는 것이 전부이다

 

최근에 좋아하는 몇분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별로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목회의 영역에 들어오면 누군가의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기 때문입니다. 

소문에 대한 의심을 크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목회자의 세계는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보다 인간 관계가 좁기 때문에, 누군가에 대한 진실을 확인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인과응보의 신학을 거부합니다. 그러나 살아보니,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자에게는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삶의 결과가 오롯이 그 사람의 잘못의 결과는 아니지만, 그러나 어떤 부분은 충분히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그분은 참으로 두려운 분입니다. 

아주 어린 시절에는, 의로운 분노가 더 많았습니다. 비난의 화살이 항상 다른 사람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것은, 제 자신을 더 많이 돌아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사람을 추종했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그 사람을 빚어내신 하나님만이 위대하신 분이심을 더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실패하는 것에 놀라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가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한 염려가 늘 있습니다. 

저는 항상, 제가 맡은 역할을 잘 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넘어진 분들에 대한 아쉬움도 크고, 또 그들을 향한 연민의 마음도 있지만, 사실 제 마음에 들어오는 것은 저 역시 얼마든지 넘어진다는 두려움입니다. 그분들은 저보다 훨씬 훌륭한 분들이지만 넘어졌습니다. 그렇다면 한 없이 연약한 저는 더욱 그럴 위험이 큽니다. 그것이 제가 직면하는 현실이고 제가 더 집중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묵묵히 걸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누군가를 향해서 분노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실 요즘에는 분노를 거의 느끼지 않습니다. 저에게 맡겨진 역할을 잘 감당하는데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철저하게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목회는 교회를 돌보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철저하게 나를 돌보는 것입니다. 

제가 믿음으로 바로서지 않으면서, 누군가에게 설교하고 누군가에게 길을 가르치는 것은 논리적인 모순입니다. 저에게 맡겨진 일을 충실히 감당하고, 부지런히 부지런히 하나님 앞에서 진리를 붙들고 묵묵히 걸어가는 것, 그것이 예전에는 삶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것이 삶의 전부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렇게 삶의 끝까지 살아갈 자신은 당연히 제 안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하신 주여, 저를 선하게 인도하소서.

2025년 10월 5일 일요일

볼티모어 교회의 사역 1년을 감사드리며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셨습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기도는 이것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인도하셨고 지금의 일을 모두 이루셨습니다. 

저는 하루의 신실함을 지키기도 힘들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인내하시고 이끄셨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이룬 모든 선한 것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교만하지 않게 하시고, 저의 수준을 알게 하시며, 주님 앞에 기도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기도로 이 시간까지 오게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평소에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성도님들의 기도 제목을 가지고 저의 일처럼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모든 책임을 진다는 무게가 참 무거웠지만, 주님의 자녀들의 기도를 함께 짊어진다는 것이 이렇게 감격적인 일이라는 것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설교에 힘을 쓰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저의 준비와 저의 마음은 오직 주님께서 아십니다. 홀로 방안에서 고민하고 눈물 흘리는 모든 시간도 주님께서 아십니다. 부끄러움 없이 설교하게 하시니 감사드리고, 주의 말씀을 통하여 성도님들이 은혜를 누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일에 웃음이 가득한 성도님들의 얼굴이, 저의 마음에 너무나 큰 기쁨이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교회가 안정되게 하심도 감사드립니다. 미래를 생각하면 여러 두려움이 있지만, 그러나 오늘 하루가 주님 안에서 있어서 감사드립니다. 미래를 감추시고 현재에 주님을 의지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신비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기에 기도하며 믿음으로 전진하는 것이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모든 짐을 주님께 맡긴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지를 경험합니다. 

주님,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저의 역할이 너무 크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무 작음에 감사드립니다. 어찌할 바를 몰라서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주님 주시는 지혜로 해쳐나오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혼란 속에서도 질서를 보게 하시고, 담대해야 할 때에 담대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교회라는 것이 저의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저는 여전히 부족하고 저의 능력은 미천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어떤 것이라고 하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저를 민첩하게 하시고, 지금의 수준보다 배의 능력을 주시며, 누구보다 탁월하게 사랑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천년이 하루 같은 주님 앞에서 일년은 마치 점과 같은 시간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모든 걸음 속에서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스쳐지나가지 않으시고 저의 손을 잡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기처럼 주님의 손을 잡았고 서툰 걸음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걸음을 가장 성공적으로 걷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주님의 일하심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성도들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사람이 어떻게 바꿀 수 있겠습니까? 모든 은혜와 감화와 감격과 감동은, 오직 주님께로부터 나옴을 고백합니다. 오직 성령님의 능력입니다. 주님이 영혼을 다스리시며 주인이 되시기에, 성도님들의 마음이 부드러워집니다. 주님, 이것이 기적입니다. 저는 그것을 보았고, 그래서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여전히 두려움이 있습니다. 여전히 저의 책임은 너무나 크다고 느낍니다. 주님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숨 쉬기가 어렵다고 종종 느낍니다. 그래서 또한 주님께 의지합니다. 지금까지 잘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그저 순간의 기쁨일 뿐임을 고백합니다. 제가 심적으로 받는 모든 부담조차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저의 가장 낮은 마음이 되기 원하고, 오직 주님의 일하심이 저의 소망이 되고 기쁨이 되기 원합니다. 

주님 저를 붙들어 주시기 원합니다. 저는 이제서야 신앙을 배우는 듯 합니다. 전적으로 주님께 잡히는 것이야 말로 성도의 가장 큰 기쁨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 훈련이 되지 않았습니다. 두렵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제가 그렇게 되기를 원하심을 봅니다. 인간적인 표현으로는 운명이고, 주님의 뜻이고 섭리임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저를 온전히 주님께 맡깁니다. 

그저 하루를 충실하게 살 수 있도록 힘을 주시기 원합니다. 오늘 하루가 참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미래를 놓고 두려워하지 않도록 침착함을 주시기 원합니다. 저의 실패가 주님의 실패가 아님을 기억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기 원합니다. 주님이 그렇게 해 주신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겠습니다. 

주님의 영광만이 앞으로도 드러나기 원합니다. 저는 사라지고 없어지고, 오직 주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주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저의 유일한 소원이 되게 하시고, 그것이 저의 인생에 실제로 이루어지게 하시고, 저의 지나가는 그 길에는 오직 주님만이 선명하게 드러나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게 하시고 감사하게 하시니 이것에 감사드립니다. 주의 교회를 섬기는 1년을, 아름답게 지나가게 하신 주님께 모든 마음으로 감사드립니다. 모든 감사와 찬양을 오직 주님께만 올려드립니다. 존귀하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2025년 9월 17일 수요일

아빠, 언제까지 목회할꺼야?


모든 부모에게 자신의 자녀는 소중할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귀엽기는 막내가 더 귀엽지만, 첫째 아들은 저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한없이 외롭던 미국 유학 생활에서, 아들이 태어난 그 감격은 여전히 제 마음에 감격으로 남아 있습니다. 너무나 추웠던 그랜드래피즈의 눈이 내리던 밤, 아들을 안고 병원을 빠져 나오던 그 때를 잊을 수 없습니다. '오 주님, 저에게 사랑하는 아들을 선물로 주시니 감사합니다'

밤에 설교 준비를 하고 있으면 첫째가 가끔씩 와서 들여다 봅니다. 제가 하는 일에 참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종종 이런 저런 질문을 합니다. 며칠 전에는 갑자기 이렇게 물어봅니다. '아빠, 언제까지 목회할꺼야?'

생각해 보니 요즘에 아들이 저의 상황을 제일 잘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일하는 모습을 가장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잠깐 놀아줄 때를 빼고는 대부분 설교를 준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들의 마음에도 아빠가 참 쉽지 않아 보인다는 생각을 하나 봅니다. 

은퇴까지 25년 남았다고 하니 깜짝 놀랍니다. 그렇게 많이 남았냐고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해주었습니다. '25년이 긴거 같지만, 크리스마스 스물 다섯번 지나면 끝나는거야' 아들이 깜짝 놀랍니다. 생각보다 그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들을 꼭 안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저에게 남은 시간을 아들에게 이야기해주면서, 제 스스로도 인생과 목회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저의 인생이 참으로 속히 지나간 것처럼, 앞으로도 마찬가지리라 생각합니다. '주님, 저를 붙들어 주시기 원합니다.'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지금까지 삶이 쉽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시간의 흐름입니다. 꽤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자신을 돌아보면, 더 효율적일 수 있고 더 부지런할 여지가 여전히 있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지만, 가장 수준 높은 탁월함을 위해서는 많은 걸음을 더 다가가야 합니다. 

저는 지금도 아름답고 능동적이며 빛나는 인생을 꿈꿉니다. 그래서 오늘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기 원합니다. 제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기를 원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은퇴, 그 마지막 시간에 후회가 없도록 최선을 다해서 달려가야 겠습니다. 

2025년 8월 25일 월요일

언제나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본질을 향하여 한걸음 더




모든 사람이 그런 것처럼, 저 역시 종종 상황에 매몰됩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마음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 지금까지 걸어 왔는가에 대한 초점이 흐려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깐의 운동의 시간이지만, 의도적으로 성경과 탁월한 책으로 저의 시간을 채웁니다. 어딘가로 숨고 싶은 저의 마음을 새롭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을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답답한 나 자신을 뛰어 넘기 위해서는, 내 손을 잡아 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가끔씩은 그런 생각을 합니다. 바울 사도를 직접 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루이스와 차 한잔을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칼빈과 마주 앉아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 바램은 이루어질 수 없지만 글을 통해 얼마든지 그들과 만날 수 있습니다. 

피고석의 하나님을 천천히 음미하여 읽을 수 있는 것은, 인생의 가장 큰 기쁨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꼭 필요한 조언을 발견해서 더욱 감사했습니다. 루이스의 글은 언제나 힘이 있습니다. 모든 부분을 동의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는 제가 다다를 수 없는 탁월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홀로 빛나는 사람처럼, 마치 다른 세상에서 온 것처럼, 그런 통찰과 따뜻함을 전해 줍니다. 

충분히 글을 읽으면서 다시 마음이 새로워졌습니다. 저의 삶의 목적은, 세상을 가능하면 선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인내로 견디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이 전혀 없다는 생각과 마음에 확신이 들었습니다. 무엇을 해야할 지 다시 한번 분명해 졌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책을 읽는다고 삶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실한 마음, 변하고자 하는 열망, 치열한 도전, 그리고 분명하고 탁월한 방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변화는 정말 어렵습니다. 수 많은 크리스천들이 탁월한 삶을 살아가지만, 그러나 또한 수 많은 크리스천들이 아쉽게 삶을 낭비하는 이유입니다. 

집으로 들어와 제 마음을 움직인 문구들을 다시 정리하였습니다. 굉장히 고된 작업입니다. 마냥 편하게 살고 싶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에 부지런히 움직여 봅니다. 다시 글을 쓰면서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습니다. 지난 10년은 제 마음에 큰 고난입니다. 견디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의도적으로 제 마음을 새롭게 하기 원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본질을 향해서 계속 전진하기를 다짐해 봅니다.

2025년 8월 17일 일요일

나의 자리에서, 나의 역할로 섬긴다는 것에 대하여


지금까지 목회로 섬기면서 제가 가장 중점을 두었던 것은, '저의 자리에서, 저의 역할로 섬기는 것' 이었습니다. 교회를 섬기다보면, 내가 드러나고 빛날 수 있는 자리가 있습니다. 목회자의 눈에는 당연히 그런 자리가 더 잘 보입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자리에 있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의 마음에는 언제나, 저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확신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저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교회가 제 개인의 소유라면, 제가 가고 싶은 곳에, 제가 가장 드러나고 멋져 보이는 자리로 찾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주님이 드러나셔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전 교회에서 섬길 때에, 몇분이 저를 부추겼습니다. 이제 저의 위치 정도면,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여지가 있지 않느냐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를 좋게 봐 주시고 이야기해 주신 것입니다. 듣는 분은 조금 불편하셨겠지만 단호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교회는 저의 교회가 아니라고, 그리고 저는 담임 목사가 아니라고, 제 역할은 담임 목사님의 목회를 잘 이루고 또 교회가 유익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사실 상당히 미련하게 지냈습니다. 제 스스로에게도,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도 몇번 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목사로 섬긴 과거의 시간이 후회가 없습니다. 제 인생에 자랑스러운 것이 별로 없지만, 이렇게 지켜온 저의 태도만은 참 좋다고 스스로 평가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긴 시간의 훈련이, 지금의 담임 목회에도 큰 유익이 됩니다. 이렇게 연결될 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담임 목사는, 모든 자리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꼭 있어야 하는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교회가 필요로 하는 바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제가 다른 사람에게 드러나는가 아닌가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더 절실하게 깨닫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편안합니다. 저의 역할에, 제가 할 일에, 그리고 교회를 유익하게 하는데 전심전력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방향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그렇게 훈련했던 것처럼, 제 자리를 지키려고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이고, 또 주님의 교회를 아름답게 세워가는 길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주님의 뜻을 마음에 두고 순종할 때에, 한번도 기대하지 못했던 새로운 길을 그분께서 친히 열어가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모르는 척 넘어가다

목회를 하면, 누군가의 인간 관계가 총체적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과거와 현재가 하나로 연결이 됩니다. 사실 제가 원해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분들이 저에게 여러 이야기를 하기 때문입니다. 퍼즐이 맞춰지듯이 모든게 맞아 떨어지는 것입니다. 때로는 누군가의 삶의 아름다움이 드러나고, 때로는 아쉬운 부분들도 드러납니다. 저의 마음에는 때로는 존경이, 하지만 때로는 깊은 아픔이 있습니다.

저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힘들게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목회만 힘든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살아가는 것 자체가 버겁습니다. 저의 삶이 완전하지 않은 것처럼, 다른 분들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실을 알게 되고, 또 그것이 명확해 지더라도, 누군가의 연약한 점을 굳이 더 파고들어가진 않습니다. 

가끔씩은 성도님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분명히 제가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실 때도 있습니다. 본인의 잘못이 거의 확실해 보이지만, 본인은 상관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도 넉살 좋게 웃으면서 경청합니다. 저도 가끔은, 제가 잘못하고서도 누군가가 그래도 내 편이 되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예, 그러시군요' 알아도 모르는 척 하는 것입니다. 지나간 시간 늘 그래왔고 지나고 보니, 그렇게 한 것이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목회를 하면 할 수록, 날카롭게 공격하는 사람보다는, 부드럽게 받아주고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집니다. 

그래서 적어도 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누군가는, 조금이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여전히 부족한 우리를 받아주시고 인내하시고 붙들어주시는 하늘 아버지처럼, 그렇게 교회를 섬기고 싶습니다.

2025년 8월 13일 수요일

박OO 성도님의 마지막을 함께 하며

 

두달 정도 전에 교회로 연락이 왔습니다. 볼티모어 지역에 연고가 없는 분이 병원에 입원했는데 도움을 줄 수 이느냐의 연락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대학에서 교수로 섬기셨지만, 암이 몸으로 전이되면서 좀더 좋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를 원하시는 상황이었습니다. 

박OO 성도님은 인상이 따뜻하고 좋은 분이었습니다. 기적처럼, 저를 만나기 몇주 전에 미국 교회에서 세례를 받으셨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케어를 받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더 받기 원했지만 안타깝게도 더 이상 치료가 어렵다고 판단이 되어서, 곧 호스피스로 옮기셨습니다. 

일반적인 경우와는 조금 다르게 그래도 호스피스에서 잘 지내셨습니다. 드시는 음식도 줄어들 수 밖에 없었고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저와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더 자주 방문하고 싶었지만 다른 교회일을 챙기느라 저도 여력이 부족했다는 것이 아쉬운 마음이었습니다. 

박OO 성도님을 만나면서 정말 인상적이었고 또 감사한 마음은, 저의 안부를 여러번 물으셨다는 점입니다. 담임 목회하면 힘들지 않냐고 말씀하시는데, 사실 속으로 너무 놀랐습니다. 세례를 받은지 얼마 되지도 않은 분이, 그리고 죽음을 앞에 두고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는 분이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다는 것이 참 놀라웠고, 그 와중에도 저를 염려해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마지막 시간을 지나면서 가장 힘들어하셨던 것은, 본인의 믿음이 약해질까봐 걱정하셨습니다. 자신의 삶의 마지막을 지나면서 굳건한 믿음으로 이 시간을 지나기를 기도부탁하셨고 저도 함께 기도하고 또 거기에 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그리고 천국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제 잠깐 찾아뵈니 이제 의식이 거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갈라디아서 말씀을 나누고 찬양을 불러드렸습니다. 저의 목소리를 알아들으시고 손에 힘을 주어 제 손을 잡으시는데 더 이상 제가 해드릴 수 없다는 것이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지난 두달 동안은 저의 설교를 계속 들으셨다고 동생 분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삶의 마지막의 시점에서 저의 설교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잠시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박OO 성도님은 누구보다 더 강하게 누구보다 더 믿음이 있고, 또 따뜻한 분이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장례를 저희 교회에서 섬기기로 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시간을 지나가고 있는 귀한 성도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또한 언젠가 다시 뵙게 된다면, 함께 시간을 나누어서 감사했다고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본인이 힘든 중에도 저를 염려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고 진심으로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시 뵙게 되어서 참 좋다고, 그리고 그때 우리가 나누었던 것처럼 천국은 너무 아름다운 곳이 아니냐고 그렇게 웃으면서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2025년 1월 2일 목요일

기도 들으시는 하나님, 그리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 길 - 함부영

 

목회자의 큰 특권은, 성도의 삶의 가장 중요한 순간들을 기획하고 구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추수감사주일, 성탄주일, 그리고 송구영신예배까지 그 모든 것들을 가장 중심에서 섬길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의 종들에게 허락하시는 가장 큰 기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내면까지 살피기에는 그 시간이 참 부족합니다. 많이 아쉽습니다. 예배 전에 본당 앞에 앉아서 깊이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며 그저 평안한 마음으로 은혜를 사모하는 그런 기쁨은 저에게는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가장 앞서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분주하다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압박감이 매 예배 시간에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작년 한해를 돌아보면 참 쉽지 않았습니다. 2024년 12월 31일을 기점으로 My Last Day라는 이름으로 남은 날짜를 하루하루 계산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절, 하나님께서 반드시 길을 열어주시기를 기대하면서, 또 막연히 소망하면서, 기도하면서 그렇게 한해를 보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로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셨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베푸신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기적입니다. 숫자가 결국 0으로 바뀌었고, 소망하던 그 기간 안에 하나님께서는 오직 그분의 능력으로 저를 이 자리까지 이끄셨습니다 


기도하고 고민하다가 다시 숫자를 넣었습니다. 앞으로 2년 동안의 시간이 저에게 주어졌음을 믿고 그만큼의 숫자를 넣었습니다. 숫자를 보니 마음이 결연해 집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이끄셨지만, 여전히 앞은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 삼개월동안 제가 꿈꾸는 모든 것들을 이루셨고, 또 한편으로는 더 이상 좋을 수 없을만큼 은헤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저는 이제 담임 목회의 겨우 반발자국을 디뎠을 뿐입니다. 

삼개월 동안 가장 절실하게 느낀 것은, 저의 삶을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의 업무를 처리해야 하고, 어느 정도의 압박감을 느끼며, 어느 정도의 고된 일인지를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실임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어른이기에, 누군가에게 칭얼대는 것 역시 어울리지 않습니다. 아마 아내가 가장 근접하게 알 수 있을 뿐, 제가 경험하고 전진하고 해내야 하는 모든 것들을 오직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그런 면에서 감사한 것은, 지난 10년의 시간들이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외로웠고, 안주할 수 없었고, 불안했고, 도전할 수 밖에 없었고, 더 절박하게 전진했던 그 모든 시간들이 지금을 위해서 존재했음을 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 누구도 저를 이해할 수 없다 하여도, 하나님이 아시기 때문에, 그리고 제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더 절박하게 의지하면서 최선을 다하며 앞으로의 시간을 걸어갈 것입니다. 

목회적으로 판단할 때에, 볼티모어 교회의 앞으로 2년은 교회의 운명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많이 떨리기도 하고, 또 많이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그러하셨던 것처럼 저를 밀어붙이실 것이고 또 저의 한계를 뛰어 넘어 그 자리에 서게 하실 것입니다. 

729의 숫자가 다시 0이 될 그날을 잠시 마음에 그려 봅니다. 교회가 훨씬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 신앙이 넘치는 모습, 온 성도들의 마음에 믿음이 넘치고 영적으로 숫적으로 부흥하는 그 시간을 꿈꿉니다. 그리고 그날 이렇게 잠시 돌아온 날들을 묵상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기적처럼 저와 우리 교회를 이끄셨다고 그렇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기도 들으시는 하나님, 그리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오늘도 이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2024년 10월 3일 목요일

헤브론 교회를 사임하며 - No Regret, 후회가 없기에 기쁨이 넘치다

 




아마 고등학생 시절입니다. 게임 잡지에서 무료 게임을 주었습니다. 그 게임의 제목이 No Regret 이었습니다. 신나는 액션 게임이었는데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제목이 너무나 강렬해서 여전히 저에게 깊이 남아 있습니다. No Regret, 후회는 없다.

지난 주일에 사임 인사를 하였습니다. 성도님들 한분 한분 뵐 때 마다 마음이 뭉클해서 자꾸 눈물이 났지만, 더 활짝 웃었습니다. 당분간 못 뵙는다는 사실을 생각할 수록, 저를 기억하시는 마지막 모습이 밝은 미소가 되기를 바랬기 때문입니다. 한분 한분 손을 잡으면서 꼭 다시 뵙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살아보니 인생은 너무나 짧고, 사랑했던 분들은 꼭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쉬움을 최대한 감추고 다시 뵙자고 손을 흔들며 인사 드렸습니다. 

제 인생에 빛나는 시간인 헤브론 교회의 순간들을, 결코 글 하나로 정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잠시 글을 적는 것은, 그 시간이 너무나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힘들었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말 아름다운 여행이었습니다. 아름답다라는 상투적인 말로는 그 기억을 다 담을 수 없습니다. 상쾌한 가을 바람 속을 천천히 음미하며 걸어가는 것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성도님들이 주신 편지들을 하나하나 읽어보고 사진으로 남기면서, 저의 지나간 발자취들을 돌이켜보았습니다. 정성으로 쓰신 글들이 참 감사했습니다. 아마 정말 오랫동안 기억이 날 것입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기에 그렇게도 애틋하고 소중합니다. 

저는 헤브론 교회에서 사역하면서 늘 전전긍긍했습니다. 저의 앞날이 늘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확정된 것이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가족의 미래도, 신분도, 사역의 내용도, 그리고 담임 목회의 길도 참으로 불투명했습니다. 그래서 마치 개척 교회를 섬기는 목사와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절박했기 때문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사역하는 동안 언젠가 교회를 떠난다면 후회 없이 사역하고 싶은 마음으로 섬겼습니다. 제가 어떻게 열심으로 일했는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저도 사람이기 때문에 아쉬움은 당연히 있습니다. 그러나 후회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시 돌아가서 저에게 한번 더 기회가 주어진다하더라도, 더 열심히 할 자신은 없기 때문입니다. 

시카고에서 볼티모어로 온 것은 제 인생에 너무나 큰 변화입니다. 저라는 존재는 동일하지만, 저를 부르는 호칭과 저의 책임과 권한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래도 마음은 담담합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담대함과 침착함을 제 마음에 부어주셨습니다. 이번주 설교를 준비하며 책상에 앉아 있는데 마치 이곳이 오랫동안 제가 머물렀던 곳처럼 느껴집니다. 

목사인 저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는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한없이 아쉽고, 또 헤브론 교회 성도님들을 정말 많이 그리워할 것입니다. 그분들은 저에게 가족과 같은 분들이고 저의 젊은 시절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은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그분들은 저의 가족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저는 앞을 향해 착실히 전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이, 이제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동부에 오시면 꼭 연락을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뵐 날을 기다립니다. 사랑하는 헤브론 교회의 가족들을 다시 뵐 때에는, 저의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마지막 헤어질 때에 활짝 웃었던 그 모습으로 다시 뵙겠습니다. 더 성숙하고 깊어진, 그래서 단순히 추억을 나눌 뿐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때까지 잠시만, 안녕히계세요.

* 볼티모어 교회 청빙 투표를 통과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의 저의 결심

2024년 9월 20일 금요일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은 나의 길 / Time After Time - Jonah Baker

 
















이제 정말 사역을 마무리 할 때가 되었습니다. 요즘에 저의 마음은, 목회자 정진부에서 인간 정진부로 돌아간 기분입니다. 7년 반이라는 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왔고, 중요한 순간들을 짚어내지 못하고 사역했습니다. 반년동안 심적으로 너무 힘들어 우울감에 덮여 있을 때조차 저를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 순간까지 충분히 저를 돌아보지 못하고 다음을 위해 준비합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곳에서의 기억을 남기고 싶다. 기억을 남겨야 하는 좋은 일들이 너무 많았지만 제대로 기록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서는 이 순간만큼이라도 오롯이 제 자신에게 집중하고, 저의 감정과 저의 생각, 제 자신에게 집중하고 싶었습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평소에 제가 산책했던 길들을 마지막으로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수도 없이 걸었던 길입니다. 마음이 답답할 때면, 울적해서 힘이 들때면, 앞이 보이지 않아서 너무 막막할 때면, 그리고 기쁨이 넘쳐서 주체할 수 없을 때면, 그 모든 순간에 걸었던 길입니다. 

대부분 혼자 걸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걸을 때에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기도할 수 있고, 주님을 찾을 수 있고, 마음을 추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을 먹고보니 벌써 해가 지려고 해서 조급해졌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해가 이제 뉘엇뉘엇 져가는 이 시간이 제가 가장 사랑하는 순간입니다. 

한참을 걷는데 마음이 평안했습니다. 여전히 덥지만 이제는 제법 가을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그 공기가 좋았습니다. 눈 앞에 펼쳐진 모든 것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어떤 예술가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절정의 아름다움이 시시각각 눈 앞에서 펼쳐지고 다시 흩어졌습니다. 저의 작은 마음에 담을 수 없는 그 모든 순간을, 작은 사진들로 남겼습니다. 

앞으로 걷다 보니 뒤가 보였습니다. 항상 계획하고 걷기 위해 노력했지만, 돌아보니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셨습니다. 예전에도 알던 말씀이지만, 그 말씀이 이렇게 깊은 것인줄 미처 몰랐습니다. 이제 이곳에서 사역을 마무리 하려고 하니, 그리고 제가 걸었던 길들을 다시 돌아보며 시간들을 반추해보니, 감히 가늠하기 어려운 말씀의 무게가 저의 마음을 평안하게 합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아픈 순간들이 많았기 때문에, 잊으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속으로 되뇌입니다. 잊어야지 잊어야지... 한편으로는, 잊지 못할 것도 같습니다. 마음의 상처는 그렇게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저 설교의 자리에서 용서하라는 말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제 자신을 보면서 알게 됩니다. 그래도 걷는 그 순간, 햇볕이 참 좋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마음을 만지심을 느꼈습니다. 좋았던 순간들이 정말 많았기에, 아픔으로 그것들을 덮고 싶지 않은 간절한 마음입니다.

이제 다시 못 걸을 길을 마지막으로 걸었습니다.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습니다. 저의 고민했던 모든 시간들을, 그리고 그 아픔의 순간들 조차 저의 영혼에 가장 고귀하고 가치 있는 자양분이 되었음을 믿고 붙들고 싶습니다. 앞으로 걸어갈 모든 길 위에서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선하게 가장 아름답게 인도하실 것을 확신합니다. 오직 그 믿음으로, 계속 걸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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