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28일 월요일

삶을 온전히 드리는 것의 기쁨 by 8개월 주일 설교의 대장정을 마치고

 






미국에 온지 11년이 지났습니다. 아내와 함께 그저 흥분되는 마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온 것이 바로 어제 같은데 시간이 이렇게 흘렀습니다. 젊었을 때에 삶은,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갈 수록 나의 선택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놀라운 거대한 손에 떠밀려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안식년을 가지고, 부목사가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시간은 아마 평생에 딱 한번 정도 찾아올 것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그 역할이 맡겨졌습니다. 너무 큰 부담,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제가 할 일들을 그대로 다 하면서, 주일 설교 강단을 잘 감당해야 한다는 것은 저의 삶 가운데 가장 큰 도전이었습니다. 

설교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끝이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참으로 가벼운 자리인 것처럼 보이지만, 저에게는 가장 소중한 자리입니다. 대략 열세번 정도의 기회가 저에게 주어졌습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는 주일 설교가 세번입니다. 저는 세번의 설교가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오시는 분들의 숫자는 차이가 납니다. 그러나 그 중요성은 사실상 동일합니다. 1부 예배는 교회의 중직자들이 오십니다. 그리고  2부는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과 성가대가 있습니다. 3부는 주로 젊은 층들이 있습니다. 3번의 예배는 모두가 소중하고 그 고유한 의미가 있습니다. 단 한번의 설교도 허투로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 그대로 최선을 다해 감당했습니다.

모든 부교역자들이 주일 설교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교회는 여러 이유로 부목사들에게 주일 설교를 잘 맡기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 자리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며, 교회의 영적인 분위기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기회가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일생 일대의 가장 중요한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을 온전히 드려서 모든 것을 걸고 감당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어제까지 저에게 맡겨진 모든 설교를 마쳤습니다. 설교를 위해서 강대상 의자에 앉아 있는데 감사의 기도가 터져나왔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 모든 기회를 허락하시고 잘 감당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제가 설 수 있다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지막 설교의 세번은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다시 정리하겠지만, 마지막 설교는 저의 내면에 있는 그동안 갈고 닦은 개혁주의 신학의 종합이었습니다. 저는 한동안 화가 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존귀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고 종종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당황스러운 것은, 예배의 모든 요소들이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그분을 받들지만, 설교 안에서는 그리고 성도님들의 사고와 고백과 삶 속에 너무나 그리스도께서 약하다고 느낀다는 것입니다. 마치 잔치의 주인이 구석에 몰려서 소외 받는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그분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자신을 그분께 드리는 것에 대해서 마음껏 설교했습니다. 설교 단에 올라가기 전에 기도했습니다. “주님, 사람들의 인식에서 저는 완전히 사라지기 원합니다, 오직 주님이 나타나시기 원합니다”

기도에 응답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은혜 받으신 분들도 계셨고, 저를 노려보고 가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반응입니다. 예수님께 당신 자신을 드려야 한다는 가장 직설적인 외침은, 어떤 이들에게는 하늘의 기쁨으로, 어떤 이들에게는 삶의 저주로 느껴질 것입니다. 원래 기독교 신앙은 그런 것입니다. 이제는 더욱 더 주님께 생명을 드리는 자들과, 근심하며 발걸음을 돌리는 자들로 나누어집니다. 

이미 설교 준비를 완벽하게 마쳤기 때문에, 설교 전에는 조용히 루이스의 책을 읽었습니다. 마음이 평안해지고 안정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합니다. 평범함에 지친 저의 마음에, 가장 탁월하게 주님의 뜻을 알려줍니다. 저의 마음에 직접 들려주는 그의 이야기들은 너무나 달콤합니다. 그리고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저에게 있어서 지난 8개월은 사라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지나치게 최선을 다했고 그런 면에서 후회가 없습니다. 아마 다시 돌아가서 해보라고 하더라도, 더 잘 할 자신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소극적으로는 교회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저의 역할을 잘 감당했고, 적극적으로는 목회자로서 보일 수 있는 최선으로 설교를 감당했습니다. 주님께서 넘치게 저에게 은혜와 기쁨을 주셨고, 분에 넘치는 칭찬을 받았고, 제가 누릴 수 없던 영광을 누렸습니다.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며칠 전 부터 갑자기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금보다, 열배의 깊이를 가지고 싶다” 이미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수준은 지나갔습니다. 사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배우고 배우고 또 배울 뿐입니다. 배운 것을 실천하고 갈고 닦고 더 나아질 뿐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기도입니다. “주님, 열배의 깊이를 허락해 주십시요”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이미 삶의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스스로도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여전히 목이 마르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처럼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팀켈러처럼 되고 싶고, 루이스처럼 되고 싶고, 칼빈처럼 되고 싶고, 마이클 호튼처럼 되고 싶고, 박영선 목사님처럼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저의 꿈입니다. 그리고 솔직한 제 내면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들 보다 더 나아야한다고.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은 저의 개인적인 욕심은 아닙니다. 앞으로 이정도 수준에서 살아도 크게 잘못될 일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주일 설교를 하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설교를 들으시는 성도님들의 그 진지함과 기뻐함을 보면서, 그렇게 좋아해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빛나는 눈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더 잘해야겠다” 

하나님께서는 설교자를 세우시고 그분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교회의 신비입니다. 예배에 와서 앉아 있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바랄 수 없는 그 어떤 것을 얻고자 하는 그 간절한 마음으로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자는 탁월해야 합니다. 그분들의 기대가 있기 때문에, 저는 앞으로도 더 깊어져야 합니다. 굳이 그것을 수치로 표현하자면, 열배입니다.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한동안 제 설교가 늘지 않아서 정말 고민했습니다. 그때에도 이미 저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고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새로운 길을 여셨습니다. 저를 더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의 한계를 스스로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주 섬세하고도 확고한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저의 결론은, 루이스와 칼빈을 평생동안 가장 진지하게 그리고 깊게 파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제가 가장 믿을 수 있는 두분입니다. 루이스는 세상을 향해서 가장 탁월하게 기독교를 설명하고 이해한 사람이며, 칼빈은 가장 성경적으로 탁월하게 기독교를 이해하고 밝히 보인 사람입니다.

물론 종종 두 사람의 책을 읽기는 했습니다. 루이스야 원래 좋아했고, 지금도 기독교 강요를 읽고 있습니다. 하지만 태도 자체를 바꾸었습니다. 그들의 것이 완전히 저의 것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데 이렇게 말하더군요. “두주 전쯤에 바로 이 부분에 대해서 루이스가 저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물론 직접은 아니구요” 사람들이 모두 즐겁게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팀켈러 목사님이 얼마나 루이스를 사랑하는지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팀켈러 목사님에게 루이스는 살아있는 사람이고 또 늘 동행하는 존재였습니다. 

칼빈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신학책을 보고 학자들을 살펴보지만, 그러나 가장 성경적으로 탁월하게 설명하는 것은 역시 칼빈입니다. 흔들림 없이 신뢰할 수 있는, 그리고 의지할 수 있는, 성경이 이야기한만큼 성경에 대해서 깊이 있게 이야기하는 분이 칼빈입니다. 칼빈의 모든 태도와 모든 사고와 모든 경건을 저의 것이 되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네이버 밴드를 추가로 두개를 더 만들었습니다. “하루 한번” 루이스, “하루 한번” 칼빈입니다. 멘탈리티에 빠져서 반복해서 읽으면서 얻은 유익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마치 그런것처럼, 평생동안 하루 한번 루이스와 칼빈으로 저를 완전히 변화시키는 것이 목적입니다. 천천히 그러나 깊이 그리고 아주 지나치게 진지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아마 그 길의 언젠가에는, 열배 쯤 깊어져 있는 제가 존재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모든 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목회자로서의 저의 여정은, 어떤 의미에서 이제 시작입니다. 마치 저는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보물이 가득 담긴 바로 그 방의 문을, 아주 살짝 열어보고서 놀라버린 아이입니다. 오 이럴수가! 눈이 부셨습니다. 그곳에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것들이 있었습니다! 제대로 쳐다볼 수 조차 없는 아름다움입니다. 그래서 떨렸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주 조금 맛보았습니다. 그것은 내 삶 전체를 드려도 아깝지 않은 그 어떤 것입니다. 그래서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저의 가진 모든 것과 저의 삶 전체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곳에 쓰여지기 원하고, 저에게 맡기신 성도님들을 잘 섬기시는데 사용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저의, 유일한 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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