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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6일 목요일

미국에서의 15년을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 My Life Is In Your Hands - Kathy Troccoli

 



신 1: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오늘도 하루 종일 교회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가장 앞서 섬겨야 하는 리더이기에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생각하고 선택하고 추진해야 할 일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고려해야 할 부분들이 많고, 해당하는 사안과 관련된 분들을 생각해야 하고 무엇이 최선의 길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오후 심방을 다녀오니 아내가 치킨을 사오겠다고 연락을 주었습니다. 깊게 생각하지 않고 언뜻 떠오른 것은, '아내가 오늘 기분이 좋구나'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한참 맛있게 먹는데 아내가 웃으면서 말합니다. '오빠, 오늘 우리 미국 온 지 꽉 찬 15년 된 날이야, 오빠가 잊었을까 봐 말해 주는 거야' 

세상에 오늘이 8월 6일, 잊어서는 안 되는 날입니다. 그저 이민 가방 네 개만 들고 미국으로 입국한 그때, 달라스로 내리는 밤 비행기 창문을 보면서 그렇게 많이 긴장했던 그날, 그날이 열다섯 번이 지나서 15주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에 어려운 일도 있었고 좋은 일도 있었습니다. 이사도 참 많이 다녔고, 교회 사역도 열심히 했고, 사랑하는 자녀들이 생겼고 안정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물론 열심히 살았지만 돌이켜 보면 후회되는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훨씬 잘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고 부끄러운 일들도 많았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위기들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극복하게 하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합니다. 15년 전에 만약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백지를 주시고, 너가 원하는 미래를 써 보라고 하셨다면 어땠을까? 아마 지금의 모습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제가 기대하지도 못한 미래를 주셨고, 오늘도 여전히 이렇게 살아 있음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지난 15년을 돌아보면, 첫째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둘째로는 아내의 수고입니다. 아내의 지혜와 수고와 용기와 헌신이 없었다면 절대로 저와 저희 가족이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로운 아내를 저에게 허락하셨고 지금까지 넘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한편으로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날이지만, 그래도 오늘은 참 기념적인 날입니다. 마음이 많이 벅찹니다.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인생이지만, 그 안에서 섬세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앞으로도 오직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인도하실 것을 믿고 기도합니다. 저의 힘으로는 단 한 걸음도 전진할 수 없겠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품과 그분의 손 안에서는, 산처럼 높은 어려움과 고난이라도 능히 이겨낼 것입니다. 

2026년 7월 9일 목요일

'구약으로 예수님을 만나다' 설교 시리즈의 모세오경을 마치며 / My Father's Heart - Rachael Lampa

 


신 33: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 새로운 시리즈를 도전하다

평생 무엇인가 도전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것을 시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경험적으로 보자면 마음이 있을 때 도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지나치지 말아야 합니다. 

작년 한 해 뉴시티 교리문답을 마치면서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어떤 것이 교회를 위해서 가장 유익할까? 다음 설교는 어떻게 준비하는 것이 좋을까? 부임 이후에 대부분 신약을 설교했기 때문에 구약을 설교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구속사적으로 구약을 계속 설교하고 함께 배워 나간다면, 그것이 제 자신에게도 그리고 성도님들에게도 유익이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 '구약으로 예수님을 만나다' 시리즈

처음에는 개관을 중심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몇 번 설교를 하면서 느낀 것은, 개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역사적인 맥락을 다루어야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성경 본문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성경 개관과 강해 설교, 그리고 그리스도 중심적인 본문 해석의 그 어딘가에 위치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매주 설교를 준비하면서 어느 정도의 분량을 설교하느냐가 참 고민이었습니다. 대략 10장에서 15장 정도를 다루었습니다. 한 번에 인물 한 사람을 다룬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결국 그 모든 설교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기 위해서 힘을 썼습니다. 


* 참고한 자료들

기본 참고자료는 세 권 정도입니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에 '어 성경이 읽어지내'를 기반으로 제가 혼자 준비했던 자료를 계속 참고하면서 개관의 성향을 더했습니다. 

* 바이블키 
https://www.logos.com/product/145913/baibeul-ki-seonggyeongdaehag-seteu

* Grace and Truth Study Bible Notes
https://www.logos.com/product/209779/grace-and-truth-study-bible-notes

* ESV Gospel Transformation Study Bible: Notes
https://www.logos.com/product/43199/esv-gospel-transformation-study-bible-notes

바이블키는 구약의 키와 신약의 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 성경의 전체 구조를 파악하고 간단한 장별 내용과 해석을 설명하는 탁월한 자료입니다. 어 성경이 읽어지내와는 결이 다르지만, 평신도의 입장에서 성경을 공부하기에 이것보다 더 좋은 자료가 있는가 생각할 정도입니다. 

Grace and Truth Study Bible은 본문의 의미를 단락별로 탁월하게 설명합니다. 본문의 의미를 탁월하게 설명할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관점 자체가 그리스도 중심적이기 때문에 실제로 설교에 사용할 수 있는 설명도 상당히 많이 발견했습니다. 

ESV Gospel Transformation Study Bible은 제가 가장 신뢰하는 자료입니다. 평신도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목회자 입장에서도 이것보다 더 예수 그리스도를 잘 드러내는 자료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날에 설교해야 하는 부분을 빠르게 스캔하고, 중요한 부분을 정리하면서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 자료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목회자 자신이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처럼, 자료가 전부는 아닙니다. 좋은 설교를 위해서는 좋은 자료가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설교자 자신입니다. 가장 어려운 점은, 제 자신조차 이런 시리즈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팀켈러 목사님의 경우 대부분의 설교의 마지막은 예수 그리스도로 끝이 납니다. 그러나 모든 본문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저에게도 이렇게까지 해 준 설교자가 없었지만 저는 이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 그 자체이시고 성경에서 계시하는 바라면, 알레고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그리스도 중심으로 본문을 보고 해석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리즈를 준비한 것입니다. 


* 그간의 모든 경험과 통찰을 시리즈에 녹여내다

힘들었지만 좋았던 것은, 평소에 고민하던 성경에 대한 이해,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성,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도의 정체성, 구약과 신약의 연결 등등을 집중적으로 시도하고 풀어나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것 자체가 좋았고,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성경을 큰 그림 속에서 훑어 가면서 본문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할 수 있었다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설교 안에는 모든 것이 녹아들어갔습니다. 결국 이 강해 설교의 목적은, 성도의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 전체가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목회적인 경험들, 성도님들과의 대화들,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들은 성경에 대한 오해와 고민들, 그리고 제 자신 역시 성도로서 힘들던 부분들과 성경에 대한 이해들, 이 모든 것들을 그리스도 중심의 강해 가운데 녹여낼 수 있었습니다. 


* 설교자 자신이 더욱 변화되다

그리고 설교를 하면 할수록, 모든 내용이 저의 내면에 스며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설교는 단순히 조직신학의 내용을 강의하는 것도 아닙니다. 혹은 성경 신학의 내용을 풀어내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설교는 너무나 중요하고 무게 있는 인간의 인생을 다루는 것이며,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설교에는 당연히 신학이 바탕이 될 수밖에 없고 그것이 설교를 조율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는 학문을 뛰어넘어 인생을 담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제 자신도 설교를 하면서 내면이 변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딱딱하고 추상적인 신학을 넘어서, 저의 삶에도 연결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멀리 있는 말씀이 굉장히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말씀에 대한 경험이야말로, 이렇게 거대한 설교 시리즈를 힘겹게 그리고 정성으로 준비하며 얻은 가장 큰 유익입니다. 


* 모세오경을 마치다

그리고 어느덧 모세오경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신명기 말씀을 마무리하는 데 마음이 벅찼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모세에 대한 안타까움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삶의 마지막을 앞에 두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백성을 의탁하는 모세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무조건 잘될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긍정이 아니라, 성도의 삶의 어둡고 밝은 면을 함께 조명하시는 말씀의 지혜가 좋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암울한 미래를 예언하지만, 그러나 그 모든 인생의 고난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끝나는 말씀이 너무 좋았습니다.  

모세처럼 너무나 탁월한 리더도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들어가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저와 같은 죄인을 천국으로 데리고 들어가신다는 것이 참으로 마음이 벅찼습니다. 신명기 마지막 부분을 읽어 나가면서, 저는 참으로 행복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 주 한 주가 쉽지 않았는데, 벌써 모세오경을 마쳤다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집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결과이고 주님께서 행하신 기적입니다. 주님의 귀한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로서,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는 것은 가슴벅찬 일이고 주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됩니다. 


*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더 깊어지기를

지금 정도의 속도라면 올해 안에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설교를 준비하는 저도 그리고 성도님들께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아가고 그분에 대한 사랑이 풍성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구약 안에서도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고, 성경을 보는 지혜가 더 깊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 자신 안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구원자이시며 진정한 왕이심을 진심으로 고백하는 참된 믿음이 더 풍성해지기를 기도합니다.

2026년 6월 25일 목요일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 God Will Make A Way - ACAPELLA PRAISE


시 37:3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6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9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10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11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요즘에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마음의 중심'입니다. 제가 섬기는 목회 가운데, 그리고 저의 삶 가운데 과연 무엇을 목적으로 그리고 무엇을 중심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는가를 깊이 고민합니다. 

결국 목회는 많은 것을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소한 것부터 더 크고 중요한 것까지 끊임없이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택이라는 것은 어떤 기준을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특히 요즘에, 제 자신의 기준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합니다. 

교회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결정 가운데 저의 책임이 묻어난다는 것이 마음에 깊은 부담이 됩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수 많은 이해의 충돌 속에서, 때로는 사람들의 자기 중심성으로 물든 수 많은 역학 관계를 지켜보고 분석하고 이해하면서, 이 모든 것이 참으로 쉽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요즘에 수요일에는 구약을 설교합니다. 광야를 지나가는 이스라엘 백성을 묵상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 인생이 광야이구나' 예전에는 상당히 비유적인 것으로 이해를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것이 비유가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자 그대로였습니다. 저의 인생은 말 그대로 광야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래 전 성지 순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광야 그 자체였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그 황량한 땅, 끝도 없이 펼쳐진 모래와 숨막히는 더위, 잠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그 절박함이 이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제 마음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 광야가 제 눈앞에 언뜻 홀로그램처럼 펼쳐졌습니다. 그리고 제가 바로 거기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스라엘처럼 악한 불평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설교했고, 항상 제 마음에도 경계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제 마음 한켠에서는 깊은 공감이 있습니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그 광야 길을 잠시라도 걸어본 저는 그들이 경험한 고통이 너무나 이해가 됩니다. '오 주님, 도대체 물은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왜 주님은 저를 여기로 이끌어내셨습니까?' 저의 마음은 죄와 한탄과 고민 사이에 그 어딘가에 놓여 있습니다. 

시편을 읽으며 마음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미 주님의 품에 안긴 다윗의 시편이 그렇게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고난의 길을 믿음으로 걸었던 그의 삶이 부러웠고, 이미 그는 주님의 품에 안겨 있다는 것이 그렇게 부러웠습니다. 

다윗의 고백이 마치 저의 영혼에 직접 말하는 듯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는 말씀이 선명해서 참 좋았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 그리고 악인들의 형통에 분노하지 말고 끝까지 여호와를 소망하라는 말씀이 제 마음에 너무나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저는 목회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목회가 가진 그 독특함, 그리고 그 쉽지 않음은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며, 오직 하나님께서 아시는 부분이며, 저의 책임입니다. 

지금까지 목회하면서 어려운 일들은 항상 있었습니다. 다만 과거를 돌아보며 하나 감사한 것은, 적어도 저의 욕심으로 저의 이득을 위하는 길보다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교회에 덕을 세우는 방향으로 애를 많이 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시는 부분이며, 그래서 감사한 부분입니다. 종종 가슴을 쓸어 내립니다. 그때 나 자신만 위해서 선택했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구름 기둥이 보입니다. 그분이 이미 광야 가운데 제 앞에 계십니다. 그런데 구름 기둥 뒤가 잘 보이지가 않습니다.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가 모래 바람으로 많이 가리워져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어차피 광야는 정해진 길 자체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다는 것, 그것 하나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으로 다시 한 번 위로 받으며 그 결심을 굳혔습니다. 저는 완벽한 사람도 아니고 대단한 목회자도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책임에 대해서는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언제나 그런 것처럼, 저의 개인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세우는 것에 저의 중심을 놓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10년 후에 지금의 저를 돌아보았을 때에, 그리고 이 글을 다시 읽었을 때에, 오직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는 것, 여호와를 소망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더 깊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될 날을 반드시 경험하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그것이 오직 주님 안에서 가지는 저의 흔들리지 않는 소망입니다. 

2026년 6월 22일 월요일

믿음의 어르신들은, 마치 천국의 보물과 같다 / Holy Spirit, Come Fill This Place - CeCe Winans

 



* 뜻밖의 동행 

이번에 프레션 연합기도회는 버지니아에서 있었습니다. 볼티모어에서 그곳까지는 빨리가도 대략 한시간 반은 걸립니다. 차가 막히면 여차하면 두시간을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주일 저녁에, 그것도 광고 당일에 그곳까지 가자고 성도님들께 말씀드리는 것 자체가 제 개인적으로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 혼자 다녀오는 것으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권사님 두분께서 같이 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두분을 모시고 가는 것이 과연 괜찮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 속으로 설교를 묵상하면서 준비하면서 가는 것이 더 좋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를 긍휼히 여기시고, 같이 동행해 주시겠다고 호의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 천국으로 가는 소풍길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언제나처럼 뜻밖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오고 가는 모든 시간이 제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시간 중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참 좋았습니다. 날은 화창하고 모두의 기분이 좋았습니다. 믿음의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두분 모두 저와 함께 북클럽을 하신 분들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많이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제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마치 천국을 향해 소풍을 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두분이 마음이 너무 순수한 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을 만나고 목회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마음이 순수한 분들을 만나는 것은 너무나 큰 기쁨을 준다는 것입니다. 무더운 여름에 생각지도 못한 때에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같은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여전히 제 언어는 너무 부족합니다. 제가 경험한 가장 좋은 어떤 것이었다고 적어 두고 싶습니다. 

* 칼빈에서 배운 것 

처음에 칼빈에 들어갔을 때에 이미 저는 논문에 대해서 어느 정도 방향을 잡고 갔습니다. 유학의 기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Darwin Glassford 교수님을 만나자마자 제 이야기를 풀어 놓았습니다. "교수님, 저는 교리 교육으로 논문을 쓰고 싶습니다. 저는 교리를 바로 이해하는 것이 한국 교회를 살리는 좋은 방법이라고 확신합니다."

제 이야기를 경청한 이후에 교수님이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정목사님, 제 어린 시절에 아버지께서 이런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악수를 살살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성인이 되었지만 저는 누군가와 악수할 때 마다 그 말씀이 항상 생각이 납니다'"

저는 순간 '도대체 이분이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가'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짧은 이야기 한마디가 저의 지평을 넓혀준 탁월한 조언이라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 인간의 성장이라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지적인 성장을 넘어서는 것이며, 관계 속에서, 특별히 세대 간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어르신들과의 만남을 참 좋아합니다. 그리고 인생에 있어서 젊은 시절에 가장 많이 배워야 하는 것은 '노년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 자체가 젊음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서, 누구나 맞이할 수 밖에 없는 삶의 마지막 시기를 배울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어르신들을 대하면서, 그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배우면서, 저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고, 그분들의 믿음의 길을 존경하며 용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북클럽의 의미

며칠 전에 어떤 분이 스쳐 지나가듯이 말씀하시더군요. '목사님, 노인들이랑 북클럽 하는데 시간을 쓰지 마시고 젊은 사람들에게 더 신경을 쓰시면 좋겠습니다' 물론 사역적인 면에서 젊은 분들을 더 마음을 쓰면 좋겠다는 목회적인 조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사실 제 마음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노년의 시간이야 말로, 신앙의 의미를 생각하고 배우고 실천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교회를 살리는데 있어서 어르신들의 역할이 참 크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연세가 많으신 분들과의 북클럽을 좋아합니다. 배울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 어떤 목회학 수업보다 깊이가 있습니다. 제가 목회자이지만, 제 마음에 유일한 소원은, 제가 저 연세에 도달했을 때에 꼭 저렇게 멋진 믿음의 모습으로 살고 싶다 라는 다짐입니다.  

*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그래서 권사님 두 분과의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믿음의 어르신들은, '천국의 보물'과 같은 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고 가며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깔깔거리고 웃은 것이 아마 백번은 넘은 듯합니다. 그래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마 천국은, '웃음'으로 가득 찬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믿음으로 살았던 수 많은 믿음의 선진들, 깊이 있는 노년의 시간들을 통과한 아름다운 분들과 함께, 믿음의 이야기를 나누며 행복을 나누며, 영원을 누리는 곳이 바로 천국일 것입니다. 

2026년 1월 18일 일요일

나의 설교가, 나의 것이 되기까지 / How Could I Ask for More - Cindy Morgan

 


예전에 한 성도님께서, 제가 아닌 다른 목회자의 설교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하신 것을 들었습니다. "정목사님, 이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 정말 제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참 부러웠습니다. "아니 얼마나 그분의 설교가 감동이 되면 나한테까지 이렇게 이야기하시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성도가 이런 마음이 들 수 있도록 설교 할 수 있을까?"라는 진지한 질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좋은 설교란 무엇일까요? 혹은 설교를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어떤 설교가 성도님들에게 감동이 될까요? 아주 어려운 질문이기도하고, 한편으로는 너무나 중요한 질문입니다. 

한때는 주해적으로 정확한 설교가 좋은 설교라고 생각했습니다. 단어와 문맥과 신학적인 논리가 완전히 맞아 떨어지는 것이 설교의 목표인 것입니다. 그래서 권위있는 주석들을 많이 구입했습니다. 

물론 설교는 당연히 주해적으로 가능하면 정확해야 합니다. 많은 주석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살펴야 합니다. 때로는 아주 난해한 본문 해석을 붙들고 씨름해야 합니다. 그래서 설교에는 성경 본문 그 자체와 목회자 자신의 분명한 신학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 드러나야 합니다.  

또 한때는, 성도님들의 호기심을 끌어내는 것이 좋은 설교라고 생각했습니다. 뻔한 이야기를 뻔한 스타일로 말한다면,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당연히 지루해할 것이고 청중의 관심과 설교의 뜨거움은 식어 버릴 것이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더 매력적인 구조를 만들어낼 것인가에 많은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가능하면 연역적으로 내용을 끌어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고 강해와 주제의 두가지 스타일을 함께 섞어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좀 더 효율적이고 다양한 구조를 만들어내는 마인드맵을 쓰는 것은 저에게 있어서 필수입니다. 

그런데 요즘에 드는 생각은, '온전히 나의 것으로 체화된 설교'가 정말 좋은 설교이구나 라는 생각입니다. 만약에 주해적으로 바른 설교가 목표라면, 그냥 주석을 읽어드리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호기심을 끌어내는 것 자체가 목표라면, 더 극적인 이야기 구조를 사용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저는, 아무리 바른 말을 하더라도, 아무리 좋은 구조를 쓴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목회자 자신의 진실한 고백, 확신, 뜨거움이 아니라면 그것이 성도님들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결국 문제는, 지역 교회 목회자는 동일한 성도를 대하기 때문입니다. 매주 만나는 동일한 회중이, 담임 목사의 설교에 은혜를 받을 수 있다면 저는 그것이 기적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자칫하면 이런 생각이 들게 됩니다. '목사님, 목사님도 그렇게 못하면서 왜 그렇게 설교하세요?'

그래서 저의 결론은, 설교는 정말 진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자신이 직접, 설교 본문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말씀을 묵상하면서도, 또 설교 원고 자체를 작성하면서도, '도대체 이 본문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 말씀이 나에게 무엇을 보여주시는가?' 바로 거기에 온 마음을 쏟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고민의 내용을 설교로 풀어냅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나의 것이 된 그 말씀'을 설교로 풀어내는 것입니다. 물론 주해를 충분히 살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더 중요한 것은, 저의 내면에 다가오고 그래서 품게 된 본문의 의미와 그 능력입니다.  

또한 '말씀이 나의 것이 되는 그 과정'이 설교의 구조를 만듭니다. 단순히 한절 한절 논리적인 순서에 따라서 구조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저의 마음에 감동이 되고 또 마음에 크게 와 닿은 부분을 중심으로 구조를 짭니다. 그래서 어떤 부분에서는 강해 설교이지만, 또 어떤 부분에서는 주제 설교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접근이, 본문 자체가 가지고 있는 구조와 어느 정도의 긴장을 만들어내지만, 그러나 설교가 결국 목회자라는 인격체를 통해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말씀을 받은 저라는 존재가 설교의 구조에 반영이 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고, 설교를 설교 답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즘에 특히, 설교 원고를 고치고 또 고치면서 계속 고민합니다. 이제는 이 설교가 좋은 설교인가라고 묻지 않습니다. 주해적이고 신학적인 정확성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오히려 '정말 이 설교가 나의 진실한 고백인가? 나는 정말 이렇게 살교 있는가? 그리고 이 설교를 내 마음에 거짓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할 수 있는가?' 입니다. 

그러한 질문을 품고 고치고 또 고친 이후에 최종 원고가 완성이 되면, 그제서야 마음이 놓입니다. 왜냐하면, 부끄러움 없이 설교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해나가는 저의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기를 항상 원합니다. 진실한 설교만이, 우렁찬 목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결국 설교는, 나 자신을 향하는 것입니다. 성도님들의 마음에 넣는 것이 아니라, 저의 마음에 가장 먼저 넣고 저의 마음 안에 닿아야 합니다. 단순한 성경 교사가 아니라 설교자이기 때문에, 그 말씀 앞에서 먼저 엎드리고, 그 안에서 내가 먼저 변해야 하며, 그것이 부담이고 또 영광입니다. 

결국 가장 어려운 것이, '나의 설교가 온전히 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좋은 설교를 위한 어떤 의미에서 유일한 방법도 '나의 설교가 온전히 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평생 동안 저의 설교가 그러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설교는, 언제나 온전히 저의 것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한 사역이 쌓여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목회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2025년 12월 3일 수요일

나의 부모님은 항상 어디에든 계신다

 

저의 아버지는 선장으로 일하셨습니다. 일년에 거의 9개월은 해외에 계셨기 때문에 저는 거의 어머니 손에 자랐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 아버지께서 서울 본사에서 일하시게 되면서, 그제서야 온 가족이 모여 살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이 가장 많은 시간이 있습니다 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할 시간입니다. 저는 그 시기를 놓쳤습니다. 그리고 이미 훌쩍 커버린 저로서는 부모님과 보낼 시간이 넉넉하지가 않았습니다.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저의 세상 속에 들어가 버렸기 때문에, 부모님이 그렇게 소중한 줄 몰랐습니다. 

결혼하고 조금 철이 들었습니다. 이제서야 부모님과 함께 하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았는데, 결혼을 하고 유학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거의 15년이 지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저는 유학을 생각해 본적도 없었고 한인 교회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이 한편으로는 섭리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부모님을 가까이 뵐 수 없다는 것이 마음 한편에 너무 큰 아쉬움으로 다가옵니다. 그래도 건강하신 편이지만 과연 얼굴을 마주하고 지낼 수 있는 시간은, 아마 평생에 몇달이 전부일 것입니다. 

어제는 늦은 시간 양로원으로 심방을 갔습니다. 미국에서는 양로원을 널싱홈이라고 부릅니다.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비용을 받기 때문에 정부의 보조가 없이는 현실적으로 들어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시설도 천차만별입니다. 참기 어려울 정도로 냄새가 나는 곳도 가봤고, 또 호텔처럼 좋은 시설을 갖춘 곳도 방문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시설과 상관없이 그곳은 외롭습니다. 많은 어르신들이 여러 상황 속에서 들어오시지만,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어 하십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그곳에 들어가는 것 조차 쉽지 않지만, 그러나 정작 그곳에 계신 분들은 정서적인 어려움으로 더 힘들어합니다. 

제가 널싱홈을 방문한 목적은 두분을 뵙기 위해서입니다. 그 중에 한분은 아주 예전에 볼티모어교회에 출석하셨던 집사님이십니다. 거기 계신다는 소식을 우연히 들었습니다. 외롭게 앉아 계시는데 많이 마르셨고 식사도 제대로 하시지 않고 계셨습니다. 

한참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집사님의 외로운 마음이 조금이라도 달래지기를 바랬기 때문입니다. 손을 꼭 잡고 기도해드렸습니다. 인생은 너무나 연약하기에 결국 하나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젊은 사람이든 노년의 시기를 보내시는 분들이든 모두가 동일합니다. 그래서 기도가 더 간절하고 진실해 집니다. 

어르신들을 뵈면 항상 부모님 생각이 납니다. 그래서 어르신들을 심방하면 꼭 부모님을 뵙는 것 같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나의 부모님도 이렇게 연세가 드시겠구나, 그때에는 내가 이분을 방문하고 위로한 것처럼 누군가가 꼭 그렇게 해주면 좋겠다, 이것이 저의 솔직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다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저의 심방들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심방을 끝나고 나오는데 박종호 장로님의 '나그네의 집'이 생각이 났습니다. 너무 좋아하는 찬양이고 또 따뜻한 찬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잃어버린 자들을 위해서 우시고 찾으신 것처럼, 저의 작은 인생 역시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2025년 10월 5일 일요일

볼티모어 교회의 사역 1년을 감사드리며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셨습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기도는 이것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인도하셨고 지금의 일을 모두 이루셨습니다. 

저는 하루의 신실함을 지키기도 힘들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인내하시고 이끄셨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이룬 모든 선한 것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교만하지 않게 하시고, 저의 수준을 알게 하시며, 주님 앞에 기도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기도로 이 시간까지 오게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평소에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성도님들의 기도 제목을 가지고 저의 일처럼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모든 책임을 진다는 무게가 참 무거웠지만, 주님의 자녀들의 기도를 함께 짊어진다는 것이 이렇게 감격적인 일이라는 것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설교에 힘을 쓰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저의 준비와 저의 마음은 오직 주님께서 아십니다. 홀로 방안에서 고민하고 눈물 흘리는 모든 시간도 주님께서 아십니다. 부끄러움 없이 설교하게 하시니 감사드리고, 주의 말씀을 통하여 성도님들이 은혜를 누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일에 웃음이 가득한 성도님들의 얼굴이, 저의 마음에 너무나 큰 기쁨이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교회가 안정되게 하심도 감사드립니다. 미래를 생각하면 여러 두려움이 있지만, 그러나 오늘 하루가 주님 안에서 있어서 감사드립니다. 미래를 감추시고 현재에 주님을 의지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신비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기에 기도하며 믿음으로 전진하는 것이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모든 짐을 주님께 맡긴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지를 경험합니다. 

주님,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저의 역할이 너무 크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무 작음에 감사드립니다. 어찌할 바를 몰라서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주님 주시는 지혜로 해쳐나오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혼란 속에서도 질서를 보게 하시고, 담대해야 할 때에 담대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교회라는 것이 저의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저는 여전히 부족하고 저의 능력은 미천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어떤 것이라고 하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저를 민첩하게 하시고, 지금의 수준보다 배의 능력을 주시며, 누구보다 탁월하게 사랑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천년이 하루 같은 주님 앞에서 일년은 마치 점과 같은 시간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모든 걸음 속에서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스쳐지나가지 않으시고 저의 손을 잡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기처럼 주님의 손을 잡았고 서툰 걸음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걸음을 가장 성공적으로 걷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주님의 일하심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성도들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사람이 어떻게 바꿀 수 있겠습니까? 모든 은혜와 감화와 감격과 감동은, 오직 주님께로부터 나옴을 고백합니다. 오직 성령님의 능력입니다. 주님이 영혼을 다스리시며 주인이 되시기에, 성도님들의 마음이 부드러워집니다. 주님, 이것이 기적입니다. 저는 그것을 보았고, 그래서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여전히 두려움이 있습니다. 여전히 저의 책임은 너무나 크다고 느낍니다. 주님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숨 쉬기가 어렵다고 종종 느낍니다. 그래서 또한 주님께 의지합니다. 지금까지 잘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그저 순간의 기쁨일 뿐임을 고백합니다. 제가 심적으로 받는 모든 부담조차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저의 가장 낮은 마음이 되기 원하고, 오직 주님의 일하심이 저의 소망이 되고 기쁨이 되기 원합니다. 

주님 저를 붙들어 주시기 원합니다. 저는 이제서야 신앙을 배우는 듯 합니다. 전적으로 주님께 잡히는 것이야 말로 성도의 가장 큰 기쁨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 훈련이 되지 않았습니다. 두렵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제가 그렇게 되기를 원하심을 봅니다. 인간적인 표현으로는 운명이고, 주님의 뜻이고 섭리임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저를 온전히 주님께 맡깁니다. 

그저 하루를 충실하게 살 수 있도록 힘을 주시기 원합니다. 오늘 하루가 참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미래를 놓고 두려워하지 않도록 침착함을 주시기 원합니다. 저의 실패가 주님의 실패가 아님을 기억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기 원합니다. 주님이 그렇게 해 주신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겠습니다. 

주님의 영광만이 앞으로도 드러나기 원합니다. 저는 사라지고 없어지고, 오직 주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주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저의 유일한 소원이 되게 하시고, 그것이 저의 인생에 실제로 이루어지게 하시고, 저의 지나가는 그 길에는 오직 주님만이 선명하게 드러나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게 하시고 감사하게 하시니 이것에 감사드립니다. 주의 교회를 섬기는 1년을, 아름답게 지나가게 하신 주님께 모든 마음으로 감사드립니다. 모든 감사와 찬양을 오직 주님께만 올려드립니다. 존귀하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2025년 9월 24일 수요일

목회의 은혜를 나누며 (24) - '나의 삶'으로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지난 팬데믹 기간을 돌아보면, 참 쉽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교회에 성도님들이 더 이상 모일 수 없었고, 함께 예배드릴 수 없다는 현실은 그전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어려움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새로운 일들을 시작하셨습니다. 

성도님들이 교회에 나올 수 없는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어떻게 하면 함께 찬양을 나눌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작은 프로그램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제가 홈레코딩을 취미로 하고 있었기에, 이진희 사모의 피아노 반주와 제 목소리를 녹음하여 영상을 제작하고, 찬양의 의미를 묵상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였습니다. 이것이 발전되어 시카고 기독교 방송에서 ‘삶으로 드리는 찬양’이라는 제목으로 방송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이름은 제 아내가 지어준 것입니다. 찬양이 단지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삶 전체로 하나님께 드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처음 시작한 때로부터 이제 거의 4년이 되었고, 지금까지 200곡이 넘는 찬양을 나누며 복음적인 묵상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 방송은 기본적으로 라디오를 통해 송출되며, 이후 유튜브를 통해서도 다시 나눌 수 있도록 준비됩니다. 오랫동안 진행해 오면서, 저는 찬양을 통해 복음이 전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 성도님들의 반응을 통해, 이 프로그램이 은혜의 통로가 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찬양을 좋아하시고 자주 부르시지만, 그 찬양이 성경적으로 또는 신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잘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찬양은 귀한 것이지만, 그 의미를 묵상할 때 더욱 깊은 찬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묵상을 돕는 자료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단순한 감상이나 인상을 나누기보다, 가사와 말씀을 연결하고, 그 내용을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풀어내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모든 자료는 교회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제 블로그(jungjinbu.blogspot.com)에 공개해 두었습니다. 이 사역을 통해 성도님들이 찬양의 은혜를 더 깊이 누리시고, 이민 교회의 찬양이 더욱 성경 위에 바로 서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저는 시카고를 떠났지만, 볼티모어 교회의 후원을 힘입어 이 사역을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 방송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성도님들의 신앙 성숙을 돕는 귀한 통로가 된다는 확신과 기쁨 속에 섬기고 있습니다. 

프로그램은 볼티모어교회 유튜브 페이지 맨 아래에 플레이리스트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좋아하시는 찬양을 찾아 들으시고, 그 의미를 깊이 묵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단단한 성경적 이해 위에서 찬양의 깊은 묵상으로 나아가신다면, 여러분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더욱 충만해지고, 복음이 힘 있게 확장될 것입니다. 이 사역이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도록, 또한 이 프로그램을 통해 더 많은 분들의 마음에 복음이 심겨질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Looking back on the pandemic, it was a very difficult time. Church members could no longer gather, and the reality of not worshiping together was something we had never experienced before. Yet through that season, God began new works in the church. 

Longing to share praise even when people could not come, we started a small program. Since I enjoyed home recording, I recorded my voice with my wife Jinhee’s piano accompaniment, added video, and prepared a program with reflections on the meaning of hymns. This later developed into a broadcast on Chicago Christian Radio called Praise Offered Through Life. 

The title was given by my wife, expressing the desire that praise would not remain only on our lips but flow through our whole lives. Nearly four years have passed since then, and more than 200 hymns have been shared with gospel-centered meditations. The program is broadcast on radio and also uploaded to YouTube. Through many responses, I have realized again that praise can truly convey the gospel. 

Many believers love to sing hymns but may not know their biblical or theological meaning. That is why, instead of simply sharing impressions, I connect lyrics with Scripture and explain them in a Christ-centered way. All materials are available on my blog (jungjinbu.blogspot.com) so churches can use them freely. 

Although I have now left Chicago, I continue this ministry with the support of Baltimore Church. I am convinced this broadcast is a channel of grace for the maturity of believers and the spread of God’s kingdom. The playlist can be found at the bottom of Baltimore Church’s YouTube page. I hope you will listen, meditate on the meaning of each hymn, and grow in love for Christ. Please pray that this ministry will continue and plant the gospel in many hearts.

* 볼티모어 교회 칼럼, 목회의 은혜를 나누며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5/02/blog-post.html

* '삶으로 드리는 찬양'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4년 10월 31일 목요일

주만이 저의 길을 인도하십니다 / 주만이 - 김명식

 



볼티모어로 거처를 옮긴지 거의 한달이 다 되어 갑니다. 미국에서 타주로의 이사는 몇 번이 있었지만 아마 이번이 가장 분주한 듯 합니다. 이주 전 부터 이미 사역이 시작되었고 이후에도 저에게 주어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큰 행복으로, 또 한편으로는 긴장과 염려 가운데 모든 것들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사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그렇습니다. 그래도 아주 잠깐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을이 너무 아름답고, 많은 것이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감사한 것은 위임식을 잘 마쳤다는 것입니다. 담임 목사로 세워지고 한 교회의 최종 책임자가 된다는 것은 큰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셨고 세워주셨습니다. 제 인생에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나 더 감사한 것은, 마음껏 사역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아주 오랫동안 이런 순간이 오기를 바랬습니다. 교회를 위해서 가장 좋은 것을 고민하고, 또 교회를 위하여 가장 좋은 것을 실천하는 자리에 섰습니다. 물론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바빠졌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품은 모든 선한 것들을 조금씩 그리고 차분하게 구현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매 순간 저의 마음을 벅차게 만듭니다. 

볼티모어는 산이 많기 때문에, 길 자체가 오르막 내리막이 이어집니다.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되었는데 이제 조금은 익숙해졌습니다. 우리의 삶이 그런 듯 합니다. 내리막이 있고 때론 오르막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순간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그 험난한 굴곡조차 완벽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담임 목회를 시작하니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그간 걸어온 길에서 경험한 모든 것이 바로 이 순간에 사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모든 것' 입니다. 청년 시절부터 읽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실천했던 그 모든 것들이, 그리고 목회자로서 쌓아 왔던 지혜, 아픔, 눈물, 겸손, 담대함이 이제서야 그 온전한 가치를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제가 있음을 항상 믿었습니다. 그래도 막상 지나올 때에는 그렇게도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그분의 계획은 완벽했습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듯 합니다. 볼티모어의 아름다운 가을이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시카고 보다는 훨씬 덜 추워서 감사합니다. 그저 저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결심합니다. 지금까지 그러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저를 인도하시기에, 계속 앞으로 전진하겠습니다.

2024년 1월 28일 일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67) - 주님 계신 곳에 나가리

 


1. 가사 살펴보기

주님 계신 곳에 나가리 찬양 드리며
그 성소에 들어가 주의 얼굴 뵈오리
그 얼굴을 뵈올 때 주님의 은혜 넘치네
엎드려 고백하네 주께 

주의 위엄 이곳에 가득해 전능하신 하나님 아바 아버지
찬양 받기 합당한 전능하신 주님 주의 위엄 이곳에 가득해 

As I come into Your presence, past the gates of praise
Into Your sanctuary, 'till we're standing face to face
I look upon Your countenance, I see the fullness of Your grace
And I can only bow down and say 

You are awesome in this place, Mighty God
You are awesome in this place, Abba Father
You are worthy of all praise, to You our lives we raise
You are awesome in this place, Mighty God

 

2. 곡 소개

곡의 원래 제목은, Dave BillingtonAwesome in this place이다. 이 곡은, 주님의 임재 가운데 깊이 들어가는 하나님의 자녀의 감격과 기쁨을 고백한 곡이다. 가장 위대하신 전능하신 하나님, 또한 동시에 가장 가까이 계시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신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예배를 감동적인 찬양으로 승화시킨 아름다운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역대하 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7:14 if my people, who are called by my name, will humble themselves and pray and seek my face and turn from their wicked ways, then will I hear from heaven and will forgive their sin and will heal their land.

여기서 여호와의 얼굴을 구하는 기도는, “음식을 주셔서 감사하다라거나 혹은 이제 자겠습니다라는 기도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기도는, 죄가 그의 얼굴을 우리에게 멀어지게 하고 우리를 그에게서 멀어지게 한다는 인식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기쁜 소식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얼굴을 구하라고 초대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향해 활짝 열려 계십니다.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486.

시편 105:4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105:4 Look to the LORD and his strength; seek his face always.

구할지어다는 히브리어 동사의 미완료 형태입니다. 그래서 습관적인 활동을 암시합니다. 하나님을 추구한다는 것은, 믿음, 겸손, 죄에 대한 회개, 그리고 악에서 구원하여 주시기를 그리고 주님의 사랑스러운 임재에 대한 갈망과 주님의 선하신 섭리에 대한 간구로 주님께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추구하는 것은 또한 마음으로부터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846–847.

시편 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27:4 One thing I ask of the LORD, this is what I seek: that I may dwell in the house of the LORD all the days of my life, to gaze upon the beauty of the LORD and to seek him in his temple.

여호와의 집에 거한다는 것은, 예배를 위해서 지속적으로 성소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한 사람이 살아가는 것을 일반적으로 언급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두 가지 경우 모두, 요점은 평생 동안 주님과 끊임없는 교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Kevin R. Warstler, “Psalms,”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840.

시편 96:4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지극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들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96:4 For great is the LORD and most worthy of praise; he is to be feared above all gods. 96:5 만국의 모든 신들은 우상들이지만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96:5 For all the gods of the nations are idols, but the LORD made the heavens.

4절의 말씀으로 시인은 모든 신들과 나라들보다 주님을 높입니다. 그분은 그 누구보다도 그리고 그 어떤 것보다도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시는 분이시며, 그분이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행하신 일에 대한 역사는 그분을 찬양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Study Bible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08), Ps 96:4.

갈라디아서 3: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3:26 You are all sons of God through faith in Christ Jesus,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3:27 for all of you who were baptized into Christ have clothed yourselves with Christ.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 우리가 하나님의 참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했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양자 된 아들들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를 가려 준다는 것이며,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2080.

 

4. 찬양에 대한 묵상

예배의 핵심은,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경험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 하나님의 임재는 매우 추상적인 것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는 분명한 실체가 있고, 우리의 이성과 감성을 포함한 온 존재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경험하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이 죄를 돌이키고 하나님의 얼굴을 찾으라고 초대하신다. 단순한 기도가 아니라 주님을 향한 믿음과 겸손, 회개, 그리고 임재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갈 때에 우리는 주님의 임재를 깊이 경험한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마치 다윗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기를 사모했던 것처럼 주님 앞에 예배 드릴 때 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에 그것을 갈망하고 추구하는 것이다. 주님은 전능하시며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그분의 능력에 경탄할 수 밖에 없으며 마땅히 찬양을 올려드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 되신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한 없이 누리며, 주님의 임재 가운데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바라기는 이 찬양을 부를 때마다, 원곡에 등장하는 핵심 단어인 하나님 안에서 “Awesome”을 누리기를 원한다. 주님을 갈망하시고 추구함으로,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감히 비교될 수 없는 감격과 감사와 기쁨과 충만함을 누리시고 또한 만끽하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소망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3년 10월 1일 일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51) - 예수 주 이름

 


1. 가사 살펴보기

모든 만물의 창조자 저 온 우주의 주관자
그가 죄인 구하려 보내심 받으셨네
말구유에 놓이신 하나님의 독생자
그의 손 못 박혔고 외면을 당하셨네 

예수 거룩한 영광의 이름
예수 어린양 영광 받으실 이름 

사람으로 오신 주 그 이름 임마누엘
희생양이 되신 목자 십자가에 죽었네
우리를 살리시려 무덤에 누이셨고
삼일 만에 일어나사 사망을 정복했네 

예수 거룩한 영광의 이름
예수 어린양 영광 받으실 이름
예수 거룩한 영광의 이름
예수 어린양 영광 받으실 이름

예수, 예수 거룩한 이름
예수, 예수 뛰어난 이름

 

2. 곡 소개

곡은, 2015년도에 발매된 스캇 브래너 목사님의 예수 주 이름싱글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마치 한편의 위대한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감동을 준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그 핵심을 압축적으로 짚어 내었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영광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드러내는 너무나 아름다운 찬양이다.

* 예수 주 이름 앨범 소개
https://music.bugs.co.kr/album/481051?wl_ref=S_tr_01_04

 

3. 말씀으로 바라보기

마태복음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1:23 "The virgin will be with child and will give birth to a son, and they will call him Immanuel"--which means, "God with us."

1:23 Immanuel, Matthew tells us, means God is with us. Jesus Christ is incarnate deity. That is the essence of Christmas. All the problems in this world can be traced back to sin, and Jesus Christ entered the world to forgive us for our sins, give us victory over our sins, and give us an eternal home free from sin. That truth is what Christmas is all about. If you miss that, you’ve missed the point. 마태복음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 처럼, ‘임마누엘’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크리스마스의 본질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들은 죄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죄에 대한 승리를 주시기 위해서, 또한 죄로부터 자유로운 영원한 집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진실이 바로 크리스마스의 모든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이것을 놓친다면, 요점을 놓친 것입니다.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1095.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1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1:2 He was with God in the beginning.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3 Through him all things were made; without him nothing was made that has been made.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1:4 In him was life, and that life was the light of men. 1: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1:5 The light shines in the darkness, but the darkness has not understood it.

1:3 All things … by him. Christ is the Creator of the entire universe, including men and angels (v. 10; Col. 1:16–17; Heb. 1:2, 10–12). This clearly implies that He was not created, for any thing made was created by Christ.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되었으니 : 그리스도는 사람과 천사를 포함하여 우주의 창조주이십니다. 이것은 그분이 창조된 분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하게 암시합니다. 왜냐하면 만들어진 모든 것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509.

1:3 made through him. God the Father did his work of creation through the activity of the Son. This verse disproves any suggestion that the Word (the Son; John 1:14) was created. 성자 하나님의 사역을 통하여 성부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이 구절은, 말씀이신 성자께서 창조되었다는 어떤 제안도 반박하는 것입니다. 

J. I. Packer, Wayne Grudem, and Ajith Fernando, eds., ESV Global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2012), 1479.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14 The Word became flesh and made his dwelling among us. We have seen his glory, the glory of the One and Only, who came from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we have seen his glory. His “glory” is beheld, even as God’s was in the wilderness (Ex. 16:1–10; 33:18–23), in the tabernacle (Ex. 40:34, 35), and later in the temple (1 Kin. 8:1–11). There may also be a reference to the transfiguration, since John, along with Peter and James, witnessed it (Matt. 17:1–5). Moses had asked to behold the Lord’s glory but could only glimpse His back (Ex. 33:18–23). “Glory” applies supremely to God, the Creator and Ruler of the universe, the One before whom all knees must bow. The Son has the divine glory by right (17:5). The Reformers declared their faith with the motto soli Deo gloria (to God alone the glory).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 광야에서, 성막에서, 그리고 후에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영광 나타나고 있다. 베드로, 야고보와 함께 요한도 그것을 목격했기 때문에 아마 예수님의 변모 사건을 언급하는 것일 수도 있다. 모세는 여호와의 영광 보기를 간구했지만, 단지 그의 등만 얼핏 있었다. “영광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자 통치자이신 하나, 모든 이가 무릎을 꿇어 경배해야 하는 유일한 한분에게만 궁극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신적인 영광을 공유하는 권한을 가지신다. 종교개혁가들은 솔리 데오 글로리아’ 즉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란 표현으로 자신들의 믿음을 고백했다.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1852.

디모데후서 1: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1:10 but it has now been revealed through the appearing of our Savior, Christ Jesus, who has destroyed death and has brought life and immortality to light through the gospel.

1:10 The manifestation of God’s plan and grace has been revealed, or brought to light, in the appearing of our Savior Jesus Christ. abolished death: Fear of dying might have caused believers to shrink from testifying about their faith. The Greek term translated life is typically used of eternal life in the New Testament. God’s life, unlike the life of humans, is immortal; He cannot die. Through their faith in Christ, believers have inherited eternal life. We have nothing to fear, not even death. Therefore we can proclaim with boldness our trust in Christ.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드러났습니다. 사망을 폐하시고 :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신자들은 자신의 믿음을 증언하는 일을 꺼렸을 수도 있습니다. “생명으로 번역된 헬라어 용어는 일반적으로 신약에서 영원한 생명을 의미하는데 사용됩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인간의 생명과 달리 불멸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죽으실 없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상속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담대하게 선포할 수 있습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2 Ti 1:10.

히브리서 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개역개정) 2:9 But we see Jesus, who was made a little lower than the angels, now crowned with glory and honor because he suffered death, so that by the grace of God he might taste death for everyone. (NIV)

2:9 glory and honor. Because Jesus became “obedient to the point of death … God highly exalted Him” (Php 2:8, 9). By His redemptive work, Christ has fulfilled all that is required as the supreme representative of mankind. By His incarnation, substitutionary sacrifice, and victory over sin and death (cf. Ro 6:23; 1Jn 4:10), He has fulfilled man’s original purpose. As the Second Adam (1Co 15:47), He was for a short time lower than the angels. Now He has glory and honor, and all things (including angels) are subject to Him. 영광과 존귀 예수님은 죽기까지 복종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분을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속죄의 사역을 통해 인류의 최고 대표자로서 요구되는 모든 것을 성취하셨습니다. 둘째 아담으로서 그분은 잠시 동안 천사들보다 낮아 지셨습니다. 이제 그분께는 영광과 존귀가 있고 천사를 포함하여 모든 존재가 그분께 복종합니다. 

John F. MacArthur Jr., The MacArthur Study Bible: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hville, TN: Thomas Nelson Publishers, 2006), Heb 2:9.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탁월하게 드러낸 찬양이다.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신 성자 하나님께서, 한없이 낮아지심으로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찾아오셨다. 그분은 가장 고귀한 자기 자신을 죄인을 위해서 주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믿음으로, 죄인이 그분의 의로움을 힘입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가 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인류의 영원한 대적인 죽음을 정복하셨다. 또한 지금 그분은 자신의 온전한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계시며 모든 존재는 그분께 복종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원히 찬양과 경배 받기 합당한 분이시며 영광스럽고 존귀하신 분이시다. 그분의 이름은 성도가 평생동안 찬양해야 하는 가장 존귀한 이름이다. 이 귀한 찬양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지기 원한다. 죄인이 자신의 위대함을 높이고 드러내는 이 타락한 세상 속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은혜 그리고 죽음을 정복하신 십자가의 능력과 부활을 고백하고 감격하고 그 안에서 더 견고한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기대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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